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8>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지요
무한도전 104회(080510) : 무한도전 사랑의 도서관
이 시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해 말 서해안을 덮친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한 상처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태안반도로 <무한도전>이 달려 갔다. 이미 수많은 언론들이 다녀갔고, 자원봉사자 수만 100만이 넘은 그 곳에서 아직도 새롭게 보여줄 것이 남아 있을까 하는 우려와 그래도 '무한도전'이니 무엇이 달라도 다를 거라는 기대가 정확히 반반이었다.
그러나 역시 '무한도전'은 달랐다. 유재석과 노홍철은 개인 신분으로 방제작업을 하기 위해 태안을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박한솔 어린이가 쓴 '오징어가 그랬을까요?'라는 시를 읽고 어린이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1) 그랬다. 2달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루어진 거대한 사역은 한 어린이가 쓴 한 편의 시에서 시작했다. 푸른 바다물이 검게 변한 모습을 보고 '오징어가 먹물을 쏜 것일까요? / 아니면 우리들의 검은 마음 때문에 그럴까요?'라고 묻는 순수한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무한도전'은 또 하나의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상처로 얼어붙은 마음을 열기 위하여
무한도전 멤버들은 '세심각(洗心閣,마음을 다듬는 장소)이라는 현판을 달고 어린이 도서관의 개관식을 개최하기 50여일 전부터 바쁜 시간을 쪼개어 각자 봉사과제를 준비했다. 노홍철은 태안 촬영 기획 전부터 기름 제거를 하느라 머리 손질할 여유가 없었던 주민들의 머리 손질을 하기 위해 미용기술을 배웠고, 정형돈은 태안에서 잡은 우럭으로 매운탕을 끓여 주민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우럭 손질이며 양념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또 박명수, 유재석, 정준하 등은 수시로 도서관 작업 현장을 드나들며 바닥 난방시설 설치, 잔디를 깔기 위한 블럭 제거, 도서 진열 작업 등에 직접 참여해왔을 뿐 아니라 무더워진 날씨에 다시 흘러나오기 시작한 기름때를 스태프 전원과 함께 닦아내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그 동안 시청자들에게 받은 사랑을 보답한다는 차원에서 하나마나 행사, 음반발매, 달력제작, 특산품 전달 등 다양한 형태의 봉사활동을 쉬지 않고 해왔다. 태안 어린이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무한도전이 태안을 방문했던 기존의 예능 프로와 차별화되는 점은 그 기획력에 있다. 다른 방송들이 잠깐 동안의 봉사활동을 위해 태안에 머물렀다면, 무한도전은 무려 2달여 동안 태안 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카메라는 검은 기름띠와 자원봉사자, 분노와 절망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표정 대신 힘들지만 점차 웃음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들을 담아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여기에서 3월 22일에 방영된 <MBC 스페셜> '그해 겨울 의항리'편을 연출했던 한학수 PD의 말을 잠시 들어보도록 하자.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태안' 하면 검은 기름, 자원봉사자만 생각난다. 언론에 많이 보도된 게 그거다. 그게 사람들 머리에 크게 박혀 있다. 이젠 자원봉사자도 별로 없다. 결국, 남는 사람들은 그 땅에 뿌리박고 사는 주민들이다. 가장 아픈 사람들은 주민들이다. 이 사람들을 보자. '사람'을 보자고 생각했다."
"이 방송을 한다니까, 태안 주민들이 이 방송 때문에 태안이 이미지만 더 나빠지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더라. 자기 이야기를 있는 대로 담아주는데도 자기네들에게 혹시 피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아이러니하다. 절대 약자로 몰려버린 사람들이 갖는 불안감이랄까. 그런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이분들이 너무 약자 위치에 있어서다. 내 마음이 아프더라. 그래서 걱정 마라 그랬다."2)
그래서 '홍례 뷰티 살롱' 원장인 노홍철의 머리 손질을 받기 위해 모여든 주민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하나같이 웃음기가 없고 근심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터전이었던 바다를 순식간에 빼앗긴 주민들은 웃음 뿐 아니라 말조차 잃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이 그들을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어려운 일을 겪은 우리의 평범한 이웃들로 대하자 점차 숨겨져 있던 흥과 여유를 되찾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존의 언론 미디어들이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건'을 보도하며 생태계 파괴나 주민생존권 문제 등은 외면한 채 자원봉사활동의 기적만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우리 사회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하는 사이 피해 당사자들인 태안 주민들은 등한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사태의 보상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법적 갈등이 중요 쟁점화되면서 우리의 시선에서 사라졌던 것은 왜곡된 시선 때문에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인간적인 고통이다.
무한도전은 마이너적 감수성을 통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다른 시선' 혹은 '낮은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수많은 방송들이 저질렀던 오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어설픈 도덕성을 내세우며 봉사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지도 않고, 피상적 관념을 무기로 적개심에 불타는 구호를 외치지도 않는다. 슬픔을 겪은 이웃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 줄 수 있는 이러한 '다른' 시선이야말로 놀라운 기획능력과 더불어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대중문화와 생태학적 상상력
무한도전이 첫 오프닝을 '만리포 사랑 노래비' 앞에서 시작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똑딱선 기적 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사랑'으로 시작하는 <만리포 내 사랑>은 1957년 반야월이 작사하고 박경원이 부른 대중가요이다. '희망의 꽂구름도 둥실둥실' 춤추고 '점찍은 작은섬을 굽이굽이' 돌고 '구십리 뱃길 위에 은비늘이' 곱던 만리포의 아름다운 해안은 이 노래로 인해 태안을 대표하던 관광명소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대중문화에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찬미하던 생태학적 상상력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기름으로 뒤덮힌 흉칙한 만리포 해안이 아니라 노래비 앞에서 오프닝을 시작한 것은 그러한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실제로 무한도전이 이번 방송에서 전달하고자 한 메세지 역시 비참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우리가 되찾아야 미래의 비전과 꿈이었다. '제1회 만리포 가요제'에 초대된 박현빈이나 주얼리의 노래를 들으며 오랜 만에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고 있는 태안 주민들의 모습을 비추며 '못 볼 줄 알았던 꽃게 녀석 몸 건강히 돌아왔습니다'와 같은 자막을 내보낸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어른들의 방제작업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선물해서 그들에게 꿈과 미래를 되찾아 주고자 했다면, 어른들에게는 고통을 잠시나마 위로하고 아름다왔던 과거를 상기시켜줌으로써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되찾아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무한도전의 '태안 봉사'편은 <라인업>의 그것을 모든 면에서 능가하고 있다. <라인업>이 13회와 14회에 걸쳐 연속으로 방영한 '서해안을 살리자!' 특집은 방제작업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뉴스와는 다른 생생한 현장상황을 안방에 전달함으로써 국민들의 방제작업 참여를 높였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1편과 2편 내내 깔리는 장중하고 비장한 배경음악과 심각한 성우의 목소리는 예능 오락이 아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애국심까지 들먹이며 복구 작업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감성적 호소는 일종의 도덕적 계율로 작용해서 방제작업에 참여를 하지 않으면 마치 비도덕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착시효과를 유발했다. 이러한 사실은 오프닝 자막만 살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 끌이 보이지 않는 기름과의 싸움! 라인업 긴급 프로젝트! 서해안을 살리자!"(1편)
"최악의 기름유출사고.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대단했다. 자원봉사자 20만 명! 세계가 놀란 태안의 기적! 그러나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태안사태 극복을 위한 라인업 긴급 프로젝트! 서해안을 살리자!"(2탄)
자막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라인업>은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이 저질렀던 실수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3) 우선 기름 유출 사고와 같은 환경 재난사건을 보도할 때는 지역명을 사용하지 않고 사고 선박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러나 <라인업>은 이를 무시하고 '태안사태'라고 표기하고 있다. 반면에 <무한도전>은 지역명 대신 가치 중립적인 '원유 유출 사고'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95년에 발생한 해양 원유 유출 사고를 '시프린스호 사건'이라 부르고 있듯이 2007년 12월7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부선과 허베이 스피리트호 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사건은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건'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그리고 '세계가 놀란 태안의 기적!'이란 자막은 ‘그들이 태안의 기적을 만들었다’ ‘자원봉사자, 우리의 진정한 영웅’ ‘감동이 싹튼다’ ‘한마음 한뜻으로’ ‘태안의 기적’ ‘세계도 놀란 자원봉사 인간띠’ ‘검은 절망 걷어내는 희망의 자원봉사’ ‘자원봉사자 백만의 신화’ ‘위기에서 저력을 발휘하는 한국인’와 같은 당시 신문들의 헤드라인처럼 사건의 구조적 문제와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그 대신 국민들에게 봉사활동의 온정주의와 자기당착적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함으로써 문제의 핵심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IMF 당시 국민들이 나서서 금붙이를 내놓아 위기를 극복한 일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임자들이 망각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태안의 기적'을 내세우는 수사학은 지극히 불온하다.4)
게다가 <라인업> 태안방문 2탄에는 제작의도도 모호할 뿐 아니라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한 장면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라인업 출연진들은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가거도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밥차가 들어올 수도 없고 식사를 담당할 봉사인력이 없어 평균연령 70이 넘는 주민들이 컵라면으로 열흘이 넘게 끼니를 때우고 방제작업을 해오던 곳이었다. 그렇다면 제작진은 두 번째 방문이니 충실한 현지답사를 통해 그 정도의 현지 사정은 미리 알았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현장에 도착해서야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된 <라인업> 제작진은 자신들이 먹으려고 가져온 도시락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며 "라면으로 식사하시는 줄도 모르고 우리가 먹을 밥만 가져왔습니다"라는 자막까지 등장시키고 있다. <무한도전> 제작진의 철저한 준비성과 기획력과는 참으로 대조적인 장면이라 하겠다.
환경보호는 도덕적 우월주의의 표현이 아니다
더 웃긴 점은 <라인업>의 태안봉사 활동을 놓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예능 프로그램의 지평을 확장시켰다고 호들갑스럽게 찬양하는 기사들을 양산해냈다는 점이다. 거기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언론들과 여론은 <라인업>이 하루 먼저 태안에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방문 계획을 포기했던 <무한도전>을 향해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름방제 작업에 참여하면 도덕적인 행위인 것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비도덕적이고 공익성을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 되고 마는 엄격한 이분법적 도덕주의에 <무한도전>이 희생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분은 타당한 것일까? 환경문제를 다룬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이 생태학적 가치를 내재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리한 통찰을 하고 있다.5)
"해법은 자원봉사가 아닌데도 자원봉사만이 해법인 것으로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정작 책임을 져야할 대기업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체계적인 생태 환경 회복에 대한 논의는 부차적이다. 자원봉사에는 두손만 가진이들이 아니라 전문지식과 장비, 자본을 지닌 이들이 나와야 한다. 또한 대중에 대한 감성적인 호소보다 심층적인 프로그램들이 텔레비전에 나와야 하지만, 보도 교양 프로그램들도 감성에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 태안 기름유출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이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그런데 극찬이 난무할 때 그 모든 과실은 <라인업>이 차지하는 모양새다. 일반 봉사자들의 이름은 열거되지 않지만, <라인업>의 출연진의 이름은 수많은 매체뿐만 아니라 포털을 통해 대중적으로 각인되고, 그들의 프로그램과 상품성은 제고된다. 봉사활동 자체는 긍정적인 평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만, 천편일률적인 평가는 우려스럽다. 과연 그것이 더 이상 자원봉사인지 의문일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덕적 우월주의가 작용하는 것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랜달 콜린스(Randall collins)는 범죄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은 자신의 정의감을 확인하고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자신은 정의롭고 바른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다. 의식 있고 품위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지 않은 사람이나 대상을 상정하고 우월의식을 갖으며 나아가 권위의식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라인업>에 대해 무조건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과 매체의 심리도 마찬가지다. 특정한 잘못을 상정하면서 자신들의 정의롭고 의식 있는 점을 글을 통해 거듭 드러내면서 주목을 끌고자 했다. 상대적으로 비하되는 대상을 찾기 마련인데, 그 대상으로 다른 오락 프로그램, 특히 <무한도전>이 걸려들었다. <무한도전>을 소모적인 내용으로 시청률만 올리면서 사회적 공공성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의식 없고, 사회적 책무감도 느끼지 않는 무도한 프로그램으로 전락시켰다. 예컨대 <느낌표>와 같은 공익성 프로그램이외에 다른 프로그램은 의미가 없지는 않다. 모든 오락프로그램이 봉사현장에 가는 것도 쏠림 현상의 방증이며 획일화 현상가운데 하나다.
사람에게는 자기 결정권이 있다. 봉사도 마찬가지다. 봉사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봉사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의 봉사를 다른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봉사활동이 태안 기름유출에 전적으로 해법이 되는 것이 아니니 결과적으로 타인에게 강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방송 프로그램이 너도나도 공익성을 상품화 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마치 <라인업>이 봉사활동에 불을 붙인 것처럼 말하지만, 이미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보태진 뒤였다."
조금 길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 글에서 김헌식은 "차라리 <라인업>이 해야 하는 것은 자원봉사가 아니라 이 나라의 정책 시스템이나 산업, 환경 정책에 대한 시위가 낫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그러니까 <라인업>이 국민들의 온정주의와 이타심에 호소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례로 지난 숭례문 화재사건 때 무한도전이 성금을 기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난의 여론이 들끓었던 사실을 떠올려보도록 하자. 무한도전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 이전에 결정을 내린 사안이었음에도 반대 여론이 폭등했던 것은 책임을 져야만 하는 당사자들이 오히려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고'를 '태안 사고'라고 표기했을 때 은폐되고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 왜 언론들은 하나같이 '태안 사고'로 표기해야만 했을까? 그렇다면 대형사건이 발생하기만 하면 국민들의 애국심과 온정주의에 호소하는 언론의 태도가 지닌 문제점은 쉽게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방송의 공공성 뿐 아니라 미디어의 공공성을 살펴야 할 때다
무한도전의 태안 방문을 두고 대다수의 기사들은 칭찬과 찬사를 아끼고 있지 않지만 간혹 가시 돋힌 칭찬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라인업> 출연진들의 캐릭터를 본인이 나서서 잡아줄 정도로 그 프로그램에 '프렌들리'한 기사를 작성해 왔던 이현우 기자는 "'무한도전'의 이번 봉사활동은 태안 기름때 제거 아이템을 놓친 덕분에 가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쟁 프로그램의 아이템을 긴 안목으로 한단계 더 발전시켜 만들 수 있는 건 예능 1등 '무한도전'의 여유다."라고 평가하고 있다.6) 개인적으로는 <무한도전>이 한 발 앞서 태안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보수주의 언론의 수사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라인업>과는 다른 수준의 프로그램이 제작되었으리라 생각하지만 역사적 가정은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다만 묻고 싶은 점은 수많은 언론들이 오락 프로그램에서조차 공영성과 공공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본인들은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공공성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공공의 이익을 의미하고 있다면, 흔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그러한 공공의 가치를 충실하게 수호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라인업>의 태안 봉사 활동을 예능의 지평을 확장한 획기적인 시도라고 평가한 언론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평가가 정말 공공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삼성-허베이 기름 유출 사건'이란 책임 소재가 분명한 명칭이 있음에도 보도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태안 사태'로 표현해서 책임 당사자들을 은폐했던 것은 그들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7)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나라를 통치하는 지배원리로 채택됨에 따라 가장 위협받고 있는 것이 바로 공공성이다. 신자유주의는 공익을 사적 이익의 집합으로 파악함으로써 그것이 시장의 자율(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지게 될 때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관점의 대변자들은 문화적 가치조차 경제적 가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공공성을 강화하는 올바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광우병의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해놓고는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는 것"이라거나 "쇠고기 개방 다음은 소비자의 몫"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만 가능한 주장이다.
그러나 한 문화의 정체성과 다양성이나 국민의 건강과 생명처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내맡겼을 경우 큰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영역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러한 영역들은 국가가 개입하여 관리하게 되는데, 방송의 경우 공영방송이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공영방송만 한 사회의 공공성을 담보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문, 통신, 인터넷, 영화 등 거의 모든 대중 미디어들은 사회적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익성을 준수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미디어들이 한순간에 탈규제화 혹은 민영화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처럼 특정 집단과 특정 계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미디어가 만연한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공공성은 한없이 축소되고 말 것이다. 공공성의 축소는 곧 정치의 위기이자 공동체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데, 모든 개인들이 사적 이익 추구에 골몰하게 될 수록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 아렌트(Hanna Arendt)같은 학자는 공공영역의 축소가 개인들의 정치적 행위능력의 상실로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사적 이해 관계를 벗어나서 공공성의 장인 정치에 참여해야만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공성을 지키는 문제는 한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를 확보하는 문제로도 파악할 수 있다.
<무한도전>이 방송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공공성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린이 도서관 건립'편이 감동적인 까닭은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질서 속에서 망각된 사람다움의 문제, 즉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언론들이 답할 차례다. 당신들은 미디어의 공공성을 어떻게 보여줄 텐가?
by ddolappa
1.) ‘무한도전’ 태안 관심 환기, 웃음 & 의미 두마리 토끼 잡았다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510200709165&cp=newsen
'태안 봉사' 유재석-노홍철, 27일 새벽 출발-28일 새벽 도착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serial=310073&g_menu=700100&fm=rs
2) 한학수 PD "태안 취재... 믿기 힘들고 너무 아팠다"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80322161308723&cp=ohmynews
3) “재난은 있어도 재난 보도는 없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6&aid=0000026541
"피해주민, 삼성에 침묵한 언론 안믿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6&aid=0000026169
4) ‘태안의 기적’은 불온하다
http://h21.hani.co.kr/section-021173000/2008/04/021173000200804100705009.html
5) <라인업>과 자원봉사 독려의 함정
http://www.dailian.co.kr/news/n_view.html?id=95492&sc=naver&kind=menu_code&keys=4
6) ‘무한도전’ 긴 안목으로 보기, 기름때 제거 대신 도서관 건립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80510201009169&cp=newsen
7) “삼성이 기자들에게 밥과 잠자리 제공했다”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83
도덕 불감증에 빠진 기자의 ‘자승자박’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81
“삼성에 편의 제공받은 기자, 태안 주민에게 사과하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6&aid=0000027713
삼성, 태안 앞바다에서도 '언론관리' 했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1939220
삼성전자, 프레시안에 10억 원 손배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6&aid=0000027346
죽은 새에 대해 책임 묻는 프랑스와 사람 목숨 두고 책임 미루는 한국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0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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