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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87년 6월 10일을 기억하며 - 여기에 이런 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ddolappa 2008. 6. 10. 14:36

오늘은 2008년 6월 10일입니다. 

21년 전 그날로 돌아가보려합니다.

 

저는 1987년 6월 10일 서울, 명동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명동성당 옆에 위치한 계성여고 3학년이었습니다.

고 3이라 그래도 입시준비에 한창이었던 시기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던 형제들에게서 귀동냥으로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이 있었다는 걸 들었습니다.

정부가 엄청 나쁜 짓을 하고 있구나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게다가 학생에게 최루탄을 쏘아 숨지게 함으로 연일 학생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쳤습니다. 거리는 눈물, 콧물 다 빼는 최루탄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그날도 거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도 모른채..

학교에 있던 우리는 평소처럼 1,2 교시 후 도시락을 까먹고 떠들며, 수업을 받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학교 밖이 소란해지면서  교실에 있던 우리들도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그러자 선생님이 빨리 창문의 커튼을 치게 하고는 계속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점심시간을 맞이했고 옆반 친구들이  도시락을 모으러 들어왔습니다.

데모하던 언니, 오빠들이 명동성당으로 들어왔다며 먹을 것이 없을테니 도시락이라도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도시락이 걷히고 담을 사이에 두고 도시락은 명동성당의 언니, 오빠들에게 건네졌습니다.

 

그날 이후 계성여고는 명동성당으로 들어오는 정문, 4호선 명동역에서 들어오는 후문이 모두 전경들에게 가로막히게 되었습니다. 명동성당의 언니, 오빠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돈을 걷어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 휴지, 여성용품 등을 사서 보내기도 하고 명동성당 쪽으로 등교하던 아이들은 등교길에 음료수와 먹을 것을 주고 오기도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정부에서 명동성당의 수도를 끊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더 많은 아이들이 동참을 했습니다. 고3인 우리들은 공부도 안 되고 6월 20일 후에는 두어차례 조회와 함께 종례를 하여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습니다. 대학생만 데모를 하던 것이 6월 10일 이후 일반 시민, 넥타이부대로 불리는 회사원들이 대거참여하여 정부를 압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 진압작전을 펼쳤습니다. 토요일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퇴계로에서 남대문 시장으로 향하는 차도에 버스한대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보도에는 시민들과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서있는데 어디선가 저벅저벅하는 군화소리가 들렸습니다. 퇴계로부터 전경들이 방패를 앞세워 대열을 갖춰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점점 커지는 군화소리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전경들이 명동일대에 최루탄을 던져댔습니다. 제 눈 앞에서도 사과탄이라고 불리는 동그란 최루탄이 터져 한동안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친구에게 " 이게 뭐야.. 억울해! 억울해!'하며 울었던게 기억에 납니다.

 

6월 29일 정부의 항복소식에 언니, 오빠들은 명동성당을 떠났습니다. 떠나던 날, 누군가가 " 독재타도! 호헌철폐!" 라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우리도 창 밖에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6.10 항쟁은 그렇게 끝났지만 민주주의의 열기는 그대로 명동성당에 남게 되었습니다. 6.29 선언 이후 명동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해방구였습니다. 그때 처음 광주의 진압사진을 보았습니다. 폭압의 광주를 슬라이드로 보았습니다. 명동성당 내에서는 광주 사진전과 풍물패의 공연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제 고 3 시절은 공부보다 사회를 알아가는 시기였습니다.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힘들었습니다. 원래도 공부를 안 좋아했는데 자유라는 열매를 먹었으니...

 

21년 후 오늘 저는 이렇게 그날을 다시 떠올립니다. 제 기억이 약간의 조작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제가 여기에 글을 쓰는 이유는 저와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서입니다. 아마 광화문에는 못 나가도 어디선가 촛불을 들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자유를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절대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렇게 배우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살아가면서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촛불을 드는 여러분.. 모두 사랑합니다!!!!!

출처 : 무한도전
글쓴이 : rlgmld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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