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들 그리고 우리/삶의 편린들(개인글)

이 시대의 두 어른 백낙청과 리영희

ddolappa 2008. 5. 16. 18:40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이 시대의 두 어른 백낙청과 리영희

 


<한겨례 신문> 창립 20돌을 맞아 이 시대의 두 어른인 백낙청 선생과 리영희 선생에게 우리가 당면한 시대적 상황을 타개할 지혜를 구하는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한 분은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현안을 두고 아직도 현장의 최선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고, 다른 한 분은 2000년 절필을 선언하신 후 지병으로 인해 요양 중이시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핵심적 문제를 꿰뚫어보는 예리하고 심오한 두 원로들의 혜안은 곱씹어 생각해볼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하겠다.

 


1. 백낙청 선생이 생각하는 우리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선생은 이 시대의 과제를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 세계적 차원에서 "혼란에 빠진 세계가 완전한 재앙으로 치닫지 않고 더 나은 인류문명의 시대로 가도록 하느냐, 어떤 기여를 하느냐 하는 것"


둘째, 동아시아적 범위에서 "세계적인 혼란 속에서 비교적 유리한 입지에 있는 동아시아가 이를 활용해서 세계 전체가 지금보다 더 정의롭고 생명친화적인 시대로 나아가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


셋째, "한반도 전체가 좀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길"
 

넷째, 남한사회의 차원에서 "이런 세계의 흐름, 동아시아의 흐름, 분단체제의 흐름 속에서 우리 남쪽 시민들의 힘을 어떻게 결집시켜 대응할 것인가 하는 과제"


선생이 제시하고 있는 네 가지 과제들은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과제를 보다 거시적이고 다층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요청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과 관련된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 내에서 차지하게 될 동맹관계 및 위상 문제와 직결된 것이기도 하고 보다 거시적으로는 인류가 자연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것과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광우병이 발생하게 된 계기가 인간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가 자신의 고기를 먹게 됨으로써 발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자본의 전지구화가 관철된 시대에 사는 인류 전체가 함께 반성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당면한 현실적 문제들이 워낙 중차대하게 보이기 때문에 백낙청 선생의 문제설정이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런 거시적이고 복합적인 구상에는 한반도의 문제를 인류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키면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2. 최근의 현상에 대해


"이번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사태전개에서 참 의미 있는 변화를 봤습니다. 10대 청소년들이 시위에 많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학교 급식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사용할까 겁을 낸다거나,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아 그런다거나 하는 얘기들이 다 일리가 있지만 그런 타산에서만 비롯된 움직임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이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이 아닌가 해요. 권 위원께서도 얼마 전 칼럼에 썼던데, 진짜 억압받고 학대받는 계층이지요. 좀 사는 집 애들일수록 오히려 더하지요. 그동안 아이들이 학교의 통제와, 좋은 대학에 붙으라는 부모들의 닦달에 짓눌려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의식이 없는 게 아닙니다. 알 건 다 알고 윗세대보다 훨씬 똑똑한 아이들인데, 그동안 멱에 차오른 분노를 광우병에 대한 공포심과 정부협상에 대한 분노의 형식으로 표출한 거지요. 물론 하나하나 따져보면 비합리적인 주장도 많고,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는 기계가 돼야 하는 데 대한 불만을 왜 엉뚱하게 쇠고기 협상에 표출하느냐 따질 여지도 있지만, 사실 대중의 분노는 대개 그런 식으로 폭발합니다. 어떤 구실이 생겼을 때 폭발해 동원되고, 자신들의 권리나 힘에 대한 확인이 생기면 그 다음부터는 정부가 맘대로 못하게 되죠. 월드컵 응원 열기로 표출된 에너지가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촛불집회로,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이어졌듯이, 청소년들의 움직임이 당장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청소년들을, 어린이들을 마음 놓고 억누르던 시절은 지나가지 않았나 해요. 무엇보다도 이것이 공·사 교육현장에서 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면 합니다."


- 선생 역시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10대 청소년들의 시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신데, 그들을 "이 나라에서 가장 억압받는 계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흥미롭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이야말로, 권력, 자본, 성, 교육, 지식, 노동 등으로부터 가장 소외된 계층이 아닌가 한다. 기성사회는 그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대해왔지 교육의 주체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격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부모들 역시 책임을 져야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은 자식들을 가장 잘 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자식들을 본인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킬 희생양으로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촛불시위는 여러모로 반가운 징조라 할 수 있다. "광우병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억눌려왔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하게 된 청소년 세대는 정치를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적 감각을 지닌 세대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의제를 만들고 그것을 토론에 붙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들이 보수주의자로 성장하건 진보주의자로 성장하건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진짜 문제는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가 없고,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부의 어이없는 대책들과 달리 그에 대처하는 국민들의 자세는 그 동안 힘겹게 이룩한 민주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저항을 하면서도 각자의 상이한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7,80년대의 투쟁의 정치에서 벗어난 축제의 정치, 유희의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현실의 삶을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에 맞추어 재단하는 대신에 구체적인 삶에서 공통체의 이념을 추구해나간다는 것은 분명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긍정적 징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우리는 선진화의 길을 걷고 있는가?


"물론 아니지요. 대전제가 우선 틀린 게, 지난 10년 동안 후진하고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거꾸로 가면 선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점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해결 안 된 문제도 많고 또 새로 발생한 문제도 있을 테니 당연히 선진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를 안고 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 단정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더군다나 요즘 장관 후보자부터 시작해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보면 이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권력 말고 잃어버린 게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살림이 더 어려워진 서민들의 편인 것처럼 현혹해서 자기들이 하나 아쉬웠던 권력마저 잡은 것이니까 큰 기대를 하기 어렵죠. 선진화라는 게, 그 사회의 여러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서 척결해 나가는 것인데, 박정희 시대식 성장을 회복하겠다고 하고, 국제경쟁력을 향상시킨다면서 미국이나 외국의 기업들이 요구하는 걸 들어주는 게 선진화라고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있어요. 지금 세계적으로 어려운 환경 때문에 어차피 경제적으로 성과가 나오기도 힘들지만, 이런 정책으론 성과가 나와도 서민들은 더 못 살게 되고 우리 사회의 후진적이고 야만적 요소는 오히려 더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4. 북한의 인권에 대해


"북한 인권문제는 인권을 생각하고 민족을 얘기하고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입니다. 단기적 성과를 내기에 너무 급급해서 관심을 소홀히 했다면 당연히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작 북한 인권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별로 한 일이 없는 게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북한인권담당차관보를 임명하고 법률도 만들었지만 탈북자 몇백명 받아들인 것이나 남쪽의 반북운동 행사에 돈을 대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오히려 북한 인권이 개선되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 북미관계가 해결이 돼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현실, 미국이 총부리 정도가 아니라 핵무기를 갖고 타격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제거해줌으로써 북한이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건데, 북한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개 그런 진전을 반대하는 이유로 북한 인권 얘기를 꺼내는 건 아이러니지요."


"원칙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생존권을 포함한 인권문제가 정말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절박한 인식을 갖고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하면서 행동방식에 대해서는 현명한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다 똑같이 행동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요.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람들 좍 줄 세워놓고 북한 인권탄압 규탄 할래말래 하고 들이대는 건 정치적인 제스쳐일 뿐입니다. 역할분담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5. 선생이 주장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란?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체제를 변혁해서 진정한 의미의 선진사회를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건설하자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그 일에 필요한 국민통합을 가능케 해줄 중도노선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현상유지를 하기 위해서 분단체제가 어떻게 되든 당장에 정권만 잡으면 되는데, 그러려면 중간 표를 잡아야 한다는 뜻의 중도주의와는 발상부터 다른 것입니다. '원만한'이란 말에는 자본주의를 인정한다는 뜻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인정도 인정 나름인데, 자본주의를 무조건 인정하고 그 룰을 따라가자고 해서는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니고 진보개혁세력의 결집도 불가능합니다. 자본주의에 문제가 있고 장기적으로는 곤란한 체제지만, 우선 이 세상이 자본주의 세상이니까 일단 그걸 현실로 인정하고 적응하면서 살아남아 극복하자는 것이고, 한반도에서 남북이 협력하고 교류하려면 그럴 동력이 있어야 하는데 자본주의를 부정해서는 그런 동력마저 생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통일된 사회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완전히 이탈한 사회는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아무튼 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한마디로 상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닌 것들이 뭔가를 하나씩 생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가령 남한 사회에서 계급혁명, 민중혁명을 일으켜 남쪽을 먼저 변혁시킨 후 통일할 수 있다는 것은 공허한 담론입니다. 그런가 하면 북의 민족자주노선을 우리가 수용해서 반미자주운동을 펼쳐서 통일하면 된다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일 뿐 아니라 그렇게 통일했을 때 과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냐는 것도 문제입니다. 극단적 통일론도 상식에 어긋나기는 마찬가지예요. 중도 마케팅식의 중도주의와 더 극단적 보수노선, 북은 내버려두고 그냥 남쪽에서, 이명박 정부 생각대로 '747'을 성취하면 된다는 것도 헛된 논의라는 게 벌써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의 한 변형으로서 우리가 그렇게 하면서 북이 붕괴되기를 기다렸다가 강력히 개입해서 통일하자는 노선도 허망한 것입니다. 4지선다, 5지선다 시험답안처럼 써놓고 말 안 되는 걸 하나씩 지워가다 보면 변혁적 중도주의밖에는 남는 게 없어요. 가장 자연스런 상식을 얘기한 거예요. 조금 색다른 표현인 것은 사실인데 아무런 생각 없이 내세우는 중도개혁노선은 아니고 여러 가지로 그것과 차별성을 갖는 노선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표현입니다."

 


6. 한겨례 신문이 나아가야 할 길


"당장에 재정난을 어떻게 타결할지는 경영진에서 알아서 해야겠지만, 시민사회 쪽에서 돕는 일은 구독확장에 나서주는 거라고 봅니다. 창간 20주년을 계기로 시민단체들이나 사회 각계각층과 더불어 독자확대운동을 한번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신문사의 돈벌이는 광고로 되는 거지 구독료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중동 같은 큰 신문들이 독자확장에 혈안이 돼 있는 게 다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신문의 힘은 구독률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시민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이 한겨레에 대해 기대하고 애착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들조차 한겨레 안 보는 사람이 많고, 정 급하다 하면 돈 몇푼 내서 격려는 할지언정 여전히 구독할 생각은 안 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은 종이신문들이 구독자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니까 독자배가운동이라면 하나의 수사적 표현에 지나지 않지만, 절대 구독률이 늘지 않더라도 신문독자층의 점유율을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는 제일 큰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겨례 신문에 재정난 타개를 위해 구독확장을 요구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중동에 대한 대안으로 적절한 제안이라 여겨진다. 조중동을 비판하는 일은 쉽지만 그 대안을 떠올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런 점에서 한겨레나 시사인 같은 언론들을 주목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여기에 한 가지 생각을 덧붙이지면, 각개각층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기고의 방식이나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들의 지식을 대중들과 공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어설픈 지식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기사들에 맞서는 한 방법이자 우리 사회 전체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활동은 다시 본인들에게 어떤 형태(저서의 판매량 증가나 강연의 기회 증가)로든 보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백낙청 교수는?


계간 < 창작과 비평 > 을 발행하며 지식인들의 사회·문학비평 담론을 이끄는 한편,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분단' 한국이 나아갈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대응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 온 진보학계의 원로. 한반도의 통일에 문학이 기여해야 한다는 '민족문학론'과 남북한을 상호연관을 가진 복합체로 인식하는 '분단체제론', 최근에는 '변혁적 중도주의'를 설파해 온 이론가이자 2005년부터 6·15 남북 공동선언 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쪽대표로 활약하고 있는 실천가이기도 하다. 1974년 유신헌법에 반대하는 '개헌청원 지지 문인 61인 선언'에 참여했다가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되기도 했다.


-1938년 대구에서 남
-59년 미국 브라운대 영문학 학사
-63년 미국 하버드대 영문학 박사
-66년 계간 < 창작과 비평 > 창간, 편집인 및 발행인 역임
-72년 서울대 영문과 조교수
-77년 < 8억인과의 대화 > (리영희 편역) 발행해 반공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
-80년 < 창작과 비평 > 폐간, 1988년 복간
-9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2002~07년 시민방송(RTV) 이사장, 현 명예이사장
-03년 서울대 명예교수
-07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방북. < 백낙청 회화록 > 간행

 

 

 

리영희 선생

 


1. 신문기자들에게 주는 충고


"신문기자는 사회적 기능과 내면적 구성의 면에서 두 갈래로 갈라질 수밖에 없어요. 하나는 바깥으로 다니면서 그날그날 변화를 보도하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중대한 기본적 사실에 대해서 연구와 분석, 이론적인 공부를 하며 기사를 쓰는 두 길이 있지요. 난 그날그날 변화하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 인간 생활 저변의 기본적 요소들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것이 확대되어 국제 정세, 전쟁 문제까지 내 판독·관찰력의 범위에 들어온 거예요. 남들이 표피를 볼 때 나는 밑바닥을 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첫째는 담당 분야에서 이름있는 전문가가 갖고 있는 지식의 최소한 절반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취재를 한다고 하지만 아무 내용도 본질도 모르고 덤벙덤벙 지나가 버린다고. 그날 아침 출근해, 국장실, 장관실 문 열고 들어가 “오늘 아침 뭐 있습니까”하는 기자는 담당 공무원이 속으론 멸시해. 자기들에 버금가는 지식과 수치를 갖고 필요한 부분을 따지는 기자들한테는 공무원들도 진실을 말하게 돼 있어요.


둘째는, 올바른 세계관을 가져야 해요. 광적인 반공주의, 군사독재, 힘의 숭배가 위세를 떨친 박정희 독재시대에서는 평화롭고 미래지향적인 제도와 사상을 갖춰야 했습니다. 이명박 시대로 말하면, 요즘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문제인데, 누가 봐도 미국의 비위를 맞추려 한-미 정상회담 가기 전에 뜯어맞추고 모든 것을 양도해 버린 거야. 우리가 미국과 이런 식으로 국가와 정부 관계 맺는 게 합당한지, 우리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 이념을 가져야 해요. 조·중·동 같은 보수신문은 광우병 논란 배후엔 전교조 선동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이 요구하면 받아주어야 하고, 그것이 평화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주장인 거지. 지금 한-미 관계는 식민지 상태야. 미국과의 관계에서 절반쯤 노예 같은 식민지 국민처럼, 우리가 한-미 관계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반듯하게 자기 정신과 이념을 세워야 하는데 ….


셋째는 인간적 관계인데, 기자는 성실해야 합니다. 하루이틀이야 어물쩍 넘어갈 수 있지만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적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지요.


마지막으로 가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꾸려나갈 각오를 해야 합니다. 가난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기자가 검소하지 않으면 돈의 유혹, 권력의 유혹에 이용당하기 때문이지요. 검소는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내용과 질을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에요."

 


2. 한국의 민주주의


"나는 한국이 민주주의가 됐다는 말은 함부로 안해요. 19세기 초 나폴레옹에게 제왕의 관을 씌우고 환호하던 프랑스 국민과 한국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노예 근성이지요. 독립적 가치 판단, 자기 행동과 자기 생존에 대한 책임, 자립 정신이 없으면 오히려 노예로 있는 게 편한 거야."

 


3. 미국에 대해


"명칭이 뭐든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최고권력자 등을 두드리는 것은 딱 한가지 목적 때문이었지요. 중국을 포위하는 전쟁 동맹, 공격 동맹, 중국 공격을 위한 하수인 지위를 부여하는 겁니다."
 

"미국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야.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지향하는 사회인데,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완미한 사회체제라고 착각해요. 우리가 인간 생존·행복·복지를 우선하는 전통적 유럽 나라들, 특히 북유럽을 미국과 비교할 때, 미국은 군수산업과 금융세력, 정치·사회·문화적 보수세력과 유대인의 조직적 지배 아래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복합체 때문에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라고 했지요. 60년대 초에 미국 군사 영웅인 아이젠하워가 8년 동안 대통령 직무를 마친 뒤 내린 경험적 결론이야. 미국은 전쟁 없이는 유지할 수 없는 나라이고, 전쟁으로서만 먹고 살 수 있는 세력이 군부와 결탁해 미국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고 있어요. 미국은 전쟁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미국은 무서운 나라입니다."

 

 

리영희 선생은?


1970·80년대 지식인들은 리영희 선생이 쓴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을 읽으며 냉전과 분단상황, 권위주의 체제가 강요한 지적 어둠을 걷어냈다. 80년 신군부가 선생을 광주 민중항쟁의 배후로 조작하자, <르몽드>는 한국 지식인과 대학생의 ‘메트르 드 팡세’(사상의 스승)인 리영희 교수가 잡혀 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안기관 쪽에서 볼 때는 ‘의식화의 원흉’이었다. 그는 60·70·80년대 기자와 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아홉차례 연행, 다섯차례 구속, 1012일의 투옥을 겪었고, 해직과 복직을 되풀이했다.


- 1929년 평북 운산 출생
- 50년 한국해양대 졸업, 군 입대
- 57년 육군 소령 예편, 합동통신사 입사
- 64년 조선일보로 이직,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제안 준비’ 기사로 구속
- 69년 박정희 정권 압력으로 조선일보 퇴사, 다음해 합동통신 재입사
- 72년 한양대 신방과 교수
- 80년 광주항쟁 배후 혐의 조작 구속
- 88년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이사
- 89년 한겨레신문 방북취재 기획관련 보안법 위반 구속

 

 


출처 :


[한겨레] [한겨레 창간 20돌] 백낙청 교수에게 듣는 한겨레와 오늘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80515201103527&cp=hani


[한겨레 창간 20돌] 리영희 선생에게 듣는 한겨레와 오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76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