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12회

ddolappa 2008. 7. 6. 16:32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5> 거침없는 도전, 끝없는 진화

 

 


무한도전 112회 080705 :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3탄 / 무한도전 MT 가다

 


무한도전의 수준이 대한민국 예능의 수준이다


뭐 이런 괴물같은 사람들이 다 있나! 무한도전이 여름방학 특집으로 기획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3부작 완결편을 보고난 후 무심결에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극중 촬영시간은 오후 1시 30분부터 밤 8시까지라지만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한들 채 24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장편 영화 한 편 분량의 방송분을 뽑아내다니! 게다가 스릴러, 액션, 느와르, 코미디 등 거의 모든 영화 장르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형식적, 서사적 일관성을 갖춘 작품을 만들어내다니!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김기덕 감독같은 사람이 배우 주진모와 함께 200여분 동안 촬영을 해서 '실제상황'이란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배우 주진모는 그 영화를 위해 2주간 연극 연습을 하듯 철저한 리허설을 마치고 단 하루 촬영에 단 한 번의 NG만 내고 모든 촬영을 마치기는 했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거의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유재석이나 그의 동료들이 그 전부터 리허설을 해왔을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출연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연기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즉흥 연기만으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사건들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던 것일까? 그들 모두가 예능의 고수라서 상황만 던져주면 척척 알아서들 행동했던 것일까? 하지만 초능력자나 신이 아니고서야 6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상황에서 서로 즉석에서 합을 맞추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3부작은 뛰어난 기획력과 연출력이 거둔 승리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시리즈는 동선에 따라 구분되는데, 여의도에서 출발해서 목욕탕을 거쳐 서울역에 도착하는 과정이 1부, 서울역에서 여의도 선착장에 도착하는 과정이 2부, 다시 선착장에서 잠실 야구장을 거쳐 여의도로 되돌아 오는 과정이 3부로 나뉜다.


이렇게 구분된 행동반경에 따라 출연자들이 수행해야 할 각각의 미션이 주어지게 된다. 먼저 1부에서는 진짜 돈가방을 찾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인물들은 따로 혹은 같이 돈가방을 손에 넣기 위해 행동하게 된다. 2부에서는 돈가방을 손에 넣은 박명수와 노홍철 간의 배신과 복수가 주된 사건으로 그려지고, 3부에서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노홍철이 최종 우승자가 되는 과정이 다뤄지고 있다.


출연진은 목적지와 미션이 주어지면 사전에 숙지한 연출의도에 맞게 자신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일련의 사건들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건들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의 전체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다양한 영화 장르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를 각각의 에피소드들에서 이끌어내는 뛰어난 연출 능력이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과 동일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연출된 화면을 통해 진짜 돈가방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에서 짜릿한 지적 쾌감을 느끼게 된다. 또 박명수와 노홍철이 돈가방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추격전은 느와르 영화 특유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제공하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카이저 흑채' 박명수가 반전을 일으키고, 이를 다시 노홍철이 뒤집으며 충격과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최종 우승자로 상금을 독차지 할 줄 알았던 노홍철 앞에 굿네이버스의 '사랑의 모금함'이 등장하며 모든 모험은 마무리된다.

 

(반전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다양한 표현방식들. 특히 Flash Back기법은 스릴러 영화에서 반전을 암시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여기에 종래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어려운 박진감 넘치는 편집 방식, 독특한 스타일의 화면 구성, 감각적인 화면 연출 등이 덧붙여져서 웰 메이드 영화를 보고 극장 밖으로 나왔을 때의 뿌듯함과 만족스러움을 TV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에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즐거운 건 눈만이 아니었다. Santa Esmeralda, Likin Park,  Monty Norman 등 삽입된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은 역동적인 화면들과 어우러져 포만감이 들 정도로 오감을 만족시켜주었다.


대체 이런 오락 프로그램을 전에 시청한 적이 있었던가. 상투적인 감동에 타협하지 않고,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지적이고 감각적 쾌감을 모두 만족시키는 이런 격조 높은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는 건 무한도전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축복이다.

 


진화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무딘 감식안을 지닌 사람들은 무한도전이 진부해졌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한다. 그러나 비교적 온전한 감각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온갖 역경 속에서도 무한도전이 마치 생명체처럼 성장과 진화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조금 더 예민한 관찰자는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이 도달한 진화의 단계가 예전부터 조금씩 축적된 실험과 도전의 산물임을 간파하게 된다. 그래서 '우린하나요'란 리뷰어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기고 있다.


"<로맨스> 특집 같은 경우는 멤버들의 캐릭터를 살리고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집이라기 보단 스태프들의 촬영 방식 변화, 편집 스타일 변화가 더 눈에 띄는 특집이였다. 반면 <이산> 특집은 멤버들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특집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특집들에는 '이야기'가 없다. 이 두 특집은 각각의 도전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멤버들 사이에 얽히고 �히는 스토리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야기'를 집어 넣은 특집이 <내셔널 트레져> 특집이였다. <내셔널 트레져> 특집에서는 그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화 <내셔널 트레져>를 패러디 했는데 여기서 '보물찾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와 그 형식 아래에서 발생하는 '이야기'가 프로그램을 흘러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렇게 무한도전은 점점 발전해나갔고, 앞서 말한 특집들이 모여 발전한 특집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는 특집이였다."1) " 무한도전의 매력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인 것처럼 발전해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른 프로그램들이 아무리 따라하려 해도 절대 따라할 수 없는 무한도전의 가장 큰 장점이다."2)


무한도전의 발전 과정에 대한 매우 정확한 관찰을 통해 이 리뷰어는 무한도전이 마치 생명을 지닌 것처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는 타당한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이러한 견해를 약간 보충해서 말해보면, 해외 리얼리티 쇼에 버금가는 무한도전의 뛰어난 연출과 촬영의 출발점은 김수로가 출연했던 '이중 몰래카메라'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수로, 유재석 팀, 박명수 팀으로 나뉜 카메라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마치 실시간 벌어지는 긴박한 사건처럼 묘사하며 최고도의 긴장감을 선사했는데, 그래서 강명석같은 평론가는 그 에피소드를 그 해 방영된 오락 프로그램 중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3)

 

(자막의 진화의 한 예 - '식목일 특사' 편에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할 때 정준하의 차례에서 노홍철이 '빵' 하고 소리를 치자 진짜로 정준하의 풍선이 터지고 만다. 이 때 "역시 외계인 맞구나"하는 자막이 등장한다. 이는 노홍철이 피습 사건 이후 한 매체가 그와의 인터뷰 제목을 '노랑머리 외계인 노홍철을 해부하다'라고 붙인데서 유래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홍철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UFO'라고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무한도전의 자막은 이러한 방식으로 현실과 연동하여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곤한다.)

 

 

카메라 연출의 진보라는 면에서 그 다음 주목해야 할 에피소드는 바로 '서울 구경 특집'이다. 멤버들이 각자의 집에서 출발하여 약속 장소인 남산까지 도착하는 과정은 보다 많은 수의 카메라가 동원되어 촬영되었지만, 목적지까지의 선착순 경쟁이 아니라 무한도전 멤버들과 시민들이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풍경들이 쇼 오락의 본질적 재미를 주었기 때문에 김수로의 몰래 카메라 때와는 달리 비교적 느슨한 연출이 허락되었다. 반면 '경주 보물찾기 특집'은 '서울 구경 특집'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미션을 통해 출연자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극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한 연출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축적된 다양한 경험들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에서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교차편집, 화면분할, 컷 백, 점프컷, 매치컷, 아이리스 인, 와이프 아웃, 플래쉬 백 등과 같은 다양한 영화적 연출기법을 활용해서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김태호 CP는 한 인터뷰에서 "가이 리치 영화 '록 스탁 엔 투 스모킹 배럴즈' 처럼 캐릭터들이 서로 배신과 반목을 반복하며 얽히고 설키는 관계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복잡하게 뒤엉킨 사건들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게 되는 이러한 이야기 구조는 따라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던 데에는 그 동안 무한도전이 축적해온 다양한 경험들 때문이다. 무한도전 제작진은 2년 넘게 거의 인원의 변화없이 몰래카메라, 드라마, 패션쇼, 다큐멘타리, 콘서트 등 다양한 촬영경험을 쌓아왔다. 이경규에 의해 시작된 몰래카메라가 M본부의 기술적 자산으로 고스란히 남아서 다른 방송제작에 보탬이 되고 있듯 예능 연출부에 불과한 무한도전 제작진이 그간 겪어온 수많은 시행착오는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에서 그 진가가 고스란히 발휘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유사한 듯 보이지만 매번 조금씩 변화를 주고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에 도전하는 무한도전은 마치 생명력이 강한 잡식성 생명체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로부터 자양분을 흡수해 우리가 가늠하기조차 힘든 미지의 영역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 무한도전이라는 이 괴상한 생물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할 지, 또 그 진화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 지를 추측하며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그래서 너무나 흥미롭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

 


패러디의 정신에서 태어난 무한도전


이미 앞선 리뷰를 통해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가 참조하고 있는 다양한 영화들을 언급한 바 있다.5) 그러나 그 때 미처 다루지 않은 영화, 드라마, 리얼리티쇼 등이 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 출연의 '갱스 오브 뉴욕', 캐빈 스페이시의 놀라운 반전이 돋보였던 '유주얼 서스펙트', 무한도전에서 즐겨 패러디되고 있는 영화 '반지의 제왕' 1편 '반지 원정대', 설경구, 이성재 주연의 '공공의 적', 리 메이져스 주연의 '600만불의 사나이', ABC의 연애 서바이벌쇼 '배첼러' 등이 그것이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과 '반지 원정대'의 패러디)

(70년대의 인기 미드 '육백만불의 사나이' 패러디와 영화 '공공의 적'에 대한 언급)

(영화 '007'의 수상 추격신의 패러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 대한 언급)

(영화 '공공의 적'의 결투 장면과 박명수와 노홍철의 대결 장면은 모두 한강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70년대의 유명 미국 드라마 '600만불의 사나이')

(한 명의 남자 주인공이 25명 여자들과의 로맨스를 경험하며 '결혼'에 골인하기까지의 로맨틱하고 진지한 만남을 다루고 있는 배첼러 시리즈 중 한 장면)

 

 

 

특히 '공공의 적'과 '유주얼 서스펙트'는 정형돈과 유재석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그들이 촬영 이전에 어떤 컨셉트로 사건이 전개될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박명수와 노홍철이 한강변에서 돈가방을 놓고 벌이는 결투는 설경구와 이성재의 싸움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고, 유재석은 '유주얼 서스펙트'의 카이저 소제(캐빈 스페이시 분)처럼 '카이저 흑채' 박명수가 반전을 일으킬 만한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멤버들 각자는 정해진 대본만 없었다 뿐이지 자신들이 그 장면에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며, 또 그것이 어떤 영화의 패러디인가를 대충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암시는 이미 기획 단계에서 패러디될 영화들이 정해져 있었고, 출연자들은 무한도전 내에서 자신의 캐릭터에 맞게 영화 속 배우들을 떠올리며 연기를 펼쳤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 무한도전 멤버들의 연기는 영화배우의 그것처럼 보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멤버들의 과잉된 액션은 평소 그들의 모습과 뒤섞여 그것이 단순한 장난인지, 아니면 진지한 연기인지, 그것도 아니면 극중 상황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평소의 성격이 반영된 결과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박명수와 열연을 펼친 노홍철이 그와 연기를 하다 보니 실제인지 방송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을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무한도전의 패러디는 유쾌한 놀이의 세계와 진지한 현실의 세계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 그래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코너인 '우리 결혼했어요'를 패러디해서 각 개인의 속마음을 공개하는 장면은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진심인 척 연기를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하는 행동처럼 보이기 위한 트릭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청자들 역시 후배 개그맨 김재우와 열애 중인 백보람에게 정준하가 관심이 있다고 말을 했을 때 그것이 그의 진심인지 아니면 '배첼러'를 연기하는 것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된다. 배우가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며 그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 실제의 자신과 허구의 인물을 혼동하게 되듯 시청자들은 명암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혼돈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다면 기존의 가치 질서를 중지시키는 이런 혼란은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유재석은 무한도전 같은 놀이의 컨셉트를 고집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왜 방송사를 옮겨다니며 저 컨셉트를 하느냐, 아이템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무한도전>은 ‘고집’이라기보다는 ‘자아 실현’이예요. 자라오면서 받았던 콤플렉스들, 설움들을 모아서 표출해보고 싶었어요. 설문조사도 키스를 부르는 입술이 누구인가, 이런 것도 뽑고."6)

 

 

 


유재석에게 '놀이'란 현실의 콤플렉스들을 분출시켜서 원만한 자아 실현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패러디라는 것도 권위적이고 강력한 원전을 비틀고 왜곡시켜서 그로부터 해방을 쟁취하는 동시에 움추려 있었던 자신를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놀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랑의 스튜디오',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리얼 로망스 연애편지', 'X-맨' 등 지난 10년간 범람했던 연애 버라이어티에 초대받지 못했던 연예인들이 모여 온갖 짝짓기 버라이어티를 패러디하고 있는 '무한도전 MT 가다'는 현실에서 받았던 불만과 설움을 분출해서 건강하고 성숙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기존 연애 버라이어티가 암묵적으로 당연시 해왔던 조건화되고 서열화된 연애담론을 전복시키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기존의 가치 질서를 상대화해서 성찰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러디의 정치적 급진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위의 자막들은 1차적으로 현 정부에 대한 부정적 진술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현재 한국경제가 어려워진 까닭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국정을 운영해왔던 10년간에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지난 민주화 정권 시기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뒤쳐진 지난 10년을 되돌려 놓기 위해 현 정권이 내놓은 일련의 정책들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20여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놓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7)


그런데 이 자막을 단순히 기존에 알고 있던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의 맥락에서 분리되어 연예 오락프로그램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언술을 담고 있는 구문을 왜곡시켜 인용하는 방식은 문장 원래의 의미를 긍정하고 있는 태도인가 아니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태도인가? 어떤 문장을 진지한 어조로 낭독하는 것과는 달리 장난스럽게 읽을 경우 원문장이 지닌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 인용문은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인용되고 있는 자막은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고, 동시에 그러한 비판에 대한 비판의 의미로서 읽을 수 있다.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에 사로잡혀 이러한 결정불가능성에 빠지는 대신에 차라리 패러디되고 있는 자막의 정치성을 인용 행위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현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구문을 그대로 반복하는 데서 정치성을 찾을 경우 현실의 정치적 담론은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 채 그것을 단순히 모방하는 수준에 그치게 되지만, 그 문장의 원래 의미를 지워버리고 지난 10년간 못난 외모 때문에 연애 버라이어티에 초대될 수 없었던 연예인들의 설움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채워넣는 과격한 행위에 주목할 경우, 기존의 정치적 언술 행위 자체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즉 정치적 담화를 정치적 언술로만 받아들이던 태도를 버리고 그것을 미학적으로, 예능 오락프로그램적으로, 단순한 말장난으로 독해할 경우 그것이 지닌 전혀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기도 한다. 새롭게 발견된 의미는 기존의 의미담론과 충돌을 일으켜 작은 균열을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바로 이 점에 패러디가 지닌 정치적 급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패러디가 항상 정치적 함의를 지닌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이미 희화화되어 있는 대상을 패러디할 경우 단순한 스타일의 모방 혹은 장식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패러디의 정신은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의 연출을 맡게 되었던 시기부터 무한도전을 지배해왔다. 따지고 보면 '퀴즈의 달인'도 기존 쇼 오락의 여러 아이템들을 재활용하거나 변형시킨 조립물이었는데, 가령 마봉춘 아나운서는 '상상플러스'의 노현정 아나운서를 차용한 것이고,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은 '공포의 쿵쿵따' 게임을 변형한 것이고, '봉춘리 MT 특집' 편에서는 아예 방송 3사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던 게임들을 빌려와서 직접 시연해보는 대범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아가 김태호 PD는 한 인터뷰에서 영향을 받거나 계승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느냐 하는 질문에 아직 신입 PD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냉소적으로 느껴지는 대답을 한 바 있다.


"표본을 삼고 있는 건 없지만, 기존에 있던 포맷을 쓰고 있다. 우리 캐릭터들은 만들어낸 캐릭터라기보다는 실제 그 인물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우리 안에서 진행하는 게임이나 코너들은 원래 있던 것들을 활용하는 것인데, 익숙한 요소들이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서 보이는 게 새로운 것 같다. 특별하게 염두에 두고 진행한 프로그램이나 코너들은 없다. 대신 그 속의 일반적인 요소들이 변주되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8)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의 지형도를 뒤바꿀 만큼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사람이라면 으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의 독창성과 창조성을 내세우기 마련인데 "원래 있던 것들을 활용"하거나 "일반적인 요소들이 변주"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대답은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제 갓 연출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라면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도 예의상 선배 PD들의 프로그램들을 언급하며 그들을 계승했다는 말을 한두 마디라도 하기 마련인데, "특별하게 염두에 두고 진행한 프로그램이나 코너들은 없다"는 그의 단언은 무례하거나 오만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나는 김태호 PD의 바로 이와 같은 태도에 무한도전이 추구하는 창조성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본다. 창조성을 생명으로 삼는 예술가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에 직면했을 때, 그가 창조적인 예술가로 남아 있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기존의 것들을 재조립해서 새롭게 보이는 결과물을 산출해내는 것 뿐이다. 즉 패러디만이 그의 유일한 창작수단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유난히 수많은 패러디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무한도전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역사적 인식을 아버지로 삼고 패러디의 정신을 어머니로 삼아서 태어난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자칫 허무주의적 뉘앙스를 풍기는 듯한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출연자들, 제작진들, 매니저와 코디들을 같은 평지 위에 발을 딛고 서게 해서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는 그의 공화주의적 정신과 만나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세력들에 대해 풍자와 패러디로 맞서는 정치적 결단을 낳고 있다. 따라서 패러디는 무한도전을 규정하고 있는 미학적 원리이자 그것의 정치적 급진성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by ddolappa

 

 

 

 


1. 리뷰어 '우린하나요'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27771&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2. 리뷰어 '우린하나요'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27772&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3. 강명석 The Show - 무한도전

http://bbs.freechal.com/ComService/Activity/BBS/CsBBSContent.asp?GrpId=908398&ObjSeq=3&PageNo=1&DocId=1545369


4. 무한도전 김태호PD “전진 투입 ‘돈가방’ 특집=놈놈놈+가이 리치 영화 모티브”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621083308569&cp=newsen


5.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4> 독창성의 패러디, 패러디의 독창성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27373&pageIndex=1&searchKey=daumname&searchValue=


6. 유재석과의 길고 깊은 인터뷰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13002001&article_id=38841


7. 경제면만 놓고 볼 때 소위 '7-4-7 공약´(연 7% 성장,10년내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강국)을 지키기 위해 억지스러운 환율 정책을 고집하다 집권한 지 불과 수개월 만에 10조원의 국고를 축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0조원 날린 ‘최- 강 라인’ 책임론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80704031817622&cp=seoul


김성식, `강만수 고환율 정책' 공개 비판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80625143126770&cp=yonhap


8. 남승용, 여운혁, 김태호 PD 인터뷰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article_id=43118&page=32&mm=006001000


9. 노랑머리 외계인 노홍철을 해부하다

http://media.daum.net/society/people/view.html?cateid=1011&newsid=20080326100319697&cp=yonhap

 

10. 무한도전 SBS 자막 패러디 열전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27107&pageIndex=1&searchKey=daumname&search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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