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 Michel Basquiat (1960~1988) : 1980년대초 뉴욕 화랑계에 폭풍처럼
등장한, 낙서화가로 유명한 미국 출신의 요절한 광기의 흑인 천재 화가
바스키아는 세무서원 아버지와 민감한 성격의 어머니를 두고 뉴욕남부 맨하턴
중류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며 책 읽기도
좋아해서 6살때 그림선생님과 함께 지어낸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말썽꾸러기로 자란 바스키아는 고등학교도
마치지 않은채 17살때 집을 완전히 떠나 여기 저기
떠돌다 밤에는 뉴욕 빌리지 근방의 클럽에서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낮에는 일찍히 자신이 창조해낸
'SAMO(Same Old Shit 의 약자)라는 풍자적 인물로
닥치는대로 거리에 낙서하면 다녔다.
지하 전철의 차체,건물의 빈 벽, 친구들 아파트와 클럽의 벽과 문,
냉장고,화장실, 상자들....
이런 바스키아의 재능이 소호의 한 화랑 주인에게 인정되어
그 화랑 지하실에 스튜디오를 갖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Figure 3A
바스키아의 화면에 등장하는 자화상을 보면, 그 자신을 포함한 많은 흑인 영웅들의
착취당학도 짓밟힌 삶의 절규가 도시의 박자처럼, 찰리파커의 광적인 색소폰 소리로
청각화 되어 들린다.
왕관이나가시 면류관이 얹혀진 잘린 몸뚱이와 그 파편들, 아프리카 마스크같은 원시적
모습의 잘린 머리...
Dust Head
바스키아의 그림들은 유치원 아이가 온 몸과 그 주위까지
물감을 덧칠 하며서 그련내것 같다.
바로 그 즉흥적 제스쳐, 실은 아무렇게나 낙서한 듯한 그런
몸짓과 사물이 관람객에게 아주 세련된 감각으로 전달되고,
그 점이 바스키아 화면을 성격지어준다.
흑인으로 태어난 바스키아는 남달리 자신의 피부색에 집착했는데,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눈에 비친 자신이 아니라 남(백인)의 눈에 비친다고
생각한 이미지다.
그당시 침체되어 있는 뉴욕의 회화계에 도시 거리와 게토의 야생적
에너지와 생동감에 넘치는 새로운 시각언어인 바스키아와 같은 화가들의
낙서그림들은 80년대초 화랑가에 엄청난 호황기를 가져다 주었다.
바스키아는 이런 물결을 타고 하루아침에 세계적 명사가 되었고
"드디어 피카소의 대를 이을 우리의 구세주", "그림의 왕"이란 매스컴의
찬사를 받으며, 흑인으로서는 미술사상 처음으로 명예와 열광적 기대를
한몸에 모았다.
바스키아의 그림에는 50년대에 미국을 휩쓴
비트세대의 영향이 다분히 보인다.
특히 찰리파커와 재즈가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는 그의 작품 타이틀이나 또 그가 소유했던
3천장 이상의 레코드판으로 알수 있는데, 그 대부분이
찰리파커의 레코드였고,그는 찰리 파커의 전기를
작업실 내 수수상자에 넣어두고 오는 사람들마다
한권씩 선물했다고 한다.
백인천하 미술계에서 바스키아는 끝까지 방관자로 소외감을 느꼈다.
그는 백인의 세계를 정복하고 싶지 않은 성체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피부색으로
파고들어 그림을 통해 검은 피부의 영웅들, 음악인,권투선수들에게 하나하나
미술계가 자신에게 씌워준 왕관들을 머리에 씌워주었다.
소방수
보고,듣고 느끼는 모든 대상을 즉흥적으로, 정확한 시각적 관점으로 표현해낼
수 있었던 그의 천부적 재능은, 신이 선택한 몇몇의 젊은 영혼들에게만 내리는
섬광같은 특혜가 아니었을까
쟝 미셀 바스키아
천국
*글의 대부분은 '소호에서 만나는 현대미술의 거장들"에서 발췌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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