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의 윤리적·법적 문제」
Ⅰ. 서론
1997년 2월 23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연구소에서 월머 박사가 6년생 암양의 체세포를 이용하여 동일한 객체인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킴에 따라 인간복제의 출현가능성도 훨씬 높아졌다.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 복제인간이 탄생했다는 소식을 들을 것인가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산업화단계에 접어든 동물복제의 기법, 유전공학적 절차가 인간복제에 그대로 이전되어 응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인간복제의 시장화도 시간문제이리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인간복제는 지금까지 금기사항이었다. 이 금기가 한 번 깨어지고 나면 예상할 수 없는 사태가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일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만 일정 기간 존재할 인간군의 출현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인가?
인간복제가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이 불확실한 미래전망을 앞두고 발생하는 윤리적·법적 문제는 무엇인가? 더욱이 생명공학분야는 과학자들의 자율에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형법적 통제대상으로 삼아야 옳은가? 현대의 위험사회에서 예측불가능한 부수효과를 고려할 때 책임 있는 행위자들이 따라야 할 행위준칙은 무엇일까?
인간의 생명에 대해 인간존재는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제 인간은 자기부정을 넘어 자기파괴의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일까? 생명의 보호가 불확실한 회색지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고, 그 안에서 인간생명은 과학과 의학, 철학의 진보라는 지식의 간계에 의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시작에서부터 위협받고 있다. 낙태의 합법적인 통로는 말할 것도 없고, 수정란과 배아의 생명잠재력은 한낱 시험관이나 실험실에서 쓰고 남은 용도폐기물 정도로 취급받게 될 운명에 처해 있다.
돌리양 복제이후 동물복제실험은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유전공학기술에 의한 동물복제술이 인간의 운명적인 질병위험을 해방시켜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몹쓸 유전병은 유전자 조작이나 유전자료의 수선으로 치료할 수 있고, 유아당뇨병 같은 불치병은 수정란 복제실험을 통한 세포배양으로 치료가능해지리라는 전망이다. 과학기술이 갖고 있는 위력과 불행에 처한 이웃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다는 공리주의가 수정란 복제가 갖고 올 인간생명의 가치와 인간존엄성의 파괴에 대한 염려를 앗아가 버렸다. 그래서 인간생명의 발아 후 14일간은 과학의 믿음직스러운 손아래 내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수정 후 2주까지는 개체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단순한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면 걷잡을 수 없는 미래의 혼돈과 위험을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일까? 신을 몰아내고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한 창조의 빈터에서 시작될 '제8의 창조', '시험관속에서 키우는 원자폭탄'이라는 위험경고의 메시지는 정녕 과장된 것으로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부수효과의 인식대상화는 현대의 생태학적 위험이나 생명공학적 위험에 직면해서 과학의 한계인식과 자기절제를 강조하는 새로운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실증주의와 과학혁명의 오만 앞에 근대사회는 그 위험을 신중히 고려하는 자기반성을 게을리 했던 것이 사실이다. 과학의 방향을 검증하고 그 부수효과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윤리와 법의 입지가 마련될 소지가 거의 없었다. 시험관 아기를 최초로 성공시킨 Robert Edwards가 시험관 아기가 가져올 윤리적·법적 갈등문제를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윤리가 과학에 순응해야지, 거꾸로 과학이 윤리에 순응할 필요는 없다」고 한 말이 그간의 사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후기 현대사회의 '새로운' 위험요소에 직면해서 인류는 위험회피의 새로운 제도를 찾기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산업화과정에서 체험했던 기계적 기술오류에서 오는 피해는 원상회복과 수정이 가능했지만, 생명공학적 기술오류는 그 피해를 추스려 담을 수도 없고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기계적 기술오류는 피해대상이 특정되어 있어 귀책과 통제가 가능했지만, 생명공학적 기술오류는 미지의 세계와 미래의 세대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갈 재앙이어서 귀책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가정책과 입법정책은 과학기술발달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며, 과학기술의 발달이 사회공동생활에서 인간이 져야 할 책임의 윤리적 토대를 벗어나 독단적인 행보를 함부로 걷지 않도록 윤리적·법적 안전장치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인간복제의 윤리적·법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생명의 발생학적 과정부터 검토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Ⅱ. 인간생명의 시작
발생학적으로 인간생명은 수정(Fertilization) 이후 일정기간 분화를 통해 배아와 태아단계로 발전하고, 만기가 되면 출산에 이르게 된다. 사람 몸에서(in-vivo)건 시험관 속에서(in-vitro)건 정자와 난자가 하나로 합쳐지면 수정란(conceptus)이 형성된다.
한 개의 정자는 23개의 염색체를 지니고 있고, 난자도 마찬가지이다. 정자나 난자 혼자서는 자연스러운 재생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양자의 결합에 의하지 않고서는 자연적인 생성도 불가능하다. 일단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수정이 이루어지면 각각이 갖고 있는 23개의 염색체가 하나의 세포를 이루어 그 세포는 46개의 염색체로 지니게 된다. 이 한 개의 세포가 한 사람의 인격을 이루게 될 모든 DNA(전체 유전자정보)를 갖춘다.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는 수정 순간부터 이미 인간을 이루는 모든 유전자 정보는 완비되는 셈이다.
이제 수정란은 유사분열로 둥근 세포형질을 형성하고, 다시 세포가 분열하면서 수정란은 속이 빈 둥근 포배가 된다. 포배가 계속적인 세포분열을 하여 다음 단계인 낭배를 형성한다. 전체적으로 수정 후 2주가 되면 이 같은 세포형질에서 비로소 배아(embryo)가 된다. 배아기 동안은 모든 장기가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수정 후 8주가 되면 그 다음 단계인 태아(fetus)가 되고, 이 시기는 단순히 장기가 양적인 단순성장을 하는 것이다.
간혹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정상적인 경우라면 수정 후 13일 지나면 수정란은 자궁에 착상한다. 생식의학적으로 수정 후 출생이전까지 단계를 통틀어 임신이라고 하지만 산모가 임신을 확인하게 되는 시점은 보통 수태 후 21일째 되는 날, 즉 형성중인 배아의 심장에서 첫 박동이 약간 불규칙으로 뛰게 되면서부터이다. 수태 후 45일째가 되면 뇌파전위기록장치에서 배아의 발달중인 두뇌의 뇌파가 검출되기 시작한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든지 없든지 간에 수정란은 어떤 외부적인 강제력에 의해 파괴되지 않는 한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임에 틀림없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필연적인 생성의 과정을 내딛는 첫발걸음이라면 인위적인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는 한 생장의 과정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과학자들도 누구나 예외 없이 생명은 수정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 점은 교회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 다만 생명과학자들은 세포형질에서 개체성을 획득하는 경계가 있다는 점과 그 경계는 원시선이 출현하는 수정 후 14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생명체의 발육·성장의 지속적인 변화가운데 개체성 획득만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단계는 없을 것이다. 특히 낙태의 합법성 시비와 인간배아연구의 영역설정 문제 때문에 인간생명의 시작에 대한 섬세한 논의가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상황에 이르렀다. 착상 전 초기 배아가 개별적 인간이냐의 여부는 바로 이 같은 필요성을 염두에 둔 논란인 것이다.
유전공학자들은 수정 후 14일까지의 초기 배아 단계는 아직 개체성을 띤 생명체라기 보다 단순한 세포덩어리 상태라고 주장한다. 개체성 없는 생명체는 처분불가능한 생명으로 간주하기 보다 살아있는 세포덩어리에 불과하므로 인간생명의 시작을 수정 후 14일이 지난 시점부터 보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개체성 확보이전인 세포차원의 생명은 체외에서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배아단계에서 행하여 질 인간배아 복제연구가 법적·윤리적으로 금지된다면 생명과학분야에서 미래첨단기술사회로의 진입은 불가능해 질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착상 전 초기배아가 개별적 인간이냐 아니냐에 관하여는 로마 카톨릭 신학자들 중에도 일부 이견이 있다. 호주 멜버른 카톨릭 신학대학장인 노만 포드 신부는 수정후 배아가 일란성 쌍둥이로 분할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 가능성이 있는 임신 초기기간 동안 배아는 인간개체라기 보다 세포덩어리에 불과하고 독립적인 생명체를 이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생명의 시작은 수태되는 순간이 아니고 14일 뒤 쌍둥이로 될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라는 것이다.
중세 스콜라 철학의 대가 토마스 아퀴나스조차 산모가 처음 태동을 느끼는 순간부터 태아는 영혼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토마스에 의하면 남성 태아는 임신 후 40일, 여성태아는 임신 후 80일이 지나면 영혼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영국 관습법과 그 전통을 따르는 몇몇 나라에서도 낙태는 태아가 움직이고 살아있는 경우에만 범죄시 했었다. 최근 독일의 생명윤리학자 사스(Hans-Martin Saas)는 뇌사와 대비해서 뇌의 활동이 시작되는 시점을 생명의 시작이라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뇌사를 생명의 종료로 받아들인다면, 뇌의 활동이 시작되는 신호들을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교수 피터 싱어 자신도 수태되는 '순간'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확실히 수태 이후 14일이 지나 배아가 쌍둥이로 나뉠 가능성이 일단 사라지고 나면 살아있는 인간 개체가 된다는 포드의 견해에 동조한다. 인간의 수태란 약 24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수태는 정자가 난자의 바깥 층을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통과직후 난자의 바깥 층은 폐쇄되고 다른 정자는 들어갈 수 없게 된다. 이 때에도 난자와 정자의 유전적 물질은 아직 분리된 채로 있다. 여성의 유전적 물질은 난자에 골고루 퍼져있지 않고 '생식핵(pronucleus)' 이라고 불리우는 것 속에 뭉쳐 있는데, 그 생식핵은 다시 난자를 채우고 있는 걸쭉한 물질에 둘러싸여 있다. 정자가 난자로 들어간 후 정자의 꼬리는 사라지고 그것의 머리는 또 다른 생식핵을 형성한다. 처음에는 걸쭉한 유동물질 위를 떠다니는 두 개의 섬처럼 보이는 두 개의 생식핵이 점점 서로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유전물질은 정자가 난자로 들어간지 22시간 뒤 배우자 합체(syngamy)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섞이게 된다. 한 개체의 유전적 구성이 형성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혼합에 의한 것이므로 수태는 배우자 합체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 교회는 전통적으로 수정되는 순간부터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초대교회시절부터 낙태와 유아살해가 널리 행해졌던 그리스·로마세계의 풍습에 근본적으로 대항하여, 낙태를 살인과 마찬가지로 죄악시했다.
교황 요한 바울 2세는 1995년에 발표한 교서 「생명의 복음」에서 "난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은 시작되었고, 그것은 아버지나 어머니의 것도 아닌 자신의 성장력을 지닌 한 새로운 인간의 생명이다. …… 인간은 수태의 순간부터 한 개체로서 존중되고 정중히 다루어져야 한다(The human being is to be respected and treated as a person from the moment of conception)." 교황은 1979년에도 「인간의 생명권이 그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수정된 순간에 침해된다면, 인간의 침해될 수 없는 선들을 확실하게 해 주는 도덕질서 전체에도 간접적인 타격이 가해진다. 이들 선들 가운데 첫 번째가 생명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19세기 이후 죽임과 살림의 문화에 대한 인식이 깊어지면서 교회뿐만 아니라 영국법과 미국법도 수태 후 인간생명이 시작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궤도수정을 했고, 194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의사협회에서 현대식으로 새롭게 다듬어진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는 수태 순간부터 인간생명을 최대한 존중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나 생명의료윤리의 주류는 공통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고의로 박탈하는 것은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물론 이 기준은 다니엘 칼라한이 제시했던 학설분류 에 따른다면 유전학파의 입장에 해당한다. 발달학파는 인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전에 최소한의 발달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전공학자들이나 생물학자들이 제시하는 14일 이후의 인간개체성 인정도 비록 보다 절제된 기간이긴 하지만 발달학파의 관점에 서 있다. 사회결과학파는 인간생명의 시기결정은 사회·도덕적 정책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뇌사를 인간생명의 종료로 간주하는 것이 과학적 결정이 아니라 윤리적 결정이듯, 뇌기능의 시작을 인간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생물학적 결정이 아니라 사회윤리적 결정이라는 사스(Saas)의 견해는 바로 여기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법의 시각은 이와 다른 독특한 한계선을 긋고 있다는 점에서 검토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형법은 태동 이전에 낙태를 허용하던 과거의 어떤 기준이나 수태 이후 낙태를 전혀 허용하지 않는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형법상 사람의 시기는 출생이다. 언제 출생이 있느냐에 관하여는 진통설(분만개시설), 일부노출설(머리노출설), 전부노출설, 독립호흡설 등이 있지만, 낙태죄와 살인죄의 한계를 긋는 태아와 사람을 구별시점은 분만개시, 즉 자궁경부와 자궁구가 열리면서 오는 개방진통시라고 하는데 별 이견이 없다.
낙태죄의 행위객체인 태아를 언제부터로 볼 것인가? 형법상 태아가 되는 시기는 수정된 때가 아니라 수정란이 초기 배아단계를 지나 자궁점막에 착상한 때라는데 대부분의 견해가 일치한다. 수정란은 인체생리학적으로 수정 후 13일이 지나면 자궁에 착상될 수 있다. 그러나 착상은 50% 정도의 성공률을 갖고 있을 뿐이므로 착상에 실패하여 배출되는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수정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태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수정 후 13일이 지났더라도 착상되기 전의 초기배아는 낙태죄의 행위객체인 태아가 될 수 없고, 수정 후 13일 전이라도 일단 착상된 배아는 낙태죄의 행위객체인 태아가 된다. 수정 후 착상 때까지 13일간의 초기배아는 현행법상 낙태죄의 보호밖에 있으므로 수정란 내지 초기배아의 착상을 막는 피임약의 투입은 반생명적이지만 낙태행위는 될 수 없다.
시험관에서 수정되어 발육된 배아나 유체도 자궁 속으로 이입되어 착상되기 전에는 배아로서 보호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심지어 시험관아기가 시험관에서 3개월이나 자랐을지라도 모체의 자궁 속으로 이입되어 착상되기 전에는 역시 태아로서 보호받을 수 없다.
이처럼 낙태죄의 보호객체가 되는 것은 수정란이 발육을 거듭하여 적어도 자궁에 착상된 때부터이다. 수정 후 착상사이의 약 13일간의 초기배아를 보호하는 장치는 전통형법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대의 생식의료기술은 체외수정과 대리모를 통해 시험관아기를 배출시켰다. 이것이 가능해지면서 시험관에서 수정되어 출산에 직접 사용되지 않고 남은 여분의 수정란 내지 초기배아에 대한 보호가 문제된다. 스웨덴의 체외수정법(1988. 6. 14), 독일의 배아보호법(1991. 1. 1), 프랑스의 공중위생법(1994. 1. 19) 등이 전통형법의 흠결을 보충하여 배아의 사용을 일정한 생식목적에만 제한하고, 그 오용을 막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물론 이 초기배아의 지위에 관한 견해는 다양하다. 수정란을 인간의 생명체로 인정하여 형법적으로 태아나 사람처럼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 수정란을 사람의 분리된 체외신체조직의 일부로 보아 소유권의 대상인 물건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견해, 착상 전의 수정란은 사람의 신체조직 보다는 존중되어야 하되 사람과 동일한 지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견해 등이 있다. 절충적인 마지막 견해는 수정란 내지 배아가 아직 개체성을 지닌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를 갖지는 않았지만 물체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인간배아에는 인간의 완전한 잠재성이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되는가의 문제는 결국 법과 윤리의 영역에서 인간의 생명을 어느 단계에서부터 존중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라는 가치결정의 문제로 돌아간다. 인간배아가 인간의 완결된 잠재성을 갖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초기배아의 생명이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금기의 절대적 보호대상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태아의 생명이나 출생자의 생명조차 법에서는 모든 가능한 타인의 목적을 위해 어떤 경우에도 결코 희생되어서는 안될 그 무엇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만약 초기배아의 생명에 신성성과 절대적 보호가치를 부여한다면 종교와 엄격윤리 및 법질서 사이의 차이는 그 한에서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기의 인간배아가 동물처럼 아무 제한 없이 실험대상이 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사회윤리적으로 정당화된 목적을 위해 제한된 범위 안에서 착상 전의 초기배아에 대한 실험이 불가치한 경우라면, 예컨대 유아당뇨병, 유전질환, 출혈백혈병을 치료하기 위한 초기배아의 복제실험 따위는 오히려 과학연구의 자유와 그 자유에 대한 법의 관용이 절실한 윤리적 요청이 된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Ⅲ. 인간배아복제의 법적·윤리적 문제
인간복제의 길은 실제로 인간배아의 복제를 통해 열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인간배아복제실험이 급진전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과학자들이 지난해 11월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1999년 6월 17일자 영국 BBC 방송에서 보도되었다. 이 보도에 의하면 미국 매사추세츠 웨체스터에 있는 응용세포기술연구소(ACT)가 남성배아를 복제, 수정란이 4백 개의 세포로 분열되기까지 약 12일간이나 배양시키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ACT 연구진은 남자의 다리피부에서 떼어 낸 체세포에서 유전자를 추출, 유전자를 제거한 암소의 난자 단백질에 삽입해 실험실에서 배양하는 방법으로 이 실험을 진행시켰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우리나라에서도 경희의료원 이보연 교수팀이 4세포기까지 인간배아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경희의료원의 인간배아복제실험은 수정 후 4∼5일 걸리는 4세포기에서 중단되었었다. 이번 ACT 실험은 약 12일간에 걸쳐 4백세포기까지 이르는 진전을 보였다.
생명공학전문가들은 포유류 복제에서 수정란이 8세포기를 지나 낭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 배아복제실험의 성공여부가 달려있다고 지적한다. 8세포기까지는 난자의 세포질에 의해 자동적으로 배아의 분열이 이루어지지만 이후부터는 수정된 체세포의 유전자(DNA) 정보에 따라 분열과정이 주도되기 때문에 체세포복제는 이 단계를 지나서야 성패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ACT의 연구결과는 인간배아복제로 가는 주요한 길목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할 만 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법철학자나 생명윤리학자들은 인간복제의 가능성을 예견하면서도 그 과정은 아직 먼 미래에 속하는 것으로 판단했었다. 그래서 윤리적·법적 규제문제에 대한 찬·반 논의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태도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체세포 복제실험의 진전으로 인해 인간복제는 지금 여기에서 당장 우리의 현실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법철학이나 생명윤리는 인간배아복제 내지 인간복제의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고 지나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제 복제인간이 우리의 생활세계의 일부로 편입될 것인지의 여부는 사회정의와 공중선의 문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인간배아복제는 신경손상, 당뇨병, 백혈병, 파킨스씨병 등의 치료에 사용될 수 있는 기간세포(stem cell) 조직을 생산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된다. 예컨대, 생명의료기술의 유전자기술영역에서의 기여는 유전자치료의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 있다. 체세포조작을 통해 변경시켜 환자에게 재이식하거나 또는 수정란에 재투입하여 환자의 유전자료를 변경시켜 유전적 병인을 치료하는 것이 유전공학분야에서는 실현가능한 단계에 이르렀다. 유전공학은 이제 DNA 재조합 시험을 통해 유전자수선은 물론 새로운 형태의 생명창조에까지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체외수정된 수정란이나 체세포복제방법에 의한 인간의 초기배아를 그 개체성을 획득하기 전인 14일 이전 단계에서 유전병치료목적 등을 위한 연구나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수정란이나 체세포복제방법에 의한 초기배아도 인간의 생명체로 간주하는 유전학파의 입장에서는 그에 대한 실험에 반대한다. 이 같은 생명체도 착상의 기회가 부여되어야 하며, 잠재적으로는 완전한 생명체이므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부여되어 있음을 이유로 한다. 따라서 착상전 이에 대해 해를 끼칠 수 있는 유전자조작, 냉동보존, 폐기 등 일체 행위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달학파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생명에는 발달과정에 따라 단계와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가치에 차등을 둘 수 있다고 관점이다. 형법의 입장도 발달학파의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착상전의 수정란은 사람의 신체조직보다는 더 존중되어야 할 그 무엇이긴 하지만 착상후의 태아와 같은 비중으로 다룰 필요는 없고, 태아는 아직 생성 중에 있는 생명이므로 출생으로 인한 온전한 생명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어서도 안 된다는 관점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착상 전의 수정란이나 시험관에서 배양된 14일 이전의 체세포복제 배아는 아직 태아나 사람으로 취급할 수는 없지만 단순한 무기질인 물질이나 일반 동식물의 세포형질과는 다른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 견해와 다른 극단적인 사고도 있다. 즉 체외수정란이나 체세포복제에 의해 배양된 배아는 착상되기 전까지는 사람의 분리된 체외신체조직의 일부로서 물건과 같이 취급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복제된 인간초기배아나 체외수정란의 초기배아단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의 중심에 의무론적 사고보다 공리주의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 대통령자문기구인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최근 인간배아에 대한 연구 중 일부에 대해 연방정부가 자금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결론의 밑바탕에도 공리주의 사고가 깔려 있다. 즉, 인간배아연구과정에서 인간배아를 파괴함으로써 초래되는 윤리적 문제점보다 이 연구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더 클 경우 연구를 지원하도록 의회에 권고키로 하자는 것이다. 인간배아복제 등의 연구결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배아세포로 각종 만성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인체 대체조직을 추출해 낼 수 있다는데 있다. 만약 인간배아연구를 금지하거나 그에 대한 연구자금지원을 금지한다면 수백 만 명의 환자들로부터 그들의 치료받을 권리와 행복추구권을 빼앗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복제인간출산을 위한 배아복제는 허용될 수 없지만 치료용 등 다른 공리적인 목적을 위한 연구는 허용해야하며, 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자금지원도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배아연구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권고결정에서 시험관에서 수정된 불임부부의 배아 중 부부의 동의를 얻은 경우 치료용의 다른 공리적 목적을 위한 배아연구에 연구비를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시험관 수정시 보통 10여 개의 배아가 생성되며 이중 3-4개만 자궁에 이식되며, 나머지는 냉동보존되거나 폐기 대상이 될 운명이지만, 공리적 목적을 위해 배아세포에 대한 연구의 길이 실질적으로 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리적 목적을 위해 인간생명의 초기 14일간의 문을 열어 연구의 자유로운 광장을 마련하자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인간배아연구 및 인간배아복제문제에 대한 각국의 법적 규제의 태도는 실제 복잡한 양상을 띤다.
배아의 실험대상화에 비교적 엄격한 규제입장을 취하고 연구목적의 수정란 생산도 금지하는 나라로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노르웨이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가장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는 곳이 독일이다. 1990년 12월 13일 제정되어 1991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독일 수정란보호법(Embryonenschutzgesetz)은 연구목적의 수정란 생산 금지뿐만 아니라 수정란을 소모시키는 일체의 연구까지 금지시키고 있다.
첫째, 난자가 채취된 부녀의 임신을 위한 의도 없이 인공수정하거나 다른 부녀에게 이식하기 위하여 또는 수정란의 유지이외의 목적에 사용하기 위하여 부녀로부터 착상 이전의 수정란을 채취한 자, 이식되어야 할 수정란보다 더 많은 난자를 체외수정시킨 자 등에게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이 과하여 진다.
둘째, 체외수정으로 생산된 수정란이나 또는 자궁에 착상되기 전에 부녀에게서 채취된 수정란을 매도하거나 임신유지 이외의 목적에 사용하도록 제공한 자 또는 이를 취득·사용한 자, 임신 이외의 목적을 위해 수정란을 체외에서 계속 배양시킨 자, 남자가 사망 후 고의로 그의 정자를 난자에 인공수정한 자는 3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에 처한다.
셋째, 생식세포의 유전인자를 인위적으로 변경하거나 인위적으로 변경된 유전인자를 포함하고 있는 생식세포를 수정에 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에 처한다.
넷째, 수정란을 다른 수정란, 3개월 이상된 태아, 사람, 사체와 똑같은 유전인자를 갖도록 인위적인 조작을 하거나 그와 같은 수정란을 부녀에게 이식한 자, 사람의 난자를 동물의 정자로 수정하거나 또는 동물의 난자를 사람의 정자로 수정함으로써 발생, 분화할 수 있는 하난의 수정란을 생산하거나 그와 같이 생산된 수정란을 부녀 또는 동물에게 이식한 자,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수정란을 사용하여 여러 가지 유전인자를 갖는 수정란을 하나의 세포결합체로 만든 자 등 복제인간, 키메라 또는 사람과 동물의 잡종을 생산하거나 하려고 시도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에 처한다.
이처럼 독일의 배아보호법은 불임치료의 목적으로만 체외수정을 허용하고 타인의 난자사용금지의 필요최소한의 수정란만 생산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영국은 수정란 생산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수정란 생성 후 14일까지 다음과 같은 법적 제한 하에서 연구목적을 위한 수정란 사용을 허용한다. 1990년에 제정된 영국의 '수태 및 수정란 보호법'은 ① 최고 5년 간의 보존·사용, ② 시험관수정기술의 개선, ③ 유전병퇴치기술개선, ④ 자연적인 임신예방기술의 개선 등에 활용할 목적으로 국가적으로 승인된 연구소에서만 수정 후 14일 이전까지의 수정란의 실험이나 이용을 허용한다. 14일이 지난 수정란에 대한 실험이나 이용은 금지된다. 따라서 14일 이상 수정란을 시험관에 보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독일과 영국의 수정란에 대한 법적 취급에는 큰 차이가 있다. 1996년 11월 4일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서 체결한 생명윤리협약은 인간에 대한 과학연구의 윤리적·법적 한계를 규정했다. 처음 초안은 각국의 국내법이 허용하는 한 14일 이내의 수정란 연구를 허용하는 동시에 이 협약 제1조의 부수규정은 인간생명은 그 시작 순간부터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일견 모순되는 내용을 담았다. 그래서 최종규정은 연구목적의 수정란 생산은 일반적으로 금지하지만(Art. 18 II), 공공의 안전보장 목적, 범죄예방 목적, 제3자의 자유와 권리보호목적으로 하는 수정란 생산 및 복제연구는 14일 이내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했다(Art. 26 I). 그 구체적 허용은 EU 내 각국이 국내법으로 정하도록 위임했다.
우리 나라는 아직 수정란이나 배아복제에 대한 법적 규제를 마련하지 않고 있다. 1998년 11월 5일에 마련된 대한산부인과과학회 보조생식술 윤리지침에서는 "수정란을 연구목적으로 사용할 때는 생식의학 발전을 위한 기초적 연구 및 불임증의 진단과 치료의 진보에 공헌할 목적으로서의 연구에 한해 취급할 수 있으며, 이 목적을 위한 연구에서 수정란은 수정후 2주 이내에 한한다"고 명시했다. 1999년 3월 30일 대한의사협회는 생명복제 연구지침 서안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① 인간개체복제를 목적으로 인간의 체세포나 생식세포복제를 하는 연구, ② 4세포기 이후의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 ③ 복제되거나 유전자재조합된 배아를 인간의 자궁에 이식하는 연구, ④ 인간의 배아를 동물의 자궁에 이식하는 연구, ⑤ 동물의 배아를 인간의 자궁에 이식하는 연구 등을 원칙적으로 금하는 내용이 있다.
한 개의 수정란자체가 개체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있는지는 과학적 지식으로써 해명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체세포나 생식세포의 복제에 의한 수정란이라 할지라도 단순한 포유동물의 세포형질이상의 그 무엇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인간존엄성이 깃든 생명체냐 단순한 세포형질이냐의 양극단의 중간에 문제해결의 길이 있어 보인다. 이 어려운 윤리적인 문제를 입법자가 형법을 수단으로 삼고 일도양단적인 결론을 내린다고 만족스러운 해결이 될 수 없다. 과학적인 논의와 윤리적인 담론의 자리에 형법이 권위주의적인 힘을 투입하는 것은 현명한 노릇이 못된다. 윤리의 최소한에 법은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위험의 예측이 불가능한 배아복제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한 적극적 공리주의나 이익교량과 같은 목적공리주의 대신 최대다수의 최대불행을 막기 위한 소극적 공리주의와 부수효과의 예측불가능상황에서의 행위절제와 관용의 원칙이 윤리적 요청으로 우선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IV. 인간복제의 법적·윤리적 문제
인간복제의 기술적인 실현가능성에 대해 이제 아무도 아직은 아득한 미래음악이라고 말할 처지에 있지 않다. 우리 나라에서 슈퍼젖소 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교수도 「마음만 먹으면 우수인자를 가진 복제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최근 다국적 인간복제기업을 표방한 클로아이드사 한국지사에 한국인 4명이 복제신청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기업은 우리 나라를 포함, 유전공학이 발달한 5개국을 유력한 복제장소로 꼽고 있으며, 법적으로 복제실험이 금지되어 있지 않은 우리 나라 유전공학연구기관 및 의료기관과도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식의료과학자들이나 유전공학자들이 인간복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에 관한 언급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생물학적 영속성에 기여한다. 인간복제는 한 세대 이상 주어진 유전자형을 보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과거의 유전자형들을 소급하여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유전병을 막는데 사용할 수 있다. 만약 결혼상대자가 유전병 열성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무성분지방법에 의한 복제를 하여 아기는 보균자만 되게 하고 질병에는 영향을 받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무성분지에 의한 복제가 사회적 실험에 적용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인간의 성격, 행동양식이 유전과 환경, 어느 인자에 의해 결정되는지 결론이 안났지만,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넷째, 무성분지에 의한 복제가 심령적 의사소통을 증진시킬 수 있다. 복제를 통해 특별히 친밀한 의사소통을 상호경험할 수 있고, 텔레파시의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째, 무성분지에 의한 복제가 개선된 장기이식에 사용될 수 있다. 무성분지 기술이 발달하면서 무성분지 군체 사이에 거부반응 없는 장기기관교환이 더 원활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복제를 찬성하는 철학적 논거들도 있다. 선호공리주의(preference utilitarianism)는 선택할 수 있는 행위들 가운데 그 행위에 영향을 받을 모든 사람의 선호를 극대화시키는 행위를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100% 물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의 욕망과 복제기술로 태어난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켜 주는 것이 복제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욕망보다 클 수 있다면 선호를 극대화시키는 행위, 즉 복제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성비가 이상적으로 조화된 사회를 건설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 복제될 인간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제시되고 있다.
인간복제, 즉 무성분지에 의한 인간복제는 유전자조작과는 구별된다. 그것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인간을 남녀의 자연적인 성의 결합이나 난자와 정자의 수정에 의하지 않고 체세포나 생식세포의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복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복제 그 자체는 생물학적으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 아니라 인간과 똑같은 샘플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는 보통 체세포핵 이식이나 수정란 분할 등의 방법이 동원되며, 이 과정을 통해 유전정보가 같은 생명체가 복제되는 것이다.
무성분지방법에 의한 인간복제가 현실로 드러날 때 양성의 결합에 의한 양태 및 결혼과 출산의 개념은 깨어지며, 부모와 가족의 개념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혼란 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밖에도 아인슈타인의 머리에 클레오파트라의 미모를 지닌 우수인자의 인간복제는 물론 인간의 지능과 말의 힘을 지닌 잡종인간, 키메라의 출현, 히틀러와 스탈린의 복제 등 일찍이 Aldous Huxley가 「멋진 신세계」에서 품었던 환타지를 능가하는 상상력을 인간복제에서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무성분지에 의한 인간복제는 단지 인간복사품의 제조일 뿐이다. 복사품을 만들려면 원본을 필요로 한다. 이 원본은 신의 작품이지 인간 자신의 작품은 아니다.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신의 섭리나 자연법칙에서 벗어나 수행적 자기모순이나 자기부정의 인간이나 악마의 자리에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복제에 대한 거부는 법적·윤리적 금지이전에 먼저 이성적 인간과 사물의 본성에 반한다는 점에서 도출된다. 인간 자신을 인간 이하로 전락시키면서 인간의 행복과 인간의 복리를 추구하는 일처럼 치명적인 자기모순은 없다.
이제 인간복제는 단순한 철학적·윤리적·사회적 논의대상이 아니라 벌써 정치적·법적인 구제대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개체복제에 대한 금지는 법학자와 윤리학자들은 물론 과학자들에게도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테마이다. 개체복제의 무조건적인 금지는 유럽생명윤리협약이 지칭한 바대로 인간존엄성을 해친다는 점 때문이다. 단 한번의 인간복제로도 인간은 자신의 품위와 가치에 대해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모든 형이상학적 기반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온 인류를 매몰시킬 눈사태의 위력과 흡사할 것이다. 그래서 유럽생명윤리협약 제1조 부속의 정서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복제를 예외 없이 금지시켰다. 유럽평의회는 이 조치와 함께 EU 내 모든 국가는 각국의 국내법으로 인간복제를 명백히 금지시킬 것과 EU 밖의 나라들도 이에 상응한 입법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한 바 있다. 이 결의는 1997넌 캐나다의회가 인간복제를 금지시키는 입법조치를 취한데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97년 9월 유럽평의회는 유럽강료회의에 대해 UN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인간복제를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하도록 촉구했다.
앞서 본 복제찬성론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공리주의(Utilitarismus)에 기초하고 있다면 유럽연합의회에서 천명한 복제반대론은 인간 각자가 본질적으로 불가침적인 존엄성을 갖고 있다는 점 및 유럽인권협약 제2조에 규정된 절대적인 생명보호 및 불가양도적인 인권사상에 입각한 본질주의(Essentialismus)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복제반대론에서 펴고 있는 복제금지의 논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개인적 존재로서의 인격에 기초한 논증, 둘째, 인류의 생존구조에 기초한 논증이 그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인격에 기초한 논증에는 다시 도구화논증(Instrumentalisierungseinwand)과 정체성논증(Identitätseinwand)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인류의 생존구조에 기초한 논증에는 비동질성논증(Inhomogenitätseinwand)과 익명성논증(Anonymitätseinwand)이 주류를 이룬다.
첫째, 도구화논증은 복제가 복제된 인간을 생산자나 자연적으로 출생한 사람들에 대해 타율적으로 규정되는 의존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반론이다. 복제된 인간이 장래 필요에 따라 처분될 수 있는 인간부류로 인간관계속에 등장할 때 비인간적인 지배관계가 형성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논증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제가 깔려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분자생물학적 지식에 의하면 인간의 유전인자가 일정 목적에 의해 변경되더라도 자동화된 기계처럼 살아가게 되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오히려 유전적으로 조작된 인간이 거꾸로 자연출생인보다 유전적으로 우세할 수도 있어 양자사이의 지배관계가 단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적으로 우수한 인자를 가진 복제인간도 이미 타인의 손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복제기술을 사용한 경우 지금 세대에 바람직한 표현형이 다음 세대에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노화수준에 있는 개체를 복제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노화의 일정수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오히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 정체성논증은 어느 누구나 그의 이력이 타인의 목적합리적 의도에 의해 규정되어 있음을 알고 살아가도록 기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정체성 일부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지의 권리(Recht auf Nichtwissen)이다. 복제인간은 유전적으로 결정된 객체이며 자신의 타인에 대한 의존적인 운명을 미리 알고 살아가기 때문에 이 정체성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정체성 없는 복제인간은 실로 부자유한 존재이기도 하다. 요나스가 지적한 발대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하는 한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에게는 개인관계의 자유, 즉, 의도되지 않은 가깝고 먼 관계 속에 던져진 존재자로서의 자유가 위협받거나 좁아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이 정체성반론도 복제인간출현의 충격을 합리적으로 해명해 주는데 한계가 있다. 인간의 정체성도 그의 행복과 고통의 관점에서 교량할 수 있으며, 그러한 교량은 인간복제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낙태입법에 포함된 각종 적응사유(Indikation)도 바로 이 같은 교량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실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로 인해 인격의 교환할 수 없는 개체성과 유일성이 무너지고 각자가 자기자신의 유일한 표본이 아니라 타인의 복사품이 된다는 사실은 인간의 존엄성과 상용할 수 없는 귀결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유전적으로 유일하게 될 권리, 개인의 특성과 개성의 다양성에 관한 권리,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프라이버시를 보호받을 권리 등이 복제인간에게서는 애당초 교묘하게 박탈되어 버린다는 사실도 정체성논증을 뒷받침해주는 논거가 될 수 있다.
셋째, 비동질성논증은 인간복제를 통해 인류의 자연적 통일성과 법질서 및 보편적인 인권원칙들이 덧입고 있는 본질주의의 기초가 상실된다는 주장이다. 본질주의는 전통적으로 인간행위의 공리주의적 판단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인간복제를 허용할 수 없는 본질적인 이유는 인간성의 자연에 거슬리는 비자연성이다. 종교계에서는 인간생성의 자연적인 흐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여 정상적인 양성의 결합 아닌 체세포에서 인간배아를 복제하는 것이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침해하고 신의 창조능력에 도전하는 행위로 본다.
뿐만 아니라 인간 유전자 풀의 다양성을 유지함으로써만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라는 인류의 동질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복제기술을 인간복제에 적용하면 인간유전자 풀의 다양성 감소로 인류의 생존가능성을 감소시키거나 동일한 표현형을 만들어 냄으로써 보편적인 통일성의 의미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넷째, 익명성논증은 복제기술에 의한 인간의 초과생산 또는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 인간가족은 개성과 정체성 파괴로 상대적 존재로 전락하고, 인간의 상품화와 인간존엄성의 상대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복제양 돌리출생에서 보여주듯 돌리는 체세포에서 복제된 34개의 배아가 대리모에 착상되었고 그중 다섯 개가 양 새끼로 자라났다. 그런데 이 34개의 배아는 수백 개의 배아에서 선별된 것이고, 그 수백 개의 배아는 체세포, 생식세포, 낭배세포 등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출생된 양의 3분의 1은 변형된 형질의 것이었다. 인간배아복제가 동물배아복제보다 성공률이 더 낮은 점을 감안한다면 인간복제가 성공할 경우 인간의 완전성과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훼손되고 인간은 제조공정을 거쳐 나온 상품처럼 익명의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인간이 익명화된 대상물처럼 취급될 경우, 인간의 비대체성, 비교환성, 독자성과 고유성은 본질적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상의 논증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인간복제가 인간의 존엄성에 반한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윤리적·법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법과 정책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골몰할 것이 아니라 포퍼(Popper)가 적절히 말했듯이 인간의 불행을 최소화하는 데로 나가야 한다. 법과 정책의 과제는 오직 최대다수의 위험과 불행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행복의 발견은 각자가 그 안에서 추구해야 할 일인 것이다.
V. 결론
후기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유행어 중 하나가 위험사회이다. 근대화·산업화가 스스로 자기기반을 흔드는 새로운 위험을 양산했고, 이 새로운 위험 속에 생태계의 위험과 생명의료 및 유전공학적 위험이 들어 있다. 새로운 위험은 전통적인 위험과 달리 작은 실수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큰 재앙으로 번질 위험을 말한다. 이를 방지하려면 작은 실수, 초반의 행위부터 금지시켜야한다. 인간복제는 자연과학과 의료기술들이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에 대한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요청과 충동하는 최후의 한계문제이다. 의학의 역동적인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회윤리적 논의는 그 발달의 보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과학 안에서 행위하는 주체와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질 주체가 분리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갭을 메꾸어 인간존엄의 토대를 새롭게 구축하려면 궁극적인 윤리전략과 법정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대사회의 윤리전략은 궁극적인 윤리적 합의 대신 사회적인 기본가치들을 법, 특히, 헌법, 형법으로서 고정시키려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법정책도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사회윤리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담보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다만 법의 과부화로 일어날 법의 집행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법 이전에 사회정책과 교육정책에 우선 수위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교육정책과 사회정책의 최후수단으로 법정책은 이제 인간에 대한 과학연구를 과학자들의 임의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그 윤리적·법적 한계를 설정하는 데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 한계설정에서 중요한 것은 생명의료윤리적인 가론절차(歌論節次)이다. 담론은 일반적으로 합리적인 의사소통에서 정당한 진술의 결과를 얻고자 한다. 이 절차에는 법률가, 윤리학자, 신학자, 철학자들은 물론 생명의료 및 유전공학의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이 담론과정에서 참여자들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무엇이 유익한가 무엇이 행복의 극대화인가를 논의하기 보다, 무엇이 예측되는 불행이며 위험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의심스러울 때는 과학적 모험에 불리하게 합의점을 모아 가는 것이 과학기술의 위력으로부터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다.
김 일 수(고려대 법대교수·형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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