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8> 서른, 그들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인도로 가는 길
인도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데이비드 린 감독의 <인도로 가는 길>(1984)이라는 영화가 있다. 1924년에 발표된 E.M.포스터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이 영화는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받고 있는 인도에서 과연 영국인과 인도인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하지만, 영화의 끝부분에서 그러한 희망은 한낱 헛된 꿈임을 인도인 의사 아지즈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보여준다. 내가 이 영화에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인상적인 장면은 아지즈가 영국인 처녀 아델라와 함께 미라바의 동굴을 가기 위해 산에 오르는 장면이다. 아지즈는 산행에 힘들어 하는 아델라를 위해 손을 내밀지만,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아지즈의 도움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는 그녀가 인도라는 피식민지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점차 동화되어 가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은유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는 고도로 계산된 은유적 장치를 통해 영국의 식민지배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그래서 이 영화는 한 동안 영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었다.
내가 오래된 영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고 있는 까닭은 무한도전의 인도 특집 시리즈가 은유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편에서 무한도전은 낯설음을 주된 주제로 삼고 있다. 인도에 도착해서 숙소로 이동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매캐한 매연 속 낯선 풍경의 인도"라는 자막은 곧바로 이어지는 하하의 나레이션("무한도전 멤버쉽에 가입했을 때도 이렇게 낯설었는데....")과 일종의 은유적 관계에 놓인다. 다시 말해 인도라는 나라의 낯설음은 하하가 무한도전의 멤버로 처음 출연했을 때의 낯설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인도 시리즈 2편에 해당하는 이번 에피소드는 정준하와 노홍철의 불화로 표현되는 갈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반목하게 된 원인이 다름 아니라 낙타에 올라탄 정준하가 낙타의 등 사이에 가랑이가 끼어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노홍철이 실컷 비웃었다는 데 있다고 설정되고 있는데, 갈등의 원인 치고는 조금 웃기지 않는가. 즉 코미디에서나 통용될 법한 이러한 유치한 설정은 사건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이를 통해 의도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해석의 단서는 정형돈이 정준하와 노홍철의 "화해하길 바래"를 지켜보며 하하와 손까지 붙잡고 비웃으며, 옛날 우리 같다고 말하는 데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니까 정준하와 노홍철의 갈등이라는 것도 과거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를 암시하기 위한 은유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인도에서의 일찍 일어나길 바래는 뉴질랜드 특집에서의 그것을, 뉴델리 기차역에서 하하의 셀프 카메라는 동해 가스전을 향한 배 위에서의 그것을, 바리나스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의 멤버들 간의 대화는 2006 연말 시상식 직후 박명수의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또한 인도의 재래시장을 돌아다니며 제한된 시간 내에 각자에게 알맞는 상품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는 게임은 서울 구경 선착순 특집을 연상시키고, 노홍철이 수염을 깎는 벌칙을 받는 장면은 과거 노홍철이 벌칙으로 파머를 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이번 에피소드에는 과거 무한도전이 경험했던 수많은 도전들을 연상시키고 있고, 그것은 인도 특집 2부가 무한도전의 역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인도 특집 1부가 하하의 시점에서 자아와 무한도전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면, 2부는 유재석의 나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이 제 3자의 시선에서 무한도전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성찰 대상은 정준하와 노홍철의 갈등 관계에서 들어나고 있듯이 나와 너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의 인도 시리즈는 "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서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반성으로 그리고 마지막 3편에서는 "우리"의 문제로 성찰 대상이 확장되고 있다. 이번 에피소드의 마지막에 등장하고 있는 "1+1+1+1+1+1+1=1"이라는 자막은 인도 특집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주제가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가 되는 여섯 멤버들의 돈독한 우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할 최종 목적지가 삶과 죽음의 교차로인 갠지즈 강이라는 사실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하하를 떠내보내는 슬픔은 이제 다가올 변화의 시간을 맞이하는 무한도전의 굳은 의지로 탈바꿈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 형제여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 그러나, 나.... 너와 함께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 너와 맞이할 변화에 가슴이 벅차다."
무한도전 in 인도, 인도 in 무한도전
무한도전의 인도 체험기는 4박 5일 간의 긴 촬영기간 답게 다양한 인도의 풍물을 소개하는데 많은 시간이 할애되고 있다. 투명한 아침 공기를 뚫고 솟아오른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이 인상적이었던 로디가든이나, 노홍철이 양치질 대용으로 질겅질겅 씹던 자작나무 가지, 빈 라덴을 닮은 인도의 요기(Yogi)로부터 배우는 요가와 명상, 우리와 비슷한 푸근한 인심을 엿볼 수 있었던 재래시장, 노홍철의 얼굴 윤곽을 한층 뚜렷하게 드러나게 했던 거리의 이발 체험 그리고 멤버들 간의 진솔한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던 기차 여행까지 무한도전 멤버들은 마주치는 인도의 풍물들과 사람들을 무한도전화시키거나 스스로 인도화되는 모습을 통해 문화적 차이를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다.
인도의 요가를 순식간에 차력쇼로 변형시켜서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들은 이미 "대단한 도전"과 같은 오락 프로그램들에서 보아온 것이지만 무한도전은 그것을 편집과 자막의 힘을 통해 무한도전만의 고유한 것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가령 무한도전 멤버들이 앞으로 허리를 굽힐 때 일제히 '아' 하는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허리를 뒤로 젖힐 때 '어' 하는 소리를 내는 장면을 편집을 통해 대조시키면서 반복해서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아' 다르고 '어' 다른 무한도전 비명'이란 자막을 삽입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같은 몸개그라도 무한도전의 그것이 특별하게 보이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다. 또한 햄버거 놀이로 인해 맨 밑바닥에 깔리게 된 정준하와 정형돈의 모습을 "빅버거 바닥엔 고기 패티가 2장"이라는 자막으로 표현한 장명, 박명수와 정준하가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보여주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닭 뒷걸음 치다 소 잡는 격"이라고 표현한 장면, 가부좌를 틀고 앉은 박명수의 모습을 "너무 잦은 해탈로 많이 늙은" "성인 하찮은"이라고 표현한 장면 등등은 다른 프로그램들이 따라오기 힘든 무한도전만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자막과 편집의 힘은 마침내 박명수의 썩은 개그마저 구원(?)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다. 유재석이 갠지즈 강이 어디 옆에 있냐고 묻자 박명수는 안양천이라고 대답을 하게 되는 데, 이때 아련하게 울려퍼지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배경으로 실망스러운 멤버들의 굳은 표정들이 정지한 잿빛 화면으로 교차편집되면서 박명수의 대답 자체보다 그것을 비웃는 화면 편집이 웃음을 유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폭발력이 강했던 장면으로 꼽고 싶은 것은 유재석과 박명수 개그 콤비가 보여주는 인도 의상쇼였다. 물을 잔뜩 묻혀 2:8로 가른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형형색색의 "인도 최신 팬션 룩"(?)을 입고 나타난 그들의 모습은 웃음을 위해 스스로 망가지길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가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 두 "인도 최고 Hot guys"이자 "쇠락한 인도 귀족 자제"인 "메 뚜기만 and 박명 수끼"가 인도의 이국적 음악에 맞추어 호들갑스럽게 춤을 추는 장면은 단순히 무한도전의 편집내공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낯선 사물들을 순식간에 자신들의 개그 소재로 변형시키는 그들만의 감각적인 유머 감각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한도전의 팀워크가 잘 발휘된 또 다른 장면은 거리의 이발사에게 노홍철이 수염을 깎는 장면이었다. 인도의 재래시장에서 2인 1조로 캐릭터에 맞는 물건을 사오는 게임에서 정준하와 짝을 이루었던 노홍철이 가장 꼴지를 하는 바람에 벌칙으로 면도를 해야만 했는데, 그 장면은 자막, 편집, 애드리브, 노홍철의 액션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강도 높은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그 장면에서 노홍철이 인도인 이발사에게 자신의 수염은 소중하다며 마이 하트를 연달아 외치자 M본부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뉴하트를 패러디해서 "곧 보게 될 돌+아이의 뉴하트"란 자막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발사가 면도할 부분에 꼼꼼히 면도 거품을 바르자 면도를 마치 수술에 비유하듯 "여기저기 꼼꼼히 집도하실 계획"이라고 표현한다. 이어서 이발사가 본격적으로 면도를 하기 위해 꺼내든 칼을 보자 노홍철이 잔뜩 겁을 먹고 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칼로 해, 칼로 해 하며 부르짖자 "그렇다고 닭 털 마냥 뽑을 수는 없잖아"하는 자막으로 응수한다. 면도가 시작되자 체념한 듯 노홍철이 이발사에게 자신의 얼굴을 맡기는 모습을 자막은 "슬슬 해탈 아닌 해털의 경지로" 라며 재치있는 언어 유희를 선보인다. 여기에 정형돈이 끼어들어 점점 노홍철이 얼굴이 커지고 있다며 짖궂게 비웃자 그제서야 다른 멤버들도 노홍철의 얼굴에서 숨어 있던 1인치를 찾았다는 둥 특대 사이즈 하관이 발굴되었다는 둥 수다를 떨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이발사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맡긴 노홍철의 얼굴을 클로즈 업하며 "하지만 평온한 얼굴 - 인도 길거리에서 구한 도(道)"라는 반어적 표현을 통해 그가 아직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달하며 웃음을 주고 있다. 면도를 마친 노홍철이 마침내 거울을 통해 수북히 잘려나간 자신의 수염과 그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자신의 하관을 확인하게 되고, 이에 분개해 따발총처럼 불만을 털어놓자 홀로 남겨진 노홍철을 카메라가 비추며 "홍철이는 지금 수염도 잃고 명예도 잃고 소녀떼도 잃었다"는 유재석의 나레이션이 담담하게 흐르며 이 장면이 완성된다.
분석을 통해 드러나고 있듯이 수염을 깎는 단순한 행위를 통해 웃음을 전달하는 과정이 대단히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소들 중 어느 하나가 빠져버린다면 전체의 구조가 와해될 정도로 복합적으로 결합된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인도 편 최고의 명장면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안에는 무한도전의 특징을 포괄하는 거의 모든 요소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웃음의 핵심을 포착해내서 재빨리 언어로 표현하는 정형돈의 개그 감각이다.
살리에르와 정형돈
개인적인 생각으로 정형돈은 무한도전 내에서 유재석을 제외하면 거의 유일하게 상황 전체의 핵심을 파악하고 재빨리 적절한 멘트를 던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번 에피소드만 하더라도 정형돈은 김태호 피디가 정준하가 2명을 들 수 있다고 말하자 이거 점점 차력으로 변하잖아요, 이러다 마지막에 각목으로 때리고 그런 거 아니예요 하고 말한다. 그의 말에 따라 화면 하단에는 "인도 차력 특집"이란 자막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정준하의 차력쇼를 보며 이제 약만 팔면 되겠다며 추임새를 넣었던 것도 정형돈이었다.
정형돈은 또한 박명수가 명상의 시간을 남 탓하는 시간으로 변질시키자, 이거 폭로전이잖아요 하고 제일 먼저 지적한다. 그리고 하하가 재래시장에서 각자의 캐릭터에 걸맞는 물건을 사오자고 제안하자 최악의 물건을 구해온 팀이 벌칙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물건 사오기 배틀을 완성시킨 사람 역시 정형돈이다.
이런 정형돈이 갠지즈 강을 향하는 기차 안에서 자신의 고민이 살리에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고백한 장면은 조금 의외였다. 그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비롯해서 연예계에는 모차르트처럼 너무나 뛰어난 재주꾼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은 살리에르처럼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차라리 그런 모차르트들을 뒤에서 받쳐주고 빛낼 수 있는 피아노 같은 도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자신의 겸손함을 표현하고 있는 정형돈의 이 말을 한 언론은 다음처럼 곡해해서 받아들이고 있다.
<정형돈, 그 자신은 주변에 천재가 너무 많다고 했다. 모두가 모차르트고 자신은 살리에르라고 했다. 즉 살리에르의 심정이란, 질투와 열등감의 표현이다. 존재하지 않는 살리에르 증후군을 굳이 간단명료하게 표현하자면 ‘질투와 열등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정형돈이 “모차르트의 피아노가 되겠다”고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꺼낸다. 질투와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타인을 위한 도구가 되겠다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을 표현한다? 아마도 정형돈은 살리에르를 잘 못 이해한 모양이다.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피아노를 원하지 않았다. 어쩌면 모차르트를 동시대에 살게 만든 하늘을 원망했을 것이다.>(정형돈, 살리에르 증후군 알고 말한거야? 데일리 서프라이즈)
아마도 이 기사가 내가 이번 주에 무한도전에 관해 읽었던 가장 황당한 기사가 아닌가 한다. 도대체 이런 저급한 소양으로 어떻게 기자가 되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우선 정형돈의 수사를 정확히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정형돈이 말한 살리에르는 천재에 버금가는 재능이 부족해서 만년 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피아노 같은 도구란 수사는 자신의 부족한 재능을 인정하고 보다 능력있는 사람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다짐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위 기사에서 정형돈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꺼냈다고 비난하는 까닭은 모차르트라는 은유를 피아노란 은유와 동치시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 기사는 살리에르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등장하게 만든 <아마데우스>(1984)란 영화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듯이 보인다. 그 영화는 극작가 피터 쉐퍼가 1979년에 쓴 동명 시나리오를 각색한 영화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살리에르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이라기 보다 천재의 재능을 흠모하면서도 질투하는 범인을 나타내는 허구적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살리에르란 인물의 특성은 기사에서 표현되고 있듯이 "질투와 열등감"이 아니라 천재의 재능에 대한 범인의 "동경과 질투"라는 양가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베토벤에게 존경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음악가였던 살리에르를 이처럼 동경과 질투라는 양가적 감정에 시달리는 인물로 재해석한 것은 전적으로 원작자인 피터 쉐퍼의 독창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살리에르가 모차르트의 피아노를 원하지 않았다거나 하늘을 원망했을 거란 기사의 표현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와 문화적인 교양이 없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쓰레기 같은 글쪼가리를 과감하게 전송할 수 있었던 인터넷 언론의 만용에 가까운 용기이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대놓고 용감하게 돌진하는 모습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정당한 비판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이해의 과정마저 건너뛰고 칼을 빼들고 달려드는 모습은 흡사 척살을 사주받은 암살자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살수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일까?
서른 살,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간
기본적으로 연예 오락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사는 시청자들에게 채널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 이외에 일정 부분 프로그램을 홍보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연예오락 기사는 일종의 광고로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한 프로그램의 시청율은 곧바로 해당 방송사의 광고수익으로 연결되는데, 특정 프로그램의 시청율이 지나치게 높을 경우 그 시간대에 해당하는 다른 경쟁 프로그램들은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무한도전이 너무나 오랫동안 시청율을 독식해왔다는 데 있다. 그사이 S본부에서는 10억대의 설비비가 들어간 <바이킹>, 일본의 인기 프로그램 포맷까지 사왔던 <작렬! 정신통일>마저 소리없이 사라졌고, 무한도전과 유사한 형식의 <라인업>을 새로 내세웠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기사는 한 줄도 읽을 수 없었고, 기자들이 나서서 그 프로그램의 허물을 덮어주고 있는 경우조차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기자들이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고 있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마저 정해주는 기사까지 등장했다는 점이다. "독백정수-막말구라-깐족정환 ‘라인업’ 캐릭터 뜬다"(뉴스엔 김미영 기자)와 "‘라인업’ 규라인-용라인 히스토리 ‘라인’은 어떻게 만들어졌나?"(뉴스엔 이현우 기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무한도전 vs 라인업의 대결구도가 어느새 무한도전 vs 1박2일의 경쟁관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S본부야 상업방송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시청료를 강제로 걷어드리고 있는 공영방송인 K본부의 프로그램을 언론이 나서서 홍보를 해야하는 까닭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가령 지난 2월 19일 내가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올라온 1박2일 관련 기사를 검색한 결과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프로그램과 관련된 다른 기사를 제외하고 상근이라는 개와 관련된 기사만 무려 20여건이 넘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은 이승기 손가락 부상 사건을 다루고 있는 기사들이다. 지난 2월 25일에 이승기가 촬영도중 손가락을 다쳐서 철심까지 박아야 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기사들이 일제히 포털 사이트에 올라왔는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기사가 없었다는 사실은 둘째 치고,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이틀 전인 23일인데 그토록 심각한 부상이라면 왜 당일날 기사화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그건 무한도전이 방영되는 토요일에 기사를 작성해봐야 묻힐 게 뻔하므로 비교적 한가한 월요일을 선택해서 사건조차 홍보 기사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지난 2월 27일 방송위가 케이블 방송에 저질자막 철퇴라는 조취를 취했는데, 그러한 결정은 이제 곧 공중파 방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 방송의 과도한 국어 파괴를 막기 위해 내려진 정당한 조취였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무한도전에서 인터넷 유행어나 재치있는 말장난을 볼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게다가 방송위가 M본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2MB 정부의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소속되었으니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요점은 무한도전 죽이기는 일부 무한도전 안티 기자들의 소행이 아니라 보다 커다란 세력들 간의 아귀다툼에서 발생한 문제이고, 따라서 그 판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무한도전을 음해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해서 이루어지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최근에 삼성 비리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에는 인터넷에 댓글만 전문적으로 다는 정규직 직원이 150여명이 있었다고 폭로한 바 있는데 프로그램 시설물에 10억을 투자해서 손해를 입는 것보다 찌라시 언론을 고용하는 비용이 더 싸게 먹히지 않을까?
김태호 피디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무한도전에서 환경 관련 문제 등 시사적인 화두로도 접근해보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이러한 변화의 조짐은 이미 올해 초에 방영된 에피소드를 통해 감지된 바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전원 서른 살이 되는 시점에 이루어진 이러한 선택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쇼 형식이나 내용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경쟁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된 전략으로 보다 성숙해진 무한도전을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인도 특집>을 시청하며 드는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쇼 오락의 본질인 웃음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가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까닭은 재미있기 때문이지 단순히 시청율이 높거나 사회적으로 대단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무한도전의 팬들 역시 성숙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무한도전의 행보를 조금 더 너그럽고 성숙한 시선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팬들의 과도한 사랑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 6인의 성장 로드쇼인 무한도전의 성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과 함께 늙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면 팬들 역시 그들과 함께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서른, 그들의 잔치가 시작된 것이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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