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6회(2006.4.1.)
두 가지 중요한 형식의 도입
'만우절 특집' 혹은 '벚꽃 축제 특집'이라 불리는 이번 에피소드는 무한도전의 성장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첫째, 박명수의 몰래 카메라를 시작으로 멤버들 속이기라는 요소가 이후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둘째, 2006 WBC의 영웅 이종범 선수와의 전화 인터뷰 이후 무한도전은 국내외의 유명 스타들을 게스트로 초빙하는 방식 이외에 즉석 통화라는 형식을 통해 다양한 스타들과의 만남을 시도하게 된다.
이번 방송을 계기로 처음 도입된 몰래 카메라 형식은 이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어 나타나게 된다. '퀴즈의 달인' 시기에는 '충무공 탄신일 특집'편에서 개그우먼 김미진이 이영애의 성대모사로 멤버들을 속인 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무한도전이 독립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고 나서부터 몰래 카메라 형식은 크고 작은 형태로 빈번하게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한 회 전체를 구성하는데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가령 멤버들이 촬영장에 도착하는 순서를 체크했던 '일찍오길 바래('10회), 공포의 순간 멤버들이 놀라던 반응을 재미있게 보여주었던 '납량특집'(13, 14회),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 '친해지길 바래'(20, 21회), 골목에서 갑작스럽게 뛰쳐나온 청년들을 보고 놀라 어둥지둥 도망치는 멤버들의 모습이 큰 웃음을 주었던 '추석특집'(22회), 정준하의 생일을 잊은 척해서 그의 눈물을 쏟게 했던 '형돈아 이사가자'(48회)나 도시락에 장난감 뱀을 넣은 것만으로도 정준하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가을특집'(24회), 영화배우 김수로를 속이려다 오히려 멤버들이 그에게 역몰카를 당한 '김수로편'(26, 27회), 남탕을 여탕처럼 꾸며놓고 멤버들을 당황시켰던 '설특집'(41회), 노홍철의 그녀를 찾아서 방문했건만 그의 정리벽만 확인할 수 있었던 '빨간 하이힐의 진실'(36회), 정준하가 지각하는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담은 '서부특집'(65회), 지하철 역에서 정형돈을 속였던 '지구특공대'(78회), 자동판매기 안에 들어간 박명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대체 에너지 특집'(79회), 정준하가 왜 바보형인가를 보여주었던 '가족 특집'(90회), 탤런트 한지민과 동명이인 송혜교를 섭외한 재치가 돋보였던 '100회 특집'(100회) 등등이 대표적인 예들이다.
이처럼 몰래 카메라 형식이 무한도전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데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라는 쇼의 형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TV 영상 속의 사건들과 인간관계 등이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몰래 카메라는 연예인들의 '리얼'한 실제 모습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 중 하나이다. 제작진들이 떠난 뒤 녹화 때문에 어질러진 집을 보고 망연자실하던 노홍철이 자신의 집을 순식간에 원래의 상태로 바꾸어놓는 모습이 담긴 몰래 카메라 속 영상은 그가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전달해주었다. 또 둘만 남겨진 정형돈과 하하의 모습을 통해 이들이 실제로 어색한 사이라는 사실을 꾸밈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무한도전의 몰래 카메라는 출연진 각자의 성격이나 그들 간의 인간관계에 대한 탐구와 폭로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성격과 인간관계는 이후의 에피소드에 다시 반영되어, 무한도전이 점차 성장해 가는 쇼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사용된 대개의 몰래 카메라는 이러한 진지한 기능보다는 멤버들이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 재미와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들이 특정한 상황 하에서 놀라서 넘어지거나 공포에 사로잡혀 울부짖는 모습만큼 '리얼'하면서도 재미있는 모습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이영애의 목소리를 흉내낸 김미진에게 멤버들이 속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 역시 일반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연예인을 선망하는 순수하고 소박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라는 멤버들의 캐릭터와 무한도전이 표방하는 서민적 감수성을 강화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김태희의 등장에 환호성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들이 연예인을 보고 놀라는 시청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었고, 그로 인해 대중들이 그들을 연예인이 아닌 이웃집 오빠나 아저씨같이 친근감을 갖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최근에 Mnet의 <오프 더 레코드 효리>와 <서인영의 카이스트>, S본부 <일요일이 좋다>의 '체인지', M본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우리 결혼했어요’ 등등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도 몰래 카메라 형식이 접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몰래 카메라 형식과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몰래 카메라 형식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무한도전의 쇼 형식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기법으로 다루어져야 하고, 그 기능과 역할 그리고 그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세분시켜 분석되어야 한다.
'만우절 특집'에 도입된 두번째 중요한 요소인 스타들과의 전화 통화 역시 무한도전이 제공하는 흥미로운 이벤트라 할 수 있다. 이종범, 배슬기, 이다해, 권상우, 소지섭, 김아중, 윤종신, 한지민, 박용하와 같은 스타들의 목소리를 무한도전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화제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탤런트 이다해와의 통화는 이후 '멤버들의 2세 사진' 합성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프로그램 제작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었으며, 제작진에 의해 끊임없이 속다보니 실제 한지민과 전화통화를 해도 믿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져 역발상의 웃음을 제공하기도 했다.
복수는 나의 것
그 동안 설문조사를 발표하며 '뻥이야!' 공격에 가장 많이 희생된 박명수는 일명 '뻥 카메라'를 통해 철없는 동생들인 정형돈, 하하, 노홍철에게 복수하게 된다. 제작진, 박명수 그리고 정준하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 날의 몰래 카메라에서 그들에게 속아서 당황해 하는 다른 멤버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박명수와 정준하가 펼치는 연기를 감상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이 날도 하하와 노홍철은 한 치 앞도 모른 채 스튜디오를 신나서 뛰어다닌다. 정준하가 박명수에게 '뻥이야' 공격을 해서 그의 약을 올리는 시늉을 하자 박명수 역시 슬슬 바람을 잡기 시작한다. 박명수는 하하가 설문 조사 1위를 하자 결과가 못 마땅한 척 인상을 찌푸리며 오버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하는 그럴 수록 더 오버를 하며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게 된다. 첫번째 작전이 먹히지 않자 박명수는 흥분을 한 척 풍선을 손으로 붙잡아 터뜨려 보지만, 그의 모습은 왠지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이다. 그러다가 하하가 지난 주 1위였던 박명수의 사진을 공중으로 집어던져서 그의 사진틀을 산산히 박살내자, 제작진과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한 박명수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준하가 돕는답시고 "어른들이 얘기하잖아! 이 자식같은 놈들아!"라고 말해 박명수의 호통에 잠시 긴장감이 맴돌았던 상황이 우습게 되고 만다. "내가 정말 무한도전 재밌게 봤지만 이런 앙케트 조사 같은 거, 말도 안 되는 거 하지 말라고! 아니 방송 6개월 만에 컴백해서 여기서 자신감을 얻고 가야지 이게 뭐냐고 지금." 정준하가 정색을 하며 화를 낼 수록 원래의 계획에서 어긋난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는 걸 보면, 멍청한 아군이 적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몰래 카메라가 실패할 수도 있는 상황을 다시 뒤집어놓은 것은 '성난 연기파 배우' 박명수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였다. 그가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분위기로 몰고가자, 눈치 빠른 하하가 정색을 하며 "정말로요 형님?"하고 묻게 된다. 스튜디오 분위기를 장악한 박명수가 이번에는 제작진에게도 화를 내는 척하게 된다. "나이 먹고 뭐야! 내일 모래 40인데 애들 하고 하면 우리가 일등하겠어!" 몰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유재석은 박명수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그를 달래고, 정준하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동생들의 반응을 살피는 대조적 모습을 보여준다.
박명수는 녹화마저 중단시키고 동생들의 방송태도를 나무라기 시작한다. 그는 중간에 끼여드는 정형돈을 호통으로 잠재우고, 이번엔 죽마고우 하하와 노홍철을 꾸짖기 시작한다. "너희가 여기 올 때 준비해와? 우리가 여태까지 한 게 뭐가 재밌냐 지금! 방송 뭐 나가겠냐 이게!" 박명수의 호통에 퀵마우스 노홍철은 순식간에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이 상황에도 MC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유재석은 4위 발표까지만 마무리짓자며 박명수를 설득한다. 그러나 박명수는 유재석의 말은 듣지도 않고 5분만 쉬겠다며 세트장 밖으로 나가버린다. 노홍철은 밖으로 걸어나가는 박명수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고, 유재석은 남아 있는 후배들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무거워진 분위기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물론 상황을 알고 있었던 정준하는 당시만 해도 게스트 신분에 불과해서인지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박명수는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듯 '빵끗' 웃어보인다. 그는 다른 멤버들을 속였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운 듯 연신 미소를 짓다가 "노홍철은 얼굴이 사색이 됐어!"라며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다른 멤버들은 박명수의 사진을 너무 높이 던져서 그가 화가 났다고 추측한다. 여기에 담당PD까지 나서서 "오늘 뭐 안 좋았어요?"라고 바람을 잡아서 멤버들은 더욱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게 된다. 노홍철은 "저희는 괜찮은데 명수 형님 어떡하지?"라고 오히려 박명수를 걱정하고, 하하는 "진짜였어? 난 장난인 줄 알았지!"라며 자신을 자책하고, 유재석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들을 지켜본다.
이 와중에도 유재석은 4위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준다. "발표하지 말자. 내가 4위인데, 3위까지만 하지 뭐." 순진한 금발미남 노홍철은 박명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띠를 빼면 좋아하실까?"라고 말하며 목에 두른 띠를 벗으려 하고, 하하는 울먹거리며 "나는 정말로 그런 생각을.... 내가 너무 (박명수의 사진을) 높게 던졌나봐."라며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듯 말한다.
정형돈, 하하, 노홍철이 정준하에게 깍듯이 사과를 하고 갑자기 세트장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자, 제작진은 이들을 제지하고 황급히 박명수를 투입하게 된다. 박명수가 세트 정면에서 "뻥이야!"를 외치며 등장하고 그 뒤로 뻥튀기 기계의 폭발음이 울려퍼진다. 어정쩡하게 무대에 서 있던 멤버들은 어리둥절해 하기 시작한다. 박명수가 웃으면서 그날(방영일)이 만우절임을 알려주자 그제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하하는 박명수에게 "아까 나 진짜 깜짝 놀랐어! 울 뻔 했어 진짜로... 명수형 (연기) 멋있다!"라고 말하며, 자신을 멋있게 속인 박명수의 연기를 칭찬한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이 하하에게 다가가서 설문조사에서 1위를 했는데도 그 기쁨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다고 안타까워 하자 하하는 갑자기 설움이 북받쳤는지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하하를 멤버들이 함께 모여 위로 하며 몰래 카메라는 끝나게 된다.
몰래 카메라의 주제는 '조금은 부족하지만 / 조금은 싼 티 나지만 / 이렇게 순수함과 / 애정으로 뭉친 사람들'이란 자막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비록 막말과 무한이기주의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와 배려가 바탕하고 있고, 또 서로에 대한 비난과 막말도 어떤 악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사건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바로 이러한 세심한 연출력이야말로 무한도전이 폭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된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아무리 심한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그 밑바탕에는 애정과 순수함이 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어 심리적 안정성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이다. <라인업>의 출연진들이 서로 친하다고 아무리 말을 하더라도 그들에게서 좀처럼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웠던 까닭도 이러한 연출력이 부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관계의 중심 하하
모든 것이 박명수와 제작진이 꾸민 깜짝 이벤트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하와 노홍철은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한다. 유재석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냐고 노홍철에게 묻자 그는 박명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해서 박명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하하는 박명수와 같은 소속사에 있으면서도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고 하며 "원래 MC유한테는 진짜 잘 하잖아요! 본인한테는 대통령같은 존잰데.... 유반장한테 뭐라고 해서 깜짝 놀란 거예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하하는 최고조의 긴장 상태에서 유재석이 손에 든 순위 발표지에 먹던 생수를 붓고 밖으로 나가버린 박명수가 생각할 수록 유치하다고 느껴졌던지, 그런 박명수의 행동이 어린 아이가 답답할 때 침을 뱉는 것과 유사하다며 그를 비웃기조차 한다.
하하의 군입대 이후 무한도전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무한도전 내에서 하하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무한도전 History>에서 여러차례 언급한 바 있듯이 하하는 노홍철과 더불어 무한도전을 시끄럽고 정신없는 쇼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이번 에피소드의 처음 몇 분간 쏟아내는 말의 홍수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 "잘 생겼어! 눈에 쌍꺼풀 있어! 코가 여기서 제일 높아! 비오면 코부터 맞어!"
- "엄마가 나 낳고 딸인 줄 알았어! 애가 너무 곱상한 거야!"
- "영원히 사랑해! 난 나의 팬이야!"
- "어렸을 때 엄마가 나 낳고 '또 딸이구나'하고 울었어!!"
- "나 방황하는 꼴 보고 싶으면 말해!"
- "진짜 삐쳐버릴 거야! 삐뚤어지는 게 뭔지 보여주겠어!"
쉴 사이 없이 쏟아내는 하하의 어처구니 없는 말들은 순위 발표 순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자기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하하가 '가스전 특집'이나 '인도 특집'에서 셀프 카메라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자기 도취가 강한 그의 캐릭터 때문이다. 키도 작고 평범하게 생긴(물론 무한도전 내에서는 노홍철과 더불어 젊고 잘생긴 축에 속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이런 과장된 몸짓은 그 자체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지만, 실은 그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하하의 나르시시즘은 스스로를 하나의 대상으로 설정해서 그것에 애정을 쏟을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하는 다른 멤버들과 관계를 맺듯이 자신하고도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표현 양식이 자아도취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무한도전 내에서 모든 멤버들과 조밀한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은 유재석이 아니라 하하였다. 그는 무한재석교의 열혈신도였고, 박명수와는 같은 소속사였고, 정준하와는 그의 비리를 폭로하는 관계였고, 정형돈과는 어색한 관계였고, 노홍철과는 죽마고우였다. 하하는 이러한 관계망 사이를 헤짚고 돌아다니며 수많은 긴장관계과 이합집산을 주도하면서 무한도전에 역동성을 부여했다. 그런데 그런 하하가 빠졌다는 것은 무한도전을 하나로 묶어주던 끈을 상실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무한도전에서 감지되는 어떤 피곤함과 무기력은 하하의 부재가 가져온 여파로도 볼 수 있다. 예전에 그들 사이를 촘촘히 결합시켜주던 연결축이 사라졌지만 그를 대신할 새로운 관계망이 아직까지 정립되지 않은 지금의 상태는 무한도전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예전과는 다른 낯선 모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무한도전에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서 6명의 멤버수를 단순히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 간에 관계를 새롭게 정비하는 일이다. 남아 있는 5명의 멤버들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없다면, 제7의 멤버 영입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무한도전의 멤버들 역시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정준하와 노홍철이 자주 아옹다옹 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유재석이 정준하의 성대모사를 따라하기 시작한 것 역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일지 또 얼마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예측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카메라
유재석은 '예쁜 남자 신드롬에 어울릴 만한 멤버는?'이란 설문에 유난히 기권이 많았다고 이야기한다. "이번 설문 해도 해도 너무한다!", "살다 살다 이런 어려운 투표는 처음 본다!" 그러자 노홍철은 "정치보다 더 어려워!"라고 깔깔대고, 하하는 정준하를 보며 "준하형 이제 안 웃어! 기분이 나쁜 거야!"라며 그를 비웃기 시작한다. 여기에 노홍철이 가세해서 "기권한 투표에서 꼴찌야! 집에 가면 귀한 아들인데! 4대 독자, 4대 족자인데!"라며 정준하의 아픈 부분을 예리하게 찌르고 들어온다. 정준하는 속이 타는 지 계속해서 깡 생수만 마셔대고, 그 모습을 보던 유재석은 "저희도 처음엔 이렇게 깡 생수를 많이 먹었어요!"라며 그를 위로한다. 여기에서 왜 정준하가 말없이 깡 생수를 들이켜야만 했는지 시청자들이 선정을 반대한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 박명수 : 1. 아무리 제8의 전성기라지만 정말 못생겼다! 2. 이유야 본인이 더 잘 알겠지!
- 정준하 : 헬멧 벗고 얘기해라!
- 정형돈 : 예쁘긴 개뿔!
- 노홍철 : 수염부터 틀려 먹었다!
여기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은 박명수의 선정 사유를 듣고 그를 담당하던 카메라 감독이 웃어서 떨리는 화면이 2번씩이나 그대로 방송을 탔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녹화 상황과 안방을 연결시켜주는 카메라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어야만 쇼에 몰입할 수 있다는 상식을 무시하고 방영된 이 장면은 분명한 NG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웃음의 진품성을 보장하는 증거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굳이 청원 방청객을 동원해 억지스런 효과음을 넣지 않더라도 저절로 나오는 웃음 때문에 실수를 저지른 영상은 그 자체로 웃음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증명 수단임에 분명하다. 이 역시 무한도전의 실험적 성격을 잘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의 촬영 감독들은 이 이후로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들은 정준하에게 봄 점버를 원한다는 표시를 단체로 하기도 하고('설특집'), 박명수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러서 '동동감독'이란 별명이 붙기도 하고('새학기 특집'), 동굴로 촬영을 가야할 때 서로 미루며 지극히 무한도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무인도 특집'), 비바람과 싸우며 촬영에 임하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모내기 특집') 그들은 '크리스마스 특집'에서는 박명수가 가져온 일주일 지난 피자를 억지로 먹기도 했고, '인도 특집'에서는 전통 인도 카레를 먹기 싫다며 강력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고, '사랑의 도서관 특집'에서는 정형돈이 만든 우럭 매운탕을 먹고 '뜨겁다'고 맛(?)을 표현하기도 했다. '경주 보물찾기 특집'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혼자 질주하는 정형돈을 쫓아가다 결국 그를 촬영하는 것을 포기하며 카메라를 들고 자전거를 어떻게 쫓아가냐고 숨을 헐떡거리며 한탄하기도 했고, 또 바지가 내려가는 바람에 정형돈의 촬영을 포기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출연진들 이외에 쇼를 만드는 다양한 사람들 즉, 카메라 감독들, 작가들, 코디네이터나 매니저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출연시켜왔는데, 이는 무한도전이 만들어지는 쇼라는 실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그들 모두가 쇼의 주인공이자 가족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기존의 쇼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 되어왔던 다양한 인물들이 이처럼 각자의 개성을 갖고 쇼에 참여하는 방식은 무한도전이 펼쳐 보이는 쇼에 날 것 그대로의 느낌, 생생한 현장감 그리고 모두가 함께 하는 공동체적 유대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실험적 연출 방식에서 연출자가 지향하는 기본 가치들과 연출철학 그리고 세계관 등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그것은 모두가 각자의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미학적 공화주의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요절복통 면접기
#1. '털난 청년' 노홍철
노홍철은 들어오자 마자 면접관 자격으로 앉아 있는 치킨CEO 박명수와 알코올CEO 정준하에게 넉살좋게 인사를 한다. 그는 시키는 것이면 술에 물을 타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떠벌여 정준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자 정준하는 면접 사회를 맡은 유재석에게 "닭 중국산 쓰는 것 다 아냐?"고 물어 박명수를 자극한다. 이 문제를 놓고 둘 사이에서 사소한 입씨름이 벌어지지만, 유재석의 진행으로 다시 노홍철에게 촛점이 맞춰지게 된다.
- 유재석 : 아니, 우리 회사 비밀을 뭐 알고 있습니까?
- 노홍철 : 일단 콜라에다 물 타는 거 아무한테도 전 얘기 안 할 자신이 있구요,
닭 튀기다 말고 뻘건 거 주는 것도 전 양념이라고 속여서 팔 자신이 있어요!
난 돌도 팔 수 있는 아이야! 설명을 기가 막히게 해요. 한 번 믿어보세요.
사장님 두 얼굴을 보니 저에겐 꿈이 생겼습니다.
저런 사람도 사장인데 나도 금방 사장이 되겠구나.
정말 이 회사라면 내가 크게 그리고 바르게 클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홍철이 퇴장을 하자 박명수를 물끄럼히 바라보던 정준하는 "면접하는 사람이 콧구멍에 코딱지가. 더러워서 내가 같이 진행을 못하겠네. 코가 왜 그리 헐었어?"라고 말해 박명수를 무안하게 만든다. 박명수가 민망한 듯 웃으며 고개를 떨구고 코 주위를 정리하는 사이, 유재석은 정준하에게 다가와서 "사장님! 사장님도 발 좀 그만 만지시죠. 발 만지던 손으로, 아까부터 보니, 그걸로 입 닦으시고 하시던데."라고 말한다. 유재석의 지적에 물을 마시던 박명수가 웃음을 터뜨려서 물을 뿜는 바람에 그는 뜻하지 않게도 침, 코딱지에 이어 구토개그를 선보이게 된다.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노홍철은 말주변도 좋고 개성도 뚜렷하지만, 상대가 받아주기 곤란한 개그를 해서 만담형 개그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입담은 그 대신에 강한 힘과 호소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개그에 악센트를 줄 때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이들 간에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까닭은 유재석이라는 걸출한 진행자가 면접 사회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박명수의 실수를 정준하가 지적해서 웃음거리로 만들고, 다시 정준하의 헛점을 유재석이 파고 들어 웃음거리로 만드는 순발력과 재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확실히 연륜이 오래된 코미디언들은 웃음에 독특한 리듬을 부여해서 보다 오래 지속되는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것 같다.
#2. 잘 생긴 하하
하하의 첫 인상에 두 CEO들은 흡족했는 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하하가 어떤 일을 하는 회사냐고 묻자 박명수는 "여기는 치킨 & 드링크.... F & B(?)야."라며 다소 생뚱맞은 대답을 한다. 유재석이 술과 치킨을 동시에 파는 회사라고 정리하자 하하는 "호프집이네요."라고 말해 박명수와 정준하를 졸지에 작은 호프집을 경영하는 두 친구로 만들어놓는다.
- 유재석 : 저희들 지금 호프집 직원 뽑는 거예요. 저희 사장님의 방침이 호프집에서도 늘 정장을.
(이번에는 정준하가 마시던 물을 내뿜는다.)
- 유재석 : (정준하를 가리키며) 이렇게 다양한 이벤트에, 손님을 위한 물쇼, 땀쇼, 침쇼! 곤충쇼!
- 하하 : (정준하를 보며) 사장님이 배달도 직접 하시나 봐요? 아직 헬멧을 안 벗고 계시네요.
- 정준하 :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나가! 안 뽑아! 나가!
- 하하 : (박명수를 가리키며) 저 분은 어떤 파트?
- 박명수 : 난 치킨업계에 있네.
- 하하 : 남산에서 봤어. 비둘기 잡고 있더라구요.
하하의 장점 중 하나는 상대방의 캐릭터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술과 치킨을 동시에 파는 회사라고 하자 '호프집'이라고 맞받아 친 재치도 돋보였고, 하하의 말을 이어받아 호프집과 어울리지 않은 정장 차림을 대비시켜 웃음을 유발한 유재석의 순발력도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물을 내뿜는 정준하의 모습을 보고 박명수와 자신까지 포함시켜 '물쇼, 땀쇼, 침쇼, 곤충쇼'라고 말한 장면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순발력이 발휘된 장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유재석은 다른 멤버들을 계속해서 어시스트하면서도 조용히 쇼 전체를 지배하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3. 옛날엔 CEO 박명수
박명수가 입장하자 그의 얼굴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폭소가 터진다.
- 노홍철 : 아니 신입사원 뽑는데 왠 간부가 오셨어?
- 박명수 : (침착하게) 경력직입니다. 21세기는 도전과 꿈이 있는 그런 시대입니다.
- 유재석 : 난 이 면접 반댈세. 우리 회사가 아무리 사람이 궁하기로서니 10명 모집에 1명이 왔다니.
이거 참.
- 박명수 : 제 경력을 봐서 아시겠지만, 제가 미국 MBA에서.
- 유재석 : 경영 대학원을 나왔다고? 몇 년 공부했나?
- 박명수 : 미국에서 2년 정도 공부했습니다.
- 유재석 : 그럼 영어로 대화를 한 번 해보게.
- 박명수 : Ya, ya, ya.
- 유재석 : 이 사람아, 사장한테 '야 야 야'라니?
- 박명수 : 'Yes' = 'Ya' ['야'가 '예스'라는 뜻]
- 하하 : You face, why? [너의 얼굴 왜 그 모양?]
하하의 영어 질문에 일동 폭소를 하고 자지러진다. 박명수 혼자 적절한 애드리브를 떠올리기 위해 웃지도 않고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무슨 말인가 하려는 찰라 유재석이 그의 말을 끊으며 "자, 우리 점심들이나 먹으러 가지!"라고 말한다. 화가 난 박명수는 "이런 '더러운' 놈의 회사! 에라이 이 더러운 놈의 회사야!"라고 호통을 친다.
앞 선 에피소드에서 보여주었던 박명수와 유재석의 엉터리 영어회화가 계속되고 있는 이 장면에서 주목할 대사는 하하의 "You face, why?"이다. 쉬운 영어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문장을 통해 앞으로 박명수는 끊임없이 놀림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시간을 줄 경우 즐거운 흐름을 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재석이 끊고 들어온 타이밍도 좋았고,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고 폭언으로 쇼에 악센트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한 박명수의 결단도 나쁘지 않았다.
#4. 물 쇼 담당 CEO 정준하
정준하가 방문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고 왼쪽으로 손잡이를 돌릴 지 오른쪽으로 돌릴 지 고민을 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재석이 "우리는 커튼일세." 라고 말해 정준하의 고민을 해결해 준다. 질문하실 것이 있냐고 묻는 정준하에게 유재석과 하하는 없다고 대답하고, 박명수만이 "난 많아!"라고 대답한다.
- 유재석 : (박명수에게) 질문해보게!
- 박명수 : 이런 건방진 이사! 아버지만 아니면 자를 텐데!
- 유재석 : (박명수를 끌어안으며) 저기 미안한데 내 아들일세. 이 회사 다 물려받을.
나보다 조금 (나이가) 들어보이지만 내 아들일세.
장래가 촉망되고 미국 MBA에서 2년을 놀다왔어. 2년을 공부하라고 보냈더니
놀다왔네, MBA에서.
정준하는 유재석의 대사를 이어받아 자신은 일본에서 3년 간 유학했고, 우동 빨리 먹기를 전공했고 만두 빨리 먹기 신기록을 세웠다고 보인을 소개한다. 유재석이 그러면 물을 마시는 모습이라도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정준하는 화려한 물따기 쇼를 선보인 후 생수 한 명을 6초 42만에 비우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내심 뿌듯해 하는 정준하를 보며 하하는 "물은 마셨지만 난 마음에 안 드는데."라고 말해 그를 허탈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문을 설정해서 이를 표현하려 했던 정준하의 모습은 그가 새로운 개그를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간파하고 재빨리 '커튼일세'라고 말하는 유재석의 유머 감각은 가히 천재적이다. 이 천재 개그맨의 순발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박명수가 끊어놓을 뻔한 개그의 맥을 다시 이어주고 있다. 하하가 정준하를 뻘줌하게 만드려는 유재석의 의도를 읽고 질문이 없다고 말했다면, 박명수의 대답은 맥락에서 어긋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명수가 본인보다 어린 유재석을 아버지로 설정해서 웃음을 유발한 시도는 좋았고, 앞서 보여준 박명수의 개그를 기억했다가 여기에 접목시킨 유재석의 개그는 더 좋았다. 마지막으로 정준하의 쇼를 다 보고도 허무하게 그를 면접에서 떨어뜨린 하하의 대사도 나름의 개그 감각을 잘 살린 것이라 하겠다.
#5. 유반장 재석
유재석이 똑똑 노크를 하자 정형돈이 "커튼일세."라고 말하고, 박명수가 "문이 하나 더 있네."라고 하고, 하하가 "계단이네."라고 하고, 정준하가 "그 다음 회전문이네."라고 해서 그가 보이지 않는 여러 장애물을 통과하게끔 만들어 웃음을 유발한다. 정준하는 바로 자신의 코 앞에 마주앉은 유재석에게 "면접(面接)이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건가?"라고 재치있는 말장난을 보여준 뒤 다시 나가라고 말해 유재석은 회전문, 계단, 문, 커튼을 차례로 통과해서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된다.
유재석이 다시 면접을 보기 위해 들어오자 박명수는 "징검다리네."라고 말하고, 하하는 "외줄이네."라고 말한다. 유재석이 외줄타기 시늉을 하며 가까이 다가오자 정형돈이 슬며시 다가가 가위로 외줄을 자르는 제스처를 취한다. 유재석은 '어, 어' 하는 탄성을 지르며 마치 외줄에서 떨어지듯 바닥에 나뒹구는 몸짓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무한도전 멤버들 전체의 협동과 유재석의 몸개그가 잘 조화를 이룬 장면이라 하겠다. 몸개그는 단순히 우연한 상황에 몸을 던져 유발되는 웃음이 아니라 일정한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유재석은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그가 보이지 않는 장애물들을 몸의 표현을 통해 상상할 수 있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우연히 바나나를 밟고 넘어지는 장면은 웃음을 줄 수 있지만 그 사람을 코미디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코미디언은 판토마임 등과 같은 훈련을 통해 자신의 육체를 단련시켜 그러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준하의 등장 이후 정형돈의 비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정형돈이 등장하는 면접기는 심지어 편집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멤버들의 개그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이 시기에 정형돈은 개그맨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후 정형돈이 어떻게 무한도전 내에서 자신의 지분을 넓혀가는 지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빛 나라 지식의 별!
하하가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이 시작하자 마자 어이없는 실수를 범해 첫 피박을 맞자 사방에서 비난이 쏟아지게 된다. 정준하는 시청자들이 재미있게 보려다가 맥이 풀린다고 하하를 비난하고, 유재석은 최소한 한 바퀴를 돌도 맞아야 한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고, 노홍철은 긴장감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다 정말 뜬금없이 유재석이 이런 말을 하게 된다.
- 유재석 : 정말 이럴 거면 <스펀지> 보는 게 나아.
- 정형돈 : 요즘 욕심내더라 타 방송.
- 유재석, 정형돈 : 빛 나라 지식의 별!
- 박명수 : 안녕하세요, 이혁재입니다.
- 유재석 : (박명수에게) 새로운 거 하신다며요.
<우리 명수가 달라졌어요> 호통 안 치는 걸로 프로젝트 만든다면서요.
지난 주에 방송 3사의 대통합을 게임을 통해 이루더니 보다 자유롭게 타 방송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무한도전의 경쟁 프로그램은 <스펀지>였지만, 무한도전은 몇 주 안에 그 프로그램을 따라잡겠다는 식의 적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대신에 오히려 상대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을 희화화 하고 있다. 물론 세월이 흘러 <스펀지>의 진행자였던 이혁재는 그 후 무한도전 때문에 자신이 실업자가 되었다고 한탄하기도 했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운명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큐피트의 화살은 과연 누구에게
노홍철은 봄이 되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한다. 그는 진심으로 마봉춘과 사귀고 싶다고 말을 하고, 나중에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에 만나자고 말했지만 퇴짜를 맞았다고 고백하게 된다. 그 때 당시 다들 노홍철과 비슷한 처지였던 멤버들은 그래서 마봉춘이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는 지 그리고 멤버들 중에서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는 지를 물어보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마봉춘은 30대 이상의 멤버들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그녀의 고백과 함께 정지된 유재석의 얼굴이 비추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는 상당히 암시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앞선 에피소드들에서도 유재석과 마봉춘의 사랑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마봉춘이 최초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장면이니 기억해둘 필요는 있겠다.
'국민의 이모' 정형돈
봄날에 느끼는 청춘들의 열기는 박명수가 배슬기와 통화를 한 장면까지 이어지게 된다. 박명수는 무한도전에 출연한 이후 제8의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여자 연기자들과 교류를 하게 되었다고 유재석에게 말한다. 그래서 박명수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기 위해 즉석해서 배슬기와 통화를 시도하게 된다.
운 좋게 연결된 배슬기와의 전화에서 멤버들은 서로 통화를 하려고 박명수의 핸드폰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자신의 핸드폰을 빼앗겨 심통이 난 박명수는 마이크 안테나에 대고 이야기하는 치기어린 행동을 보여주게 된다.
당시 '복고 댄스'로 한창 인기를 얻고 있던 배슬기에게 멤버들은 즉석 앙케트를 하게 되고, '가을 소풍 특집'에서 단체 사진을 찍던 모습처럼 인간 피라미드를 쌓고 그녀의 답변을 기다리게 된다. 그 결과 1위는 하하, 2위는 노홍철이 차지하게 되고, 나머지 멤버들은 서로 다투다가 전화기와 마이크가 분리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박명수는 "내거야 이거! 줘야 될 거 아냐! 내 전화야! 할부야, 할부! 이리 내 놔!"라고 호통을 쳐서 어렵사리 자신의 핸드폰을 되찾게 된다. 물론 마이크는 방송사 것이라고 유재석이 주장을 해서 박명수로부터 빼앗아 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남자 스타와 통화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와 정준하가 2006 WBC의 영웅 이종범 선수와의 전화 통화를 시도하게 된다. 이종범 선수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누구냐구?", "말을 똑바로 하라구" 말하기도 하고, 정준하가 방송이라고 밝히자 "그럼 진작 말하지, XX야!"라고 고향 사투리로 친근한 욕설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멤버들 각자와 개별 인사를 나누게 되는데, 이 때 보여주는 이종범 선수의 반응이 재미있다.
- 유재석에게 : "아이고! 메뚜기 오랜 만이쇼-잉!'
- 박명수에게 : "아, 아! 닭 장사 하시는 분!"
- 노홍철, 하하에게 : (미지근한 어투로) "아.... 예 알아요, 알아요."
- 정형돈에게 : "아, 우리 국민의 이모 바꿔주쇼."
유재석이 이종범 선수에게 정형돈을 소개하자 그는 뜬금없이 "국민의 이모"라고 정형돈을 불러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정형돈이 다시 정확한 발음으로 자신을 소개하자 이어지는 이종범 선수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 나는 전원주인 줄 알았지!" 이휘재의 손가락 욕 사건을 비롯해서 이 시기의 정형돈은 확실히 사방에서 압박을 받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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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에피소드에 관한 영상과 사진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by 냄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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