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무한도전 History-퀴즈의 달인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3회(2006.3.11.)

ddolappa 2008. 5. 7. 20:01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3회(2006.3.11.)

 

 


'비난특집'은 왜 레전드급 에피소드인가?


흔히 '비난특집'이라 불리는 '새학기 특집'은 무한도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레전드급 에피소드로 분류된다. '원조호통' 이경규와 '신흥호통' 박명수가 시종일관 팽팽한 대결을 펼치며 보여주는 아슬아슬한 설전이 방송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가에서 국장급 대우를 받는다고 알려진 이경규는 '지키려는 자'로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후배들을 상대로 때로는 권위와 호통으로, 또 때로는 비굴함과 아부로 무한도전의 거친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다. 반면에 떠오르는 신흥세력 박명수는 '빼앗으려는 자'로서 선배의 아성에 야심만만한 패기로 맞상대하며 자신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이경규의 권위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개그계 8년 선후배 사이인 이경규와 박명수의 갈등과 대립이 겉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들의 대결은 보다 많은 사실들을 함축하고 있다. 그들의 경쟁 구도는 기존의 쇼 오락과 새로운 형태의 쇼 오락 간의 충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경규는 '놓치고 싶지 않아!'를 외치며 정신사납게 행동하는 하하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몇 차례나 보여준다. 급기야 이경규는 시상 도중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하하에게 발길질을 가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한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이경규가 느꼈던 혼란과 낯설음은 당시 일반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을 외면했던 이유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이 발길질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경규가 선보인 허세만 남은 중년남성의 캐릭터는 '삼팔선'(38세 퇴직),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육이오'(62세까지 일하면 오적)라는 말들이 떠돌던 시대적 상황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무한도전이 속한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인 '이미지 서바이벌'을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호시탐탐 무한도전에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고정출연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가정을 부양해야만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인데, 그래서 그의 비난과 호통은 박명수의 그것에 비해 큰 울림을 낳고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이경규가 만나서 보여주고 있는 프리스타일의 개그와 유희는 무림의 고수들이 만나 겨루는 합처럼 일정한 법칙이 없는 듯하면서도 끊김없이 창의적인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그들의 거침없는 언행이 막말방송으로 평가절하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데, 기존의 질서와 가치체계를 교묘히 전복시키면서도 결국에는 그 한계를 유지하는 데서 나오는 그 아슬아슬함이 쇼의 쾌감을 극대화하면서도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풍부하게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S본부의 패착


여기에 S본부의 <슈퍼 바이킹>과 <라인업>으로 무한도전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온 상대가 이경규였다는 점 역시 이들 간의 역사적 만남에 의미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이경규와 박명수의 대결은 이경규와 유재석 간에 벌어질 대결의 전초전이자 일종의 대리전이라 할 수 있다. 유재석은 박명수와 달리 이경규에게 시종일관 후배로서 깍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의 태도에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무한도전이라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군주로서의 품위가 묻어나고 있다.


유재석이 힘이 들긴 했지만 이경규의 파상공세를 두 번이나 방어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누가 현재의 쇼 오락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유재석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몰래 카메라>나 <이경규가 간다!> 등 이경규가 진행해온 프로그램들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MC가 중심이 되는 방송에서 성공을 거두어온 인물이었다. 반면에 유재석은 <동거동락>이나 <X-맨>과 같은 다수의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구심적 역할을 하는 플레잉 코치식 진행에 능통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경규가 유재석에 도전하기 위해 선택한 <슈퍼 바이킹>이나 <라인업>은 유재석에 더 적합한 형태의 쇼 오락이었다는 점에서 이경규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두 진행자의 우열을 논할 문제가 아니라 서로 상이한 스타일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진짜 문제라 할 수 있는 점은 이경규가 하하나 노홍철이 보여주는 새로운 예능의 트렌드에 낯설어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가 새로운 트렌드를 읽는 데 실패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비록 그가 무관의 제왕 신정환을 영입해서 나중에라도 당대의 최신 경향을 쫓아가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하와 비슷한 역할을 해줄거라 기대하고 붐을 <라인업>에 영입했지만 박상혁 피디가 김태호 피디가 아니듯 붐은 하하가 아니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경규가 무한도전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S본부 예능국의 무능력과 조급함에서 찾는 것이 보다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10억이나 들여 초대형 세트를 짓고도 <명랑 운동회> 수준의 쇼를 보여주거나 일본에서 한 때 유행했던 포맷을 수입해서 국내의 예능 트렌드에도 뒤쳐진 <작렬! 정신통일>을 제작한 것은 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시청률이 고전을 면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라인업>을 30회만에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통해 M본부가 무한도전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해나간 것과 큰 대조를 이룬다. 방송사가 시청자들의 취향에 항상 반 보 정도 앞서 나가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쇼에 시청자들이 적응을 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미덕을 갖추게 될 때 대중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브랜드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공포와 낯설음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등장한다. 옛보스 김양길(명계남 분)이 현재 잘 나가는 건달 보스 배태곤(문성근 분)을 그의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주고 위협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배태곤의 충실한 부하인 '막동이'(한석규 분)는 존경하는 보스와 조직을 지키기 위해 김양길을 살해하게 되고, 막동이는 다시 자신의 두목에 의해 배신을 당해 죽게 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 하게 된다.


내가 이 장면을 떠올린 이유는 정형돈 때문인데, 그는 시종일관 이경규의 곁을 지키며 선배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는 박명수를 나무랄 뿐 거의 아무런 역할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형돈은 M본부의 <웃는 Day>,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대단한 도전', '상상 원정대', K본부의 <그랑프리 쇼 여러분> 등에 이경규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고, 개그 프로그램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넘어오며 초기에는 무리한 애드리브를 구사해 이경규에게 크게 혼이나서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정형돈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이경규를 만나면 마치 배태곤이 김양길을 대해듯 그에 대해 두려움과 존경심이 뒤섞인 감정을 내비치곤 한다.


이는 박명수를 비롯한 다른 무한도전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경규가 등장을 하자 정형돈, 하하, 노홍철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전원 뒷걸음질 치게 된다. 이 장면은 지난 주처럼 이효리가 출연하지 않고 이경규가 출연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발을 희화화 하고 있지만 그들이 초반에는 이경규에게 변변한 말조차 제대로 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거리감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박명수 역시 선배 이경규에 대한 이런 공포와 존경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해피 투게더>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은 이경규, 이승철, 이경실, 이영자 등 유독 '이씨' 성을 가진 선배들을 무서워 한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박명수는 '비난특집'에서 이경규를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연속 2피박에 화가 난 이경규는 분노를 내뿜으며 분을 삭히지 못하다가 애꿎은 박명수에게 화풀이를 하게 된다. 박명수는 그런 이경규를 피해 슬금슬금 뒷걸음치다가 세워놓은 세트에 발이 걸려 촌스럽게 넘어져서 멤버들의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경규 역시 무한도전 멤버들의 오버액션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신기한 듯 쳐다보는 장면이 자주 노출된다. 그는 특히 하하를 제일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바라본다. 그는 곁에 있는 정형돈에게 '쟤는 도대체 왜 저래?'하고 묻기도 하고, 순위 발표 직전의 긴장감을 떨치기 위해 하하가 '엄마 보고 싶어! 엄마 보고 싶어!'하고 외치자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엄마 보고 싶으면 엄마 오라 그래!'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기도 한다. 하하가 이경규의 눈에 줄곧 거슬렸다는 사실은 그가 '가만히 좀 있어라!'라고 외치며 시상식 도중 몸을 흔들고 있는 하하를 발로 걷어찬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폼나게 발표하려는데 건들거렸다는 것이 이유이긴 하지만 시끄럽고 소란스러울 뿐 도대체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하하의 리액션을 그가 계속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는 것이 감추어진 속내일 듯하다.


이처럼 이경규와 무한도전의 첫 만남은 공포와 낯설음이 교차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를 깬 사람은 바로 박명수였다. '제8의 전성기'를 열어가던 박명수는 대선배 이경규 앞에서 기죽지 않고 비난 대결을 펼친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혹은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무한도전 내에서 이경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는 점, '호통'을 트레이드로 내세우는 박명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조호통'인 이경규를 반드시 넘어서야만 한다는 점, 그가 호통개그를 통해 대중들로부터 얻은 인기에 힘입어 자신의 개그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여기가 자신의 홈그라운드인 무한도전이었다는 점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경규는 무한도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경규는 등장하자 마자 자신이 출연하기 전까지 40분이나 걸렸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박명수는 그것이 요즘의 추세라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직언을 한다. 박명수의 도발에 발끈한 이경규는 스태프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2박 3일 녹화를 하자며 엄포를 놓는다. 하지만 박명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해봐요! 그러면!'이라고 호통을 쳐서 이경규가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게 만든다.


이렇게 시작된 이경규와 박명수의 신경전은 팽팽하게 이어진다. 유재석이 이경규에게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이 걱정된다고 말하자 이경규는 연습을 많이 해서 걱정이 없다고 허세를 부린다. 그러자 박명수가 끼여들어 두 글자 단어 '두유'를 해보라고 다그친다. 이경규의 옆에 있던 정형돈은 선배에게 왜 이리 거칠게 구냐고 오히려 박명수를 말린다. 이경규는 어이가 없는 웃음을 웃으며 '뭐 약을 잘못 먹었나?' 라며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며 이효리 대신 자신이 나온 것이 그렇게 역정낼 일이냐고 묻는다. 그는 '이효리 불러줘요? 전화하면 바로 와!'라며 멤버들에게 허세를 부린다. 멤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이효리에게 전화를 거는 척하던 이경규는 꺼냈던 전화를 주머니 속에 도로 집어넣으며 '끊어버렸네'라며 쑥스러운 듯 한 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이경규의 호통은 허세에 가깝다. 박명수의 호통이 밑도 끝도 없는 어거지에 가깝다면, 이경규는 대단한 힘이 있는 척하다가 스스로가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려줘서 자신의 호통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는 박명수가 힘도 없고 지식도 없는 '하찮은 형'이기 때문에 그의 호통이 우습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반면에 김구라의 호통과 막말은 상당한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과 달리 톡 쏘는 듯한 신랄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김구라의 폭언은 독설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유재석은 '자 과연 이경규씨가 거친 저희 무한도전에서 살아남으실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며 오프닝을 정리한다. 이경규는 본인의 인생 자체가 '3D 인생'이라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진 예고 화면에서 이경규가 격분해서 고함을 지르고, 박을 맞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그가 무한도전에서 겪게 될 험란한 사건들을 암시해 준다.


그런데 '과연 원조호통 이경규는 방송계의 정글 무한도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라는 자막은 이중으로 읽힐 수 있는 것인다. 그 자막은 '이경규가 무한도전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의 의미로 읽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이경규가 무한도전을 이기고 예능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라인업>의 폐지 이후 예능계 대부로서 이경규의 굳건했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는 최근의 여론은 후자의 물음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난특집'은 이경규의 무한도전 도전기로 시청할 수 있으며, 개그맨으로서 그가 지닌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칭찬과 비난 사이


이경규는 젊은 시절 자신이 주연, 섭외, 각본, 각색, 제작기획, 감독을 모두 맡은 영화 <복수혈전>을 언급하며 자신의 인생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명수 역시 도전 정신의 산물이라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박명수씨의 경우도 사실 도전정신이 없었으면 여기 있지를 못해요. 일찍이 방송국에서도 외면을 했거든요. 외면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의 도전정신으로 오늘날의 박명수씨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도전정신은 너무 많이 알면 도전을 못합니다. 대체적으로 좀 떨어지는 친구들이 엄청난 도전을 합니다."


칭찬과 비난을 오고가는 이경규의 말을 듣던 박명수는 콧웃음을 한 번 치더니 이경규에게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좋아요, 좋아요. 이제 제 위치를 어느 정도 인정하신 것 같은데 말씀 좀 심하게 하십니다. 어차피 저도 이경규씨 덕 보고 산 거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말씀 드리기는 뭐 하지만 후배들이 클 수 있도록 자리를 좀 양보해줘야 돼요. 후배 양성을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본인 양성하지 마시고."


박명수의 비난에 이경규는 충격이 서서히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는지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다시 정신을 차린 이경규는 "제가 후배양성을 합니다! 박명수씨와 비슷한 애를 키워가지고 확 보내버릴 테니까!"라며 '박명수 닮은 꼴 육성책'을 내놓아 이경규의 은퇴를 내심 바랬던 박명수를 오히려 당황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이경규와 박명수는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잠시 동맹을 맺기도 했다. 노홍철이 개그맨으로서 이경규의 자존심을 건드리자 발끈한 이경규는 노홍철을 맹비난하게 된다. 이 틈을 타 박명수는 노홍철을 가리키며 '이 친구는 근본없는 친구예요!'라고 이경규의 편을 들고 나서면서 비난스승과 비난제자는 서로 악수까지 나누는 화해무드가 조성된다. 평소 노홍철을 '길바닥 출신'이라고 못마땅하게 여겨왔던 박명수는 자신과 유사한 논법으로 노홍철을 공격하는 이경규의 비난에 신이 났던 지 그에게 넙죽 절까지 하며 자신이 'MBC 공채 4기' 후배라고 밝히게 된다. 그러자 이경규는 흐뭇한 표정으로 '뿌리가 있는 친구예요!'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이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여기까지가 전부였다. 박명수가 이번에는 유재석에 대해 '얘는 타방송!'이라고 지적하자 이경규는 멤버들을 일일이 험담하는 박명수를 못마땅하게 여기게 된다. 결국 이경규가 내뱉은 한 마디 '얼굴 좀 치워! 주말용 얼굴이 아니야!'로 인해 위태롭기 짝이 없던 그들의 동맹도 끝나게 된다. 이후 '주말용 단독 얼굴이 아니다'라는 이경규의 비난은 박명수를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히게 된다.

 


'Eye of 살쾡이'의 탄생


이경규는 '원조호통'으로서의 면모 뿐만 아니라 인생의 대선배로서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는 "여자를 잘 보호한다는 것은 말이죠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자와 노는 건 쉽습니다만 여자와 같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결혼관 혹은 여성관은 이미 2004년 9월 4일에 방영된 <유재석과 김원희의 놀러와>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아내'라는 주제로 펼친 이 날의 토크쇼에서 이경규는 거침없는 입담으로 당당히 토크왕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 방송에서 보여준 그의 결혼관은 <불량아빠클럽>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이경규가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과 같은 뛰어난 진행자들에 비해 앞설 수 있는 자원 중 하나는 그의 풍부한 인생경험에서 나온 삶에 대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중년 남성들의 수다라는 영역을 개척했던 <불량아빠클럽>을 폐지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구라와 김창렬은 그 프로그램을 통해 공중파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유세윤은 예능 버라이어티에 안착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지만, 이경규는 새로운 토크쇼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었던 가능성을 놓쳐버렸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명수는 인생의 선배이기도 한 이경규에게 결혼 적령기를 지난 유재석과 자신은 어떤 여자를 만나야 되는지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계속해서 적개심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던 박명수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줄 이경규가 아니다. 그는 박명수에게 "내가 봤을 때는 혼자 사는 게 좋아요! 죽을 때까지 닭장사나 하면서!"라고 말해 비난 개그의 지존을 놓고 한 치의 물러섬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자 박명수는 "어차피 저는 미래 없어요! 선배님한테 개그 배우면서 남은 게 없어요! 남은 게! 이 자리가 술자리였으면 난리났어요 지금!"하며 맞호통을 치게 된다. 그러면서 '그게 말이죠, 아 이게 말이죠'하며 '양심 냉장고' 시절의 이경규의 말투를 흉내내서 그의 전투력을 무력화시킨다. 결국 이경규는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제가 고양이인 줄 알고 키웠어요! 알고 보니 살쾡이야, 살쾡이! 호랑이는 두려워하죠, 살쾡이는 야비하거든!" 그래서 이경규를 노려보던 박명수의 매서운 눈은 그 이후로 "살쾡이의 눈"으로 불리게 되었다.

 


Nature-born Comedian


이경규의 풍부한 경험과 재치가 가장 돋보였던 장면은 박명수의 선정 이유에 대해 부연 설명을 덧붙이던 장면이었다.


#1. 박명수는 얼굴이 무기다.


- 이경규 : 무기라기 보다도 흉기다. 무기는요 권총, 대포 이런 걸 무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칼, 나이프 등 지저분한 것들은 흉기라고 부릅니다.

- 박명수 : (분노를 터뜨리며) 흉기에 한 번 찍혀 보실래요?

- 유재석 : (박명수를 말리며) 직계 수제자시잖아요.

- 박명수 : 얼마 못 배웠어요.

- 이경규 : (개그의) 바탕이 없는 거예요.

- 박명수 : 바탕 없는 놈에게 찍혀 보세요!


#2. 박명수는 긴장하면 침을 흘려 불량배들의 전의를 상실하게 한다.


- 이경규 : 길거리에서 개를 봤을 때 개가 그냥 있으면 덜 무서워요. 그런데 개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으면 '오! 무서워!'하는 차원이라니까!

- 박명수 : 침 흘리는 개한테 물려 보세요! 꾹!

- 이경규 : 짖는 개는 물지 않으나, 침 흘리는 개는 문다!


#3. 애초에 보호해줄 여자친구가 없다.


- 이경규 : 이것은 잘못된 이야기예요. 엄청나게 껄떡거립니다. 여기도 껄떡거리고 저기도 껄떡거리고.

- 박명수 : (미소를 지으며) 아, 저는 미혼입니다.

(박명수가 입을 열자 무언가 찔리는 게 있는 듯 바로 꼬리를 내리는 이경규)

- 이경규 : (박명수를 달래며) 내가 돈 줄게 돈 줄게.

- 박명수 : 이거 터뜨리면 가정 무너집니다. 노래 하나 하세요!

- 이경규 :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이경규는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해설로 보는 내내 아슬아슬한 느낌이 들게 하지만 어처구니 없는 교훈으로 잘 포장해서 교묘히 방송심의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두 번 정도 공격을 한 다음 한 번 정도는 자신이 당하는 자가 되어서 밉상으로 낙인 찍히지 않는 고도의 균형감각 또한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쏟아내는 기상천외한 입담과 능수능란한 처세술은 그가 왜 아직도 젊은 후배들과 함께 현역으로 남아 있는가를 확인시켜준다. 그는 거의 동물적 감각으로 방송에서 허용되는 한계점을 찾아내고 그 극한까지 몰고간 후에 위험을 감지하게 되면 꼬리를 내리고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춰 위기를 모면하는 지혜를 경험을 통해 체화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경규는 간혹 진행자로 나설 때보다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그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하는데, 이는 그가 태생적으로 개그맨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호동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이경규, 자존심에 금이 가다


천하의 이경규도 개그맨으로서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수모를 겪게 되는데, 그건 '우상이 다 같은 건 아니잖아요!'라는 노홍철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이경규가 내뿜는 카리스마에 눈치만 살피던 무한도전 멤버들은 박명수의 치열한 투쟁정신에 차츰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2위 발표의 순간에 유재석의 '뻥이야!' 공격을 당한 정형돈은 무슨 '뻥이야'를 이렇게 늦게 하냐며 역정을 내게 된다. 이경규는 조작이라며 음모설을 제기해서 정형돈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이 때 정형돈은 정색을 하며 '저 이거 고정이거든요!'라고 말해 이경규를 무색하게 만들더니 박명수는 기회를 포착하고 '선배님 들어가세요! 가고 싶으면 들어가세요.'라고 말해 그를 내보내려 한다. 위기를 직감했는 지 이경규는 비굴하게도 자리에 버티고 앉아 불타는 고정출연의 의욕을 내비친다.


- 유재석 : 선배님, 도대체 왜 이러세요?

- 이경규 : 나 이럼 진짜 삐친다!

- 하하 : 그건 제 콘셉트예요! 죄송해요!

- 이경규 : 그건 20대 삐치는 거고 40대가 삐치면 오래 간다!

- 하하 : 이경규 선배님 위에서 보니까 얇아진 하체가 정말 슬퍼 보여요!

- 유재석 : (하하를 만류하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의 우상이세요! 저희들의 우상이십니다!

- 노홍철 : (지나가는 말투로) 난 우상 아니었는데! 몇 번 웃긴 했어.

- 이경규 : (울컥한 표정으로) 아니, 저 친구는 케이블에 있지! 여긴 왜 와서! 얼굴이 케이블 얼굴이야!


버릇없는 '금발청년' 노홍철의 불의의 일격에 당한 이경규는 놀랍게도 박명수가 평소에 하던 말 그대로 노홍철을 비난한다. 그러나 그의 수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하하 : 나도 솔직히 그렇긴 해! 난 주병진 아저씨!

- 노홍철 : 심형래.(X3) 훨씬 웃겨!

- 이경규 : (온 몸에 화살이 꽂히며 대폭발한다) 아니 내가 웃긴다고 얘길했어! 뭘 했어! 내가 잘 했다고 얘길 했어?

(불같이 화를 내는 이경규에 아랑곳 하지 않고 철이 없는 노홍철과 하하는 '영구 없다! 띠리리 띠리리'하며 심형래의 개그를 흉내낸다.)

- 노홍철 : 뚜렷한 게 없어! 눈알만 굴려!(X3)


화가 난 이경규는 '아, 이렇게 긴장감 없는 방송은 처음이야!'라며 프로그램까지 비난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믿었던 유재석에게 상처를 입게 된다.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이 시작되기 직전 박명수는 이경규를 비웃으며 '오늘 방송 일찍 끝나겠네요'라고 말하게 된다. 이때 이경규 옆에 CG로 그려넣은 그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나무에 한 줄기 찬바람이 지나간다. 유재석은 '골든박 내리 5박 맞고 끌날 수도 있겠네요', '오늘은 뭐 자리도 옮기지 말죠.', '엉겅퀴로 5번 해서'라며 연타 공격를 가해 이경규의 자존심을 짓밟아놓는다.

 


웃음에 담긴 한 방울의 눈물


'꺼꾸로 말해요 아하'게임이 시작하기 직전 유재석은 이경규를 포함해서 '신화' 멤버와 숫자가 동일하다고 말하자 이경규는 대뜸 '저는 신혜성이요'라고 말해 일동을 '얼음' 상태로 만든다. 이경규는 아내는 신혜성을, 딸은 이준기를, 자신은 김태희를 좋아는데, 눈높은 가족 탓에 자신은 피곤하다고 말을 한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박명수는 자신의 '화목론'으로 이경규를 옭아매려 하지만 불똥은 오히려 유재석에게 튀고 만다.


- 박명수 : 유재석씨 어머니는 어떤 연예인 좋아하세요?

- 유재석 : 저희 어머니는 김흥국씨 상당히 좋아하십니다.

- 박명수 : 엄청나게 화목하지 않네. 집안이 엉망이구만!

- 유재석 : (발끈하며) 김흥국씨가 저희 집에 와서 털 한번 날린 적 없는데 왜 저희 집안이 어두워요?

- 박명수 : (호통을 치며) 흥국이형 피부가 어두워 그러면 집안이 어두운 거야! 태진아 좋아하면 밝아, 흥국이형 때문에 어두운 거야!

- 유재석 : 아니 왜 김흥국씨는 어둡고, 태진아씨는 밝아요.

- 박명수 : (버럭 화를 내며) 어두우면 어두운 거야!!

- 이경규 : (박명수와 유재석의 말싸움이 귀찮은 듯) 그냥 어둡다고 해. 어두워 시커매.


이경규가 자신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한 박명수는 신이 나서 이번에는 유재석의 '비디오 취미'를 건드린다. '아하' 게임에 잔뜩 긴장해 있던 이경규는 만사가 귀찮은 듯 '비디오 매일 보다 말라 죽어!'라고 말해 유재석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자신만 당하게 된 게 억울한 듯 유재석은 이경규에게 비디오를 시청하느냐고 묻는다. 이경규는 자신은 문은 열어놓는 대신 소리는 줄여놓고 비디오를 본다고 대답한다. 결혼까지 한 선배의 대담한 고백에 당황한 유재석은 그런 말씀을 하셔도 가정에서 괜찮으시냐고 오히려 걱정한다. 이경규는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한다. "남편이 먹고 살기 위해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도 가족을 먹여 살리는구나 이렇게 생각해."


이 한 마디에 흥이 올라 있던 스튜디오는 갑자기 숙연해진다. 가족들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는 지 이경규가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가 딸한테 얘기했어요. 아빠 이제 '이미지 서바이벌' 하고 무한도전 두 개 다 한다고." "그렇다고 내가 두 개 다 한다고 돈을 많이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돈에 두 개 하겠다는 거야! 이제 막 팔겠다는 거 아냐! 그럼 받아들여줘야지 명수야! 너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프로그램에 꼭지 3개 하면서 돈 똑같이 받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니까! 남의 일이 아니야!" 회한이 가득 담긴 한 가장의 호소에 그만 '살쾡이' 박명수도 눈물을 보이고 만다.


물론 이경규가 흘리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처럼 거짓 눈물이다. 그의 장황한 연설은 무한도전에 은근슬쩍 합류하려는 속셈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무거운 책임감과 '사오정' 세대의 고뇌는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고 또 이경규의 연기가 워낙 리얼했던 탓에 멤버들 역시 속아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코미디언 이경규의 놀라운 점은 이처럼 감동과 웃음을 황금비율로 혼합한 뒤 그것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찰리 채플린이 우스꽝스러운 동작에 삶의 페이소스를 담아 자신의 코미디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듯이 이경규는 웃음 안에 슬픔, 분노, 회한, 비굴함, 공포 등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어 단순히 웃기기만 한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경규는 코미디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웃음이 즐거움이라는 하나의 요소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삶 속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이주일 등이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희극의 거장들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웃기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울음이 나오지만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삶의 본질적인 '쌩얼'에 가까운 것들이라면 이경규는 웃음의 핵심적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경규의 파란만장한 아하열전


'아하 게임'을 우습게 여겼던 이경규는 연속으로 2피박을 맞자 들끓는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급기야 하하와 노홍철은 이경규를 골리는 척하면서 그를 도와주게 된다.


- 하하 : (큰 목소리로) 홍철아, 너 '지우개' 해! 그래야지 선배님이 쉽지! '개우지' 하면 되겠다.

- 노홍철 : (큰 목소리로) 자존심 상하지 않을까?

- 하하 : (큰 목소리로) 에이, 귀속말인데 들리겠어. '지우개' 해!

- 이경규 : (중얼거리며) 개우지, 개우지, 개우지.... 다른 거 하지마! 너희들한테 부탁하는데 앞에서 '지우개' 하지마! 앞에서 하면 안 돼.(X2) 사고난다.


그러나 이경규는 '개우지'만 생각하다 자신의 순서를 잊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는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아, 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다음 게임에서 유재석이 냉큼 '지우개'를 먼저 말하자 정형돈의 '먹물통' 공격을 막아냈음에도 공격단어를 떠올리지 못해 또 피박을 당하게 된다. 유재석의 배신에 화가 난 이경규는 그를 찾아가 응징을 하고 ' 나 안 나와! 다시는 부르지 마! 이 코너 고소해서 없애버리던지 해야지, 이게 뭔 짓이야! 개우지 하기로 했잖아!'라며 독설을 퍼붓게 된다.


이경규는 하하가 피박을 맞자 잔뜩 신이 나서 '얘들아 가자!'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다 벌렁 넘어지기도 하지만 콧소래까지 불러가며 완전히 심취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여박식에서 모두 박이 부러지는 바람에 때려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후에도 그는 연습만이 살 길이라며 들리는 모든 단어를 뒤집어 보는 연습에 몰두한다. 그는 심지어 "'양심 냉장고' 너무 한 거 아니야?"라는 박명수의 비난마저 뒤집어 '고장냉심양'이라고 발음하는 순발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결국 이 날의 쇼는 이경규가 스미스 요원들로부터 골든박을 맞는 것으로 성대히 막을 내리게 된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