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무한도전인가? (2)
간략한 용어 정리 :
<클래식>이란 용어는 <무한도전> 미셸 위 특집 때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토요일>의 <무(모)한 도전>과,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리)한 도전 - 시즌 2>을 아울러 통칭해 부르는 단어입니다.
통칭할 땐 <클래식>, 구분할 때는 각각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으로 나눠서 부르겠습니다. 굳이 지금 포맷을 다른 수식어 없이 <무한도전>으로만 표기하는 이유는, 이 포맷이 <강추토>에서 분리되어 단일 프로그램으로 독립되었기 때문에 이 호칭을 독점하기 가장 합당하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혼동하시는 일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홀로 남은 이들의 불안과 공포
이 글을 쓰며 필자는 <클래식>을 제작하는 동안 밀려왔을 제작진들의 불안감을 상상해 본다. 다른 수식어조차 필요 없다는 듯, 날고 기는 MC들을 모두 모아서 야심차게 시작한 MBC의 토요일 황금시간 버라이어티 쇼 <토요일>은 어느새 '강력추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도 시청률의 지옥에서 헤맸다. <스펀지>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엔 벅찼던 것일까? 김제동, 김용만, 유재석과 같은 당대 최고의 MC군단과, 오랜 재충전을 끝내고 돌아 온 박경림, 믿음직한 남희석과 외유 끝에 김용만과 다시 뭉친 김국진까지. MC 몸값만 해도 그게 얼마인가. 중국 올로케 촬영을 감행했던 <커이커이>, 한류 스타 육성을 외치며 등장했던 <수퍼루키> 등의 코너가 자랑하는 거대한 규모는, 예능국장 자리에 앉아 시청률을 MBC의 황금기 수준으로 높여 놔야 한다는 특명을 부여받은 쌀집 아저씨 김영희가 내세운 비장의 카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결과를 알고 있다. <수퍼루키>는 <웃음 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수 년 전에 약발을 다한 <캠퍼스 영상가요>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코너로 전락했다. <커이커이>는 제작비에 비해 시원찮은 볼 거리와, 자칫 중국 문화 전체에 대한 비하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수위의 농담들로 출렁이다가 끝나버리지 않았나. <커이커이>가 사라진 자리엔 박경림이 남아서 성시경과 장근석을 데리고 <순정만화>라는 코너를 들고 나왔다가 두 달을 간신히 버티곤 사라졌다. 수많은 코너들이 간판을 내리고, 심지어 방송 시작 6개월만에 '강력추천'이란 - 스스로 달기엔 구차스러운 - 타이틀을 하나 더 달게 되며 기존의 <토요일>이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는 동안 살아남은 원년 코너는 <무(모)한 도전> 하나 뿐.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심히 미약한 슬픈 기록이다.
"강력추천 토요일(이하 <강추토>)"이 시작되자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으로 간판을 살짝만 바꿔 달며 기본적인 컨셉을 유지했다. 여전히 유재석과 멤버들이 타이즈를 입고 불을 끄고, 그네야구를 하고, 스피드 대결을 하고, 낙엽을 쓸어대는 동안 수많은 코너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곤 했다. 여전히 시청률을 좌우하는 건 <무(리)한 도전>이었고, 박경림이 SS501과 함께 진행하는 '고마워' 시리즈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까진 거의 <무(리)한 도전> 혼자서 프로그램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 <가족오락관>과 시청률을 다퉈야 하는 난감한 상황 속에서 제작진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음악캠프> 성기노출 사건과 <가요콘서트> 상주 참사의 책임을 지고 김영희 국장마저 자리를 내놓고 물러난 상황. 토요일 황금시간의 버라이어티를 혼자 책임져야 했을 제작진들의 불안을 필자는 다 헤아릴 수 없다.
타이즈를 버리고 실내로 들어오기까지
사실 지금의 <무한도전>의 웃음의 코드 중 많은 부분은 사실 <클래식> 때 부터 이어져온 것이다. 서로에게 퍼붓는 맹비난과 극한상황에서 발휘되는 극심한 이기주의, 먹을 것에 달려들어 아귀다툼하며 나잇값 못 하는 멤버들의 오합지졸 슬랩스틱, 심지어는 '무한뉴스'에서 빛을 발하던 '박명수 통신원'마저도 <클래식>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게다가 앞에서도 지적했던 것처럼, 이런 종류의 쇼는 유재석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쇼가 아닌가. 그럼에도 <가족오락관>과 시청률을 겨루는 상황을 제작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했을까? 아니, 이해가 가긴 했을까?
어쩌면 <무한도전> 직전까지, 제작진들이 제대로 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건 사실인 것 같다. 위기감을 온 몸으로 과시라도 하듯 MBC 앞마당에 텐트를 쳐놓고 진행된 2005년 12월 10일자 방송분을 다시보자. '환골탈태'라는 말을 써가며 준비한 방송분은 아직까지 제대로 확정된 컨셉도, 멤버 구성도 보여주지 못 한다. 그 전 주엔 박명수더러 나오지 말라더니, 난데없이 조혜련을 빼고 그 자리에 신동을 메꿔넣는 멤버 구성의 불안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재정비된 멤버'라는 자막을 띄워 보내는 모습은 차라리 궁색해보인다. (그나마 그것마저도 무색하게, 실내로 들어 간 첫 화엔 신동마저 빠지고 만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다. 무한도전이 어느 정도 안정된 멤버 구성을 이룰 때까진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멤버 구성 뿐이겠는가. '거꾸로 말해요~아하' 게임은 아직 제대로 된 이름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었고, 멤버들은 양손에 캐스터네츠를 들고 박자를 맞추며 게임에 임했다. 역시 단 한 회로만 끝난 벌칙은 들기름 마시기였고 이들의 의상은 아직 정장이라고 부르기엔 많이 민망한 레이스달린 왕자옷이었다. 아무리 <클래식>에서 <무한도전>으로 부드럽게 넘어오기 위함이었을 거라 생각하려 해도, 새로 시도하는 코너의 컨셉조차 한 회만에 급격하게 바꾸는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무한도전>, 뿌리인 <클래식>을 어떻게 넘어섰는가
어쨌거나 이들은 드디어 정장을 입고 세트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급조된 컨셉이었는지 준비기간이 길었는지까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컨셉을 확정하는 것조차 오랜 난항을 겪어야 했음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5년 12월 17일, <무한도전>이 시작되면서 마봉춘 앵커가 등장했고, 쌍박파티가 시작되었으며, 한층 더 극심해진 이기주의의 난장 속에서 급기야 독립된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등장한다. 극심한 MBC 예능프로 개편의 칼바람을 이겨낸 이 오합지졸의 사내들이 예능의 미래를 제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무한도전>이 <클래식>을 넘어설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을 지적할까 한다. 그것은 바로 '도전'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클래식의 목표는 아무리 티격태격 하더라도 종국에는 모두 합심해서 불가능해보이는 미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목표와 동시에,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달리는 과정을 함께 보여주며 '둘 다 재미있지?'라고 묻던 <클래식>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모르게 하며 구심점을 상실해버렸다. 그에 반해 <무한도전>은 어떤가. 골든박을 걸고 편가르기를 하건, 앙케이트 순위를 놓고 기싸움을 하건, 퀴즈의 달인 자리를 놓고 서로의 무식을 자랑하건 간에 결국 '나 혼자 잘 되자'는 극심한 이기주의의 끝을 보여준다. 혼자 살아 남으려 아둥바둥거리는 멤버들의 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시청자들은 차라리 <잭애스>나 <제리 스프링어쇼>를 보는 심정으로 이 바보들의 행진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지적했던 '실내와 실외의 차이'도 이에 한 몫을 한다. <클래식>에서 유재석은 쇼의 재미를 위해 서로의 아귀다툼과 비난을 부추기면서도 이들을 독려해서 미션에 도전하도록 하느라 양쪽에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무한도전>의 시대가 되자, 유재석은 실내로 들어와 상대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적어진 대신 그만큼의 에너지를 한 쪽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합심해서 도전해야 할 상대가 사라진 <무한도전>에서 그가 '단합'의 차원에서 할 일은 적당하게 분위기를 수습하는 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남은 에너지가 어디로 가겠는가. 바로 이 궁상맞고 이기적인 나사 풀린 난장판이다.
웃음의 코드, 그 비밀을 찾아서
간단하게 덧붙일 말이 너무 길어졌다. 여기까지 따라 와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길고 비장한 글인 듯 해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무겁고 비장한 이야기 처음에 다 몰아서 해치웠으니, 이제 앞으로의 리뷰는 좀 더 가볍고 발랄한 기분으로 쓸 수 있을거라 기대해본다. 본 리뷰는 <무한도전>이 <강추토>의 코너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본격적으로 실내로 들어온 2005년 12월 17일 방영분부터 지금까지의 방송분을 차례로 리뷰해가도록 하겠다. 굳이 현재 방송분까지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생각은 없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간 방송과 같은 속도로 리뷰를 할 수 있을 거라 내심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이 글을 읽게 되실 미지의 독자분들이 <무한도전>을 보실 확률보다, 안 보실 확률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보셨던 분이라도 필자처럼 애정을 가지고 매회 분석하면서 보시는 분은 거의 없으실 테고, 어쩌다 힐끗 보시곤 '뭐 저런 걸 하고 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마치 내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필자가 바라는 것은 그저 한 가지다. 이 졸문이 <무한도전> 제작진들에게 흘러 들어갈 리 만무하고, 흘러 들어간다 한들 반영될리도 없는 이 마당에, 남은 소망은 그저 독자분들께서 <무한도전>을 즐기는 데 충실한 입문서가 되어 드리는 것 뿐이다. 그러니, 독자 제위 여러분.
부디, 즐기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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