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 전하지 못한 사랑의 편지

ddolappa 2008. 2. 10. 10:46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5> 전하지 못한 사랑의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 황동규, 즐거운 편지

 

 

 


전하지 못한 사랑의 편지

 

 

 


지난 주 무한도전을 시청하며 이상하게 느껴졌던 점은 전체적인 구성에 있다. 보통은 감동에 무게가 실린 최코디의 에피소드를 끝에 배치해서 웃음으로 시작해서 긴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게 버라이어티의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주에 다시 등장한 하하의 집 방문기를 시청하면서, 차라리 이번 주는 <특전사 특집>으로 전체 에피소드를 구성하는게 나았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융드옥정"은 여전히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했지만 앞 선 특전사 도전기가 훨씬 재미있었던 탓에 김옥정 여사의 떡국 요리 과정은 차라리 따분함마저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무리 재기발랄하더라도 예순을 바라보는 연세의 일반분이시고, 무한도전 멤버들의 다소 오바스러운 리액션조차 없었다면 주책맞다는 빈정거림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지루하다 싶을 만큼 무리하게 연장된 두 편의 방문기는 마치 이제 곧 화면 밖으로 사라지려는 누군가를 애써 붙잡아두려는 몸짓으로 느껴졌고, 그가 떠남과 동시에 융드옥정 역시 더 이상은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될 일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재하는 멤버를 다시 떠올리게 할 물건이나 주변인물들을 화면에 다시 등장시키는 일은 시청자들에게도 무한도전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김태호 피디를 비롯한 무한도전 식구들의 하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자연인 하동훈은 짧은 훈련 기간을 마치면, 출퇴근을 하며 군복무를 할테고,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과도 사석에서 어울릴 테고, 연인 안혜경과도 여전히 사귀고 있을 테지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는 텔레비전 속 세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점차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서 하하로서의 하동훈은 사라져갈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잘 견디어낸 부재란 망각에 다름 아니니 말이다.

 

 

 


이별의 고통은 떠나간 자의 것이 아니라 항상 살아서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애도의 의식은 부재하는 자를 추억하는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부재하는 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이다. 그래서 아마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그와의 이별을 실감하게 되었을 때, 오래 된 앨범을 펼쳐 보듯 이번 에피소드들의 영상을 우연히라도 다시 보게 된다면 김태호 피디가 하하에게 전하는 따뜻한 목소리를 시청자들 모두가 알아 듣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사랑의 편지는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 것이다.

 

 

 


설원 위에 울려퍼진 웃음의 심포니

 

 

 


무한도전의 영상들은 때로는 버라이어티쇼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 정도의 이질적인 화면들을 담아낸다. <뉴질랜드 특집>의 경우처럼 눈 덮힌 설원의 서정적이고 정갈한 풍경을 보여주기도 하고, <썩소 앤 더 시티>의 경우처럼 세련된 편집을 통하여 복잡한 대도시의 역동적이고 분주한 모습들을 화면에 담아내기도 한다. <특전사 특집> 역시 마찬가지다. 도입부에서 눈의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숨죽이고 있는 고즈녁한 자연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면, 설원을 가로지르며 새하얗게 질주하고 있는 개 썰매의 모습은 때로는 원거리에서 또 때로는 근거리에서 촬영된 영상들과 그 뒤로 흐르는 경쾌한 음악을 통해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흔히 무한도전을 말할 때 편집 기술과 자막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만 다양한 정서적 효과를 연출하고 있는 영상들 역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이다. 어쩌면 웃음과는 직접적으로 아무 상관이 없지만 웃음과 웃음 사이의 빈공간을 채우고 있는 이런 시각적 효과들 덕택에 무한도전이 전달하는 웃음들은 보다 다양하게 채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무한도전의 독특한 영상 언어들은 때로는 육체의 언어나 자막의 언어와 결합하여 보다 큰 울림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가령, 특전사 요원의 근육질 몸 앞에서 헬스로 단련된 유재석의 육체가 무기력하게 무너져내리며 "예상 못한 19금"의 장면을 연출하는 순간, 유재석은 차라리 "단칼에 끊기는 힘든 비디오"의 유혹 앞에 굴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또한 박명수가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에서 "의욕저하를 노린 역정 섞인 앓는 소리"을 목구멍 밖으로 끄집어 내며 달려들지만, 단 한번의 떠밀림에 나가떨어지는 모습은 "가슴 시린 명절 고려장"일 뿐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의 어떤 장면들은 서로 다른 옥타브를 가진 여러 목소리들이 서로 충돌하는데서 커다란 웃음을 만들어낸다. 멤버들의 둔탁한 육체의 언어는 자막의 경쾌한 언어들과 만나 공중으로 솟구쳐오르고, 이에 뒤질 새라 영상의 언어는 두 언어들이 서로 부딪치는 순간을 집요하게 쫓아가서 포착해낸다. 그래서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에게 선사하는 웃음은 화려한 심포니를 닮아 있다.

 

 

 


모두가 즐거워지는 유쾌한 놀이의 한마당

 

 

 


개그콘서트 류의 코미디 프로가 주어진 단 몇 분간의 시간 내에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하기 위해 적게는 일주일 많게는 수개월 가량의 시간을 집중 투자한다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웃음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프로그램이 된다는 점에서 보다 느슨한 시간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형식 모두 팀원들 간의 호흡과 친밀도가 중요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사적 친밀도가 프로그램 전체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방송 외적인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 비해 라인업이 뒤처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팀워크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그건 방송계의 최고의 입담꾼 중 하나의 신정환을 두고 보더라도 그렇다. <라디오스타>나 <기적의 승부사>에서 신정환은 물 만나 고기처럼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지만 유독 라인업에서는 침울하기까지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건 그의 재담을 받아줄 만큼의 능력을 갖춘 상대가 라인업에는 부족하기 때문이고, 프로그램 자체가 출연진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무한도전은 강명석이 "거인의 어깨를 가진 플레잉 코치"라 부른 유재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멤버들이 일단 상황이 주어지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장면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가령 <눈 밭에서 라면 찾기>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정말 경이적이라는 느낌까지 들게 만든다. 멤버들은 화면 이곳저곳에서 새롭게 조합을 이룰 때마다 매번 새로운 상황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눈 속에 숨겨진 라면을 찾아내는 장면은 이미 <무인도 특집>에서 모래에 감추어둔 열쇠를 찾아내는 게임의 변형이지만 겨울과 눈이라는 새로운 조건에 따라 만들어내는 이야기 또한 달라지고 있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새로운 식구로 이번에 소개된 노홍철의 매니저인 "똘이" 역시 첫 출연에도 불구하고 제 대리에 걸려 넘어지는 몸개그,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 남 탓하는 캐릭터를 쏟아냈는데, 이는 그 이전에 형성된 사적인 친밀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주의 요리 혁명가" 김옥정 여사가 흥겨운 기분에 들떠 모든 노래를 순식간에 대박송으로 변형시키고 "가사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나보낼 수 있었던 까닭 역시 꾸준한 만남이 만들어온 인간관계에 그 핵심이 있다. 무한도전 팀의 놀라운 친화력과 친근감은 이처럼 매니저나 코디, 피디나 카메라 감독, 작가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무한도전의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서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시청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놀이의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 무한도전의 무한 매력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