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6> 무한도전-용들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ragons)

ddolappa 2008. 4. 27. 08:03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6. 무한도전-용들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ragons)

 


- 무한도전 102회 (080426) : 경주 보물찾기 특집-오룡 여의주를 찾아라

 


추억은 방울방울


무한도전 '경주 보물찾기 특집'은 멤버들의 뛰어난 재능과 예능계의 제리 브룩하이머인 김태호 PD의 연출이 빚어낸 또 한 편의 레전드급 에피소드라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30대 이상의 시청자들에게는 수학여행의 추억이 담긴 경주에서 펼친 무한도전의 보물찾기는 학창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있고 또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는 충분한 오락적 재미를 주면서도 무관심 속에 방치된 우리의 문화 유산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레 일깨워 주고 있다.


또한 '경주 특집'은 과거 방영된 무한도전의 대표적인 에피소드들에서 그 정수만 추출해서 모아놓은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멤버들은 '서울구경 특집'에서처럼 경주 시민들과 서스럼없이 어울리며 친근감을 높이기도 했고, 일명 '비 특집'이라 불리는 '모내기 특집'에서처럼 악천후와 싸우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끈기와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고, '식목일 특사 특집'에서처럼 문화재의 중요성이라는 시사적 문제를 무한도전식으로 풀어내는 발상의 전환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판 내셔널 트레져 헌터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유난히 많은 양의 영화들이 패러디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재석은 곁을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에게 제일 오래 된 석탑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이 때 아주머니는 유재석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서 나중에 알려주겠다며 급히 도망을 치게 되는데, 유재석은 짓궂게도 놀라서 뒷걸음을 치시는 아주머니를 쫓아가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이 상황을 자막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을 패러디해서 '퀴즈 추격극 스트리트 뚝'으로 표현하고 있다.


노홍철은 "'국보30호'로 현존하는 신라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이동하시오"라는 첫번째 과제를 풀기 위해 편의점에 들르게 된다. 이 때 노홍철은 점원에게 갑작스럽게 질문을 던져서 '다짜고짜 퀴즈쇼 퀴즈가 무섭다'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는 M본부의 '생방송 퀴즈가 좋다'의 패러디이다.


그러면서 노홍철은 국보30호니까 인터넷을 검색할 수 있는 30초의 시간을 주겠다고 하며 당황해하는 시민에 '아랑곳 않는 냉혹한 카운트'를 세기 시작한다. 시한폭탄처럼 냉혹하게 운명의 시간을 알려주는 노홍철의 카운터에 잔뜩 긴장한 시민은 마치 자신이 첩보영화 단골신으로 등장하는 '폭탄해체하는 컴퓨터 전문가'인 양 인터넷을 검색하게 된다.


이때 '국보30호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괴물' 정준하는 편의점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는 노홍철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은 치열한 추격전을 펼치며 경주판 <괴물>(2006)을 찍게 된다.


첫번째 과제의 목표지를 착각해서 불국사에 도착한 박명수와 유재석은 분황사행 버스로 갈아 타야만 했는데, 박명수는 버스가 도착하자 유재석보다 먼저 올라 4위라도 하고 싶은 욕심에 유재석을 버스에서 밀쳐내게 된다. '못된 짓엔 없던 힘도 생기는 하찮은' 박명수와 유재석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게 되지만 결국 유재석의 손에 '악마는 비닐을 남긴' 채 박명수만 분황사로 향하게 된다. 여기에서 '악마는 비닐을 남긴다'는 자막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006)의 패러디이다.


황룡사지에 도착한 멤버들은 정답을 맞추는 순서대로 다음 목표지인 첨성대를 향해 출발을 하게 되는데 박명수와 노홍철이 가장 뒤쳐지게 된다. 가장 꼴찌로 황룡사지를 떠난 박명수는 1,000걸음 제한이라는 핸디캡을 무시한 채 '본인의 하체만큼 짧은 생각'으로 앞서 가고 있는 노홍철의 뒤를 미친듯이 추격하게 된다. 일명 '무한도전판 살쾡이의 추억'인 이 장면은 박명수의 별명인 'Eye of 살쾡이'와 영화 <살인의 추억>(2003)의 절묘한 패러디이다.


이처럼 '경주 보물찾기 특집'의 무수한 장면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끔 연출되어 있는데 이는 이번 에피소드의 부제가 '한국판 내셔널 트레져 헌터'인 것과 연관이 있다.


최근에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2: 비밀의 책>(2007)은 국보를 사냥하는 보물 사냥꾼의 이야기로 미국의 남북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추리와 액션으로 버무린 오락영화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관객들이 잘 알지 못하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삼은 자신의 영화에서 관객들이 역사에 대한 지식과 동시에 재미와 오락을 얻어가기를 바란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무한도전은 바로 이 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자가 분명한 색깔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은 마치 보물을 찾는 주인공들이 된 것처럼 자신들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를 풀어가며 여의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는 두뇌플레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들과 김태호 PD의 긴장감 넘치는 편집을 통해 마치 한 편의 액션 어드벤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무한도전 '경주 특집'은 단순히 과거의 성공한 에피소드들을 반복하는 퇴행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 넘치는 연출을 통해 대한민국 예능 오락의 진일보한 성과를 쟁취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아직까지 시청률이 발표되지 않은 토요일에 올라온 무한도전 관련 기사들 대부분은 '경주 보물찾기 특집'이 재미뿐만 아니라 교육적 파급력을 극대화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마이데일리 고홍주 기자는 "'숨겨진 여의주를 찾기 위해서는 퀴즈를 풀어야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는 장치는 다양한 연령대가 시청층으로 포진한 '무한도전'의 교육적인 시도가 빛난 대목이었다."고 쓰고 있다.('무한도전' 경주 보물찾기 편, 해외 특집보다 값졌다!) 뉴스엔 박세연 기자는 "4월 26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경주 보물찾기 특집'에서는 천년도시 경주를 찾아 보물찾기에 나선 무한도전 멤버들이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들에 관련된 퀴즈를 어렵게 풀어내며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무한도전 경주보물찾기, 문화재 관심 환기시켰다)


그런데 위 두 기자는 퀴즈라는 가시적인 장치에만 주목해서 무한도전의 교양적 가치가 마치 그것에만 의존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는 그들이 정보라는 내용과 재미라는 형식을 분리시켜 사고하는 이분법적 기준을 통해서 쇼오락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은 정보가 극단적으로 빈곤한 '중국 황사 특집'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중국 황사 특집'에서 무한도전은 기존의 오락물이 해오던 방식대로 퀴즈나 전문가의 설명과 같은 장치를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대신 상황극을 통해 핵심적 주제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메세지는 오직 주어진 상황극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인데 정보와 재미를 분리시켜 해석하는 사람은 그런한 메세지를 전혀 수신할 수 없게 된다.


가령 히치하이킹에 성공을 했지만 분황사와는 정반대 방향인 감포로 향하는 트럭에 타게 된 정준하를 예로 들어보도록 하자. 퀴즈라는 장치만이 교훈적 정보를 준다고 생각한다면 정준하의 실수가 주고 있는 정보적 가치를 놓치게 된다. 그의 실수를 통해 시청자는 감포에는 국보112호인 감은사지 3층석탑이 있고, 분황사와는 정반대 방향에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리고 정준하를 태운 트럭 운전사 뿐만 아니라 경주에 사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문화재에 무관심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도시 경주에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주위에 있는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관심으로 인해 올해 초에 발생한 숭례문 화재 사건과 같은 참사가 일어났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퀴즈를 통해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상식들 몇 개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르침은 바로 이처럼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오룡의 여의주가 등장하고 있는 것일까?


그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번 에피소드의 제목이 왜 '경주 보물찾기 특집-오룡 여의주를 찾아라'인가 하는 점이다. 대체 왜 다섯 마리 용(龍)이 등장하고 여의주를 차지하기 위해 멤버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일까?


가장 손쉬운 답변은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다섯이니 오룡을 등장시켰고, 일본 만화 <드래곤볼>에서 여의주 획득이라는 아이디어를 차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무난히 넘어갈 수 있겠지만, 두 번째 해답은 조금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하더라도 복잡하고 미묘한 한일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나라의 문화 유산의 중요성을 전달하기 위해 일본의 만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게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라의 설화를 살펴보면 유난히 용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무왕의 해중릉 설화라든가 만파식적 설화에도 용이 등장하고 있는데,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신라에는 국토와 왕실을 용이 지켜준다는 믿음에 기초한 호국룡(護國龍)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참고 1.) 그리고 신라에 불교가 확산된 이후에도 망해사(望海寺)나 감은사(感恩寺)와 같은 사찰이 해신(호국룡)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해신사(海神祠)의 기능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신라와 용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용은 신라인의 문화적 삶 속에서도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다. 고대 문화사에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남긴 강우방 교수는 우리가 흔히 '도깨비 기와'라 부르고 있는 '귀면와'가 용의 형태를 본따서 만든 '용면와'라고 주장한 바 있다.(참고 2) 신라의 독특한 문양의 기와를 일제시대 때 일본의 학자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귀신 개념에 따라서 '귀면와'라고 명명했지만, 우리나라의 도깨비는 한 번도 조형화된 적이 없는 상징적 존재로서 일본의 귀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강우방 교수에 따르면 신라인들이 용이 그려진 기와를 건축에 사용한 까닭은 물을 상징하는 용을 장식함으로써 화재를 막으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다. 이는 앞에서 김창겸 박사가 신라의 '호국용' 신앙을 주장한 것과 결부시켜 이해해보더라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숫자 '5'의 상징성은 박혁거세가 죽은 후 그의 신체가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 묻혀 있다는 '오릉'이나 네 군데 바다에서 제사를 지냈던  '사해'(四海)제사에서 알 수 있듯이 동서남북 사방과 중앙이라는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던 오방(五方) 관념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나는 무한도전의 멤버가 지금처럼 5명이 아니라 6명이었다 하더라도 '오룡 여의주'라는 표현은 유지되었을 것이고 또한 유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무한도전의 제작진이 보여주었던 사전 준비성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에피소드를 준비하며 이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었을 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 에피소드의 초반에 등장하고 있는 자막인 '신라를 지키는 오룡의 여의주를 찾아라!'는 무한도전의 제작진이 신라의 호국용 사상을 알고 있을 거란 나의 추측에 힘을 실어준다. 물론 늘상 꿈보다 해몽인 나의 리뷰에서 어떤 해석을 선택할 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나는 하나의 해석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무한도전의 다섯 용들이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경주에서 우리의 무관심한 일상 속에 잠들어 있는 전통적 가치와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에피소드는 무한도전이 식상해졌다는 세간의 평판을 일시에 날려버릴 만큼 웅장한 용의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것이고, 그 함성 소리에 놀라 경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 잠들어 있는 문화의 용들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희망한다.

 

 


by ddolappa

 


참고 1. "신라 四海 제사는 호국룡 신앙"

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70927080113288&cp=yonhap

 

참고 2. ‘귀면와’ 아니라 ‘龍面瓦’"

http://media.daum.net/culture/art/view.html?cateid=1021&newsid=20051003043011071&cp=dong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