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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기빈(지음),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ddolappa 2008. 5. 16. 04:15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홍기빈(지음),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2001(초판 1쇄), 2002(초판 2쇄).

모 중앙일간지 2004년 7월 30일자에는 중국에서 배워야 한다는 취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헤드라인은 "386 리더, 빚 내서라도 중국 가서 배워야"였다. "386 시민운동가" 둘의 낯이 함께 실렸는데 공통적으로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징역을 각기 두차례씩 살았고, 김씨 가문의 어떤 이는 공장노동자 생활을 하며 노동운동을 했으며, 박씨 가문의 어떤 이는 총학생회장을 지냈다고 한다. "사회주의나 자력갱생주의같은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 "반시장적인 방법으로 자원과 소득을 분배하려는 문화와 정서", "고비용 저효율의 전형인 교육시스템", "한국의 철 지난 진보세력", "미.일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중국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다" 등을 말했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한때는 속칭 '진보진영'에 몸담았다는 이들이 이런 말을 하면, 과거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한때의 유행에 휩쓸린 철없는 장난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말도 유행따라 떠들어대는 무뇌아의 발언처럼만 보인다. 딱 이렇게 치부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이른바 '리더'들이 하는 말이라 여기저기서 복사해서 돌리고 할지 몰라 그들이 지금 헛소리하고 있음을 밝혀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아는 바가 적으니 공부 많이 한 사람이 고전을 가지고 설명하는 것을 한번 들여다 보자.

위의 두 사람은 시장과 경쟁이 새로운 것이고, 자력갱생주의는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라 잘라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시장과 경쟁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낡은 것이고, 아주 오래 전에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낳아놓은 결과에 치를 떨었으며, 불과 몇 십년 전에도 참담한 실패에 직면했던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니 이들은 퇴보를 진보로 치장하고 참된 길을 외치는 사람들을 퇴물로 몰아부치는 어이없는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 따르면 경제제도로서의 시장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고대 그리스이며, 알렉산드로스 이후 헬레니즘 세계가 만들어지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시장경제는 특히 아테네에서 발전하였다. 그러면 왜 아테네에서 시장이 발전하였는가? 본래 아테네는 가정 경제와 폴리스를 두 바퀴로 하고 가정 경제간 호혜적인 선물교환을 축으로 하여 이상적인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아테네인들은 민주정을 발전시키기 위해 화폐와 시장경제라는 미증유의 모험을 감행"하며, 그에따라 아테네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한 축으로, 제국주의를 다른 축으로" 전개해간다. 그런데 화폐와 시장경제가 애초의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그 "제도는 민주주의 제도의 얌전한 종복으로 머무는 대신 결과적으로 폴리스의 정신적 도덕적 기초를 잠식해 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 출현 당시의 아테네 상황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사람의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혼란에 빠진 폴리스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올바름(정의)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장 경제하에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존재적 안정성을 위해 밤낮으로 돈벌이에 골몰하므로 폴리스적인 생활이나 행복한 삶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뚜렷하게 직시하고, "좀더 안정성이 높은 호혜적 선물 등의 자연적 교역으로 시장 경제를 대체하고자 했던 것"이다.

폴리스는 서구에서도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것이 가진 이상성을 파괴한 것은 시장 경제였다. 시장을 도입함으로써 아테네는 천박한 국가로 변질되었고, 농촌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주변 도시국가들을 침탈하는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이것이 결국 아테네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시장경제와 제국주의의 필연적인 얽힘과 몰락은 이처럼 이미 기원전에 증명되었던 것이며, 그에 대한 해결책 역시 현명한 철학자들이 다 내놓은 것이다. 그러니 누가 시대착오적인지, 아니 누가 무식한 것인지는 이제 분명해 보인다.

위에 언급된 386리더들은 중국에서 배우라 한다. 중국에서 뭘 배울까? 경제성장율 연 7%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위해 전 세계의 에너지를 빨아 들이고 있는 중국을 배우란 말인가? 주변 국가들의 역사마저 왜곡하며 제국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중국을 배우란 말인가? 고작 그런걸 배우러 빚까지 내서 중국에 갈 까닭이 어디 있나. 4,900원 주고 이 책 한 권 사서 보면 되는 일이다. '리더'들에게 한마디 하겠다. 학교다닐 때 운동하느라 공부 제대로 못했으면 이제라도 열심히 책읽고 공부하라. 나라와 백성을 제대로 사랑했던 선조들을 많이 배출한 유서깊은 가문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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