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4회(2006.1.7.)
하하, 외모지상주의를 가져오다
이 때만 하더라도 무한도전은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꼭지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10분 가량의 오프닝이 방송되고 다시 1시간 뒤에 본 게임이 방영되는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흐름이 끊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오프닝만 2번씩이나 보게 되는 희귀한 경험은 독립된 프로그램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은 지금의 무한도전과 비교해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이번 방영분에서 하하는 처음부터 자신이 잘 생겼다고 우기기 시작한다. 조각이 나서 방송된 무한도전의 첫 10분 간 다른 멤버들은 하하가 자신들 중 외모 순위가 1위라는 것과 박명수가 6위라는 사실에 대해서만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뿐 서로의 외모를 두고 비난을 하며 자신의 외모가 낫다며 논쟁을 벌인다.
사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컨셉트를 내세우는 무한도전에서 자신들의 외모를 놓고 벌이는 우열논쟁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다들 그만그만한 외모를 지닌 연예인들이 나와서 순위를 정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그들의 외모 비하가 기분 나쁘지 않는 까닭은 자기 비하와 상대에 대한 묘한 우월감이 서로 교차하며 자신들의 컴플렉스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나 못 생겼다, 그래도 이 안에서는 너보다는 낫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외모에 대한 논쟁은 이미 그 이전부터 무한도전에 존재했었다. 2005년 11월 5일에 방영된 <무리한 도전> 2회 오프닝 장면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 조혜련 :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의 남편이 유재석 씨가 그렇게 잘 생긴 줄 몰랐다. 사실 제일 뛰어난 얼굴이래요, 여기서.
- 유재석 : 사실 저도 어디 나가서 얼굴 얘기하면 고개를 못 드는 편인데, 여기서는 빳빳이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왠지 자신감이 생기고. 저는 무한도전 촬영이 있는 목요일이 되면, 전 날부터 잠이 안 와요.
- 윤정수 : (멤버들의 얼굴을 살피며) 다 지금 자신만만 하거든요.
(화면으로 자신만한한 표정의 박명수와 김성수의 얼굴을 비춘다.)
- 유재석 : 다들 저를 비롯해서 그런 생각할 거예요. 여기에서 2위는 한다.
(일동 폭소)
- 정형돈 : (유재석에게 질문하며) 외모로 이 사람은 이길 수 있다. 솔직히.
- 유재석 : (잠시 뜸을 들이다 자신감 있는 말투로) 한 6명 정도는 뭐! 자신있습니다.
- 정형돈 : 그럼 한 명은 누구예요?
- 윤정수 : 여자 빼고 전부네.
- 유재석 : 아니, 조혜련 씨가 6명에 껴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잘생긴 하하'라는 캐릭터를 맡고 있었던 하하는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외모에 대한 논의를 서열화시킴으로써 무한도전에 외모지상주의를 정착시킨다. 이후 정준하가 처음으로 무한도전에 영입되었을 때, 하하와 노홍철이 저 형은 정말 잘 생긴 것 같다는 말을 하게 되는 배경 역시 이 당시 정착된 무한도전의 외모지상주의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한 서로의 외모에 대한 현장투표를 통해 순서를 정하는 과정은 그 이후 시청자 앙케이트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설문조사를 통해 무한도전은 시청자들과 교감을 시도하고, 멤버들의 캐릭터를 보다 정교하게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재석 요다가 되다
멤버들은 서로의 외모에 대해 신랄한 평가를 서슴지 않는데, 평가받는 상대가 보여주는 반응을 살피는 일이나 평가 과정을 통해 들어나는 멤버들의 재치를 구경하는 일이 쏠쏠한 재미를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정형돈은 남다른 재치를 보여준다. 계속해서 자신의 외모를 자랑하는 하하를 '쟤 정말 안 되겠다'며 타박하기도 하고, 그 날따라 신부화장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한 메이크업을 한 노홍철에게 '머리만 보면 여자가 털 난 것 같다'며 지적하기도 한다. 하하와 노홍철이 공동 1위를 형성하고 난 후 이윤석이 '우리 목표는 죄다 3위'라고 말하자 정형돈은 '아니죠, 목표는 박명수 씨보다 위죠'라고 대응한다.
이 날 외모에서 가장 혹독한 평가를 받은 사람은 '개그 유전'인 얼굴을 소유한 박명수였다. 하하는 ‘진짜 심각한게 뭔지 알아요? (박명수씨는) 저 뒤에 있는 만화(세트에 그려진 사람들 얼굴)보다 못 생겼어’라고 지적하며 먼저 포문을 열었다. 유재석은 박명수를 위로하는 척하며 '상당히 가슴 아픈 얘기입니다. 평면적으로 그려진 만화보다도 이게...'하며 오히려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유재석의 말을 받아 정형돈은 ‘아니, 이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박명수씨는 9위입니다! 9위라구요’하고 말하여 최후의 결정타를 날렸다.
순식간에 일어나 위 장면에서 멤버들 각자의 캐릭터가 고스란히 잘 드러나고 있다. 하하가 건방지고 버릇없는 막내 캐릭터로 맏형 격인 박명수를 공격한다면, 유재석은 선량한 사람인 척하지만 그의 호의에는 '독'이 담겨 있다. 정형돈은 짧고 공격적인 말투를 지니고 있지만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역할로 적합하다. 이후 이러한 공격 패턴은 무한도전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공식처럼 자리잡게 되는데, 그들의 말이 위험한 수위에까지 도달하더라도 불쾌한 감정을 유발하지 않는 데에는 살펴본 바와 같이 그들의 절묘한 호흡과 인간적 신뢰감에 기초한다.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쾌감이 불쾌감으로 전환되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잘 알고 그 지점까지 협력을 통해 최대한의 웃음을 뽑아내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스스로 망가지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유재석 역시 멤버들의 신랄한 공격 앞에 무너지고 만다. 당시 유재석은 안경을 벗으며 미간을 잔뜩 찌푸린 자신의 '쌩얼'을 유머의 소재로 삼고 있었는데, 이를 본 하하가 '요다'라고 놀리게 되고 무한도전의 제작진은 스타워즈의 메인 테마곡을 배경으로 요다의 얼굴과 유재석의 얼굴을 비교하는 장면을 보여주게 된다. 이후 유재석은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요다'로 놀림을 받게 되고, <우주 특집>에서도 '요다'로 분장하게 된다. 그러나 폭발적인 웃음에도 불구하고 유재석이 '요다'가 아닌 '메뚜기'로 기억되고 있는 데에는 첫 인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결국 이날 핸디캡을 심하게 적용한 '잘생긴' 하하와 '신부화장' 노홍철이 공동 1위를 하고, '섹시 도발' 정형돈이 3위를, '쌩얼' 유재석이 4위를 해서 F4를 결정하게 되고, '성난 약골' 이윤석이 5위를, 그리고 누구나 예상했던 것처럼 '귀여운' 박명수가 '꼴등'을 차지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 불과 10분 여만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이후 벌어진 '아하 게임'에서 하하가 벌칙을 받게 되고 잘 생긴 순서대로 자리배치를 하게 된다. 이때 유재석이 맨 끝자리에 앉아있던 박명수에게 '자리 안 옮겨서 좋겠습니다!'하고 운을 떼고, 이윤석이 다윈의 진화론을 보는 듯하다며 거들자 정형돈이 국사책에서 본 사람의 진화과정과 비슷하다며 맞장구를 치게 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인류의 진화 과정이 무한도전 멤버들에 의해 재현된다. 노홍철이 졸지에 태초의 인류 역을 담당하게 된 박명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어! 기어! 서지마!'하고 명령을 내리며 완성된 이 장면은 당당히 이 날의 베스트 명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그래도 봉춘 씨만 내 곁에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하하는 '아하 게임'에 '어거지'라는 요소를 투입해서 게임 자체를 논란과 난장으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영화 이름을 대는 게임에서 이름도 모르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형수님'을 외친다든지 자신의 친구 이름인 '김기룡'을 부른다든지 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하하의 어처구니 없음을 노홍철과 유재석이 두둔하고 나섬으로 해서 게임의 룰 자체를 파괴하는 룰이 만들어지게 된다. 하하의 잘 알려진 사조직인 '개돼지파' 일원들과 친분이 있는 노홍철이 자신은 그 친구를 안다고 말하고, 유재석이 그 친구가 착한가를 묻고 착하니까 인정한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하하의 어거지를 대놓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거지'라는 룰 때문에 이득을 보는 것은 하하 뿐만이 아니었다. 이윤석의 '떼제베' 공격에 당한 박명수가 '케이티엑스(KTX)'도 영어로 3글자이니 3글자 공격어에 포함된다고 주장을 해서 멤버들 간에 논란이 벌어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하하가 이미 논란의 씨앗을 뿌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이 논란은 이효리가 등장한 <이효리 특집>에서도 이어지게 된다. 이효리는 '에쵸티(H.O.T.)'라고 발음해서 소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 역시 박명수의 '케이티엑스' 공격에 연원한 것이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일종의 자기 복제와 자기 반영을 통하여 맥락과 역사를 만들어내고, 매주 반복되면서 변주되는 사건들을 통해 멤버들의 캐릭터를 공고히 해나갔다. 시청자들의 참여를 통해 캐릭터가 차츰 성장하면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은 마치 온라인 게임에서 아바타를 키우는 과정과 흡사하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아바타가 일정한 레벨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성장을 하지 않게 되거나 성장이 어렵게 되는 반면, <퀴즈의 달인> 시기를 거치며 완성된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은 그 후 가히 폭발적인 성장과정을 겪게 되고 이는 무한도전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에 무한도전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설명될 수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가 일정한 성장점을 초과한 지금의 시점에서 패턴화된 그들의 행동 양식이 보여주는 익숙함은 동시에 성장의 정지 내지는 식상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 또한 쉽게 발견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클리어 해야만 하는 새로운 미션을 추가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채 숨어 있는 그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 정형돈과 노홍철이 아직 그들의 재능을 만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도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날의 방송분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녹화 중 휴식 시간에 멤버들이 상품으로 등장한 과자와 참치를 나누어 먹는 장면이 여과없이 방영되었는데, 그 장면은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을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게 하고 있다. 특히 박명수가 막대과자를 이용해서 고추참치를 먹고 있는 장면이나 유재석이 양 쪽 바지주머니에 고추참치캔을 넣고 걸어다니는 모습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서민적 매력과 친근함은 바로 이와 같은 연출의 힘이다.
그리고 이어 등장한 '샴푸 마이크', '린스 마이크', '참치캔 시계'같은 사물 개그는 이후 무한도전의 고정 래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유재석이 고추참치캔을 손목에 올려놓고 마치 시계를 들여다보듯 행동을 하자 하하가 몇 시인데요 하고 묻고, 유재석이 '지금 고추참시요!' 하고 대답하는 과정도 유치하긴 하지만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
그런데 아하 게임에서 노홍철이 승리한 이후 지쳐 있는 멤버들은 마봉춘 아나운서에게 제발 한 마디만 해달라고 조르게 된다. 이 때 마봉춘 아나운서는 유재석에게만 '유재석 씨! 화이팅!'하고 말을 해서 유재석은 다른 멤버들의 시기어린 질투를 받게 된다. 그리고 감격에 젖어 있는 유재석의 모습을 비추며 '그래도 봉춘 씨만 내 곁에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 - 유반장'이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비록 이 당시 유재석과 나경은 아나운서는 교재를 하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그 장면을 보면 상당히 예언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혹시 아는가? 우연이란 운명의 가장한 얼굴일지도.
그러나 기쁨도 잠시, 유재석에게 크나큰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리뷰로 미루기로 하자.
by ddolappa
'무한도전 > 무한도전 History-퀴즈의 달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6회(2006.1.21.) (0) | 2008.03.26 |
---|---|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5회(2006.1.14.) (0) | 2008.03.19 |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3회(2005.12.31.) (0) | 2008.03.05 |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2회(2005.12.24.) (0) | 2008.02.29 |
무한도전 다시 보기를 시작하며 (0) | 2008.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