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알란 블룸(지음), 강성학(옮김),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 집문당, 1982 1판 1쇄; 1996 1판 4쇄. Allan Bloom, Shakespeare's Politics, Basic Books, 1964; Univ. of Chicago Press, 1981.
'당대의 작가' 김훈은 2004년 12월 30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 속에 들어있는 심미주의적인 문장들과는 달리 대단히 천박한 -- 혹자는 이를 두고 위악僞惡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 언설들을 내뱉은 바 있다. 고결한 이는 아무리 거칠게 말을 해도 그 성품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나건만 그의 말들은 미성년의 치기 -- "여기 후배들 예쁘지만 다들 소설 못쓰게 해야지(웃음)." -- 까지 곁들여져 차마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의 덜떨어짐은 특히 "세금 왕창내고,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고 질서를 지키"는 '우익삼락론右翼三樂論'에서 더 내려갈 길 없는 바닥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우익, 이 수준인가. 마음 아프다. 이런 "잡놈" -- 그는 스스로를 이렇게 칭한다 -- 이 우익의 깃발을 들고 지배계급의 철학을 '대중의 상식'으로 전파하는 이데올로그를 하고 있단 말인가. 한 사회의 건강함은 우익의 교양에 의해 결정된다. 좌파는 풍찬노숙하며 운동하느라 교양을 쌓을 틈이 없다. 좌파는 '필요하고도 유용한necessary and useful' 일 --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상치 못한 것으로 규정했던 -- 에 매달려야 하는 까닭에 대상을 곱씹어 자기 안으로 들여오고 그것을 보편화한 뒤, 하나의 세계관으로 제시하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우익은 여건이 다르다. 그들의 진정한 삼락은 '관조하고 반성하고 교양을 쌓는데' 있는 것이다. 세금 내고 아들 최전방으로 보내고 질서지키는 것은 우익의 일이 아니라 시민이면 누구나 하는 일이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우익이 이 모양이니 좌파가 괜시리 바쁘다. 먹고 살기도 힘든 터에 우익이 불법 매립한 쓰레기 파헤쳐 치우고 당대의 교양까지 책임져야 하니 말이다. 나는 김훈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하려 한다. 영어로 된 원서를 읽으면 좋겠으나 그게 어려우면 번역본 -- 내가 대조해본 바에 따르면 번역은 무난하다 -- 을 읽어도 무방하며 수준이 모자라 전체를 다 읽기 힘들면 서론Introduction 만이라도 읽기를 바란다. 책을 권유했으니 여기서 그쳐도 될 것이나 혹시라도 아무렇게나 읽을까 걱정되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서론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다. 우익 최고의 교양을 보여주는 이 책은 알란 블룸이 썼다. 그는 우익 정치철학의 거두 레오 슈트라우스Leo Strauss의 제자이다. 이 책은 스승에게 헌정되었다. 'TO Leo Strauss OUR TEACHER'라는 헌사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같잖은 책 한 권 써서 부모나 식솔에게 갖다 바치는 따위가 아니다. 헌사부터, 우익이 중시하는 덕목인 고결함nobility이 느껴진다. 목차를 보자. "정치철학과 시"라는 제목을 가진 서론은 시(예술)와 정치 또는 전범典範 텍스트와 정치적 공동의식의 관계, 그리고 시인(예술가)과 시대, 예술과 정치학의 사명과 본질을 우익의 입장에 서서 규정한다. 이어지는 챕터들에서 저자는 셰익스피어 드라마들의 정치적 의미를 읽어낸다. "기독교인과 유태인에 관하여: 베니스의 상인", "코스모폴리탄 인간과 정치 공동체: 오셀로", "무신론자 영웅의 도덕: 줄리어스 시저", "정치의 한계: 리어왕 제 1막 1장" -- 이것은 다른 학자 해리 자파Harry Jaffa가 쓴 것이다 --, "통치의 조건: 리처드 II세". 제목들만 보아도 정치철학의 근본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이 뚜렷하다. 서론의 첫번째 섹션은 앞서 말했듯이 시(예술)와 정치 또는 전범 텍스트와 정치적 공동의식의 관계를 언급한다. 저자는 고전적 작품에 등장하는 문제의식이 더이상 시대의 "제일원리"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에따라 고전을 읽은 이들조차도 "교양없는 속물"로 전락한 상황을 개탄한다. 이러한 사태의 구체적인 모습은 "삶의 품격의 통속화 뿐만 아니라 사회의 원자화"로 나타난다. 이에 직면하여 저자는 "문명인이란 무엇이 덕스러운 것이고 악한 것인가, 무엇이 고결한 것이고 천한 것인가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아는 이라 규정하고 이를 깨우치기 위해 셰익스피어 읽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인가. 비극의 주제들은 '정치적' -- 이 점이 드러나는 오래된 텍스트 중의 하나는 <<안티고네>>이다 -- 이기 때문이다. "고전적으로 정치생활은 가장 광범위하고 깊고 고상한 정열과 덕이 작용할 수 있는 무대로 생각되었으며, 정치적 인간이 시의 가장 흥미로운 주제처럼 보였던 것이다." 인간의 삶은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생을 통해서만 도야될 수 있고, 그렇게 도야된 사람만이 진정한 시민일 수 있다는 것은 고전적 정치철학의 중심 주장이다. 그런 까닭에 정치적 삶을 다루는 드라마는 시민의 정치교육의 전범 텍스트가 될 수 있으며, 그 텍스트를 통해서 시민들은 공동의 정치적 의식을 형성해내는 것이다. 서론의 두번째 섹션은 시인(예술가), 예술, 정치학의 사명과 본질을 규정한다. 저자는 시인을 높게 평가한다. "철학자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그는 오직 소수에게만 말한다. 시인은 철학자의 이해를 취해서 가장 깊은 열정을 자극하고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들도 모르게 그것을 알게 만드는 이미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 시인은 이처럼 위대하다. 그러나 시인의 위대함의 바탕에는 철학자의 이해가 있다. 시인이 "잡놈"이 되어 천박한 언설만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에게 세계에 대한 이해 -- 엄밀하게 말하면 정치철학적 기본 -- 를 제공한 철학자가 없다는 증거이다. 시인은 정치철학을 취한뒤 그것을 자신의 드라마에서 펼쳐 보인다. "인간은 대체로 자신의 행동의 결과로서 현재의 자기 자신이 된다. 즉, 인간은 단순한 그의 생존에 의해서가 아니라 행동의 성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주인공의 행동을 탁월하게 묘사해야 한다. 묘사하되 골방 속의 인간이 아닌, 인간의 미덕과 악덕이 정의되는 정치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 "정치적 상황 속에서는 보편적 미덕들이 보다 큰 화면에 비추어질 뿐만 아니라 전혀 새로운 능력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은 이와 같은 인물 형상화와 정치적 장치의 설정을 통해서 영국적인 것만이 아닌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모든 문제들"을 보여준 데 있으며, 블룸은 이러한 셰익스피어 읽기를 통해서 고결한 정치학과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현상을 파악하지 않는 정치학은 조야하며, 정의에의 열정에 의해 고무되지 않는 예술은 하찮다." -- 서론 말미에 쓰인 말이다. '도덕적 현상을 파악하지 않는 정치학'은 분명 '현실정치학Realpolitik'일 터이니 조야할 뿐만 아니라 해악을 끼치기도 할 것이며, '정의에의 열정에 의해 고무되지 않는 예술'은 몰역사적 미학주의에 빠져있을 터이니 하찮을 뿐만 아니라 치졸하기까지 할 것이다. "잡놈" 김훈은 블룸의 이 말대로 도덕적 미덕의 정치학에 바탕하여 정의에의 열정으로써 예술활동을 펼쳐 진정으로 고결한 우익 작가로 거듭나기 바란다. 하나 더 바란다면 기왕에 "6하 원칙이 위대한, 최고의 문장"이라고 자신의 입으로 천명하였으니 그 원칙에 어긋나는 글들은 스스로 거두어 들이면 어떨까 싶다. 그거라도 팔아야 '지겨운 밥벌이'가 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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