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그의 사상/칼 마르크스

[스크랩] 맑스, 비판의 에피스테몰로기

ddolappa 2008. 5. 17. 05:35

 

맑스, 비판의 에피스테몰로기

 

곽노완

 

 

 


1. 들어가는 말: ‘비판’의 에피스테몰로기(Epistemologie)1)


맑스의 저작 󰡔�자본󰡕�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다. 흔히 맑스주의 경제학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되는 정치경제학은 사실 맑스의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주류경제학자들이 스스로의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이라고 지칭하였다.2) 물론 󰡔�자본󰡕�만이 아니라 1857년 이래 맑스는 자신의 이론적 기획을 ‘정치경제학 비판’이라 불렀다. 1857년의 저작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이 그렇고, 1859년에 출간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가 그렇다. 자신의 사회과학 또는 이론을 ‘비판’으로 특징지운 것이다.

 

하지만 1850년대 경제학 연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이전 즉 1840년대에도 ‘비판’은 맑스가 자신의 이론적 기획을 특징지우는 용어였다. 1843년 󰡔�헤겔 법철학 비판󰡕�과 1843-4년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1845년 󰡔�신성가족 또는 비판적 비판의 비판󰡕� 및 󰡔�독일 이데올로기. 최신 독일철학 비판...󰡕�은 초기부터 맑스가 자신의 이론적 기획을 ‘비판’으로 불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맑스의 이론적 기획에서 ‘비판’이 단순한 용어가 아니라 특정한 이론적 개념임을 암시해준다.

 

물론 초기의 ‘비판’ 개념과 후기의 ‘비판’ 개념은 맑스의 철학적 지반이 바뀜에 따라 변화와 단절을 겪는다. 사실 뒤에서 보겠지만 오히려 ‘비판’ 개념의 변천과 단절은 맑스의 ‘이론적 단절’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그러한 ‘단절’은 알뛰세가 󰡔�맑스를 위하여󰡕�에서 지적한 것보다도 더 많은 단계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자본󰡕�에서도 ‘이론적 단절’은 완결되지 않은 채로 나타난다. 분명 스스로 새로운 이론적 지반과 철학을, 그리고 새로운 이론을 창출함으로써 “과학의 혁명”(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 1862년 12월 28일, MEW 30/640)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전의 이론적 지반, 즉 독일 고전철학 특히 헤겔과 아담 스미스/리카도의 고전정치경제학이 갖고 있는 지반은 맑스의 새로운 ‘과학혁명’에 잔재로 남아있다. 그러한 잔재는 때로는 단순한 용어로, 때로는 이론적 개념으로 작동하면서 알뛰세나 자크 비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하게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의 이론적 성과를 짓누른다. 알뛰세가 믿듯이, 명시적으로 헤겔의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는 부분만이 맑스의 ‘이론적 단절’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3) 나아가 자크 비데가 생각하듯이, 󰡔�자본󰡕�안에서의 내용적 불일치와 모순만이 ‘이론적 단절’의 불완전성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4)

 

오히려 󰡔�자본󰡕�의 가장 강한 부분, 즉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 또는 헤겔의 문제틀에서는 제기될 수 조차 없었던 이론적 문제들 즉 ‘공황론’, ‘이론적 연구와 서술’의 문제, 나아가 ‘이론적 비판’의 문제 등에서 맑스의 ‘이론적 단절’은 현대의 철학과 사회과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줌과 동시에 전시대의 이론적 지반에 갇히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까지 ‘비판’ 개념의 변천과 단절만이 아니라 󰡔�자본󰡕�안에서 ‘비판’ 개념의 이중성, 그리고 그러한 ‘비판’ 개념이 기반하고 있는 철학적/에피스테몰로기적 ‘문제틀’의 이중성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에서 ‘이론적 비판’과 ‘도덕적 비판’ 및 ‘정치적 비판’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맑스가 직접 제기하고 답한 부분에 대한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어찌 보면 맑스가 제기하지 않은 문제를 맑스에게 제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틀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답변을, 그러한 답변의 눈부심과 모자람을, 나아가 새로운 대안적 답변 아니 새로운 대안적 문제제기를 맑스를 계기로 삼아 기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맑스에게서 비판개념의 변천과정


1) 1841년 철학박사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르스 자연철학의 차이󰡕�에서 이미 맑스는 철학의 실천과 비판을 자신의 이론적 과제로 꼽았다. 단, 이 때 맑스는 이론적 비판과 철학을 등치시키고 있다. 즉 철학을 이론의 대표자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는 철학에만 이론적 비판이라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의 실천 자체는 이론적이다. 그것은 비판이다. 개별적인 존재자들을 본질에 견주어서, 특수한 현실을 이상에 견주어서 측정하는 것이다.

...       

자유주의적 당파(맑스를 포함한 헤겔좌파 - 인용자)의 행위는 비판, 즉 철학의 외재화이다.“ (MEW 40/326-330, 밑줄은 인용자) 


철학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본질로서의 이상, 그리고 이 이상에 못 미치는 현실에 대한 비판, 헤겔우파의 보수주의에 대비되는 헤겔좌파의 자유주의적인 ‘철학의 실천’ 또는 실현 등등이 23세 헤겔좌파로서 맑스가 생각하는 ‘이론적 비판’의 내용을 이룬다. 즉 철학적 ‘비판’이 본질에서 벗어난 현실적 인간 및 국가가 본질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를 측정하는 작업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비판이론’ 또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철학자 아도르노에게서 반복되어 나타나는(󰡔�계몽의 변증법󰡕�참조) 이러한 철학 지상주의는 사회과학 전체를 무비판적인 실증주의적 과학과 동일시하는 몰이해를 내포한다. 철학만이 유일하게 비판적이고 사회과학 전체는 무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헤겔철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철학은 현실에 대해 무비판적이었고, 어떤 사회과학은 비판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헤겔좌파의 ‘비판’ 개념을 수용하고 있는 맑스의 입장은 난관에 봉착한다. 더구나 이 때 ‘비판’의 기준은 관념론적으로 파악된 이상,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본질인 이성과 국가의 본질인 이성적 자유이다 (MEGA I.1/188; MEW 1/103 참조 - 앞으로의 원전 인용에서 MEGA와 MEW는 생략.

 

앞은 MEGA, 뒤는 MEW의 페이지임). 여기에서 또한 맑스가 고전철학적인 ‘본질주의적’ 전통에 서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가변적이고 나아가 가상적이기도 한 ‘현상’에서 불변적이고 본래적인 모습이자 이상으로서의 ‘본질’을 가려내는 것이 철학과 이론의 과제라고 보는 고전철학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고전철학은 ‘본질’을 가려내는 데서 멈추는 반면, 맑스는 그러한 ‘본질’을 잣대로 ‘현상’ 또는 ‘현실’을 비판하는 것을 철학의 과제로 한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부르노 바우어를 포함한 헤겔좌파5)의 ‘문제틀’6)을 답습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비록 ‘본질’의 파악이 아니라 ‘본질’에 입각한 ‘현실’비판이라 하더라도, ‘본질’의 파악을 전제하고 나아가 불변적이고 본래적인 ‘본질’의 개념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기초로 한다는 점에서 ‘철학의 실천’이라는 헤겔좌파시절 맑스의 ‘비판’ 개념은 고전철학적 문제틀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 1843년에 집필된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그리고 1843-4년에 집필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서 이러한 ‘비판’ 개념은 변화를 겪는다. 우선 추상적인 이성과 자유 대신에 이제 “현실적인 주체”(I.2/91; 1/286) 및 사회가 인간의 ‘본질’로 파악된다.7) 이는 헤겔좌파의 관념론적인 지반을 떠나서 포이에르바하적인 유물론적 지반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8) 이렇듯 비판의 척도 또는 기준인 인간의 ‘본질’을 유물론적으로 파악하자마자 이전의 헤겔좌파적인 관념론적 ‘비판’ 방식은 거부되고 비판된다.


“속류적 비판은 대립적인 독단적 오류에 빠진다. 속류적 비판은 예를 들면 헌법을 그렇게 비판한다. (...) 속류적 비판 자체는 대상과 싸우는 독단적 비판일 뿐이다. (...) 이에 반해 진정한 비판은 (...) 내적인 발생을 보여준다. 진정한 비판은 발생행위를 서술하는 것이다. 이렇듯 기존 헌법에 대한 진정한 철학적 비판은 이미 성립된 모순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설명하고 그 모순의 발생과 필연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I.2/100; 1/296, 밑줄은 인용자)   


여기서 “속류적 비판”은 부르노 바우어를 비롯한 헤겔좌파적 ‘비판’을 의미한다. 그들은 관념적인 이상을 본질로 파악하고 현실과 헌법이 그에 못 미침을 지적하는 것을 철학만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론적 ‘비판’의 과제로 삼았다. 그런데 사실 이는 박사논문을 쓰던 맑스의 ‘비판’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비판의 척도를 유물론적으로 전환시킴과 더불어 맑스는 새로운 비판 방식을 추구한다. 이제 인간의 사회성이 소외된 형태로 현실화되는 것을 발생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맑스에게서 철학의 과제이자 ‘이론적 비판’의 개념이다. 여기서 맑스는 한편으로 철학지상주의를 극복하지만, 다른 한편 여전히 철학을 이론의 대표로 간주한다.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체할 수 없다”(I.2/177; 1/385)는 말은 현실적/정치적 비판이 철학적 비판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보여주지만, “해방의 두뇌는 철학이고 심장은 프롤레타리아트이다. ... 철학의 실현없이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을 지양할 수 없다”(I.2/182이하; 1/391)라는 말은 동시에 이론안에서 철학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는 맑스의 생각을 드러낸다.  


3) 󰡔�경제학-철학 수고󰡕�(1844)는 경제학과 만나면서 변화하는 맑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론적 비판의 척도로서 인간의 본질을 여전히 철학적으로 근거지우지만, 역사적/사회적 생산 및 노동이라는 경제적/경제학적 범주와 관련지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점에서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비역사적 철학의 한계를 넘어선다. 인간의 ‘본질’로서 자유로운 이성적/사회적 ‘노동’이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이론적 ‘비판’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 때의 맑스는 사회적 생산/노동을 “인간을 위한 인간의 생산”(40/462)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본질’로서의 사회적 노동은 본질주의적이고 자연주의/휴머니즘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즉 인간이 돌아가야 할 본래의 자연주의/휴머니즘적 본질로서 사회적 노동의 실현이 포이에르바하주의자로서 맑스가 생각하는 공산주의의 개념이다.9) 자본주의는 이러한 자유롭고 이성적인 사회적 노동에 대비되어 소외된 노동을 재생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된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경제학적인 비판은 아직 맑스에게서 찾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맑스는 스미스의 경제학이 전적으로 옳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미스가 소외된 자본주의 현실을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불멸의 불가피한 현실로 간주한다고 맑스는 비판한다. 즉 스미스는 인간의 ‘본질’인 자유로운 사회적 노동을 보지 못함으로써 소외된 노동의 자본주의체제를 비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미스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외재적인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즉 스미스의 경제학을 경제학외의 학문 즉 철학의 차원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지상주의와 본질주의는 맑스에게서 여전히 자본주의 현실과 스미스에 대한 이론적 비판의 전제로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철학지상주의 내지 ‘본질주의적인’ 비판의 난점은 ‘소외’, ‘소외’와 사적소유의 관계를 고찰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의 ‘소외’는 네 가지 차원에서 나타난다. 첫 번째는 노동대상 내지 노동생산물로부터의 ‘소외’이다 (I.2/236; 40/511 참조). 그런데 생산물은 “활동의 요약”(I.2/238; 40/514)이기 때문에 첫 번째 ‘소외’로부터 두 번째인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나온다. 이러한 두 가지 ‘소외’는 또한 ‘유적존재(Gattungswesen)’로부터의 ‘소외’라는 세 번째 ‘소외’를 내포한다. ‘유적존재’란 원래 포이에르바하가 사용했던 개념어로, 인간은 동물과 달리 유(Gattung)를 자기의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Feuerbach, 1841, 37쪽 이하). 물론 맑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적존재’에 새로운 차원을 부가한다. 즉 인간은 유를 자기의 대상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이 대상을 실천적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유적존재’라는 것이다.10) 이러한 세 가지 차원의 ‘소외’로부터 맑스는 네 번째 차원의 ‘소외’ 즉 “인간으로부터 인간의 소외”(I.2/242; 40/517 이하)를 도출한다. 이럼으로써 맑스는 스미스에게서 ‘전제조건’으로 수용되는 개인들의 개별화와 대립을 ‘결과’로 규정한다. 나아가 사적소유의 발생을 설명하지 못하고 전제조건으로 간주하는 스미스와 달리 사적소유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즉 사적소유를 ‘소외된 노동’의 ‘결과’로 파악한다: “이 개념(‘소외’ - 인용자)을 분석함으로써, 사적소유는 외화된11) 노동의 근거와 원인으로 현상하지만 사실은 외화된 노동의 귀결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I.2/243; 40/520, 밑줄은 인용자)

 

이처럼 사적소유를 ‘소외된 노동’의 결과로 보는 것은 스미스를 비판하는 효과를 갖지만, 다른 한편으론 철학적 ‘본질주의’ 구체적으로 인류학주의에 입각한 비판으로서의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즉 ‘소외된 노동’이 ‘사적소유’의 원인이라면 ‘소외된 노동’을 폐지하고 ‘본질’로서의 ‘의식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적 노동’으로 복귀하면 ‘사적소유’가 근절될 것인가라고 물으면, 맑스로서는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리라. 그러나 어떻게 ‘본질’로서의 소외되지 않은 노동으로의 복귀가 가능한가? ‘본질’이라는 답을 미리 설정함으로써, 따라서 이러한 ‘본질’로부터 벗어남 즉 ‘소외된 노동’을 사적소유의 원인으로 설정함으로써, 맑스는 ‘본질’로의 복귀를 답으로 설정하지만 이러한 답은 자체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맑스의 대답은 순환론적인 궤적을 그린다. 즉 맑스는 ‘사적소유’의 지양을 답으로 내놓는 것이다: “사적소유의 지양은 따라서 모든 인간의 감성과 속성의 완전한 해방이다.” (I.2/268; 40/539)

 

즉 ‘소외된 노동’을 원인으로 ‘사적소유’를 결과로, 따라서 ‘소외된 노동’의 지양을 ‘사적소유’ 지양의 답으로, 그 답이 자체적으로 실현 불가능하자 다시 ‘사적소유’의 지양을 ‘소외된 노동’의 지양을 위한 답으로 내놓는 것이다. 이는 예단된 답을 미리 설정하는 고전철학적인 ‘본질주의’의 불가피한 �이라 할 수 있다. 그처럼 ‘본질’이라는 예단된 답은 사실 답이 아닌 것이고, 이는 문제자체가 잘못 설정된 데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잘못 설정된 문제는 ‘본질주의’라는 ‘문제틀’의 불가피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4) 「포에에르바하에 관한 테제」(1845)에서는 더 이상 철학에 의해 포착된 영원불멸의 원래적인 인간본질을 실현하는 공산주의 사회에 대비된 자본주의 비판이 문제되지 않는다. 포이에르바하를 포함한 전통철학 전체가 우선 새로운 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전의 ‘철학의 실천’과 구분되는 ‘실천의 철학’(「테제」)은 전통철학의 본질주의적인 자연주의를 일거에 넘어선다. ‘현실 또는 대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도 이제 실천의 산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이 더 이상 자연주의적/본질주의적으로 설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 (3/6, 6번째 테제) 이러한 인간의 본질은 따라서 영원불멸의 이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으로 실천의 산물인 것이고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본질은 비판의 척도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다: “따라서 인간본질에 대한 비판을 다루지 않은 포이에르바하는...” (3/6, 6번째 테제). 

 

그러나 아직 맑스는 휴머니즘의 지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전 유물론의 관점은 부루주아 사회였다. 새로운 유물론의 관점(즉 맑스의 관점 - 인용자)은 인간적 사회 또는 사회적 인류이다.” (3/7, 10번째 테제, 밑줄은 인용자) 나아가 현실과 인간의 본질을 실천의 산물로 간주함으로써 근대 고전철학의 순수한 실체로서의 주체-순수한 실체로서의 객체 이분법의 문제틀(Problematik)을 실천중심의 틀로 전환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근대철학적 문제틀의 지반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고 오히려 근대철학을 완성하는데 머문다. 단지 달라진 것은 ‘실천’을 중심으로 주체-객체의 관계를 다르게 설명하는 것이다. 뒤에서 보다 자세히 보겠지만 지식과 이론의 문제를 설명하는 새로운 문제틀의 등장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과 󰡔�자본󰡕�에서 나타난다. 사회이론의 대상으로서의 현실 내지 사회는 단지 실천의 산물일 뿐 아니라 대립적인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의 총체이고 이에 대한 이론들은 사회역사적인 산물이면서 나아가 사회의 대립관계를 포함한 관계들과 기존의 이론틀들에 기반하여 다양하게 존재하게 된다고 본다. 인식주체의 자리를 이론들이 대체하는데, 이론들의 주체는 개인으로서의 인간 또는 그들의 정신이 아니라 사회라고 함으로써 주체-객체의 인식론(Erkenntnistheorie)적 문제틀과 완전히 단절된 이론적 지식에 대한 이론(Epistemologie)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에 나타나는 맑스의 ‘실천철학’을 완성작으로 해석하는 실천주의적 맑스해석의 전통은 맑스를 근대철학의 완성자로 축소시키는 한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12)      


5) 포이에르바하와 헤겔좌파에 대한 ‘비판’이자 당시 독일 사회주의자에 대한 ‘비판’으로서 󰡔�독일 이데올로기󰡕�(1845-6)는 나아가 철학 지상주의적 ‘비판’에 대한 결별선언이기도 하다. 「테제」가 맑스의 새로운 철학에 입각한 전통철학 비판이라고 한다면 ‘독일 이데올로기’는 철학자체의 거부이기도 하다. 철학에 의해서 파악된 인간본질 또는 휴머니즘적 이상사회가 아니라 ‘현실’이 철학 전체를 비판하는 척도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이 때 경험주의적/실증주의적 역편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심오한 철학의 모든 문제들은 철저히 경험적인 사실로 해체된다”(󰡔�Deutsche Ideologie󰡕�13), 8-9쪽: 3/43)는 맑스/엥엘스의 말은 비록 현실 역사를 죽은 사실들의 집합으로 보는 추상적 경험론과는 달리 현실적인 발전과정의 역사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Deutsche Ideologie󰡕�, 116; 3/27 참조), 현실의 발전과정이 순수하게 경험적으로 확인가능하다고 봄으로써 (󰡔�Deutsche Ideologie󰡕�, 116; 3/26 참조) 경험주의의 덫에 빠지고 있다.

 

이는 경험주의적인 공산주의개념에서도 확인된다: “우리에게 공산주의는 만들어져야할 상태나 이상이 아니라, ...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는 현실적 운동이다.” (󰡔�Deutsche Ideologie󰡕�, 21; 3/35, 밑줄은 인용자)

 

이러한 “현실적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는 󰡔�테제󰡕�에까지 남아있던 인간적인 사회로서의 ‘공산주의’를 청산하면서 휴머니즘과 단절하는 측면이 있지만, 역으로 경험주의로의 후퇴라는 대가를 치룬다.14) 휴머니즘적 도덕적 이상과 경험적 현실의 이분법에서 흔들리는 맑스의 당시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다.

 

한편, 󰡔�테제󰡕�에서 개념은 폐기했지만 용어로 남아있던 ‘본질주의’의 흔적은 명시적으로 청산된다:


“당시 이는(독일 이론가들에 대한 유물론적 비판 - 인용자) 아직 철학적 관용어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여기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인간본질’, ‘유’ 등과 같은 철학적 표현들은 독일의 이론가들이 현실적 발전을 오해하고 마치 그들의 낡아빠진 이론적 저고리를 다시 새로 사용하는 것만이 문제인양 믿도록 하는 바라던 계기가 되었다.” (3/217이하, 밑줄은 인용자)


6) 󰡔�공산당 선언󰡕�(1848)에서도 맑스와 엥엘스의 경험주의적 공산주의 개념은 반복되어 나타난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적 문장들은 결코 이런 저런 세상개조자들에게서 발굴되거나 발견된 이상이나 원칙에 근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산주의의 이론적 문장들은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는 역사적 운동, 현존하는 계급투쟁에 나타나는 실제적 관계의 일반적 표현일 뿐이다.” (4/474이하, 밑줄은 인용자)


“현존 계급투쟁의 일반적 표현”으로서의 “공산주의 이론”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현실적 운동”으로서의 “공산주의”에 “이론”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한편,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드러난 “인간본질”에 대한 단절은 󰡔�공산당 선언󰡕�에서 포이에르바하주의적인 ‘진정 사회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명시된다:


“그들은 프랑스의 원본 뒤에 철학적 넌센스를 쓰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화폐관계에 대한 프랑스적 비판(프루동을 염두에 두고 있음 - 인용자) 뒤에 ‘인간본질의 외재화’라고 쓰고 있는 것이다.” (4/486)


그러나 󰡔�선언󰡕�은 󰡔�독일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자본주의 ‘비판’의 차원을 열어준다. 그것은 󰡔�철학의 빈곤󰡕�(1847)에서 처음 등장한 ‘공황’이다.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현실적 비판으로서의 공황은 계급투쟁과 더불어 가장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전체 부루주아 사회의 실존을 주기적으로 점점 위협하면서 의문에 부치는  것으로는 상업공황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상업공황에서는 생산물뿐만 아니라 이미 창출된 생산력도 대부분 정기적으로 폐기된다. 공황시에는 사회적 전염병이 폭발한다. 이전의 모든 시대에는 불합리로 보였을 전염병 즉 과잉생산의 전염병이.” (4/467이하, 밑줄은 인용자)


󰡔�선언󰡕�에서는 아직 현실적 ‘공황’에 대한 지적만 있을 뿐 ‘공황’에 대한 이론적 고찰은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적 비판’으로서 자본주의에 고유한 ‘공황’의 이론적 근거지움이 맑스에게 주요한 이론적 과제로 떠오르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지만 󰡔�선언󰡕�에서 드러난 맑스의 ‘공황’ 개념은 몇 가지 이론적 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공황을 주로 상업공황으로 협소하게 파악한다는 점이다. 즉 신용 등과 연관되지 않은 채 공황이 고찰되고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는 1850년대 이후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에서 정정된다. 둘째로 공황이 정기적으로 예를 들면 10년마다 발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이는 맑스가 죽을 때까지 고수하는 생각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맑스에게 남아있는 경험주의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즉 1820년대 중반 이래 발발한 자본주의적 공황은 대체로 10년 주기로, 거의 정기적으로 발발하였는데, 맑스는 공황의 주기는 점점 단축되더라도 자본주의의 전체 역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발발할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는 경험적 역사적 사실을 이론적으로 충분히 검토하기 이전에 곧바로 원리적 차원으로 간주한 경험주의적 방법이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셋째로 공황시에 자본가들이 마치 과잉생산을 추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문제없이 판매되던 생산물이 판매될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과잉생산되는 측면이 거꾸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체로 이후에 정정된다.    


7) 1857년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 1859년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7년 이후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 등은 이론적 비판의 새로운 틀을 전제한다. 이는 자본주의 내지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철학 지상주의적 그리고 경험주의적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틀(Problematik), 새로운 철학적 전제와 “과학혁명”(1862년 12월 28일 쿠겔만에게 보내는 편지, 30/640)의 창출과 관련된다.


여기서 맑스의 이론적 비판은 2가지 대상을 갖는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서는 자본주의의 발전경향과 한계를 이론적으로 근거지우는 것이다. 이 때 자본주의의 한계는 압도적으로 자본주의적 공황에서 나타난다. 자본주의적 공황의 경험적 사실을 지적하는 󰡔�철학의 빈곤󰡕�과 󰡔�공산당 선언󰡕�에 만족하지 않고, 자본주의적 공황의 필연성 또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공황취약성을 이론적으로 근거지우는 것은 단순한 경험주의적 비판개념과는 다른 차원을 요구한다. 현실적 공황은 계급투쟁과 더불어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적 비판이다. 경험주의적인 ‘이론적 비판’으론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이에 반해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맑스의 ‘이론적 비판’은 자본주의적 공황의 필연적 재생산을 이론적으로 근거지우는 것이다.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은 그러한 이론적 근거지움을 따라서 중심과제로 한다.15) 나아가서 대안적 현실적 사회체계의 발전적 재생산의 조건들을 이론적으로 근거지울 수 있었다면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이론적 비판을 완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맑스는 󰡔�자본󰡕�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 󰡔�고타강령 비판󰡕�(1875)에서도 대안사회경제의 재생산 체계에 대해서는 선언적인 스케치 수준에 머물렀다.

 

자본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란 새로운 ‘문제틀’에 입각하여 고전 정치경제학(페티에서 아담스미스를 거쳐 리카도 및 리카도 학파에 이르기까지), 속류경제학의 철학적 전제 및 경제학과 대비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서술로서의 대안적 이론체계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차원의 이론적 ‘비판’은 앞서와는 다른 ‘비판’ 개념을 내포한다. 인문/사회과학적 비판의 대상은 항상 현실과 현실에 대한 다른 이론이라는 2중적 차원을 갖는다는 점, 그리고 특히 다른 이론에 대한 비판의 척도 내지 기준은 단순한 도덕적 또는 정치적 이상이 아니라 이론적 실천의 결과로서 대안적 이론이라는 점 따라서 비판은 동시에 대안적인 이론적 서술과정 즉 “서술을 통한 비판”(1858년 2월 22일 라쌀레에게 보내는 편지, 29/550)이기도 하다는 점이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에서 맑스의 ‘비판’ 개념을 이룬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이론의 과제를 ‘비판’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즉 이론적 ‘비판’의 척도는 이미 전제된 도덕적, 정치적 이상이나 선험적으로 가정된 전제 또는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 오히려 이론적 ‘비판’의 척도는 이론적 실천을 통해 생산된 새로운 이론적 결과에 의존한다는 점이 초기와 구분되는 후기 맑스의 새로운 ‘비판’ 개념의 핵심을 이룬다. 이 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현실적 ‘비판’과 이론적 ‘비판’은 유기적인 연관을 갖는다.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적 ‘비판’이 계급투쟁과 공황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체제 및 자본주의의 이론에 대한 이론적 ‘비판’은 계급관계의 발전과 자본주의적 공황의 필연성을 이론적으로 근거지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16)

 

물론 여기에는 근대철학의 경험론적인 문제틀을 대체하는 맑스 고유의 새로운 이론적/철학적 문제틀이 깔려 있다.      

          

 


3. ‘정치경제학 비판’ 체계와 과학혁명: 경험론과의 단절, 새로운 문제틀

 

‘경험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알뛰세의 정의에 따라 순수한 인식주체의 순수한 감각적 경험을 지식과 이론의 유일한 출발점으로 간주하는 모든 인식론을 ‘경험론’으로 보자. 순수한 인식주체란, 역사적/사회적으로 영향받지 않고 영원불멸의 동일한 인식능력을 갖춘 개인들을 뜻한다. 순수한 감각적 경험은 개인의 오감으로 반복해서 동일하게 확인될 수 있는 감각경험을 의미한다. 감각경험을 물질에서 촉발되는 것으로 보면 유물론적 경험론(로크, 포이에르바하, 레닌)이 되고, 물질의 우선성을 괄호치고 순수한 감각경험 그 자체에서 또는 관념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면 관념론적 경험론(버어클리, 흄, 칸트, 헤겔)이라 할 수 있다. (순수한) 주체와 (순수한) 객체의 인식관계를 전제하는 모든 철학을 따라서 ‘경험론’이라 할 수 있다.17) 󰡔�독일 이데올로기󰡕�에서의 맑스와 엥엘스도 현실이 감각경험을 통해 순수히 확인가능하다고 보는 한에서 ‘경험론’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사적소유와 분업 등을 역사적인 실천을 통해 발생한 것으로 보는 점에서, 이를 맹목적으로 영원한 사실로 간주하는 실증주의적 ‘경험론’과는 구분되지만.

                   

경험론적 인식론은, 사회전체를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이나 합의의 산물로 환원시키는 개인주의 내지 자유주의적 정치사회철학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실제로 경험론을 반석위에 세운 로크는 󰡔�통치론󰡕�에서 사회계약설을 정당화하면서 이러한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나아가서 개인의 행위방식이나 완결되고 동질적인 개인들의 교환 및 경쟁으로부터 사회의 작동방식을 도출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 내지 시장주의와도, 경험론적인 인식론은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사회적) 관계’는 감각경험의 대상이 아닌 반면 원자적인 개인은 감각경험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경험론적 인식론에 입각한 사회과학은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경험가능한 개인을 출발점으로 보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로 치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칸트와 헤겔을 포함한 근대경험론적 인식론은 또한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지반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근대경험론적 인식론에서 전제하는 순수한 주체란 역사적/사회적으로 영향받지 않은 개인 또는 개인의 정신을 뜻할 뿐만 아니라, 감각가능한 객체의 한 부분으로서 사회 역시 근대경험론적 인식론에 입각하면 감각가능한 개인들의 단순한 합 내지 그들간의 상호작용으로만 포착된다. 이런 이유로 ‘경험론’에 입각한 사회과학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개인주의는 개인의 심리, 경향, 이성 등등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보고 사회를 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설명한다. 자유주의(로크)-시장중심주의(아담 스미스, 신고전파 경제학)-시장만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하이에크)로의 발전과정은 경험론에 입각한 개인주의적 사회과학의 구체적인 발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는 이러한 경험론적 문제틀과 상이한 새로운 과학이론적 문제틀에 기반한다. 즉 (순수한) 주체와 (순수한) 객체의 관계가 아니라, “과학적 서술이 현실적 운동과 갖는 관계”(II.1.1/23; 42/21)가 이론과 이론의 대상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문제틀로 설정되는 것이다.

 

이 때 서술의 대상이 되는 현실적 운동 즉 (자본주의) 사회는 동일한 개인들의 영원불멸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사회는 개인들로 성립하지 않고, 오히려 개인들이 서로서로 맺고 있는 관계들의 합을 표현한다.” (II. 1.1/188; 42/189 - 밑줄은 인용자) 따라서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생산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그에 상응하는 생산 및 교통관계”(23/12, 밑줄은 인용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는 다시 “역사적 결과”(II.1.1/22; 42/19)로 파악된다. 이론의 대상으로서의 사회를 대립적인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관계들의 총합으로 보는 것은, ‘이론의 대상’인 ‘사회와 현실’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고 나아가 새로운 ‘현실’ 개념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대립관계 등을 포함한 역동적인 ‘현실’을 ‘이론의 대상’으로 열어젖히는 효과를 갖는다. ‘불변의 현실’ 내지 감각적으로 경험가능한 사물들과 개인들의 합으로서의 현실인 ‘객체’라는 근대경험론적 문제틀과 방법론적 개인주의와는 다른 맑스 고유의 에피스테몰로기적인 ‘문제틀’에 입각하여 새로운 ‘현실 개념’이 확립되는 것이다.     


나아가 이론 또는 과학적 서술은 대립적 관계를 포함한 사회현실에 긴박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과정자체가 대립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고 대립적인 생각을 초래하는 것 만큼이나 이제 과학적 서술도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맑스는 󰡔�자본󰡕� 3권의 수고에서 ‘자본의 물신성’만이 아니라 ‘반자본주의적 생각’이 신용과 주식회사 그리고 조합형 회사의 발전과정과 더불어 동시에 발전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II.4.2/587 참조). 그리고 속류경제학과 자신의 ‘비판’을 동시적 발전과정으로 고찰한다:


“독일 사회의 고유한 역사적 발전은 ‘부루주아적’ 경제학의 독창적인 발전을 배제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판은 배제하지 못한다. 그러한 비판이 한 계급을 대변할 수 있다면 그 계급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변혁을 역사적 소명으로 하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이다.” (23/22, 밑줄은 인용자)


즉 개인으로서의 인식주체가 아니라 복수로서의 대립적인 이론들이, 대립적인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현실 즉 “역사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생산양식의 생산관계들에 대한 사회적으로 타당한, 따라서 객관적인 사유형태들”(II.5/47; 23/90, 밑줄은 인용자)로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고전정치경제학뿐만 아니라 속류경제학 조차도 단순한 오류나 나쁜 의도의 산물인 것만은 아니고 나름의 현실적 기반을 갖고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에서 맑스의 ‘물신성’ 개념은 󰡔�경제학-철학 수고󰡕�에서의 포이에르바하적인 ‘물신성’ 개념을 넘어선다. 즉 이제 맑스에게서 ‘물신성’은 인간이 자기의 생산물을 떠받들고 이에 지배당하는 잘못된 가상이라는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상품의 물신성”, “화폐의 물신성”, “자본의 물신성”, “이자 낳는 자본의 물신성” 등은 특정한 생산관계 속에서의 생산물이 떠받들어지고 생산자들이 이에 지배당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과정에서 순기능하면서 생산자들에게 특정한 생각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준다.18) 물론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생각’뿐만 아니라 ‘반자본주의적 생각’의 현실적 근거도 동시에 발전한다. 신용을 통해 사실상 자본소유자와 경영자가 분리되고, 주식회사의 발전과 더불어 자본가와 경영자가 분리되는 경향은, 이윤이 자본가 노동에 대한 댓가라는 ‘자본주의적 생각’을 허물고, 나아가 조합회사의 발생은 자본가계급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의 현실적 기반을 이룬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축적과정의 정점인 공황의 발생은 자본가계급에게마저 “변증법을 반복해서 가르친다.” (23/28) 즉 자본가계급마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회의를 품게 만드는 것이다.19)

 

이처럼 대립적 현실관계의 발전에 긴박된 대립적인 생각들과 이론들의 발전을 포착하는 것은, 역사/사회적으로 때묻지 않은 하나의 순수한 정신으로서의 주체라는 근대경험론적 인식론의 틀을 뒤집어엎는 새로운 틀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프로이트의 개인주의적 무의식뿐만 아니라, 라깡의 사회적 무의식 그리고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같은 구조주의 나아가 푸코의 에피스테메 등과 같이 하나의 지배적인 생각의 관철과정으로 사회의 이론들과 생각들을 포착하는 현대철학자들마저 넘어서는 투쟁과 전복의 에피스테몰로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론적 연구와 서술의 출발도 더 이상 감각적 경험이 아니다. “경쟁의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이 파악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이는 천체의 가시적인 운동이 현실적인 그러나 감각적으로 지각 불가능한 운동을 아는 사람한테만 이해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23/335, 밑줄은 인용자)라는 맑스의 언급은 순수한 감각적 경험이 이론의 출발점이 될 수 없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오히려 특정 이론가가 소화하고 있는 선대 또는 당대의 이론적 지식, 또는 그러한 이론적 지식의 문제틀 자체가 구체적인 이론적 문제제기의 출발점 또는 문제해결의 출발점임을 시사한다. 물론 당대의 이론적 지식뿐만 아니라 특정 이론가 자체도 역사적/사회적 생산물이기 때문에 전혀 순수하다고 할 수 없는 계급투쟁 및 자본주의의 모순적 축적과정이 이론적 출발점에 현실적 배경으로 작동한다. 마치 1840년대 삼림벌목문제 등을 둘러싼 계급투쟁이 맑스의 ‘정치경제학’ 연구 착수에 현실적 배경으로 작동했듯이. 그러나 현실적 배경은 이론적 비판의 배경을 이룰지언정 출발점을 이루지는 않는다. 또한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도 이론적 비판의 배경은 될 수 있지만 출발점이 될 수는 없다. 도덕적 이상이나 아직 이론적으로 근거지워지지 않은 정치적 이상은 더욱이 이론적 비판의 잣대가 될 수도 없다.20) 1850년대 맑스의 󰡔�정치경제학 연구노트󰡕�가 보여주듯이 새롭고 고유한 ‘문제틀’에 입각한 이론의 출발점은 선대 및 당대의 이론과의 비판적 대결과정이기도 한 ‘이론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맑스의 에피스테몰로기 즉 과학이론은 근대경험론적 인식론인 주체-객체의 이분법적인 틀을 근본적으로 해체하고 대체한다. 물론 어떤 과학혁명에서도 그러하듯이 이러한 문제틀의 혁명적 전환은 일거에 일어나지 않았다.  이러한 전환은 󰡔�자본󰡕� 또는 󰡔�자본󰡕� 2, 3권 초고 안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는다. 더구나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1857)에서 현실에 대한 직관과 표상을 적어도 연구과정의 출발점으로 보는 것은 (II.1.1/36; 42/35 참조), 여전히 경험론적인 잔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자본󰡕�에서도 사회적 총자본의 운동을 대체로 개별적 산업자본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데에서는 방법론적 개인주의 또는 19세기적인 원자론적 소재적 유물론의 잔재도 드러난다.21)

 

더구나 󰡔�자본󰡕�에서 조차 자주 등장하는 근대철학의 용어들 예를 들면 ‘현상’, ‘본질’, ‘일반’, ‘소외’, ‘구체’, ‘추상’ ‘내적/외적’ 등등은 그 용어의 다의성과 함께 맑스의 서술 나아가 새로운 문제틀을 불분명하게 만든다.22) 나아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기획을 독일 고전철학과 영국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의의 발전선상에 있는 단순한 종합으로 보게 만든다.

 

그러나 1913년 레닌이 󰡔�맑스주의의 세가지 원천과 구성요소󰡕�에서 위의 세 가지 원천에 대해서 말한 것이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은 당시 가장 발전된 자본주의적 이론들로서 이러한 세 가지 문제틀이 맑스에게서 비판의 대상을 이루고 따라서 맑스가 독자적인 문제틀과 이론을 생산하는 계기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경제학 비판’은 대안을 생산하는 ‘비판적 사유방법’을 배울 수 있는 학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단지 불분명하거나 이전의 문제틀의 잔재만을 갖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변증법 내지 유물론, 그리고 공황과 관련된 그의 가장 강한 테제들이 오히려 현대철학과의 대결 내지 지구화시대의 금융공황에 대한 분석의 기틀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근원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다. 공황과 관련해서 본다면, 자본주의적 신용과 금융적 투기의 발전 및 자본주의적 공황의 급작성 등등과 관련하여 󰡔�자본󰡕� 3권의 수고에서 현대 자본주의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문제틀을 주면서 동시에 공황의 원인을 산업자본 내지 생산의 영역으로 환원시키는 19세기 유물론적 환원론을 강하게 표출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 자세한 분석은 다음의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중요한 점은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근원적인 이중성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비판’은 우리에서 다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맑스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대안’을 주기보단, 스스로 ‘대안’을 사고하고 창출하도록 자극한다. 이것이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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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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