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무한도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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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ntin의 무한도전 리뷰
왜 무한도전인가? (1)
바보 같은 방송, 혹은 공감 가는 방송
혹자는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이하 <무한도전>)"을 처음 보고 이렇게 말했다. "살다 살다 이렇게 바보같은 방송은 처음 본다. 그리고 동시에 이렇게 공감이 가는 방송도 처음이다." 바보같음과 공감.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방향타 삼아 <무한도전>은 카오스적인 행보를 계속 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컬트적인 사랑과 애착, 수많은 유행어의 파생의 이면엔 낮은 시청률과 안티 양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한도전>은 꿋꿋이 박을 맞고 물공에 헤딩하며 먹을 것을 향해 몸을 던진다.
동시간대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가운데서도 그리 높지 않은 시청률이고,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로 치더라도 턱도 없이 낮은 시청률임이 확실한 <무한도전>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프로그램이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많은 양상들이 버라이어티 쇼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무한도전>은 게임과 퀴즈의 탈을 뒤집어 쓴 종합 예능 선물 세트이다. 멤버들의 캐릭터가 빚어내는 촌극은 시트콤이고, 이들이 툭하면 시도하는 상황 재연은 꽁트극에 다름 아니다. 장기자랑, 퀴즈, 대결, 설문조사, 짝짓기 쇼 등의 오만가지 요소를 한 몸에 품고 있는 것도 모자라, 툭하면 남의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을 공공연하게 거론하며 자신들의 맥락에 맞춰 변주하기까지. (멤버들의 높은 몸값을 제하고 나면) 초 저예산으로 유지되는 최고 수준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과연 누가 마다할 것인가.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제작자의 입장에서도 공히 혁명적인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해진 것일까. 그걸 알아보기 위해선 우린 먼저 "무한도전 클래식(이하 <클래식>)"은 왜 실패하였는가부터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실제로 도전상대를 찾아서 누가 보더라도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던 <클래식>은, 열차와 달리기 시합, 목욕탕에서 물퍼내기 등등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생산해냈었다. 주요 멤버도 지금과 거의 동일한 형태였는데다가, 이렇게 오합지졸들의 슬랩스틱을 전시하는 방식의 쇼프로그램은 MC 유재석의 전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클래식>은 실패하고 지금의 <무한도전>만 남은 것일까?
<클래식>은 왜 실패하였는가?
<클래식>의 테마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바보에 가까운 팀웍을 자랑하는 오합지졸 멤버들이 모여서 불가능한 미션을 향해 죽어라 뛰고 달리고 뒹굴다가 결국엔 녹초가 되고 마는 걸 즐기는 것이 웃음의 포인트였고, 어쩌다가 미션에 성공하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드라마를 창출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매우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제작진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예측 가능함'이다. <클래식>과 비슷한 컨셉의 프로 <대단한 도전>이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예측 불가능'이다. 만능 스포츠맨으로, 이 프로에서 '태릉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윤정수도 의외로 하지 못하는 종목이 있는가 하면, 늘 '날방'을 외치며 건성건성 임하는 이경규가 눈부신 활약을 하는 종목이 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도전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에 관심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끝까지 본다. 같은 이기주의와 반목, 난장판이 있어도 매주 다른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던 것은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클래식>은 어떤가? 이미 다음 주 예고만 보아도 어떻게 될지 너무 눈에 빤히 보이는 이 코너는, 처음엔 '성공할 수 있을까' 하며 지켜보게 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어차피 또 실패할 것을 저 짓을 힘들게 왜 하누'하는 마음으로 고민없이 채널을 돌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유재석은 강호동이 아니다.
<클래식>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유재석의 현장 장악력이 육체를 주로 사용하는 코너가 되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유재석이 인터뷰를 통해 여러 번 밝혔던 것처럼, 유재석의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육체를 사용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체력관리를 위해 술 담배를 멀리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써놓고 얼핏 보면 두 문장이 서로 다른 사실을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자. 세트 안에 들어와 있던 <무한도전>이 다시 <클래식> 시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준 여름 특집 (하와이/발리 세트 특집)에서 멤버들에 대한 유재석의 통제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폭발하는 체력을 자랑하는 정형돈과 정준하, 아직 팔팔하게 젊은 노홍철과 하하,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박명수까지.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한 멤버들 사이에서 현장을 통제하려던 유재석은 결국 지치고 만다.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지고, 멤버들의 돌출 발언은 더욱 거세진다. (정준하의 '근육을 뭐 저렇게 저질로 키웠어'라거나 하하의 '뭐야, 이 거지들은'같은 발언은 <무한도전>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위험해보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유재석은 강호동이 아니다. <엑스맨>의 공동 진행자 강호동처럼 누군가 수위 조절을 못 하고 나설 때 개입해서 제압할 수 있는 체력의 소유자가 아니다. 더군다나 강호동이 자기 입으로 말하듯 그의 컨셉은 '공포'지만, 유재석의 컨셉은 '늘 수모를 당하는 피해자'이다. 세트 안에서도 툭하면 유재석을 '비디오 청년'으로 몰아가고, 유재석의 자리를 노리는 박명수의 반란이 이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유재석의 특징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들끼리 수위조절과 균형을 맞출 수 있는가 하면 또 그럴 멤버들도 아니다. 플레잉 코치 유재석이 힘을 잃은 동안 소리지르고 떼쓰고 호통치며 나서는 멤버들의 과잉은 쇼의 균형을 깬다. 이런 위험천만한 모습들은 <클래식>에선 더 자주 엿보였다.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쇼가 아니었던 셈이다.
제한된 세트로 들어와 무한의 가능성을 얻다
어쨌거나, 결론은 모두 아시다시피 지금의 <무한도전>은 '도전'을 포기하고 실내로 들어왔다. <클래식> 시절에 한계에 봉착한 제작진이 '두뇌훈련을 먼저 하자'는 투로 시도해본 '단어 거꾸로 말하기'가 내부 시사 단계에서 의외로 반응이 좋자 아예 실내로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클래식>에서 <무한도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오기 위해서 '단어 거꾸로 말하기'를 먼저 흘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05년 12월 10일자 <클래식>에서 단어 거꾸로 말하기를 먼저 접한 시청자들은 <무한도전>에도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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