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17일 무한도전 (시즌2 Ep.7 - 퀴즈의 달인 1회)
[리뷰에 앞서 : 왜 무한도전인가]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 리뷰는 앞으론 가벼운 어조로 쓰여질 예정입니다. 그래서 좀 고민을 해봤지만, 앞으로는 아무래도 존댓말을 쓰는 게 더 편할 거 같습니다. 물론 다른 글들은 평서문으로 쓰고 있지만, 이 코너에서 정색하고 할 만한 이야기는 지난 시간에 얼추 다 해치웠거든요. 게다가 이 글에 평서문이 그닥 효과적인 그릇도 아닌 거 같아요. 전문적으로 리뷰를 하겠다는 것보단 그저 <무한도전>을 주제로 수다를 떨고 싶은 것 뿐이니까요. 평서문으로 글을 쓰는 걸 시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역시나 이 글엔 어울리지 않아요.
그리고 제 글에서 누군가의 영향이 드리워진 흔적을 발견하신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존댓말로 매체리뷰를 쓰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요.
<강력추천 토요일> 무한도전 시즌 2 (무리한 도전) Ep.7 - 퀴즈의 달인 1회
방영일 : 2005년 12월 17일 진 행 : 유재석 패 널 : 노홍철, 정형돈, 박명수, 이윤석, 김성수
줄거리 : 무한도전이 실내로 들어왔다. 지난 주 연습을 통해 지능강화훈련으로 방향을 전환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드디어 정장으로 갈아입고 실내로 들어와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포부를 새롭게 한다. 본격적인 퀴즈에 앞서 단어 거꾸로 말하기 게임을 시작하려는 멤버들에게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누구냐고 물어보는 멤버들에게 목소리는 그저 ‘문화방송입니다’라고 답하고, 게임에서 틀린 멤버들에겐 어디선가 수염난 할머니가 등장해서 머리에 박을 후려친다. ‘오돌뼈’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번 주에도 치명적인 단어가 등장하고, 몇 바퀴 돌지도 않았는데 팀원들 간에 편이 나뉘어진다. 유재석은 마지막 판에 박을 두 개 맞는 거로 하자고 했다가 되려 본인이 당한다. 한편 본격적인 퀴즈풀이에 돌입하자 멤버들은 갖가지 상품을 놓고 치열하게 대결을 하지만 쉬운 문제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도덕과 영어에서 한참을 헤맨 멤버들은 어쨌거나 1라운드를 마치고 2라운드로 돌입한다. 점수순서대로 앉게 된 멤버들은 동점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순위를 나눈 것인지 궁금해하고, ‘가나다순’이라는 말에 허탈해한다. 1라운드에서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해 시무룩해있던 꼴지 정형돈은 2라운드에선 그야말로 무섭게 치고 올라가며 1위 유재석의 자리를 노리는데…
‘아하’의 첫 시작. 새로운 것만큼 허점도 많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무한도전은 실내로 들어옵니다. 단순하게 실내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쇼의 컨셉 자체가 바뀐 셈이죠. 사실 약간 궁색한 것이, ‘시즌 2’라고 공언해놓고선 7회차에 갑자기 예전과는 하나도 상관없는 컨셉으로 탈바꿈했다는 건 제겐 그만큼 다급했다는 증거로 보여요. 그러고보면 참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실내로 들어온 첫 회라 그런지 조명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하죠? 카메라 위치에 따라 조명이 다르게 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각도에 따라 화면 톤이 천차만별이지요. 다음 회부터는 좀 더 안정적인 화면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 전 주에 이미 파일럿으로 한 회분을 띄운 것치곤 약간은 불안불안하네요. 아무튼 유재석이 샤방 효과음과 함꼐 한바퀴 돌며 맵시를 선보인 다음에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그 전 주에 등장했던 멤버들 중에서 신동만 제외한 멤버 6명이 출연했는데, 신동으로서나 제작진으로서나 좋은 일이었을 거에요. 신동 입장에선 시청률이 더 높은 프로 위주로 도는 것이 빠를 것이고, 제작진 입장에선 새롭게 뭔갈 시작하는 마당에 검증 안 된 신인보단 노련한 프로들 위주로 쇼를 꾸려가는 게 속이 편했겠죠? 이 이후에도 쇼 전반에 걸쳐서 부담되는 멤버들은 쳐내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툭하면 꺼내는 자조적인 개그가 ‘언제 멤버교체가 될지 모른다’가 될 지경이니까요.
첫 회이니만큼 처음 등장하는 것이 많습니다. 아직 그 유명한 별칭을 얻진 못했지만, 마봉춘 앵커가 처음으로 쇼에 등장합니다. 첫 회엔 ‘사내방송입니다’가 아니라 ‘문화방송입니다’라고 말하네요. 다들 ‘이게 누구지?’ 하고 궁금해하는 척 하는 게 눈에 좀 보이지 않나요? 모르긴 몰라도 이 사람들이 정말로 진행자 마봉춘의 개입을 모른 상태에서 녹화에 들어가진 않았을 겁니다. 물론 훗날 마봉춘을 보고자 하고 궁금해하는 멤버들의 드라마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등장이었겠지만, 어색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죠.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할 수도 있었을텐데, 대본 단계에서 신경이 덜 쓰여졌단 느낌이 듭니다. 재미있는 건 마봉춘이란 존재 자체가 은근히 <상상플러스>의 노현정을 의식했다는 점입니다. 여러 남자들을 상대로 쇼를 컨트롤하는 위치라는 것, 냉랭하고 기계적인 톤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거기에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 이름과 얼굴을 감추고 목소리만 등장하는 건 괜찮은 발상이었습니다. 물론 몇 회 지나지 않아 집요한 네티즌들에 의해 마봉춘이 누구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지요. 처음 등장한 건 마봉춘만이 아닙니다. 박을 맞는 벌칙도 처음 등장하지요. 갑자기 할머니 분장을 한 남자가 쏜살같이 뛰어 들어와 벌칙자의 머리를 박으로 후려치고 도망갑니다. 박으로 머리를 후려치는 건 제법 오래된 벌칙입니다만, 예고없이 등장한 할머니의 존재는 제법 깜짝효과를 불러오지요. 물론 그렇다고 놀라는 멤버들의 표정을 일곱 번에 걸쳐서 보여줄 필요까진 없었겠지만요.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로 시작하는 아하 게임 시그널송도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아직까지 게임의 이름은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상태네요.
파일럿엔 없었던 자리바꾸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견제와 보복이 더욱 극심해지기 시작합니다. 공격단어라는 개념이 슬슬 잡히기 시작하죠? 유재석은 ‘비데’같은 신체 특정 부위를 암시하는 단어만 나오면 무너지고, 박명수는 조금만 까다로운 단어가 나오면 무너집니다. 노홍철은 특유의 속사포 같은 입심으로 벌칙을 피해가지요. 주목할 만한 것은 벌칙을 시행하는 제작진들도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제대로 단어를 뒤집었음에도 말을 조금 더듬었다고 박을 후려친다거나, 누가 틀렸는지 몰라서 엉뚱한 사람을 때리기도 하는데 이게 쇼에 묘한 매력을 제공합니다. 조악한 난장판을 보면서 킬킬거리는 것이 무한도전의 매력이라는 것은 지난 글에서도 말한 바 있지요. 제작진마저도 이 카오스에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 때 그 때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이상한 기준으로 게임에 임합니다. 이쯤 되면 정당한 게임이라기보단 그저 난장판을 위해 고안된 놀이라 생각하는 게 빠를 정도에요.
시도는 좋으나 집중력이 부족했다 – 2라운드 ‘퀴즈의 달인’
반면 메인 타이틀로 병기된 ‘퀴즈의 달인’ 코너는 생각보다 임팩트가 크지 않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죠? <무한도전>에선 야심차게 준비한 것들의 임팩트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에 비해 힘이 딸리는 모습들이 잦습니다. 특히나 이번 회에선 박명수가 웃기려고 던진 멘트들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 많이 보이는군요. ‘우리 할머니를 무시하는거야?’라거나 ‘어르신 여러분 일단 감사의 말씀 드리겠구요’ 같은 대목들은 노력은 보이지만 효과적이진 않았어요. 걷어냈으면 진행이 좀 더 부드러워졌을 거에요. 물론 이 지적은 이번 회에선 사실 모든 멤버들에게 다 해당하는 지적일 겁니다. 앞에서 지적했던 ‘마봉춘을 궁금해하는 멤버들’ 같은 요소들은 살짝 민망하지요.
각설하고, ‘퀴즈의 달인’도 나름대로 웃음의 핵을 짚어내려 노력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눈치로 퀴즈를 맞추는 4지선다형 기본 포맷에, 과년한 노총각들이 요긴하게 쓸 법한 다림판, 스팀다리미, 도깨비 방망이 등을 상품으로 내걸어 ‘나 저거 필요해’라고 달려드는 모습들은 나쁘지 않았어요. 퀴즈쇼치곤 지나치게 길게 늘어지는 부저 소리도 은근한 재미를 주지요. 초등학교 수준의 도덕문제에서 헤매는 멤버들이나, 영어울렁증으로 고생하는 멤버들을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었구요. 동점자 순위를 가나다 순서로 앉힌 것은 깜찍한 시도였습니다. 막판에 정형돈으로 인해 대역전극이 연출된 것도 볼 만한 드라마였지요. 하지만 문제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 것이 되려 집중력을 분산시킨다는 단점을 드러내며 매 회마다 형태가 변하는 불안함을 보여주다가 결국 사라지는 길을 걷게 됩니다. 문제를 맞추는 것과 아수라장이라는 두 가지를 다 잡는 것보단, 아수라장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아하’ 게임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노골적인 미숙함과 즉흥성이 지배하는 시간
<클래식>에서 넘어오며 <무한도전>이 내세운 메인테마를 잘 드러내보이는 대목은 유재석과 박명수가 ‘침팬지는 되는데 왜 타이거는 안되느냐’며 초등학생 수준의 말장난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클래식>의 테마가 멤버들의 ‘나약함’과 그 나약함의 ‘극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였다면, <무한도전>은 정색하고 멤버들의 ‘미숙함’을 과시하는데만 집중합니다.
- 침팬지는 침을 뱉어. 원숭이는 원을 그려. - 호랑이는, 호랑이는 호호해?
삼십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들이 주고 받는 말이라 믿기엔 상상을 초월하게 유치한 이 대화는 앞으로 나아갈 <무한도전>의 분위기를 썩 잘 나타내고 있지요. <무한도전>이 <클래식>에서 받아온 유산들을 봐도 그렇지 않나요? 먹을 것을 놓고 아귀다툼을 한다거나, 어딘가 나사가 풀린 듯한 박명수 특파원의 존재 등은 노골적으로 유치하고 조악한 것들로만 구성된 <무한도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지요.
<무한도전>을 빛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즉흥성은 멤버들이 앉은 자리에서 ‘쌍박송’을 고안해내는 장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마지막 판이니까 박 두개로 해보자’ -> ‘쌍박이네 쌍박’ -> ‘쌍박~! 빠아바~바 빠바바 빠바바~’ 로 이어지는 발상의 수준은 오래 호흡을 맞춘 팀 간의 성공적인 호흡과 유재석의 잘 단련된 감각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 같이 한자성어를 주고 받을 때 박명수를 향해 ‘나락’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유재석의 모습과 그에 호응하는 멤버들의 호흡은 썩 근사하잖아요.
이번 회의 MOM (맨 오브 무한도전) : 김성수, 정형돈
언제나 훌륭한 유재석에 대해서 칭찬하는 건 쉬운 일입니다. 이번 회에서도 첫 회를 무난하게 소화하며 쌍박송을 즉석에서 탄생시키는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만, 유재석에 대한 칭찬은 좀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모두의 기대치 정도의 모습만을 보여줬던 이번 회를 칭찬하는 것은 유재석에겐 어쩌면 결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유재석과의 긴장관계를 빚어내며 유재석의 개그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는 박명수도 이번 회에선 호흡의 난조를 보여줍니다. 이 정도로 칭찬할 순 없어요.
반면 김성수는 의도치 않게 정말 폭발적인 웃음을 이끌어냅니다. 방송에선 금기시된 단어를 ‘브라질’을 뒤집으려다가 부지불식 중에 내뱉어버리죠. 물론 ‘브라질’이란 단어의 진가는 다음 회에 발휘되지만, 적어도 김성수로 인해 ‘거꾸로 뒤집었을 때 차마 발음하기 곤란한 단어’가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건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쇼 내내 멤버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결국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퇴출되는 김성수는 좀 안타까운 면이 있어요. 최연장자로서 몸을 주로 쓰는 <클래식>에서 육체의 노쇄함과 나약함을 드러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엔 더 없이 적역이었지만, 노골적인 유치함을 드러내기엔 조금 뻣뻣한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퇴장하는 마당에 김성수는 정말 큰 사고를 터뜨렸고, 이 한 대목만으로도 MOM의 자격이 있습니다.
정형돈도 이번 회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대역전극을 이뤄낸 것도 훌륭했지만, 지나치게 자신만만해하다가 문제를 맞추지 못해 순간적으로 당황하는 모습에서 빚어내는 희극성도 높게 살 만합니다. 리코더를 한번 불어봤다가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며 울부짖을 때 그가 빚어내는 표정과 포효의 조화는 지금의 예능계에선 정형돈만이 할 수 있는 특기입니다. 강호동이나 이혁재같이 덩치로 어필하는 예능인들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압감이 그에겐 없거든요. <무한도전>에서 가장 못 웃긴다고 늘 위기의식에 시달리는 정형돈이지만, 이번 회의 2라운드만큼은 정형돈이 살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숙제만큼 많은 가능성
이렇게 실내로 들어온 <무한도전>의 첫 회가 끝났습니다. 많은 부분들이 삐걱댔고 조명은 엉망이었으며 컨셉들은 아직까지 완성되지 못했던 방송이었지만,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한 회기도 하죠. <클래식>에 비해 높아진 공간집중도로 인해 몸으로 선보이는 개그만큼이나 각자의 입담을 통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지요. 공격단어라는 개념의 발전과 동시에 노골적으로 유치함을 향해서만 달려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바심과 초조함을 딛고 태어난 <무한도전>은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었구요, 그 이후는 다들 아시다시피 컬트팬들을 탄생시키며 MBC 토요일 저녁 버라이어티를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기까진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음 회에서 더 이야기해보도록 하죠. 첫 회라 짚고 넘어갈 게 많아서인지 글이 또 하염없이 길어졌네요. 다음 회에선 좀 더 짧아질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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