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모더니즘의 미학> 강의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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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강 예술, 철학, 모던Ⅰ 예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플라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철학과 예술 사이에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은 철학적으로 구제를 받는다. 말하자면 시는 개별적인 것을 말하는 "역사보다 보편적인 것"으로서 보편적 지식인 철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시가 "허구를 통해 진리를 말한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시작하여, 미학을 "저급한 인식의 학"으로 규정한 바움가르텐을 거쳐서, 미를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규정한 헤겔에 이르러 이론적으로 완성된다. 고대 그리스에서 19세기까지에 이르는 시기에 서구 미학의 대이론을 이루는 이 논증의 전략을 흔히 '진리미학'이라 부른다. 진리미학이 본질적으로 예술적 고전주의의 이론적 표현이라면 이와는 다른 또 하나의 노선이 존재한다. 예술에 인식적,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기를 거부하며 예술 고유의 미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칸트의 미학이다. 여기에 따르면 예술은 개념적 규정의 구애를 받지 않는 순수형식 요소와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가 된다. 고전주의의 진리미학의 대립물로 시작한 칸트의 미학은 18, 19세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예술적 실천의 영역에서 자기를 관철하기 시작하다가, 20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주도적인 미적 관념으로 자리잡는다. 오늘날 예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특징짓는 관념은 본디 칸트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낭만주의적 관념의 영향 하에 고전주의적 진리미학의 대립물로 등장한 이 노선을 흔히 '형식미학'이라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미학의 역사는 고전주의적 진리미학과 낭만주의적 형식미학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의 미학은 고전주의적 진리미학의 이론적 완성이었다. 그가 '예술의 종언'을 얘기했을 때, 그것은 곧 20세기에 예술에 발생할 어떤 사건의 미학적 예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20세기에 헤겔이 염두에 두고 있는 그런 예술은 최종적으로 종언을 고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술의 종언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예술관념의 종언이었다고 볼 수 있다. 헤겔의 예술관념은 20세기에까지 (가령 게오르그 루카치를 통해) 영향력을 잃지 않았으나, 이미 20세기의 예술실천은 헤겔 류의 진리미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었다. 대상성의 상실(=추상회화), 무조음악(=쇤베르크)의 등장, 의미의 배제(=다다이스트)는 헤겔 미학이 존립할 기반 자체를 무너뜨렸다. 헤겔의 빈 자리에 등장한 것이 칸트의 형식미학이다. 하지만 헤겔의 진리미학을 제치고 칸트의 형식미학이 관철되는 과정은 간단히 예술이 미적 자율성을 위해 일체의 진리를 거부하는 과정으로 기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미학에 예술을 한갓 삽화로 만들어버리는 독단화의 위험이 내재해 있다면, 형식미학에는 그에 못지 않은 위험이, 즉 예술이 한갓 장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예술은 우리 머리 위의 벽지의 문양처럼 매우 사소한 것이 되어버릴 것이다. 실제로 20세기 예술은 간단히 미적 자율성을 위해 '예술적 진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예술적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였다고 보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 제2강 예술, 철학, 모던Ⅱ: 칸트의 형식미학 철학은 예술의 윤리적 무능 혹은 해악과 함께 인식론적 무능과 해악을 비난해 왔다. '진리'의 그리스적 의미가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보편지(普遍知)로서의 철학은 다양한 사물들 사이에 감추어진 공통성과 추상성과 필연성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그 사물들의 구체성, 다양성, 우연성을 감추게 된다. 따라서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면 철학은 그 자체가 진리이자 비진리라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진리가 감추어 버린 이 측면, 철학적 진리로서는 포착이 불가능한 이 세계의 측면을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적 진리'이다. 이렇게 예술적 진리를 다른 식으로 규정하면, 진리미학과 형식미학의 이원론적 대립은 해소되고, 예술적 진리와 철학적 진리는 이전의 적대적 관계에서 통약 불가능성을 갖춘 채 서로 상보적인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현대 예술이 철학과 맺는 관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과거의 진리미학에서 예술적 진리는 개별자에서 보편자로 상승하는 과정의 한 단계(역사 > 시 > 철학)로 규정되고, 그에 따라 철학적 진리의 하위에 놓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현대예술이 철학과 맺는 관계는 이와는 사뭇 다르다. 현대예술은 철학의 힘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사물의 우연적, 구체적, 가변적 측면을 드러낸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적 진리'는 철학적 진리보다 우월하거나 최소한 대등한 것이다. 모던 예술을 특징지우는 '미적 자율성'의 이념은, 예술이 진리의무로부터 해방되는 단선적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특정한 관념, 즉 고전주의적 관념에서 해방되어 진리에 대한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예술은 철학으로부터 해방되었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어떤 철학적 진리의 삽화이기를 거부한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현대예술은 철학으로부터 독립한 후 더욱 더 철학에 의존하게 되었다. 사실 오늘날 전시회의 카탈로그에서 우리는 그림에 대한 설명보다는 최신의 철학이론에 대해 더 많은 설명을 듣게 된다. 아도르노의 말에 따르면 예술은 진리를 소유할 수 있으나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철학은 진리를 표현할 수 있으나 소유할 수는 없다고 한다. 이 말 속에는 철학과 예술과 모던의 성좌가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오늘날 예술은 자기가 소유한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철학을 필요로 한다. 과연 이것은 무엇의 징후인가? ■ 제3강 모던의 선취로서 낭만주의 - 헤겔, 슐레겔, 마르쿠바르트, 졸거, 키에르케고르 1. 헤겔 모든 지혜의 원천이자 인류의 스승으로서의 시. 이성과 현실과 모순, 도덕과 생명 활동의 모순의 극복. 다시 신화화한 예술에서 철학과 정치가 선전할 수는 있으나 늘 배반할 수밖에 없는 자유와 통일성을 실현하라는 요구. 모던의 예술이 늘 대결해야 했던 과제. 현대예술에 내재된 혁명적 파토스는 바로 이 낭만주의적 소망에서 비롯된 것.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구상하여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합리적 방법과 직관적 창조의 뒤얽힘 속에서 이성과 감정의 잃어버린 통일성을 적어도 한순간 동안, 작품을 위해서 다시 설정하라는 요구. 2. 슐레겔 (1) 장르 구별의 해체 (2) 창작 과정의 원칙적 비완결성 (3) 일상의 비루한 대상들의 예술적 위엄 (4) 삶의 미화 (5) 어린이와 천진한 이들의 창조성 (6) 서구의 교양의 전통과의 반어적 결별 (7) 예술가의 절대주권 '자아-표현성': 칸트와는 달리 천재는 자연의 총아가 아니라 주관성. 아포리즘, 편지나 일기처럼 주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미적 형식들이 낭만주의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낭만주의에 대한 헤겔의 규정) 그러나 낭만주의적 아이러니는 자기 부정, 자기와의 거리를 함축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예술가에게 작품에 대한 주권을 허용해 주나 주관성의 구성에서의 주권은 기각한다. 낭만주의적 아이러니는 예술가의 자기 거리 두기의 시도이다. 궁극적인 것을 인정할 수 없기에 끝없는 생산성으로 나타나는 모던 예술가의 자기 거리 취하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3. 오도 마르쿠바르트 아이러니는 "좌절의 미학을 표현하는" "선험적 마조히즘". "선험적 마조히스트는 자기 자신의 역사적-사회적 존재의 부정으로 규정되기에 소통과 법의 외부에 있는 자가 된다. 그는 반사회적인 자의 규정과 성향을 갖는다. 범죄자, 광인, 무능력자……."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 안에 침잠해 있는 아이러니커는 (…) 자기에게 맞는 사회를 발견하지 못한다. 때문에 그는 자기가 속한 현실과 끝없는 불화(不和) 속에 들어간다. 때문에 그에게는 현실의 토대를 이루는 것, 현실을 정돈하고 지탱하는 것, 말하자면 도덕과 윤리를 유예시킨다." "그는 심지어 후회하는 일도 있으나, 이때도 도덕적으로가 아니라 미적으로 후회를 한다." 4. 페르디난드 졸거 "아이러니 없이는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러니 자체를 예술과 동일시하여 그것을 예술의 자기 재현으로 간주한다. 이념을 예술작품으로 객관화하는 것은 곧 그것을 작품 속에 고정시키나, 이는 곧 순수한 삶 자체로서 그것의 활동 속에서 이념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정신이 형식으로 전화하는 것은 경화, 고착화를 의미한다. 이것이 이념을 보는 대신에 치러야 할 대가. 이것을 잊고 작품을 정신의 외화, 객관화로만 본다면, 거기서 "매우 생경한 것"이 나올 것이다. 미적 재현을 하게 되면 정신을 부정하게 된다는 아이러니의 인식이 바로 미적 재현에 "마술적인 매력"을 주는 것이다. 이념과의 관계 속에서 아이러니는 하나의 부정적 활동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형식으로서 작품 속에 침전되는, 작품과 이념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멜랑콜리. 5. 키에르케고르 1) "시인이란 무엇인가? 불행한 자다. 그의 가슴에는 깊은 고통이 감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은 그 어떤 신음이나 절규가 그것을 통해 흘러나오더라도 아름다운 음악처럼 들리게 만들어져 있다. 그는 팔라리스의 황소 속에서 약한 불로 서서히 고통을 당하는 불행한 자와 같다. 그의 비명은 폭군의 귀에 도달하여 그를 무섭게 하지 못한다. 폭군에게 그것은 달콤한 음악처럼 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그의 주위에 몰려들어 말한다. 다시 노래를 불러라. (중략) 그게 비명 소리라면 듣기에 끔찍하겠지만, 그 음악, 그 음악은 정말 사랑스럽다." 시인은 세계를 괴로워하고, 그의 예술은 이 고통의 표현이자 거기서 벗어나려는 시도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향유의 대상이 된다는 것, 고통 때문에 지르는 비명이 미적 사건으로 감지된다는 것. 여기에 예술가와 군중 사이에 오해가 있다. "시인이 되어 인간들에게 오해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마게르브로 섬에서 돼지치기가 되어 돼지들에게 이해 받는 게 낫다." 이 오해는 오늘날까지 모던 예술의 역사를 특징짓는 것이기도 하다. 2) 키에르케고르에게 낭만주의적 아이러니는 더 이상 시작(詩作)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삶 자체에 미적 형식을 주려는 시도이며, 도덕과 법이 지우는 의무를 놀이를 하듯 무효화하려는 시도이다. 그의 실험은 심리학적, 윤리적, 종교적 혹은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미적인 관점에서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최초의 시도였다. 이를 키에르케고르는 유혹자라는 문학적 형태로 시험한다. 에로틱한 직접성과 쾌락의 향유의 원리, 그리하여 미적 원리에 따르는 삶의 형식의 상징 돈환. 그는 감성과 순간성이라는 예술의 원리를 발견한다. "영혼의 사랑은 시간 속의 지속이고, 감성적 사랑은 시간 속에 소멸되는 것이며, 이 사라짐을 표현하는 매체가 바로 음악이다." 유미주의자 A는 돈환의 한계를 비판한다. 그는 결코 사기를 치지 않는다. 감성은 미적인 것의 단지 한 측면일 뿐이며, 그것의 또 다른 측면은 정신과 합리성이다. 여기서 의식적이고, 반성적이고,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모던한 미적인 삶의 형식을 구현하는 "반성된 유혹자"로서의 요하네스가 등장한다. 예술이 만약 가상이라면 삶의 유미화는 그 자체가 허위와 기만이어야 한다. / "모든 인간은 지루하다." "일생 동안 고독한 자는 지극히 창조적이다. 한 마리의 거미가 그에게는 오락이 될 수 있다. (중략) 희망을 내던져버린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예술적으로 사는 데에로 나아갈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기분전환은 과도한 오락이나 쾌락이 아니라 극단적인 집중과 금욕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예술은 과거를 현재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잊어버리는 데에 복무한다. 과거의 짐과 미래의 희망을 던져버릴 때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머물 수가 있다. 여기서 주관성/시간성/직접성의 성좌가 등장한다. 과거의 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공포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인간은 시간성을 극복할 수가 있다. 이때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현존을 가지고 자유롭게 유희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헤겔이 말한 "불행한 의식"이 된다. 문명사적으로 볼 때, 진보의 원칙에 집착하는 문화들, 그리하여 미래의 관점에서 과거를 가공해야 하는 문화는 "불행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근대라는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하나의 감각적 순간에서 또 다른 감각적 순간으로 끝없이 옮겨다녀야 하는 게 근대인의 조건. 이 휴식 없는 이동이 절망과 공포를 낳는다. ■ 제4강 니체에서 쇼펜하우어로Ⅰ - 쇼펜하우어―'마취'로서의 예술 '마취'로서의 예술 쇼펜하우어 미학은 그 어떤 고전적 미학보다 20세기 미학과 예술에 더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미학의 현대성은, 간단히 요약하면, (1) 철학에 대한 예술의 형이상학적 우위를 주장한 점, (2) 예술적 의식의 첫째 조건으로서 시간, 공간, 자아의 해체를 말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헤겔이 말하는 '개념으로서의 일반자의 우위'나 칸트가 말하는 주관주의적 인식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에서 '탁월한 인식 형태로서의 예술'에 대해 말한다. 그에게 예술이 수행하는 인식은 이념의 인식, 즉 변하지 않고 무상하지 않은 참의 인식이었다. "모든 관계의 밖에서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유일하고 본래적으로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것을 고찰하는 것, 그 어떤 변화에도 종속하지 않고, 따라서 그 어떤 시대에도 동일한 진리성을 갖고 인식되는 것을 고찰하는 것, 한 마디로 의지의 직접적이며 적합한 객관성을 이루는 이념을 고찰하는 것, 그것은 어떤 종류의 인식인가? - 그것은 예술이다. 천재의 작품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개념적 인식에 대해 예술이 갖는 우월성은, 단지 예술을 통해 플라톤적 의미에서 이념에 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인식이 삶의 뿌리로까지 연결되는 어떤 '태도'를 필요로 한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에게 인식은 그저 지적인 작업이 아니라 인간의 전 존재에 관련된 작업이기 때문이다. "철학만이 아니라 예술도 본질적으로 현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이다."([세계]) 인간의 현존재의 문제는 모두 '의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의지로서의 인간은 우리 현존재의 물리적 조건, 즉 공간, 시간, 인과성의 사슬에 묶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더 이상 전통 철학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제약성, 우리 의식 속의 충동적 구조(=이 의지의 핵심은 이미 쇼펜하우어에게서 성적인 것으로 파악된다)의 표현이다. 여기서 삶의 뿌리와 연결되는 '태도'의 미학. 여기서 쇼펜하우어의 미학은 더 이상 인식론적 미학이 아니라 벌써 존재미학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시간, 공간, 인과성에 사로잡힌 우리의 육체는 자기의 필요, 욕망, 번뇌로 인해 진정한 물 자체를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것의 인식은 오직 시공과 인과성의 피안에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일상적 욕망과 필요에 사로잡혀 끝없이 변하는 육체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살아가는 자는 불변적인 이념의 진리에 전념할 수가 없다. 때문에 어떤 "태도", 즉 의지와 거기에 종속된 육체의 부정이 진정한 인식의 전제조건을 이루고, 이 위대한 '부정'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바로 '미'다. 오직 '미'만이 인간을 최소한 일정한 시간 동안이나마 사로잡아 그가 현존재의 제약성, 자기의 의지와 육체의 자극을 잊게 만들어준다. "인간이 미에 탐닉하는 한 그는 모든 욕망과 필요에서 자유롭고 속에서 참을 인식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예술은 (중략) 대상을 세계 진행의 흐름으로부터 떼어내어 그것을 고립시킨다. (중략) 시간의 수레바퀴가 멈춘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예술을 "충족이유율과 관련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규정한다. 삶에 필요한 것들의 맥락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 현상하는 의지의 직접성과 절대적인 거리 취하기---이것이 또한 미적 향유에서 '주관적 측면'을 이루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이 의지로 가득차 있는 한, 우리가 끊임없는 희망과 공포에 휩싸이며 욕망의 물결에 사로잡히는 한 (중략) 의지의 주체는 끝없이 악시온의 바퀴에 매여 있게 된다." 오직 어떤 대상을, 그 '미'에 힘입어 의지로부터 떼어놓을 때에만, 주체는 의지에 복무하는 데에서 해방되어 순수 객관적인 관조 속에 들어갈 수가 있다."또 그때에만 우리는 끝없는 욕망과 성취의 물결 속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된다. 이때 인식은 의지에 복무하는 노예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게 된다. 이 순간 우리는 의지의 충동을 벗어버리고, 의지의 강제노동의 휴일을 축하한다. 악시온의 바퀴는 멈춘다." 이렇게 관조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독창성(=천재성)"이다. 이는 일종의 무관심성의 태도인데, 칸트의 것과 달리 대상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충족시키려는 내면적 노력의 결과로 비로소 생성되는 어떤 것이다. 이 태도 속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연미와 예술미, 미적 생산과 미적 경험의 구별을 지워버린다. "미적 향유는 원래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예술작품을 통해서 혹은 자연이나 삶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 환기될 수 있다." 이 미적 향유에서 결정적인 것은 시간의 정지, 공간의 초월, 그리고 인과성의 무효화이다. 이럴 때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곧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모던을 선취한 쇼펜하우어 미학의 반고전적 계기이다. 미는 더 이상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 미의 개념은 오늘날 너무나 다의적이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개념을 확정하려는 시도는 오늘날 더 이상 미학이론의 주요 테마를 이루지 못한다. 쇼펜하우어 역시 예술이 가상이, 속임수, 픽션, 나아가 자기 기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예술은 각성된 의식의 일시적인 마취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거대한 "연극"이다. 예술은 우리가 연극에 지루함과 피곤함을 느끼고 마침내 진지함으로 넘어갈 때까지 일시적으로 우리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일종의 마취제이다. 이렇게 쇼펜하우어에게 예술은, 우리의 삶이 의지의 명령에서 벗어나 모든 번뇌를 종식시켜주는 사태, 즉 무(無)로 들어가게 되는 상태, 즉 불교적 의미의 해탈의 상태의 일시적인 예기이자 선취이다. ■ 제5강 니체에서 쇼펜하우어로Ⅱ - 니체―'도취'로서의 예술 '도취'로서의 예술 니체의 비극론은 이제 문화사적, 문헌학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즉 주관성과 자기망각의 변증법은 오늘날까지도 그 시의성을 잃지 않고 있다. '주체의 죽음'이라는 테마는 사실 포스트모던의 발명이 아니라 실은 급진적인 모던의 요청이자 기획이었다. 다만 이 주체의 해체 속에서, 그리하여 말하자면 이분법적 세계의 피안에서 자기와 세계의 몰아적인 합일 속에서 자기를 비로소 발견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이 존재의 수행과 관련된 "태도"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현존재와 세계는 영원히 정당화된다." 말하자면 현존재의 도덕적, 종교적 정당화는 존재하지 않고, 현존재는 오직 미적 현상이라는 관점 하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니체는 후에 모던 예술의 핵심을 이루게 될 명제를 내놓은 것이다. 현존재에 대한 다른 모든 정당화가 낡은 것이 되었다면, 남는 것은 오직 미적 관점뿐이고, 예술이야말로 현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가능성이 되기 때문이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오직 예술만이 "현존재의 끔찍하고 부조리한 모습에 대한 구역질 나는 생각을 표상으로 전환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모던의 미학을 위해 정식화한 가장 본질적이며 급진적인 생각일 것이다. '현존재의 슬픔과 무의미에 관한 진리는 너무 끔찍하도록 잔인하여 인간은 그 진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니체는 말한다. "미는 추하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우리가 진리로 인하여 몰락하지 않기 위하여." "가상을, 환상, 기만, 생성과 변천을 향한 의지가 진리, 현실, 존재를 향한 의지보다 더 강하다. 쾌락은 고통보다 더 근원적이다." 하지만 니체가 삶의 끔찍함을 예술로 보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니체가 말하려는 바는 '무의미함을 보상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그 무의미함이 우리에게 가하는 위협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진리를 은폐하여 삶을 비로소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필요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 속의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은 곧 삶을 향한 의지가 된다. 하지만 예술은 마취도 아니고 단순히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것도 아니다. 아폴론적 명료성과 디오니소스적 엑스타시의 통일로서 예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진리의 형태이다. 다만 가상, 꿈, 도취로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지양할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철학자들의 진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 역시 '시'이며 '가상'에 불과하다. "진리란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망각한 환상이다. 한번 사용되어 감각적으로 힘을 잃어버린 은유이다. 새겨진 문양이 지워진 동작, 그리하여 사람들이 더 이상 동전으로 바라보지 않는 금속 조각이다." 이렇게 니체는 예술의 이름으로 철학을 공격한다. "두 개의 절대적으로 상이한 영역들, 즉 주관과 객관 사이에는 그 어떤 인과관계도, 그 어떤 올바름도, 그 어떤 표현도 없다. 기껏해야 미적 태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진리와 인식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시(=허구)', 그것도 대개는 형편없는 시 일뿐이다. 이렇게 니체와 함께 모던을 특징지우는 합리적 지식의 가상에 대한 위대한 거대한 회의, 삶의 자극제가 되는 예술의 절대화가 시작된다. 예술은 진리를 말하는 가운데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가운데 진리를 말한다. ■ 제5강 니체에서 쇼펜하우어로Ⅱ - 니체―'도취'로서의 예술 '도취'로서의 예술 니체의 비극론은 이제 문화사적, 문헌학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즉 주관성과 자기망각의 변증법은 오늘날까지도 그 시의성을 잃지 않고 있다. '주체의 죽음'이라는 테마는 사실 포스트모던의 발명이 아니라 실은 급진적인 모던의 요청이자 기획이었다. 다만 이 주체의 해체 속에서, 그리하여 말하자면 이분법적 세계의 피안에서 자기와 세계의 몰아적인 합일 속에서 자기를 비로소 발견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이 존재의 수행과 관련된 "태도"에 대해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현존재와 세계는 영원히 정당화된다." 말하자면 현존재의 도덕적, 종교적 정당화는 존재하지 않고, 현존재는 오직 미적 현상이라는 관점 하에서만 비로소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니체는 후에 모던 예술의 핵심을 이루게 될 명제를 내놓은 것이다. 현존재에 대한 다른 모든 정당화가 낡은 것이 되었다면, 남는 것은 오직 미적 관점뿐이고, 예술이야말로 현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가능성이 되기 때문이다. 니체에 따르면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오직 예술만이 "현존재의 끔찍하고 부조리한 모습에 대한 구역질 나는 생각을 표상으로 전환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모던의 미학을 위해 정식화한 가장 본질적이며 급진적인 생각일 것이다. '현존재의 슬픔과 무의미에 관한 진리는 너무 끔찍하도록 잔인하여 인간은 그 진리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니체는 말한다. "미는 추하다. 그리하여 우리에게는 예술이 있다. 우리가 진리로 인하여 몰락하지 않기 위하여." "가상을, 환상, 기만, 생성과 변천을 향한 의지가 진리, 현실, 존재를 향한 의지보다 더 강하다. 쾌락은 고통보다 더 근원적이다." 하지만 니체가 삶의 끔찍함을 예술로 보상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니체가 말하려는 바는 '무의미함을 보상하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제는 그 무의미함이 우리에게 가하는 위협을 견뎌내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진리를 은폐하여 삶을 비로소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 바로 이것이 예술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또한 필요하게 하는 것이다. 진리 속의 삶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술은 곧 삶을 향한 의지가 된다. 하지만 예술은 마취도 아니고 단순히 우리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는 것도 아니다. 아폴론적 명료성과 디오니소스적 엑스타시의 통일로서 예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진리의 형태이다. 다만 가상, 꿈, 도취로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지양할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철학자들의 진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 역시 '시'이며 '가상'에 불과하다. "진리란 그것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망각한 환상이다. 한번 사용되어 감각적으로 힘을 잃어버린 은유이다. 새겨진 문양이 지워진 동작, 그리하여 사람들이 더 이상 동전으로 바라보지 않는 금속 조각이다." 이렇게 니체는 예술의 이름으로 철학을 공격한다. "두 개의 절대적으로 상이한 영역들, 즉 주관과 객관 사이에는 그 어떤 인과관계도, 그 어떤 올바름도, 그 어떤 표현도 없다. 기껏해야 미적 태도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진리와 인식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시(=허구)', 그것도 대개는 형편없는 시 일뿐이다. 이렇게 니체와 함께 모던을 특징지우는 합리적 지식의 가상에 대한 위대한 거대한 회의, 삶의 자극제가 되는 예술의 절대화가 시작된다. 예술은 진리를 말하는 가운데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가운데 진리를 말한다. ■ 제6강 콘라드 피들러: 직관으로서의 예술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콘라드 피들러는 딜레탕트 미학자로, 화가 마레스와 조각가 힐데브란트와 교류하면서 그들의 영향 하에 이론적 작업을 했다. 그의 미학은 미적 향수나 지각에 기초한 수용자 미학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창작에 관련한 "예술가미학"으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와 같은 추상화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직관으로서의 예술 피들러는 예술가의 세계와 담론적 사유의 세계를 대립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모든 예술은 표상을 발전시킨 것이고, 모든 사유는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호 관련을 맺지 않고도 인식에 복무한다. 피들러는 예술의 본질이 그것이 매개하는 독특한 '인식'에 있다고 본다. "예술을 미적 목적에도, 상징적 목적에도 복무시키지 않는 자만이 올바른 예술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술은 한갓 미적 형식의 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념적 인식도 아니고, 뭔가 독특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다른 세계에 산다. 그는 비루한 세계에서 일탈한다. 개념의 세계를 곧바로 세계로 등치시키는 것. 거기에 오류가 있다." 이렇게 사유와 구별되는 인식으로서 예술의 본질은 '직관능력'에 있다. "예술적 재능의 본질은 직관적 파악 능력을 가지고, 혹은 그런 능력을 위하여 태어난다는 점에 있다. 예술가에게 직관은 그밖에 있는 어떤 외적 목적에 복무하지 않는, 그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로운 직관이다." 여기서 피들러는 모던의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이념을, '예술가의 생산적 직관'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조형예술은 사물을 있는 대로가 아니라 보여지는 대로 재현한다." 이는 "예술의 본질이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가시적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고 한 파울 쿨레의 언급과 상통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구의 회화사를 지배해온 대이론, 즉 모방론의 전통은 최종적으로 파괴된다. "예술적 활동은 노예적 모방도 아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예술가 주관의 자의성의 표현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가의 "자의적인 발명"이 아니라 "자유로운 조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경험의 (주관적, 자의적) 조작이 아니라 그것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가 주권 이렇게 콘라드 피들러는 예술의 인식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그것을 어떤 외적 의무에 속박시키는 것으로부터 예술을 해방시킨다. 현실, 그리고 생산적 시각의 자유성. 양자를 매개하는 것이 예술가이다. 예술가 자신, 그의 내면, 그의 표현력과 조형력이 새로운 것의 근원이 된다. "탁월한 예술가의 의미는 그들이 자기들의 예술을 가지고 인간의 인식하는 의식에 새로운 것을 가져다 준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세계를 당대의 한계에 사로잡히지 않는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모던 예술을 특징짓는 표현론의 최초의 이론적 표명일 것이다. 그러나 피들러는 예술가의 내면적 직관과 퍼포먼스를 구별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은 그 표현 없이도 존재할 어떤 것의 표현이 아니다. 즉 예술가의 의식 속에 살아 있는 형상의 모상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은 예술가에게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작품은 외려 개별적 경우에 한 개인이 최고의 발전에 도달한 상태에서의 예술적 의식 그 자체이다." 말하자면 작품 자체가 최고조에 달한 예술적 의식 그 자체라는 것이다. 자연주의와 이상주의 하지만 이것은 그저 주관적 현상에 그치는 게 아니다. "예술가가 자연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이 예술가를 필요로 한다. (중략) 예술가의 활동을 통해 자연은 (중략) 더 풍부하고 더 고차적인 현존에 도달한다." 한 마디로 자연의 다양성은 예술작품을 통해 비로소 현상한다는 것이다. 작품은 자연을 이중화(=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독자성을 통해 보여지지 않은 것에 대한 시야를 열어준다. "예술은 자연보다 위에 있다. 하지만 이는 자연에 뭔가를 덧붙인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다. 예술이 자연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그것이 자연에 대한 더 발전된 표상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일상적 의미에서 '자연'을 구성하는 그 어떤 표상보다 더 발전된 표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실주의(혹은 자연주의) 대 이상주의라는 예술사의 낡은 이항대립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예술은 항상 현실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에게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을 만들어내려 애쓰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것은 항상 이상주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만든 모든 현실은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술은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존재론적 과정이자 동시에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적 과정은 주관도 아니고 객관도 아닌 뭔가 새로운 존재론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객관적 현실과 주관적 시각이 합류하는 지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예술가이다. 소재에 대한 거부 낡은 모방론에서 벗어나 예술의 인식적 본질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결국 피들러는 예술의 소재를 단호히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말하자면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예술외적인 이것을 배제하다 보니, 소재를 거부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 제재, 플롯, 이야기를 거부하는 태도를 낳게 된 것이다. 바로 여기서 (1) 대상적인 것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2) 조형에서 예술가의 주권을 인정하는 현대 추상예술이 등장하게 된다. 피들러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본 "예술적 의식", 이것의 표현매체가 바로 대상 관련성을 버리고 오직 형태와 색채로 이루어진 현대의 추상예술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프란츠 마르크가 피들러의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제7강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벤야민은 개인들의 원자화와 분산화, 그들의 현존의 무상함, 그리고 그들의 집단적 대두를 근대의 징후로 꼽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이런 모던의 징후 읽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자, 동시에 그 동안 예술사에서 묻지 않았던 새로운 질문, 즉 '기술적 발전과 예술적 발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최초로 제기한 텍스트다. 오늘날 벤야민이 이 글에서 표명한 몇가지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이 텍스트는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시의성을 잃지 않고 있다. 벤야민이 '모던'이라는 시대에 새로 등장하는 경향으로 주목하는 것은 '기술복제의 가능성'이다. 여기서 그는 물론 당시에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사진과 영화기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사실 예술의 복제는 예술사만큼이나 오래된 현상이나 벤야민이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그 복제가 예술적 생산 그 자체에 영향을 끼칠 단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복제는 예술작품의 "지금, 여기", 즉 작품이 속하는 장소와 밀접히 결부된 현존성을 파괴한다. 그것이 문화적 전통 속에 들어가는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는 예술작품의 유일성. 그것을 벤야민은 '아우라'라고 부른다. 이를 그는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현상하는 것"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작품의 근원적 기능, 즉 종교적, 제의적 기능이 아직까지 작품에 잔존한 흔적으로 본다. 벤야민에 따르면 현실과의 모든 관련을 끊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아우라를 보존한 '예술을 위한 예술' 역시 일종의 신학, 즉 "예술의 신학" 내지 "부정의 신학"이라고 한다. 복제기술은 이 아우라를 파괴한다. 여기서 벤야민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좀 문제성이 있는 결론을 끄집어낸다. "하지만 예술생산의 진정성의 기준이 파괴되는 순간, 예술의 사회적 기능 전체도 전복된다. 제의에 뿌리를 두는 대신에 그것은 이제 다른 실천에 뿌리를 두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 속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벤야민으로 하여금 이런 결론을 내리게 한 것은 제의적 가치 대신에 전시적 가치가 전면에 등장한 영화예술이었다. 특히 트레차코프의 혁명적 영화실험은 그에게 이 기능 변화 속에서 혁명적 의미를 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영화의 특성은 새로운 예술수용자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바로 대중이다. 벤야민은 영화예술이 "이중의 의미에서" "분산된 지각"으로서 인간의 지각의 태도를 변화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말하자면 영화는 뿔뿔이 흩어진 모던의 개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그들의 지각의 방식 또한 그는 아우라의 파괴가 예술의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벤야민을 경악시킨 것은 영화예술이 가진 이 긍정적 가능성을 파시스트들이 "겁탈"했다는 사실이었다. 지각의 방식을 바꾼다는 영화예술의 긍정성이 파시스트들에 의해 '선동'의 수단으로 활용됐고, 나아가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을 강화하는 데에 복무했으며, 심지어 그것은 아우라를 파괴하기는커녕 더 큰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데에 이용되었던 것이다. 벤야민이 "정치의 예술화에 맞서 예술의 정치화"를 주장한 데에는 이런 상황의 인식이 깔려 있었다. 벤야민에 대한 비판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도르노에게서 나왔다. 아도르노는 미국에서 대중예술의 자본주의적 상업화를 목격했기에 대중문화에 대해 벤야민보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는 대중의 비판적 의식을 각성하기는커녕 대중들의 극중 몰입을 완전히 보장하며 대중들을 체제순응적 존재로 길들이고 있었다. 아울러 영화가 파괴한다던 아우라가 스타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아우라의 생산기제에 의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아울러 아도르노는 복제예술이 인간의 지각방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가령 음반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으로 음악을 듣게 해주는 게 아니라 음악의 지각방식을 특정한 패턴에 고정시킴으로써 인간의 듣기 능력을 "퇴행적"으로 고착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벤야민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은 결국 아우라의 파괴가 자본주의 하에서는 진보가 아니라 진보의 왜곡으로 나타난다는 데에 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벤야민의 텍스트는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과 그것의 미래에 대한 담론에서 여전히 전범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다분히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입장을 새로운 차원에서 단순히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참고자료: 진중권의 벤야민 읽기 「아담의 언어」 벤야민의 사상을 체계화하는 게 가능할까? 그의 글은 아카데미를 위한 논문이 아니다. 그의 학위 논문은 대학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는 평생 아카데미의 밖에 머물렀다. 그의 글들은 여기 저기 잡지에 기고한 평문들이고, 단편으로 이루어져 이렇다할 체계가 없다. 게다가 또한 문학, 철학, 역사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벤야민의 글쓰기를 읽어낼 하나의 시각을 택하라고 하면, 나는 언어철학으로부터 접근하는 방식을 택하겠다. 이제까지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그의 글, '언어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1916)에는 그가 나중에 발전시킬 중요한 생각들의 단초가 이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기 때문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신은 세상을 '말'로 창조했기에 모든 사물은 언어적 본질을 갖고 있다. 즉 목소리 없는 사물이 몸 안에 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신이 사물에 담아놓은 이 언어적 본질을 인간은 음성으로 '명명'한다. 바로 이것이 아담의 언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사물이 가진 이 언어적 본질을 무시하고 제 필요에 따라 거기에 제멋대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언어는 한갓 수단으로, 자의적 기호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이 관행의 철학적 표현이 근대의 도구주의적 언어관이다. 여기서 언어는 더 이상 사물의 고유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 이것이 "언어에 대한 부르주아적 견해"다. 유태교의 신학의 옷을 입은 이 벤야민의 언어관은 한 마디로 근대적 '진보' 개념에 대한 비판, 즉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맘껏 조작하고 착취하는 부르주아적 '진보'에 대한 급진적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얼마 전에 제기된 영어공용화론. 언어는 수단이므로, 한국어보다 효용이 큰 영어를 모국어화하자는 이 주장의 바탕에 깔린 생각이 바로 벤야민이 비판한 근대의 도구주의적 언어관이다. 물론 이 견해는 동시에 모든 가치를 수량화하여 교환가치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천민 자본주의적 경향의 이론적 표현이리라. 사물을 그 고유한 가치에 따라 불러주던 아담의 언어. 벤야민의 철학적 기획은 잃어버린 이 아담의 언어를 되찾으려는 시도였다. 벤야민에게 사물화와 상품물신성의 세계인 자본주의를 타파하는 사회혁명은 곧 인류가 아담의 언어를 되찾는 구원의 역사를 의미했다. 물론 우리는 더 이상 혁명을 믿지 않기에, 벤야민이 꿈꾼 신학적 구원을 세속화해야 한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 구원은 역사의 '목적'이 아니라 단지 끝으로 찾아온다. 이것이 근대의 목적론적 사관을 전복하는 그의 탈근대적 역사철학이다. 이 역사의 '끝'이란 곧 선악의 나무 이전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 즉 실정법과 자연법의 악순환을 끊고 정의 그 자체가 실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데리다가 해체주의적으로 구원하려고 하는 벤야민의 법철학이다. 나아가 모든 사물에 언어적 본질이 있다고 말할 때, 그의 문화비평이 시작된다. 가령 고대의 폐허, 바로크의 바니타스, 파리의 길거리, 영화와 대중문화 속에서 그는 언어적 본질을 보고, 거기서 시대를 읽는다. 그에게 비평이란 이렇게 '결코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는 것', 즉 사물의 언어적 본질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었다. 벤야민에 따르면 도구주의적 언어관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아직 아담의 언어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예술이다. 조각, 회화와 같은 예술언어에는 사물을 닮으려는 미메시스 기능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의 언어는 음성이 결여된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기에 아담의 언어에는 못 미친다. 하지만 미메시스의 기능이 있기에 예술은 언어가 다른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이해가 되는 만국공용어의 역할을 할 수가 있다. 예술은 침묵하는 사물이 가진 언어적 본질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번역"이다. 그리고 이 번역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창조를, 즉 옛날 아담의 언어로 했던 그 '명명'의 작업을 계속해나간다. / <연세대학원 신문> (2000-10-02) ■ 제8강 아도르노와 귄터 안더스 아도르노와 아방가르드 예술 1. 재현의 파괴 "예술의 인식은 담론적 인식이 아니며, 그것의 진리는 대상의 반영이 아니다." 여기에서 아도르노는 수천년간 서구를 지배했던 예술에 관한 대이론을 전복하고 있다. 현실 속의 대상을 모사하는 것을 포기한 현대 아방가르드 예술은 그것을 설명해 줄 적절한 이론적 틀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아도르노로 하여금 전통적인 예술관념, 즉 모방, 재현, 반영으로서의 예술관을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예술의 인식적 성격을 부정했던 칸트와 달리 아도르노는 진리미학을 포기하고 형식미학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새로운 진리미학을 구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2. 예술의 진리 "담론적 인식에서 참은 감추어져 있지 않으나 담론적 인식은 참을 가질 수 없고, 예술이라는 인식은 참을 갖고 있으나 거기에 통약불가능한 것으로 갖고 있다." 여기서 아도르노는 근대의 진리미학과 다른 방식으로 예술적 진리를 정의하고 있다. 아도르노에게도 예술은 여전히 인식적 가치를 가진 상징형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개념적, 합리적, 담론적 인식의 물질적, 감각적 표현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작품은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나 개념적 인식의 일러스트레이션이나 미학외적 진리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3. 미적 주체성의 해체 예술의 진리는 학적 진리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것은 오직 예술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한 것이며, 그 진리는 하이데거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도르노에게서도 담론적 진리보다 더 근원적인 것으로 상정된다. 아울러 아도르노에게서도 이 진리의 생산은 '주체'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천재든 장인이든 미적 주체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를 통해 매개되는, 주체 밖의 어떤 사태의 표현이다. 그 진리는 주체에 관한 진리가 아니라 엄밀한 객관적 진리이다. 따라서 아도르노에게 예술가는 더 이상 미적 주체가 아니다. 그는 현실에서 진행되는 어떤 객관적 과정을 매개하는 영매(Mitter)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근대미학의 프로젝트의 본질적 요소 중의 하나인 미적 주체성은 해체된다. 4. 작품미학 그런 의미에서 아도르노의 미학은 '작품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비평의 과제는 더 이상 작품 속에 드러난 작가의 주관적 의도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 속에 재현된 세계와 작품 밖의 세계의 일치 여부를 가리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 속에 객관적으로 들어 있는 것, 작품이 객관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포착하여 언어로 옮기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진리는 그 속에 들어 있는 미적 주체에 관한 진리도, 그가 재현으로 반영하는 세계의 겉모습에 관한 진리도 아니다. 미적 주체의 매개를 통해 작품 안으로 들어온 현실의 객관적 과정에 관한 진리이다. 5. 수수께끼 재현이 사라지고, 대상성이 무너지고, 서사적 연관이 파괴된 현대예술에서 작품의 구조는 수수께끼로 다가온다. 현대예술의 작품 앞에 사면 그 작품의 배후에 우리가 밝혀내야 할 그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끝없이 해석을 시도하여, 그 수수께끼에 답을 내나, 그 답을 내는 순간 작품의 진리는 우리 앞에서 또 다시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끝없는 숨바꼭질의 세계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작품의 진리에 관한 최종적 해석을 거부하고 무한한 해석의 놀이를 풀어놓는 현대예술의 구조를 아도르노는 "수수께끼"의 은유로 표현한다. 6. 해석 의존성 예술은 진리를 갖고 있으나 그 진리를 개념적으로 표현할 능력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예술은 해석은 요구한다." 현대예술 작품은 더 이상 우리에게 직관적으로 진리를 매개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것의 진리는 본질적으로 해석을 그 상관자로 요구한다. 하지만 "관찰과 사유로 남김없이 밝혀지는 예술작품은 작품이 아니다." 예술작품에는 아무리 해석을 해도 해석이 안되고 남는 부분이 있으며, 예술에 수수께끼의 성격을 부여하는 이 부분이 작품의 전체에 비로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이다. 7. 생성으로서 예술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 그것에 대한 이해는 예술작품의 열린 성격, 수수께끼적 성격 때문에 본질적으로 운동, 과정, 생성의 성격을 띤다. 그리하여 아도르노는 "예술작품이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라는 것은 기술적으로 파악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정지된 그림으로서의 작품이라는 근대적 관념을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탈근대적 관념을 대체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해석을 통한 이해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작품이 실현된다. 말하자면 진리라는 측면에서 예술의 생산과 수용은 동시적이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봉헌과 보존이라는 하이데거의 예술모델과 아도르노의 모델 사이의 구조적 동형성이 드러난다. 8. 재료의 조직 아도르노에게 예술의 진리 내실은 작품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의 진리내실은 재료(물질)을 조직하는 과정 속에서 전개된다. 말하자면 재료를 조직하는 방식 그 자체에 예술작품의 진리성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형식은 침전된 내용"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내용과 형식을 구별하는 근대의 작품 존재론은 붕괴된다. 내용/형식의 근대적 대립을 재료/처리라는 개념틀로 대체하면서, 아도르노는 예술적 avancement와 비판적 진리를 동일시한다. "예술 속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참되지 못한 것은 기술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 마디로 재료를 조직하는 데에서 벌어지는 기술적 실패가 곧 형이상학적 거짓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의 최고의 진리라는 문제는 작품 속의 조응이라는 범주로 번역된다." 한 마디로 미적으로 성공한 것은 철학적, 사회적으로도 참이요, 미적으로 실패한 것은 철학적, 사회적으로도 허위라는 것이다. 9. 예술의 진보와 퇴보 여기에서 아도르노의 사상과 아방가르드 예술 사이의 논리적 연관이 드러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재료에는 발전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어, 그것이 작품의 객관성을 이룬다고 한다. 이는 아방가르드의 미적 확신, 즉 진보는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고 보는 미적 진보의 논리의 이론적 표현이다. 재료에 내재된 객관성에 조응하여 미적 진보에 참여하지 않고 과거의 형식언어를 고집하는 예술가는 미적으로는 퇴행적일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반동적이라는 것이다. 10. 새로운 것, 모더니즘의 이념 예술적 진보는 재료를 다루는 새로운 방식, 혁신적인 방법에 있으며, 이것이 단지 작품의 미적 질만을 결정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작품의 발언력까지 결정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미적 모더니즘의 자의식이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더 좋은 것이다. 모던의 기관차로서 새로운 것의 이념. 재료와의 대결이 곧 사회와의 대결이라고 보고, 재료를 조직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고 믿었던 모더니스트들의 미적 확신이 아도르노의 이론 속에서는 이렇게 재료의 조직이 곧 진리의 생성이라는 견해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11. 예술의 탈주 예술은 자기의 참을 개념적으로 분절화할 수 없기에 철학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동일성의 사유에 속하는 철학은 자기 혼자서는 참을 가질 수 없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동일화하는 철학의 합리적 구조, 그것의 동일성 논리는 현실의 복잡성을 파악할 수도 없고, 모든 것을 동일화하는 자본주의 문화산업의 지배를 깰 수도 없다. 이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술은 재료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점점 더 급진화해야 한다. 미적 성취는 언제나 대량복제와 시장의 필요를 위한 단순화에 의해 평가절하되기 때문에, 이 지배의 힘을 피하기 위해 예술은 점점 더 해석적, 급진적으로 되어야 하고, 그 결과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예술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것이다." 운명을 건 이 끝없는 탈주를 통해 예술은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일 수 있다. 12. 예술의 자율성의 환상 파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예술작품은 사회와 비판적 거리를 취하나 체제로서의 예술은 역할 분담을 통해 체제에 얌전히 순응하며 그 일부분으로 기능하게 된다. 무비판적인 예술제도와 비판적인 예술작품 사이의 긴장. 아방가르드의 "반예술"의 전략은 예술의 자율성이라는 근대적 관념 하에 자행되어온 이 낡은 관행을 깨뜨리고, 예술로부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조직하려는 존재미학적 시도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늘 실패하고, 그것이 실현되었을 경우에는 대중을 위한 오락문학이나 값싼 상품미학으로 전락하고 만다. 60년대에 새로운 아방가르드가 있었으나, 오늘날 더 이상 미적 강제성을 띠는 예술적 진보란 존재하지 않는다. ▶ 귄터 안더스, 미디어론으로서의 예술론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표명된 벤야민의 미디어론은 TV와 라디오의 등장과 함께 귄터 안더스에 의해 급진화한다. 망명객으로 미국에서 TV의 등장을 지켜본 안더스는 1956년 이 새로운 매체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오늘날 텔레비전에 대해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비평은 이 독일 망명객의 글에서 비롯된 것이다. 1. 존재론적 중의성 텔레비전 영상은 현실과 가상이라는 전통적 대립을 무너뜨리면서 '팬텀'이라는 새로운 존재의 층위를 만들어낸다. 그는 이를 "사물로 등장하는 형태"로 규정했다. 텔레비전은 허구이면서 동시에 사실로 등장하는, 그리하여 존재하면서 실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단지 중립적 매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건과 모상의 존재론적 차이를 지우면서 그 자신이 현실의 직접성을 가지고 우리 앞에 현상한다. 텔레비전은 어떤 사실의 미리 선정된 측면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을 암암리에 미리 내포한다. 즉 텔레비전은 이미 그 안에 구조적 기만의 메카니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은 소비자로 하여금 점점 더 이미 내려진 판단에 더 의존하게 만들고, 나아가 이 의존성을 꿰뚫어 볼 가능성조차 앗아간다. 2. 대중적, 유아론적 시각 텔레비전은 팬텀의 세계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동시에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를 안더스는 "대중적 은둔자"라 부른다. 벤야민의 영화 대중이 민주적이고 집단적인 대중으로 나타난다면, 안더스의 TV 대중은 이렇게 자기 집안에 갇혀 뿔뿔이 흩어진 "분열자"로 나타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보며 뜨개질을 하거나 밥을 먹거나 그밖의 일을 한다. 텔레비전을 볼 때에 인간은 이렇게 파편화한 행동의 집산으로 전락한다. 나아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인간은 자신을 '대중-인간'으로 전화시킨다. 텔레비전이 매개하는 지각은 더 이상 그리스적 의미의 '시각'도 아니고 헤브라이 전통의 '청각'도 아니고, 그저 '먹는 것'이다. 텔레비전 앞에서 인간은 엄마가 떠서 입 안에 넣어주는 밥을 먹는 어린 아이가 된다. 한 마디로 인간을 '구강기'에 고착시키는 것이다. 3. 의미의 상실 텔레비전은 수용자와 세계 사이의 거리를 지운다.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도 텔레비전은 그것을 우리의 안방에 옮겨 놓음으로써 가깝거나 먼 사물들 사이의 공간적 차이를 지워버린다. 이때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여지는 사물이나 사건의 고유한 가치를 지워버린다. 세계는 오로지 볼거리를 제공하는 노출증 환자가 되고, 시청자들은 볼거리를 찾는 절시증 환자가 된다. 여기서 사물들은 고유의 가치, 고유의 의미를 상실하고 "중립화"한다. 최근에 유행하는 '리얼리티 쇼'란 실은 텔레비전 자체에 내재한 이 노출증/절시증의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4. 가상과 현실의 전도 텔레비전이 현실도 아니고 더 이상 가상도 아닌 팬텀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을 대체해감에 따라 사람들은 어떤 사건의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을 "그것이 텔레비전에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 "어떤 사건의 재생 형태가 원본의 형태보다 더 사회적으로 중요할 때, 이때 원본은 재생을 지향해야 한다." 말하자면 현실 자체가 텔레비전 속의 가상의 모델에 맞추어 자신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드리야르의 유명한 '시뮬라시옹' 테제는 귄터 안더스의 테제를 디지털 매체의 언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인한 '현실/가상' 구별의 해체. 이는 모던 예술의 대표적인 징후이기도 하다. ■ 제9강 프란츠 코페 / Arthuv Danto ▶ Franz Koppe Franz Koppe는 아도르노의 이론 중에서 예술의 본질을 진리로 규정하는 것을 부정하면서 출발한다. 예술을 진리로 규정하는 시도는 그것을 "비규정성, 다의성, 픽션성 혹은 범례성"으로 설명하든 그 어느 것으로 설명하든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는 없다고 한다. 이 모든 범주들은 예술을 통해 과학과 구별되는 의미에서 무엇이 전달되어야 할 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그 기준들의 근본적인 기술적인 결함이다. 이에 따라 Franz Koppe는 다시 예술의 기호적인 성격과 그것의 소통적 작용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는 모던 예술을 소통의 거부로 규정한 아도르노의 테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기호로서의 예술을 욕구의 분절화를 수행한다고 한다. 예술은 구체적인 욕구의 상황 속에서 일상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욕구들을 분절화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술을 소통으로서 욕구의 경험을 매개하며 그런 의미에서 욕구혁신적이다. 말하자면 예술을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욕구를 새로이 창출해내어 소통시키는 양식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은 우연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술이 매개하는 그 욕망은 바로 이러한 삶 속에서 어떤 삶의 의미에 대한 욕구 열망을 가리킨다. Franz Koppe의 이 테제는 어떤 의미에서 모던 예술이 요구하지도 않았고 또 충족시킬 수도 없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삶의 의미에 대한 욕구, 우리 현존의 우연성을 이기게 해줄 의미욕구. 이것을 분절화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칸트의 무목적성을 새로이 해석하여 미적 현실의 개념적 조응성을 실제로는 불가능한 인간의 목적론적 욕구를 마치 충족된 것인양 표상한다. 마찬가지로 현존재의 우연성에 예술은 미적 조응성과 필연성으로 맞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의 우연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조직한다. 그런 의미에서 Franz Koppe의 테제는 모던 예술의 어떤 경험 즉 Aleortorik의 경향과 대치된다. 왜냐하면 미적 창조과정에서 Aleortorik(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삶의 우연성을 제거하는 대신 그 우연성을 직접적으로 예술에 도입하기 때문이다. Franz Koppe에게서 예술은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과는 달리 긍정적인 행복의 약속이 된다. 아도르노라면 아마 이를 기만이라 불렀을 것이다. 벤야민에게서 부정의 신학과 달리 Franz Koppe의 예술은 그동안 종교가 해왔던 역할 그리하여 종교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공백으로 남겨진 부분을 긍정적으로 채우는 역할을 한다. 이런 도식에 따르면 미에 관한 정의 역시 쉽게 얻어진다. 예술에 전달한다는 그 욕망이 충족된 것으로 표상되는 미적 텍스트는 아름답고 그렇지 못한 텍스트는 추하다. 모던의 예술은 미의 체험을 방식으로만 적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Franz Koppe가 말하는 예술의 정의, 충족된 욕망의 표상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쉽게 키취(Kitsch)예술로 넘어가기 쉽다. ▶ Arthuv danto: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 place 페테 뵈르거가 말한 아방가드르의 특징인 예술을 삶의 실천 속으로 끌어들이는 경향, 즉 예술작품과 일상적 사물 사이의 구별을 더 어렵게 했다. 모던 예술이 가진 이 존재론적 애매성을 해명하려는 시도가 미국의 철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행해졌다. Danto는 모던 예술작품 중에 물리적으로 일상 생활의 대상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사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Danto는 물리적으로 구별 불가능한 대상들을 하나는 작품으로 하나는 물건으로 만들어주는 차이가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물고 들어간다. 그리고 이를 세 개의 측면에서 해명한다. 1. 제도적인 테두리 / 제도라는 장 물리적으로 동일한 사물의 존재론적인 위상에 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는 작품이 물리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 속에서 비로소 작품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는 사실의 망각에서 넥타이에 푸른 물감을 칠한다고 해도 그것은 제도적인 뒷받침을 받지 못하기에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혹은 다른 말로 하면 이미 피카소가 그것을 했기 때문에 예술작품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 2. 역사적, 이론적 장 / 해석이라는 장 각각 뉴턴의 법칙에서 제1법칙과 제3법칙을 묘사한, 그러나 물리적으로 완벽하게 동일한 작품의 예. 예술작품은 해석의 대상이다. 종종 현대 예술작품에는 제목이 붙어 있고 이것이 가능한 해석의 방향을 암시해준다. 즉 예술작품을 구성하는 데에는 물리적인 속성 외에 거기에 가해지는 해석이 중요하다. 바로 이 점에서 해석을 요구하지 일상의 대상은 해석을 자기 구성의 전제로 갖는 예술작품과 구별된다. 3. 이론적, 역사적 테두리 그리고 제도적 테두리와 함께 예술을 구성하는 factor로서 Danto는 모던 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존재론적 특이성을 언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으로 되돌아가 Danto는 현대예술이 본질적으로 은유적 언술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모던 예술의 전략을 상당 부분 일상 생활의 대상들에 은유적 의미를 줌으로써 그것을 변용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물이 끓는다", 라는 표현 속의 '끓는다'라는 말은 "피가 끓는다"는 문장 속으로 옮겨 놓으면 전혀 색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모던 예술은 이런 식으로 일상 사물을 그것의 익숙한 삶의 실천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집어 넣음으로써 그 사물에 대한 색다른 은유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작품으로 변용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모던 예술의 신비한 유일성을 플라스틱한 설명을 얻게 된다. 특히 앤디 워홀의 <Brillo Boxes>를 예로 Danto는 모던 예술작품의 은유로서의 존재론적 특성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 제10강 모던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비판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한스 제들마이어 / 아놀드 겔렌 ▶ 모던에 대한 보수적 옹호와 비판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성과는 예술적 진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진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미학적 아방가드르에 대한 비판은 종종 예술적, 정치적 반동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모던의 진보 개념의 상실과 함께 그것의 미적 진보성도 의심을 받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모던에 대한 보수적인 비판이 가능해진다. 종종 이 비판이 정치적 반동으로 흘렀지만, 이제는 그 보수적 비판을 편견을 갖지 않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모던에 대한 보수적 비판을 한스 제들마이어와 아놀드 겔렌의 예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하지만 보수주의의 입장에 선다고 반드시 모던에 대해 비판적인 필요는 없다. 가령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같은 사람은 보수주의 입장에선 모던의 옹호자였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인간의 추방" "새로운 예술은 대중에 반대하고 앞으로도 계속 반대할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대중과 무관하다. 아니, 대중에 적대적이다. (중략) 그것은 대중을 두 편으로 가른다. 소수의 친구 집단, 그리고 수없이 많은 적들의 집단으로. 말하자면 예술작품이 두 개의 적대적인 그룹을 가르는 강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섞여 있는 군상들이 두 개의 카스트 계급으로 나뉘어진다." 미학적 모던의 프로젝트에 내재해 있는 이 부정의 가능성을 외려 긍정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는 데에 가세트의 보수성이 드러난다. 사실 모던은 강령상으로는 자가를 혁명적/민주주의적으로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대중을 소외시켜 이해하는 자와 이해 못하는 자의 분리를 낳았다. 그리하여 "대중은 새 예술을 보고 인권이 침해당했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새로운 예술은 고귀한 자, 신경의 귀족들, 본능의 귀족들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분리를 가세트는 동시에 한 시대의 징후로 읽는다. "사회가 정치에서 예술까지 선택받은 자들과 평범한 자들의 두 진영, 두 등급으로 나뉘어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물론 이 현상은 예술에 대한 전통적 이해와의 단절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그 이전의 예술은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든 일단 이해는 되었다. 왜냐하면 예술은 그것의 올바름을 판별할 현실을 동일시의 준거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과거의 음악 역시 베토벤에서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개인적 감정을 노래하는 일종의 멜로 드라마였다. 하지만 모던 예술은 바로 이 전통에 종지부를 찍었다. 한 마디로 예술이 비인간화한 것이다. 이 모던 예술의 강령을 가세트는 이렇게 요약한다. 1) 예술을 인간적 내용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2) 살아 있는 형태는 피해야 한다. 3) 예술작품은 예술작품일 뿐이다. 4) 예술은 놀이이며 그밖의 아무것도 아니다. 5) 아이러니가 주된 예술적 수단이 된다. 6) 가차없는 진정성과 정확한 묘사를 추구해야 한다. 7) 최근의 예술가들에 따르면 예술은 그 어떤 초월적인 의미도 갖지 않는 작업이다. 예술이 인간을 두 그룹으로 분리시켜 사회를 변화시키리라는 희망에도 불구하고, 가세트는 예술이 의미 상실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술은 (중략) 주변으로 밀려났다. (중략) 순수한 예술의 추구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교만이 아니라 겸손이다." 이로써 그는 예술에 초월적 의미를 부여하여 모던의 세속적 종교로 만들려는 시도를 거부하고 있다. 모던의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키는, 준(準)형이상학적 체험에 대한 욕구를 거부한다. 예술은 더 이상 니체가 생각한 것처럼 형이상학적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고 희망을 주지도 못한다. 예술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은 오직 그것의 미학에 대한 지각뿐이다. 이처럼 칸트적 어법으로 예술의 의미 상실, 사회와의 관련 상실을 강조하는 데에서도 우리는 그의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 가세트는 이처럼 (1) 모던 예술의 '사회적 자율성'과 (2) 그것의 '미적 자기 지시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조한다. 한스 제들마이어 제들마이어는 모던 예술을 "중심의 상실"로 규정한다. 하지만 가세트와는 달리 그는 이를 부정적인 현상으로, 즉 문명이 퇴락하는 현상의 징후로 읽는다. "예술의 자율성은 그것의 해체를 위해 필수적인 전주곡이었다." 이렇게 예술의 해체를 말하는 그의 어법은 본질적으로 헤겔의 '예술의 종언' 테제를 문화사적으로 변주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과거의 예술은 교화와 궁정이라는 두 개의 패러다임 속에 유의미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속에서 이 "연속"은 끊어지고 대신 개별화한 요소들의 "병렬"이 들어선다. "병렬=컴퍼지션. 괴테가 싫어했던 말." 이로써 그가 의미했던 것은 구체적으로 회화로부터 건축적인 것의 배제, 도상학의 죽음, 추상화의 경향, 전체성의 예술작품의 종언, 예술들 상호간의 경계의 무너짐, 그리고 장식의 배제였다. 모더니즘 건축가 Loos에게 은총이었던 것이 제들마이어에게는 "죽음"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예술의 자율화와 순수화와 함께 "중심의 상실"을 가져온 또 하나의 요인은 "죽음과 악과 카오스의 묘사"였다. 모던 예술이 죽음과 갖는 밀접한 관계는 파괴에 대한 숭고한 쾌감으로 특징지워진다. (cf. 데리다의 '해체론'과의 유사성에 주목하라.) 제들마이어에 따르면 모던 예술은 인간 실존 앞에 놓인 심연을 내려다 보며 전율하는 게 아니라 외려 그 지옥, 혼돈, 병적 상태로 자기 파괴적으로 뛰어들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던 예술을 '퇴폐예술'로 규정했던 나치 미학과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그 어떤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이 있다. 피상적인 냉소의 놀이가 있다.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데에 예술적 수단을 사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중략) 스스로 기만당한 자들의 기만, 비천한 것의 뻔뻔한 자기 묘사가 있다. 한 마디로 이것은 묵시록의 왜곡상이다." 이 모든 것을 통해 모던 예술에 가장 중심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인간으로부터의 도피. 인간은 더 이상 미적 생산의 대상이나 척도가 아니라는 것. 바로 이 때문에 그는 모던의 예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순수예술이란 그 자체가 이미 구조적 인간적대성의 표현이다. "예술을 평가하는 데에 '순수' 예술적 척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적인 것을 외면하는 이 소위 '순수' 예술적 척도란 진정으로 예술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미적인 척도일 뿐이다. 순수 미적 척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이 시대의 비인간적 특성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고려 없이 자기 자신에 만족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예술작품의 자율성의 선포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그는 모던 예술이 인간적인 것, 정치적인 것, 사회적인 것, 종교적인 것을 예술의 영역에서 몰아내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이로써 그는 미학의 중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를 건드린 것이다. 즉 예술의 생활세계적 관련성, 말하자면 예술과 정치, 예술과 도덕의 관련성의 문제를 다시 미학적 고려의 대상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물론 예술 속에 표현되는 비인간성이 곧바로 현실의 비인간성을 강화시키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모던 예술의 비인간성이 관찰된 이상, 그것을 무턱대고 긍정만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때문에 제들마이어의 진단은 가톨릭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시의성을 잃지 않은 것이다. 아놀드 겔렌 그는 예술의 가시적 특징이 아니라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소위 "도상합리성의 주요이념"에 따라 미술사를 세 단계로 구별한다. (1) 관념적 현전의 예술: 2차적 모티브. 즉 신화, 이념, 역사적 사건, 전설 등의 묘사 (2) 사실주의 예술: 1차적 모티브. 즉 한갓된 대상의 외관의 묘사와 재인식에 주력하는 예술 (3) 추상예술: 2차적 모티브. 1차적 모티브를 모두 상실하고 오직 형식만 남은 예술 겔렌은 이렇게 서구의 예술사를 그림의 의미 내용이 감소하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이를 영혼의 언어 능력의 상실로 규정한다. 이렇게 의미 내용이 감소한 결과 (1) 모던 예술에 특징인 '해설'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말하자면 비평가는 아무것도 의미하는 것을 해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이다. 아울러 (2) 인간과 현실의 접촉이 총체성과 깊이를 상실하는 대신 그 접촉 방식의 폭이 넓어진다. 바로 여기서 모던 예술의 다양성이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발전의 결과 예술은 "미적인 것의 주권성"을 획득하고 "주체의 의미"를 더 강조하게 된다. 객관적 상관자를 잃어버린 모던 예술은 매우 주관적인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 예술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과 실험의 여신이다. 그 결과 현실과 예술은 공히 진지함을 잃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낭만주의적 아이러니와 비슷한 상황이 빚어진다. 즉 진짜와 가짜, 어른과 어린이, 정상과 광기를 나누는 구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완전히 의미 내실을 상실한 모던 예술의 특징을 겔렌은 "말이 없음"으로 특징지운다. 오늘날 예술은 말을 잃고 침묵을 하게 되었다. 아도르노 역시 "말이 없음"(Sprachlosigkeit)을 모던 예술의 특징으로 들었으나, 겔렌에게 이것은 아도르노에게서와는 달리 모던의 긍정성이 아니라 부정성의 징후였다. 겔렌이 이 논의를 펼 때에 모델로 했던 것은 아직 미적, 사회적 긍정성을 갖고 있었던 초기 모던이 아니라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70년대의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예술가가 되기 위해 그냥 시작만 하면 된다고 겔렌은 시니컬하게 말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문제가 따르는 바, 오늘날 박스 종이나 초콜릿 상자 등으로 예술을 시작하려는 사람은 세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한다. (1) 이미 시대에 뒤떨어졌다. 왜? 다다는 이미 1913년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2)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왜? 오늘날엔 누구나 다 예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두기만 하려는 도덕적으로 애매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겔렌의 모던 비판은 제들마이어처럼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며, 여러 가지 면에서 아도르노의 미학과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아도르노에게는 아직 긍정적이었던 현상이 겔렌이 이 이론을 펴던 시대에는 이미 부정적인 것으로 전화한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겔렌의 생각은 모던에 대한 포스트모던의 비판과 통하는 면이 있다. ■ 제11강 모던의 종언? /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 그로이스 / 벨쉬 / 젠크스 / 리요타르 / 푸코 / 자연의 복귀 ▶ 모던의 종언?: 그로이스 모던의 전략은 "새로운 것의 이데올로기"였다. 예술적 모던은 어떤 예술적 문제에 대해 더 나은 해답을 내놓아서라기보다는 새로움의 제스추어를 가지고 등장하기 때문에 평가된다. 이에 대해 보리스 그로이스는 "새로움이란 더 나은 것이 아니라 그저 새로움"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새로움은 더 이상 참된 것의 드러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모던 예술의 핵심교리였던 것, "새로운 것은 늘 더 나은 것"이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뒤엎는다. 나아가 그로이스는 전통을 배제한다는 모던이 실은 그 존립을 위해 전통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노베이션은 살아 있는 전통의 반대 개념이다. 하지만 그 개념은 "문화경제", 즉 문화적 가치 관리체계, 말하자면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를 구별하여 관리하는 체계 속의 한 전략이다. 이노베이션에 목숨을 건 모던도 사실은 '전통'에 의존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지나간 것을 문서화함으로써 이를 "새로운 것"의 기준으로 삼는다. 낡은 것을 반복하는 것은 "잉여적". "불필요한 것"으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이 배제를 위해서 모던은 "전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럼 가치를 부여받는 새로운 것이란 무엇인가? 낯선 것, 이제까지 금지되었던 것, 터부가 되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그동안 축적한 문화적 문서와의 비교 속에서 새로운 것일 뿐이다. 새로운 것이란 한 마디로 사물 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집단적 평가의 산물이다. 새로운 것의 탄생은 가치의 전도를 수반하고, 이 작업은 대개 예술가 담론에 의해 수행된다. 가령 뒤샹의 <변기>는 "예술의 정의"를 물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의 구별을 뒤흔들려는 시도였을 뿐이다. 오늘날 뒤샹의 뒤를 따라서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새로움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박물관에서는 또 하나의 <변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 사이에는 늘 자리바꿈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세속적 공간에 속했던 사물이 이제 예술이 된다. 반면 과거에 예술이었던 것이 이제는 사물로, 길거리에서 팔리는 키치가 된다. 가령 팝 아트는 일상의 사물이 문화적 문서고 속에 편입되려는 노력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바꿈에도 불구하고 다다이스트들이 꿈꾸었던 것, 즉 세속적 공간과 문화적 문서고의 구별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없애려고 하는 모던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문화라면, 더 이상 문화라는 것이 별도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cf. 보드리야르의 '트랑스에스테틱') 마지막으로 그로이스는 재료와의 싸움이 곧 현실과의 싸움이라고 본 모던의 자의식을 공격한다. 발생하는 것은 경계의 소멸이 아니라 경계선 양쪽의 사물들 사이의 자리바꿈이다.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경계는 다시 세워지고, 새로운 경계, 새로운 배치가 발생한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이 경계를 허무는 것을 정치적 실천으로 이해했으나, 문화적 문서고에 받아들여지기 위한 투쟁을 사회적 해방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예술과 삶, 이론과 실천의 구별이 그렇게 쉽게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적 모던의 본질을 이루었던 요소들을 정면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보리스 그로이스는 포스트모던의 멘탈리티에 근접해 있다고 할 수 있다. ▶ 모던에서 포스트모던으로 '포스트모던'이라는 낱말은 장 프랑스와 리요타르가 1979년에 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의 현재의 지식의 상태」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그후 이는 현대 사회의 정신 상태를 일컫는 개념으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던의 본질을 "대서사의 죽음"에서 보았다. 예술의 영역에서 포스트모던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개 다원주의, 전통의 복귀, 예술의 기호적 성격의 부활, 대중성과 소통의 성격 회복과 같은 경향으로 나타난다. 볼프강 벨쉬 독일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던의 대변자 볼프강 벨쉬는 포스트모던의 본질을 "급진적 다원주의"에서 찾는다. 예술적 모던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로 존재했던 것이 포스트모던에서는 의식적인 추구의 대상이 된다. 벨쉬는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그에게 포스트모던은 안티모던이 아니라 "급진적 모던"이다. 포스트모던은 모더니즘과 작별하고 모던을 계속해 나가는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찰스 젠크스 미국의 포스트모던의 대변자 찰스 젠크스는 80년대에 이루어진 건축학적 프로젝트를 예로 들어 그것의 본질이 이질적인 언어들, 다양한 문화적 취향들, 다양한 기능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절충주의"에 있다고 보았다. 또 모던의 기능주의와 형식주의에 반하여 포스트모던의 회화와 건축은 "내용으로 복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울러 전통의 건축 요소의 인용과 함께 전통의 재해석 혹은 이중코드화가 나타나, 아이러니와 다의성과 모순의 효과를 낸다. 한 마디로 포스트모던의 본질은 "다가치성"에 있다는 것이다. 리요타르 리요타르는 버넷 뉴먼의 작품과 칸트의 미학을 원용하여 포스트모던 문화를 "숭고의 미학"으로 규정한다. 현대예술은 "묘사할 수 없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현대예술이 가진 메시지가 있다면 "이 세상에는 묘사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예술은 더 이상 현실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할 수 없을지 모르나 생각 가능한 것이 있으며, 그것은 묘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시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리요타르가 여기서 "숭고의 미학"으로 특징지운 것은 소위 '포스트모던' 계열이 작품이 아니라 모더니즘 예술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푸코 포스트모던의 또 하나의 주제는 삶의 유미화다. 부브너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강화되는 '생활세계의 유미화'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짜증나는 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면 미셸 푸코는 "삶의 유미화"를 적극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는 도덕적 격률이 아니라 미적 원리에 따라 삶을 조직했던 고대인들의 "삶의 예술"을 발견하고, '자기에의 배려', '자기 스타일링', 자기의 도덕을 자기가 만들어 쓰는 미적 윤리학을 근대적 도덕의 강박에서 풀려나올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시험한다. 자연의 복귀 모던은 기술적 진보에 대한 신념이기에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았다. 한때 모든 아름다움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자연이 모더니즘 예술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자연이 미학의 주제로서 복귀하고 있다. 이는 물론 벤야민, 아도르노와 같은 이론적 선구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의 생태미학은 벤야민, 아도르노와 같은 자본주의적 문명을 치유하기 위해 자연의 회복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좀더 절박한 요구, 즉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간의 신체에 곧바로 보복을 가할 정도에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특히 생태미학은 독일의 철학자들에 의해 발전되고 있는데, 게르노트 뵈메는 "분위기"의 미적 가치를 "좋은 삶"이라는 윤리적 관점과 결합시켜 생태미학을 논하고 있고, 마틴 젤은 "관조의 공간", "소통의 장소", "상상의 무대"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자연의 미적, 윤리적 가치를 논한다. ■ 제12강 철학과 도시건축 - 데카르트와 비트겐슈타인 / 포스트모던 건축의 초(超)문화성 예로부터 건축과 철학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일찍이 아리스트텔레스는 철학자를 건축가에 비유하였고, 중세인들은 신의 세계 창조를 즐겨 건축가의 작업으로 묘사하였다. 근대철학의 창시자 데카르트는 철학적 사유를 건축에 비유하였고, 독일 관념론의 선구자인 칸트는 "순수이성 철학의 본래 이념은 건축적"이라고 말하였다. 비록 건축이라는 장을 예술발전의 낮은 단계에 놓았지만, 근대철학의 정점인 헤겔철학은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은유로서의 건축: 언어, 수, 화폐>에서 서구의 형이상학 전체가 '건축에의 의지' 위에 놓여 있었다고까지 주장한다. 실제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형이상학은 모든 지식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토대 위에 체계적으로 쌓아올리려는 '건축에의 의지' 위에 서 있었다. 건축, 그것은 서구 형이상학을 지탱해 온 사유의 이미지였다. 20세기에 들어와 이 사유의 이미지가 붕괴한다. 수학에서는 괴델이 자기 완결적인 건축에의 의지가 수학에서조차 불가능함을 증명해 버렸다. 철학에서는 베트겐슈타인이 이상언어로 세계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리려던 꿈이 그릇된 망상임을 깨닫고 철저한 건축적 원리로 쌓아올렸던 자신의 초기철학을 부정한다. 근대적 '건축에의 의지'를 부정하는 포스트모던의 철학은 이렇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등장하기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포스트모던의 사상적 선구로 여겨지는 니체마저도 건축의 은유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인간이란 "움직이는 토대 위에, 흐르는 물 위에 삶과 사유의 구조물을 건축하는 건축의 천재"였다. 한 마디로 건축의 바닥을 이루는 기초, 즉 철학적 정초주의(Fundamentalismus)는 붕괴하였어도, 움직이는 토대 위에 건축물을 쌓아올리는 인간의 천재성은 살아 남은 것이다. 실제로 포스트모던의 사상들은 니체가 말한 그 건축물을 닮았다. 움직이는 지각, 흐르는 강물 위에서 모빌처럼 움직이는 건축물들. 데카르트와 비트겐슈타인 건축이 종종 철학의 은유로 사용되어 왔지만 정작 철학에서 도시건축에 관한 언급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그 중에 나는 딱 두 가지를 알고 있다. 하나는 데카르트의 언급이다. "오직 하나의 건축가가 기도하여서 성취한 건물은 여러 사람이 각각 다른 목적으로 만든 낡은 벽들을 고쳐가면서 지은 건물보다 훨씬 아름답고 더 잘 정돈되어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조그만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고대 도시들은 한 사람의 기술자가 자기의 환상대로 그린 대도시에 비하여 훨씬 덜 정돈되어 있다. 한편으로 한 기술자에 의해 구상된 도시에서 그 각각의 건물들을 따로 떼어서 생각해 볼 때에도, 만약에 우리가 그 건물들이 어떻게 배치되었으며, 또 크고 작은 집들과 그것들이 꼬불꼬불하고 부정형한 거리를 어떻게 이루고 있는가를 볼 때에, 순차적으로 여러 사람에 의해 발달된 도시보다도 더 기술적이다." (데카르트, <방법서설> 제2부) 한 마디로 여러 건축가의 생각이 모여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진 고대도시보다 단 한 사람의 계획에 의해 체계적으로 건설된 근대도시가 더 질서정연하고, 때문에 더 아름답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시건축을 바라보는 데카르트의 취향을 볼 수 있다. 그가 철학의 '방법'으로 제시한 사유의 이미지는 이렇게 한 사람의 건축가에 의해 통일적, 체계적으로 지어진 질서정연한 계획도시를 닮았다. 이 통일성, 체계성, 인공성이 바로 근대적 인식론적 이상이자 동시에 도시건축을 바라보는 근대의 미적 취향이었다. 재미있게도 이 데카르트의 취향이 수백년 후에 전통과의 과격한 단절을 주장하는 '근대주의(=모더니즘)'라는 형태로 반복된다. 가령 '파리의 구(舊) 시가지를 밀어버리자'고 하였던 르 코르뷔지에를 생각해 보라. 도시건축을 사유의 이미지로 제시한 또 한 사람의 철학자는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러니까 <트락타투스> 시절에 그가 꿈꾼 이상언어는 데카르트주의적인 인공언어였다. 그러나 그의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에서 그는 이와는 전혀 다른 언어관을 제시한다. "우리의 언어는 하나의 오래된 도시로 간주될 수 있다. 즉, 골목길들과 광장들, 오래된 집들과 새집들, 그리고 상이한 시기에 증축된 부분을 가진 집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미로. 그리고 이것을 둘러싼, 곧고 규칙적인 거리들과 획일적인 집들을 가진 다수의 새로운 변두리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8) 도시건축에 관한 데카르트의 언급이 실은 그의 철학적 합리주의의 이미지였듯이, 오래된 도시에 관한 비트겐슈타인의 언급 역시 그의 후기 철학의 은유이다. 위의 언급 속에서 '미로'란 우리의 혼란하기 짝이 없는 우리의 일상언어를 가리키고, 파리의 라데팡스나 서울의 강남과 같은 '다수의 새로운 변두리'는 과학적 필에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형식언어, 즉 수학, 화학, 물리학 등의 인공언어를 가리킨다. 세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 혼란스러운 일상언어를 없애고 그 자리에 질서정연한 인공언어를 만들려고 하였던 르 코르뷔지에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제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근대를 특징지었던 이 언어관을 폐기하고 일상언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철학적 전회는 동시에 건축을 바라보는 그의 미적 취향의 전회이기도 하였다. 이는 그가 이 철학적 전회 후에 자신이 과거에 지은 건물에 혹평을 한 데서 잘 드러난다. 초(超)문화성 최근 철학에서 논의되는 도시건축은 대개 이 이미지를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가령 데카르트가 말하는 근대도시, 초기 비트겐슈타인이 만들어내려 한 이상언어는 한 마디로 '명석 판명함'이라는 근대 합리주의 인식이상의 표현이다. 이 인식이상 속에서는 개별 요소들이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어 명확한 동일성을 가지면서 전체를 관장하는 한 건축가의 계획 아래 질서정연하게 배열된다. 여기에는 타자의 시각이 끼여들 여지가 없고, 전체에 부합하지 않는 이질적 요소들도 없다. 이 근대적 인식이상이 또한 근대의 '문화' 개념이었다. 실제로 근대 민족국가 시대에 '문화'는 한 민족, 한 언어의 정체성으로 규정되고, 밖에서 들어온 요소는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흐리는 불순물 내지 이물질로 여겨져 간단히 배제되곤 하였다. 그리하여 근대의 '문화' 개념은 한 문화의 안쪽으로는 강한 동질성을 요구하면서 밖으로는 배타성을 띠고 있었다. 그 예를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우리 사회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이 심한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오래된 도시'를 사유의 이미지로 받아들이면 문화에 대해 이와는 좀 다른 관념을 갖게 된다. 한 마디로 문화의 순수성, 동질성에 대한 강박을 가진 폐쇄적인 단일문화가 아닌 다양한 요소들이 공존하며 다른 이질적 요소들에 개방된 다문화(Kultikultur)의 개념이 발생하는 것이다. 가령 비트겐슈타인의 도시 속에는 옛 도심이 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사후에 증축된 구역이 있으며, 외곽에는 계획에 따라 지어진 근대주의 건축의 구역이 있다. 여러 문화의 층위가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 도시의 삶은 더 이상 과거 민족국가 시대처럼 단일문화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이미 다양한 문화의 층위가 혼재한다. 포스트모던은 하나의 단일한 언어로 도시 전체를 획일화하는 데에서 벗어나 이렇게 이미 다양하게 분화하여 공존하는 여러 문화의 층위들을 고려한 새로운 도시건축을 지향한다. 독일의 미학자 볼프강 벨쉬는 이 다문화의 공존을 '초(超)문화성'이라 특징지으며, 이것이 현대건축에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밝힌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가령 페이(I.M.Pei)가 보스턴에 세운 <존 행콕 보험사옥(John Hancock Insurance Company)>(1966~1976)은 미국식 마천루에 아시아적 취향을 가미한 복합언어를 사용한 건물인데, 각자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각 계층의 사람들에게 고루 상찬(賞讚)을 받는다고 한다. 두 번째는 재미있게도 르 코르뷔지에의 <카펜터 시각예술센터(Carpenter Center for Visual Arts)>(1963)이다. 하버드대학교 주변에 세워진 이 건물은 하버드대학교의 다른 건물들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전형적인 르 코르뷔지에의 양식을 고집하며 서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이 건물이 다른 건물과 대조를 이루면서 모종의 초문화적 분위기를 풍기고, 바로 이 일탈이 그러지 않았으면 지루하였을 대학의 건물들에 생기를 준다는 것이다. 세 번째 예는 파리에 있는 장 누벨(J.Nouvel)의 <아랍세계연구소>(1987)이다. 이 건물 벽에 달린 수많은 렌즈들은 적정량의 일광을 건물 안에 받아들이도록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조리개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렌즈들은 하이테크의 산물로 읽히는 동시에 아랍의 전통적 문양으로도 읽힌다. 한 마디로 페이의 작품은 한 건축물 안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은 다른 건축물과의 앙상블 속에서, 장 누벨의 건물은 동일한 요소의 이중적 독해 속에서 각각 초문화성을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초문화성의 원칙이 도시건축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 지를 밝힌다. 이제까지 포스트모던에 관한 논의가 개별 건축물으로 이루어져 왔고, 그것을 도시건축에까지 확장시키는 논의는 아직 존재하지 않기에 그의 논의는 아직 추상성을 벗지 못한다. 어쨌든 그에 의하면 미래의 도시는 "이행의 가능성을 허용하고, 다의성을 포함하며 통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미래의 도시는 자기완결적이며 폐쇄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소통의 망들이 교차하는 지점이 되어야 한다. 즉, 토박이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거기에 사는 사람에게도 정체성을 주어야 한다. 근대의 도시건축에서는 토박이들은 그 안에서 오나전한 정체성을 갖는 반면 타향인들은 그곳을 고향으로 느끼지 못하였다면 미래의 도시건축은 이 구별을 없앤다는 것이다. 이 개방성이 도시 고유의 얼굴을 지워버릴지 모른다고 특정한 고향의 이미지를 연출하는 시도는 역사적 퇴행일 뿐이다. 물론 미래 도시의 초문화적 정체성에도 코스모폴리탄적인 요소와 함께 지역적 요소가 공존하기에 미래에도 도시건축가는 여전히 지역적 정체성의 족쇄 속에 집어넣어 획일적인 정체성을 창출하지 말고 끊임없이 다른 정체성의 내용과 형식에 문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우리의 근대 이것이 최근의 철학에서 도시건축을 논하는 방식 중의 하나이다. 이 논의가 기호학과 언어철학에서 도시건축에 접근하는 방식이라면 여기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또 하나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생태론적 통찰에서 얻어진 시각으로 도시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논하는 방식이다. 물론 그 어느 것이나 우리 사회와는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진 서구에서 도시건축을 논하는 시각이므로 그것을 곧바로 우리 현실에 대입하여 우리의 도시를 읽을 수는 없다. 우리의 도시를 읽는 데에는 좀 더 면밀한 경험적 관찰을 통한 패러다임의 수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철학만의 힘으로는 어렵고 철학과 건축학 사이의 학제간 연구를 필요로 할 것이다. 우리의 수도는 지난 40여 년간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근대화의 역사를 기록한 텍스트이다. 한국에서 '근대성'의 개념을 얻으려면 바로 이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 구시가를 흔적도 없이 밀어버린 서울은 한국적 근대의 반(反)전통주의가 얼마나 극단적이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똑같은 형태와 색깔로 도배가 된 얼굴 없는 도시의 획일성은 근대의 기능주의적 극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극단적 '근대'는 근대건축의 유일한 장점조차 갖지 못한 듯하다. 즉, 옛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신도시 서울에는 심지어 계획성조차 없어 보인다. 바로 이것이 한국적 '근대'의 얼굴이다. |
출처 : 화타 윤경재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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