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영화 속 건축물은 왜 모두 폐허같을까 ‘테크네’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였던 ‘짓는 고통’ 로마제국·중세·르네상스까지 시대정신 상징 근대 이래 ‘설계-건설’ 나뉘더니 컴퓨터가 재통합 환경위기 주범 멍에까지 썼으니 고민스럽다 | |
기술 속 사상/⑬ 기술과 건축
미래세계를 그리고 있는 영화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은 폐허가 된 도시의 음산함과 무너질 것 같은 건축물들이다.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시리즈, 터미네이터, 토탈리콜 등 예외없다. 이처럼 감독들은 왜 미래세계가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번쩍번쩍하는 건축물들로 채워진 도시가 아닌, 늘 비인지 안개인지 앞을 구분할 수 없는 어둠과 서치라이트만 번쩍이는 폐허를 생각하는가?
에너지 고갈 이후 암울한 세상
현대기술문명의 큰 문제점은 물질문명의 발달속도를 인간의 도덕적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데 있다. 현대과학기술은 인간이 사회와 자신의 이성의 통제하에 둘 수 없을 만큼 일방향적이다. 기술이 과거와 달리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매개가 되는 도구적 성격을 지나 인간의 삶 전체를 파악하고 관리하는 방식이 되고, 인간이 전적으로 의지하는 절대적이고도 종교적인 차원에까지 이른 것을 현대과학문명의 본질이라고 하이데거는 갈파하였다. 이같은 맥락에서 모든 존재자들은 ‘계산 가능하고 기술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에너지’로, 존재자 전체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저장소로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지금처럼 원하는 에너지를 제공하도록 자연이건 사람이건 닦달해 낸 뒤 고갈되면 영화 속과 같은 암울한 환경으로 갈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지녀야 하는가?
현대기술과 상반된 의미로 그리스의 테크네(τεχνη)를 들 수 있다. 그 어원을 보면 ‘나무로 만드는 일’, ‘목수일’ 등 무엇인가 고안하고 만들어내는 솜씨 혹은 모든 가능한 기술, 방법 등을 의미한다. 철학적으로 테크네란 사물이 만들어지는 데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나 정확한 지식(episteme, theoria, logos)을 바탕으로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능력(ars, praxis)뿐만 아니라 지식까지 포함한다. 테크네 중에서 가장 높은 위계에 속했던 건축(archi-tec-ture)은 처음부터 실무(praxis)와 이론(theoria)을 같이 병행하여야 한다는 속성을 지니고 출발한다. 생활세계의 기반을 만들어온 ‘짓는 전통’(building tradition)은 단순히 물리적 실체를 구성하고 공간을 만들어내는 행위 이상으로 각 시대 각 지역의 우주관과 종교관, 자연관, 그 사회의 구조적 특성, 기술수준까지 반영된 총체적 결과물이었으며 이는 존재자가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중세의 번성기를 주도해나간 강력한 동인은 대성당 건립이었다. 성당 건설자들은 11세기 12세기의 유럽 첫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기술, 농업혁명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았다. 각 도시의 성당건설 현장에서 마력을 이용한 수차, 거중기 등의 새로운 기구를 개발하고 만들어 시험하면서 제련기술을 통한 철기구 등을 개선을 시켜나가는 작업은 장인 계층과 건설기술자들을 통해 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고딕시기의 대성당들은 중세의 지적 르네상스, 스콜라티시즘, 사회적 변동, 기술적 수준이 어우러진 시대정신의 총체적 작품이었다.
대성당 건립 유럽 번성의 동력
르네상스기부터 근대 이전까지도 건축은 도시계획, 축성, 치수, 건설, 건축뿐만 아니라 기계장치의 고안부터 여러 가지 군사용 무기를 개발하는 일을 포괄하는 엔지니어링의 최상위 영역에 속하던 지식체계였다. 이 과정에서 건축의 영역에 참여해서 건축가로 역사적 작품을 남긴 많은 예술가, 과학자, 특히 수학자가 많았으며 이들의 작업은 이론과 현장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18세기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토목기술자들이 전문화하고, 건축을 학교에서 예술과 과학으로 구분해 가르치고 건축가와 엔지니어가 분리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건축의 경계가 점차 구분된다. 건축적 근대성은 근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건축생산의 합리화와 산업화를 통해 확보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건축은 설계와 짓는 행위가 분리되고 설계는 기술적 프로세스와 기능적 프로그램으로 치환된다. ‘건축은 살기 위한 기계’임을 주장한 르꼬르뷔제의 선언처럼 건축은 존재자의 존재나 생활세계의 기반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기계처럼 오브제화된다. 그 결과 건축가는 건설자본에 종속되면서 건축이 최종 결과물이 구축되는 현장에서 소외되며 건축은 사회 내 존재양식 자체가 변한다.
자동차 조립하듯 조각 맞춰 완성
정밀기계, 자동차와 항공기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절차다. 현장에서는 이렇게 가공된 부재들이 순서에 따라 조립되기만 하면 된다.
컴퓨터공학과 비선형이론, 위상기하, 다양한 입체에 관한 고차원 구조해석, 이에 따른 참단의 부품생산, 이러한 모든 실험을 가능케 하는 건축주의 자본과 의지가 빌바오 뮤지엄과 같은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사진 2) 수직수평이 완전히 해체된 조각과 같은 건축물이 컴퓨터를 통해 형태 생성부터 시공직전 단계의 부품화까지 완결되면서 전통적 건축생산 방식을 다시 변모시켰다. 이 작업의 함의를 ‘근대건축으로 단절된 건축의 고유한 전통, 설계와 건설의 통합과정으로서의 건축으로 회복될 가능성’을 보는 건축가도 있다.
그러나 건축가의 자발적 의지로 프로세스에 투입한 기술이 건축가의 고유한 영역인 공간생성자로서의 역할조차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뉴턴과학의 완성 이후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우주시계의 감시자로 전락한 것처럼 무에서 유의 공간을 창조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온 건축가들이 컴퓨터 프로그램과 기계작동을 위한 관리자가 되면서 밥줄을 놓게 만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이길 바란다.
이처럼 21세기의 건축은 첨단기술이기에는 너무 전통적이고 예술이기에는 너무 공공적이고 과학이기에는 너무 다의적이고 철학이기에도 너무 현실적이다. 이것이 비트루비우스 이래 건축이 지녀온 업보이자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지구환경위기의 주범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메달까지 목에 걸게 되었다. 과연 건축은 미래사회를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영화의 암울한 미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류전희/경기대 교수·건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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