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인 아버지의 다양한 취미 덕분에 그는 13세때 생일 선물로 받은 카메라를 만지면서 사진과 영화에 매료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6살 때 큐브릭이 플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서거를 찍은 세트사진이 화보잡지 'LOOK'에 실리게 되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곧 'LOOK'에서 사진기자로 채용된다. 보도사진 기자를 하면서 큐브릭은 틈이 나는대로 근대미술관의 필름 라이브러리에 드나들면서 영화를 보았다고 한다. 이때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한 그는 6년간의 사진기자직을 마치고 16분짜리 단편 <시합의 날(Day Of Fights)>(50)을 만들었다. 친구인 알랙산더 싱어와 함께 모아 놓았던 재산을 쏟아 부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로서 그의 영화제작의 시초였다. 권투 선수의 삶을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제작, 감독, 각본, 촬영, 편집, 녹음 등 1인 6역을 해냈다.
스탠리 큐브릭은 53년 액션물 <공포와 욕망(Fear And Desire)>로 데뷔했다. 이후 <살인자의 키스(Killer'S Kiss)>(55)와 <살인(The Killing)>(56) 등 스릴러를 통해 암흑가 사나이들의 비정한 삶을 그려낸다. 그가 주목을 받은것은 커크 더글라스 주연의 전쟁영화 <영광의 길(Paths Of Glory)>(57)을 완성한 후이다. 제1차 세계대전 하 프랑스 군을 배경으로 군내부의 심리적 갈등을 통해 반전을 주장한 이 작품은 아카데미상 여러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찬사를 받았다. 58년 말론 브란도와 함께 <애꾸눈 잭>을 준비하다가 협상이 결렬되어서 말론 브란도가 직접 감독을 했다. 이에 큐브릭은 로마 시대 노예의 반란을 그린 서사식 <스팔타커스>(60)로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중년남자의 애정행각을 그린 그의 최초 영국 영화였던 코미디 <로리타>(61)를 만든 큐브릭은 3편의 영화를 연속적으로 발표하면서 '테크놀로지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스트레인지러브 박사>(63)는 핵의 위협을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그린 흑백영화로 큐브릭은 뉴욕비평가협회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듬해부터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68) 준비작업에 들어가 4년만에 완성하게 된다. 도구의 발명에서 우주여행에 이르기까지 인류문명의 역사를 그린 이 작품은 첨단 SFX로 인해 SF영화의 고전으로 남는 걸작이 되었다. 이후 세뇌와 사상통제로 인해 기계장치처럼 변모한 인간을 추적한 <시계 태엽 장치의 오렌지>(71)로 큐브릭은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이어 18세기 영국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한 <베리 린던>(75),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옮긴 호러물 <샤이닝>(80)을 제작하고 베트남전 비판 영화 <풀 메탈 쟈켓>(88)을 완성했다. SF에서 코미디, 호러물, 전쟁영화, 서사물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장르에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주며, 유력한 테크놀로지를 구사하는 스탠리 큐브릭은 인간의 기계화를 통해 현대문명을 통렬히 비판하는 영화 작가인 것이다. 99년 3월 7일 영국 런던 하트퍼드셔의 자택에서 갑자기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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