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그의 사상/칼 마르크스

[스크랩]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1846)

ddolappa 2008. 5. 17. 05:41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1846)
 

마르크스, 엥겔스
Karl Heinrich Marx(1818-83)
Friedrich Engels(1820-95)
 

김범춘(한국방송통신대학 강사)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
 
  영국 런던의 하이게이트 묘지에 묻힌 마르크스는, 부릅뜬 눈에 조금은 겁먹은 듯하
기도 하고 순박해 보이기도 하는 흉상 아래 묘비에서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고 외치고 있다. 마르크스만큼 우리에게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온 인물도 없을 것
이다. 급진적 혁명가에서 짐승에 가까운 공산주의의 창시자, 급기야는 사라지는 몽상
가에 이르기까지 남들이 지어 준 악의에 찬 찬사를 마르크스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일
까?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 독일의 라인 지방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인리
히 마르크스는 유태인이었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변호사였고 휴머니즘과 계몽주의에 심
취한 당시 독일의 전형적인 지식인이었다. 어린 시절이야 평범한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잘 놀고 씩씩하게 자란 마르크스는 대다수 사람들이 그랬듯이 아버지의 뜻에 따
라 본 대학의 법학부에 진학했다. 그가 요즈음 대학생들처럼 점수에 맞춰서 과를 선택
하지는 않았겠지만 정작 법학보다는 철학과 역사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럴 만
도 한것이 당시에는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철학에 관심을 가졌고, 특히 많
은 철학자들이 헤겔 학파를 만들어서 연구할 만큼 헤겔의 사상이 절대적인 권위와 인
기를 누리고 있었다. 철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관심은 베를린 대학을 거쳐 예나 대학에
서 1841년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철학과 에피쿠루소의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는 것으로 이어졌다.


  마르크스는 교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당대의 유물론 철학자인 포이에르바흐와 마찬
가지로 프로이센 정부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 지배적이던 헤겔 철학은 현
실을 적극 긍정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헤겔에 따르면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
실적인 것은 이성적" 이기 때문에 당시 현실의 프로이센 국가는 이성이 실현해 낸 최
상의 국가로 둔갑했고 프로이센 정부는 헤겔을 국가 철학자로 극진히 대우했다. 그러
나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의 핵심을 모든 것이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한다는 변증법에
서 발견하고, 프로이센 국가를 역사의 종국적 상태가 아니라 단지 역사 발전과정의 한
국면으로만 보았다. 그의 이런 태도는 프로이센 정부의 눈에는 국가의 혁명적 변혁을
주장하는 반국가적 행위로 비쳤다.


  1842년 마르크스는 신흥 자본가들이 만든 (라인신문)의 편집장을 맡아 진보적인 논
설을 실었지만 이 일도 프로이센 정부의 발행금지 명령과 신흥 자본가들의 미온적인
태도로 끝나고 마르크스는 프랑스로 떠나게 되었다. 가난과 불행으로 가득 찬 한 철학
자의 망명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1843년 어린 시절 같은 반 친구의 누이인 예니 폰베스트팔렌과 결혼했
다. 급진 민주주의자였던 마르크스는 (라인신문)의 폐간과 망명 생활을 시작한 후, 더
정확하게는 (헤겔 법철학 비판)의 서문을 쓴 뒤 공산주의자로 변모하게 된다. 철학자
로서 마르크스의 작업은 사변적이고 종교적인 사상이나 개인주의 사상과 대결하는 것
으로 시작되었다. 1844년 늦여름부터 사귀기 시작한 평생 동지 엥겔스와 함께 (신성가
족)을 썼는데, 그 내용은 슈트라우스, 슈티르너 같은 청년 헤겔 학파의 견해를 비판하
고 헤겔의 관념론 철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유물론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1845년 마르
크스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거의 완전한 형태로 정식화한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 1
1)을 썼는데, 마지막 11번째 테제가 다음과 같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다양
하게 '해석'하기만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우리가 다루려는 (독일 이데올로기)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그 부제가 "
최근 독일 철학과 그 대표자 포이에르바흐, 브루노 바우어, 슈티르너에 대한 비판 및
독일 사회주의와 그 여러 예언자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역사적 유물론의 중요한 원리
와 범주를 최초로 밝힌 이 미완성의 저술은 1932년에야 유고로 출간되었다. 마르크스
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운동의 팸플릿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노동자
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고 공산주의의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세계의 노동
자들이여, 단결하라 !"는 표어는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다.


  1848년 3월 독일에서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자 마르크스는 귀국하여 1849년 5월까지
쾰른에서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의 기관지인 (신라인신문)을 발행했다. 그러나 독일의
노동자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마르크스는 파리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런던으로 가서
죽을때까지 가족과 함께 거기서 살았다. 1851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출간했고, 1865
년부터 필생의 대작인 (자본론)을 집필하기 시작해 1867년 제1권을 출판했으나 제2권
과 제3권은 그가 죽은 뒤 엥겔스에 의해 출판되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의 전모를
밝히는 경제학책이지만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사상이 집대성된 저술이다.


  마르크스는 망명 생활 중 대부분의 생계를 엥겔스에 의존했는데 그들이 서로 주고받
은 편지에는 마르크스의 극심한 궁핍이 잘 나타나 있다. 한 편지에서 마르크스는 그
동안 집세를 내지 못해 오히려 집주인이 쫓아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고, 전당포
에 저당잡힐 물건이 더 이상 없었으며 제대로 끼니를 이을 수도 없었고, 딸과 하인의
약값을 대지 못한다고 슬퍼했다. 이런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마르크스가 저술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해방이라는 신념과 평생을 함께 한 엥겔스, 딸들의 도움,
아내 예니의 뒷바라지, 그리고 충직한 여자 하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1881년 아내 예
니를 잃고 곧이어 1883년 1월에는 끔직이도 사랑하던 딸 예니가 갑작스럽게 죽자 마르
크스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결국 1883년 3월 1
4일 망명지 런던에서 노동 해방과 인간 해방의 한 심장이 멈추었다. 엥겔스는 추도사
에서 "반대자는 많았으나 개인적인 적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이름은 수백 년이 지
나도 살아 있을 것이며, 그의 저작도 그럴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추도
사를 어떤 의미로든 지금 현실로 경험하고 있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
 
  (독일 이데올로기)의 핵심 사상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마르크스는 이전 철학자
들이 즐겨 말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인간, 즉 계급의 현실생활 자체에서 역사의 근본 원리를 찾는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사상인 역사에 대한 유물론 또는 역사적 유물론이다.


  미완성의 제2권을 포함해서 모두 2권으로 된 (독일 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역사적 유
물론으로 본다면, 서론격이자 총괄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제1권 제1장 "포이에르
바흐 : 유물론적 시각과 관념론적 시각의 대립"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독일 이데올로기)의 제1장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뒷 부분은 유물론적 시각
을 가지고 여러 학설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는 '이념'을 가리키는
데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은 이데올로기를 연구하거나 전파
하는 사람을 '이데올로그'라 부르고 이 말을 '정치적 공상가'라는 경멸의 뜻으로 사용
했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독창적으로 정의했는데, 그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한
시대를 지배하는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에게 전통이나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이해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이해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제도나 법률, 철학과 종교, 예술 등
을 망라하는 의식 체계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에게는 자신의 현실과 이해
를 정확하게 반영한 진짜 의식이지만, 만일 피지배 계급이 똑같은 내용의 이데올로기
를 자신의 현실과 이해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런 이데올로기는 가짜 의식 또
는 '허위의식'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연예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을 대중의 우상
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대중에게 일정한 영향을 주리라는 사
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가급적 자기를 계속 우상으로 생각하게끔 여러 가지 일
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가장된 일을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하는 일이나 꾸며내는 일은 그에게는 현실적인 이해와 욕구를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 연예인의 의식은 허위의식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열성팬
이 그처럼 옷을 입고 말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대중의 우상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수록 그 열성팬은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잃고 자신의 현실조차 망각하게 될 뿐이
다. 그러나 연예인에게는 이런 열성팬들의 자기 상실은 그를 계속 우상으로 만들어 주
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 여기서 연예인이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말, 행동, 사고
등이 이념이나 이상의 형태로 정돈되어 열성팬에게 무조건 흘러들어간다면, 이것은 이
데올로기가 되고 만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비밀을 폭로하려면 연예인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연예인의 행동
은 현실을 참되게 반영하고 있는지, 팬들은 연예인이 건네 주는 의식이 사회와 역사
속에서 자기 위치를 깨닫게 하는 참된 의식인지를 물어야 한다. 내가 있는 현실 상황
을 설명하지 못하고 나를 주어진 어떤 상태에만 머무르게 하는 의식은 허위의식이며,
이런 의식이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는 까닭은 어떤 형태로든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 허위의식을 부수고 현실적인 의식, 제대로 된 생각으로 나
아가는 길은 무엇일까? 마르크스를 따라가 보자.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정식화된 인간, 사회, 역사에 대한 유물론은 우선 인간이 살
아가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제일 중요한 일로 먹고 마시고 거주하는 일을 내세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물로서 기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물질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욕구를 충족하면 언제나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낸다. 인간
은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 내지 않고서는 동물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또 인간은 역사
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 인간 자신을 재생산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멸
종하고 말 것이며 자기에게 내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일
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생산하면서 서로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언제나 인간은 특정한 협동 관계를 맺으면서 역사적으로 생
존해 왔다. 신분 질서 속에서 생활했던 봉건제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을 외치는 민주
주의 등은 인간이 맺는 특정한 사회 관계일 뿐이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
정한다는 말은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이 이런 사회 관계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좀더 구
체적으로 살펴보자.


  인류 역사에서 이데올로기나 의식 활동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인간은 협동 작업을
하면서 노동을 분업하는데, 처음에는 남성과 여성의 정적 분업에 불과하던 분업은 개
인의 자질이나 우연한 요소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분업
은 현실활동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의식 활동이나 이데올로기 활동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분업이 육체 노동과 정신 노동으로 분화되는 순간부터 인간의 의
식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순수 의식, 순수 도덕, 순수 철학을
할 수 있다. 즉 의식은 의식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갖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최초의 이데올로기 활동, 의식 활동의 담당자는 제사장이었다. 제사장은
단순히 현실적인 생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역할, 즉 인간을 초
월한 신적 존재나 자연과 대화하는 일을 한다. 이제 제사장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조
차 신의 예지라고 포장할 수 있고 보통사람들은 제사장의 역할에 아무런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들은 단순히 제사장과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관계한다고 믿기 때문이
다. 종교는 이렇게 발생하고 급기야 인간이 만들어 낸 관계가 인간을 떠나서 인간을
지배하는 관계가 된다. 이데올로기의 기본 형태는 종교로 드러나지만 그 완성된 모습
을 보여 주는 것은 철학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철학은 이데올로기이거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다. 마르크스 이전에 독일 철학은 당시의 이데올로기이고, 마르크스 철학
은 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자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이데올로기이다. 이 때
새롭다는 말은 소수가 아니라 다수, 지배 계급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요
궁극적으로 마르크스가 바라는 세상이 오면 모든 사람의 이데올로기가 된다는 뜻이다.
결국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특정한 의도를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만
을 갖지 않고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정신과 의식으로 표상한다는 긍정적인 의미도 지
닌다.


  한편 제사장의 경우를 보면 이데올로기의 발생이 분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데, 마
르크스는 분업을 폐지하는 것이 인간 해방을 위해 결정적인 계기라고 말하고,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분업 때문에 발생하는 인간의 소외 문제를 다룬다. 노동 분업은 단순
히 노동의 종류에 따른 분업만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분배의 불평등을 당연
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나아가서는 소유의 불평등을 낳는다. 노동이 분화되면 사
람들은 저마다 배타적인 노동영역을 갖게 되고 이 영역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기보다
는 사회에서 배분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 영역에 인간이 구속되는 모순이 나타낸
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사회 전체가 생산 전반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때문
에 한 가지 영역에만 얽매이지 않고 내가 마음먹은 대로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 아
침에는 사냥 낮에는 낚시 저녁에는 목축 밤에는 비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일은
꿈일까? 생산력이 발달하고 대부분의 생산 영역이 개인의 이해에 따라 조작되지 않는
다면, 즉 생산이 사회적으로 조절된다면, 꿈 같은 이 일이 실현될 수 있다고 마르크스
는 주장한다. 우리가 이런 일을 꿈으로 생각하고 현실은 결코 이런 이상 상태가 될 수
없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어떤 이상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 상태로 보아서는
안 되고 "오늘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적인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공산주의 사회는
마치 어린이에게 뒷날 어른 몸의 모습처럼 주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어른이
되기 위해서 현실적인 노력을 다하는 가운데 실현되는 현실적인 운동 과정이고 그 산
물인 것이다.
 


  현실적인 실천으로 묻고 대답하라
 
  역사를 사상이나 이념이 지배해 온 것으로 파악하는 역사관의 신비가 (독일 이데올
로기)를 통해 벗겨진다. 마르크스는 모든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은 그 시대를 지배하는
지배 계급의 사상이지만 그 사상이 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모든 계급의 사상이 되고 나
면 결과적으로는 사상의 뿌리인 사회적 생산 관계에서도 독립한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배 계급이 한 시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나 이념이 시
대와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것처럼 보이고, 이제 철학자들은 사상과 이념이 역사를 지
배해왔다는 결론으로 비약한다. 철학자들은 이것이 환상임을 깨닫지 못한 채 역사를
더욱 더 이념적인 형태로 서술하고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헤겔뿐 아니라, (독일 이
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비판하고 있는 그 시대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이 유치한 환
상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실이 아니라 이념에 발을 딛고 거꾸로 서
있었기 때문에 자연이든 역사든 거꾸로 서 있는 것이 아주 정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철학자들은 오직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절대 자아의 세계에만 매몰되어 있
었다.


  마르크스는 소매상인조차도 일상 생활에서 말로만 있는 것과 실제로 있는 것을 구분
할 줄 아는데 오직 철학자들만이 이 평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
어 사람들은 도덕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말할 때, 실제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도덕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현실적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역사에서 자유
가 승리했다고 말할 때에도 자유라는 이념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투쟁한 사람들이 승
리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도덕이 우리를 지배한다고 말한 때와 자유가 승리했다고 말
할 때, 우리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낮추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착취조차 사상이나 이념이 하는 일이고 우리는 그 일을 어쩔 수 없이 받
아들인 셈이다. 현실에 대한 이 모든 왜곡과 거꾸로 서기의 근본 이유는 그 동안 철학
이 인간과 세계의 해석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해석하기만 한
다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현실은 언제나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절대적인
것으로 변하고 만다. 철학을 바로 세우고 인간을 현실에 개입하도록 만드는 일은 마르
크스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와 함께 마르크스의 철학 작업은 끝났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
다. 물론 철학 작업이 끝났다는 말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철학 작업이 종말을 고했다는
뜻이지 마르크스가 철학을 폐기했다는 뜻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평가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첫째 마르크스가 인간과 사회를 더 이상 이론과 학문의 입장에서만
보지 않고 사회 경제 활동, 즉 인간이 활동하는 토대인 사회 경제 조건들에서부터 설
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고, 둘째 철학은 이제 해석하는 이론 작업이 아니라 변
혁하는 실천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독일 이데올로기)를 기점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은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비판에서 변혁하는 실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경제결정론'이라고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처럼 경제
활동에 초점을 맞추면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역사를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실 경
제학자나 사회학자의 작업은 구체적인 한 시대의 실증적인 자료를 수집함으로써 한정
된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의 한계는 자료의 분석에만 집착하는 연구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경제 활동을 강조한 것은, '분석'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
고 나서 나타나는 낱낱의 빛들을 다시 현실을 통해 모으는 '종합'의 산물이다. 이 때
현실을 통해 모은다는 말은 실천을 끌어들여야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스 사상은 사람
들이 가진 관념적이고 자기 기만적인 이데올로기를 면밀히 분석하여 그 근거를 밝힌
뒤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건설하는 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을 현실 변혁으로 이끌
어 나가는 실천 단계로 발전한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을 다른 역사철학이나 역
사이론과 구분 짓는 관건은 바로 이 실천에 있다. 이런 뜻에서 마르크스는 (포이에르
바흐에 관한 테제) 8번째 테제에서 "모든 사회적 삶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고 말하
고 곧이어 11번째 테제에서는 철학의 변혁적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를 통해 그 때까지 유물론 사상의 한계를 비
판했고 거기서 싹으로만 나타나 있던 새로운 유물론의 핵심 사상을 (독일 이데올로기)
에서 정리했다.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정리했다. (독일 이데올로기)는 사변과 관념으
로 이해해 온 인간, 사회, 역사를 인간의 물질적 활동과 경제 활동을 통해 유물론적으
로 이해하려는 새로운 출발이다. 여기에 나타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은 그뒤 (공
산당 선언)을 통해 사회의 물질적 생산을 직접 담당하는 노동자 계급을 역사의 주체로
확정하고 사회를 공산주의적으로 변혁하는 혁명의 무기가 된다. 그리고 결정적인 연구
성과들은 (자본론)에서 집약된다.
 


  읽을 거리


  마르크스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김대웅 옮김, 두레, 1989.
  H.겜코브, (두 사람), 김대웅 외 옮김, 죽산, 1990.
  (마르크스와 엥겔스 두 사람을 함께 다룬 저기)
  T.I.오이저만, (맑스주의 철학의 성립사), 윤지현 옮김, 아침, 1989.
  루이 뒤프레,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초), 홍윤기 옮김, 미래, 1986.
  N.로텐스트라이히, (청년 맑스의 철학), 정승현 옮김, 미래, 1985.
  (앞의 3권에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음)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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