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무한도전 History-퀴즈의 달인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9회(2006.2.11.)

ddolappa 2008. 4. 16. 16:19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9회(2006.2.11.)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그 날까지!


'퀴즈의 달인' 시기부터 무한도전은 매주 특집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발렌타인데이 특집'으로 방영된 이번 방송 역시 멤버들은 '특집' 방송에 걸맞게 핑클의 '내 여자 친구에게'에 맞춰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화려한 오프닝을 열었다. 정형돈이 무한도전은 왜 매주 특집이냐고 묻자 유재석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그 날까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대답한다. '특집 매주 하다가 나중에 개편이죠!'라는 박명수의 자조 섞인 말에 유재석은 '그 때는 개편 특집'이라며 재치있게 응수한다.


당시 멤버들이 주고받았던 이 대화에는 언제 퇴출당할 지도 모른다는 멤버들의 불안감과 자신들의 처량한 신세에 대한 자조적인 웃음이 섞여 있다. 실제로 당시 MBC 측에서 무한도전의 후속 프로그램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하니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았을 멤버들에게는 절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그 때 토요일 황금 시간대 오락 프로그램에서 소위 '죽을 쑤고 있었던' M본부가 조급한 마음에 시청률이 형편없이 저조한 무한도전을 폐지하고 다른 프로그램을 방송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긴 하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처럼 전국민의 사랑을 받는 무한도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S본부가 무한도전이 방송되는 동시간대의 프로그램을 3년 사이에 수도 없이 갈아치우는 제작풍토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작진이 독창적인 아이템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방송사측에서 시청률이 낮더라도 그들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줄 수 있는 여유를 지니고 있을 때에만 독자적인 브랜드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MBC의 화약고 무한도전


이날 '초콜릿 CF에 가장 어울리는 멤버'라는 주제의 시청자 설문 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유재석은 녹화전 순위 유출 시도가 있었다고 폭로한다. 그리고 특히 한 분이 조작을 시도하기까지 했다고 말을 하는데, 이 때 카메라는 '유난히 밝게 웃는 박사장' 박명수의 얼굴을 비추게 된다. 굳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 '한 분'이 누구인지 시청자들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이 장면은 2008년 '동해 가스전 특집'에서도 똑같이 사용된 것이기도 하다.


가스전 위에서 무한뉴스를 진행하며 유재석은 '달력 특집'에서 불우이웃 돕기를 위해 제작된 달력을 여자친구를 위해 빼돌리려 한 사람이 있었다고 폭로하게 되는데, 이 때도 카메라는 유난히 밝게 웃는 박명수의 얼굴을 비추며 능청스럽게도 그게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투의 자막을 내보내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물론 그 덕택에 박명수는 한 동안 심한 구설수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사랑에 눈 먼 노총각의 다급한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방송이 '공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므로 보다 주의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하튼 유재석의 폭로에 짐짓 당황한 박명수는 또 다시 그의 화목론을 내세워 유재석을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


- 박명수 : (유재석에게) 방송만 끝나면 180도 사람이 바뀐다면서요? 채찍 들고 다니고!
- 유재석 : 저희 집 아직 분위기 안 풀렸어요.
- 박명수 : (즐거워 하며) 화목하지 않죠? 오래간다.
- 유재석 : 아니 그게 아니고, 집안은 화목한데 그 부분은 상당히 저희 집안에 민감한....
- 박명수 : (손바닥을 치며 따지듯이) 아니 왜 자꾸 번복을 해요?
- 유재석 : (박명수와 똑같이 손바닥을 치며) 뭘요?
- 박명수 : 유재석씨가 방문을 잠그고 자는 걸 어머님이 안 좋아하잖아요. 아들을 의심하면 화목하지 않은 거예요! 그게 화목하지 않은 거예요!
- 유재석 : 화목하지 않지 않습니다. 저희 집은 화목해요.
(자막 : "100분 토론 끝없는 논란, 유재석씨 가정 화목한가?")
- 박명수 :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집안이?
- 유재석 : 다만 저를 조금 의심하세요.
- 박명수 : (버럭 화를 내며) 그게 화목하지 않은 거라니까!
- 유재석 : 그건 화목하지 않은 거랑 다른 거예요!
- 박명수 : 엄마가 아들을 의심하는데 그건 화목하지 않은 거지!
- 유재석 : 심하게 의심하지 않아요! 어머님이 코트를 입고 저를 숨어서 보시진 않는다구요!
(정형돈이 '시청자 게시판에 의견을 물어보자는 제안을 하지만 유재석이 그의 말을 막는다.)
- 유재석 : 알았어! 알았어! 우리집 화목 안 할게! 아이고, 여러분들 덕택에 우리 화목 안 할게요!


위 장면은 그 전에 보았던 박명수의 '화목론'에 유재석이 걸려들어 곤란을 겪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주목할 만한 변주가 발생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선 유재석의 가정이 화목한가 아닌가에 관한 문제를 놓고 유재석과 박명수만이 싸움을 벌이는 것 같지만 그들의 다툼에 멤버들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면서 논쟁은 무한이기주의가 판치는 무한도전 자체의 분위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유재석의 '뻥이야!' 장난에 발끈한 박명수가 유재석의 손을 잡으며 '아니면 죽어! 농담 아니야! 나 방송 안 해도 돼!'라고 말하자 멤버들이 박명수를 위로하기커녕 차라리 방송을 그만두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나올 수 있게 된다. 이 상황을 자막은 'MBC의 화약고 무한도전'으로 표현한다.


유재석은 박명수와의 사소한 언쟁 이후 남다른 무한도전 대기실 분위기를 전달하며 이것이 사실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준다. 정형돈은 노홍철이 대기실로 들어오며 '안녕하세요! 나쁜 형!'이라며 인사와 동시에 비난을 한다고 증언하고, 유재석은 박명수가 대기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아하! 다 죽일거야!', '야!야!야! 커피 갖고 와!'라고 말한다고 증언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녹화장 바깥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러한 에피소드들은 무한도전의 쇼가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점을 시청자들에게 주지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러니까 무한도전이 매회 특집 방송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것은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며, 멤버들이 매번 처절하게 상대방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오락산업 이면의 현실적 풍경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퀴즈의 달인' 시기는 이후 무한도전이 뉴질랜드의 '롤링페이퍼'나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바래' 코너 등을 통해 현실의 갈등을 버라이어티라는 허구적 쇼와 결부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발판을 마련해두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무한도전의 아이디어 뱅크 정형돈


무한도전의 세계를 유심히 관찰하면 갑작스럽게 준비된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에피소드 중에 등장한 '100분 토론 끝없는 논쟁, 유재석씨 가정 화목한가?'라는 자막은 그 한 예이다. 이 자막은 이미 지난 주에도 등장했던 것이기도 한데, 이후 무한도전은 2007년에 방영된 '황금돼지해 특집'편에서 '한류 열풍 무한도전 멤버도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녹화시간 100분 동안 벌이는 '100분 토론'을 방영하기도 했다. 또 2008년에 방영된 100회 특집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동명이인 100명을 초대해서 무한도전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100분 토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에 대한 끊임없는 변주와 패러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무한도전이 사소한 아이디어를 조금씩 변형시켜서 진화를 해나가는 데에는 멤버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순간적인 재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정형돈은 이번 방송에서 여러차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는 내놓음으로써 무한도전 내의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그는 유재석에 의해 말이 중간에 끊겼지만, 유재석의 가정이 화목한가의 여부를 시청자 게시판에서 물어보자고 제안을 해서 유재석의 화를 돋우게 된다. 또한 박명수가 초콜릿 CF에 어울리지 않는 이유로 '안 사면 호통칠 것 같다'는 시청자 의견이 발표된 후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CF를 찍으면 효과적일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아서 박명수를 돋보이게 하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 박명수 : (이를 악물고 호통을 치며)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잖아! 왜 안 사? 정확한 정량이야! 코코넛 반 팜유 반!
- 유재석 : 아니 그런데 이 초콜릿 너무 달지 않나요?
- 박명수 : (여전히 호통을 치며) 소금 쳐(서) 먹어!
- 정형돈 : 소금을 쳐서 먹으란 얘기죠.
(멤버들 모두 하하의 선창에 따라 '박명수!'를 연호한다.)


위 대화에서 정형돈은 자칫 시청자들로부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지도 모를 박명수의 말을 순화시켜서 지적해 줌으로써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자신이 부각되기보다는 다른 멤버들을 돋보이게 만드려는 이런 작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무한도전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다. 그리고 정형돈처럼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성실한 어시스트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갔던 또 한 사람은 바로 이윤석이다.

 


달콤한 저격수 이윤석과 '좋은 친구들'


박명수는 이날 천연덕스럽게 녹화 중에 가스를 방출해서 다른 멤버들이 기겁하게 되는데, 곧 있을 방송에서 눈꼽이 낀 모습이 지적되어 '분비물 3종 세트'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분비물 개그'로 명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윤석이었다. 또한 그는 박명수가 다른 멤버들에게 '너는 이제 2년 남았어' 하는 식으로 다른 멤버들의 개그 인생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고 '시한부 개그'라는 명칭을 부여한 사람이기도 하다.


단순한 것 같지만 개그에 명칭을 부여하는 이러한 재능은 개그를 조금 더 지속적인 형태로 오래 각인시켜줄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것이다. 만일 2008년에 방영된 '레슬링 특집'에서 정형돈이 레슬링 국가대표를 쓰러뜨린 장면에서 '족발슬램'이란 자막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도록 하자. 아마도 그 장면은 재미는 있었겠지만 그토록 큰 폭발력을 갖고 대중들의 지속적인 주목을 받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윤석은 무한도전의 자막이 본 궤도에 오르기 전에 자막의 역할을 대신하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날 방송에서 이윤석은 거칠고 드센 무한도전 멤버들 내에서 다소 소심하고 유약한 성격의 그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 박명수 : (유재석이 자신의 말을 번번히 막자) 왜 말을 막아?
- 유재석 : 내 말 한 거예요, 막은 게 아니라. 하세요!
- 박명수 :  초콜릿 안에....
- 유재석 : (박명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로막으며) 됐습니다.
- 박명수 : (허탈한 표정으로) 너무 견제한다! 이래서 내가 못 크는 거야!
- 이윤석 : (상냥하게 웃으면서) 많이 크셨어요.
- 박명수 : (서운한 시선으로 이윤석을 바라본다.)


박명수에게 '많이 크셨어요'라고 말한 이윤석의 속뜻을 유재석은 '이게 당신의 한계다'라고 정확히 짚어주어서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었을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이때 자막은 이윤석을 '친절한 저격수'로 표현해서 무한도전 내의 공공의 적인 박명수를 상대할 또 다른 복병의 탄생을 알려주고 있다.


이어진 장면에서 유재석이 '쌩얼이 못났다'라는 이유가 2주째 그의 단점으로 거론되자 박명수는 자신의 단점으로 못났다는 지적이 없었던 사실이 내심 자랑스러웠는지 다른 멤버들에게 그 점을 거론하게 된다.


- 박명수 : 시청자들에게 감사한 건 '쌩얼이 못났다'라는 말은 안 하시네요.
- 하하 : 왜냐하면은 박명수씨한테 '쌩얼이 못났다'고 하면 진짜가 되잖아요.
(박명수의 가슴에 화살 7발이 동시에 꽂힌다.)
- 이윤석 : 그리고 또 쌩얼이 아니예요. 좀 (손) 댄 얼이지!
(박명수의 가슴에 대형 화살이 꽂힌다. 멤버 일동 폭소)
- 정형돈 : 저런 건 참 좋내요. 스스로를 낮추면서 겸손하게 사람을 공격하는 건.
- 박명수 : 이 친구가 배운 친구예요. 고학력자고!
- 정형돈 : 보세요! 자기 욕해도 겸손하게 얘기하니까 잘 모르잖아요!
- 유재석 : 설마 박명수씨는 지금 칭찬으로 들으신 건가요?! 방송으로 다시 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요! (이윤석에게) 그 때 만약 (박명수에게서) 전화 오면 전화를 꺼놓으세요.


하하가 박명수를 향한 공격의 물고를 트고 있다면, 이윤석은 여전히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로 박명수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정형돈은 이윤석 개그의 웃음 포인트를 시청자들에게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한편, 박명수를 비난한 이윤석을 오히려 칭찬하고 있는 박명수를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이윤석과 박명수 모두를 살리는 재치있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유재석은 재빨리 이들의 대화를 정리해주는 멘트를 해서 주고받는 대화가 일정한 의미단위를 지닐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면에서 곧 폐지될 예정인 <라인업>에 출연한 이윤석의 모습은 여러가지 점에서 아쉬운 것이었다. 우선 이경규 라인과 김용만 라인이라는 두 라인간의 대결과 경쟁을 부각시키다 보니, 자유로운 이합집산을 통해 보다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무한도전에 비해 라인업은 뻣뻣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라인업에는 '퀴즈의 달인' 시기의 무한도전 멤버들이 보여주는 현란한 세트 플레이가 적었다는 점 역시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김경민 등을 비롯해서 멤버들이 자신만 부각시키려고 노력을 하다보니 개그의 짜임새도 부족했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날아나니는 수준의 개그 본능을 가지고 있는 신정환이 유독 라인업에서는 침울하기조차 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버라이어티쇼에서 개그는 혼자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부각시킬 줄 아는 동료들이 뒷받침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다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으로 평가받기도 하는 이윤석의 예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좋은 동료들은 상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지금 이윤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의 잠재된 가능성을 눈 뜨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이다.

 


무한도전의 팀플레이 이것이 다르다


'아하 신동' 노홍철이 유재석의 '사물함' 단어 공격에 어이없이 무너지자 멤버들은 노홍철을 박으로 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여박을 손에 들고 너도나도 노홍철에게 몰려들게 된다. 이 때도 유재석은 뾰족한 꼭지가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유난히 두껍기까지 한 이윤석의 여박을 지적하며, 이윤석이 '은근히 잔인한 면'이 있다고 말해서 '친절한 저격수'로서 그의 면모를 부각시켜주고 있다.


또 하하는 유재석이 박명수의 공격단어 '에로물'을 '물에로'라고 발음해서 박을 맞게 되자 유재석이 끝까지 '에로'를 포기하지 않는다며 '내 마음의 에로'라고 약올리게 되는데, 이 역시 '비디오 청년' 유재석의 캐릭터를 강화시켜주려는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이 유재석의 머리 위에서 그를 내려칠 박을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자 잔뜩 신경이 곤두선 유재석이 '내가 안 들리게 하세요'라고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러자 박명수가 재빨리 귀마개 도우미 역할을 해서 자신의 손으로 유재석의 귀를 막는 장면 역시 무한도전의 팀플레이를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박명수가 유재석의 '분실물' 공격에 '실문분'으로 대답해 쌍박을 맞게 되고, 공격에 머리가 잔뜩 눌린 박명수의 모습을 유재석은 김무스를 닮았다고 지적하게 된다. 이때 화면에는 김무스의 사진이 등장해서 시청자들에게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박명수와 비교를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고 있다.


이처럼 '퀴즈의 달인' 시기의 팀플레이는 라인업과 비교했을 때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자막이나 화면 역시 시청자들이 이들이 펼치는 개그의 포인트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적절히 제공하고 그것을 지적해 줌으로써 웃음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무한도전의 자막은 '제7의 멤버'로서 무한도전이 기존의 개그 스타일과 다른 형태의 웃음을 생산해낼 수 있게 하는 가장 큰 조력자이지만 그 저력은 이처럼 상황을 부연설명하는 군더더기를 없애고 간결하게 상황을 설명해내는 기본기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유행하자 유사한 스타일의 자막이 다른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지만 그 사용방식이 간혹 유치하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잘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박명수 은퇴를 선언하다!


박명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노홍철이 뜬금없이 '얼굴이 전광판이야'라고 말을 하게 된다. 유재석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궁금해하자 노홍철은 '얼굴에 포인트가 다 나와'라고 대답을 해서 박명수의 화를 돋우게 된다. 그러자 박명수가 노홍철에게 '내가 보기에 이번 연도 내리막이다', '급내리막, 넌 벌써 미끄럼틀 탔어'라고 맹비난을 퍼붓게 된다. 이에 유재석이 노홍철을 위로하는 척 하면서 '거기 도착해 보면 박명수씨 계실거예요'라고 말하면서 박명수를 공격하게 된다. 그러자 박명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기는 '급부흥기'이고 '신흥세력'이니 유재석이 제일 먼저 은퇴를 해야될 것 같다고 말해 유재석의 가슴에 화살이 꽂히게 된다.


다른 멤버들은 박명수의 이야기 대로라면 방송계는 2년 안에 박명수만 남게 되서 그가 뉴스까지 혼자 진행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박명수는 혼자 남게 된다는 말에 화색이 돌며 엄기영 성대모사로 뉴스 개그를 해보지만 멤버들은 신통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


- 하하 : (뉴스 개그를 하는 박명수를 보며) 그래도 웃기긴 웃겨야 될 거예요.
- 박명수 : 니들이 날 죽이는구나! 니들이 내가 너무 크니까 밟는구나!
- 유재석 : 저희가 밟는 게 아니라 본인이 '본인의 함정'을 파세요.
- 박명수 : 방송 외적인 얘긴데, 내가 좀 급하게 인기가 왔어! 급하게 와서 불안하거든, 좀 도와줘.
- 노홍철 : 시청자한테 진심으로 호소하세요! 형님!
- 박명수 : (버럭 화를 내며) 누가 누굴 가르쳐!
- 노홍철 : (박명수의 복화술 복식으로) 시청자한테 호소하세요!
- 유재석 : (노홍철의 복식 개그를 보며) 털복식이야! 털복식!
(자막 : 박사장의 복식을 털로 업그레이드!)
- 노홍철 : (털복식을 하며) 진심으로 호소하세요!
- 박명수 : 아이, 근본없는 놈!


유재석은 갑자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 박명수가 어떻게 보답할 지 고민하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그의 정황을 설명한다. 이 때 이윤석이 나서서 '원래 정상의 인기가 있을 때 가장 외로운 것이거든요. 서태지씨가 그래서 은퇴를 한 거거든요.'라며 진지한 말투로 갑자기 은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박명수는 갑작스러운 은퇴 언급에 어이가 없는지 웃고만 있고, 다른 멤버들이 나서서 박명수의 은퇴를 성급하게 결정내리게 된다. 노홍철은 '좋은 기억으로 떠나는게 낫지'라고 말해 누구보다 박명수의 은퇴를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박명수는 '제8의 전성기'를 맞이하자마자 '은퇴 선언 기자회견'이 열리게 된다.


유재석과 정형돈은 물병들을 모아서 기자회견용 마이크인양 박명수에게 가져다 대고, 섹션TV 연예통신의 리포터인 이윤석은 넥타이 마이크를 들고 박명수와 인터뷰를 하고, 노홍철은 세트를 들어 어깨에 걸쳐매고 방송국 카메라처럼 박명수를 촬영하고, 하하는 맨 손으로 카메라를 만들어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자막 역시 '정상에 있을 때 아름다운 모습으로 떠나고픈', '위대한 개그맨'. '위대한 CEO' 박명수의 '은퇴 선언 기자회견'을 긴급한 속보인 것처럼 화면에 내보내 무한도전 녹화중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건을 뉴스 보도처럼 전하고 있다.


박명수는 어설픈 이회창 성대모사로 자신의 은퇴 소감을 진지하게 전하려 하지만 이번에도 하하가 끼여들어 '자, 테이프 갈고 갈게요!'라고 외쳐서 분위기를 망쳐놓는다. 하하는 또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겠다'는 박명수의 말을 중단시키고, 물병 마이크를 들고 있던 유재석을 가리키며 '어, 유재석씨 아니예요? 유재석이다'라고 말해 최고의 MC 유재석에게 모든 취재진들의 관심이 집중되도록 만든다. 그 모습을 옆에서 쓸쓸하게 지켜보던 박명수는 무대 중앙으로 나와서 노래 한곡 부르겠다며 홀로 구슬픈 은퇴가를 부르게 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박명수의 은퇴식은 박명수가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 끝을 맺게 된다. 고맙게도 박명수가 떠나는 길을 함께 하러 온 동료들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하고 다들 박명수의 퇴장을 기뻐하는 눈치다. 이윤석은 '아디오스 박명수'라고 외치고, 하하는 '슬프다'며 괜히 거짓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하고, 노홍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것뿐!'이라며 단호하게 말한다. 차츰 무대 뒤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박명수의 모습은 그의 데뷔 시절부터의 활동장면들과 오버랩되며, 마치 진짜 고별방송인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무대 뒤로 들어간 박명수는 마봉춘 아나운서를 인질 삼아 다시 '연예계 복귀 기자 회견'을 열게 되고, 이것으로 '제8의 전성기' 종료되었고 '이제 제9의 전성기'가 열렸다고 선언함으로써 이날의 은퇴식은 끝나게 된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박명수의 은퇴식은 그러나 멤버들의 순간적인 재치가 마음껏 발휘된 이날의 명장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박명수와 노홍철의 갈등에 숨겨진 박명수의 고뇌를 유재석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 이윤석이 갑작스러운 인기에 당황해 하는 박명수의 모습을 서태지와 같은 정상급 연예인들의 은퇴소식과 연결시켜서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어놓고, 박명수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던 멤버들이 나서서 박명수의 은퇴식을 열어주는 모습은 박명수에 대한 정중한 호의에 감추어진 그들의 본심이 속속들이 들어나면서 그들이 진지해질수록 우스꽝스러운 상황으로 돌변해버리고 만다.


하하가 은퇴 주인공인 박명수를 밀치고 최고의 MC 유재석에게 언론이 집중하도록 만드는 장면은 이 상황이 지닌 웃음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박명수가 '제8의 전성기'라며 큰소리를 치지만 실제 현실에서 그는 오랜 무명 생활 끝에 겨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평범한 개그맨일 뿐 유재석의 명성에는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그런 존재이다. 그런 그가 본인이 원치 않게 다른 슈퍼스타들처럼 은퇴식을 한다고 하니 웃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박명수의 은퇴를 열어주는 멤버들의 본심은 그를 하루 빨리 무한도전에서 내쫓으려는 음흉한 속셈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박명수의 은퇴를 종용할수록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해하는 박명수의 모습은 웃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장면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무한도전은 연예인들 간의 서열과 격차가 존재하는 치열한 현실의 모습을 버라이어티식으로 표현하고 또 캐릭터들간의 충돌이라는 버라이어티적 요소는 리얼리티적 시각에서 접근을 해서, 리얼리티와 버라이어티가 서로 교차하는 영역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이 장면은 거의 원형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은 현실은 쇼오락적으로 표현하고, 쇼오락적인 요소들은 현실적 관점에서 접근을 하는 데서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오락물이라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유재석이 전하는 대기실 풍경을 보며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긴장 관계를 실제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반대로 박명수의 은퇴식에서처럼 유재석과 박명수 간의 현실적 격차가 버라이어티하게 표현됨으로써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을 긴장감을 웃으며 시청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이러한 패턴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무한도전을 규정짓는 형식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이러한 형식적 원리를 앞으로 어떻게 전개시켜 나갈지는 두고 보기로 하면서 오늘의 리뷰를 마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