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1> 초심 따윈 필요없어!
무한도전 107회 (080531) : The Classic 기네스 도전
엉뚱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도전의 역사
기네스(Guiness) 맥주 회사를 창립한 기네스 백작의 4대손인 휴비거 경은 유명한 사냥광이기도 했다. 그는 어느날 친구들과 사냥을 나섰는데 물떼새의 일종인 '골드 플로버'(골드 프로비)가 너무 빨라 단 한 마리도 사냥을 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은 그를 놀리게 되었고, 화가 난 휴비거 경과 친구들 사이에서 '유럽에서 가장 빠른 새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싸움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휴비거 경은 플로비가 얼마나 빠른 새이며, 또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 어떤 새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휴비거 경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진기한 기록들을 한 군데 모아 놓은 책이 있다면 잘 팔리지 않을까. 그래서 그는 신기한 기록들을 수집하는 전문가로 알려진 맥휘터 형제를 찾아가 자신이 구상한 책의 제작과 편집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1955년에 최초로 발간된 책이 바로 기네스 양조회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기네스북>(The Guinness Book of World Records)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 중 하나인 이 책은 휴비거 경의 엉뚱한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세상의 빛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한도전의 무모한 도전의 역사도 엉뚱한 호기심이 빚어낸 도전의 역사이다. 사람이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면 이길 수 있을까? 지하철과 100m 달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 오리배를 타고 유람선을 이길 수 있을까?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과제들을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연예인들이 모여 몸으로 직접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때로는 감동을 주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의 첫 시작이었다.
'무모한 도전'을 추억하며
무한도전이 독립 프로그램으로 분리된 이후 '미셸 위 특집'에서 처음 등장한 '무한도전 Classic'이란 명칭은 그 이전의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 시즌2'를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이다. 보다 세분화시키자면 '무(리)한 도전 시즌2'는 '무(리)한 도전'과 '퀴즈의 달인'으로 이루어져 있고, '퀴즈의 달인' 시기는 '도전'이 포기된 대신 멤버들의 정교한 캐릭터화가 이루어진 시기이다. 그런 점에서 '도전'이 포기된 이 시기는 '무한도전 Classic'에 포함됨과 동시에 현재의 무한도전과 클래식 시기의 무한도전을 구분하는 분기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The Classic 기네스 도전 특집'은 시청률과 경쟁을 하던 '무한도전 클래식' 시기를 결정하고 있던 스타일들, 즉 타이트하게 몸을 감싸던 쫄쫄이와 빨간 반바지, 어설픈 자막 스타일, '쇼 오락 프로그램의 3D 프로그램'에 대한 강조, 급격한 체력 저하, 무모한 과제에 대한 도전 등을 현재의 시점에서 그대로 모방한 특집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다시 그 때처럼 5m 거리에서 포도알을 받아 먹고, 얼굴에 빨래집게를 최대한 많이 집고, 1분 동안 바나나를 많이 쪼개고, 팬티를 빨리 입고 벗고, 계란을 1분 동안 머리로 으깨고, 말 인형 탈을 쓰고 2인 1조로 100m 달리기에 도전했다.
그러나 '기네스 도전 특집'에서 제시된 도전 과제와 의미는 과거의 그것과 차이를 지닌다. 실제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 과제들을 멤버들이 수행해서, 이를 공식 기관에서 파견된 기록관이 측정해서 공인 기록으로 증명받는 일과 국민 생활 체육 연합회 소속의 박문기 심판이 초시계와 휘슬을 들고 도전의 성공과 실패만을 결정내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초일류 연예인이 되기 위한 초특급 프로젝트'란 명분 하에 오합지졸의 연예인들이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하며 동분서주하다가 결국에 녹초가 되어 쓰러지는 과정이 웃음을 주었다면, 멤버들 전체가 이미 대한민국 연예계를 주름잡는 연예인들로 우뚝 선 지금 과거 스타일의 단순한 복제와 모방을 통해 웃음을 주는 일은 자칫 퇴행적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한도전은 대체 누구를 위하여 자신들의 과거를 '추억'이란 이름으로 현재로 소환해야만 했던 것일까?
기록보다 더 빛나는 웃음을 향한 인내와 집념
'무(모)한 도전'의 에피소드들은 대개 "무모한 도전은 계속된다"라는 자막으로 끝이 났다. 반면에 '무(리)한 도전'은 60년대 홍콩 액션 영화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유치한 오프닝 속에 "도전 없는 성공없다!"라는 자막을 등장시키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두 자막은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이 지닐 수 있는 이중적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도전'에 방점이 찍힐 경우 그것은 불굴의 정신을 갖고 무한히 도전을 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되며, '무한'을 강조할 경우 그것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불가능한 일에 도전을 한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결국 '무한도전'이란 말 자체는 실패나 패배를 두려워 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는 진취적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한도전이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때에만 애초의 기획 취지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초심은 바로 실험성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멤버들이 단순히 쫄쫄이나 입고 몸개그를 펼쳐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초심이 아니라 때로는 시청자들의 예측을 과감히 허물어뜨리는 기획과 기발한 발상이 그 안에 담겨 있는가의 여부가 무한도전의 초심을 결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한도전의 '초심'은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스타일의 문제로 환원될 수 없다. 또한 일부 기자들과 팬들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꺼내곤 하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초심' 타령도 적어도 이 기준엔 그릇된 것이다. 과도한 스케줄로 인해 일부 멤버가 지친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고, 또 에피소드의 구성이 난해하여 대중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경우도 있었지만, 무한도전의 제작진과 출연진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손쉽게 성공이란 열매를 손에 넣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특집에서 빨래집게로 망신창이가 된 얼굴을 하고 눈물짓는 유재석의 표정을 주목해 보자. 누구 못지 않게 엄살 많고 겁도 많은 그가 한국 신기록 19개가 넘는 26개의 빨래집게를 얼굴에 꽂을 수 있었던 것은 자막이 말해주고 있듯 "기록보다 더 빛나는 웃음을 향한 인내와 집념"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만한 열정과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몇 줄의 글과 말로 그들이 웃음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더 이상은 욕되게 하지 말자!
'무한도전 클래식'과 '무한도전'을 가르는 자막의 차이
무한도전은 이미 '인도 특집'이나 '100회 특집' 등에서 과거를 연상시키는 자막, 멤버들의 별명, 에피소드 등을 암시적으로 보여주었다. '기네스 도전' 특집은 과거에 자주 사용되었던 '콩그레이츄레이션 송', '3D 대표 예능 프로그램', '<무모한 도전> 시절의 자신감',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무모한 도전을 추억하며'와 같은 자막 등을 통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이번 특집이 '클래식' 시절의 무한도전을 참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무한도전 클래식'과 현재의 무한도전을 구분짓는 요소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히 자막의 활용방식의 차이는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방송분에서는 그 때 당시를 떠올릴 수 있도록 폰트에도 변화를 주어서 기존의 무한도전과는 조금은 낯선 느낌마저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상의 변화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차이는 자막 언어의 수사학적 표현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교 대상으로 '무(모)한 도전' 4회 '목욕탕 물퍼내기' 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박명수가 무한도전에 첫 등장하고 있는 이 방송분에서 자막은 근 40분 째 황토굴에 방치되어 있던 그를 잊고 있었다는 듯 "아차! 게스트가 있었지"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하는 "근 40분 째 황토굴에 방치된 게스트", "오늘의 게스트 특별주문 신비주의", "신비주의 전략 하얀 목욕탕 수건으로 최대한 얼굴을 가린다", "밤무대를 주름잡은 디딜방아 스텝" 등과 같은 자막들은 모두 상황을 설명해주는 자막들로 폰트도 지금과 달리 촌스러운 데다 대부분 유재석의 대사를 그대로 자막화한 것들이기 때문에 단순한 부연설명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이번 방송에 등장하는 자막들을 나열해보면 그 차이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1. 반어
(박명수의 얼굴에 빨래집게를 강제로 꼽자)
- "효도선물 아버님 주름펴주기"
- "자식들 폐 기치기 싫은 아버님"
- "한사코 거부하는 아버님 자식사랑"
- "아버님 회춘 프로젝트"
- "아버님 젊게 사시기 바라는 자식 마음"
- "넘치는 생기"
#2. 패러디
- "입돈(入豚)의 경지" : 입신(入神)의 경지
- "백숙의 호수" : 백조의 호수
#3. 반전
- "형돈아! 담에 또 하자. 9개가 덜 깨져서 무효래...."
#4. 은유 및 직유
(박명수와 정준하가 궤도를 이탈해 달리자)
- "자유 찾아 드넓은 초원 향해 달리는"
- "'뒤죽박죽 동물원'에서 막 탈출한 듯"
(달리던 박명수와 정준하가 쓰러져 버리자)
- "꺾여버린 자유에의 의지"
#5. 냉소적 표현
(박명수가 유재석의 얼굴을 보고 "얼굴 저질이다"라고 말하자)
- "빨래집게 끼워도 당신한텐 역부족"
(박명수가 좀처럼 속도를 내서 달리지 못하자)
- "명수형 다른 쪽에선 속도 잘만 내더만...."
무한도전 자막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실 반어적 표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멤버들이 짓궂은 벌칙에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넘치는 생기" 등의 반어적 표현을 사용하여 상황과 표현의 부조화에서 나오는 웃음을 유발한다. 속담, 격언, 영화 등을 패러디한 자막 역시 시청자들에게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떠올리게 해서 웃음을 유발시킨다는 점에서 반어적 표현과 동일한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유와 직유 등의 수사학을 사용한 자막들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이러한 자막의 사용방식은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상황을 시청자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새로운 통찰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지각하게 되어 시청자들은 새로운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까닭은 무한도전의 자막이 5번의 예처럼 외부 관찰자의 시점을 내부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재석보다 인물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는 박명수가 그의 얼굴을 저질이라고 평가했을 때 보통의 시청자라면 이를 반박하고 싶어진다. 자막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읽어내서 약간의 과장을 덧붙여 표현함으로써 시청자들은 이중의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된다. 즉 시청자는 그 자막에 감정이입을 해서 박명수를 마음껏 비웃을 수도 있고, 박명수를 비아냥거리는 자막을 보고 웃음을 터뜨릴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멤버들마다 각자 분명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파생된 1번이나 2번과 같은 자막들이 탄생할 수 있는 점 또한 '무한도전 클래식'과 무한도전을 가르는 구분점이 되고 있다. 만약 박명수가 '치킨CEO'나 '아버지'로 불렸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모르고 있다면 이 자막들을 보고도 결코 웃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창기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연출력과 편집 능력이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재미를 배가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이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쫄쫄이를 입고 몸개그나 하라는 엉터리 '초심'이 아니라 자기 파괴를 통한 끊임없는 자기 혁신의 실험 정신이다.
by ddolappa
이번 방송에선 <무모한 도전>을 분명히 지시하는 자막들이 많이 등장했죠.
또 당시에 가장 많이 썼던 말들 중 하나가 "3D 예능 프로그램"이란 말이었습니다.
요즘은 잘 안 부르지만 그 당시에는 "콩그레츄레이션 송"을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댔죠.
이 분을 뵈니 문든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한 분이 떠오르네요.
바로 이 분이시죠.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도전자가 차례가 되면 뒤에서 불꽃이 솟아오르는 연출도 <무.모.도> 그대로군요.
지.못.미. 유반장. 그런데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군요.
허걱! 아마 무한도전에서 가장 많이 패러디된 영화를 꼽으라면 <반지의 제왕>을 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유반장이 괜찮을 지 모르겠군요. 심히 걱정됩니다.
역시나! 그런데 유재석을 보면 자신의 모든 삶을 코미디에 바친 수도승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재석의 단짝 박명수도 고통 분담 차원에서 반드시 경험해 봐야겠죠.
그런데 위의 자막 스타일은 '알래스카 특집'에서와 유사하군요.
'무모한 도전' 4회 '목욕탕 물퍼내기' 편인데 과거의 자막 스타일을 잠시 감상해 보시죠.
그리고 신비주의 게스트가 누구일지도 맞춰보세요.
힌트가 필요없을 정도로 너무나 쉬운 문제라 할 수 있겠네요.
'무.모.도'는 항상 이런 방식으로 끝이 나곤 했죠.
그리고 '무.리.도'는 항상 이렇게 시작했구요.
예전에 자주 등장했던 말 중 하나가 바로 "급격한 체력 저하!"였죠.
쫄쫄이 형제들의 완벽한 모습을 감상해보도록 하시죠. 나름 씩씩하지 않나요?
마지막으로 팬들의 소망이자 무한도전의 바람이기도 한 장면으로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무한도전 >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3>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식구(食口)다 (0) | 2008.06.15 |
---|---|
<22> 가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0) | 2008.06.08 |
<20> 당신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0) | 2008.05.25 |
<19> 무한도전이 보내는 <사랑의 선물> (0) | 2008.05.18 |
<18>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지요 (0) | 200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