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7> 미래에 대한 기억을 찾아서
- 무한도전 103회 (080503) : 경주 보물찾기 특집-오룡 여의주를 찾아라 2탄
무한도전이 남겨놓은 수수께끼
그 자체가 국보인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펼친 무한도전의 보물찾기는 끝이 났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무한도전이 남겨놓은 흥미진진한 수수께끼에 대한 풀이를 시작해야만 한다. 그것은 지난 주에 방영된 이상한 한 장면에서부터 출발한다. 우선 두 장의 사진을 비교해보도록 하자.
'한국판 내셔널 트레져 헌터'라는 자막이 선명한 왼쪽 사진은 지난 주에 방송된 이번 주의 예고편이고, 오른쪽 사진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은 <내셔널 트레져 2: 비밀의 책>의 영화 포스터이다. 이 두 장의 사진은 내가 지난 리뷰에서 무한도전의 '경주 보물찾기 특집'편이 영화 <내셔널 트레져>를 벤치마킹했다는 판단을 내리게 한 결정적 단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자막이 아니라 서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 사진들 속에 공통으로 등장하고 있는 '피라미드와 눈'이다. 영화 포스터에서는 제목의 상단에 세계를 나타내는 원형 조형물 가운데에 황금빛으로 테두리를 한 삼각형 안에 하나의 눈이 들어 있다. 반면에 무한도전의 예고편 장면에서는 피라미드 형태의 조형물 상단에 두 개의 눈이 박혀 있다. 하지만 그 두 눈은 아래로 쳐져 있어 전체적으로 멍청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여기에서 의문을 가져야 할 점은 도대체 왜 두 사진 모두에서 삼각형과 눈이 발견되고 있으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해답은 다음의 두 사진을 통해 찾아보도록 하자.
왼쪽 사진은 1달러 지폐 뒷면과 그 곳에 그려진 조형물을 확대한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그 중 좌편에 그려진 피라미드를 확대한 사진이다. 확대된 오른쪽 사진을 통해 위꼭지가 없는 사각모양의 피라미드와 그 위에서 약간의 간격을 벌인 채 삼각형 안에 담긴 눈이 금빛 광선을 내뿜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1달러 지폐에 이런 상징물들은 왜 그려져 있는 것이고, 그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우선 13층의 미완성 상태의 피라미드는 '물질계와 천계를 이어주는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13이란 숫자는 유대의 카발라 전통에서 초월을 상징하는 숫자이고, 삼각형은 히브리 문자로 'A'에 해당하는 '아인(Ayin)'이고 '눈'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눈'은 '진리의 눈' 혹은 '신의 눈'으로 해석되며 흔히 전시안(全視眼)이라 불리는 것이다. 또한 삼각형이 내뿜고 있는 금빛 광선은 태양을 의미하며 이집트의 태양신인 '라(Ra)'를 상징한다. 그리고 피라미드 하단에 새겨넣은 'MDCCLXXVI'는 라틴어로 '1776'을 뜻하는데, 이는 미국의 독립 기념일을 나타내는 숫자이기도 하지만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한 지파인 '일루미나티(Illuminati)'가 창립된 해이기도 하다.(참고 1)
혹자는 벤자민 프랭클린, 루즈벨트 등 역대 미국의 대통령들 역시 비밀단체인 프리메이슨의 회원들이었기 때문에 이처럼 심오한 상징들을 1달러 안에 새겨넣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단체는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자주 나타나기도 하는데, <툼레이더>의 여주인공 라라 크로퍼드는 일루미나티의 세계 지배 음모에 대항해서 싸우기도 하고, <내셔널 트레져>의 주인공 벤자민은 가문의 명예와 프리메이슨이 숨겨놓은 막대한 양의 황금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자, 그렇다면 이제 1달러 지폐와 영화 <내셔널 트레져>와 무한도전에 등장하고 있는 피라미드와 삼각형 속의 눈의 정체는 어느 정도 밝혀 졌다. 그것은 이 세계를 관장하는 전지전능한 신과 그의 신비로운 힘을 상징한다. 미국의 화폐에 새겨넣은 그러한 상징물은 돈과 미국이 전세계를 지배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고 있고, 현대의 대중오락인 영화에서는 <내셔널 트레져>의 영화 포스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오락적 재미'라는 외투를 입혀서 미국 중심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그것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에서 등장하고 있는 피라미드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미완성 상태의 피라미드도 아니고 하나의 진리를 상징하는 하나의 '눈'이 아니라 아둔한 느낌을 주는 두 개의 '눈'이 그려져 있기 때문에 다른 예들과 차별화된다. 따라서 무한도전은 대한민국의 국보들에 신비감을 주기 위해 보편화된 국적 불명의 상징을 차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경주 보물찾기 특집'편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무한도전이 헐리우드 영화처럼 한 국가나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흐리멍텅하게 보이는 그 '두 개의 눈들'은 진리의 복수성을 긍정하는 희극의 눈이기 때문에 나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독선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은 왜 <내셔널 트레져>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난 리뷰에서 밝혔듯이 '경주 보물찾기 특집'편이 미스테리 추리극과 액션 장르를 차용해서 촬영되었다는 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멤버들은 미션 지령에 따라 장소를 이동하며 끊임없이 서로를 추격하고 견제하며, 문제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니까 경주 특집은 액션영화 기법으로 촬영된 버라이어티 쇼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 무한도전은 우리 문화재의 상징적 코드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내셔널 트레져>나 <다빈치 코드> 못지 않게 추리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고 있다. 꼭대기의 이중석재는 동서남북을 나타내고, 12개의 기단은 1년 12개월을, 30개의 계단은 음력으로 한달의 날수를, 362개의 돌은 음력으로 1년의 날수를 상징하는 첨성대의 상징성이 피라미드의 그것에 못미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패러디된 피라미드는 헐리우드의 장르 영화에 대한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것의 창조적 변형이자 도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경주 특집'은 유려한 편집을 통해 질주하는 속도의 쾌감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문화재의 상징적 코드를 잘 활용해서 마치 한편의 미스테리 액션 영화를 시청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출력과 편집 능력은 직접적으로 '서울구경 특집'과 연관시킬 수 있겠지만 사실 그 기원은 '김수로의 몰래 카메라 특집' 편에서 찾아야 한다.
<여섯명이 김수로를 속이기 위해 짜낸 그 유치한 속임수들을 마치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상황처럼 묘사하며 에피소드를 긴박하게 끌고 가는 연출은 가히 올해 오락 프로그램중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했다. 처음에는 김수로, 유재석 팀, 박명수 팀으로 나눠져 있던 출연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나로 뭉쳐지고, 그 사이에 하나씩 김수로에 대한 속임수가 펼쳐지면서 마치 삼자 대면을 하는 듯한 편집이 이어진다. 어디에도 세련된 세트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삼원으로 분리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한 곳으로 모이고, 방송국에 들어가는 김수로의 동선을 따라 긴박하게 그를 추적하듯 방송국 안으로 들어가며, 그에 이어 김수로를 따라온 유재석 팀의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며 <무한도전> 팀의 혼란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한도전>의 연출과 촬영은 해외 리얼리티 쇼만큼이나 세련돼 보였다.>(강명석, The Show 무한도전>
경주에서 길을 잃다
그 자체가 국보인 경주에서 펼쳐진 무한도전의 보물찾기는 경주라는 도시의 탐사기이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인물 탐방기이기도 하다. 지도와 교통카드만 들고 미션카드에 적힌 장소로 찾아오라는 도전 과제는 시민들의 도움 없이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멤버들이 그들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지나치는 풍경들은 경주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학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배고픔과 악천후라는 조건이 추가되어 보물찾기에 나선 멤버들의 여정은 더욱 멀고도 험난했다.
분황사 석탑(황룡사지 9층 목탑) - 첨성대 - 대릉원 정문(천마총) - 포석정 - 불국사(황금돼지) - 경주타워로 이어지는 탐사여정 속에서 멤버들은 각자의 캐릭터에 걸맞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1) 다른 멤버들에 비해 유난히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유재석은 단 한 사람의 시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러한 재능이 유난히 빛을 발한 것은 '서울 구경 특집' 편에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장기가 미션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첫 미션에서 운이 없게도 박명수와 함께 분황사가 아닌 불국사로 잘못 찾아갔기 때문이다. 대신 분황사에서 첨성대로 이동하며 히치하이킹해서 얻어탄 자동차에서 주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나 불국사로 향하는 버스에서 사회를 보며 수학여행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모습은 그가 대중과의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람 좋아 보이는 그에게도 악동기질이 있다는 사실을 증언해주는 장면이 있다. 그는 미션지에 적힌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해 하며 뒷걸음치는 한 아주머니를 짓궂게 쫓아가기도 하고, 신이 나서 끌차를 타고 달려가는 '동네 바보형' 정준하를 집요하게 괴롭히기도 한다. 그리고 정형돈의 아침 인사도 안 받고 그냥 가버려서 '무한도전에게 동료애란 구시대의 유물'이란 자막이 등장할 만큼 그는 무한이기주의에 충실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기억력과 관찰력이 유난히 좋다고 알려진 그는 특히 다른 멤버들의 심리상태를 꿰뚫어보는 데 정통하다. 정류장에서 자신과 정형돈이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을 때, 그들의 모습을 발견한 '남들처럼은 죽어도 안 하는 청벼멸구 심보'를 가진 박명수가 의도적으로 반대 방향으로 향하자 유재석은 '우리가 여기에 있으니까 본능적으로 반대로 가는 거야'라며 그의 심리상태를 정확히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재석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정형돈에게 계속 아는 척을 할 만큼 허세를 부리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분황사행 버스에 제대로 올라탄 정형돈을 보고 '글로 가면 안 되는데! 안녕! 뚱뚱보 안녕!' 하고 외치기도 하고, 정형돈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불국사!!'라고 외쳐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어리숙한 유재석도 예리한 추리력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그는 첨성대 앞에서 미션지를 꺼내기 위해 알아내야 할 자물쇠 번호가 첨성대 돌의 개수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고, 최종 목표지인 경주타워를 상식과 기억력을 총동원해서 알아맞추기도 했다. 이는 그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위기의 상황에 강한 면모를 잘 보여준 장면들이라 할 수 있다.
2) 유재석과 단짝이면서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 박명수다. 그는 숙소 출발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 똑같이 지급되는 교통카드와 지도도 남의 것을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고, 능력이 안 되더라도 남보다 앞서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처음 찾아들어간 할인마트에서 점원의 옆구리를 찌르며 인터넷 검색을 재촉한다거나 공짜로 주린 배를 채우려는 얕은 술수를 부리는 모습은 경주에서 보여준 그의 행동 양식 전체를 축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불국사를 향하는 버스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1만2천원이나 하는 경주빵을 얻어먹기도 하고, 불쑥 오토바이 판매점을 찾아들어가 오토바이를 빌려 달라고 하기도 한다. 또 불국사에 유재석과 같이 도착했지만 분황사행 버스가 도착했을 때 그는 매몰차게 유재석을 밀어낼 정도로 질투심과 경쟁심이 강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에서 올바른 정보를 얻고도 불국사로 향할 만큼 강한 소신에 비해 생각은 그리 많지가 못하다. 언젠가 김태호 PD가 라디오에 출연해서 유재석은 숲을 보고 달린다면 박명수는 숲에서 가장 큰 나무만 보고 달린다고 한 적이 있는데 두 인물의 차이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비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악당은 그 대가를 치루게 되듯이 박명수 역시 항상 자신의 행동에 대한 벌을 받는 편이다. 그는 1,000보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노홍철과 미친듯한 추격적을 벌여 승리를 거두게 되지만 결국 목적지의 입구에서 핸디캡의 적용을 받아 노홍철로부터 역전당하게 된다. 또한 '레슬링 특집'편에서 손으로 자장면을 집어먹는 야만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 뒤 장염에 걸려 고생을 했던 것처럼 비를 맞으며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한 채 촬영을 하다보니 유재석과 경주역에 도착해서 '장내 평화의 그곳 경주역 화장실로' 직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캐릭터는 캐릭터일 뿐 그의 표독스러운 모습을 실제 성격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겠다. 만일 현실에서도 그가 그랬더라면 오늘날의 박명수가 존재하기나 했을까?
3) '동네 바보형' 정준하는 작년 한 해의 부진을 씻고 서서히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100회 특집'에서 '자장인 1호 정준하'로 크게 주목을 받더니 '첨성대에 3번 절한 최초 한국인', '우리동네 얼음형', '눈치 없는 바보형', '경주를 달리는 헬멧 쓴 기봉이' 등의 캐릭터를 쏟아내고 있다. 형이지만 착한 바보라는 특성으로 한데 묶일 수 있는 것들이지만 단란주점 파문 이후 캐릭터의 성장과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들은 그를 위해서든 무한도전을 위해서든 긍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하가 빠진 이후 정준하에게 리액션을 해줄 멤버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악재이지만 기존의 짝꿍인 정형돈에서 벗어나 똘이나 '뉴뚱' 노홍철과의 콤비 플레이는 괜찮아 보인다. 특히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노홍철의 감언이설에 속아 첨성대에서 3번씩이나 절을 하는 장면은 노홍철의 교활한 캐릭터와 정준하의 멍청한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켜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이었다. 한 살 어린 유재석에게 정준하가 번번히 당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천걸음 제한에 걸려 10분간 이동할 수 없는 벌칙에 걸린 정준하가 처량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서 있고, 그 모습을 보며 지나가던 할머니가 '아이고, 욕본다'라고 하자 자막으로 '앞으로 8분 더 욕볼 예정'이라고 처리한 장면 역시 나쁘지 않았다. 이 장면을 다른 멤버들이 긴박한 레이스 경쟁을 펼치는 장면 사이사이에 쉼표처럼 삽입해서 화면 전환의 속도에 리듬감을 준 제작진의 편집 센스 역시 칭찬받아 마땅하다.
4) 정형돈은 박명수만큼 게으르지만 다른 어떤 멤버들보다 지적이고 똑똑한 인물이다. 한 마디로 게으른 천재 타입이라고 할까. 노홍철이 쉬는 시간에 <목민심서>같은 따분한 책 좀 읽지 말고 <유머집>이라도 읽어서 재미있는 개그맨이 되라고 말하지만 그는 사실 무한도전 내에서 웃기지 못하는 것으로 웃기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하는 연기자다.
그가 분황사에서 첨성대로 향하기 위해 시민으로부터 유아용 자전거를 빌리는 장면은 어설펐지만 그를 쫓아뛰는 카메라 감독을 내팽개치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내달려 카메라 감독이 '아! 난 못 뛰어! 자전거를 어떻게 ?아가!'라고 탄식하게 만드는 장면이나 목적지 근처에서 유재석을 발견하고 황급히 내달려서 또 카메라 감독이 '바지가 내려가!'라고 말하며 그를 촬영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장면은 그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는 '하여튼 자기 출연분량 줄이는덴 귀신'이라는 비아냥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서 반드시 웃겨야 만한다는 통념을 재치있게 뒤집는 역발상의 개그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자기 위주로 방송이 진행되기를 바라며 카메라를 탐하는 박명수와 정반대 위치에 놓여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 내에서 지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정형돈에게도 허술한 면이 존재한다. 그는 박명수로부터 첫 목적지가 분황사라는 정보를 캐낼 만큼 영특하지만 박명수가 목적지를 올바르게 알고 있을 거라고 잘못된 추측을 하기도 한다. 또한 박명수와 더불어 숙소에서 가장 늦게 출발을 했지만 노홍철에 이어 2위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1등이다!'를 외치며 좋아해서 자막으로 '웃기고 있네'라는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가 뒤늦게 도착한 정준하를 비웃으며 '건방진 뚱보'로서의 면모를 과시할 때 밥을 얻어먹고 떡까지 손에 넣은 노홍철이 '에헤라디야!'를 외치며 등장하자 충격으로 인해 멍한 표정을 짓는 정형돈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장면은 반전을 통한 웃음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5) 노홍철은 유재석만큼 사교적이지만 박명수만큼 계산적이고 정형돈만큼 지적이기도 한 캐릭터이다. 그는 유재석처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지만 유재석과 달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박명수와의 차이점은 노홍철은 자신이 취한 이득에 대한 대가를 상대에게 지불할 줄 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오토바이를 빌려타게 된 연인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떡과 모자를 내어놓기도 하고, '뉴뚱'인 자신을 첨성대 앞까지 업어준 시민에게 목에 걸고 있던 카드걸이를 선물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버스에 올라타며 카메라 감독에게 자신의 몫만 교통카드로 계산하겠다고 말할 만큼 계산적이지만 박명수처럼 노골적으로 뻔뻔하지는 않다.
게다가 그는 특유의 넉살을 이용해 남은 잔반을 얻어먹을 뿐 아니라 촬영 스태프나 정준하, 정형돈 그리고 김태호 PD까지 식사를 하도록 도와준다. 박명수가 이득을 혼자서 독식하려 한다면 노홍철은 그것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점에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노홍철의 사기행각은 사기를 당하는 사람도 기분 나쁘지 않고 얻은 수확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미덕(?)을 실천한다는 점에서 쉽게 비난할 수 없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생토록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 유쾌한 사기꾼의 소망이 반드시 이루어지길 나 역시 바라는 바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재기발랄한 재치
'경주 보물찾기 특집'편은 출연자들의 열정과 희생이 그 어느 편보다 빛났던 에피소드였다. 특히 전체적인 프로그램 구성과 그 안에 담긴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선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숙소에서 출발해서 최종목적지인 경주타워에 도착할 때까지 잘 계산된 코스의 선택과 그 중간을 메워주는 미션 과제 등은 지역 관광 상품으로 개발해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었다.
천걸음 핸디캡과 얼음 벌칙, 2인 1조 마라톤, 연료량이 제한된 스쿠터, 체인이 쉽게 빠지는 2인용 자전거, 브레이크 불량의 쌀집 자전거, 천마 대신 호피티 타기 등등은 유머가 넘치는 신선한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리고 미션 중간에 출제된 퀴즈들은 수준 높은 난이도를 보여줘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허를 찌르는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삼국유사의 '사금갑조'를 인용하며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물어보는 문제는 출연자들 뿐 아니라 시청자들마저 허탈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신라의 달밤'에 나오는 산이름을 맞추기 위해 지도를 펴놓고 5분 넘게 고생한 박명수와 노홍철에게 '지도엔 안 나와 있어요'라고 말해 그들을 일시에 무력하게 만들거나 정준하가 정답인 토함산을 너무 빨리 맞추자 '이거 너무 쉽다. 다른 문제 갈게요'라고 말을 바꿔서 출연자들의 기를 빼놓는 담당피디의 재치 역시 쇼의 재미를 높여주는 요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아야 할 점은 문화재의 소중함이란 메세지를 오락프로그램'답게' 전달하는 그 방식이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이나 원래는 네 개였으나 지금은 그나마 훼손된 채 한 개만 남아 있는 사자상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선조들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후손들을 저절로 고개 숙이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첨성대의 상징적 의미들을 퀴즈를 통해 알아보고 불국사에 숨겨져 있는 황금돼지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효과적으로 유발했던 소재들이었다. 그리고 멤버들의 경주 수학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며 문화재를 '우리가 받은 선물이며 우리가 전해줘야할 선물입니다'라고 표현했던 장면 역시 일반인들의 보편적 경험에 호소하는, 간결하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메세지였다고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
그러나 무한도전이 전달하는 핵심적 주제는 최종 목적지로 선택한 경주타워에 있다고 볼 수 있다.'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07'에 맞추어 건립된 경주타워는 문화재가 아님에도 경주를 대표하는 보물로 선택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에 나와 있는 황룡사 9층 목탑의 높이 225척(尺·현재 높이 81m)과 유사한 높이인 82m로 제작되었고, 신라 삼보(三寶) 중 하나인 황룡사 9층 목탑을 정면에 음각화한 건축물인 경주타워는 과거의 문화유산을 현대의 미적 감각으로 되살린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경주타워를 통해 무한도전은 문화재에 대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어한 것 같다. 그에 따르면 문화재는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선물이니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대상일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어야 할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무관심 속에 방치된 유물들을 보호하고 발굴하는 일은 곧 현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현재의 삶을 지키기 위해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같은 주장보다 더 호소력 있는 외침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이 외침이 공허한 구호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일 것이다.
by ddolappa
참고 1.
전설로 부활한 비밀결사, 그 뒤엔 어떤 음모가…
http://zine.media.daum.net/chosun/view.html?cateid=3000&newsid=20050726095637441&cp=weekchosun
보다 자세한 내용은 <신의 지문>을 저술한 그레이엄 핸콕이 로버트 보발과 공저한 <탤리즈먼: 이단의 역사>(오성환 역, 까치)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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