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7회(2006.1.28.)
몇 가지 변화들
'설특집'으로 방영된 이 날의 방송분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변화들이 눈에 띈다. 우선 지난 주를 마지막으로 '퀴즈의 달인' 코너가 사라졌다. 그 전까지 무한도전은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과 상품을 놓고 벌이는 '퀴즈의 달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송분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했고 프로그램의 타이틀이기도 했던 '퀴즈의 달인'이 폐지되고, 그 대신 시청자 앙케트 코너가 확대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중대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 '퀴즈의 달인' 코너는 '아하 게임'의 빠른 속도감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시청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코너였다. 멤버들이 시사 상식과 관련된 문제를 풀이하는 잠깐 동안의 휴지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한 느낌을 주었고, 상품이라는 공동의 목표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멤버들 간의 상호 견제가 '아하 게임'에서만큼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석 라이더'가 등장했다가 슬며시 사라진 것 역시 이 당시 제작진의 고민을 충분히 짐작하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주시청층이 청소년임을 염두에 둘 때 제시되고 있는 문제들의 수준 역시 만만치 않은 것들이서, 그 문제들을 맞히지 못한다고 해서 멤버들의 무식을 비웃을 수 있을 만큼 '지적인' 시청자들은 드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난 주에 방영된 퀴즈 문제들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문제1. '월하노인'은 어떤 일을 한다고 알려진 전설상의 노인인가?
문제2. '백문이 불여일견'의 영어식 표현은?
문제3. 우리나라의 5대 판소리는?
문제4. 동요 '송아지'의 가사를 동요 '나비야'의 음에 맞춰 노래를 불러주세요.
'의미'는 있을 지 몰라도 '재미'는 없는 이런 문제들보다는 차라리 멤버들이 상품으로 획득한 호빵이나 군고구마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장면이나 박명수가 '잭과 콩나물' 따위의 개그를 펼쳐보이는 장면이 더 흥미로웠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 날 '퀴즈의 달인' 코너에서 최종으로 우승한 이윤석을 향해 유재석이 남긴 대사는 이 코너와 이윤석의 운명을 결정짓는 말이 되고 말았다. '똑똑하다. 이윤석씨가 가끔 보면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 저희들의 무식함을 어떻게 보면....' 물론 여기에서 생략된 대사는 '배려해서 고의적으로 모른 척하고 있다'는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번 언급한 것처럼 지적이고 배려심 깊은 이윤석은 불행히도 무한도전을 하차하게 되고 만다.
그 대신 무한도전이 앙케트의 '선정 이유'를 들어보는 시간과 그 다음 주에 있을 설문 주제를 놓고 벌이는 '무한극장'을 확대시킨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시청자들이 선정한 이유들을 살펴보면 멤버들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와 호감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제를 놓고 벌이는 '무한극장'은 일종의 상황극으로서 멤버들의 순발력과 재치가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다양한 상황에 따라 각각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반응들을 시청하면서 시청자들이 캐릭터의 행동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무한도전 멤버들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는 추측을 하며 즐거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캐릭터가 정교하게 구축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다.
악담으로 시작한 새해 첫인사
'설특집'에 걸맞게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멤버들이 등장해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하며 이 날의 방송은 시작된다. 중후한 멋을 뽐내는 박명수의 한복이나 한복에서마저 럭셔리함이 묻어나는 하하의 한복, 그리고 염색한 머리 때문에 설날 외국인 장기자랑 같은 분위기가 나는 노홍철의 한복에 이르기까지 멤버들 각자의 개성이 한복차림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가장 연장자인 박명수는 맏형답게 '덕담'을 해달라는 유재석의 부탁에 팀 전원에게 골고루 '악담'을 해주게 된다. 유재석에게는 '우리 MC유는 2년 남았으니까 마무리 잘 하시고.'라며 자신이 선고한 유예기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그 날 깔끔하게 이발을 하고 온 정형돈에게는 '정형돈씨는 머리도 어울리니까, 회사 다니고.'라며 개그를 그만둘 것을 종용하고, 박명수 킬러인 노홍철에게는 '노홍철씨도 한 1년 방송하셨죠? 내가 보기엔 기가 다 빠졌어요! 이제 재충전 좀 해!'라며 덕담 대신 악담을 해준다.
그러나 그대로 듣고만 있을 노홍철이 아니다. 노홍철은 빠르고 공격적인 말투로 박명수에게 앙갚음을 해준다. '명수 형님은 사업 때문에 두루두루 바쁘시잖아요. 안 되면 빨리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꾸 여러 개 벌인다고 좋은 게 아닌 것 같아. 하나만 해! 제대로 하나만!'
여기에 늘상 점심 메뉴로 박명수의 '명수 세트'(피자와 치킨)를 시켜먹어야만 했던 멤버들의 불만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스파게티도 서비스가 아니고, 남은 콜라는 다시 가져가고, 쿠폰은 빼앗고, 스태프들에겐 자기가 산 것처럼 생색을 내며 인심을 쓴다는 멤버들의 불평은 흡사 박명수가 환생한 '놀부'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피자와 치킨 이외의 다른 점심 메뉴를 먹고 싶다는 멤버들에게 자신이 새로 개발한 '치킨 떡볶이'나 자신의 어머니가 직접 끓여오시는 '떡국'을 권하는 놀라운 사업 수완을 보여주는 장면은 박명수식 '실용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대개의 '안티히어로'들이 그러하듯 시청자들로부터 욕을 먹을 수 있는 행동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박명수의 캐릭터는 이처럼 실생활에서도 발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소한 에피소드는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박명수의 끊임없는 공격성은 무한극장에서도 여실히 발휘되고 있다. 박명수는 '부모님께 당당히 결혼 상대자로 인사드릴 수 있는 사람'이란 주제로 펼쳐진 꽁트에서 의외로 무던한 인내심을 발휘한다. '박명수씨, 확실히 미혼이죠?'라는 이윤석의 말이나 초혼이 아니라고 놀리는 하하와 정형돈의 말에도 꿋꿋히 견디며 그는 유재석과 하하가 실제로 자신의 장인과 장모인 양 너무나 진지하게 맞선에 임한다. 그는 방석을 '홍삼 17년산'이라고 선물하는가 하면, 72년생이라고 거짓으로 나이를 말하기도 한다. 또 고령으로 인해 체력이 의심스럽다는 말에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 펴기를 아무런 투정없이 해내는가 하면 장인과 장모의 눈에 들기 위해 열심히 쪼쪼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노총각인 그의 속내가 전혀 반영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듯싶다.
그러나 박명수의 온갖 아양을 다 본 후 장인 역을 맡은 유재석이 '난 이 결혼 반댈세!'라며 냉정하게 그를 거부하자 결국 잘 참아왔던 그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만다. 그는 '뭐 이런 집구석이 다 있어'라며 호통을 치며 '건방진 장인'인 유재석에게 'X침'을 놓기도 한다. 이미 지난 주에도 박명수는 유재석에게 '유도X침'을 놓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아주 대놓고 공격성을 표출한다. 그는 유재석과 벌인 '마봉춘배 제 1회 발씨름'에서도 발로 유재석의 급소를 공격하여 손쉽게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말끔하게 정장으로 차려입은 성인 남자들이 하는 행동치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무한도전 멤버들은 2006년 연예대상 시상식에서도 서로에게 'X침'을 찌르는 장난을 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최근에 방영된 '중국 특집' 편에서도 노홍철이 박명수에게 'X침'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이 시기에 박명수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분비물 개그의 달인 박명수 침을 흘리기 시작하다
박명수는 '퀴즈의 달인' 이전에도 종종 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 왔지만 그것이 그의 캐릭터로 굳어진 것은 이번 에피소드를 거치면서부터였다. 유난히 '아하 게임'에 서툴렀던 박명수는 자기 차례가 오면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는데, 유재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박명수가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박명수는 긴장을 하면,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고, 입에서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고 유재석이 지적을 하자 멤버들이 무한도전의 '악의 축' 박명수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정형돈은 '입부분이 침 때문에 메이크업이 안 되는 사람'으로, 노홍철은 '우리와 같이 있는데도 어색한 사람'으로 박명수를 묘사하고, 유재석은 '건실한 청년을 비디오 청년으로 만든 사람'이라며 박명수를 공격한다.
이후 방영된 에피소드들에서 박명수는 녹화중 방귀를 뀌는 모습과 눈꼽이 낀 모습이 연달아 멤버들에 의해 포착이 되어 '침, 방귀, 눈꼽'이라는 '분비물 3종 세트'를 완성하게 되고, 이윤석에 의해 '분비물 개그'라는 명칭을 부여받게 된다. 박명수의 인간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남에 따라 그의 위신은 나날이 추락해갔지만 그의 캐릭터는 그와는 반대로 나날이 생명력과 인기를 얻어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개인의 신체적 약점이 개그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그것을 포장하는 능력과 주위 다른 멤버들의 적절한 리액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점 많은 박명수를 지적하며 무한도전 멤버들은 완벽할 것 같은 연예인들의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를 비난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약점들을 노출시킴으로써 대중들의 호감을 얻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명수의 또 다른 개그 무기는 '개그의 유전'이라 불리는 그의 얼굴이다. 이 날 발표된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은 사람 순위'란 설문조사에서 박명수는 당당히 3위에 입상하게 되었는데, 그의 장점으로 조사된 선정이유는 '언제든지 성형수술이 가능하다'였다. 박명수는 선정이유를 듣고 자신만만하게 '피부 트러블 없이 깔끔한 수술!', '수술 후 빨리 아무는 피부', '마이신에 전혀 부작용이 없는 그런 얼굴'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내심 뿌듯해 하는 박명수가 어이없었는 지, 하하는 '부작용이 나도 그리 미안하지 않은 얼굴'이라고 놀리고 이윤석은 '박명수씨는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며 쐐기를 박는다. 박명수가 자신의 희극적인 얼굴을 통해 '빅웃음'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면, 무한도전 내에서 가장 희극인다운(?) 박명수의 얼굴을 다른 멤버들이 비웃지만 부러워하는 것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닌 것 같다.
이간질 대마왕 하하
예비 승무원 200명을 대상으로 한 앙케트 조사에서 유재석은 당당히 '애완동물로 키우고 싶은 사람' 1위를 차지하게 된다. 2위는 하하, 3위는 박명수, 4위는 노홍철이 차지하게 되는데, 아직까지는 사진 걸기 퍼포먼스가 준비되지 않은 터라 1, 2, 3위를 차지한 사람들끼리 동맹을 맺게 된다. 박명수는 '장동건 같은 사람들이 잘 생긴 거 하고 귀여운 거는 우리가 하면 된다'며 자신의 '귀여운' 얼굴을 자랑스러워 하고, 하하는 버려진 다름 멤버들을 향해 '내가 봐도 키우기 싫다'며 비아냥거린다. '귀여운' 동맹군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자신들은 '밥도 많이 안 먹고'(정형돈), '많이 안 떠들고'(노홍철), '많이 안 아프고'(이윤석) 장점이 많다며 뽐을 낸다.
선정이유를 들어보면 멤버들의 어떤 점이 캐릭터화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정형돈 - (단점) 사료값이 많이 들 것 같다! (장점) 아무거나 잘 먹는다!
이윤석 - (단점) 동물병원 가느라 다른 일 못 본다. (장점) 가벼워서 데리고 다니기 편하다.
노홍철 - (단점) 1. 시끄럽다. 2. 털이 날린다. (장점) 1.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다. 2. 희귀하다.
박명수 - (단점) 1. 주인에게 호통친다. 2. 한 주인에게 만족하지 못한다. (장점) 언제든 성형수술이 가능하다.
이 시기에 다른 멤버들에 비해 '뚱뚱하고' '잘 먹는 것' 이외에 별다른 캐릭터가 없었던 정형돈은 이후 계속된 설문조사에서 순위에 들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런 정형돈이 안 되 보였는 지 하하는 지난 주부터 계속해서 정형돈을 홍금보를 닮았다며 약올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 펼쳐진 무한극장에서도 장모 역을 맡은 하하는 엔터테이너로 활동한다는 사위 후보 정형돈에게 '외화특선에 홍금보'로 나오지 않았냐고 말을 한다. 하하는 <썩소 앤 시티> 편의 식사장면에서 정형돈에게 홍금보가 아니냐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노홍철과 더불어 박명수 킬러인 하하는 사실 그의 은밀한 조력자이기도 했다. 박명수가 상황극임에도 지나치게 긴장을 해서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자 하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진짜 어려워 해! 진짠가 봐! 내가 어이가 없어가지고. 왜 이렇게 어려워 해.'라고 말해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그 때서야 유재석도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는 박명수에게 '설마 저희들에게 딸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죠?'라고 질문을 던져 자칫 놓칠 수도 있었을 개그의 맥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애매해질 수 있는 순간에 치고들어온 하하의 센스가 돋보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하하는 '아하 게임'에서도 멤버들의 이합집산을 주도하는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유재석이 '툼스톤'이란 단어로 박명수를 공격해 최초로 원펀치 공격에 성공하자 유재석을 외치며 그의 편을 들었다가, 박명수의 공격 차례가 되자 이번에는 다시 박명수의 편에 붙어 그에게 한방 단어를 전수하기까지 한다. 이후 0박팀 VS 피박팀으로 나뉘어 멤버들이 팽팽하게 대립을 하자 상대편에 있던 박명수에게 '자리 선정만 잘 하면 돼요. 형이 거기 왜 있어?'하며 유혹을 해서 어린뚱보 정형돈 VS 피박팀 구도를 만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하하는 무한도전 내에서 끊어질 듯한 개그의 맥을 짚어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이 더욱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최근 무한도전이 때때로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거나 혹은 다소 지친 듯한 인상을 주는 데에는 하하의 부재가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친 다른 멤버들에게 힘내라고 소리도 질러주고, 정준하의 어처구니 없는 개그에 그나마 리액션을 취해줘서 웃어 넘길 수 있게 해주고, 노홍철과 더불어 박명수를 골려서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하고, 재석교의 열혈 신도로서 유재석을 돕기도 하고, 어색한 뚱보 정형돈을 더욱 어색하게 만들어서 즐거움을 주었던 그의 빈자리가 옛 화면들을 볼수록 커져만 보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게임의 법칙
'아하 게임'에서 유재석은 '윷놀이'라는 단어를 받아 '이놀윷'이라고 정확히 대답을 했지만 정형돈이 '이윷놀'이라고 발음했다고 주장을 해서 일대 소동이 벌어지게 된다. 이에 제작진마저 정형돈에게 동조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비디오 판독 검사까지 실시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사건은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지게 되고, 무한도전답게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원칙에 따라 정형돈이 박을 맞게 되고 만다. 정형돈은 다소 억울했는지 이후 사사건건 유재석과 대립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계속 자리를 바꾸어가며 유재석과 팽팽하게 대립하던 정형돈은 마침내 유재석을 여박으로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때 유재석은 '여박에 자신이 없으면 들지 마세요'라고 말해 <여박 시도해서 못 깨면 여박한 사람이 맞는다>는 게임의 법칙이 만들어지게 된다. <아픈 데 만지기 없기>라는 제 2의 법칙은 다음 <입춘 특집>편에서 하하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정형돈은 여박으로는 분이 덜 풀렸는지 유재석에게 '비디오 봐?'하고 묻고 유재석이 '안 봐!'하고 대답을 하자 '그럼 암바'하며 암바 기술에 들어간다. <"비디오 안 봐[암바]"라고 거짓말할 경우 가해지는 무한도전 법칙>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도 무한도전 멤버들이 애용하는 기술 중 하나인데, 당시에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K1의 암바 기술을 '안 봐!'/'암바'라는 말장난을 통해 끌어들이는 방식이 재치있다.
이날 방송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법칙은 '쌍박!'이라고 외쳤을 경우 무희들이 등장해서 진짜 삼바춤을 추는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늘씬한 무희들의 모습에 이성을 잃은 채 정형돈은 침을 흘리고, 유재석은 눈에 쌍하트가 떠있고, 노홍철은 벌렁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딱 철딱서니 없는 수컷들 같다. 정형돈이 '괜찮다면 계속 쌍박 어떻습까?'라며 은밀히 제안을 하자 이윤석이 한 술 더 떠 '쌍박을 기본박으로 할까요?'라고 말하고, 박명수가 '혹시 5박 하면 한 열댓 명 나오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여자친구나 결혼 상대자가 있는 지금과 비교를 해보면 참 많이 점잖아지고 철이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멤버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가던 이 시기의 무한도전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에게 'X침'을 놓고 즐거워 하고, 이성 앞에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모습이나 '캐릭터'라는 각자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모습 등은 자아 형성 시기의 그것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을 확장시켜 무한도전을 개체의 성장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해 볼 수 있을 듯하다.
'퀴즈의 달인' 시기가 정체성(캐릭터)을 형성해가는 청소년기라면, 무한도전이 좁은 실내에서 벗어나 세상에 뛰어든 2006년과 2007년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무엇이든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20대 청년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기를 거치고 멤버 전원이 서른 살을 맞은 2008년은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맞은 또 다른 성숙의 시기임에 분명하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너는 어린 시절 모습이 귀여우니 그대로 멈추어라 라고 말하는 것이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저주이듯이 끊임없이 성장해가는 무한도전에게 초심타령이나 하고 쫄쫄이를 입고 뛰어다니던 모습이 그립다고 말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무한도전의 성장과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저주의 말일 것이다. 과도한 기대와 사랑을 버리고 한 발 물러서서 그들을 지켜본다면 꾸준히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유쾌하고 즐거운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사랑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집착으로 변질된 사랑은 서로에게 독일 수도 있다는 말이 요즘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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