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bert Bolz,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
Norbert Bolz, Am Ende der Gutenberg-Galaxis.노르베르트 볼츠 지음, 윤종석 옮김 역,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0)
우선 제목부터 설명하자. <구텐베르크-은하계>란 말은 서양인쇄술의 기원지인 구텐베르크를 기점으로 확산된 도서문화의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미국의 미디어 학자 마셜 맥루한이 처음 사용했다. 저자 노르베르트 볼츠는 현대에 이르러 컴퓨터와 전자 미디어로 인해 도서문화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뜻으로 '구텐베르크-은하계의 끝에서’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은하계`로 불리어 온 활자 미디어 세계에서 인터넷과 뉴 미디어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그 변화를 가능케한 과거 인류의 정신적 유산을 철학적 미학적으로 되돌아 본 책이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논의를 위해선 과거 전통에 대한 연구는 물론 이론적인 모방과 절충도 망설여선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독일학계에서 `트랜드 분석의 왕`, `언어의 거품` 등으로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소장철학자이자 미디어 이론가다.
책은 크게 두가지 문제의식을 펼쳐보인다. 첫째는 새로운 의사전달 체계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대목이다. 볼츠는 현재 독일 철학계의 제왕이라고까지 말해지는 니컬러스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을 통해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권력구조에 놓여있으며, 언어와 사회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를 살펴본다.
두번째는 이른바 책, 도서문화의 종말과 함께 인터넷문화 속에 등장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상황들이 어떤 것인지를 분석하고 있다. 둘 다 현대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흥미로운 쟁점이다. 저자가 특별히 한국독자를 위해 쓴 `한국어판 서문`은 현단계 사회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요약분석이라 할 만하다. 볼츠는 최근 독일에서 루만의 사회체계이론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의 몰락과 관계가 있다고 정리한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최후의 대서사가 한낱 기만적 동화에 불과하다는 것이 인식된 이후로 사회이론 분야에는 일종의 공백기가 찾아왔다.”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지금까지 세가지 이론이 등장했는데, 첫째는 포스트모던 이론이란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이론은 대서사들의 종말에 관한 또다른 대서사라 할 수 있다. 두번째는 모던의 철학적 프로젝트,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을 뜻하는 두번째 이론은 이성을 신뢰하고 이성의 힘으로 사회에 대한 개선가능한 요구를 해야한다는 하버마스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러나 최근 독일학계는 니컬러스 루만에 의해 하버마스 이론은 일종의 퇴출선고가 내려진 상태. 이를 대변하는 것이 세번째라 할 수있는 루만의 체계이론이다. 체계이론은 사회속에 내재해있으며 다양하게 변주되는 언어 자체를 통해 거꾸로 사회를 분석해가는 이론이다. 저자는 루만의 하버마스 비판을 옹호하며 “하버마스는 사회를 계몽시키려고 했지만 루만은 사회로부터 배우려고 했다”고 적고 있다. 즉 하버마스는 이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특권화시키고 있는 반면, 루만은 언어를 변용의 메커니즘으로만 이해한다고 저자는 편든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대목은 `도서문화의 종말과 인터넷`을 다루는 부분이다. 저자는 매스미디어가 대중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이제 매스미디어는 "컨트롤할 수 없는 수용자들과 관계 맺고 있다"고 정리한다. 그 어떤 공통의 미디어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며, 매스미디어는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세계 커뮤니케이션은 더이상 광역송출(Broadcasting)이라는 전통적인 도식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다채널화하고 세분화한 매스미디어들은 국지송출(Narrowcasting)에 직면하며 소비자 대중들은 틈새 독자나 틈새 시청자 집단으로 변환된다.” 저자는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이야기되고 있느냐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당신의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정보라는 것은 결코 계몽주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뉴미디어적 조건들 아래서의 마법이다”란 현란한 용어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고 있다.
채팅. 뜻이 없어도 이야기한다는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이며 그 채팅을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가 건설될 것이란 것이다.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사이버공동체이며,인터넷문화다. 인터넷의 개방된 구조 속에서 소수 집단을 위한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는 것은 벌써 한국사회에서도 목도되고 있는 바다. 사회적 위계서열을 해체하는 네트워크 문화, 통일된 문화가 아니라 특정한 이해집단과 지식집단으로 구성된 사이버공동체는 이제 빠른 속도로 사회적 위계질서라는 전통적인 사회구성체를 점령하고 있다.
출처 : 문화일보 2000.02.23
'철학의 세계 > 미디어의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서평> - John B. Thompson, The Media and Modernity (0) | 2008.06.21 |
---|---|
[스크랩] <서평> - A Communications Cornucopia (0) | 2008.06.21 |
마샬 맥루한 - 미디어는 맛사지다 (0) | 2008.05.16 |
[스크랩] 레이건 대통령의 미디어 전략 (0) | 2008.05.16 |
[스크랩] 클링턴 대통령의 미디어 전략 (0) | 200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