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16회

ddolappa 2008. 8. 3. 15:21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0> Welcome to TEO' Lab.

 

 


무한도전 116회 080802 : 벌떡 일어나주길 바라/28년후

 


'3D 버라이어티'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로


무한도전은 시즌3로 넘어 오면서 독립 프로그램으로 홀로 서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 첫 회인 '미셸 위 특집' 편을 살펴보면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퀴즈의 달인' 시기의 유산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고 있었기 때문에 시즌 3만의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바닷가에서 체력훈련을 하거나 초코파이 하나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은 '무모한 도전' 시기부터 보아오던 것이고, 미셸 위가 출연자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서열을 정하는 장면은 '퀴즈의 달인' 시기에 하던 '앙케트 설문 결과 발표' 순서와 배경음악조차 똑같다.


하지만 동시에 시즌3의 성격을 규정짓는 작은 변화들이 이미 첫 회부터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출연자들은 어처구니 없는 훈련과정에서 발생하는 몸개그나 해프닝을 통해 웃기는 대신 각자의 '캐릭터'를 통해 웃기기 시작했다. 무한도전 내에서 자칭 '꽃미남'인 하하를 게스트로 초대된 SS501의 멤버들 사이에 세워놓고 '참 못났다!'라는 자막으로 한껏 조롱하거나 '치킨CEO' 박명수가 날아가는 갈매기를 보며 튀길 생각부터 하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장면들은 시즌3가 지향하는 웃음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무한도전을 서술하는 구호가 바뀌었다는 사실에 있다. 그 이전까지 유재석은 '3D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라고 외치며 무한도전이 예능계의 막장임을 또한 자신들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즌3로 넘어오며 유재석은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차승원이 출연했던 '연탄 나르기' 편에서 보여지듯 전에는 '더럽고, 위험하고, 까다로운' 일을 하며 웃음을 유발하려 했다면, 이제부터는 그런 고생을 포함한 '리얼'에 보다 초점을 맞추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무한도전 시즌3에서 주장하는 '리얼'은 '3D'에서 파생된 것이긴 하나 그것보다 더 확장된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우선 '우주특집'편에서 첫 등장한 '무한뉴스'는 사실보다는 웃음에 촛점을 맞춘 뉴스의 형태로 멤버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한뉴스'는 말을 통해 전달되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영상을 통한 전달방식에 비해 그 파괴력은 약했다. 그래서 '발리 특집' 편에서 그 유명한 '- 바라' 시리즈가 시작된다. "무한도전의 고질병 지각!"을 고치기 위해 멤버들이 촬영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장난 삼아 체크해본 '일찍 와주길 바라' 편은 이후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라', '일찍 일어나길 바라', '놀래 주길 바라' 등을 낳으며 본촬영 이전 멤버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무한도전 내의 고유한 코너인 '-바라' 시리즈는 아무런 목적없이 갑작스럽게 준비된 코너가 아니라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서 무한도전 시즌3의 성격을 각인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은 연출된 것, 즉 허구라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가짜'로 받아들여진다면, 멤버들의 실제 모습은 오직 카메라가 꺼졌을 때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되기 위해서는 카메라 너머에 존재하는 멤버들의 실제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는 모순적 작업을 수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몰래 카메라', '진심 카메라', '리얼 카메라' 등과 같은 다양한 연출기법을 통해 카메라의 시선 너머에 존재하는 '리얼'한 모습을 담아내게 된다. 아예 여러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서 어떤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는 지 모르게 하는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제작진이 영상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오락 프로그램이 '쇼'로서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카메라에 잡히는 일은 금기시되었다. 왜냐하면 화면 밖에 존재하는 그들의 출현은 그것이 만들어진 허구라는 사실을 폭로해서 '쇼'의 환영적 성격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출연진과 제작진을 구분하는 연출선의 존재는 곧 허구와 실재, 환상과 현실을 나누는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이러한 경계를 과감하게 해체하는 순간 무한도전은 전통적 방식의 '버라이어티 쇼'가 아니라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될 수 있었다. 연출자가 출연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수시로 포착되고, 코디네이터, 매니저, 방송 작가들이 숨겨져 있던 모습을 드러낸 까닭 역시 프로그램 전체의 컨셉트 변화와 맞물린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뜬금없이 무한도전의 역사를 장황하게 읖는 이유는 한동안 잊혀졌던 '-바라' 시리즈와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구호가 갑작스럽게도 동시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반고정 게스트라 할 수 있는 전진의 집을 급습해 '벌떡 일어나주길 바라'를 한 것과 2달 여간 심혈을 기울인 스펙터클 좀비 버라이어티인 '28년 후'가 '28분 후'로 바뀐 사연은 전혀 무관한 일일까? 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무한도전은 왜 전진의 집을 방문해야 했던 것일까?


하하의 군입대 이후 무한도전에는 여러 일일 게스트들이 출연해서 하하의 빈 자리를 메꾸어왔다. 그런데 전진은 상대적으로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 왔고, 무한도전이 야심차게 준비해왔던 '베이징 올림픽 특집에도 동행하기로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반고정 게스트내지는 '제7의 멤버'로 반낙점된 상태로 봐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벌떡 일어나주길 바라' 편은 중국으로 떠나기 전 무한도전이 전진에게 열어준 입단식 내지는 신고식으로 볼 수 있다.1) 박명수가 전진의 집에서 '신고식'이라고 언급한 사실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무한도전 팀이 갑작스레 전진의 집을 방문한 까닭은 2주 분량을 예상했던 '좀비 특집'이 1회 분량조차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한 다급한 결정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소 어이없는 정황 증거를 나열해 놓고 '짜고치는 고스톱 아니냐'고 비판하는 기사가 나온 것도 이런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워낙 촉박한 상황이다 보니 무한도전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리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전진과 짜고 그의 집을 급습하는 장면을 찍었다는 것이다.2)


그런데 전진의 집을 방문한 사건에 대한 두 주장은 서로 엇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벌떡 일어나길 바라'를 전진의 신고식으로 볼 경우 언젠가는 한 번 치뤄야했을 일이므로 방송 분량을 채우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볼 수만은 없게 된다. 물론 그 역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위적 연출인지 아니면 리얼한 상황인지에 대한 판단 역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분위기"라는 것도 기자의 주관적 추측에 불과하며, "전진은 누가 봐도 한 눈에 방송용 메이크업과 머리손질을 마친 상태"라는 주장도 전진이 방송을 마치고 귀가한 것인지 아닌지, 또 운동을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기자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그리고 "전진의 얼굴에는 땀 한 방울은 커녕 오히려 뽀송뽀송하게 비쳐졌다"는 것도 전진이 문을 열어주기 전 땀을 닦은 것인지 아닌지, 운동을 이제 막 시작하려고 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닌지를 정확히 분간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다.


방송이 채 끝나기도 전인 오후 7시 40분에 기사를 전송한 '아시아 경제신문'의 기사는 그 짧은 시간에 게시판에 올라온 시청자들 의견을 읽고 전진의 집 방문이 '불쾌한 도전'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아시아 경제신문'의 반복되는 이러한 작태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횡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회수만 높이면 된다는 무사안일에 빠진 이런 무책임하고 야비한 기사야말로 '불쾌한 기사'이며, 한 마디로 '알렉스 화분 심는 소리'에 불과하다. 좀비가 '살아있는 시체'라면, 기사답지 않은 기사, 기자답지 않은 기자야말로 좀비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인간과 좀비는 어차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관계이니 '무클릭, 무댓글, 무관심'의 '3無 운동'으로 대응하길 강력하게 희망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하자면, 위 두 가지 관점들은 왜 한동안 잊혀졌던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구호가 다시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은 실패로 끝난 '좀비특집'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해주지 못한다. 즉 '벌떡 일어나주길 바라'와 '28년 후'는 서로 무관한 별개의 에피소드로 다루어져서는 안되며,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표제로 묶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방송이 시작하기 전 한 낯선 스태프가 화면 정면을 막고 서 있고, 그 뒤로 대화를 나누는 출연자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정준하가 대본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방송이 시작되자 전진의 매니저 이창선씨가 소개되어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혹시 대본의 존재로 인해 무한도전의 사실성을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대본을 확인한 정준하는 촬영이 시작된지 한참이 지나서야 연출 의도를 이해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무한도전의 '리얼'한 성격이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만들어지는 쇼'라는 사실을 노출시키는데 있다고 했을 때,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서 무한도전의 존재 가치가 위태롭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처음부터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서의 성격을 시청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는 의도는 '좀비 특집'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만약 무한도전이 '버라이어티 쇼'였다면, '출발! 비디오 여행'의 형식을 차용해서 방영된 재촬영분을 방송에 내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전이 항상 성공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처절한 실패의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무한도전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된다.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에서처럼 잘 짜여진 장르 영화의 재미를 이번에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분노 바이러스'를 살포했을 그런 놀라운 결정으로 인해 무한도전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재확인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이 실패를 핑계 삼기 위한 단순한 설정인지 아닌지는 '28년 후'를 분석해봄으로써 가늠해볼 수 있다.

 


저주 받은 걸작 "28 years later"


우리나라의 공포영화 전통에서 좀비는 낯선 존재이다. 원혼에 사로잡힌 귀신이 등장하는 '월하의 공동묘지'나 '전설의 고향'류나 일본의 '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호러영화는 많이 제작되었지만 흡혈귀, 미이라, 좀비 등과 같은 괴물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김수로가 출연했던 영화 '흡혈 형사 나도열'이나 박찬욱 감독이 제작중인 영화 '박쥐' 정도가 흡혈귀를 다루고 있다. '살아있는 시체'인 좀비가 출연하는 우리 영화는 이미 1980년도에 강범구 감독이 연출한 '괴시'가 있기는 하나 이탈리아 영화 '좀비3'의 완벽한 표절작으로 판명되어 비디오조차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2006년에 제작된 HD 공포 연작 시리즈 '어느날 갑자기'의 네 번째 편인 '죽음의 숲'에서 좀비가 등장하고 있긴 하나 시나리오, 연기, 연출 모두 낙제점에 가까운 영화였다.


죽어 있되 살아 움직이는 시체, 감정과 사고는 모두 정지한 채 인간의 육체를 먹고자 하는 원초적 욕망만 가득한 존재인 좀비는 아시아 문화권 내에서는 중국의 강시 정도만 유사 계열로 묶일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의 민속학에도 시체를 살아나게 하고, 사람들을 감염시키며, 목을 잘라야만 죽일 수 있는, 좀비와 비슷한 '야차'라는 식인귀신이 등장하고 있고, 이 야차가 등장하는 영화를 류승완 감독이 촬영 중이라 하니, 우리나라에서 좀비영화가 제작되지 않았던 이유가 반드시 문화적 차이에만 기인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호러영화와 같은 B급 영화를 천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우리의 관객들과 영화감독들에게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좀비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조지 로메로 감독이 1968년도에 제작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까닭은 특수효과가 뛰어나거나 전체적인 이야기의 짜임새가 탁월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좀비영화 장르에 대한 그의 심도깊은 탐구정신과 예리한 통찰이 저급한 B급 영화로 남아 있었던 호러장르를 문화적 가치가 있는 문제적 장르로 탈바꿈시켜놓았다. 그는 삼부작인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8), '시체들의 날'(1965)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에 사로잡힌 인간 군상의 모습, 미국의 베트남 전쟁, 환경파괴와 핵무기 등에 대한 묵시론적 비판를 수행하기도 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 공포영화는 저렴한 제작비용으로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장르로 인식되고 있어 장르 자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듀나 같은 영화평론가는 "죽어라 사다코만 찍으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제작 환경 자체를 호러물 소재로 삼는다면 요새 나오는 영화들보다 더 무서울 지경이다"라며 빈곤한 아이디어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한국의 공포영화계를 시니컬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3)


그런데 뜻밖에도 오락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 좀비가 등장하는 특집을 기획한다고 했으니 우선 그 시도만으로도 반가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박경추 아나운서가 '출발! 비디오 여행'을 패러디해서 전해주는 원래 기획의 치밀한 짜임새이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한 실패에 분노하고, 그 책임을 연출자나 일부 출연자에게 묻기 이전에 재촬영된 장면들만 꼼꼼히 살펴보아도 "좀비 영화를 총망라"했고, "제작진의 예상 시나리오는 훨씬 더 탄탄했다"는 자막이 결코 빈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아나운서가 좀비들에게 습격을 당하는 티저예고편은 스페인 영화 'REC'(2007)와 조지 로메로 감독의 '다이어리 오브 더 데드'(2007)에 대한 패러디이다. '클로버필드'(2007)가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촬영된 재난영화라면, 'REC'는 그 기법을 활용하여 찍은 좀비영화다. '아메리칸 좀비'(2007) 역시 페이크 다큐 기법으로 촬영된 좀비영화인데, '좀비 특집' 예고편 역시 최근의 이러한 유행을 모방하고 있다.


그리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백신을 찾아 UN 질병관리본부에 전달하는 과정은 좀비가 등장하는 '바이오하자드'류의 RPG 게임을 차용한 것이다. 각 단계별로 해결해야 할 미션이 주어지기도 하고, 좀비들을 억제시킬 아이템인 정준하의 노래CD를 UN군으로부터 받기도 하는 것은 서바이벌 게임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분노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이 좀비로 변했다는 설정, 빠른 속도로 달리는 좀비의 특성, 그리고 유재석이 김보미 박사의 사무실에서 묶인 여자 좀비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장면은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후'(2002)에서 따온 것이다. 흔히 좀비를 구부정한 몸짓으로 떼를 지어 느리게 걷는 것으로 생각해왔지만, '28일후'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새벽의 저주'(2004) 이후 빠르게 달리는 좀비들이 등장해서 더욱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좀비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이탈리아 영화 '데몬스'(1985, 1986) 시리즈를 통해 좀비는 느리게 걷는다는 편견을 역전시키기도 했지만, 젊은 세대들의 좀비영화는 '빠르게 달리는 좀비'와 '탈정치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


첫 장면에서 좀비떼에 쫓겨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탈출 방법을 논의하는 모습이나 좀비들이 출구를 부수고 난입하는 장면들은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에서 주인공인 숀(사이먼 페그) 패거리가 자주 다니던 술집 안으로 몰려 들어간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정준하가 좀비로 변해서 다른 동료들의 명령을 순순히 따르는 모습 역시 그 영화에 등장하는 뚱뚱한 백수 친구 에드(닉 프로스트)를 패러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좀비들이 정준하의 노래를 듣고 괴로워하며 쓰러지는 모습은 팀 버튼의 '화성침공'(1996)에서 치매를 앓던 할머니가 매일 듣던 올드 팝송을 화성인들이 듣고 두뇌가 터져 죽는 장면에 대한 패러디로 볼 수 있다.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 '나는 전설이다'(2007)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는데, 가령 좀비가 빛을 무서워 한다는 설정이나 라디오를 통해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정이 그것이다. 또 기차로 김보미 박사의 실험실까지 이동하는 장면은 '레지던트 이블1'(2002)에 대한 패러디이고, 환풍기를 통해 이동하는 장면 역시 수많은 좀비영화들에 흔히 등장하는 장면들 중 하나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멤버들이 백신을 갖고 짚차를 타고 떠나는 장면에서 운전수가 좀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새벽의 저주'(2004)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좀비가 없는 섬을 향해 떠나지만 그 섬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좀비들로부터 습격 당해 죽게 된다는 반전을 차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치밀한 구성보다 더욱 놀라웠던 건 좀비에 정치적 은유를 담아내려 했던 시도이다. 무한도전의 '28 years later'는 1980년 여름 원인 모를 분노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도시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고, 그 후 28년이 지난 2008년 현재 무한도전 멤버들이 백신을 찾아 인류를 구원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백신 개발자인 김보민 박사는 1980년 7월 19일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고 죽은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녀가 멤버들에게 미션을 전할 때 "(2달전) 한국에서 시작된 분노 바이러스가 이제 전 지구, 모든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2달전"은 김 박사의 목소리로 전달될 뿐 자막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보민 박사가 죽은 날짜가 1980년 7월 19일이라면, 분노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시작된 날자는 2달 전인 5월 19일이 된다. 즉 1980년 5월 19일은 광주에서 참혹한 학살이 자행된 다음날이고, 따라서 죽었으되 편안히 눕지 못하고 산송장으로 이승을 떠도는 좀비는 무고한 시민들을 상징하게 된다. 그래서 '좀비 특집'에서 UN군이 몰려오는 좀비떼에게 총질을 가하는 모습이나 무한도전 멤버들이 광주 시청처럼 생긴 건물 안으로 들어간 장면은 그 날의 역사적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장면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인식은 2008년도 현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인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최근에 우리의 정치적 담론에서도 좀비 은유가 사용되기도 했는데, 바로 '촛불 좀비'라는 명칭이 그것이다. 일부 보수언론과 단체에서 퍼뜨린 이 용어는 인터넷 등을 통해 광우병에 대한 그릇된 정보에 감염된 시민들이 마치 좀비처럼 무비판적으로 촛불 시위에 나서는 모습을 빗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MT 가다' 편은 '잃어버린 10년을 되돌리려다 20년을 되돌린 듯하다'는 자막이 등장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무한도전의 좀비 은유는 우리 사회의 보수적 세력이 유포한 좀비의 의미론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진짜 좀비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를 뛰쳐나갔던 시민들이 아니라 그들을 '촛불 좀비'라 비아냥댔던 그들이 된다.


"한여름이라 그런가? 납량특집이 유행이다. YTN 낙하산 인사, KBS 사장 퇴진 압력, MBC에 대한 공격. 촛불민심을 만들어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한 온갖 규제들. 노골적으로 정권의 충견으로 나선 경찰과 검찰은 촛불을 물어뜯는 데에 여념이 없다. 임기 초에 지지율 20% 초반이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정권. 무덤에 누워 반성해야 할 이 좀비가 다수의석이라는 형식적 권력에 기대어 도처에서 산 사람들을 공격하며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4)


위 글에서 사용되고 있는 좀비의 메타포 역시 무한도전에서의 그것과 유사한 의미망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진짜 공포스러운 건 어쩌면 사람인 척 하는 좀비들, 분노 바이러스를 여전히 유포시키고 있으면서도 소통부재인 그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현실인지 모른다. 그러한 현실에서는 "2달전"이란 말이 문자화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허공을 떠돌 수 밖에 없고, 무한도전의 '28년후'가 설령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쳤다 한들 현실 자체가 바뀌지 않은 한 그것은 여전히 미완성인 상태로, 좀비처럼 불구의 몸인 상태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실패로 끝난 TEO의 위대한 실험


그러니까 '좀비 특집'은 "멤버들이 공포감에 덜덜 떠는 모습에 기대어 재미를 유발"하는 기획물이 아니었다.5) 기획의도와 장르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줄 뿐 아니라 통속적인 오락 프로그램의 기준에서 사고를 하는 기자의 견해와는 달리, 무한도전은 시체를 파먹거나 피를 뚝뚝 흘리는 고어장면을 삽입하지 않고도 좀비영화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매우 현명한 방법을 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완성도보다는 실험성에 치중한 프로젝트"로 이번 방송을 이해하고, "기존 납량 특집에서 탈피한 새로운 소재와 구성 및 장르를 접목한 '무한도전'의 도전 정신 자체에는 박수를 쳐줘도 마땅한 일"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기사는 납득할 만하다.6)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왜 이번 시도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버려진 창고에서 탈출하여 김보미 박사의 사무실에서 백신을 찾은 후 UN 질병관리본부로 이동하는 동선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편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행동반경이 훨씬 넓었던 '놈 놈 놈'편은 성공을 하고, 보다 제한된 코스를 기획했던 '좀비 특집'은 왜 실패로 끝난 것일까?


첫째, 무한도전이 표방하는 '무한 이기주의'의 세계관은 느와르 액션 장르에는 적합하지만 좀비영화 장르에는 부적합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음모, 배신, 모략이 꽃피는 느와르의 세계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마음껏 활개를 치며 뛰어다닐 수 있지만, 좀비가 등장하는 세계에서는 협동, 타협, 희생과 같은 정신적 태도를 요구하기 때문에 무한도전과는 정반대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좀비에 대한 사전 지식과 이해가 부족했던 멤버들로서는 노홍철처럼 사다리를 흔드는 장난을 치거나 좀비가 현관을 부수고 밀려 들어오는데도 박명수처럼 사다리를 밀어버려 다른 멤버들이 올라올 수 없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좀비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바이벌 게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소 대로 행동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박명수와 노홍철은 "자기 끼리 돕는 신구 데블스"를 형성하기도 하고, 서로 작전상 동맹을 맺기도 하게 된다.


둘째, 처음의 원인에서 이미 언급된 이유이기도 한데, 멤버들이 좀비가 어떤 존재인지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했던데 실패의 원인이 있다. 전진이 환풍기를 뚫고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 좀비들이 그에게 달려들게 된다. 보통 영화에서는 좀비에 물리는 즉시 좀비로 변하거나 죽게 되지만 전진은 쉽게 죽지 않고 박명수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다. 또 멤버들은 좀비의 최대 약점이 빛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손전등을 무기로 사용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이유에서 내릴 수 있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기획 자체를 멤버들에게 지나치게 함구하고 있었던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좀비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만 있었더라도 생존을 위해 서로 협동하면서도 무한 이기주의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셋째, 완전 무결한 것처럼 보이는 시스템도 작은 실수로 인해 쉽게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협소한 공간이라 너무 자신만만했던 태도에 문제점이 있다. 정형돈은 좀비들이 아래에서 몰려오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침착하게 박명수가 쓰러뜨린 사다리를 다시 세워 놓고 올라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제작진이 좀비들이 현관문을 뚫고 침입하는 시점을 조금만 늦췄더라면, 멤버들이 출구가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다리를 어떤 방법으로든 세우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정준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출구를 발견한 것은 그가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들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한 제작진을 바보로 만들 만큼 영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정보는 부족하고 모든 것들은 허락된 상태에서 박명수, 정준하, 노홍철이 하지 말아야 행동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넷째, 근사한 장면 연출을 위해 투명한 유리병에 형광물질을 넣어둔 시도는 좋았으나 잘 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려 못한 것 역시 제작진의 불찰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겁 많기로 소문난 여섯 남자들을 한두 해 봐온 것도 아닌데, 그들이 용기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나는 '좀비 특집'을 전혀 비난하고 싶지도 않고, 실패했다고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미 재촬영을 통해 전달된 원래의 기획과 그것의 반전 버전인 첫 촬영의 실패담을 함께 보았으니 두 편의 좀비영화를 동시에 본 셈이라 하겠다. 방대한 분량의 영화 두 편을 28분으로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감독이 세상에 대체 몇이나 될까. 그리고 단 한 번의 실험으로 세상에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발명가가 대체 몇이나 될까. 실패한 적이 없는 자 TEO PD에게 돌을 던질 지어다! 그것이 아니라면, 즐거움이 넘치는 그의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광경을 부디 올바르게 보고 즐기지어다!

 

 


by ddolappa

 

 

 

1. 전진, '무한도전' 아이템 주인공 됐다...' 제7의 멤버' 자리잡나 < 조이뉴스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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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06 한국 호러 영화 무엇이 문제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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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중권 칼럼] '미친 교육'에 대한 '촛불'의 심판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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