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미디어의 철학

[스크랩] 레이건 대통령의 미디어 전략

ddolappa 2008. 5. 16. 06:38

노무현 전대통령은 정부와 미디어와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가지고 간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마지막까지 소위 언론과의 전쟁을 치루고 임기를 마무리지었다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그런 자세는 언론의 눈치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신념과 가치관을 토대로 필요한 정책을 정정당당하게 추진해 나가고자 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정부가 지향했던 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호의적 여론을 이끌어 내는 데 언론의 이해를 이끌어 내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새로운 이명박 정부에서는 프렌드리 프레스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듯이 미디어와 우호적인 관계를 지금까지는 갖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단순히 프렌드리 하게만 관계를 가질 것이 아니라 적어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나 케네디 대통령 처럼 국민들의 자신감을 북돋우고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데 미디어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 내었는가를 벤치마킹해 이명박 정부도 참고를 해야만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역대 미국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어떤 미디어 전략을 갖고 국정을 이끌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해 '대통령과 미디어전략'이라는 책자(이시자와 야스하루, 일본 학습원대 교수)의 내용을 10회에 걸쳐 올린다.


제 1장 미국 대통령들의 미디어전략

 

  화이트하우스에서는 보도관과 최근에는 스핀 마이스터(Spin Meister)라든가 스핀 닥터(Spin Doctor)등으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미디어 대책을 강구한다. 미디어 컨설턴트도 그 부류에 해당된다. 그런 스탭들로 구성된 정권은 미디어에 대해 어떠한 전략을 전개해 나갔는가. 특징 있는 미디어 전략을 전개한 레이건, 클링턴, 닉슨, 케네디 등의 미디어 대통령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 로널드 레이건의 미디어 전략

 

▲ 철저한 TV위주의 전략

 

  미디어 위력을 숙지했기 때문에 강력한 압력을 가해 미디어를 종속시키려고 했던 닉슨에 비해 미디어의 영향력을 강력히 인식하고 있던 레이건 정권은 닉슨과는 다른 어프로치로 미디어를 다루었다. 닉슨이 정면에서 미디어와 적대했다면 레이건은 미디어가 대통령을 호의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어 그에 따라 미디어를 조작하려고 했다.

 

 레이건의 미디어 대책은 수석보좌관으로 후에 재무장관, 국무장관인 제임즈 베커, 차석보좌관인 마이켈 디버, 홍보담당보좌관 데이빗 가겐, 보좌관으로 부시정권에서 행정관리예산국장이 된 리챠드 드만이 만들었고 베커, 디버, 대통령 고문인 에드 미스 3인이 매일 아침 미팅에서 미디어에 그날 무엇을 보도하도록 할 것인가를 주도면밀하게 준비, 미디어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이 전략은 지극히 명쾌했다. 단순히 정치 무대만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석하는 수많은 이벤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레이건이 국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줄 수 있도록 TV영상을 방영토록 하는 것이다.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시절부터 같이 일해 온 인물로서 미디어전략의 중심인물이었던 디버는 그 생각을 기본으로 하고 레이건을 부각시킨 것이다.

 

 디버는 미국국민들은 대통령에 관한 정보를 거의 TV로부터 얻는다고 생각했다. 이 경우 국민들은 대통령의 정책을 생각보다는 이미지로서 받아들이며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머리로 기억한다는 점을 읽었다. 따라서 디버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어떻게 좋게 보일 것인가에 초점을 둔 전략을 취한 것이다.

 

 한편 정보의 송신자인 미디어에 대해서는 ‘기자들은 뉴스업무에 종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하고 있는 일은 오락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저널리즘 특히 TV미디어의 심층을 찌르는 발언으로 디버의 미디어전략의 핵심부분이다. 저널리스트로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지적당하고 싶지 않은 점일 것이다. 실제 저널리즘은 넓은 의미에서 ‘재미있는’ 화제를 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이야 말로 레이건 대통령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TV는 시청자가 즐거워 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한 것이다.


 그 반대로 대통령의 이미지 다운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는 레이건을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예를 들면 미국이 레바논으로부터 병력을 후퇴시키는 것과 같은 정권으로서나 미국으로서 굴욕적인 날에는 결코 레이건을 TV카메라 앞에 서게 하지 않았다. 그 반대로 그레나다 침공에 성공해서 국위선양의 의식이 무르익을 때에는 레이건의 모습을 몇차례나 취재를 시켰다. 또한 84년에 개최된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레이건이 어린이로부터 성화를 받아드는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하도록 하는 등 국민들을 한결같이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도록 훌륭한 연출을 했다. 지금까지도 TV의 영향력을 의식한 정권은 있었지만 레이건 정권만큼 명확히 TV본위의 미디어 전략을 철저하게 편 정권은 없었다.


▲ 대통령을 연출시킨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도 계속 화제로 남아있는 장면은 1984년 6월 프랑스 노르만디의 오크곶 에서의 행사이다. 이는 제 2차대전에서 연합국이 역전하는 커다란 전기가 된 노르망디에서 상륙작전 성공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미군이 결사적으로 상륙을 했던 그 자리에서 레이건은 기념비를 배경으로 연설을 했다. 그 감동적인 광경에 보통은 신랄한 질문을 퍼붓기로 유명한 화이트하우스 저널리스들도 푹 빠져 버렸다. 그리고 레이건은 ‘강한 미국’의 인상으로 미국 국민들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행사를 통해 내셔날리즘이 고조되고 화이트하우스로서 호의적인 영상이 촬영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 스탭들이 수개월전부터 현장에 들어가 노르망디 작전에서 병사들이 상륙한 모든 장소를 상세히 조사하고 어느 위치에 서면 레이건이 가장 좋게 카메라에 비칠 것인가를 여러차례 테스트한 결과였다. 두시간에 걸친 기념행사를 연출한 레이건 미이어 팀의 완승이었다.


 레이건의 미디어전략팀은 레이건의 좋은 면만을 어필하는 것을 미디어전략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레이건이 기자와 직접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은 최대한 피했다. 레이건은 정책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수차례 실언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 후반이 되면서 레이건은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책에 정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그 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화이트하우스에서 해외 요인과 카메라앞에서 서는 경우에도 기자단으로부터의 질문은 금지했다. 기자회견의 수도 적었지만 기자회견을 해도 일정 이상의 질문을 수용하지 않았고 애매한 웃음을 지면서 회견을 종료하는 일도 곧잘 있었다. 덧붙인다면 84년에 재선을 거두었지만 대통령 선거기간중에 행한 기자회견은 불과 한번뿐이었다. 그러나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는 라디오 연설은 거의 매주 실시했다.


 레이건의 미디어전략팀은 레이건의 좋은 면만을 어필하는 것을 미디어전략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에 레이건이 기자와 직접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은 최대한 피했다. 레이건은 정책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고 수차례 실언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 후반이 되면서 레이건은 상당히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정책에 정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그 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화이트하우스에서 해외 요인과 카메라앞에서 서는 경우에도 기자단으로부터의 질문은 금지했다. 기자회견의 수도 적었지만 기자회견을 해도 일정 이상의 질문을 수용하지 않았고 애매한 웃음을 지면서 회견을 종료하는 일도 곧잘 있었다. 덧붙인다면 84년에 재선을 거두었지만 대통령 선거기간중에 행한 기자회견은 불과 한번뿐이었다. 그러나 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는 라디오 연설은 거의 매주 실시했다. TV시대가 되면서 정치가는 배우와 같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할리우드의 영화배우로 64편의 영화에 출연한 진짜 배우 레이건은 훌륭하게 화이트하우스의 스탭들이 요구한 연기를 해 보인 것이다.

 

  그러나 디버의 미디어 전략이 뛰어난 것은 단순히 레이건의 좋은 이미지을 강조하는 것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TV 발언시 정책등에 관련된 어려운 이야기는 가급적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던 디버였지만 필요한 경우 반복해서 발언을 하도록 했다. 이는 대통령의 입으로 나오는 메시지는 TV에서 한번 발언한다고 해서 국민들에게 쉽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따라서 레이건 정권이 자신을 갖고 추진하려고 했던 정책에 대해서는 레이건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반복해서 발언하도록 함으로써 정책의 의도와 내용을 국민들에게 전하려고 했다. 호의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외에도 정책을 실행해 나가는 부분까지 감안했다는 점에서 디버가 실행했던 미디어 전략이 깊이가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출처 : japan study
글쓴이 : 이명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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