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과학철학

[스크랩] (15) 시계의 역사 : 상대성 이론, 시계에서 태어났다 - 홍성욱

ddolappa 2008. 8. 20. 02:58

16세기 갈릴레오 ‘진자의 등시성 원리’ 발견
100년 뒤 하위헌스 첫 자동 진자시계 발명
산업혁명 이래 ‘시간은 금이자 돈’
두 도시 시간 맞추기 고민하던 특허국 청년
‘시간 상대성’ 알아냈으니 그가 바로 아인슈타인
한겨레
» 아인슈타인이 특허국 직원으로 일했던 스위스 베른의 시계탑. 아인슈타인은 여러 시계의 시간을 맞추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특수상대성이론의 결정적 단초를 찾아냈다.
기술 속 사상/⑮ 시계의 역사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표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각도와 시간. 각도의 표준은 360도에서 얻어지고, 시간의 표준은 천체의 운행에서 1년과 하루를 정함으로써 얻어진다.

 

예전에는 천체의 운행이 자고로 하늘의 뜻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에, 시간을 정하고 기록하는 일이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였다. 세종시대에 장영실과 함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만든 김빈은 “제왕의 정사에 때를 바로잡고 날을 바르게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면서, “천 년을 헤아리는 것도 한 시각도 틀리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며 모든 치적의 빛남도 촌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고 적고 있다. 하늘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던 역대 왕들이 시간에 정성을 다했던 이유기 이것 때문이었다.

 

기원전 4천년 바빌로니아 해시계

 

시계의 역사는 기원전 4천년 바빌로니아 해시계에서 시작되었다. 그 다음 물시계가 개발되었고, 모래시계도 만들어졌다. 중세 시대에는 초를 태워서 시간을 알리는 초시계도 생겼다. 기계 시계가 만들어진 것은 대략 13세기에 이르러서였다. 기계시계의 개발에는 탈진기(脫進機 escapement)라고 기어의 회전을 일정하게 하는 장치가 필수적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시계들은 정확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 시간이 틀리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세종대왕이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개발한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당시에 쓰던 시각장치가 정확하지 못해서 시간을 알리는 관리들이 중벌을 받는 경우를 염려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릴 수 있는 시계”를 만든 것이 자격루였다. 자격루는 시간을 알리는 나무인형이 물시계를 지키는 관리의 노고를 덜어주는 자동 기계였다.

 

16세기 말에 갈릴레오가 진자의 등시성 원리를 발견하면서 시계의 자동화의 역사에 결정적 계기가 생겼다. 추의 길이가 같으면 진폭에 관계없이 추가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일정하다는 것이 갈릴레오의 원리였다. 그렇지만 이 원리를 추시계에 적용하는 데에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보통 추의 경우 등시성이 정확하게 만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네델란드의 물리학자 호이겐스에 의해서 17세기 후반에 해결되며, 호이겐스는 정확한 진자시계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유럽 전역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18세기 후반, 영국의 기계공 해리슨은 80일 동안에 5초가 틀리는 정밀 시계 크로노미터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번역 출간된 데이바 소벨의 <경도>에 소개되어 잘 알려진 에피소드로, 해리슨의 시계는 오랫동안 항해하는 배에서 경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쓰였다. 19세기 말엽에는 수정시계의 원리가 개발되었고, 20세기 초엽에는 손목시계가 등장했다. 20세기 중엽에는 원자시계가 만들어져서 시간의 표준으로 설정되었으며, 1970년대에 액정시계가 개발되어 디지털시계의 시대를 열었다.

 

시계가 확산되면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이 시간에 맞추어 생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시계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던 산업혁명 이전의 방적공들은 “당신은 월요일을 일요일의 형제로 알고 있어요/화요일도 마찬가지고요… /금요일에 실을 잣기에는 너무 늦어요/토요일, 다시 절반만 일하지요”라는 노래를 부를 정도로 시간에 대해 무심했다. 농촌에서는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리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공장의 기계가 시계에 맞추어 돌아가고,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시간에 맞추어지면서 노동은 시간 단위로 쪼개졌다. 산업혁명 당시 한 공장은 오전 5시에서 오후 8시, 또는 오전 7시에서 오후 10시까지를 노동시간으로 공표하면서, 이중 1시간 30분을 아침과 점심식사 등에 할당했다. 또 다른 제철소는 감시원에게 노동자들이 시계를 바꿀 수 없도록 잠가놓으라고 명령했다. 이 제철소에서는 매일 아침 5시에 감독관이 근무 시작을 알리는 벨을, 8시에는 아침 식사 벨, 한 시간 반 뒤에는 다시 근무 벨, 12시에는 점심식사 벨, 1시에는 작업재개 벨을 울리며, 8시에 작업 종료 벨을 울리고 모든 문을 잠갔다.

 

출근시간 찍던 펀치카드사 IBM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계시계 중 하나인 영국의 솔스베리 시계 (1386).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고.

작업장에서 노동자들과 관리자들은 시간을 놓고 싸우기 시작했다. 감독관은 시계의 분침에 추를 달아서 30분의 휴식시간을 27분으로 줄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다시 9시간으로 줄이기 위해서 투쟁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금이자 돈이 되었으며, 상품이 되었다. 1분1초는 이제 아껴 써야 할 것이 되었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죄악시되었다. 소중한 시간이 휴식에 낭비되어서는 안되었기 때문에 잠을 많이 자는 것도 창피한 것이 되었으며, 옷도 재빨리 입어야 했다.

 

20세기 초엽, 미국의 ‘과학적 경영’의 아버지 프레드릭 테일러는 시간을 통제함으로써 작업장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에 대한 그의 집착은 극단적이었다. “서류를 찾지 않고 서류함을 열고 닫는데 0.04초, 책상 가운데 서랍을 여는 데 0.026초, 가운데 서랍을 닫는 데 0.027초, 옆 서랍을 닫는 데 0.015초, 의자에서 일어나는 데 0.033초, 의자에 앉는 데 0.033초, 회전의자에서 한 바퀴 도는 데 0.009초, 옆에 있는 책상이나 파일함까지 의자에서 앉아 움직이는 데 0.050초.” 당시 작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출근 시간을 펀치 카드로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이 펀치카드기를 판매하던 회사는 나중에 IBM이라는 공룡기업으로 성장했다.

 

작업장의 시간이 과학적으로 통제되고 상품화되던 20세기 초엽에도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여러 도시들의 시간을 어떻게 하나로 맞추는가라는 문제였다. 마을마다 쓰는 시간이 다르고, 또 한 마을에서도 현지 시간과 표준 시간이 차이가 나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많이 벌어졌다. 투표 시간의 마감을 놓고 분쟁이 생기기도 했으며, 법정 개시 시간의 기준이 달라서 판사의 판결이 무효가 되기도 했다. 발명가들은 여러 마을들의 시간을 표준시에 맞추는 발명품들을 만들어 특허를 신청했다. 이런 특허 신청은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엽의 유럽에서 급증했다.

 

‘느리게 살기’ 책 단숨에 읽는 삶

 

1905년, 스위스 베른이라는 작은 도시의 특허국에서 시간을 맞추는 기계의 특허를 심의하던 청년이 있었다. 이 특허들은 보통 전신을 이용해서 도시 사이의 시간을 맞추는 방법을 취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두 도시의 시간을 하나로 맞추는 방법에 대한 특허를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빛을 발사하고 돌아오는 빛의 시간을 측정함으로써 두 도시의 시간을 맞추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 도시 중 하나가 움직이는 경우를 상상했다. ‘이 경우 어떻게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운동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던 청년은 결국 “시간은 시계에 의해서 측정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 생각은 시간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시간의 상대성을 제창한 것으로,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핵심이었다. 특허국의 청년이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음은 물론이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의 첫 머리에는 시계를 가지고 시간을 맞추는 방법이 등장하는데, 이렇게 4차원 시공간의 신비를 규명한 실마리는 열차 역들 간의 시간이 맞지 않아 짜증을 내던 당시의 일상에서 출발했다.

 

» 홍성욱/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

1870년대 뉴욕 버팔로 역에는 시계가 세 개가 있었다. 하나는 버팔로 시의 시계였고, 다른 두개는 철도회사가 자기들의 열차시간을 맞추는 시계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간의 불일치에 대해서 이 정도의 관용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본 영화 <철도원>에 보면 전혀 다른 정서가 지배적이다. 시간 엄수는 철도원의 종교라고 할 정도로 거스릴 수 없는 것이며, 여기서 철도원 오토는 딸아이의 죽음마저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처럼 수신호를 보낸다.

 

시계의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보다 더 정확하게 측정하게 한 역사이다.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함으로써 우리는 시간을 더 세밀하게 통제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을 통제하면서 우리는 시간에 더 얽매이고 시간에 의해 더 지배당하게 되었다. ‘느리게 살기’가 유행이라지만, 느리게 살자고 주장하는 책을 단숨에 읽어야 하는 것이 “시간이 돈”인 세상의 지금 우리의 삶이다.


출처 : Freiheit in mir
글쓴이 : 김문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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