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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화두6]자유주의냐 공동체주의냐

ddolappa 2008. 5. 16. 04:10
'나'와 '우리'… 두 신념을 接合할 방도는 없는가
6. 자유주의냐 공동체주의냐
황경식 서울대교수
입력 : 2004.09.22 18:03 54' / 수정 : 2004.09.22 18:05 07'
▲ 황경식 교수
- 지금 한국에선

- 세계의 지식사회, 이것이 화두다
황경식 교수는

황경식 서울대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및 대학원에서 존 롤스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와 한국 사회윤리학회장을 거쳐 현재 철학연구회장과 명경의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자유주의냐, 공동체주의냐. 이미 완숙한 자유주의의 한계에 이르러 공동체주의적 도전과 비판의 와중에 나온 서구인의 정치담론이지만,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라는 화두는 또 다른 시각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지구촌은 나라마다 조금씩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전근대적인 공동체주의적 잔재와 아직도 미숙한 근대적 자유주의가 갈등하며 혼재하는 가운데 갖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들끓고 있다.

네오 마르크시스트 이후 80년대 들어 다시 논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는 양자택일의 주제인가, 아니면 상호 조정이 가능한 이념인가. 이 주제는 오늘날 우리와 무슨 상관이며 과연 한국의 현실에 적실한 문제인가.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관심 갖는 쟁점이요 생각의 화두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발견과 더불어 근세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 여러 형태로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도 서구 정치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이념이다. 이에 비해 공동체주의는 동서를 막론하고 고전적 정치이념으로서 근세 이후 수면 아래로 잠복했으나 근래에 자유주의의 갖가지 결함을 비집고 다시 대안으로 떠오른 사회이념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공동체보다 앞세운다.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개인의 자유, 자율, 자결 등을 옹호하며 개인권(individual rights)을 최고의 이념적 가치로 추구한다. 반면 공동체주의는 공동체를 전제하지 않는 개인은 존재할 수 없으며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인간형성과 실현이 가능하다고 보며, 개인의 선택에 앞서 공익, 공생, 공동선(common good)을 최상의 이념적 가치로 간주한다.

홉스, 로크, 루소, 칸트 등에 의해 철학적 정당화를 얻은 고전적 자유주의가 근대 서구의 현실에 구현되었을 때 그 해방적 순기능에 못지않게 공동체의 해체와 더불어 비인간화, 소외 등 역기능의 그림자 또한 길게 드리웠다. 국가에 의한 사회통합을 내세운 헤겔과 공산사회에 의한 공동체성의 회복을 주장한 마르크스의 시민사회 비판은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고전적 대응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후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고집하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자유와 평등의 조정을 겨냥하는 자유주의(liberalism) 혹은 복지자유주의로 양분됐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공동체주의자들은 중도적 자유주의에 대해서까지 강력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본격적인 자유주의-공동체주의의 찬반 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적 도전은 60년대 마르쿠제 등 네오 마르크시스트에 의해 시발된 후 잠시 소강상태에 머물다 80년대에 이르러 헤겔 혹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기반을 둔 공동체주의자들이 ‘정의론’을 바탕으로 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최근의 옹호론자인 존 롤스에 대해 강력한 공격의 포문을 열게 된다. 논전에 참여한 대표적 공동체주의자로는 매킨타이어, 샌들, 테일러, 월처, 웅거, 에치오니 등이 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핵심 쟁점은 결국 상이한 인간관과 사회관으로 요약된다.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 자율, 자기결정을 높이 평가하는데, 특히 자결은 인간이 도덕적 존재로 존중받고 있다는 징표가 된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이 자기결정에 대한 인간능력이 형성되고 의미있게 실현될 사회적 조건, 즉 공동체를 경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동체적 삶 전제돼야 진정한 자아·자유 이뤄"

공동체주의자 샌들은, 자유주의적 개인과 같이 추상적 인간, 무연고적 자아(unencumbered self)란 존재하지 않으며 진정한 자아와 자유는 특정 공동체적 맥락에 자리할(situated) 경우에만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공동체주의자 테일러는 자유주의가 기반하고 있는 원자론적 사회모형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자기능력 계발만이 아니라 그 실현을 위해서도 특정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입론(social thesis)을 내세운다.

그러나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주의의 비판에 방어적으로 대응할 뿐 아니라 대안으로서 공동체주의 자체에 대해 역공을 가하기도 한다. 자유주의에 다소 문제가 있음은 사실이나 공동체주의적 대안은 더 나쁜 결과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꿈꾸는 공동체는 근대 자유주의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사멸한 꿈이거늘 현대사회에서 그같은 공동체를 무슨 수로 재건할 것인가 하고 반문한다.

代案은 제시 못했지만 자유주의 반성의 계기로

공동체주의자 매킨타이어와 샌들은 지방공동체, 테일러는 공화주의적 공동체, 월처는 국가적 공동체를 제안하기는 하나 누구도 이 같은 공동체의 창출과 유지를 위한 조건과 방식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회피하고 있다. 일부 공동체주의자들은 이같이 공동체 구성의 난점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이를 “공동체주의 정치학의 딜레마”라 부르고 있다.

결국 공동체주의자들의 최대 공헌은 현대사회에서 가용한 정치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기보다 자유주의자들의 보다 진솔한 자기반성과 더불어 공동체적 가치를 보완한 합당한 자유주의를 재구성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데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 이후의 철학일 뿐 결코 자유주의 사후(死後)의 철학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공동체주의가 민주적 관행이 확립된 자유주의 전통 속에서 발전되어 왔으며 자유주의 또한 공동체주의적 비판을 수용·보완함으로써 보다 합당한 공동체적 자유주의로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논쟁을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의 이해방식은 서로 무시하기 어려운 두 가지 도덕적 신념 간의 갈등으로 다가온다. 그중 하나의 신념은 근세적 체험을 통해 발견된 개인과 그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 자율, 자결의 기반인 개인권이라는 가치이다. 다른 하나의 신념은 우리가 공동체적 삶 속에서 비로소 인간이 되고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게 되는 공동체적 요구의 원천으로서 공동선이라는 가치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의 과제는, 공유하고 있는 이 두 가지 도덕적 신념을 정합적으로 조정하는 방도를 찾는 일이라 생각된다.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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