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주의를 파시즘과 연결시켜 비판한 사람은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유태계 독일 문예학자인데, 그의 비판은 이후에 미래주의에 대한 평가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벤야민에 따르면, 파시즘은 군중에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게 함으로써 정치를 예술의 차원으로 바꾼다. 이 말은 좀 어렵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대규모 스포츠경기를 생각해보자. 올림픽 같은 경기에서 군중들이 모여 있고, 거기에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와서 손을 흔든다. 그러자 군중들이 환호한다. 이런 장면들이 극장이나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고, 이걸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군중을 독재자의 지지자들로 생각한다. 벤야민은 이런 걸 정치의 심미화라고 불렀다.
여기에 더 숨겨진 이야기가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두고, 전쟁과 정치의 심미화를 미래파와 관련해서 한번 알아보자. 벤야민은 정치의 심미화가 절정에 달한 게 전쟁이라고 했다. 도대체 이게 뭔 말일까? 전쟁은 기존 체제를 위협하지 않고 기계와 기술을 동원할 수 있는 방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기술은 기본적으로 인습이나 전통과 대립하는 것이다. 미래파가 기계를 찬양하는 건 이 때문이다. 근대 이후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혁신적인 기술의 특성을 기법에 도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기술의 파괴력은 기득권자들에게 위협적이지만, 전쟁은 이런 기술의 파괴력을 체제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을 국가권력의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것인데, 이걸 가능하게 하려면, 뭔가 종교적인 가치가 있어야 한다. 벤야민 같은 이들이 종교적이라고 말하는 건, 말 그대로 우리가 아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같은 게 아니다. 절대적인 것을 상정하고, 모든 게 이걸 위해 봉사해야한다고 강요하는 암묵적 분위기를 말한다. 그래서 파시즘은 종교적인 제례 같은 것이고 파시즘 예술은 이걸 이미지로 확인시켜준다.
지노 세베리니의 '작전 중인 무장열차'는 전쟁을 예술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벤야민의 우려를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이 그려진 1915년은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이고, 이 그림에 소재를 제공한 건 벨기에군이다. 이 벨기에군은 지금 독일군을 향해 사격을 가하고 있다. 이 그림에 그려진 장면은 세베리니가 직접 체험한 게 아니고,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대표적인 미래파의 전쟁회화이다. 여기에서 특기할 건, 세베리니가 이 그림에서 구도를 하늘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보면, 달리는 고속열차 위 격투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걸 상상하면 되겠다. 이 그림도 마치 카메라가 위에서 달리는 열차 위를 잡아낸 것 같다.
세베리니의 화실이 기차역 위에 있어서 평소에 기차를 위에서 내려다보곤 했다지만, 반드시 이 때문에 이런 그림을 그린 건 아닐 것이다. 이건 미래파다운 구도라고 할 수 있다. 미래파는 비행기를 좋아해서, '항공기 그림'이라고 명명한 작품들을 즐겨 그렸다. 마치 기차가 처음 출현했을 때 그랬듯이, 비행기 또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줬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 세베리니는 기술과 기계, 그리고 전쟁을 찬양하는 미래파 특유의 이념을 드러내고 있다. 대량학살의 광경은 이런 산업사회의 기술진보가 가져온 가장 파괴적이고 비인간적인 사건이다. 도대체 미래파는 무슨 이유로 이런 끔찍한 광경에 환호했던 것일까? 이들에게 전쟁은 곧 기계의 전면화였다. 인간주의를 벗어난 객관의 추구가 현대예술의 화두였다면, 미래파는 아예 그 인간 자체를 섬멸해버리는 게 예술의 절정이라고 봤다.
물론 이런 측면에서만 '작전 중인 무장 열차'를 볼 필요는 없다. 이 그림은 현대예술에서 중요한 이론 하나를 내포하고 있다. 나중에 세베리니가 '이미지-관념'이라고 부르게 되는 이론이 여기에서 자라나고 있다. 하나의 이미지가 관념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주장은 이미지라는 게 관념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관념과 일대일로 조응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화비평가·광운대 교수
이택광의 그림으로 읽는 현대 <12> 전쟁도 예술처럼 인간 섬멸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래파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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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울숭덕초등학교19회
글쓴이 : 한영수 (6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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