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3>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식구(食口)다

ddolappa 2008. 6. 15. 09:53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3>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식구(食口)다

 

 


무한도전 109회 (080614) : 가정 방문 24시

 


TV 속 세상 밖으로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기획된 '가정 방문 24시' 특집은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나오는 흰 쌀밥처럼 담백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정서를 안방 가득 전달해준 특집이었다. 곧 아버지가 될 예정인 박명수와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유재석은 다복한 13남매 가정과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며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행복을 경험했고, 멤버들 중 가장 힘이 좋은 정준하와 정형돈은 농촌 가정으로 가서 포도밭일과 축사일을 거들며 노동을 통해 그들과 하나가 되는 기쁨을 나누었고, 유희와 노동이 구분되지 않는 삶을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노홍철과 김현철은 댄스 스포츠 가족과 생활을 하며 가족이 취미의 공동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 이전에도 무한도전은 '하나마나 행사 특집', '서울 구경 특집', '경주 보물찾기 특집' 등을 통하여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을 스치듯 만났던 예전의 특집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선택된 가족들과 24시간을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 속으로 보다 깊숙히 파고들어 가족의 소중함도 배우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 했다는 점에서 보다 진일보한 행보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TV가 일반 가정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어느 가정마다 있을 법한 가족 구성원들의 갈등과 아픔을 파고 들어 평소에는 쑥스러워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속내를 고백하는 자리를 마련해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연예인들이 초청된 가족들과 오락 프로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게임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유난히 끼가 넘치는 가족들의 장기 자랑을 소개하며 웃음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준하와 정형돈이 방문한 가정에서 블라인드 토크 형식으로 진행된 "툭 터놓고 얘기해주길 바래"는 전자의 경우라 할 수 있고, 박명수와 유재석이 13남매 가족들과 단어 맞추기 게임을 벌였던 것은 후자의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주 예고편에서 방송된 이 두 가지 장면은 이번 방영분에서는 모두 편집되었다. 그 대신 멤버들이 초청 가정의 평범한 일상을 체험하는 과정을 보다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번 특집의 시점과 주제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카메라는 일반인 가족들이 아니라 그들의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변화되어 가는 멤버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악마의 아들' 박명수는 수시로 아이들을 안으며 전에 없던 부성애를 보여주기도 했고, 정준하는 길가에 핀 민들레를 꺾어 후 불어 씨앗을 날리며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유재석과 박명수는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동심에 빠져들어 최악의 기초 체력도 잊은 채 줄넘기 시합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반면에 정형돈은 자신의 부모님이 실제로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보니 여느 농사꾼보다 더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받았을 뿐 변화의 폭은 크지 않았고, 실생활과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은 노홍철 역시 특유의 붙임성과 친화력만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따라서 "TV 밖으로의 24시간 / 그리고 TV 속으로 들어갈 시간"이란 자막이 암시하고 있듯 이번 특집은 무한도전 멤버들이 TV 속 세상에서 벗어나 현실의 삶을 체험하고 다시 TV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멤버들의 일상체험, 가족들과 무한도전 시청하기, 그들과 함께 아침 식사하기, 가족들의 무한도전 체험하기 등의 구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멤버들은 평범한 가족들과 함께 24시간을 생활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배우는 한편, TV 밖에서 무한도전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직접 체험해서 시청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방송을 만들기 위한 성찰의 시간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한 가족이 될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 시즌1에 해당하는 '무모한 도전' 시절과 시즌2에 해당하는 '무리한 도전' 시절에 '음식'은 그들의 무한이기주의와 오합지졸적 성격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들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란 공통분모로 엮였음에도 결코 하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이유는 배고픔과 굶주림 앞에서 이타성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쟁을 통해 어렵게 획득한 초코파이 한 조각이나 바나나 하나는 자신들의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없을 만큼 빈약한 음식물이었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에게 나누어주는 아량을 베풀만 한 것이 못되었다. 게다가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행위는 연예계의 막장이라는 당시의 콘셉트에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간혹 2인자 박명수가 어렵게 획득한 음식물을 1인자 유재석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타적 행위가 아니라 권력자에게 바치는 뇌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


그러던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에게 하나의 '가족'이자 '멤버들'로서 인식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순간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뉴질랜드 특집' 때 눈 덮힌 설원 위에서 박명수가 어렵게 획득한 컵 라면 하나를 전원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 장면에서였다. 멤버들 중 하나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치다 보니 갑자기 한국에 두고온 가족 생각에 눈물을 짓기도 했는데, 당시 그들에게 부재하는 친가족을 대체하는 것은 바로 주위 동료들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컵 라면 하나를 매개 삼아 형제애로 결합된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래서 '뉴질랜드 특집' 이후부터 무한도전에서 '음식'의 성격은 달라진다. 물론 그 이후로도 그들은 빙과류나 바나나를 놓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다툼을 벌였지만 시청자들의 인식 속에 '무한이기주의'에 내재한 그들의 끈끈한 동료애가 인상깊게 각인된 뒤였기 때문에 그것은 개인 대 개인의 투쟁이 아니라 가족 내의 사소한 다툼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실제로 무한도전 시즌 3로 넘어와서 무한도전은 스스로를 '가족'이라고 부르길 즐겨했다. 담당 연출자인 김태호 PD역시 인터뷰나 수상식 때마다 '가족' 혹은 '형제들'이란 말을 수시로 사용했고, 시청자들 역시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6명을 '출연자'가 아닌 '멤버'로 부르기 시작했다. 심지어 매니저, 코디, 카메라 감독과 같은 스태프들도 TV 화면에 수시로 출연하며 '가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멤버들'의 매니저와 코디는 때로는 '제7의 멤버'로 불리기도 하고 단체로 출연해 '환장의 짝꿍'을 찍기도 했고, 또 '까마귀의 꿈'이나 '내 매니저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각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내에서 '식사' 장면은 그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주었던 처음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방문한 가정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아침 식사 장면을 삽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한 집에서 함께 잠을 잤고, 또 일어나 끼니를 함께 하며 그들의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결혼 등을 통해 혈연으로 맺어진 인간 공동체인 가족(家族)이 된 것이 아니라 '같이 밥을 먹는 입', 즉 식구(食口)가 된 것이다.

 


뉴 미디어가 탄생시킨 새로운 인간 가족


'식사' 모티브가 공동체의 상징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기술적 조건이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즉 구텐베르크의 인쇄기술로 인해 문자가 대중화되기 이전에, 그보다 더 이전인 문자조차 발명되지 않았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은 오로지 목소리와 듣는 귀에 의존해야만 했을 때, 온 가족이나 한 부족이 모여 함께 하는 식사 자리는 정보가 교환되는 장소이자 지식이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원시공동체는 식사를 통해 집단들 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고, 그 곳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매체에 의존하고 있었다. 따라서 목소리는 최초의 매스미디어로 정의될 수 있다.


"고대 군집 인류의 협소한 세계에서는 의사소통행위자의 육체적 현존의 법칙이 중요했다. 현존하지 않는 사람은 효과적으로 타인의 주목을 끌 수 없었다. 그래서 군집 내부 세계의 포맷은 목소리의 전달 범위에 의해 정해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최초의 매스미디어로 정의될 수 있을 지 모른다. 단, 목소리라는 매체가 현존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성공적으로 전달될 수 있고 목소리 전체의 음향 범위가 인간 집단의 근원적인 음향적 통일성의 경계들을 한정하고 있다는 제한 조건 하에서만 말이다."(페터 슬로터다이크)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을 통해 서적의 보급을 통해 원시 부족사회를 지탱하던 사회 원리는 해체되었고 그 자리를 근대적 개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대화를 통해 이어지던 지식의 전수는 독서가 대신하게 되었고, 독서는 개인을 공동체 밖으로 쫓아내 고독한 골방으로 몰아넣었다. 사람들이 직접 만나서 의사소통하는 대면 접촉이 줄어든 대신 활자, 책, 편지와 같은 문자 매체를 통한 의사소통이 증가함에 따라 근대에는 인간의 다른 육체적 지각방식들은 쇠퇴한 반면 '시각'이 가장 중요한 지각방식으로 상승되었고, 문자의 분석적, 선형적, 순차적 원리에 의해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 더욱 발달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캐나다의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은 인쇄술의 발달을 통해 근대에 초래된 자본주의, 세속주의, 산업주의, 민족주의, 전문화 및 사회주의와 같은 사회적 변동을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산물로 파악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전보,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와 같은 전자 매스미디어에 의해 현대 사회는 근대의 탈부족화를 극복하고 재부족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맥루한의 유명한 용어는 전자 미디어에 의해 탄생한 인류의 새로운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방문한 가족들과 함께 모여 앉아 TV를 시청하는 장면은 중요하다. TV 미디어는 온 가족을 수상기 앞에 모이게 하고 동일한 시각적, 음향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함께 식사를 하며 공동체적 유대를 확인했다면, 현대에는 TV 수상기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탄생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다 폭넓고 다양한 인간 집단을 연결시킨 집단을 생산해내고 있는데, TV 전파는 목소리보다 더 멀리 그리고 실시간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TV 이외에 케이블 TV,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 DMB 등을 이용하여 방송을 다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그를 통해 획득한 지식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카페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요즘의 시청자 집단은 과거에 비해 보다 전문화, 조직화, 부족화되어 있다. 일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팬들과 그에 반대하던 집단을 지칭하던 '까'나 '빠'와 같은 용어를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 집단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 역시 그런 이유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 집단간의 갈등은 일종의 부족들간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스타 크래프트와 같은 게임 동아리를 '클랜'이라 부르는 것 역시 전자 미디어가 만들어낸 재부족화의 한 징후라 할 수 있다.


결국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 하나의 핸드폰을 지니고 있을 만큼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 사회에서 TV 수상기와 인터넷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매스미디어라 할 수 있다.


물론 뉴미디어들이 전달하는 내용에는 기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가치 질서를 재생산해내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파와 좌파의 구분이다. 그러나 이는 근대 구텐베르크의 은하계가 만들어낸 선형적 위계질서가 만들어낸 구분 도식들 중 하나이다. 사방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망에서 아래나 위,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은 무의미할 뿐더러 불가능하다. 인터넷에 기반한 여론 집단이 물화된 촛불문화제가 기존의 사회 운동 단체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새로운 현상인 까닭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즉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미디어를 내용을 전달하는 단순한 수단으로만 인식했을 경우 인터넷 미디어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기존의 가치질서(가령 우파와 좌파의 구분)로 환원시켜 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 대신 인터넷 미디어 자체를 메시지로 이해할 경우 그것이 전달하는 수평적이고 민주화된 새로운 가치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인터넷이 탄생시킨 새로운 공동체는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언제든 기존의 권력집단에 의해 이용당할 위험이 있고 또 쉽게 전체주의로 변질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맹아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새로운 야만을 불러올 지 아니면 보다 인간적인 문명 질서를 초래할 지는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하자.

 


가족의 이름으로


아침 식사까지가 무한도전 멤버들의 가족 되기의 과정이었다면, 드럼세탁기, HDTV, 건조세탁기 등과 같은 선물이 걸린 초콜릿 복불복, 보물찾기, 물공 헤딩과 같은 게임을 시청자 가족들과 함께 체험한 것은 가족들의 무한도전 되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초콜릿 복불복은 '황금돼지해 특집'에서, 보물찾기는 '경주 보물찾기 특집'에서, 물공 헤딩은 '월드컵 특집'과 '앙리 특집'에서 사용되었던 아이템을 재활용한 것이라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실 그들은 24시간 동안 숙식을 함께 하고 <무한도전>을 함께 시청하며 무한도전의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멤버들이 했던 게임들을 직접 체험한다고 해서 가족들의 무한도전 되기라 부르는 것조차 민망한 노릇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무한도전이 시청자 참여를 통해 만들어지는 방송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무한도전 여름 방학 특집의 서막을 알리는 다음주 예고편을 시청자 UCC로 제작한 장면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물론 곧 개봉 예정인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멋지게 패러디해서 만든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 예고편은 일주일을 기다리기 힘들 만큼 소위 '간지나게' 잘 만든 예고편이지만, 시청자들이 핸드폰으로 찍은 영상을 편집한 예고편을 굳이 삽입한 의도야말로 무한도전이 전달하고자 하는 본심에 보다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식구(食口)다'라는 명제는 이렇게 바뀔 수 있다. '같이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을 일주일 내내 애타게 기다리는 한,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를 무한도전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한, 무한도전의 발걸음은 잠시도 멈출 틈이 없다. 무한도전이여, 가족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부르노니,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대들의 등 뒤에는 항상 우리가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그대들이 부르면 언제든 한 걸음에 달려갈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결코, 결코 잊지 말지어다!

 

 

by ddolappa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들을 '식구'(食口)라고 합니다. '뉴질랜드 특집' 편에서 그들은 컵 라면 하나를 나눠 먹으며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인도 특집'에서 그들은 카레를 나누어 먹으며 식구 중 한 명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끼니를 함께 하며 시청자들을 새로운 식구로 맞이 했습니다.

 

 

 

 

 

영화 <괴물>(2006)에서도 그들은 '현서'(고아성 분)만 있으면 식구가 다 모이는데 하고 생각하며 식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무한도전을 시청하면 누구나 무한도전의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사랑은 '악마의 아들' 박명수도 부성애를 느끼게 할 만큼 위대합니다. 우리 모두 그들에게 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