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8회(2006.4.15.)
세계로 가는 무한도전
'뉴욕 특집'은 무한도전 시즌2가 시작된 이후 최초로 기획된 해외 특집이다. '무한도전이라고 해외특집 못하랴!!'라며 자신감 있게 준비한 특집이지만 실상은 무대 세트만 번화한 뉴욕의 모습으로 꾸며놓았을 뿐 실제로 뉴욕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었다. 검은 색 바탕에 흰색 페이트로 그려진 뉴욕의 고층건물들, 상반신만 만들어 놓은 자유의 여신상과 꼬마 자동차 붕붕을 연상시키는 뉴욕의 명물 옐로우 캡은 무한도전의 패기와 재기발랄함의 소산이었다.
무한도전이 실제로 해외 촬영을 떠났던 경우는 시즌1과 시즌2를 통틀어 단 한 번뿐이었다. '무(모)한 도전' 시절 방송된 '괌 특집'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시즌3로 넘어와서도 '하와이 특집', '발리 특집', '알래스카 특집' 등처럼 이름만 해외 특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 멤버들'과 마이너적 감수성이 충만한 무한도전이었지만 마음만큼은 가난해지지 말자는 오기가 만들어낸 특집들이라 할 수 있다. '준 하인즈 워드 특집'도 따지고 보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살겠다는 무한도전식의 끈질긴 생명력이 탄생시킨 역발상의 쇼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대중들의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실제로 해외로 촬영을 떠났던 '뉴질랜드 특집' 때부터였다. 그 뒤로 탄력을 받기 시작한 무한도전은 필리핀('무인도 특집'), 일본('입 조심 특집'), 인도('인도 특집'), 중국('황사 특집') 등지로 해외촬영을 떠났다. 보통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로 여름과 겨울 시즌을 이용해서 해외 로케이션을 기획했던 것에 비해 무한도전의 해외 촬영은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해외 촬영이 빡빡한 일정과 까다로운 미션으로 인해 출연진들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것을 생각하면, 차라리 무늬만 해외촬영인 특집이 오히려 더 편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뉴욕은 무한도전 팀이 직접적으로 여행을 떠난 적은 없었지만 아마도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도시가 아닌가 한다. 뉴욕은 박명수의 '형수님'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고 그래서 그가 지금의 아내가 된 '형수님'을 만나기 위해 실제로 여러 차례 다녀와야만 했고 또 김태호 PD에게 해외 로케이션 장소로 적극 추천하기도 했던 곳이기도 했다. 또한 뉴욕은 실생활에서는 담당 PD보다 패션 감각이 떨어지는 연예인들로 구성된 멤버들이 그 곳 상류사회의 복식과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기도 했던 장소이고('썩소 앤 시티'), 손으로 자장면을 집어먹으면서도 뉴욕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인 양 '쿨'한 모습을 보여 '쏘쿨 명수'를 탄생시켰던 선망의 도시였다.
그런 점에서 '뉴욕 특집'은 앞으로 있을 다양한 해외 촬영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날의 게스트인 토니 안이 풍기는 댄디보이 스타일과도 잘 어울리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 아니었나 한다.
Lost in New York
유재석은 무대 세트에 씌어 있는 "5th. Ave."에서 '거리'를 뜻하는 'Avenue'를 "아베"로 발음해 멤버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유재석은 무안했던 지 "이 정도는 개그로 이해해 달라"며 하소연을 해보지만 새삼스럽지도 않은 그의 영어 실력에 다들 대꾸조차 하질 않았다.
다들 그만그만 한 실력을 지닌 멤버들은 '애비뉴'(Ave.) 앞에 붙은 숫자를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또 옥신각신 주장을 펼쳤다. 하하는 "파이브 트흐"라고 발음한다고 주장했고, 유재석은 뒤에 붙은 'th' 발음은 묵음이라고 반박하며 "파이브쓰"로 읽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경우를 영어가 객지에 나와 고생한다고 했던가.
그나마 교내에서 실시한 토익 시험에서 만점을 획득한 적이 있는 노홍철이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박명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Hey, do you like music? What kind of music do you like?"[너는 음악을 좋아하니? 어떤 종류의 음악을 좋아하니?] 그러나 박명수로부터 전혀 생뚱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I'm Euro Dance."[나는 유로댄스라고 해?!] 박명수는 심지어 노홍철이 "I hate you."[나는 네가 싫어.]라고 말한 것에서 'Hate you'['헤이쥬']를 비틀즈의 'Hey Jude'로 잘못 이해하고 비틀즈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역시 영어 개그에서 단연 돋보인 실력을 선보인 사람들은 유재석과 박명수였다. 박명수가 유재석에게 "What time is it now?"라고 묻자 대답하기가 곤란했던 유재석은 본인의 손목시계를 박명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박명수는 '안 보인다'는 의미로 "No See"라고 말했고, 유재석은 "집중 See"[집중해서 보세요]라고 재치있게 대답했다. 박명수가 "Don't forget to remember."를 "돈 벌고 잊어버려라"고 해석한 것 역시 영어 발음과 한국어 간의 유사성['Don't]에 착안한 그만의 영어 개그였다.
이들이 보다 집단적으로 영어 울렁증을 드러낸 장면은 앙케트 순위 발표 순간에 벌어진 한 사건이었다. 유재석이 1위 후보였던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Do you want it?"[1등 원하세요?] 하고 묻자, 박명수는 "I want you."[나는 널 원해!]라고 대답했고, 정준하는 "I need you."[난 네가 필요해.]라고 말해 다들 1등이 아닌 유재석을 원하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 상황이 한심하면서도 안돼 보였는 지 다음과 같은 자막이 등장하기도 했다. "정말 외롭긴 외로운 모양이네... 차라리 CEO커플[C.C.]이 좋을 듯"
그런데 이 정도의 영어 실력이라면 뉴욕 한복판에 이들을 떨어뜨려 놓았을 때 전부 뉴욕판 '로스트'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운좋게 그 곳에서 교민들이나 유학생들을 마주치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이들을 영어만 사용하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궁금하신 분은 '영어 마을 특집'(39회) 편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용기를 찾아나선 겁쟁이 사자 이야기
오프닝을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뮤지컬로 꾸미느라 실크햇을 썼던 정준하는 멤버들로부터 족두리를 썼냐고 놀림을 당했다. 그는 큰 것 좀 준비해 달라고 제작진을 향해 항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그러니까 헬멧 벗고 써야지"라는 자막뿐. 그에 비해 모자를 쓴 박명수는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 '팽귄맨'을 영락없이 닮아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지난 번 '졸업특집' 편에서 백일사진 사진 속 아기 박명수가 영화 <오스틴 파워>의 '미니미'를 쏙 빼닮아 화제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박명수의 얼굴은 헐리웃에서도 통하는 얼굴이 아닐까 하고 감히 상상해본다.
그래서였을까. 박명수는 '뉴욕 특집'에서 솔로 탈출을 가장 빨리 할 것 같은 멤버 1위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1위에 등극하자 하하는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어요" 라고 말하고, 노홍철은 "미국이 기회의 땅은 기회의 땅인가 보다" 라고 말해 '뉴욕 특집' 편 최대 수혜자인 박명수를 부러워했다.
이에 감격한 박명수는 자신이 가수, 개그맨, CEO를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개척 정신의 산물임을 역설하고 나섰다. 그러자 유재석이 끼어들어 "눈도 개척을 하셨잖아요!"라고 말해 그의 흥을 깨어놓았다. 정준하는 한 술 더 떠 "이마는 간척한 것 같다!"라고 말해 그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정준하는 정식 멤버로 영입되었을 때부터 줄곧 박명수와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그가 처음부터 박명수의 대항마로서 설정된 캐릭터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미 첫 등장 때부터 '식신', '헬멧', '잘 삐치는 성격', '바보' 등 정준하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다양한 특징들이 반복적으로 화면에 비춰져 출연 이전부터 그의 캐릭터가 상당히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무한도전 제작진에 따르면 정준하는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겁쟁이 사자'와 같은 역할로 덩치는 크지만 소심한 인물이 여행을 통해 용기를 찾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임무는 '호통개그'로 제8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명수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시기의 박명수는 유재석을 비롯한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달려 들어 싸워야 할 만큼 거침없는 악의 포스을 내뿜었다. 침착한 유재석마저 박명수를 만나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데서도 알 수 있듯 이 당시 그의 포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하찮은 형'이 된 박명수는 너무나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전락해버려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긴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정준하와 박명수는 정말 사이가 안 좋은 것처럼 유난히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사레가 들었는 지 정준하가 갑자기 기침을 연신 해대자 박명수는 웃으며 "들어가!(X2)"라고 말하며 그를 내쫓으려 했다. 자막도 "아예 보내려는 박사장"이라고 표현해 그들 간의 미묘한 경쟁관계를 암시하고 있었다.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에서 정준하는 3글자 단어로 '나쁜놈'을 선택해 감정이 잔뜩 실린 목소리로 박명수의 얼굴을 보고 말해 그를 당황시켰다. 그도 마음 속으로 찔리는 곳이 있는 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노홍철은 "이건 놀란 거야! 자기를 부른 줄 알고!"라며 박명수의 속내를 예리하게 간파해서 그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또 다른 예로 박명수가 유재석에게 소속사 사장인 신동엽 앞에서는 꼼짝 못하지 않냐고 따졌던 장면을 들 수 있다. 이 때에도 정준하는 웃으면서 박명수의 입을 닫는 손짓을 하며 아무 얘기나 막 한다며 그를 가볍게 타박했다. 이 장면은 이들 간의 서로 다른 가치관과 개그 스타일의 미묘한 차이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박명수와 정준하는 설정된 캐릭터 간의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2006년 방송연예대상 시상식 이후 벌어진 뒤풀이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서로에게 존댓말을 할 정도로 깍듯한 사이였던 이들은 성격마저 소심했던 터라 사소한 오해를 원만하게 해소하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유재석이라는 훌륭한 중재자 덕택에 정준하는 위기를 극복하고 무한도전에 적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여러 차례나 인터뷰를 통해 유재석에게 감사하는 말을 전달하기도 했다.
제8의 전성기 놓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살펴보면 박명수 역시 정준하 못지 않게 소심하고 여린 구석이 있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박명수는 '3글자' 친구란 주제로 펼친 '아하 게임'에서 '김희선'을 선택해서 어떻게 김희선이 친구가 될 수 있냐는 반론에 부딪치게 된다. 그 때 박명수는 '김희선'이 연예인이 아니라 자신이 예전에 사귀었던 동명이인 여자친구였다고 주장하며 "걔한테 돈도 많이 뜯겼어요"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멤버들이 전혀 수긍하지를 않자 박명수는 한 발 물러나서 '김이선'이라고 발음했다고 발뺌하게 된다. 그러나 하하가 "신께 맹세코 '김희선'이라고 안 했다고요?"라고 물으며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고 나서고, 노홍철이 "(거짓말이면) 이 인기 다 없어져요 진짜! 거짓말인가요?"라고 추궁을 하자 박명수는 순순히 거짓말을 자백하게 된다. 그에게는 중고신인 생활 끝에 어렵게 얻은 인기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박명수는 이미 '발렌타인 데이 특집'(퀴즈의 달인 15회)에서 "방송 외적인 얘긴데, 내가 좀 급하게 인기가 왔어! 급하게 와서 불안하거든! 좀 도와줘!"라고 말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인기가 그 당시 박명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고 또 얼마나 그를 불안하게 했는 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라 하겠다.
그리고 박명수는 동료들과 첫 해외촬영을 떠났던 '뉴질랜드 특집' 편에서 얼마나 가슴이 설레고 신이 났던 지 전날 밤잠도 설쳤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박명수를 동료들은 그의 여권을 몰래 빼내어 골탕을 먹였는데, 그 때의 화면을 살펴보면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자네 초혼인가?
앙케트 순위보다도 그 선정 이유를 밝히는 시간이 더욱 흥미진진하다는 사실은 이제는 충분히 알고 있을 듯하다. 그 날 역시 재치있고 포복절도할 만한 선정 사유가 공개되었다.
우선 박명수가 솔로 탈출을 먼저할 수 있는 이유로 "경규형이 그랬다. 여자들한테 무지하게 껄떡댄다고"가 선정되어 멤버들이 모두 뒤로 넘어갈 만큼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니까 100명에게 껄떡거리면 1명 안 걸리겠냐 이거죠. 그래도 연예인인데... "라는 하하의 해설이 덧붙어져 박명수는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두 번째 이유는 4글자에 불과하지만 거의 핵폭탄급 웃음을 유발하는 반대 이유였다. "초혼인가?" 이번에도 하하가 나서서 "그래도 두 번째 결혼하면 안 떨리겠다"며 박명수를 위로하는 척하며 약을 올리자,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어버린 박명수는 "한 번 한 놈이 두 번 못하겠니?"라며 인정하고 말았다.
그 밖에 "여자친구와 닭이 물에 바지면 닭 먼저 구할 사람!", "난 이 설문 반대일세!"와 같은 것들이 박명수에 대한 반대 사유로 뽑혀 웃음을 주었다.
그에 비해 다른 멤버들은 비교적 짧고 간단한 이유들이 소개되었다. 노홍철은 "입냄새 나서 키스하기 싫을 것 같다"는 선정 반대 사유가 소개되었다. 하하는 "너무 잘 생겨서 놓치고 싶지 않다"는 찬성의견과 "그 안에선 잘 생겼지만 데리고 나가면 창피하다"는 반대의견이 소개되었다. 정준하는 "같이 다니면 얼굴이 작아보일 수 있다"는 이유가 찬성사유로 소개되었다. 정형돈은 "국민의 이모다!"라는 다소 뜬금없는 이유가 소개되었는데, 이는 '만우절 특집'(22회) 때 이종범 선수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그가 '정형돈'을 '전원주'로 잘못 알아들었던 게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별명이었다.
키스를 부르는 입술
이 날 "한 주 한 주 시청자의 인내심 한계에 도전하는 저희 무한도전 앙케트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요지의 공지사항이 여러차례 방송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주 앙케트 조사를 "키스를 부르는 입술"로 선택한 것은 정중한 사과를 무색케 했다. 멤버들은 서로에 대한 경쟁심에 눈이 멀어 심지어 입술에 �스틱을 바르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방송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면도한 자리가 시커멓게 보이는 하관을 클로즈업 해서 딸기, 포도, 방울 토마토, 오렌지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시청자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방금 전에 치킨을 먹은 것처럼 번들거리는 입술을 한 박명수가 방울 토마토를 입에 넣은 모습을 보고 노홍철이 "닭똥집 같아!"라고 그의 입술을 평가한 발언은 표현이 과격하긴 했지만 진실에 보다 가까운 게 아니었나 한다.
정준하 역시 동료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노홍철은 그의 입술을 "줘터진 입술!(X2)"이라 부르고 낯을 잔뜩 찌푸렸고, 하하는 "형만 아니었으면 때렸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동생들의 저렴한 평가에 화가 난 정준하는 "야이! 자식 같은 놈들아!"라고 울분을 표출했다.
그래도 그들은 유재석이 당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포도 한 알을 입에 넣은 유재석의 입술을 바라보던 하하는 "재석이 형이 키스는 해봤을까?"라며 측은한 듯 말했다. 그 말은 들은 유재석은 적지 않게 당황을 해서 포도알이 입에서 튀어나올 뻔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자 멤버들은 보다 가열차게 유재석을 약올리기 시작했다.
노홍철은 포도알을 오물거리는 유재석을 보며 "과일이랑 (키스) 하는 것 아냐?"라고 말했다. 그 말에 유재석의 입술이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을 정형돈이 예리하게 지적하자 박명수는 태연하게 "하도 안 쓰니까!"라고 그 대신 대답해주었다. 하하는 자기가 화가 난다는 듯이 "입이 왜 필요해! 쓸 데도 없는 거!"라며 울분을 토하듯 말하자, 그래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냐며 정형돈이 넌지시 위로하듯 말을 건냈다.
유재석은 '비디오 청년'으로 불릴 만큼 이성에 관심이 많은 건강한 청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방송과 재활치료 이외에 개인 사생활이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수 년간이나 여자친구 하나 없었다는 이유가 멤버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주된 이유였다. 그렇더라도 그 해 7월 유재석은 나경은 아나운서와 교재를 시작하게 되고, 또 일주일 간의 키스 시뮬레이션 끝에 사귄 지 3개월만에 키스를 하게 되었다니, 앞으로는 식사 기능만 몇 년째 담당하고 있었던 입술 때문에 놀림감이 될 일은 더 이상 없을 듯하다.
우리 토니가 달라졌어요
토니 안이 게스트로 초대되었던 건 이효리나 이수영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토니 안은 솔로 2집 앨범 <유추프라카치아>를 발매한 뒤 <X-맨>, <상상플러스>, <연애편지> 등과 같은 다양한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었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다면, 토니 안은 가수이자 음반제작자로 소개되었다는 점이다. 즉 토니는 'H.O.T' 출신의 아이돌 스타이자 정형돈이 소속된 T.N이란 연예기획사 CEO이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토니가 등장했을 때 'H.O.T.'의 히트곡 '캔디'를 틀어놓고 춤을 추고 '스타 청문회'를 열어 아이돌 스타로서 토니를 조명하는 한 편, 5인조 그룹 '쌩얼신기' 오디션을 열어 음반 제작자로서 토니를 부각시켰다.
토니 안을 무한도전과 연관시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사실은 그가 한 인터뷰에서 유재석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점이다. "재석 형은 프로그램을 위해 자신이 망가지는 걸 좋아한다. 타인의 의도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그걸 좋아하는 것이란 느낌을 받는다. 방송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재석 형은 여러 모로 최고의 신랑감이다"1) 이 인터뷰는 토니 안을 연예계에서 발견되는 무한재석교 신도에 포함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또 '퀴즈의 달인' 시절 '연말특집'(9회)에서 문제로 출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방면에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보여준 그였지만 '3D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낯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멤버들은 이름 뒤가 '니'로 끝나는 게스트가 초대되었다고 하자 지금은 고인이 된 유니를 연호하다가 막상 토니 안이 등장하자 대놓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를 당황시켰다. 그리고 게스트가 나와도 멈추지 않는 노래와 이미 '캔디' 삼매경에 빠져 게스트는 나 몰라라 하는 멤버들 때문에 토니 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마침내 뭐가 이리 서두가 기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명수는 심지어 토니를 밀치고 자신이 중앙으로 나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토니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 지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박을 하나 들고오더니 그것으로 유재석의 머리를 내리쳐서 'MC유' 본연의 모습을 되찾도록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또 다시 '캔디'가 흘러나오자 다시 멤버들 전체가 이성을 잃고 춤을 추기 시작했고, 토니도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그들 사이에 끼여들려는 적극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이란 야생의 무대에 꽃미남 토니는 적응하기 시작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에서 토니 안은 연속으로 피박을 당해서 자존심에 먹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금이 간 '토사장'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제2의 H.O.T.를 선발하는 특급프로젝트가 마련된다. 문제는 너무나 수준 미달의 외모를 가진 지원자들만 응모를 했다는 점이다.
5인조 그룹 쌩얼신기 오디션 현장
제2의 H.O.T.를 뽑는다고 하자 하하가 먼저 "난 장우혁!"이라고 말해 버린다. 그 뒤를 이어 박명수는 강타를, 노홍철은 토니를 각각 선택했다. 다급해진 정형돈은 신혜성을, 정준하는 정원관을 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그러나 하하가 그 사이에 끼여들어 정형돈은 홍금보로 부르고, 정준하는 바야바라고 불러 아름다웠던 그들의 꿈을 산산조각 내놓는다. 하하는 이 시절부터 정형돈을 꾸준하게 홍금보 닮았다고 놀려왔는데, 하하의 꾸준함도 놀랍지만 대중들에게 그 사실이 그다지 인상깊게 각인되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이다.
이 장면은 어차피 꽁트가 주가 되었던 부분이긴 하지만 방송 외적으로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되기도 한다. 토니 안과 유재석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화면 오른쪽에 모여 오디션 참가자로서 대기를 했는데, 노홍철은 자신의 팀이름으로 '천재지변'을 하겠다고 하고, 정준하는 '풍지박산'이 어떻겠냐고 상의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아무래도 대본에 의존하지 않고 즉석으로 꾸며지는 무대이다 보니 출연자들 간에 대략적인 약속이 이루어져야 할 테지만 그 장면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들어난 것은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와 유사한 장면은 앞에서도 발견된다. 명사형으로만 단어를 선택하기로 약속해놓고 박명수가 '돈있니'를 공격단어로 선택하자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멤버들의 성화에도 굴하지 않고 박명수는 '돈있음', '돈좀줘'와 같은 단어들을 연거푸 늘어놓다 담당 PD의 제재가 있었는지 머쓱한 표정이 되어서는 낮지만 정중한 목소리로 "미안합니다"라고 말한 뒤에 게임을 재개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아무리 '리얼 버라이어티 쇼'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은 편집 과정에서 충분히 걸러질 만한 장면들이 아니었나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출연자들이 연예인이라는 신분을 잊고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상품으로 내놓은 참치 통조림을 뜯어 과자를 젓가락 삼아 먹는 장면이나, 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사석에서나 주고받을 만한 농담을 하는 장면들은 쇼의 재미를 위해 삽입될 만한 장면들이고 또 출연자들 역시 그러한 장면들이 방송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는 행동들이기 때문에 쇼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두 장면들은 부정적 의미로 "쇼는 쇼일 뿐이다"라는 명제를 반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사실은 짜여져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라 하더라도 또 그가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담당 PD와 출연자 사이에는 엄연한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김수로의 이중몰카' 편에서 유재석이 다급한 나머지 담당PD의 이름을 편하게 부르는 장면이 방송되기도 했지만, 그건 유재석 정도나 되는 연예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장면들을 이질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은 시청자나 출연자 입장에서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건 무한도전이 쇼와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뒤엉킨 쇼라는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었다는 반증이거니와 무한도전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를 쇼의 일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명수는 '특전사 특집'에서 보다 편안한 자세로 "진짜 악마는 태호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그가 그만큼 담당 PD와 친분이 쌓였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김태호 PD가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생겼을 만큼 연예인화 되고 쇼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평균 연령 30세가 훌쩍 넘는 이상한 아이돌 그룹의 심사는 계속 되었는데, '서른 갓 넘어 서른 여섯'인 정준하는 "뭐 한 번 시켜봐 주시면 다 하겠습니다"라고 굳은 의지를 불태워보지만 유재석과 토니 안은 그런 그에게 자장면 하나와 짬뽕 하나를 "시키"는 것으로 정준하의 오디션은 끝나고 만다.
어색한 겸손함을 보여준 박명수는 춤은 합격점을 받았지만 이승철의 성대모사를 하며 "밖으로 나가버리고"를 부르는 순간 토니로부터 "예,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격분한 박명수는 토니에게 "너 나이 몇이야? 어린 친구가 돈 좀 있다고 말이야! 아버지 때문에 돈 있는 거 아니야! 네가 번 거야? 건방진 사장!"이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만다.
유재석은 착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엘리베이터, 징검다리, 번지점프, 불구덩이, 계단, 낮은 포복 등 온갖 장애물을 건너 어렵게 면접장소에 도착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 면접은 이미 끝나 있었다. 다시 다음날 면접을 보게 된 유재석은 솔리드의 '천생연분'에 맞춰 랩을 시범 보이려 했지만, 리듬을 타기 위해 몸을 과하게 흔들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는 지 랩을 시작하기도 전에 토사장으로부터 "춤 잘 봤네"라며 퇴짜를 받게 된다.
뉴욕판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뉴욕 특집'답게 뉴요커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연출하기 위하여 3명의 외국인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해서 열연을 펼쳤다. 그들을 처음에 발견했을 때, 출연자들은 모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자 익숙한 얼굴이 발견되기라도 했는 듯 노홍철은 "<서프라이즈>에서 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미있던 건 적은 출연인원으로 다양한 장면들을 연출하려다 보니 우스꽝스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단독으로 무대를 배회하던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는 다음 순간 서로 눈이 맞았는 지 다정한 연인이 되어 팔장을 낀 채 거리를 활보했다. 그러다가 여자 뉴요커는 어느새 백인 남자와 짝을 이루어 다정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정형돈이 "이러다간 남자 두 분이 커플이 되서 나올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자,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정말 남자커플이 등장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외국인 출연자들은 쌍박 파티 때 모두 함께 참여해서 멤버들과 춤을 추기도 했다.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이러한 느슨함, 안과 바깥의 구분 상실, 출연자와 제작진, 주연과 보조출연 간의 경계 해체 등은 쇼에 인간적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연극이 무대와 객석 간의 엄격한 구분을 통해 허구와 현실의 구분을 강요하고 있다면, 우리나라의 전통적 마당극은 관객들과 동등한 눈 높이에서 펼쳐질 뿐더러 관객들이 무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개방적 형태를 띄어왔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와 흥겨움은 마당극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한도전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시청자들과 함께 호흡하려는 자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날 출연한 외국인 여성 출연자를 유심히 살펴보면 어디서 많이 보았던 인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던 바로 라리사였다. 처음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인물이 시간이 흐른 뒤에 눈에 띄게 되는 건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같다. 그것은 마치 연예인들의 데뷔 초기 활동 모습을 보면서 저게 그 사람이었어! 하고 깨달으며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또는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던 물건을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경험이야말로 무한도전을 복습하면서 얻게 되는 즐거움의 본질이 아닐까.
by ddolappa
1. 토니안, "탁재훈은 천재, 유재석은 좋은 사람"
2. 이 날 하하는 정준하와 노홍철을 상대로 B-Boy 댄스를 보여주었다. 이미 <X-맨>
3. "좋아 죽는 죽마고우" - 이 움짤은 H.O.T의 '캔디'에 나오는 춤을 따라하는 노홍철과 하하의 모습을 담고 있다. 물론 '뉴욕 특집'의 한 장면이다.
4.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해 유명해진 라리사. 그 뒤에도 라리사는 한 번 더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된다. 그러나 엑스트라로서가 아니라 스쳐지나가듯 나오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고는 여간해서 알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녀가 또 모습을 드러내는가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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