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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화두5]새로운 제국의 탄생

ddolappa 2008. 5. 16. 04:09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서 ‘혁명적 제국’의 시대로"


5. 새로운 帝國의 탄생

EU·중국 등 지역공동체 바탕 新제국 꿈꿔
빈 라덴은 제국에 맞서는 '개인의 힘' 상징

입력 : 2004.09.15 18:20 18' / 수정 : 2004.09.15 19:11 39'
▲ 김명섭 교수
- 한국서도 '帝國 신드롬'

- 세계의 지식사회, 이것이 화두다
김명섭 교수는

김명섭 교수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고, 파리1-팡테옹 소르본대학 박사이다. 한신대 부교수, 국제학부장을 역임했으며, 논문으로 ‘지배를 위한 통합’(1996), ‘제국정치학과 국제정치학’(2001), ‘제국적 평화 대 국제적 평화’(2004), 저서로 ‘해방전후사의 인식4, 6’(공저), ‘대서양문명사: 팽창, 침탈, 헤게모니’, 역서로 ‘거대한 체스판’ ‘제국의 선택’ 등이 있다.

안과 밖의 경계를 다루는 국제정치적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제’라는 단어를 뒤집어 놓은 ‘제국’이라는 화두에 주목하게 된다.

왼편으로는 클로드 줄리앙,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에마누엘 토드, 알렉스 켈리니코스, 오른편으로는 Z 브레진스키, 알프레도 발라다오, 가이르 룬드스타, 존 루이 개디스 등의 지적 성찰이 ‘제국’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꿰어지고 있다.

모든 시공간 재편

최근 일본 통산성(通産省·MITI) 연구의 대가 찰머슨 존슨은 ‘제국의 슬픔’을 말하고, 피에르 비아르네스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제국의 경계를 논한다. 이 밖에 ‘제국의 눈’ ‘제국의 시선’ ‘제국의 꿈’ ‘제국의 패러독스’ ‘불법의 제국’ 등이 눈길을 끈다. 덧붙여 ‘비만의 제국’(미국)까지….

냉전 시기 한국사회에서 ‘제국’은 금기의 용어였다. 그것은 휴전선 이북에서 사용하던 “각을 떠야 할 미 제국주의”라는 구호를 연상시키는 용어였다. 새로운 제국의 대표적 육화(肉化)도 미국, 특히 부시의 미국이다. 그러나 새로운 제국이 반드시 미국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필립 모로 드파르주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유럽연합을 ‘민주적 제국’ ‘합의에 의한 제국’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또한 미래 한국의 운명을 중국 제국의 잔여와 대동아제국의 잔재를 염두에 둔 지역적 제국 구도에서 바라보는 지적 모색도 활발하다. 알 카에다에 대해서는 ‘테러의 제국’이라 부르는 것도 가능할 터이다.

제국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단일한 표준에 의해 연결된 국가적이고 초국가적인 일련의 조직들로서 스스로의 표준을 재생산하는 힘’이다. 제국은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며, 능력과 선의의 정도를 인증(認證)한다. 한 개인이나 국가가 존재하는 모든 시공간은 제국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것은 안과 밖의 경계를 보는 관점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과거사에 있어서 안에서 밖으로의 제국적 팽창은 에스파냐와 관치족(族), 프랑스와 코르시카,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내연(內燃)하던 갈등의 부분적 외향(外向)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팽창하든지, 아니면 사멸하든지…”(러시아제국)와 같은 영토에 대한 열망이었다. 또한 “유럽에서 우리는 식객이요 노예였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우리가 주인이다”(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인식적 변방에 대한 욕망이었다. 이러한 제국적 열망에 맞서 같은 황인종인 일본은 조선에 매혹의 제국이었다.

“하늘에서 한 마무리를 짓기 위해 동해에 떠있는 조그만 섬나라 일본으로 하여금 그 같은 강대국 러시아를 만주 대륙에서 한주먹에 때려눕히게 하였으니, 누가 이런 일이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중략) 통쾌하다! 장하다! 수백년 동안 악을 자행해 오던 백인종의 선봉대를 북소리 한 번에 크게 부수었으니 가히 천고에 희귀한 일이요, 만국이 기념할 자취이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안중근 의사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직후 그 같은 기쁨을 표했다.

▲ '민주적 제국' 을 꿈꾸는 유럽연합의 총의가 모이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 광경.

美는 새 제국의 강자

일본제국의 배신을 경험한 후에도 인종주의적 유혹은 대동아제국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중화제국의 속박에 이어 일본제국에 매료되었던 지역에서 미국과 소련은 또 다른 제국적 변방의 해방자로 등장하였다. 냉전체제의 종식은 대립하던 두 제국들 중 하나의 몰락을 의미했다. 그것은 동시에 폴 케네디류의 미국 쇠퇴학파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9·11이라는 제국에 대한 역습에 직면하면서, 제국적 확장을 낙관하던 후쿠야마는 다음과 같이 탄식해야 했다. “우리의 문화적 근시(cultural myopia)가 서구적 가치들을 잠재적인 보편적 가치들로 인식하게 만든 것일까?” 이러한 문화적 근시에 대한 반성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등장한 것은 군사적 수단을 적극적으로 동원하는 혁명적 제국이다. 시장과 원료의 확보를 추구하던 과거의 제국주의에서 전쟁이 필연이었다면, 혁명적 제국에서 제국이 설정한 표준을 수호하기 위한 예방전쟁은 선택이다. 제국적 평화(Pax Imperial)가 국제적 평화(Pax International)에 우선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국은 새로운 천년왕국인가? 제국의 수명을 결정할 첫 번째 안티테제는 반제(反帝·anti-imperial)이다. 이것은 제국에 맞서 또 다른 제국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설픈 반제는 제국의 힘을 강화시키는 자양분이 될 뿐이다.

제국이 正義를 定義

두 번째는 국제(international)이다. 일찍이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서 좌파인터내셔널이 만들어진 바 있다. 이들은 “저기 적이 있다고 소리치는 놈, 그놈이 바로 적”이라는 관점에서 맹목적 반제와 스스로를 차별화한다. 그러나 좌파인터내셔널은 결국 반국(反國·anti-national)주의였을 뿐, 진정한 의미의 국제(國際·international)는 아니었다. 국제란 국가적 정체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시민사회로부터 공격받고 있는 국가에 대한 재신임을 필요로 한다.

세 번째는 지역이다. 지역적 공동체를 대표하는 유럽연합은 제국의 후원 속에 표준을 놓고 다투는 새로운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중국 역시 새로운 지역적 제국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유럽연합과 같은 합의에 의한 제국은 아니다.

네 번째는 내제(內帝, Empire inside)이다. 제국은 대외적 팽창과 대내적 균열의 길항관계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항상 내파(內破)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여기서 주목받는 것이 개인, 그리고 개인이 모인 다중(multitude)이다. 오사마 빈 라덴은 테러리스트로서의 개인이 제국에 맞서는 힘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좌파테러집단과 연루된 경험이 있는 네그리는 불현듯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삶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로마제국 대 예수의 구도인 셈이다.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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