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미학

'숭고함'(das Erhabene)과 (탈)현대의 미학적 전통

ddolappa 2008. 7. 23.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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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함'과 (탈)현대의 미학적 전통

 

 

'숭고미'(das Erhabene)는 리오타르에 의해 (탈)현대의 미학적 핵심 개념으로 부각되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된 개념이다. 그러나 숭고미는 이미 Loginus, Edmund Burke, Kant 등에 이르는 미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숭고 혹은 장엄함은 언제나 '아름다움'(das Schoene)과 대조를 형성하는 개념쌍으로 사용되었다. 아름다움이 조화, 일치 등에 근거하고 있다면, 숭고/장엄함은 이와 반대로 부조화, 불일치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왜 리오타르가 숭고/장엄함을 (탈)현대의 미학적 원리로 부각시키려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철학적으로 하버마스와는 달리 "동의" 혹은 "일치"가 아닌 "차이" 혹은 "불일치"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숭고미는 (탈)현대의 미학적 핵심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칸트 역시 탈현대적인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즉 칸트에게 아름다움과 장엄함 개념은 비록 그의 미학이론이라 할 수 있는 <판단력 비판>에서 다루어지고 있긴 하나, 그는 장엄함을 미적 범주가 아닌 윤리적 범주로 이해하고 있다.

 

 

숭고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순간 감상자는 그러한 감정을 감각과 개념의 불일치에서 오는 일종의 위기로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도덕적 이념을 요청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요청에서 생겨난 감정을 칸트는 숭고하다고 간주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해석틀을 전복시켜 리오타르는 칸트의 숭고 개념을 (탈)현대의 미적 현상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탈)현대의 미적 범주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것', 즉 숭고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화와 균형에 근거한 "아름다움"에 맞서서 "숭고함"을 근대적 미학의 핵심으로 파악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바움가르텐, 칸트, 셸링, 헤겔 등 독일 관념주의 철학에서 이해된 미학 개념에 반발하면서 새로운 근대적 미학적 개념을 창조해 내려는 현대의 모든 미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가령 프리드리히 슐레겔이나 로젠크란츠는 넓은 의미에서 '숭고미'에 포함되는 '추함'을 더 이상 도덕적/윤리적 지평에서 부정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순수하게 미학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인 해석의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탈)현대적 미학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제시한 "아폴로적인 것"/"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개념쌍 중에서 "디오니소스" 개념 역시 이러한 장엄함의 전통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 개념이다. 더 나아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현대의 미학적 아방가르드 전통에서 즐겨 사용되고 있는 개념들인 "우연성", "놀라움", "낯설게 하기" 등 역시 장엄함 개념과 친화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미학적 개념들은 근대를 더 이상 "아름다운 것" 혹은 "조화로운 것"으로 이해하는 대신 낯설고 추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적 현상들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서술은 근대라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발현된 것으로 읽을 수 있으며, 미학적으로는 자신의 시대를 더 이상 전통적인 미학적 범주들을 통해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낯설음", "추함", "숭고함"과 같은 술어들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미학적으로 긍정하려는 자의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장엄함" 혹은 "숭고함" 개념은 근대라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그럼에도 자신의 시대를 미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의지가 투영된 이중성을 띠고 있다.

 

 

벤야민의 경우 낭만주의의 비평 개념, 바로크 애도극의 기원, 보들레르 시의 해석 등에서 분명히 독일 관념론적 미학 전통에서 벗어나는 미학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바로크에 대한 그의 해석은 현대를 설명하는 그의 핵심적 분석틀(가령, 알레고리나 몽타쥬 개념 등)이 제시되어 있으며 이러한 개념들은 나중에 <파사젠 베르크> 작업에까지 이어져 분석적 도구들로 사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장엄함 개념은 매체이론에서도 사용되고 있는데, 가령 맥루한의 <미디어는 맛사지다>에서 발견되는 애드가 알런 포의 단편인 <소용돌이 속에서>에 대한 해석이나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 개념은 장엄함 개념이 어떻게 현재의 매체적 상황과 친화력을 형성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들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