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과학철학

[스크랩] (12) 기술과 예술 : 보들레르는 모르고 백남준은 알았다 - 이지훈

ddolappa 2008. 8. 20. 02:56

필름사진을 기술이라 거부한 보들레르
필름사진을 예술이라 고집한 현대작가
기술이 갱신될 때 과거의 것은 예술로 재인식
기술-예술, 갈등하면서 보충하고 인간세상 이루니
공존의 상상력 ‘디지털 아트’ 위대함이여!
한겨레
» 전위예술가 백남준은 현대 기술매체와 예술이 화해하는 마당을 마련해주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돼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다다익선>. 1988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1003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다슬기 모양으로 18.5m 높이까지 쌓아올렸다.
기술 속 사상/⑫ 기술과 예술
 

서양 역사에서 인간에게 ‘창조성’을 인정해준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창조성은 오랫동안 신의 권능으로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바뀌려면 적어도 르네상스를 거쳐야 했다. 그제야 비록 신의 수준은 아니지만 인간도 나름대로 창조력을 가진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발상이 처음 나타난 영역은 예술이다. 사람들은 미켈란젤로를 ‘신과 같은 예술가’라고 불렀으며, 화가 알베르티는 예술가를 가리켜 ‘제2의 신’이라고 불렀다.

 

르네상스 이전에 그나마 ‘생산성’을 인정받던 것은 ‘시’였다. 조각이나 회화는 자연을 ‘모방’하는 것으로 괄시받은 셈이다. 예술가들은 여기서 이중적인 전략을 마련했다. 미술도 시처럼 교양과 창의성을 요구한다고 내세우는 한편 장인들의 기술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때 기술은 ‘기능’으로 폄하되었다. 이를테면 평생 목공일을 익힌 목수는 어김없이 통달한 규칙에 따라 집을 짓지만, 예술가는 집 짓는 규칙 자체를 바꾸며 새 양식을 만들어낸다는 식이었다. 그리하여 근대예술은 기술과의 차별성 위에서 출발한다. 예술은 끊임없는 창조활동인 반면, 기술은 단순히 전통을 답습하는 실용 기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창조/모방, 혁신/답습, 정신/물질의 이분법이 고스란히 예술/기술의 관계에 적용되었다.

 

여기에 걸맞은 상징이 있는데, 바로 ‘프로메테우스’이다. 특히 ‘제우스’에 맞서는 측면을 부각한 것이다. 영국의 문인 ‘샤프츠베리’를 비롯하여 괴테, 셸리에서 절정을 이룬 프로메테우스 상징은 기존 양식을 무너뜨리는 예술가의 독창성을 대표했다.

 

그런데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지 않았던가? 더욱이 불은 인류 최초의 기술혁명과 연관되지 않는가? 근대 예술가들은 이 점에 주목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기술이 발달할수록 ‘기술혐오’를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에 일어난 현상이다. 알다시피 한자 ‘예’(藝)와 라틴어 아르스(ars)는 예술과 기술을 포괄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번역된 격언이 히포크라테스 학파에서 나왔으며, 이때 예술이 기술(의술)이라는 점도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테크닉의 어원 테크네 ‘예술+기술’

» 보들레르.

사실 ‘예’는 식물을 ‘심다’ ‘기르다’라는 동사이다. 그러니 기술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작물을 키우려면 응당 ‘방법’이 필요할 테니까. 고대 서양에도 비슷한 낱말이 있는데, 콜레레(colere)이다. ‘밭을 갈다’는 이 동사에서 종교적 경배의 ‘컬트’가 나왔고, 인격의 교화를 뜻하는 ‘문화’가 나왔다. 이로부터 우리는 문화예술과 기술이 더불어 ‘사람 농사’라는 것, 즉 인간성 도야를 목표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정신/물질의 분리를 찾기는 어렵다.

 

‘테크닉’의 어원이 되는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e)도 마찬가지이다. 후자는 이론적인 관조와는 달리 ‘실천’이다. 말하자면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깨달아 익히는 것이다. 그러니 예술과 상통한다. 예술작품의 ‘미묘한 무엇’은 이론만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니까. 경험적이고 신체적이니까. 그래서 시를 짓는 방법도 테크네로 분류되었다. 테크네는 예술과 기술을 포괄하는 실천적 인식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과연 기술혐오에 빠진 근대예술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은 이미 예술적 창조가 모든 기술적 요소를 넘어선 순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믿어버렸으니 말이다. 급기야 19세기 낭만주의에서 과학기술은 우주를 폐허로 만드는 괴물로 인식되었고,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 벨머에 이르기까지 자동기계와 인형은 예술에서 악마적인 존재로 묘사되었다.

 

그런데 자동기계의 ‘자동성, 반복성’은 원래 인간 속에 있던 요소이기도 하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독립시켜 놓았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기계는 인간에게 타자가 아니다. 사람을 닮았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기계의 인간적인 면모를 밝힌다 해도, 예술가들은 여전히 말하리라. 바로 그 때문에 기술을 경멸한다고. 기계가 인간의 저급한 특성을 모방한다면, 그런 기계를 받들어 모시는 가운데 창의성 같은 고급 능력은 마비되고 말 것이라고. 그래서 시인 보들레르는 예술사진의 가능성을 부정하며, 사진이 ‘과학의 시녀’라는 본분으로 돌아가기를 요구했다.

 

이것은 기술혐오의 심층적인 형태이다. 기술을 단순한 도구로만 보지 않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좌우하는 매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필름 카메라만을 고집하는 작가들도 비슷하다. 문제는 해상도가 아니라 작가의식이다. 쉽게 수정 편집할 수 있는 ‘디카’를 쓸 때 그들은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안이해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여기서 기술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구성하는 매체로 이해되고 있다.

 

비교해보라. 필름사진의 예술성을 부정한 보들레르와 필름사진의 예술성을 고집하는 현대작가. 두 입장은 대조적이지만, 저마다 새로운 매체와 대결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필름 카메라를 고집하는 작가는 사진 매체를 받아들여 예술로 만든 반면, 디지털 매체를 거부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는 분명하다. 예술과 기술의 대결은 지속적이라는 것. 또한 둘은 그 대결 속에서 서로를 보충해왔다는 것.

 

‘순수’ 예술가의 믿음과는 달리 기술은 종종 예술을 보충한다. 심지어 표현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인식 차원에서 말이다. 가령 원근법과 ‘카메라 옵스큐라’의 발명이 예술에 미친 영향이 그렇지 않은가? 문화이론가 맥루언은 말했다. “기계는 자연을 예술형식으로 전환시켰다.” 일리가 있는 얘기이다. 기차여행을 생각해보라. 빠르게 흘러가는 바깥 풍경은 객실 안의 시공간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한 가까운 풍경은 잡히지 않고 먼 풍경만이 시선에 들어온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멀리 놓인 자연이 영화 장면처럼 되어버렸다. 관객이 풍경에 속하지 않은 채 마치 현실을 ‘극장 화면’처럼 바라보게 되었다. 오늘날 인류를 사로잡은 ‘파노라마’적 지각은 기차여행의 대중화와 더불어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기술이란 그 자체로 인간과 세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기술은 단순히 자연의 모방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구의 제작에서 그치지도 않는다. 인간이 세계에 존재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매체로서 기술은 나름대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러니 예술을 보충해줄 수 있다.

 

인터넷이 종이 매체 예술화 촉발

 

아니, 그 이상인 경우도 있다. 한 기술체계가 곧장 예술형식으로 바뀌기도 한다. 인쇄매체가 나오자 ‘육필’은 ‘서예’로 자리 잡았고, 인터넷 ‘웹진’이 나오자 종이신문과 책 인쇄는 예술 차원으로 진입했다. 한 기술체계가 새 체계와 만날 때 우리는 종종 과거의 것을 미적 수준에서 재인식하는 것이다. 기술은 이렇게 예술을 촉발할 수도 있다.

 

근대예술이 기능이 아니라면, 근대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중세 때처럼 일생을 바쳐야 습득되는 기능은 근대기술에서 별 의미가 없다. 한편 예술이 교양과 이론을 요구한다면 기술도 그렇다. 과학이론과 연결되지 않는 기술은 거의 없으니까. 또한 예술이 창조적이라면 기술도 창조적이다. 다만 양상이 다를 뿐. 기술이 능동적이고 조작적인 양상으로 세계에 참여한다면, 예술은 보다 정서적이고 주관적인 양상으로 세계에 개입한다.

 

» 이지훈 한국 해양대 강사
우리는 물론 기술 발달에 거의 무관한 예술작품들을 알고 있으며, 그 작품들의 위대한 가치를 의심하지 않는다. 나아가 새로운 기술의 남용이 예술적 진정성의 통속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술과 예술은 인간이 세계 속에 살아가는 두 가지 훌륭한 양상이다. 하나라도 빠지면 사람은 제대로 살 수가 없다. 그만큼 우리 문명 속에는 둘이 공존할 마당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둘은 여전히 맞서고 갈등하며, 서로를 보충해줄 것이다. 이러한 공존의 상상력이 없을 때 우리는 현대 기술매체를 예술화했던 백남준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Freiheit in mir
글쓴이 : 김문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