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와이드 웹’ 정보망 10년만에 지구촌 중독 개발 의도 상관없이 무한 진화의 ‘럭비공’으로 전세계 서버 관리하는 장치는 미국 손안에 ‘쌍방향 교류도 민주 발전’ 착각일 수도 세살부터 배우는 클릭클릭, 우려스럽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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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속 사상/(19) 인터넷
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어린이들은 평균 만 3세에 인터넷을 시작해 5세 이상의 어린이 중 절반 이상이 많게는 일주일에 10시간 이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며, 중고교생의 반 이상이 인터넷 중독 증상을 보인다 한다. 2003년 1월 25일 국내 인터넷이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해 한동안 마비되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외부와 단절된 것 같은 공포감이나 금단현상을 경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반에 널리 보급된 지 10여 년 만에 인터넷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0년을 전후해서는 닷컴 열풍이 세계를 흔들었고, 얼마 전 우리나라의 인터넷 뱅킹에서의 거래량이 은행 창구의 거래량을 추월했다. 기업과 정부기관, 정당과 각종 단체들 뿐 아니라 개인들도 홈페이지를 제작, 관리하는데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아파트 청약은 사이버 모델 하우스를 본 뒤 온라인에서 처리한다. 실제 공간인 지하철에는 인터넷 쇼핑몰과 인터넷 게임과 같은 가상공간의 세계로 오라는 광고가 붙어있다. 이런 세상에서 어린이의 인터넷 사용이나 인터넷 중독을 굳이 문제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1960년 군사·학술용 네트워크로
인터넷은 1960년 대 미국에서 군사 및 학술적 목적의 정보교환을 위해 몇몇 컴퓨터들의 통신 네트워크를 만든 것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이라 칭하는 것은 World Wide Web(WWW)이라는 정보망이다. 웹(Web)이라고도 불리는 이 정보망에 컴퓨터를 연결하면 자신의 위치에 상관없이 거기에 올라있는 웹페이지, 문서, 사진 등 여러 형태를 가진 정보들에 접근할 수 있고, 자신도 웹에 원하는 자료를 올릴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발전해 간다는 두 가지 특성만 고려하더라도, 정책 입안자들이나 미래학자들이 역설하는 인터넷에 대한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인터넷 중독에 대해 막연히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인터넷의 여러 혜택에 대한 근본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인터넷에 대한 대표적인 견해들을 중심으로 몇 가지만이라도 살펴보자.
첫째, 인터넷을 ‘정보 고속도로(Information Highway)’라 부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정보의 장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필요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어 혜택을 누리게 된다. 광범위한 정보의 공유는 세상을 더욱 투명한 곳으로 만들어 불합리한 억압을 없애기도 한다. 저소득층이나 저개발국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것이 곧 그들에게 경제적 도약의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주장이나, 독재국가의 국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해방의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이런 견해에서 비롯된다.
필요 아닌 좋아하는 정보만 축적
이러한 관점에도 일리가 있지만 일반적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엄청난 양의 정보 중에 꼭 필요하고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기도 어렵고 정확성을 판단하기도 힘들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정보의 희소성과 가치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설사 좋은 정보만 골라낸다 해도 개인이 소화하지 못할 만큼 많다는 것도 문제다.
인터넷이 정보의 보고라는 사실은 자주 강조되지만 그 정보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다. 웹에는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게 되는 하이퍼링크(hyperlink) 기능이 있어서 전쟁으로 죽어가는 아이의 이야기에서 포르노 사이트로의 이동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정 정보의 검색이 아닌 막연한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이유는 하이퍼링크를 통해 수많은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나는 그 순간 나의 관심을 끄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움이 되는 정보보다 내가 좋아하는 정보를 축적하게 될 가능성이 더 많다.
둘째, 인터넷이 모든 정치적, 물리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를 반박하는 견해는 인터넷 상에서 좋은 정보와 유해한 정보가 뒤섞여 교환된다는 사실에서 출발할 수 있다. 지금 인터넷 관련 기술의 개발에서 컴퓨터 보안 및 유해 정보의 차단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노력이 결과적으로 인터넷 상에서 오가는 정보들에 대한 통제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해킹, 바이러스 유포, 스팸메일의 발송, 불법 복제 등과 같은 인터넷 상의 범죄들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통제 수단의 개발이 불가피한데, 이러한 기술들은 언제든지 다른 정보들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 무비판적 수용은 금물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전세계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관리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기억되어야 한다. 전세계의 인터넷 트래픽을 관리하는 컴퓨터들인 루트 서버(Root Server)를 관리하는 ICANN이란 단체는 사실상 미국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다. 물론 미국 정부가 인터넷 상의 모든 정보들을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인터넷이 완전한 자유의 공간이라는 인터넷 낭만주의자들의 생각은 착각이다.
셋째, 풍부한 정보의 보고라는 점과 더불어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도 인터넷의 특징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전의 미디어들은 정보의 제공자와 수용자의 관계가 일방적이었고, 수용자는 채널을 돌리거나 신문을 바꾸는 선택의 권한만을 가졌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정보의 공급자가 될 수 있다. 개인 홈페이지는 물론, 댓글 달기나 토론게시판 등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기존의 모든 미디어가 인터넷에서 통합되면서 쌍방향 의사소통의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모두가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모두의 말이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접속자가 많은 홈페이지는 따로 있고, 내가 쓴 댓글을 남들이 보길 원한다면 제목도 색다르게 붙여야 한다. 인터넷 상의 토론이 찬반이 명백히 갈리거나 감정적인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차분하고 논리적인 토론보다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논쟁으로 치닫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의사소통이 쉬워질수록 소통의 질은 오히려 떨어져 시간만 낭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최고인 우리나라에서 사실왜곡과 여론호도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비합리적인 보수진보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쌍방향 의사소통의 가능성이 민주적 의사소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과 그 변화무쌍한 발전의 모든 측면을 다 열거하고 그것이 초래한 변화들과 혜택을 일일이 논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노릇이다. 하물며 그 다양한 측면들 중 위에서 언급한 몇몇 문제점들이 있다고 해서 이미 우리 생활의 필수적인 일부가 된 인터넷의 사용을 중단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필수적인 일부로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고, 인터넷이 제공하는 기회만을 강조하면서 그 기회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인터넷으로 인해 촉발된 수많은 가능성들이 혹시 우리의 반성적 능력을 저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되짚어 반추할 여유를 잃고 막연한 기술발전의 신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기술은 인간의 자율성을 넘어선다. 더욱 발전된 미래의 기술사회를 살아가게 될 3세 어린이의 인터넷 사용과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이 우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손화철/서울대 강사 phtech@empa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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