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6> 나는 왼손잡이야
논란을 넘고, 편견을 넘어서
무한도전은 이제 이 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이는 무한도전이 오락 프로그램으로서는 예외적으로 시청율 30%를 육박하는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고 무한도전이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대한민국의 모든 여론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만도 아니다. 무한도전은 이제 우리 사회의 금기나 편견들에 과감히 도전을 해서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한 진단일 듯싶다. 물론 그 때문에 무한도전의 열혈 팬들은 혈압약이라도 챙겨놓고 그들의 행보를 지켜봐야만 하는 부작용을 낳긴 했지만 말이다.
공익으로 군복무를 하는 내가 그렇게 부끄러워?
유승준 사건과 그 뒤에 연이어 터진 연예인 군 비리 사건으로 인해 군대를 미필한 젊은 남자 연예인들에게 군대는 방송에서 함부로 거론하기조차 부담스러운 사안이 되어버렸다. 싸이가 항소를 거듭 하다가 끝끝내 재입대라는 법원의 판결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이나 성시경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한번 쯤 생각해볼 만한 문제제기였음에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상황은 쉽게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을 몰랐을 리 없었을 무한도전이 군입대를 앞둔 하하에게 콘서트를 열어준다고 하니 여론이 들끓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하철과의 대결에서도 멤버들 중 유일하게 승리할 정도로 건강한 하하가, 폐가 안 좋다면서도 흡연을 하는 하하가, 집안이 그리 못 사는 것 같지도 않은 하하가 현역도 아닌 공익으로 군 입대를 하면서 마치 해외 파병이라도 가는 듯이 유세를 떠는냐는 게 비판(비난)의 대체적인 여론이라면, 하하가 군대를 간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지난 2년 간 그가 무한도전을 통해 팬들로부터 받은 많은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번 게릴라 콘서트가 개최되었다는 게 그를 변호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하하를 비판(비난)하는 사람들이나 옹호하는 사람들 모두 공유하고 있는 몇 가지 전제조건들이 있는데, 그것은 군대는 공익보다 현역이 훨씬 고되다는 것과 국민 개병제가 원칙인 우리나라에서 신체 건강한 남자가 군대를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크게 유난을 떨 것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런 기준들이 정말 당연한 것들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개인의 신체적 조건 및 경제적 여건에 따라 차등을 두어 군 복무를 하게끔 되어 있는 현 군입대 제도가 공평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면, 문제는 잘못 운영되고 있는 제도 자체이지 국가 기관에 의해 등급 판정을 받은 개인이 아닐 것이다. 또한 그것이 현역이든, 상근이든, 공익이든 국가가 정한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이행하려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등급에 따라서 입대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결코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 형식이 어떤 것이든 개인의 사적인 이익을 일정 부분 포기를 하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차별화되어 평가된다면, 그것은 그러한 차별화를 만든 제도의 문제이자 잘못된 가치체계를 내면화한 공동체의 문제이다.
따라서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같은 유명인들이 군입대를 할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군입대 제도와 사회적 시스템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몇몇 개인들을 희생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군 입대를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켜왔지만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희생제의는 계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군대 제도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의 미성숙성을 반영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국가 경영자들이나 사회적 지도층들이 국민들의 권리보다는 의무와 희생만을 강조하는데서 만들어진 왜곡된 가치체계일 뿐이다.
힘없는 서민의 아들들이 내세울 수 있는 평등의 잣대라고는 국방의 의무밖에 없는 사회, 그나마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아들들이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들에게는 공정하게 집행되지도 않는 제도의 규제를 받는 사회, 그래서 네거티브 평등주의만이 유일한 척도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폐쇄회로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어 본다면, 현역이든 공익이든 군입대 자체를 칭찬하고 환영하는 사회가 보다 바람직한 사회가 아닐까? 나는 하하의 게릴라 콘서트를 시청하며 문득 그런 세상을 꿈꾸어 본다.
김종민과 하하
나는 김종민이 군 입대 직전 출연한 <놀러와>에서 한 가지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건 김종민이 일찍 아버지를 여위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순간이었는데, 그 사실보다 놀라운 것은 <X-맨> 때부터 다년간 김종민과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던 유재석이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처음 듣는 이야기에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던 장면이었다. 김종민은 <만원의 행복>에 출연해서 자신이 예능 프로그램에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유재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적도 있고,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 소문이 나있던 유재석이었기에 그 때의 그 장면은 나에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절친해 보이는 연예인들이라고 해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내가 텔레비전에서 김종민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건 <1박2일>에서였던 것 같다. 동해의 바닷가에서 김종민은 다른 멤버들과 장난을 치며 촬영을 하다가 다른 촬영 때문에 그 곳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방영되었는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쉬워서 머뭇거리면서 껌벅이던 그의 순박한 눈방울이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잘 다녀오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무엇에 쫓기듯 부랴부랴 촬영장을 떠나던 그 장면이 군입대 직전에 그가 남긴 마지막 모습이었다.
개인적으로 김종민이라는 연예인을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지만, 위 두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던 까닭은 화려한 쇼비지니스의 세계 뒤에 있는 차가움과 야박함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유재석이나 <1박2일> 제작진의 잘못이 아니라 연예계의 어떤 풍토로 인한 결과로 풀이된다.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마다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항상 최선을 다 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재석은 6년 동안 단 한 차례의 휴가조차 다녀올 수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이고,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란 결국 그가 일을 하며 스치듯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서로의 속내를 보여주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그가 지석진, 김용만, 박수홍, 남희석과 같은 개그제 동기들과 자주 만나서 수다를 떨며 회포를 푸는 것도 어쩌면 자신만의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편이라 여겨진다. 또한 <1박2일> 제작진도 김종민의 스케줄이 허락된다면 분명히 좀 더 많은 시간을 김종민에게 할애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예능 오락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던 김종민이었기에 그처럼 무성의해 보이는 작별 인사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물론 사석에서야 얼마든지 다른 동료들로부터 격려 인사를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시청자들이 그의 군입대 사실을 모를 정도로 조용히 사라져버린 것은 김종민 개인에게도 또한 그를 사랑했던 팬들에게도 조금은 섭섭했을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풍토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소모되고 있을 뿐이라는 자괴감이 들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드라마나 영화를 찍는 배우들은 작품을 남기게 되고, 그 작품을 통해 기억되지만, 웃음을 만드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반면에 하하와 무한도전 출연자들에게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은 특별한 경험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일주일에 4번의 촬영도 마다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동고동락하는 사이인 그들에게 서로는 단순한 비지니스적 관계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관계의 수준을 넘어서서 마치 친혈육과 같은 관계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꾸준히 성장을 해오며 형성된 이러한 유대감은 시청율 4%에서 시작해서 30%의 시청율을 자랑하는 오늘날까지 거의 4년이 다 되는 시간을 함께 해온 제작진이나 시청자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연자들이나 제작진 그리고 시청자 모두가 가족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이런 경험이야말로 다른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 느낄 수 없었던 <무한도전>만의 자산이며, 무한도전을 시청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게릴라 콘서트>가 하하의 군 입대 때문이 아니라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한도전>과 함께 해온 그가 시청자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표현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하하가 눈물을 흘린 까닭이 입대 때문이 아니라 무한도전 팀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김태호 PD가 팬들에게 가수로서 기억되고 싶어 하는 하하의 소망을 이루어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는 사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들에게는 사실이나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만을 진실로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왜 게릴라 콘서트에 콘서트가 없을까?
무한도전이 방영되는 토요일이면 언제나 찾아오는 손님인 배국남 기자가 오늘 역시 잊지 않고 기사를 들고 찾아왔다. 이번에는 <'무도-게릴라 콘서트'에 콘서트 없는 이유?>란 기사를 썼는데, 방송 내용을 단순히 요약한 기사도 아니고 상투적인 비난을 적어놓은 기사도 아니고 시청자들이 한번 쯤 생각해 볼 만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기자로서의 감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는 게릴라 콘서트에 콘서트가 없는 까닭을 2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왜 게릴라 콘서트에 콘서트가 없었을까. 이것은 콘서트 형식으로 프로그램을 꾸미는 것보다 콘서트 직전에 거리 홍보 등으로 웃음을 줄 수 있는 상황 연출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대에서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는 콘서트는 프로그램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웃음을 줄수 있는 여지가 좁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의 시청률도 참조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 ‘게릴라 콘서트’제작진은 방송될 당시 “거리 홍보나 콘서트 직전 이벤트를 할 때에는 시청률이 좋았으나 막상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는 콘서트가 진행되면 시청률이 추락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부분도 ‘무한도전’16일 방송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배국남의 기사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그는 그토록 오랫 동안 무한도전을 시청해왔음에도 왜 아직까지 무한도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이다.
우선 그는 첫 번째 대답부터 이번 에피소드의 기획의도 자체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무한도전은 <하나마나 행사 특집>, <강변 북로 가요제>, <Thank you Concert> 등에서 다양한 콘서트 형식을 이미 사용해왔기 때문에 얼마 안 되는 고정 레퍼토리를 게릴라 콘서트에서 다시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 만큼 식상한 것도 없다. 따라서 <게릴라 콘서트>가 콘서트 자체보다 거리 홍보에 보다 더 비중을 두게 되었다는 사실은 맞지만, 그것이 웃음을 줄 수 있는 상황 연출이 많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무한도전의 애청자라면 금방 눈치를 챘을 것이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촬영일도 아닌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모여 하루 종일 한 끼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추위에 떨면서까지 서울시내 거리를 누비며 홍보활동을 하는 모습을 비중있게 다룬 까닭은 그 과정 자체가 하하와 팬들에 대한 무한도전식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게릴라 콘서트> 편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하하를 비롯한 무한도전 멤버들이 순간순간 가슴 가득히 차오르는 이별의 슬픔을 억누르며 의도적으로 더욱 밝고 경쾌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은 슬픔에 겨워 심장이 터지더라도 겉은 웃고 있어야만 하는게 광대의 숙명이다. 김태호 PD가 콘서트 장면을 과감히 생략한 이유는 광대의 사명에 가까운 이러한 숙명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입영하기 전날까지 시청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하하의 모습을, 그와의 마지막 촬영을 함께 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다 오랫 동안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훈련병에게 보내는 뒷담화"를 서슴지 않는 박명수의 악담마저 무한도전의 세계에서는 하하에 대한 그만의 사랑의 표현이자 이별의 아픔을 나타낸다.
이러한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배국남은 기존의 "게릴라 콘서트" 컨셉트에 따라 무한도전의 이번 에피소드를 끼워맞추어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배국남에게 삭제된 장면은 단순히 시청율 추락을 막기 위한 장치로밖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 억눌러왔던 석별의 슬픔이 진하게 표현되고 있는 생략된 장면은 그 때 그 곳에 모인 무한도전의 팬들을 위한 것이지 텔레비전을 통해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보다 넓은 시청자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반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에 기대하는 것은 재미와 즐거움이지 눈물과 감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큰 웃음 뒤에 감추어진 그들의 눈물을 느낄 수 있는 시청자라면 콘서트 현장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더라도 이번 에피소드가 전하는 감동에 전율했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가장 큰 적은 누구인가?
나는 이미 "무한도전과 그 적들"이란 주제로 2편의 글을 썼고, 이제 무한도전의 주적이 누구인가를 밝히고자 한다. 여러분들이라면 무한도전의 가장 큰 적을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무한도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찌라시 언론들인가? 아니면 무한도전을 네거티브 마케팅 전략에 이용할 정도로 교활한 3류 드라마 작가인가? 아마도 무한도전의 또 다른 적들로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이라는 포맷을 차용하거나 무한도전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부 경쟁 프로그램과 공식 석상에서 엉터리 시청소감을 밝힌 보좌주교, 그리고 무한도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딴지를 걸고 싶어하는 무한도전의 안티세력들도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한도전의 숭례문 기부 논란과 이번 하하의 군입대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며, 무한도전의 가장 큰 적은 이들 모두가 함께 뒤엉켜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쇼 프로그램으로 이해하자면 "리얼 막장 버라이어티"라 불릴 만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좋은 일에 기부하는 일도 오해와 비난을 살 뿐이고, 삼성이 보여주듯 잘못을 해놓고도 아직까지 사과 인사 한마디 없는 뻔뻔함이 통용되는 곳이고, 대통령 당선자의 경우처럼 책임을 져야만 하는 사람이 도리어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는 곳이다. 하지만 남 탓하는 캐릭터는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웃음을 유발하지만 현실에서는 분노와 고통을 유발할 뿐이다.
새해 벽두부터 무한도전은 현실이라는 단단한 벽과 우리사회의 편견들에 맞서서 마치 돈키호테처럼 싸움을 걸기 시작했다. 물론 때로는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기세로 보았을 때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혹자는 나의 이러한 해석이나 거침없는 무한도전의 행보를 놓고 지나친 오버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도무지 무슨 속셈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악마같은 김태호 PD의 거침없는 행보를 놓고 보았을 때, 나같은 리뷰어도 있어야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재미가 더욱 배가되지 않겠는가.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과 너그러운 시선을 가지고 무한도전이 나아가는 길을 지켜본다면 웃음에 담겨 있는 톡 쏘는 신랄함마저 감미롭게 느껴지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 무한도전이 걷게 될 가시밭 같은 그 길 위에서 지쳐 쓰러질 지언정 결코 포기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2년 2개월 후에 하하가 제대하고, 박명수의 앞머리가 다 벗겨지는 그 날까지.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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