철학자와 그의 사상/칼 마르크스

[스크랩] 맑스 이후, 폴라니의 도전 /오창엽

ddolappa 2008. 5. 16. 04:13

맑스 이후, 폴라니의 도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옳았다.

인간은 경제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다. - 31쪽

 

 

  칼 폴라니 Karl Polanyi는 1886년에 빈에서 태어나 1964년에 죽었다. 열여섯 살에 사회주의 학생조직에 참여하면서 사회민주당과 인연을 맺는다. 국제문제 전문가로서 여러 잡지를 주도했고 노동자교육에 힘썼으며 기독교좌파운동에 관한 글을 썼다. 폴라니는 말년에 경제사상가로서의 우뚝 서게 된다. 맑스 이후에 폴라니처럼 집요하게 자본주의를 전면적으로 반대한 사상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폴라니의 대표작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쓴 [거대한 변환 The Great Transformation - The Political and Economic Origins of Our Time](1944, 민음사, 1991)이다. [사람의 살림살이](풀빛, 1998)는 폴라니의 유고를 정리하여 편집한 책이다. 이 책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책세상, 2002)의 역자, 홍기빈이 쓴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책세상, 2001)에서도 폴라니의 생각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맑스로부터 배우고 비판적으로 넘어서고자 했던 이론가나 당대의 현실에 조응하도록 실천한 혁명가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다른 영역과는 달리 오히려 경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사람들 가운데 제대로 된 후예가 드물다. 그것은 그 시대의 상식과 편견에 전면적으로 맞서 비판했던 맑스를 총체적으로 이해한 사람만이, 다양한 학적 고찰을 통해 훈련된 사람만이 가능했던 작업이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폴라니는 균형 있고 근본적인 관점을 추구했다. 

 

  폴라니 덕분에 맑스의 경제사상을 더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한편 홍기빈이 왜 맑스와 폴라니를 동시에 연구하고 있는지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에는 일곱 개의 글이 있는데, 그 가운데 다섯 개는 폴라니의 논문이나 출판된 적 없는 원고들이고 나머지는 폴라니의 딸이 쓴 간략한 전기와 역자의 해제다. 이 얇은 책 한 권을 소화한다면 우리는 폴라니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사상의 궤적을 개괄할 수 있다. 훌륭한 경제학자 혹은 경제사상가들이 대부분 그러하지만 박학다식하고 사려 깊은 통찰을 가진 이들만이 세계 인류의 경제사를 자신 있게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로, 우리는 우리가 창출하고 지키기를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얻을 것이다. 인간 사회에 단일한 결정 요소란 없다. 모든 경제 체제는 개인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양립할 수 있다. 경제적 메커니즘이 모든 법칙을 결정해버렸던 것은 단지 시장 사회에서만 일어난 일이다. - 47, 48쪽

  노동자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게 된 보편적인 인간의 이해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 73쪽 

  시장 체제 자체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이유들로 인해 그런 평화가 깨지고 사회 계급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게 되면, 한쪽은 정부와 국가를, 그에 맞서는 다른 쪽은 경제와 산업을 자신들의 권력 거점으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사회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사회에서 핵심적인 두 개의 기능, 즉 정치적인 영역과 경제적인 영역이 분파적 이익을 위한 투쟁의 무기로 사용되고 남용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파괴적인 교착 상태에서 20세기 들어 파시즘의 위기가 나타났다.
- 74쪽


  폴라니의 글은 그 내용의 넓고 깊음에 감탄할 만하지만 문장이 현학적이거나 난해하지 않으며 독자에게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예리하면서도 대중적인 문체다. 처음으로 폴라니를 접하는 이들은 이 책의 1장 <낡은 것이 된 우리의 시장적 사고방식>을 보면서 우리 시대의 편견을 씻어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장은 [거대한 변형]의 일부를 새로 번역한 것인데, ‘이중적 운동’에 대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폴라니를 읽은 사람들은 그가 작성한 3장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노트>를 읽어보면서 자신이 갖고 있던 맑스에 대한 이해와 폴라니의 해석을 비교해보면 즐거울 것이다. 4장 <우리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의견들>과 5장 <전 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는 당시 소련에 대한 폴라니의 우호적인 관점만 너그럽게 감안한다면 그 주제들은 여전히 매우 유익한 것들이다. 당대 최고의 지성도 시대의 한계를 완벽하게 넘어 설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끝으로 6장 <칼 폴라니 약전>은 폴라니의 전기 한 권 출판되지 않은 한국의 학적 풍토를 돌아 볼 때 무척 반가운 자료다. 칼 폴라니를 소개하는데 정성을 다하는 홍기빈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2003년 12월 29일
오창엽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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