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간의 재편과 감수성의 변화
- 2005년 문화적 사건들 / 오창은
I. 머리말- 문화적 사건과 감수성
문화의 세기에 국가의 문화정책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짐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의 전체 정책 분야에서 문화정책은 여전히 주변부의 위치에 머물고 있다. 참여정부의 2년을 평가하는 정책보고서를 보면 대체로 정치와 경제 분야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고, 문화정책 분야는 교육, 노동, 여성, 복지, 보건을 다루는 사회정책 분야에서도 소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문화정책은 일반적으로 예술정책, 혹은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정책으로 인식되거나, 사회의 재생산 과정에서 교육과 노동, 복지와는 별도로 구별되어 특정한 문화예술가에 한정된 것으로 인식된다. 문화와 교육과의 관계, 문화와 노동과 복지와의 관계는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정책이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정부 정책가들 사이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른바 한류 문화가 아시아 전역에 확산되고 문화의 산업적, 외교적 가치의 중요성이 새삼 각인되면서 국무총리실 내에 한류 확산을 위한 대책위원회와 자문위원단이 구성되는 등 문화정책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류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은 문화가 정치 경제의 부속물이나 수단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를 아우를 수 있는 매개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류의 지속적 확산 사례를 통해서 문화정책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문화정책의 부분적인 가치만을 인정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문화정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은 한류의 예처럼 문화가 경제적, 외교적 역할을 뚜렷하게 담당하는 경우에만 집중된다. 문화정책은 문화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일련의 과정이 개인의 문화적 삶의 행복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문화정책의 외연을 넓히는 노력들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참여정부가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적인 성과는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물론 참여정부 출범 후 신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창동 전장관의 노력으로 문화정책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그 외연의 폭과 다양성을 넓혀나갔다. 이창동 전장관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나름의 차별적이고 소신 있는 계획들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법과 조직의 변화가 있었다. 2004년은 이창동 전장관 취임 이래 새롭게 만들어진 문화예술정책들의 계획들이 가시화되는 첫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창동 전장관이 취임 이래 문화관광부가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이 민간 분야의 문화정책 참여를 높이는 것과, 내부의 조직틀을 혁신하는 것, 그리고 문화정책의 외연을 확대하고 유사한 영역을 연계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취임 초기부터 15개 분야에 걸쳐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양한 TF팀을 구성했고, 문화관광부의 내부 부서의 명칭을 변경하고 역할을 대폭 조정했으며, 문화와 교육, 문화와 정보통신, 예술과 산업을 결합하는 다양한 정책기획을 만들었다. 또한 장기적인 문화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 문화비전 과제들을 담은 「창의한국」과 「새예술정책」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참여와 자율의 정책 기조에 맞게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은 이제 앞으로 3년의 기간 동안 구체적인 실행계획들을 현실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본 글은 참여정부의 문화정책이 2년째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초기에 설정했던 문화정책의 기조와 계획들이 얼마나 잘 실현되고 있는가와 앞으로의 발전전망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한다.
II. 미디어 산업과 포털사이트
현대사회에서 ‘이미지’ 자체가 사건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또, 사건은 이미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2005년 1월 중순에 발생한 이른바 ‘연예인 X파일 사건’은 ‘이미지’가 어떻게 사건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제일기획이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작성한 ‘연예인 X파일’은 인기 연예인 99명에 대한 ‘개인 정보’를 데이터 베이스화한 보고서 형식의 문건이었다. 이 문건은 비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유출되어 수많은 누리꾼들의 컴퓨터로 전송되었다. ‘연예인 X파일’은 1) ‘제일기획’이 여론조사기관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한 문건이어서 대중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2) 99명의 인기 연예인의 세세한 정보를 A4용지 113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담고 있어 풍부한 자료적 가치를 지녔고, 3) 정보공유의 기술적 환경인 인터넷 홈페이지, 이메일, 메신저, P2P(개인간 파일 교환 프로그램)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유포되면서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다. 동서리서치사 직원의 안이한 정보관리가 계기가 되어 퍼지기 시작한 문건이, 연예인의 개인정보와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는 주요한 사건으로 부각된 것이다.
데이터 자체로서 ‘연예인 X파일’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우선, 이 문건은 보편적 인권에 대한 고려 없이 작성되었다. 애당초 연예인을 ‘상품가치’에 따라 분류하려는 의도로 작성되었기에, 인권에 대한 고려가 있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이 문건은 사실 확인조차 되지 않은 ‘떠도는 소문’까지 수록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문제는, ‘연예인 X파일’과 관련한 윤리적 비난의 화살이 누리꾼들에게 향했다는 데 있다.
대중은 연예인을 대상화시켜 응시하면서, 동시에 질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응시와 질시의 중첩은 단지 대중들의 이중적 태도에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매스 미디어 산업 자체가 문화 소비자인 대중의 의식을 분열시킴으로써 소비욕망을 자극하려는 체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매스 미디어 산업 시스템 아래에서 소비대중도 연예인 및 스타와 같이 상품으로 간주되곤 한다. 대중은 미디어 산업이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제공되는 이미지에 대한 평가를 내림으로써 취향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즉, 시청률과 선호도 같은 데이터가 상품 생산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시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디어 산업의 작동방식 때문에 연예인들은 대중의 시선에 과잉노출되도록 강요당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내면성까지 상품화해야 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들은 각종 연예프로그램, 토크쇼 등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세한 일상과 사생활을 드러내곤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대중은 스타의 일상을 소비하고, 스타의 이미지를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즉, 연예인을 둘러싼 매체 환경이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마모시키면서 소비하도록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이미지의 소비와 착취과정에서 어떤 연예인들은 복합적 요인에 의해 감성의 상처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2005년 초에 발생한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상품을 소비하는 대중은 ‘자주적 소비자 주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산업의 작동방식에 문제를 제기함은 물론,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의 ‘좋고 나쁨’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디어 산업의 생산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용자들이 의식적으로 소비방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 ‘연예인 X파일’과 관련해 거대 미디어 권력으로 변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을 주목하게 된다. 처음 ‘연예인 X파일’이 인터넷상에서 유포될 때, 신문과 방송은 누리꾼 개인의 윤리문제로 사건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인터넷을 접속하자마자 거쳐가는 포털사이트(네이버ㆍ다음ㆍ네이트ㆍ엠파스ㆍ야후 등)에서 자극적인 기사를 제공받았다. 더군다나 이들 포털사이트들은 연예인 X파일의 출처를 명기한 댓글들을 방치하거나, 그 내용을 은연중에 언급하는 글들을 게재해 접속자 수를 늘렸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포털사이트는 거대 미디어 권력화되고 있다. 포털사이트들은 초기에 인터넷 검색과 메일 서비스에 국한된 사업을 했다. 그러다가 카페ㆍ블로그에 대한 서비스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더니, 최근에는 언론 미디어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이들 포털사이트들은 형식적으로는 주요 언론사의 뉴스를 제공받아 누리꾼들에게 서비스하는 듯한 외양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뉴스에 대한 가치평가라고 할 수 있는 편집권을 행사하고 있다. 즉, 정보생산 자체보다 정보가공에 주력함으로써 누리꾼들의 행위와 가치판단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당대의 문화적 사건들이 포털사이트의 정보제공을 통해 발생하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연예인 X파일’을 비롯해, 개똥녀 사건, 부실도시락 파문 등이 포털사이트를 통해 일파만파 확산되었다. 2005년의 인터넷 논쟁의 중심에 섰던 ‘개똥녀 사건’의 경우, 처음에는 ‘윤리적 비판’ 정도의 수위에서 제기됐던 사건이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거치면서 ‘집단 폭력의 형태’로 변질된 대표적 경우이다. 6월 5일 인터넷 사이트에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오히려 승객들에게 욕설을 한 여성의 사진과 이야기가 올라왔다. 이에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의 분노가 폭발해 급기야 인터넷상에서 사진 및 실명 공개 등 인권에 대한 폭력행위들이 곳곳에 발생했다. 이 사건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은 포털사이트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네이버에 올라온 ‘개똥녀’ 관련 기사의 경우 5시간 만에 1만 3천여 개나 되는 댓글이 달리면서, 전체 인터넷상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선정적인 포털사이트의 뉴스 편집으로 인해 개인의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못한 채 무자비한 ‘사이버 마녀사냥’이 자행된 것이다.
천만 명이 넘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포털사이트들은 천적없이 무성생식하는 생물처럼 과대성장하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개체증식할 뿐만 아니라, 거대권력으로서의 영향력까지 갖춘 포털사이트들은 언론 미디어의 공적 기능을 공공연히 행사하고 있다. 2005년에 발생한 ‘연예인 X파일’ ‘개똥녀 사건’ 등은 포털사이트들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리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시민사회의 합의를 통한 포털사이트의 법적ㆍ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언론 영역의 공공성 확대 방안을 시급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 미디어 권력의 문화적 영향력에 의해 대중의 의식이 잠식되고 조작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III. 돌발적 노출 사건과 인디음악 10년
2005년은 한국에서 인디밴드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인디음악은 1994년 7월 홍대 앞 클럽 ‘드럭’이 문을 열면서 조그만 씨앗이 뿌려졌다. 이후 1995년 4월 5일에 커트 코베인 1주기 추모공연이 클럽 ‘드럭’에서 개최되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크라잉넛이 활동을 시작했고, 노이즈가든ㆍ언니네이발관ㆍ옐로우키친 등의 밴드가 홍대 주변 클럽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무엇보다, 인디음악의 첫 레이블이라 할 수 있는 베드테이스트의 ‘원맨밴드…베드테이스트’가 바로 1995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음반을 고려할 경우, 1995년은 한국 인디밴드가 태동한 해로 기록될 수 있다.
한국 인디음악 10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광명음악밸리 축제 때 ‘한국 인디뮤직 10년사’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형식으로 비교적 조촐하게 치러졌다. 그런데 2005년 7월 30일 MBC TV 가요 프로그램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카우치 멤버 알몸노출사건’이 그것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홍대 주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수많은 인디밴드들이 타격을 입었다.
MBC 생방송 ‘음악캠프’는 음악성을 인정받은 인디밴드를 초청해 공개적인 활동무대를 제공했다. 인디음악이 클럽을 벗어나 공중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된다는 측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인디음악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의 잔잔한 호평을 이끌어낸 바 있다. 7월 30일 공연에는 인디밴드 중 펑크음악을 대표하는 밴드인 ‘럭스’가 초청되었다. 펑크 뮤직을 하는 밴드는 크루(동료 음악밴드 혹은 열성팬들)를 대동하고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 럭스는 ‘카우치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그런데 두 명의 카우치 멤버가 생방송 도중 4초간 ‘알몸을 노출’시켰고, 이것이 그대로 방영된 것이다. 충격적인 방송사고로 지칭되는 ‘카우치 알몸노출 사건’은 약 45만 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카우치 멤버들은 공연이 끝난 후 조사를 받으면서, ‘때와 장소를 잘못 선택해 표출한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사과했다. 인디밴드나 펑크음악은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카우치의 알몸노출 사건은 인디밴드들의 저항적 행위라고 보기에는 너무 돌발적이었다. 갑작스런 알몸노출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위협받았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성기노출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는 ‘폭력적인 위협’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카우치의 알몸노출’은 한 인디음악 밴드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충격을 가하려 했던, 그래서 물의를 일으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서울시와 경찰 등 이른바 공권력의 대응방식이다. 서울시는 사건이 있은 후 바로 “퇴폐공연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서울시 산하 공연 여부에 반영”하겠다고 발표했고, 경찰도 “홍대 근처 클럽에서 퇴폐공연 사실이 확인될 경우 공연음란죄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건이 있기 전까지 서울시는 홍대 부근 클럽 거리를 ‘서울 100대 명소’로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카우치 멤버 알몸노출 사건이 발생하자, ‘블랙리스트’를 거론하며 홍대 클럽문화를 억압하려 들었던 것이다. 이는 홍대 클럽을 출입하는 이들을 예비 범죄자 집단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홍대 주변 클럽들은 일시적으로 냉각되었고, 클럽운영자ㆍ음악인ㆍ문화기획자들은 ‘홍대 앞 음악인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야 했다.
홍대 근처 클럽에서 활동하는 인디음악인들은 싱어송라이터들인 경우가 많다. 인디음악인들은 젊은 감성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인디음악인들은 ‘주류로 진입하기 위한 대기자 집단’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분명히 반대한다. 이들은 주류 대중음악에서는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예술적 실험을 감행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인디음악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될 때,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성이 제고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한국 인디음악의 가능성은 지난 10여 년 동안 클럽운영자ㆍ음악인ㆍ문화기획자들이 합심해 홍대 주변에 ‘젊은 문화예술의 해방구’를 조성했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홍대 부근의 자유로운 기풍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홍대 거리 미술전’으로 이어져 한국 문화예술의 중요한 수원(水原)이 되고 있기도 하다. 문화예술은 통제되고 관리되는 순간 파릇파릇한 생동감을 잃고 시들어버리고 만다. ‘카우치 멤버의 알몸노출 사건’은 돌발적인 문화적 사건이었지만, 인디음악 10년을 맞이하는 즈음에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환기점을 제공했다는 부수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와 함께 2005년에는 예술가ㆍ연예인ㆍ영화인들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자극하는 여러 사건들도 발생했다. 우선, 조각가 고(故) 구본주씨에 대한 법정 소송이 예술계의 중요한 이슈였다. 구본주씨는 2003년 9월 29일 교통사고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처음에 보상문제로 유족과 보험사인 삼성화재 간에 소송이 벌어졌는데, 이 사건은 점차 ‘예술가의 법적 지위에 관한 논쟁’으로 확산되었다. 보험사측은 고인이 된 구본주씨가 건물의 대형 상징물을 제작하는 육체노동에 종사했기 때문에 전문예술가 경력을 인정할 수 없고, 수입도 도시일용 노임에 준해서 책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정년도 60세로 보아야 한다고 밝혀 예술가들의 공분을 샀다. 보험사측의 주장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예술가의 사회적ㆍ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예술의 가치를 무시했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갔다.
‘조각가 故 구본주 소송 해결을 위한 예술인 대책위원회’(구본주 대책위)가 구성되고, 서울 을지로 삼성화재 앞에서는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넉 달 동안이나 1인 시위가 진행되기도 했다. 결국 삼성화재는 문화예술인의 문제제기로 인해 항소를 취하하고, 고 구본주씨에 대해 5-9년 예술전문가 경력을 인정하고 정년도 65세로 하는 데 합의했다. 이 사건은 1) 예술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통념을 확인함으로써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지위에 대해 성찰하게 했다는 점 2) 평소 문화예술계를 후원한다고 자처하는 거대자본이 이윤창출 논리 속에서 얼마나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불어 3) 예술가들 스스로 자본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4) 예술가들이 공공영역 속에서 사회적 실천을 지속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연예인들의 위태로운 지위에 대한 문제제기도 대중문화계의 화제였다. 이른바 ‘웃찾사 노예계약 파문’이 그것이었다. 2005년 5월 11일 SBS TV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 출연하는 14명의 개그맨들은 소속 매니지먼트사인 스마일매니아(대표 박승대)의 ‘불공정 계약’을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했다. 신인 개그맨이라는 약자적 신분에 있던 이들 개그맨들은 어쩔 수 없이 계약금도 받지 못한 채, 계약기간이 15년이나 되는 노예계약을 매니지먼트사와 체결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1주일 만에 개그맨들과 매니지먼트사의 화해로 봉합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지만, 한국 연예계의 어두운 그림자가 대중에게 공개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양적으로 급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소비하는 대중의 문화적 수준도 질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다. 그런데 연예인을 관리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불공정하기만 하다. 이 때문에 몇몇 영향력 있는 연예기획사나 소수의 전문 매니지먼트사가 신인 연예인을 착취하는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의 이윤논리를 앞세우는 강자들의 잔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연예인을 포함한 관련산업 종사자들이 ‘조합결성’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이 돋보인다.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2005년 12월 15일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을 결성해 영화인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영화노조에는 조감독, 조명ㆍ촬영 스태프 등 각 직종에 종사하는 123명의 영화인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영화노조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합리적 영화제작 환경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 영화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예술계의 잘못된 관행은 ‘오래된 습관’처럼 곳곳에 온존해 있다. 잘못된 관행 속에 숨어 있는 부조리한 제도들은 순수한 열정을 지닌 젊은 문화예술인의 창조성을 억압하고 있다. 2005년에 돌발적으로 발생한 다양한 문화적 사건들은 ‘사회적 통념’이 어떻게 자유로운 정신을 옥죄는가를 적절히 증언한다. 문화예술영역도 다른 사회영역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인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예술 활동은 ‘자신의 내면뿐만 아니라, 인간의 숙명과 싸우는 행위’라는 언술을 새롭게 되새길 필요가 있을 듯하다.
IV. 공간의 재구성과 생활의 재편
한국의 도시화는 1960-70년대에 ‘광적인 집중’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급격히 이뤄졌다. 과도한 도시집중 양상은 인구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서울인구는 1959년에 2백만이었다가 1972년에는 6백만으로 늘어났는데, 이는 13년 만에 세 배로 증가한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도시의 제반시설 확충은 인간중심의 문화적 관점보다는 효율 중심의 공학적 관점이 중시되었다. 공간의 확장은 사적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윤추구를 위해 이뤄졌고, 공공의 공간은 확충되기는커녕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아직도 한국사회는 도시공간의 공공성 확충 및 문화적 재편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도시공간이 문화적으로 재편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공간이면서 사적 공간이기도 한 ‘허(虛)의 공간’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허의 공간’으로는 도시민들이 자유롭게 모였다 흩어질 수 있는 공원ㆍ광장ㆍ노천카페ㆍ개방형 마당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허의 공간’은 시민사회의 민주적 합의와 사적 자본에 대항하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 확충될 수 있다.
2005년은 미흡하나마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공간의 문화적 재편이 이뤄진 해였다. 10월 1일, 청계천이 복원되어 시민의 품에 돌아온 것이다. 서울인구가 2백만 남짓이었던 1958년에 복개되었던 청계천이 2005년 서울 인구 1천만 명을 넘어설 즈음 복원된 것이다. 47년 동안 갇혀 있던 물길이 열림으로써 한국 도시는 문화 감성을 회복하고, 생태ㆍ역사 복원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청계천 복원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청계천 복원 개장 첫날(58만 4000명)과 둘째날(60만 7000명)에 방문자가 120만 명에 이르렀고, 복원 10일 만에 300만 명이 방문해 엄청난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복원 58일 만인 11월 27일에 서울시 인구에 맞먹는 1천만 명이 방문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청계천 복원은 ‘2005년 최고의 히트상품 1위’(삼성경제연구소)로 꼽히면서, 이명박 서울시장을 대선 예비후보 1위의 자리로 올려놓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모두가 청계천 복원의 긍정성을 이야기했던 2005년의 시점에서 더 냉정하게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청계천 복원은 도시공간에 대한 문화적 재편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일궈냈다. 근대화 이후 한국의 도시개발은 공공성의 확대와는 거리가 먼 경제적 관점 하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 이후 한국 도시공간은 문화와 환경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청계천 복원 이후 많은 자치단체들이 생태복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실제로 성북구와 성남시는 성북천 복원계획과 단대천 복원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둘째, 속도를 중시하던 근대적 태도가 인간 중심의 문화적 향유권을 중시하는 탈근대적 태도로 전환했다. 도심 속에 형성된 5.8㎞의 산책공간은 도심의 허파 구실을 했다. 사람들은 몸으로 직접 도시를 체험함으로써 도시에 활력과 애정을 불어넣고 있다. 인간의 활력이 살아 있는 도시는 지하철과 같이 시선이 배제된 채 공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곳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직접 몸으로 산책하고, 보고, 만지고, 느끼는 곳에서 도시공간은 생동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청계천 복원은 시민들이 도시의 속살을 직접 헤집으면서 몸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는 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
셋째, 청계천 복원이 생태ㆍ역사 복원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비판되어야 한다. 현재의 청계천은 ‘인공조경하천’으로 복원되어 도시의 스펙터클만 강조하고 있다. 복원 공사에 3600억 원 이상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70억 원의 유지관리비를 청계천에 들여야 한다. 이는 상류의 지천을 함께 복원하지 않고 일단 물만 흐르게 하자는 발상이 초래한 부정적 효과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청계천의 복원은 현 지배질서가 자신의 권력의지를 작동시켜 정돈된 형태로 도시를 재개발한 것일 수도 있다. 청계천 복원이 도심에 인공조경하천을 조성해 시민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돈의 힘으로 물을 흐르게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넷째, 시민의 의지에 따라 ‘허의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서 직접 민주주의의 다양한 요소들이 가미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생태적 순리를 역행하면서, 스펙터클과 이벤트성을 중시해 한강물을 역으로 끌어와 흘러보내는 방법을 채택한 것은 시민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예전보다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강화되기는 했지만,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서울시가 보인 ‘불도저식 추진’은 시민단체의 타당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시민사회가 행정당국자의 밀어붙이기식 추진을 적절히 제어했다면, 청계천이 훨씬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생태적ㆍ역사적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추진된 청계천 복원이 공공의 합의 절차를 적절히 거치지 못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계천 복원은 ‘공간의 성격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실천이 필수적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앞으로 도시 속 ‘허의 공간’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와 생태를 중심으로 도시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은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로서 자리잡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장소 마케팅’을 통해 공간을 상품화하려 하고 있고, 인위적 환경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오히려 생태환경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고 있다. 실제로 ‘청계천 복원’을 즈음해 곳곳에서 도시공간의 성격변화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2005년 6월 18일에는 뚝섬에 35만 평 규모의 생태공원인 ‘서울 숲’이 개장했고, 10월 18일에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개관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6위 규모로서 개관 44일 만인(휴관일 제외) 12월 16일에 관람객 100만 명을 돌파해 현대인의 문화적 욕구가 얼마나 높은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추상적 공간을 자신의 체험이 깃들인 구체적 장소로 만들려는 현대인의 욕구는 어떤 식으로든 문화 향수권에 대한 폭넓은 주권선언으로 나아갈 것이다. 도시공간에서 문화적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삶의 쉼표 역할을 할 수 있는 ‘허의 공간’을 시민적 실천을 통해 확충할 필요가 있다.
V. 문화다양성 협약과 한류의 미래
2000년 1월, 한국 문화관광부는 안재욱ㆍ엄정화ㆍ베이비복스 등의 음악을 수록한 중국어 버전 ‘한류(韓流) 송 프롬 코리아’ 6000장을 제작해 음악방송과 음반제작사 재외공관에 배포했다. 마침 5인조 남성 댄스그룹 HOT가 그해 2월 1일 베이징에서 공연을 가졌고, 이 공연이 중국 청소년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국언론은 HOT 중국공연을 보도하면서 ‘한류 송 프롬 코리아’에서 따온 용어인 ‘한류’를 신조어로 차용했다. 여기에서 유래한 ‘한류’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일고 있는 한국 대중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의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한류’는 2000년 이래 매년 한국 문화계를 결산하는 핵심어로 등장한다. 2004년에는 ‘겨울연가’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2005년에는 ‘대장금’이 중국인들을 밤을 잊은 TV 시청 열풍으로 빠져들게 했다. 중국 전체에서 시청이 가능한 후난(湖南) 위성TV가 9월에 방영한 ‘대장금’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먹거리를 중국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도 ‘대장금’은 외국 드라마로는 드물게 8%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한류를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만 사고하는 것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의 한류가 문화의 상호교류가 아니라, 일부 스타연예인 위주의 ‘깜짝 열풍’일 수도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통념은 한류가 얼마만큼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는가, 혹은 스타들의 상품가치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가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2005년을 예로 들면 한국 주요 언론은 방송 프로그램 수출액이 1억 2349만 3000달러에 이르렀다는 사실 등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한류를 경제적 부가가치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태도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2005년은 한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강렬하게 요구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 중심적 사건이 바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 협약) 체결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문화를 교역 및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사고하는 한국적 인식에 문제를 제기한 의미있는 사건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2005년 10월 22일 체결된 이 조약은 한국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가 가하는 문화적 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세계문화인들의 대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협약은 “다자간 양국간 통상협정에서 문화상품을 예외로 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 등이 자본집약적으로 만들어진 세련된 문화상품을 앞세워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 협약의 취지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은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가능성을 문화의 영역에서 구현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제적 사건인 ‘문화다양성 협약’은 ‘한류’와 연결되면서 복잡하고도 미묘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간 ‘한류’를 바라보는 시선은 ‘문화상품의 교역’ 혹은 ‘문화민족주의’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한국 문화예술계는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입니다’라고 외치면서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쳤다. 여기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한국 문화예술계는 미국의 주류 영화산업에는 저항하면서도, 아시아권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찰 없이 환호하기도 했다. 이제, ‘한류’를 단지 문화산업ㆍ문화상품의 영역에서만 사고할 것이 아니라, 소수문화까지를 포함한 문화다양성 존중을 통한 인간의 삶 자체를 풍요롭게 하는 데로 이끌 필요가 있다.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소수의 창조성을 존중하고, 각국의 특수성을 인정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은 일방주의적 문화식민주의를 견제하고, 세계 각국이 다문화정책을 통해 문화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앞으로 한국사회도 ‘자문화의 다양성 보존’ 뿐만 아니라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문화적 존중’을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류’를 긍정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문화간 상호교류주의’(interculturalism)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문화정책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교류는 몸으로 체험하고, 정신으로 교감함으로써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문화상품의 외양을 띠고 있더라도 교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영역에 속하는 ‘가치체계/의미체계’이다. 이 가치체계/의미체계가 문화적 권력을 동반한 ‘문화민족주의’적 성격을 띠게 되면, 문화를 수용하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저항민족주의’가 태동하게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에서 한국드라마의 수입통제를 추진한다든지, 일본에서 혐한(嫌韓) 감정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도 주체적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중화애국주의나 일본의 우익적 파시즘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아시아 각국에서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한류에 대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이 고이면 물고기는 죽고 만다. 한류가 지속적인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한국 내에서 베트남ㆍ인도네시아ㆍ싱가포르 문화가 자유롭게 소통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불어, 한국은 이제 정책적 차원에서 아시아 각국의 기초예술을 지원하고, 문화산업의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VI. 맺음말- 문화적 감수성의 변화와 정서적 연대의 가능성
미국의 문화연구자 존 피스크는 “대중문화는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피스크의 이러한 주장은 문화 수용자들의 자율적 의지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화수용자 대중이 문화산업과 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더욱 전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현대의 대중은 보편적 윤리의식에 따라 행위를 한다기보다는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우발적이고 변화무쌍한 사건에 더 열렬히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현대의 대중은 다원화된 매체 환경에서 다층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다층적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려는 기득권층의 의지는 여전히 강렬하다. ‘연예인 X 파일’에 대한 책임을 불특정 누리꾼들의 윤리문제로 전가하려는 언론권력의 태도나 포털사이트에 권력의 의지를 개입시키려는 지배층의 태도, 그리고 카우치 알몸노출사건 이후 홍대 근처의 클럽을 단속하겠다고 나선 공권력의 태도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표면적으로 피스크의 주장처럼 현대사회의 문화적 사건은 대중이 만들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중의 취향과 감수성에 개입하려고 하는 문화산업 자본의 ‘권력의지’와 ‘자본의 논리’가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사회에서 문화적 텍스트(사건)의 생산ㆍ유통ㆍ소비는 불분명하면서도 비가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문화텍스트의 생산과 유통과정에는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통해 문화제국주의적 태도를 관철시키려는 일방주의가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의 권력의지에 따라 도시공간을 재편하려는 정치적 야욕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대중의 욕망ㆍ즐거움ㆍ취향은 자발적으로 분출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의 의지’에 의해 조작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 사건이 모두 기억할 만한 의미있는 문화적 사건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적 여건을 고려할 때, 대중의 자율적 판단능력과 비판적 힘은 지속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분석적 성찰과 의미화가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산업과 문화생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중(문화수용자)의 감수성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일까. 감수성은 다양한 매체 환경 속에서 대중의 취향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현대인의 감수성은 즐거움과 접맥하면서 창조적 욕망, 환상, 유행, 일상생활의 패턴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 즐거움의 양태가 생산적 감수성과 접맥하지 못하고 소비적 유희의 영역에서 방치된다면, 자본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문화산업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현대 민주주의의 심화 발전을 위해서는 수용자들의 자율적 판단의지를 강화하는 감수성 변화와 문화적 실천을 매개할 수 있는 다양한 소규모 공동체의 정서적 연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이러한 정서적 공동체는 각 문화집단 혹은 사회집단의 정체성 형성의 핵심적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의 대중은 문화향수권의 강화를 위해 즐기되 선별적ㆍ저항적으로 지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수용자의 태도를 ‘저항적 즐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서 수용자들이 자신의 자율성을 강화하면서, 감수성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ㆍ실천적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하나의 길일 수 있다. 현대사회를 ‘대중 이후의 시대’라고 했을 때, 대중적 포퓰리즘에 거리를 두면서도 민주주의 원칙을 구현하는 실천은 여전히 진행형의 과제로 남아 있다.
◈ 筆者 : 오창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 중앙대 인문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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