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그의 사상/칼 마르크스

[스크랩]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ddolappa 2008. 5. 17. 05:37

평논문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의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정 성 진   경상대 교수, 경제학

 

 


1. 머리말

 

이 글은 얼마전 호워드(M.C.Howard)와 킹(J.E.King)이 두 권으로 출간한 ?맑스 경제학의 역사?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 Ⅰ, 1883-1929, Macmillan, 1989; A History of Marxian Economics, vol.Ⅱ, 1929-1990, Macmillan, 1992)를 읽고 느낀 소감을 정리해 본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들인 호워드와 킹을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자들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1)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이 책은 예컨대 이안 스티드만(Ian Steedman)이나 브로디(A.Brody)의 책2)처럼 맑스주의 경제학을 네오 리카아디안의 이른바 분석적 내지 수학적 방법으로 나름대로 재단한 책이려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책을 펼쳐 목차를 보면서부터 곧 바뀌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네오 리카아디안이 애호하는 주제들, 예컨대 가치론, 전형문제 뿐만 아니라 맑스 사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서 등장한 주요 주제들과 쟁점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었으며, 이를 비교적 균형된 관점에서 다루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책이 우리에게 익숙한 스탈린주의 교과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이 책이 그간 ‘공식’ 맑스주의 역사에서 ‘존재하지도 않은 인물’로 치부되었던 트로츠키주의 경제학을 거의 4개 장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제1권 제12장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과 제15장 ?사회주의로의 이행: 공산주의 경제학, 1917-29?, 제2권 제3장 ?소비에트 생산양식?, 제8장 ?영구군비경제?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자골로프의 정치경제학 교과서 같은 것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류의 스탈린주의 관점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을 학습하고 이해해 온 것이 사실이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는 맑스의 ?자본론? → 레닌의 ?제국주의론? →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사회주의적 생산양식론)의 순서로 일방통행식으로 중단없이 전진해 온 역사로 묘사되고, 이 코스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부르주아적 프티 부르주아적 일탈, 또는 좌?우 편향으로 매도되어 왔다. 그러나 호워드와 킹의 이 책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이와 다른 방식으로 읽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가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를 정점으로 수렴되는 과정이기는 커녕, 다양한 상호갈등하는 조류 간의 활기찬 논쟁의 발산으로 전개되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나는 이 점에서 이 책이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중요한 이론적?정치적 의의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선 이 책을 읽음으로써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가 맑스주의 경제학을 가장 정통적으로 이해하고 발전시킨 것이라는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널리 퍼진 잘못된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다. 또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스탈린주의의 붕괴가 맑스주의의 위기와 파산을 증명하는 것이라면서 맑스를 버리고 포스트맑스로 나아가는 오늘의 유행에 대항하여 맑스주의 경제학을 재흥시키고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몇가지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


호워드와 킹의 이 책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비스탈린주의적 해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스탈린주의가 반대하는 입장이 반드시 맑스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즉 혁명적 맑스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이들의 비스탈린주의적 서술은 혁명적 반스탈린주의, 혁명적 맑스주의라기보다는 아카데미즘적 리카아도주의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같은 이 책의 한계도 염두에 두면서, 이 책에서 서술되고 있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로부터 우리나라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반성하고 재서술할 수 있는 단서들을 찾아 보고자 한다.

 

 


2. ?맑스 경제학의 역사?의 주요내용 평주

 

?맑스 경제학의 역사?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전개과정을 시대별?주제별로 다루면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맑스 사후 가치론, 공황론, 제국주의론, 및 사회주의론의 전개과정이 대체로 빠짐없이 개관되고 있다. 1권과 2권은 각각 맑스 사후 대공황에 이르는 시기 (1883-1929년)와 대공황 이후 최근 (1929-1990년)에 이르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하에서는 각각 359 페이지, 420 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들을 균등하게 요약하기보다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던 논점만을 간추려 정리해 보겠다.


제1권 제1부에서는 1883-1914년에 독일에서 이루어진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기여들이 검토된다. 제1장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맑스의 유산, 1883-95?에서 저자들은 엥겔스가 맑스의 ‘유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못했으며, 이것이 엥겔스를 매개로 하여 ‘정통’을 자처했던 제2인터내셔날 맑스주의가 맑스의 본래의 사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원인의 하나라고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엥겔스가 맑스의 유고를 편집하면서 ‘초기’ 맑스의 소외론이나 ‘중기’ 맑스의 ?그룬트리쎄?에 주목하지 못한 것 (혹은 무시한 것)은 엥겔스 이후 제2인터내셔날 맑스주의가 경제결정론으로 편향되게 한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제2장 ?엥겔스와 가치론에서의 ‘현상논문공모’?는 제목 자체의 독특함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기존의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이다. 엥겔스는 1884년 ?자본론? 제2권 서문에서 곧 출판될 ?자본론? 제3권에서 맑스는 평균이윤율이 형성되는 과정을 가치법칙을 위배하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고 밝히고, ?자본론? 제3권이 출판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손을 들어 보라고 공개적으로 제안한다. 이 책의 저자들이 ‘논문현상공모’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같은 엥겔스의 제안이며, 저자들은 이 장에서 이와 같은 엥겔스의 ‘논문현상공모’에 응모한 학자들의 견해와 이에 대해 ?자본론? 제3권 서문에서 엥겔스가 내린 평가의 정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저자들은 ‘논문현상공모’에 참여한 일부의 학자들은 ?자본론? 제3권에서 맑스가 전개하고 있는 가치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형문제에 대한 해법에 거의 접근했다고 보며, 따라서 이를 인정하지 않은 엥겔스의 평가는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들은 엥겔스가 이 ‘공모’된 문제와 관련된 ?자본론? 제3권의 초고 일부를 공개해 달라는 ‘논문현상공모’에 참여한 학자들의 요청을 묵살하고, 이를 공개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맑스주의 가치론의 발전이 10년 이상이나 지체되었다고 지적한다.


제3장 ?자본론? 제3권 전형문제에 대한 뵘바뵈르크의 비판과 이에 대한 힐퍼딩의 반비판이 검토되고 있는 ?가치론에서의 최초의 논쟁, 1895-1914?에서 저자들은 힐퍼딩 (및 힐퍼딩이 의지하고 있는 엥겔스)이 맑스의 전형문제 해법을 옹호했던 방식, 즉 역사적 전형론 (가치 범주에서 생산가격 범주로의 논리적 전형을 역사적으로 존재했다고 주장되는 단순상품생산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역사적 이행에 대응시키는 것)은 전형문제의 논리적 난점을 회피한 것일 뿐만 아니라, 방법론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맑스의 전형문제의 논리적 난점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시도들로 보르트키에빅츠 (그리고 이보다 앞서 뮐포트와 드미트리에프)에 주목한다. 제4장 ?베른슈타인, 카우츠키와 수정주의 논쟁?은 베른슈타인의 정통 맑스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우츠키의 반비판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제5장 ?금융자본과 제국주의: 칼 카우츠키와 루돌프 힐퍼딩?에서 저자들은 힐퍼딩을 독점이윤율 이론의 원조로 위치지우고 있다. 제6장 ?자본축적, 제국주의와 전쟁: 로자 룩셈부르크와 오토 바우어?에서 저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와 바우어의 확대재생산표식의 수치예를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다. 저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과소소비설은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과잉축적’과 ‘과소축적’의 주기적 교대로 구성된 바우어의 경기순환이론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제2부에서는 1917년까지 러시아에서 이루어진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한 기여들이 검토된다. 제7장 ?러시아 맑스주의가 물려 받은 것들?에서 저자들은 ‘만년’의 맑스의 러시아론과 러시아 인민주의 사상에 주목하면서, ‘만년’의 맑스는 ?베라 자술리치에 보낸 편지 초고들?에서 보듯이, 러시아에 남아있는 촌락공동체 (obshchina)를 기반으로 하여 자본주의를 건너 뛰어 사회주의로 직접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 러시아 인민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에 공감한 부분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저자들은 ‘만년’의 맑스의 생각은 일국사회주의론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저자들은 ‘만년’의 맑스는 소외론으로 대표되는 ‘초기’ 맑스, ?자본론?으로 대표되는 ‘중기’ 맑스에 비교하여 이렇다 할 내용과 체계를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이를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제8장 ?플레하노프의 정치경제학?에서 저자들은 플레하노프의 사상은 제2인터내셔날과 맥락을 같이 할 뿐만 아니라, 스탈린주의적 교조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제9장 ?1890년대의 인민주의와 정통 맑스주의?과 제10장 ?러시아 수정주의?에서 저자들은 스탈린주의 교과서에서는 거의 무시되었던 19세기 러시아 합법적 맑스주의자들, 특히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공헌을 밝혀내고 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민주의의 경제학은 스탈린주의 자력갱생론의 기원이 되었으며, 과소소비설의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된다. 또 저자들은 레닌의 공황이론은 인민주의의 과소소비설과 합법적 맑스주의의 불비례설을 변증법적으로 해결한 독창적 공헌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레닌 우상화를 거부하고, “대중의 소비의 일정한 수준 자체가 비례성의 하나의 요소”라는 언급을 제외한다면, 러시아 자본주의 논쟁에서 레닌이 독자적으로 기여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소위 ‘시장문제’에 관하여?(1893)와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발전?(1899)에서 레닌은 시장 혹은 상품생산 일반을 자본주의와 동일시하는 유통주의적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된다. 또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19세기 러시아의 공장?(1898)은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을 공장, 공업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에서 국가의 역할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이들 요인을 경시하고 농촌에서 자본주의 발전과 농민층분해를 특권화한 레닌의 러시아 자본주의론에 비해 더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레닌은 러시아 촌락공동체의 견고성을 과소평가한 반면, 농민층분해의 진전 정도, 농업자본주의 발전 정도를 과대평가한 오류를 범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저자들은 또 이와 같은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러시아 자본주의론이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과 영구혁명론의 지적 자원으로 되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저자들은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대한 투간 바라노프스키의 비판은 정곡을 찌른 것으로서, 후에 오키시오 노부오(置鹽信雄)의 ‘오키시오 정리’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이윤율을 상승시키는 기술만이 선택되며,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경우에만 이윤율이 저하한다는 주장)를 반세기나 앞질러 발견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제11장 ?레닌의 정치경제학, 1905-14?에서는 레닌의 경제사상이 농업강령과 자본주의 발전의 두가지 길의 이론을 중심으로 해설되고 있다. 저자들은 레닌이 1905년 혁명기에 농민의 지주토지의 전면몰수의 현실을 목격하고 이전에 자신이 주장했던 ‘절취지’(otrezki) 강령을 버리고, 전면몰수와 국유화강령을 주장하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국유화강령은 최대강령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틀내에서 성취될 수 있는 강령이며, 절대지대의 제거를 통해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발전을 촉진한다. 또 레닌은 그 당시 프러시아형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걷고 있던 러시아에 대해 아메리카형 자본주의 발전의 길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저자들은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볼 때 1905년 혁명 이후 1917년 혁명까지의 레닌은 여전히 2단계혁명론자였다고 지적한다. 이와 아울러 레닌의 프러시아적 길의 이론은 합법적 맑스주의자 스트루베의 ‘둔화된 모순’ (blunted contradiction)의 개념을 받아 들인 것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제12장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은 아마도 트로츠키의 사상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포함하고 복권시킨 최초의 시도가 아닌가 한다. 저자들은 도시에서 공업발전, 도시로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집중, 러시아 자본주의 발전에서 국가와 외국자본의 역할 등의 측면에 주목한 트로츠키의 불균등결합발전론은 레닌의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보다도 더 탁월한 러시아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훌륭한 묘사이며,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1917년 혁명의 동학에 대한 예언자적 통찰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들은 트로츠키에 여전히 제2인터내셔날에 특징적인 경제결정론의 잔재가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영구혁명론은 러시아 혁명의 설명으로서는 타당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일반이론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제2차대전 이후 동유럽, 중국, 쿠바 등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의 도식과는 판이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3) 또 저자들은 트로츠키의 자본주의론에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같은 과소소비설적 요소가 있으며, 불균등결합발전론을 선진자본주의 열강들 간의 갈등을 설명하는 데 적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제13장 ?제국주의와 전쟁: 부하린과 레닌의 독점자본주의론, 1914-17?에서 저자들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제국주의와 경쟁자본주의 간의 관계나 제국주의의 ‘5개 표지’ 상호간의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했으며, 자본수출을 과소소비설로 설명하는 등의 약점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경제의 주체로서의 제국주의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부하린에 비해, 레닌의 제국주의론에는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혹은 매개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 즉 그 경제결정론적 약점이 지적된다. 그리고 저자들은 1917년 ?4월테제?를 계기로 하여 레닌이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받아 들였다는 주장, 그리고 레닌은 원래부터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론자였으며,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의 기원을 레닌에서 찾을 수는 없다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주장에 유보를 달고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의 불균등결합발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영구혁명론을 도출했던 트로츠키와는 달리, 레닌은 그것을 선진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예컨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부터 도출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레닌은 소련 사회주의가 장기간 고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트로츠키와는 달리 스탈린주의 일국사회주의론과 부합되는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4) 끝으로 부하린이나 레닌은 모두 독점자본주의론의 이론화에 불가결한 독점과 초과이윤의 이론적 관련의 문제, 독점자본주의에서 가격, 임금 이론의 문제를 해명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의 노동귀족 이론과 이에 기초한 개량주의 비판은 많은 약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된다.


제3부에서는 1917-1929년의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경제학이 개관된다. 제14장 ?수정주의의 재흥?에서는 힐퍼딩의 조직화된 자본주의론과 프리츠 스텐버그 (Fritz Stenberg)의 제국주의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제15장 ?사회주의로의 이행: 공산주의 경제학, 1917-29?에서는 1920년대 소련사회주의 건설논쟁이 검토된다. 레닌의 국가자본주의론과 신경제정책, 부하린의 전시공산주의론과 노농동맹의 정치경제학, 프레오브라즈헨스키 (및 트로츠키)의 사회주의적 원시축적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저자들은 1920년대 소련경제의 문제점을 부하린처럼 과소소비설적으로 농민의 낮은 구매력, 수요부족에서 찾기보다, 공산품의 공급부족에서 찾고, 이를 공업화 우선정책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좌익반대파 (프레오브라즈헨스키, 트로츠키)의 대안이 부하린의 그것보다 이론적으로 더 우수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제16장 ?헨리크 그로스만과 자본주의의 붕괴?에서는 그로스만의 붕괴표식이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다. 저자들에 따르면 대공황 직전에 츨판된 그로스만의 ?축적의 법칙과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1929)5)는   그때까지 투간 바라노프스키, 카우츠키, 힐퍼딩 같은 수정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부하린, 트로츠키 등 정통 맑스주의자들도 주목하지 못했던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공황이론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한 최초의 시도라고 평가된다. 저자들의 지적대로 맑스 사후 그로스만에 이르기까지 공황이론은 과소소비설과 불비례설 간의 논쟁사로 전개되어 왔는데, 그 어느 쪽도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자본주의의 장기적 운명에 관한 법칙으로만 간주했으며, 그것이 자본주의의 순환적 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들은 그로스만의 시도가 많은 이론적 결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후 마틱(P.Mattick), 야폐(D.Yaffe), 코고이(M.Cogoy)와 같은 ‘평의회 공산주의자’ (Council Communist)들, 혹은 근본주의적 맑스주의자들에서 보듯이,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기초하여 공황이론을 구성하고 현대자본주의의 위기를 설명하려 한 시도들의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고 본다.

 

제2권 제1부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전개된 맑스주의 경제학이 검토된다. 제1장 ?맑스 경제학과 대공황?에서는 1930년대 대공황의 원인에 대한 바르가와 모스코브스카 (Moszkowska)의 과소소비설적 설명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제2장 ?스탈린의 정치경제학?에서는 스탈린주의 공업화 모델과 펠드만의 중공업우선 모델의 차이점이 논의되고, 소련에서 가치법칙의 지위 문제가 논의된다. 하지만 이 장을 통해 우리는 이 책의 저자들이 스탈린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혁명적인 반스탈린주의적 입장에는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선 저자들은 스탈린의 이론이 레닌주의로부터 비껴 나간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들은 스탈린이 레닌주의를 제국주의 시대의 맑스주의로서 체계화한 공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스탈린의 테러는 그의 긍정적인 기여와 쉽게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저자들은 스탈린의 트로츠키 비판은 적절하고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스탈린이 코민테른을 소련의 국익을 위해 이용했다는 비판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또 저자들은 스탈린의 1930년대 경제정책이 1920년대 좌익반대파의 대안을 채택한 것이라는 ‘개명된’ 스탈린주의들의 상투적인 트로츠키 비판을 되풀이하고 있다.6) 심지어 스탈린주의에 대한 볼셰비키의 반대는 객관적으로 반혁명적인 것이었다고 하면서, 스탈린주의는 다른 볼셰비즘과 마찬가지로 맑스주의의 한 형태로 분류될 수 있으며, 사회주의적 실천을 고무했다고 주장한다.


제3장 ?소비에트 생산양식?에서는 스탈린주의에 반대한 트로츠키주의 각 분파들의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평가가 검토된다. 트로츠키의 관료적으로 타락한 노동자국가이론, 브루노 리찌(Bruno Rizzi)의 관료적 집산주의론, 및 토니 클리프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이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저자들은 그 중에서 클리프의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론에 특히 더 비판적인데, 우리가 보기에 그 비판은 부정확하고 일면적이다. 예컨대 자본가들의 경쟁은 경제적 경쟁이라는 형태만을 취하기 때문에, 클리프처럼 군사적 경쟁에 기초하여 소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비판이라든지, 관료들의 대량 숙청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졌던 스탈린주의 체제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현대자본주의에 와서 경쟁은 단순히 경제적 경쟁, 가격 경쟁이 아니라 정치군사력과 결부된 총체적 구조적 국가적 경쟁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저자들처럼 관료의 주기적 숙청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유로 이 사회를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로 보는 클리프의 견해가 틀렸다고 한다면, 자본가들의 대량 파산이 항존하는 사회를 자본가들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규정한 맑스의 견해 역시 틀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자본의 파산이 자본주의 발전의 필수적 요소인 것처럼, 관료의 주기적 숙청 역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고유한 방식일 뿐이다.


제2부에서는 제2차대전 이후 1970년대초까지의 장기호황기 (이른바 ‘황금시대’)에 전개된 맑스주의 공황론이 검토된다. 제4장 ?자본주의는 변했는가??에서는 이 제목을 주제로 전후 장기호황의 원인 해명을 위해 1958-59년에 조직된 맑스주의자들의 국제적 논쟁이 검토된다. 저자들은 이 논쟁이 국제관계를 무시했다는 점, 맑스의 궁핍화론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등의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장에서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이 검토되며, 이와 관련하여 최근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는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자 까쓰또리아디스 (Cornelius Castoriadis)의 견해도 소개된다. 제5장 ?케인즈와 맑스?에서 저자들은 맑스 경제학에 대해 케인즈가 가졌던 태도, 그리고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대한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의 반응을 검토한다. 케인즈의 자본의 한계효율 저하론은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론과 유사하며, 맑스와 케인즈는 과소소비설론자라는 공통점을 갖는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저자들은 돕을 비롯한 당시 스탈린주의 ‘공산주의자’들은 1936년 출판된 케인즈의 ?일반이론?에 대해 오히려 우호적이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당시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의 반파시즘 인민전선 전술 (‘대동단결’)에서 찾고 있다. 사실 유효수요의 부족이 불황의 원인이라는 케인즈의 생각은 과소소비가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과소소비설적 조류와 쉽게 결합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칼레키(M.Kalecki)로 대표되는 좌파 케인즈주의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좌파 케인즈주의가 아니라, 마틱의 케인즈 비판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윤율의 경향적 법칙의 적용에서 케인즈에 대한 진정한 맑스주의적 비판과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잉여가치 실현의 위기가 아니라 잉여가치 생산의 위기, 즉 수익성의 위기이며, 케인즈적 국가개입은 잉여가치 생산의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키므로, 위기 해결에는 무용하다는 것이다.


제6장 ?독점자본?에서 저자들은 1966년에 출판된 바란(P.Baran)과 스위지(P.Sweezy)의 ?독점자본?이 야기한 맑스주의 경제학 내부의 논쟁을 검토한다. 저자들은 ?독점자본?은 챔벌린의 독점적 경쟁 모델이라든지, 결합이윤 극대화 모델과 같은 부르주아 경제학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독점자본?이 과소소비설에 치우쳐 수요의 부족 (증가하는 잉여의 흡수)이 아니라 수익성의 위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현대자본주의의 위기를 해명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경쟁적으로 되어 가는 현대자본주의의 성격을 잘못 파악했다는 비판에 공감한다. 제7장 ?저하하는 이윤율?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중심으로 한 논쟁사를 개관한다. 저자들은 맑스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의 의의를 중시하면서도, 이 법칙에 대한 투간 바라노프스키, 보르트키에빅츠, 시바타 케이(柴田 敬), 모스코브스카, 오키시오 노부오, 사무엘슨 등의 비판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반면, 2차대전 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을 재발견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야페와 만델에 대해서는 인색한 평가를 내린다. 예컨대 저자들은 야페의 1973년 논문은 맑스의 법칙을 논리적으로 방어한 것이라기보다는 재진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며, 만델의 경우에는 이윤율의 저하가 공황을 야기하는 것인지 공황이 이윤율의 저하를 초래하는 것인지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한다. 저자들은 제16장에서 ‘오키시오의 정리’에 대한 맑스주의 입장에서의 반비판으로 인정되고 있는 안와르 샤이크(Anwar Shaikh)의 1978년 논문 역시 부적절한 것이라고 본다. 제8장 ?영구군비경제?에서는 군비지출이 자본주의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상반된 견해들이 검토된다. 군비지출은 유효수요를 진작하여 과소소비공황 압력을 완화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에서 바란, 스위지에 이르는 과소소비론자들의 주장과, 군비지출은 제Ⅲ부문 (사치재부문) 투자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군비지출은 경제 전체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가져 오지 못하며, 따라서 경제전체의 이윤율을 저하시키지도 않기 때문에, 이윤율의 저하에 기초한 공황압력을 완화한다는 키드론(M.Kidron), 토니 클리프와 같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견해가 비판적으로 검토된다. 저자들은 전쟁과 자본주의는 불가분하며, 영구군비경제가 전후 장기호황의 원인이라는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하고, 민간의 생산적 투자를 ‘구축’하는 군비지출의 부정적 효과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군국주의가 자본주의의 결과라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군국주의가 자본주의의 존재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주장은 받아 들일 수 없다는 카우츠키의 견해에 공감하면서, 전쟁없는 평화적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제3부에서는 제2차대전 후 전개된 신제국주의론이 검토된다. 제9장 ?자본주의와 저개발?에서 저자들은 프랭크와 왈레스타인으로 대표되는 종속이론의 기원을 바란의 ?성장의 정치경제학?에서 찾는다. 저자들은 제3세계의 제국주의 중심부에의 종속이 제3세계의 저개발을 결과시켰다는 바란의 핵심적 주장은, 일본과 캐나다의 성공 사례와 신흥공업국에서 수출지향적 공업화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중공업우선발전을 통한 자력갱생을 저개발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바란의 주장에서 스탈린주의적 영향을 읽어낸다. 저자들은 제3세계에 대한 수탈과 저개발을 대가로 해서만 중심부 제국의 발전이 가능했으며 또 가능하다는 프랭크의 종속이론은 유통주의의 오류와 세계경제의 발전을 제로섬 게임으로 본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저자들은 소련을 제3세계 발전의 대안으로 간주했던 바란이나 프랭크와는 달리 왈레스타인이 소련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된 자본주의 체제로 간주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또 저자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장기간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스탈린, 바란, 프랭크의 일국사회주의론은 환상이며, 자본주의는 세계체제이기 때문에 세계적 수준에서만 전복될 수 있다는 왈레스타인의 주장에도 공감을 표시한다.

 

제10장 ?부등가교환?에서 저자들은 엠마누엘(A.Emmanuel)의 ?부등가교환?(1969)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부등가교환 문제에 대한 논쟁을 검토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국제적 부등가교환과 무역의 이익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상대적으로 손실을 보면서도 절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또 엠마누엘의 국제적 부등가교환 이론은 국제적 생산성 격차가 고려되지 못한 완전특화모델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며,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에 기초한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부국에 대한 빈국의 투쟁과 고임금 수입대체 전략에 기초한 자력갱생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제3세계주의라는 비판에도 공감을 표시한다. 제11장 ?저개발 이론의 비판?에서는 종속이론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 생산양식의 접합이론,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의 계급투쟁 이론, 빌 워렌(Bill Warren)의 종속이론 비판, 나이젤 해리스(Nigel Harris)의 신흥공업국론 등이 소개된다. 저자들은 워렌의 정치적 입장과 19세기말 러시아의 합법적 맑스주의와 유사성에 주목한다.


전후 가치론의 전개과정을 전형문제를 둘러싸고 네오 리카아디안(스라피안)과 맑스주의 경제학 간에 전개된 논쟁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 제4부는 제12장 ?스라파 이전의 가치이론?, 제13장 ?스라파와 맑스 이론의 비판?, 제14장 ?스라파 이후의 맑스 가치론?, 제15장 ?맑스 경제학과 잉여 경제학?의 4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격은 주어진 기술과 분배조건으로부터 직접 계산할 수 있으므로, 가치를 거쳐 가격을 도출하는 맑스의 전형문제 해법이 불필요한 ‘복잡한 우회로’(complicating detour)이며, 결합생산(joint production)의 경우에는 그 ‘우회’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사뮤엘슨과 스티드만의 주장에 저자들은 공감한다. 반면 전형문제에 대한 네오 리카아디안의 비판을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방어한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샤이크의 반복(iterative process)에 의한 전형문제 해법이나 던컨 폴리(Duncan Foley) 혹은 제라드 뒤메닐 (G.Dumenil), 알랭 리피에츠(Alain Lipietz) 등의 ‘새로운 해법’(new solution)에 대한 저자들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제5부에서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최근 논쟁들이 다루어진다. 제16장 ?‘두번째 불황’: 1973년 이후의 공황이론?에서는 1973년 이후 선진자본주의 제국의 불황을 임금상승에 기인한 이윤압박으로 설명하려는 네오 리카아디안의 시도와 사회적 축적구조(Social Structure of Accumulation) 혹은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붕괴에 따른 생산성의 위기 내지 수익성의 위기로 설명하는 사회적 축적구조학파와 조절이론이 개관된다. 저자들은 1973년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는 임금상승-이윤압박의 위기라기보다는 생산성 상승의 둔화에 따른 수익성의 위기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듯하며, 사회적 축적구조이론과 조절이론에 대해서는 분석수준이 일국적이며, 유로코뮤니즘의 ‘역사적 타협’과 유사한 정책적 함의를 갖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제17장 ?합리적 선택 맑스주의?는 최근 크게 유행하는 분석적 맑스주의 주요내용을 존 로머(John Roemer)의 맑스 경제학의 ‘미시적 기초’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맑스 경제학에 대한 로머의 비판은 네오 리카아디안의 비판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제18장 ?사회주의의 정치경제학?은 미제스(L.von Mises)와 랑게(O.Lange)의 사회주의 계산논쟁과 1983년 출판된 알렉 노브(Alec Nove)의 ?실행가능한 사회주의 경제학?과 관련된 논쟁이 비판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저자들은 노브의 시장사회주의론은 노동자참여와 노동자통제에 중심적 의의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결론?에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전개된 논의를 총괄하면서 맑스 이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적 성과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저자들은 오늘 맑스주의 경제학이 논박될 수 없는 변호론적인 ‘퇴행적인 과학연구 프로그램’ 내지는 종교적 교조로 타락했다는 블라우그(M.Blaug)나 콜라코프스키(L.Kolakowski)의 ‘파산선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맑스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이 흔히 상정하는 일괴암적 단일체로서의 정통 맑스주의라는 것은 적어도 1929년 이후부터는 존재하지 않으며,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는 다양한 조류들 간의 상호갈등과 논쟁으로 점철되었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은 경제사회학으로서 혹은 다양한 유형의 경제체제에 대한 포괄적 분석으로서 여전히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장점을 갖는다고 본다. 또한 저자들은 맑스 사후 맑스주의 경제학은 끊임없이 정정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들은 맑스 사후 100년 이상이 흐른 오늘 맑스 경제학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노동가치론, 잉여가치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등이 결정적인 이론적 결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주장하면서, 이들 요소를 빼고 나면 맑스주의 경제학에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라고 자문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은 이같은 이론적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계급투쟁, 재생산, 모순, 및 불균등발전이라는 맑스주의 경제학에 고유한 4개의 ‘중핵’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 때문에 맑스주의 경제학이 자신의 독자성을 잃고 사회학적으로 또는 역사학적으로 경도된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 작은 분과학문 같은 것으로 전락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현재 맑스주의 경제학에서 살아 남아있는 것은 계급투쟁, 재생산, 모순, 불균등발전 같은 개념 정도이며, 노동가치론, 잉여가치론 개념,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같은 것은 모두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이미 언급되었듯이 이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사에 대해 네오 리카아디안적으로 편향된 해석일 뿐이다. 그리고 맑스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인정하지 않는 저자들의 입장은 결국 맑스주의 경제학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이 책의 전체구성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먼저 서술 대상이 구미, 그 중에서도 독일, 영국, 미국 및 러시아에서 전개된 맑스주의 경제학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는 주로 일본, 소련, 동독 일본에서 이루어진 정치경제학 교과서류로 맑스주의 경제학을 학습해 왔던 우리로서는 막대기를 구부리는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 전체를 구성하는 작업으로서는 불충분한 것이다. 예컨대 국제적 부등가교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2권 제10장은 1970년대 이후 구미에서 전개된 엠마누엘의 국제적 생산가격이론과 관련된 논쟁만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보다 훨씬 풍부한 내용을 갖고 있으며 이보다 앞서 동유럽과 일본에서 전개된 국제가치 논쟁은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비록 스탈린주의로 왜곡되었다 할지라도, 2차대전 이후 구소련, 동유럽 등 ‘현존 사회주의’ 제국에서 이루어졌던 ‘맑스주의’ 경제학 연구성과를 비판적으로 개관하는 것은 스탈린주의의 청산이라는 입장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7) 또한 이미 우노 코조 (宇野弘藏)의 독창적인 맑스 해석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맑스주의 경제학 연구성과나 프랑스 공산당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알뛰세리안을 비롯한 프랑스의 맑스주의 경제학이나 라틴아메리카 제국에서 전개된 맑스주의 경제학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것 역시 중요한 한계이다. 또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공황이론의 새로운 조류인 조절이론과 사회적 축적구조 이론도 그 중요성에 비교하여 너무 간략하게 다루어졌으며, ‘현존 사회주의’ 제국의 붕괴 후 제기되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 가령 포스트맑스주의, 신사회운동, 환경문제, ‘재사유화’, 민족?인종문제, 지구화(globalization)등의 문제들에 대한 검토가 누락된 것도 아쉬운 점이다.


이 책은 이상과 같은 중요한 부분을 누락하면서도, 스라파 경제학 또는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즉 제1권 제3장 ?가치론에서의 첫번째 논쟁, 1895-1914?와 제2권 제4부 4개장 전체가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에 대한 검토로 채워져 있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들의 입장이 네오 리카아디안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스라파 경제학,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가 문제시될 수 있다. 또 저자들의 스탈린주의와의 불철저한 단절 역시 문제시될 수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저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스탈린주의 체제를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토니 클리프의 견해에는 반대하고, 스탈린주의 체제는 제한된 의미라 할지라도 일정한 역사적 진보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에서 보여지는 리카아도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화해는 스탈린주의 영국공산당 당원이면서도 리카아도 경제학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모리스 돕과 로날드 믹(Ronald Meek), 혹은 네오 리카디안 경제학자인 동시에 광적인 반트로츠키주의자였던 호지슨(G.Hodgson)의 사례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자유분방한 비판적 분석으로 모든 ‘우상’을 파괴하는 데 정평있는 네오 리카아디안들이 스탈린주의와 손을 잡는 것은 일견 기이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네오 리카아디안의 정치적 입장이 스탈린주의에 특징적인 개량주의와 동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네오 리카아디안들이 자신들의 반사회주의적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스탈린주의=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의 등식을 역방향에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네오 리카아디안과 스탈린주의의 친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또 이 책에는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서술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방법론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이 맑스의 경제학 혹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핵심을 무엇으로 파악하고 있는지가 분명하게 전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책 전체가 일관된 흐름에 기초한 통사적 서술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토픽’에 대한 이질적이고 단편적인 논의들의 모자이크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맑스주의적 방법, 즉 역사유물론의 방법에 따라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를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계급투쟁의 추이와 긴밀하게 관련지우지 않고, 마치 자기 자신의 논리에 따라 독자적으로 전개되어 온 역사처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와 계급투쟁의 규정 하에서 이론의 역사를 서술하는 맑스주의적 방법은 맑스주의 자신의 역사 서술에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3. ?맑스 경제학의 역사?가 남한 맑스주의 경제학 역사에 시사하는 것

 

이제 ?맑스 경제학의 역사?가 남한의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에 대해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 맑스주의, 공산주의 일반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식민지시대 조선공산당이나 해방이후 남한에서 남로당, 북한에서 조선노동당의 공식노선이 모두 스탈린주의였기 때문에, 당의 공식노선에 종속될 수 밖에 없는 맑스주의 이론연구에서도 스탈린주의가 관철될 수 밖에 없았다. 하지만 이같은 스탈린주의의 역사조차도 남한에서는 전쟁과 분단 이후 ‘단절’되었다. 그것이 다시 ‘복원’되기 시작한 것은 주지하듯이 1980년대 중반 이후이다. ‘복원’된 스탈린주의는 1990년대 들어 현실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그 운명을 같이 했다. 이로써 남한의 스탈린주의의 역사는 종결되었다. 물론 그 파장과 잔재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따라서 나는 남한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맑스주의 이론 연구의 역사라는 것, 따라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라는 것은 있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PD’의 이론가인 윤소영은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남한 맑스주의 경제학의 “전사”로 간주하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성격논쟁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우세하게 된 것을 두고서 남한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복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지만,8) 이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이나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모두 맑스주의라기보다는 스탈린주의 2단계혁명론의 상이한 형태들이기 때문이다. 민족경제론은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의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각색한 것에 다름 아니며, 윤소영이 “복원”했다고 주장한 맑스 경제학이란 실은 재수입된 스탈린주의 소련 정치경제학 교과서에 불과하다.


사실 오늘 1990년대를 살고 있는 진보적 지식인 세대는 거의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라고 배워 온 세대이다.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들의 스탈린주의적 뿌리가 얼마나 강고한지를 알기 위해 나의 (그리고 아마도 우리 시대 진보적 지식인들 대부분의) ‘맑스주의’ 학습의 기억을 더듬어 보자. 우리 세대처럼 광적인 반공주의 탄압에 짓눌려 있던 1970년대 중반경에 (아마 1950-60년대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맑스주의’ 경제학을 학습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개 경제사 학습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맑스주의 학습을 시작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우리 사고방식의 스탈린주의적 세뇌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우리의 경제사 학습교재는 거의 천편일률적으로 모리스 돕(M.Dobb)과 폴 스위지(P.Sweezy)의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논쟁 논문집, 돕의 ?자본주의 발전 연구?(1946), 오쓰까 히사오(大塚久雄)의 서양경제사 관련저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학습은 ‘스위지=유통주의=오류’, ‘돕=생산 중시=정설’이라는 도식을 암송한 다음, 돕이나 오쓰까의 책을 더 보는 것으로 끝났다. 나의 기억으로는 그 당시 경제사를 학습했던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돕이 충실한 영국공산당 당원으로서 1930년대 스탈린주의 소련경제를 찬양한 스탈린주의자라는 사실,9) 그리고 오쓰까 역시 강좌파라는 ‘정통’ 스탈린주의의 일본공산당의 계보에 속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알았다 하더라도 별 차이 없었겠지만.) 돕이 스위지와는 달리 유통이 아니라 생산을 중시했다는 점은 옳지만, 봉건제 내부에서의 생산력 발전의 사실을 경시했으며, 봉건제 내부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의 변증법으로 이행을 설명하지 않고 브레너와 마찬가지로 생산력발전과 유리된 계급투쟁으로 이행을 설명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일국적 차원에서 이행의 계기를 발견하려는 일국자본주의의 문제설정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결국 스탈린주의 일국사회주의론의 정당화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이후이다.10)


또 오쓰까의 자본주의 성립사론은 맑스의 ?자본론? 제3권에 제시된 자본주의 이행의 두가지 길에 관한 테제를 ‘소생산자형의 길=혁명적 길=정상적 자본주의 발전’ / ‘지주 상인형의 길=보수적 길=파행적 자본주의 발전’으로 도식화한 것이다. 1960-70년대 당시 우리는 오쓰까와 같은 일본 강좌파의 경제사 이론에 의거하여 남한자본주의의 파행성을 비판했던 것인데, 이것이 매판적 관료자본주의론이다. 그러나 오쓰까의 이행의 문제설정 역시 돕과 마찬가지로 일국적이며, 소생산자형의 길, 즉 본원적 축적의 경제적 과정 (=가치법칙의 관철에 의한 소생산자층의 양극분해)에 의거한 자본주의의 발생을 자본주의 발전의 ‘고전적’ 이념형으로 절대시하고, 역사적 자본주의 발생과정의 폭력적 성격, 본원적 축적의 경제외적 과정을 부차화함으로써, 최선의 경우에는 민족자본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발전의 길 (소생산자형 자본주의 발전의 코스, 아메리카형의 코스)을 당면혁명의 성격으로 내거는 스탈린주의 2단계혁명론 (반제반봉건BDR, 혹은 반제반독점PDR)의 역사적 정당화에 지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고전적’ 자본주의 발전 코스의 미화와 투항 (결국 중진자본주의론)의 길로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것 역시 1980년대 후반 이후의 일이다.


1970년대 당시 우리의 학습커리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후진국경제론이었다. 조용범의 ?후진국경제론?(1975)을 읽은 다음, 고급 수준에서는 원서로 된 바란(P.A.Baran)의 ?성장의 정치경제학?을 읽는 것이 통상적인 코스였다. 이 학습을 통해 남한자본주의의 제반모순은 자본주의 자체의 내적 모순보다는 남한자본주의의 파행성과 이를 결과시킨 제국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게다가 이 책들에서 남한자본주의와 같은 후진국 민중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민족민주혁명을 통한 자력갱생의 길이나 소련형 중공업우선발전론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바란이 제3세계의 발전모델을 폐쇄적 자급자족적 국가자본주의 체제였을 뿐인 스탈린주의 소련에서 찾았다는 사실은, 바란 혹은 종속이론의 반스탈린주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철저한 것이었는지를 잘 말해준다.11) 남한 진보진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이 대학시절에 학습한 후진국경제론이 결국 스탈린주의 체제의 미화론이며 일국사회주의론이라는 사실을 1990년대 이후 스탈린주의 체제의 몰락 이후에야 깨닫게 된 것은 우리 운동의 비극이다. 1980년대 중반 남한 진보진영에서 남한자본주의의 모순을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에서 구하지 않고 남한자본주의의 발생 성립과정의 파행성 (예컨대 식민지종속적 성격, 기생성, 부패적 성격 등)에서 구하고 이러한 파행성을 제거하는 것이 당면혁명의 과제라고 주장했던 NL, PD, ND 등 모든 종류의 스탈린주의 단계혁명론이 각축 번창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당시 진보진영에 속했던 사람들의 스탈린주의적 학습과정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같은 스탈린주의 경제학조차도 1950-70년대 광적인 반공 군사정권의 폭압 하에서는 밀수입되고 암거래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이같은 밀교적 성격이 도리어 스탈린주의의 ‘혁명적’ 가치와 ‘정통성’에 대한 환상을 턱없이 증폭시켰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에 잠시 유행했던 네오 리카아디안 경제학의 ‘자본논쟁’과 종속이론은 앞서 언급되었듯이 스탈린주의와의 외관상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에서는 스탈린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80년대 중반 상대적으로 개방된 이념적 공간에서 소련과 북한에서 직수입된 스탈린주의 경제학이 각각 정통 혁명사상으로 쉽사리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역사적으로 형성된 진보진영의 지적 지반 자체가 이미 스탈린주의에 깊이 침윤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진보진영이 스탈린주의 몰락이라는 정세에서 맑스주의를 재흥시키고자 하면, 다른 무엇보다 남한 진보진영에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스탈린주의적 관념과 작풍을 남김없이 쓸어 내는 것이 긴급하게 요구된다. 스탈린주의를 맑스주의와 동일시하게 한, 그리고 맑스주의를 비판될 수 없는 무오류의 신성한 종교적 체계처럼 우상화하게 한, ‘수업시대’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심층에 각인된 스탈린주의를 깨끗이 청소하는 작업이다. 이와 같은 스탈린주의에 대한 철저한 청산작업을 통해서만, 과학적인 따라서 진실로 혁명적인 맑스주의 경제학이 진정 처음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호워드와 킹의 ?맑스 경제학의 역사?는 그 비맑스적 리카아도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비스탈린주의적 관점에서 맑스주의 경제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현재 남한 진보진영에서 긴급하게 요구되는 스탈린주의 청산작업에서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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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예컨대 이들이 이 책보다 앞서 공저로 출간한 교과서 형식의 맑스 경제학 해설서 Howard, M.C. and J.E.King (1975), (1985)를 보라.

 

2) Steedman(1977), Brody(1974).

 

3) 그러나 이같은 저자들의 평가와는 달리 토니 클리프 (Tony Cliff)는 동유럽 제국은 소련 제국주의에 의해 소련을 모델로 하여 소련에 종속된 국가자본주의로 시작되었으며, 중국, 쿠바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혁명이 국가자본주의 건설로 비껴나간 ‘일탈한 영구혁명’이기 때문에, 이들 사례는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을 반증한 사례가 아니라, 부정적 의미에서 입증한 사례라고 해석한다. Cliff(1990).

 

4) 제1권, p.256.

 

5) 그로스만의 이 저작의 영역판은 최근에 와서야 그것도 축약되어 출판되었다. Grossmann(1992).

 

6) 이 점에 대한 논의로는 정성진(1993)을 참조할 수 있다.

 

7) 예컨대 2차 대전 이후 ‘현존 사회주의’ 제국에서 이루어진 ‘맑스주의’ 경제학의 연구성과를 Day(1981)처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8) 이병천?윤소영(1988).

 

9) 예컨대 Dobb(1972)이 그것이다. 호워드와 킹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펠드만의 모델은 모리스 돕과 같은 소련 찬양자들에게 중요한 논거를 제공했다. 돕은 펠드만 모델을 스탈린주의 지령경제에 대한 자신의 이상화된 묘사와 결부시켜 사회주의 공업발전이 자본주의의 그것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 돕은 맑스주의를 비판이론으로 사용하는 데 명백하게 실패했다. 그리고 소련에 대한 그의 묘사는 소련 전체주의의 현실과 거의 부합되지 않는다. 돕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스탈린주의적 정통의 입장에서 별로 벗어 나지 않았다. …… 돕은 노동자통제라든지 정치적 민주주의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않았으며, 사회주의를 국유화와 증앙계획과 동일시했다.” (2권, pp.32, 36, 37.)

 

10) 이 점을 감안한 이행논쟁의 정리로는 Harman(1989) 참조.

 

11) 호워드와 킹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소련의 경제발전과 동유럽, 중국으로 지령경제가 확장된 것은 바란에 큰 충격을 주었다. … 바란의 책이 모리스 돕과 소련의 대변인들로부터 우호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바란 이론의 스탈린주의적 측면 때문이다. … 바란은 소련의 실천을 모방함으로써만 경제적 후진성을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해 전적으로 무비판적이었다. 바란의 저작에서 스탈린주의의 억압은 지나가다가 언급될 뿐이다. … 바란은 스탈린이 현실에서 가능했던 유일한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보존했다고 생각했다.” (제2권, pp.169, 174.)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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