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9>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재미의 기준

ddolappa 2008. 7. 27. 11:24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9>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재미의 기준

 

 


무한도전 115회 080726 : 태리비안의 해적

 


'캐리비안'과 '태리비안'은 대체 무슨 관계?


지난 주 '태리비안의 해적' 예고편을 본 시청자들은 기대에 잔뜩 부풀었을 것 같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를 재현한 웅장한 무대 세트와 등장 인물들을 그대로 따라한 화려한 의상과 퍼포먼스가 담긴 박진감 넘치는 영상은 영화 못지 않게 멋졌고, 게다가 '돈가방을 찾아라' 특집 이후로 무한도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다시 되살아난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고 나서 노홍철의 말투처럼 '아니, 이게 뭐야!' 하고 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의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을 듯싶다. 출연자들은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에 가죽으로 된 의상과 가발을 이내 집어던졌고, '서열 골든벨', '외나무 다리의 결투', '인간 통아저씨 게임' 등과 같은 게임들은 딱히 영화와 연관을 찾기도 망설여지는 것들이었다. 선정적인 제목에 이끌려 클릭했지만 그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부실한 기사 내용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분노 섞인 달콤함이랄까.


그래서 '테레비(TV) 안의 해적들'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기로 빼앗아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태리비안'이 영화로부터 전체적인 컨셉트만 빌려 왔을 뿐 실은 '태(리비)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기획물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약간은 안정감을 되찾게 된다. 공익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찌라시 언론의 낚시질도 대범하게 웃어넘기는 마당에 이런 속임수쯤이야 기분 좋게 눈감아줄 수 있지 않을까.

 


재치있는 게임들과 세심함이 돋보인 무대세트


무한도전은 기본적으로 '버라이어티쇼'다. 이는 무한도전 역시 기존 버라이어티 쇼의 문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한도전 출연자들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연애 버라이어티'의 장르도 들여와 무한도전식으로 변형시켜 즐기지 않았던가. '무한도전 MT 가다' 편에서 '연예계의 막장'이란 코드가 핵심이었다면, 이번 에피소드의 핵심 코드는 '서열'이다. 나이, 성별, 연예계 데뷔년도 등을 싸그리 무시하고 오직 게임을 벌여 차지하는 순위에 따라 '서열'을 정함으로써 여성과 연장자에 대한 배려를 그나마 지키고 있었던 기존 버라이어티의 문법을 재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들 역시 가만히 살펴보면 기존의 것들을 교묘히 차용한 것임을 눈치채게 된다. '서열 골든벨'은 많이 보아왔던 '그물망 빨리 오르기' 게임에 K본부의 <스타 골든벨>을 조합시켜 만든 것이다. '외나무 다리의 결투'는 이미 '머드 특집'에서 보았던 '외나무 다리 건너기' 게임에 '무한 미스코리아 특집'에서 보았던 '베개 싸움'을 결합한 것이다. 술자리에서 흔히 하곤 하는 '통아저씨' 게임을 사람이 직접 시연하는 '인간 통아저씨' 게임도 넓게 보아 '플라잉 체어맨'을 변형시킨 것이지만 이 역시 이미 존재했던 게임이다. '동해 가스전 특집' 편의 바스켓을 연상시키는 '사생결단 O,X 퀴즈'도 해적이 등장하는 영화 속 단골 소재를 게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생수통, 욕조, 스티로폼, 고무대야와 같은 소품을 이용해 해적선을 만들어 타고 보물상자를 찾는 게임도 미국의 인기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서바이버> 등을 통해 보편화된 소재를 변형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소개된 게임들이나 게임 장치들이 일단 어설퍼 보이지 않고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점에서 꽤나 오랫 동안 준비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준비성과 섬세한 연출은 해적선을 재현한 거대한 무대 세트, 거대 문어 튜브, 전신 해골이나 악어 인형 등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거대 문어 인형에 안치된 보물상자를 찾아가기 위해 갖가지 재활용품을 이용해 배를 만드는 미션은 거대 세트에서 게임을 해왔던 <출발 드림팀>이나 <바이킹>에서 느낄 수 없었던 날 것 그대로의 감각을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출연자들 각자의 창의성과 도전 정신이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이 날 벌인 게임의 꽃이라 할 수 있다.


해외 리얼리티 쇼의 생생한 현장감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은 상당 부분 정교한 세트와 소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태안의 아름다운 해안가에 마련된 게임 장치들과 거대 규모의 세트들은 무한도전의 야심이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러한 추측은 스펙타클한 영상을 선보이기 위해 다양한 시점의 카메라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다채로운 화면 영상들


'태리비안의 해적'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들이 제공되고 있다. '인간 통아저씨' 게임에서 출연자가 공중으로 날아올라 갔을 때의 놀라움과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헬멧 카메라가 사용되었다. 또한 공중에 리모콘으로 작동되는 풍선 카메라를 활용해서 찍은 영상은 태안 해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안방까지 전달하는 동시에 스펙타클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잠수부를 동원한 수중 카메라나 여러대의 보트를 이용해 촬영한 영상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수상에서 펼치는 치열한 경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노홍철과 유채영이 스티로폼을 이용해서 만든 뗏목인 '소녀 1호'를 걸터매고 달려가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배의 바닥을 훑는 영상 역시 흔히 연출 방식이긴 하지만 역동적인 화면을 구성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태리비안의 해적' 편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패러디하고 있지만 본질적 재미는 서바이벌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그 도전이 어설프게 끝이나긴 했지만 그 점은 다른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문제이며 그로 인해 무한도전의 시도가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왜 '태리비안의 해적'은 실망스러웠나


영화 속 캐릭터를 차용해서 예고편을 방송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방에서는 출연자들의 캐릭터 활용도가 낮았다는데서 가장 큰 실망감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를 통해 한껏 눈 높이가 높아진 상태에서 단순한 코스프레 쇼로 끝난 영화 패러디는 퇴보로까지 비춰지게 된다.


그런데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거나 그를 연기해서 만들어진 에피소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놈 놈 놈' 특집은 사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미리 설명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특집이었다. 영화나 소설의 전반부 대부분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을 설명하는데 할애된다. 인물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을 갖고 있어야 그가 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극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패러디한 에피소드는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기존 캐릭터를 그대로 활용해서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에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출연자들은 전혀 새로운 인물들을 연기할 필요없이 자신의 캐릭터에 충실하기만 하면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진 연출 라인을 따라 움직이며 사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태리비안의 해적' 편은 기존 캐릭터나 영화 속 인물에 대한 활용도가 지극히 낮았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출연자들이 게임에만 열중하다 보니 그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사건도 드물었고, 따라서 이야기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었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나열된 게임들을 쫓아가다 보니 금새 따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령 '경주 보물찾기 특집'의 경우 딱히 언급할 만한 스토리 라인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치밀한 연출 계획에 따라 출연자들의 동선을 정해놓고 게임을 통해 그들을 몰아세움으로써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태리비안의 해적'편에서는 왜 '서열 골든벨' 게임을 한 다음 '외나무 다리의 결투' 게임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굳이 어렵게 보물을 찾아야 하는 이유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 큰 문제는 무한도전 특유의 리듬감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은 각자 고유한 신체적 운동감을 지니고 있고, 그들의 움직임은 종종 화면 편집의 리듬감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놈 놈 놈' 특집에서 박명수와 노홍철이 빠른 속도감을 지니고 있다면, 유재석, 정형돈, 전진은 보통의 속도로 그들을 추격하고, 정준하는 거의 정지 상태에 있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교차편집 되면서 화면 영상에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하게 된다.


그러나 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땡볕에서 장시간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급격한 체력 저하'를 자랑하는 무한도전 멤버들 모두 자신의 고유한 리듬감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출연자들의 보호 차원에서,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보다 큰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서 이 점은 충분히 재고되어야 한다.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인 재미


이렇게 보았을 때 여름 방학 특집으로 마련된 이번 방송분의 재미가 전보다 떨어진 이유를 게스트로 출연한 이윤석이나 유채영에게서 찾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엔터테이너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여지가 적었다는 점에서 그들 역시 약간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일인데, 기획 의도나 연출 방향에서 무리가 생겨 발생한 일을 애꿎은 사람들 탓으로 돌리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무한도전'에는 게스트가 없는 방송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6월 21일 방송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한도전'에는 각종 게스트들이 다녀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전진이 출연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외에는 모두 흡족한 결과는커녕 '무한도전'의 색깔을 잃었다는 혹평을 받기까지 했다." ( ‘무한도전’ 잦은 게스트 출연, 약 아닌 독?, 뉴스엔 서보현 기자)


하하가 빠진 이후 그를 대신하기 위해 무한도전에는 조인성을 비롯하여 수많은 게스트들이 다녀갔다. 여섯 명의 출연자들이 3:3이나 2:2:2로 경쟁을 벌이는 구도를 자주 사용하다 보니 게스트 초빙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런데 이 기사는 어떤 사실을 근거로 작성된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하하의 부재가 '게스트가 없는 방송'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근본 원인인데 잦은 게스트 출연이 무한도전에 독이 되었다니? 그렇다면 하하를 대신해 출연한 게스트들은 모두 무한도전에 해를 입혔다는 말인가? 또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이후 게스트들이 출연한 방송은 '무한걸스' 6명이 함께 한 '무한도전 MT 가다' 편, '대체 에너지 2'편과 이번 방송 뿐인데 이 세 편이 "'무한도전'의 색깔을 잃었다는 혹평"을 받을 만큼 심각하게 재미가 없었던 것인가?


"사실 이날 보인 태리비안의 '해적왕'은 무모한 게임과 몸을 사리지 않는 몸 개그를 보여 충분히 재미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보이는 게임이야 워낙 기발해 각 멤버들의 예상외의 모습이 보이면서 사랑을 받았고 '무한도전'은 몸개그의 원조라고 할 만큼 원초적인 웃음에 강했다. 하지만 이날 '무한도전'은 탄력을 잃고 원성을 듣는 에피소드에 멈추고 말았다. 그야말로 MBC의 든든한 효자프로그램의 위치가 흔들리게 된 것이다."


기자는 무한도전의 게임이 "워낙 기발해" 큰 웃음을 주어왔지만 잦은 게스트 출연으로 인해 "MBC의 든든한 효자 프로그램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 문단 역시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이 흔히 해왔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왕게임' 같은 것들이 정말 그렇게 '기발'해서 웃음을 주었던 것인가, 아니면 출연자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재미있게 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것인가 묻고 싶다. 또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이후 단 세 편의 에피소드를 근거로 맨유에서 박지성의 입지 운운하는 기사들과 다를 바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리고 기사 말미에 불만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대단한 논거인 것처럼 적고 있는데, 기사 입력 시간이 20:34이 맞다면, 그 짧은 시간 동안 시청자 게시판을 전부 섭렵해서 타당한 여론 조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기자의 능력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일 아닌가.


개인에 따라 재미를 느끼는 편차는 존재하겠지만 한 회의 방송분에 대한 평가의 근거로 시청률과 일부 시청자 의견 밖에 내놓을 수 없는 기자들의 작태는 정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근거가 잘못되었으니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따라서 잦은 게스트 출연에서 그 원인을 찾는 어이없는 분석을 내놓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기자들에게 시청률과 시청자 의견말고 다른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은 노인에게서 틀니를 빼앗는 것처럼 잔인한 행동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데는 오락 프로그램을 평가할 타당한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시청자들 역시 오락 프로그램은 그냥 웃고 즐기면 되지 복잡하게 따져서 무엇하냐는 허무주의적 태도가 만연해 있는데다, 재미는 개인들마다 다른 것이니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극단적 상대주의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는 더욱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개개인의 취향이 상대적이기만 한 것이라면 기사나 평론 활동 자체가 무의미해져 버리게 되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씌여질 이유도 없고 기사를 읽고 화를 낼 이유도 없다. 더욱 역설적인 사실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라는 주장이 타당한 것이 되려면, 그 주장으로 인해 절대성 역시 인정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주장 역시 상대적인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찾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재미의 기준이 아닐까?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