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무한도전 History-퀴즈의 달인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8회(2006.2.4.)

ddolappa 2008. 4. 10. 06:42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8회(2006.2.4.)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


'퀴즈의 달인' 시기의 무한도전은 한마디로 열정과 에너지가 응축되다 못해 아주 미약한 자극에도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시기였다. 정신 사납고 시끄러운 그들의 외양을 들추고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들의 패기와 아이디어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다른 멤버의 사소한 말실수를 포착해서 멤버들 사이를 몇 번 거치고 나면 순식간에 한 편의 코미디가 완성되어 있고, 광고, 영화, 음악, 타 방송 프로그램 등 거의 모든 문화 영역들을 끌어들여 무한도전식으로 재해석하고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놀라운 집중력과 창조성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무한도전이 표방하는 B급 감수성에 대중들이 아직 적응하지 못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테고, 멤버들의 캐릭터화나 관계설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힘이 약해서 그럴 수도 있었을 테고, 유재석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렇게 호감이 가거나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들이 아니었던 점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 문제를 에너지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볼까 한다. 그러니까 퀴즈의 달인 시기의 무한도전은 분명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와 개그에 대한 열정이 분출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 시기는 이러한 에너지를 제어하는 법을 멤버들이나 제작진이 아직 깨우치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제어되지 않은 에너지는 일반 시청자들에게 카오스로 다가올 뿐 그 안에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즐길 만한 여백을 주지 못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에너지가 내뿜는 열정은 분명 새로운 것이었지만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낯선 것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은 어떻게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잘 계산된 무형식의 형식과 엔트로피의 법칙


무한도전은 매회 특집 방송을 하며 '형식 없음'을 자신들의 고유한 형식이라고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엄밀하게 말해 무한도전의 '무형식성'은 '잘 계산된 무형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퀴즈의 달인 시기에 만들어진 멤버들의 캐릭터나 관계에 깃댄 개그 패턴은 시청자들에게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일정한 법칙과 규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재석이라면, 박명수라면, 정준하라면, 정형돈이라면, 노홍철이라면, 하하라면 이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지고, 시청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기대가 실제로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멤버들 간에 설정된 먹이사슬 관계 역시 예측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2인자 박명수는 유재석을 질투하고 공격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유재석에게 절대복종하는 사람도 드물다. 퀴즈의 달인 이전 시기만 해도 박명수는 유재석을 최고의 MC라고 치켜세우는데 바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기의 박명수는 그 이전의 태도에 감추어진 유재석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유재석에 대한 박명수의 질투와 복종이라는 양가적 태도는 그 후 무한도전에서도 종종 목격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차태현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알래스카 특집' 편에서 커다란 공과 경쟁을 펼치기 위해 언덕에 서 있던 박명수에게 유재석이 점버를 벗으라고 하자 순순히 옷을 벗는 그를 보고 하하가 '저 형은 재석이형 말은 참 잘 들어.'라고 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유재석은 박명수의 짓궂은 장난이나 공격에 대책없이 당하는 것 같지만 그는 은근히 박명수를 골탕먹이고 괴롭히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 퀴즈의 달인 시기에 유재석의 '뻥이야' 공격에 가장 많이 걸려 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박명수였다. 그리고 박명수가 다른 멤버들의 공격을 받아서 당황하거나 곤경에 빠질 때, 그를 찾아가 위로를 하는 척 하면서도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 역시 유재석이다.


하하와 노홍철은 버릇없는 막내 역할로 박명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세력들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마봉춘 아나운서가 '박명수씨 좋아합니다.'라고 말해 그의 기대를 한참 높여놓고는 '저희 어머니께서!'라는 반전을 만들어서 박명수가 낙심을 하게 되자, '연배! 연배! 어머니가 친구하고 싶어서. 어머니가 친구하고 싶어서.'라고 말하거나 '동창이야!'라고 말해 박명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역시 노홍철과 하하였다.


무엇보다 무한도전의 불연속적인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연속성이 생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김태호 PD의 정교하게 계산된 연출력 덕택이다. 그는 2006년 3월에 있을 '드라마 특집'을 위해 이미 같은 해 1월에 방영된 '신년특집' 편에서 신년운세를 통해 멤버들 간의 관계를 설정해놓기도 하고, 2008년의 '인도 특집'은 2007년의 '개그 실미도 특집'에서 이미 암시되기도 하고, 최근에 방영된 '중국 사막 특집'은 2006년 '김장 특집'에서 그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무한도전이 언론이나 대중들로부터 노쇠해졌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실은 자유분방하게 넘치던 에너지를 적제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영 시간 내내 시청자를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대신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고 중요한 부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모습은 지난 3년의 시간만큼 그들이 노련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화면 편집에서도 그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 과거의 무한도전이 출연자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역시 조금도 숨쉴 틈도 없이 몰아세웠다면, 최근의 무한도전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서트 장면을 삽입하여 여백을 주고 있다. 가령 특전사 특집에서 본 에피소드와 무관하게 삽입되었던 서정적인 화면들이나 수색대로 분한 멤버들의 행군 장면 등이 그렇다.


무한도전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 있는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이 자연계의 거의 모든 현상처럼 엔트로피의 증가 법칙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듯이 무한도전 역시 결국에는 비가역적인 에너지의 법칙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죽음은 무한도전이 자기 부정을 멈추게 되었을 때 자연스레 맞이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수많은 도전 과제들이 산적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열정과 에너지는 처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에너지를 활용하고 배분하는 기술적 변화를 주목하지 못할 때, 무한도전의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더우기 무한도전이 죽기를 바라는 미디어 환경에서 이러한 착시 현상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무한도전에게 최종적인 죽음을 선고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몫이지 '그들'이 억지로 나서서 해야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형선고를 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

 


오프닝 시작과 동시에 20여분 동안 생긴 일들


'입춘 특집'으로 방영된 이 날의 방송에서는 늘씬한 무희들과 함께 멤버들이 경쾌한 삼바춤을 추며 시작했다. 그런데 현란한 춤사위와 사이키 조명이 눈부신 화면 위를 지나가는 큼지막한 자막들은 무한도전의 마이너적 감성을 전달하고 있지만 S본부의 자막을 보는 것처럼 민망한 게 사실이다. "무한도전 쌍박 페스티벌 / 자칭 꽃미남 6인 24시간 항시대기 / Live Show / '브라질' 청년 유재석과 함께 / 유치찬란 지능 개선 프로젝트 / 여기는 무한도전 쌍박랜드" 술집 개장 전단지에 찍혀 있을 법한 이러한 문구들을 TEO PD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보냈던 것일까? 더우기 화면을 가득 메우는 큰 글씨체에 유치찬란한 형형색색이라니! 아무튼 여기가 예능계의 막장이라는 인상만큼은 확실하게 남겼을 법하다.


오프닝의 압박을 넘게 되면, '부모님께 당당히 소개시킬 수 있는 사람은?'이란 주제로 앙케트 조사결과가 발표된다. 무려 34,237명의 시청자들이 참여한 설문결과를 발표하는 현장 분위기는 마치 연말 MBC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을 방불케 한다. 멤버들 모두 두 손을 꼭 모으고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고대하고, 하하는 주문이라도 걸 듯 계속해서 '놓치고 싶지 않아'를 외치고, 유재석은 한껏 긴장된 목소리로 장난으로 시작한 설문조사가 어느덧 자신들의 삶과 행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며 긴장감을 고취시킨다.


결국 1위는 유재석으로 밝혀지지만 다른 동료들은 결과를 외면하고, 노홍철은 유재석이 아닌 세트로 만들어 놓은 바둑이에게 1등 리본을 걸어주고, 꽃다발도 유재석이 직접 챙겨야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결국 유재석의 뒤를 이어 노홍철이 2위를, 이윤석이 3위를, 하하가 4위를 차지하게 된다. 무한도전 내에서 얼짱에 뽑히기도 했던 하하는 자신의 순위가 발표되기 전까지 만년 꼴지인 박명수와 정형돈과 한 무리를 이루게 되었다가, 턱걸이로 순위에 입상하자 '아이고! 깜짝이야! 내가 설마설마 깜짝 놀랄 뻔 했네.'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박명수와 정형돈은 순위 발표 전에 자기 PR시간을 가졌음에도, 번번히 순위에 오르지 못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드디어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자신의 사진을 벽에 걸 수 있는 순서가 마련되었다. 5위와 6위는 인권보호를 위해 실명을 밝히지는 않지만, 한 액자 안에 각자의 얼굴 절반이 합성된 사진이 실리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박명수와 정형돈의 얼굴 윗부분만이 조합된 사진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박명수는 그나마 자신의 얼굴 윗부분이 위에 있다며 좋아하기도 한다. 굴욕스러운 장면에서도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잇점을 발견해내는 박명수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순위 선정 이유를 발표하는 순간이다.


- 박명수 : (단점) 1. 장인, 장모와 나이차가 없다. 2. 급 화를 낸다. 3. 삼시 세끼를 피자와 닭만 먹인다! 4. 화목하지 않을 것 같다.


선정 이유를 잘 살펴보면, 2주전에 방영된 박명수의 '화목론'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박명수의 개그에 시청자들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화면은 2주전에 화목론이 등장한 그 장면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집안이 365일 화목할 순 없다'는 박명수의 화목론의 핵심을 요약하는 자막을 내보낸다. 그리고 박명수가 유재석의 가정을 화목론의 제물로 삼는 상황을 연출해 보여줌으로써, 화목론이 지닌 파괴적 웃음을 다시 한번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주고 있다.


일련의 비디오 사건으로 인해 자기의 방문조차 부모님께서 제대로 닫지 못하게 한다는 유재석의 말을 듣고 박명수는 그것이 가정이 화목하지 않은 증거라고 우기기 시작한다. 유재석은 "'두유' 나오기 전까지 우리 집 이러지 않았어요!"라고 항변하며 저항을 해보지만, '화목하지 않아! 화목하지 않아야 돼!'라며 막무가내식으로 물고 늘어지는 박명수의 공격에 '그래요, 우리집 화목하지 않아요!' 하고 스스로 인정하게 되고 만다. '100분토론 유재석씨 가정 과연 화목한가?'라는 주제를 놓고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였음에도, 박명수는 유재석의 집안을 순식간에 무너뜨려버리고 마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어진 장면에서 멤버들은 다음 주 앙케트 주제인 '초콜릿 CF에 가장 잘 어울리는 멤버는?'이라는 주제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초콜릿 CF를 촬영하게 된다. 물론 그 중간에 박명수와 노홍철, 하하 간의 작은 언쟁이 양념처럼 첨가되기도 한다. 멤버들은 설문 조사에서 매번 하위에 머무는 박명수를 위해 유리한 설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는데, 하하와 노홍철이 박명수의 말을 가로채서 그의 화를 돋우게 된다.


- 박명수 : 발렌타인데이 때....
- 하하 : (박명수의 말에 끼어들며) 가장 침을 많이 흘릴 것 같은 사람!
자막 : (진행 장악력 부족!)
- 하하 : 초콜릿 보면서 침 가장 많이 흘릴 것 같은 사람!
- 노홍철 : 초콜릿 튀겨 먹을 것 같은 사람! (피자처럼) 오븐에 구워 먹어! 초콜릿!
(박명수가 어이가 없는 지 웃고 만다.)
- 박명수 : (곧바로 정색을 하며) 와! 내가 진짜 후배들 잘못 키웠구나!
- 유재석 : 죄송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굴 키웠는지?
- 박명수 : (유재석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하며) 자, 발렌타인데이 때.
- 유재석 : 어떤 분을 키우셨는지?
- 정형돈 : 한 분이라도 끌어주신 분이 계신지?
- 노홍철 : (폭로를 하며) (제) 싹을 자르신다고 그러셨잖아요, 형님!
- 박명수 : 내가 너 '놀러와' 처음 나왔을 때 얼마나 다독거렸니? 어! 내가 밑바닥에서 널 받친 거 아냐?
- 노홍철 : '하고 싶은 말 있어도 꾹 참아'라고 하셨잖아요, 형님! 그게 방송계라고!
자막 : (박명수의 가슴에 화살이 꽂힌다) 데뷔 첫날부터 신인 노홍철을 견제한 박사장!
- 박명수 : 그때 참으라고 한 건 괜히 나서면 맥을 끊으니까, 분위기를 봐라 먼저, (분위기를) 읽고 나서 말을 해라.
- 하하 : 지금 '놀러와'의 다크호스는 노홍철씨죠, 지금? 분위기 다 살리고.
- 노홍철 : 분위기 다 살려 놓으면 (박명수씨가) 뚝 끊는다! 그러고 나한테 화내, 나한테!
자막 : 역시 박명수 킬러 노홍철!
- 박명수 : (체념한 듯) 둘 중에 하나 그만두자! 도저히 안 되겠다!


결국 유재석이 나서서 중재한 덕에 종결될 수 있었던 이 작은 언쟁 안에는 멤버들 각자의 개성과 역할이 고스란히 잘 드러나고 있다. 하하와 노홍철이 박명수를 공격해서 그를 곤란하게 만들면, 유재석과 정형돈이 나서서 거들며 사건을 키우고, 박명수가 조금이라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면 하하가 노홍철을 도와 협공을 해서 박명수를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된다. 박명수가 자신의 '화목론'으로 유재석의 모진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정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이상할 만큼 하하와 노홍철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박명수의 호통 자체가 헛점이 많았던 탓도 있겠지만, 박명수가 강성 일변도로 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제동장치와 같은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하하와 노홍철은 타당성도 없고 근거도 약한 박명수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들면서 박명수와는 또 다른 성격의 파괴적 쾌감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는 셈이다. 그것을 기성세대의 허울만 남은 권위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감이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여도 크게 이상할 것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들이 오프닝 이후 불과 20여분 동안에 벌어진 일들이라면 믿어지겠는가? 멤버들의 초콜릿 CF를 제외하고도 온갖 기상천외한 사건들과 에피소드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중들이 여유롭게 즐기기에는 그들이 펼쳐보이는 쇼의 에너지와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무한도전은 재기발랄한 재치와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지만, 일부 시청자를 제외하고는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계를 넘고, 간극을 넘어 - 패러디 열전


무한도전은 거의 매회 문화의 전 영역들을 패러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다 못해 정형돈을 지칭하는 '모두가 인정하는 배부른 소크라테스!'라는 자막 역시 '배 부른 돼지보다 배 고픈 인간이 낫고, 만족스런 바보보다 불만족스런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J.S.밀의 말에 대한 패러디이다. 또한 무한도전은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을 '꼬마의 물방울'로 패러디하기도 하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중립 치킨왕의 귀환', '진행의 제왕의 귀환' 등으로 패러디하기도 하고,  K본부의 '1박2일'에 등장했던 김종민의 차량 탈취 사건을 패러디하기도 한다.


이는 무한도전의 자막과 장면들을 보며 웃음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패러디되고 있는 대상들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그러한 지식이 없더라도 무한도전을 즐겁게 시청할 수는 있겠지만, 원본이 비틀리고 왜곡되는 데서 나오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지는 못하게 된다. 동시에 바로 이 점은 미드나 일드와 같은 해외의 드라마물이나 인터넷 문화, 유행하는 음악이나 영화 등에 상대적으로 밝은 젊은 세대들이 무한도전을 시청하며 열광했던 점이기도 하다. 당시 상상플러스와 같은 일부의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젊은 세대의 문화적 감수성을 공중파에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했지만, 무한도전만큼 그것이 전방위적이고 혁신적으로 이루어졌던 프로그램은 아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방송에서 보여주는 초콜릿 CF 광고는 멤버들 각자의 개성이 잘 묻어나는 동시에 패러디의 창조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 박명수 : (이승철의 '작은 창가'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이제 슬픈 기억들을 모두 잊어버려') 깊은 밤 외로울 땐 다크 초콜릿.


그러나 박명수의 탁한 목소리를 지적하며 노홍철이 '목캔디인가 봐, 목캔디! 목이 탁해!'라고 말하자, 하하가 '연양갱 CF 딱인데, 영양갱!'이라며 고령(?)의 박명수를 비웃는다. 그래서 박명수는 '영웅본색'의 주제곡에 맞춰 홍콩 수출용 CF에 다시 도전하게 된다.


- 박명수 : 셰셰니하오마 '니뽕스' 초콜릿 (박명수에 따르면 '니뽕스'는 '맛있다'는 뜻)


박명수가 비교적 익숙한 방식으로 기존의 초콜릿 CF를 변형하고 있다면, 정형돈은 CF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정형돈 : 그 동안 양이 적으셨죠? (커다란 액자를 손에 들고) 이게 한 조각이에요! 한 조각만 먹어도 배부르게! (박명수와 함께) MBC 뚱보 초콜릿!
- 박명수 : 뚱보 초콜릿을 사시는 모든 분께 박명수 4집 CD를 끼워드립니다.


이윤석은 그 다음 순서인 노홍철이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자신의 개성이 물씬 풍기는 초콜릿 CF를 완성해낸다.


- 이윤석 : (물을 머금었다가 힘차게 내뿜으며) 널 만나고 되는 일이 없어! 내 몸에 포도당이 부족할 때. 윤석표 약콜릿! 자매품 빨아먹는 한방 초콜릿!


그에 비하면 노홍철은 아이디어가 빈곤해 보인다. '그 동안 초콜릿 너무 밋밋했죠! 초콜릿에 털이 났어요! 칼칼한 입 안. 아!아!아! 소리나는 초콜릿 홍철 초콜릿!'이란 그의 광고 카피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점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하하 역시 이미연의 전설적인 초콜릿 CF를 패러디하지만 노홍철만큼 아이디어가 빈곤한 것이었고, 그나마 정형돈과 박명수의 도움을 받아서 '유럽풍 프리미엄 초콜릿 하하 초콜릿'을 완성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공채와 길바닥의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유재석의 CF를 감상하기 전까지 유보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유재석이 시작도 하기 전에 박명수는 '이소령 초콜릿인가?'라며 슬슬 방해공작을 펼치기 시작한다. 이에 정형돈이 '설마, 그건 너무 많이 봤죠!'라며 맞장구를 쳐준다. 신이 난 박명수는 '그거 하면 은퇴죠!'라며 유재석에게 부담감을 주고, 정형돈은 '안경도 벗지 마요!'라고 말해 유재석의 '쌩얼'을 원천봉쇄한다. 다급해진 유재석은 바닥을 구르며 '여러분 초콜릿 어떠세요? 저는 가끔 집에서 심심할 때 초콜릿을 먹어요!'라는 멘트를 던저보지만, 어째 여성용품(?) 광고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결국 '국산 메뚜기분말 15%가 함유'된 메뚝 초콜릿과 '자매품 고품격 성인 초코바 Video 안 봐!'를 완성하게 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하하가 보다가 못 견디겠는지 유재석의 팔을 붙잡고 암바 공격을 해서 CF 촬영은 겨우 마무리 된다.

 


니들 멋대로 해라!


이 날 방송분에서는 녹화 2시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있다가 '아하 게임'에서 박을 맞게 되자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오는 '박치는 소년'을 보고 출연진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최첨단 헐리우드 CG효과처럼 하고 싶었으나' 제작비 문제로 온 몸을 세트 배경과 비슷하게 그려넣을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에 저절로 박수가 나오는 장면이다.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이처럼 크고 작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적제적소에 활용하고 있을 때이다. 월드컵 특집에 등장한 물공 헤딩이나 대체 에너지 특집에 등장한 발로 구르는 무동력 자동차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게임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고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 간다. '포장마차에 있는 것 3글자 단어'에서 노홍철이 어처구니 없게도 '속눈썹'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하하가 즉각적으로 반발하고 나선다. 도대체 포장마차와 속눈썹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하하가 따지자 진정한 술꾼은 술에 취하면 눈이 감기기 때문에 속눈썹을 떼어놓고 마신다고 노홍철이 주장한다. 다른 멤버들마저 '친 속눈썹파'와 '반 속눈썹파'로 갈려 사뭇 진지한 '배심원 회의'가 열린다. K본부의 '진품명품'을 배경음악 삼아서 S본부의 '솔로몬의 간택'이 M본부의 무한도전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공중파 3사를 통합하는 이런 식의 'UN방송'은 훗날 정준하가 정식 멤버로 첫 등장하는 '봉춘리 MT 특집'에서 다시 등장하게 된다.


결국 배심원 회의와는 상관없이 박치는 소년의 판결에 따라 하하가 박을 맞게 된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하하가 아니다. 하하는 자신의 학교에 어학연수를 온 프랑스 친구인 '조세핀'과 중국에서 온 소주 마니아인 '마장뚱'을 공격단어로 선택해 무한도전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이때도 '착하면 인정'이라는 무한도전 헌법 1조 1항의 정신에 의거해서 하하의 공격을 인정해주게 된다.


하하는 유재석이 자신을 반대하는 '반 속눈썹파'에 속한 것이 못마땅했는 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유재석을 협공하게 된다. 그는 정형돈에게 '팔씨름'이라는 한방 공격단어를 전수해서 유재석을 침몰시킨다. 비법전수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유재석이 어떤 공격이 와도 당당히 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팔씨름'을 차마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하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유재석에게 좀 더 커다란 고통을 주기 위하여 '아픈 데 만지기 없기'라는 규칙 2호를 만들어낸다. 박명수는 여박을 유재석의 입에 물려주며 '박재갈'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결국 이날 유재석은 3주 연속 골든박이라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네가 떠난 그 자리


'아하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멤버들은 마봉춘을 애칭으로 불러보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마봉춘의 반응에 따라 자기들에 대한 그녀의 관심도를 알아볼 수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그래서 하하는 마봉춘을 '봉춘아'로, 노홍철은 '봉'으로, 정형돈은 '애기야'로, 박명수는 마봉춘의 '춘'을 영어 '스프링'으로 옮겨 (스)'프링아'로, 유재석은 '베이비'로 각각 불러보게 된다. 그러나 마봉춘 아나운서는 박명수에게 '박명수씨 좋아합니다!'라고 한 뒤 잠시 후에 '저희 어머니께서!'라고 말해 유재석 못지 않은 낚시질 솜씨를 보여주게 된다. 반면에 마봉춘 아나운서가 하하의 애칭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하하는 체념하듯 돈 밝힐 나이라며 마봉춘을 힐난한다.


- 하하 : 나이 많은 사람 좋아하는구나. 돈 밝힐 나이야, 돈 밝힐 나이!
- 박명수 : 돈 밝혔으면 연예인 됐지 아나운서 하는거 아냐! 지금! 시'차'적응 하려고!
- 정형돈 : 뭐 하려고? 뭐 하려고?
- 박명수 : 시.... 시사.... 시사적인 거....
- 정형돈 : 그런데 왜 갑자기 시차적응이 나왔습니까?
- 박명수 : 시사적인 거.... 시사.... 시사적인 거 하려고.... 뉴스하려고....앵'거'한 거 아니야.
(박명수가 정형돈의 갑작스러운 지적에 당황을 했는지 말을 더듬고 침을 흘리기 시작한다. 하하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끼어든다.)
- 하하 : (웃으며 박명수를 보면서) 침 닦아, 침 닦아! 조금만 긴장하면 침을 흘려. 나도 모르게 세월 앞에 무릎을 꿇는거야!
- 박명수 : (무안했는지 침을 닦으며 웃는다) 너희들도 얼마 남지 않았어. 너희들도.
(유재석이 박명수에게 다가와 위로를 하며 등을 두드린다.)
- 박명수 : (유재석에게 괜히 화를 버럭내며) 넌 뭐야! 누가 누굴 치료해!


그러나 결국 박명수는 유재석의 품에 안겨 '라마즈' 호흡법으로 겨우 진정하게 된다. 요즘은 노홍철이 하하를 대신해서 박명수 킬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박명수가 헛점을 드러내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몇 마디 말로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재치는 아직 하하에 비해 부족한 감이 있다. 박명수가 최근에 방영된 '결혼 준비 특집'에서 예전부터 무한도전에는 유재석과 하하 그리고 자기만 있으면 됐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는 어쩌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말은 그들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미미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 전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하하의 존재가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하의 순간적 재치가 빛났던 또 다른 장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박명수는 유재석이 '엉겅퀴'라는 단어로 공격을 해오자 자신이 제대로 발음을 못했으면서 오히려 유재석의 발음이 안 좋다고 타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이 유재석을 두둔하고 나서고 박명수에게는 귀가 안 좋은 게 아니냐고 구박을 하자 박명수는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게 된다.


- 박명수 : (역정을 내며) 때려, 때려! 나 틀렸어! 나 틀렸어!
- 유재석 : (박명수를 진정시키며) 그렇게 감정적으로 하지 마시고.
- 박명수 :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가 틀렸다니까! 나 틀렸어! 나 잘못했어! (뜬금없이) 나 연예인 안 해! 나 연예인 안 해!
- 유재석 : (어이가 없는 지) 뭐 하시게요?
- 박명수 : 장사.
(유재석이 어이가 없는 지 웃는다. 그러나 따라 웃던 박명수는 다시 정색을 하고 상황극에 몰입한다.)
- 박명수 : 나 틀렸다니까. 감독님 나 틀렸어요. 감독님 나 틀릴까요(?) 나 연예인 안 할게요.
자막 : "도대체 연예인이랑 박이랑 무슨 상관", "너무 극단적인 박사장님"
- 노홍철 : 야, 그럼 맞게 해 줘. 맞게 해주세요. 나이 사십 먹은 사람이 부탁하는데 들어줘야지.


노홍철의 한 마디에 멤버들 모두 손에 여박을 들고 나타나 박명수 주위를 감싼다. 진짜로 멤버들이 여박식을 거행하자 박명수는 어리둥절 한 채로 박을 맞고 만다. 여박들은 하나같이 박명수의 이마 위에서 경쾌하게 부딪혀 깨지는 '경박'이라 멤버들에게 때리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하필 유재석의 차례에서 박이 깨지지 않게 되고, 박명수와 다른 멤버들은 옳다구나 싶었는지 유재석에게 달려들어서 그의 사지를 붙잡아 꼼짝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멤버들에게 사지를 붙잡여 꼼짝도 못하고 눕게 된 유재석은 다리를 쩍 벌리고 있어 다소 민망한 장면이 연출된다. 이때 하하가 재빨리 방석으로 유재석의 다리 사이를 가려주는 센스를 발휘하지만 방석이 하필이면 빨간색이라 자체 모자이크의 효과는 커녕 오히려 한 곳이 더욱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만다. 유재석의 요란스러운 여박식이 끝나자 멤버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남게 되는 것은 산낙지처럼 변해버린 얼굴과 펑크 머리 스타일의 유재석이 허탈한 표정으로 홀로 남게 된다.


하하가 떠난 후에 그가 무한도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가를 알아보기 위해 '무한도전 History'를 쓰기 시작했지만 막상 과거의 화면들을 살펴볼수록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만 긴장하면 침을 흘려. 나도 모르게 세월 앞에 무릎을 꿇는거야!'와 같은 말 한마디로 박명수를 굴복하게 만들었던 하하, 빨간 방석이라는 작은 소품을 활용해서 유재석에게 큰 굴욕을 안겨주었던 하하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동작과 말만으로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을 좀 더 섬세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하는 노홍철과 함께 무한도전의 젊은 피로서 감초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노홍철이 조금 더 과장된 동작과 행동으로 남성적인 힘을 무한도전에 부여했다면, 하하는 여성스러운 섬세함으로 무한도전이 디테일한 웃음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