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미디어의 철학

[스크랩] 하이퍼텍스트, 가상현실

ddolappa 2008. 7. 5. 00:48
 

하이퍼텍스트, 가상현실


                                                                             이 남 표

                                                  2002년 10월 / 2005년 3월 일부 수정




  0. 하이퍼텍스트


* 이재현(2000), ≪인터넷과 사이버사회≫,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pp.82~108 참고.1)



  1. 가상현실이란 무엇인가?


  ‘가상현실(virtual reality)’2)이란 무엇인가?

  스토이어(Steuer, 1995: 33~34)는 가상현실이 전화나 텔레비전처럼 하나의 미디어로 묘사되어 왔다고 말한다. 그는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흔히들 컴퓨터,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 헤드폰, 동작 감지 장갑(motion-sensing gloves)을 포함한 특정한 기술적 하드웨어들로 정의하는데, 그러나 이러한 정의는 지나치게 기술적이기 때문에 가상현실을 적절하게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을 제공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스토이어는 기술적 하드웨어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이라는 의미에서 가상현실을 정의하고자 하며, 그 핵심으로 ‘현전(presence)’과 ‘원격현전(telepresence)’ 개념을 각각 제시한다. 이는 다음과 같다. (1995: 35~37)


■ 현전은 물리적 환경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전은 물리적 세계 안에 존재하는 우리의 환경을 뜻하는 것이라 아니라 자동적이며 통제되는 정신적 과정을 통해 매개되는 환경에 대한 지각(perception)을 의미한다. 결국, 현전은 환경 속에서의 존재 감각으로 정의할 수 있다.


■ 매개되지 않은 지각에 있어서, 현전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각이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의해 매개될 때,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그 속에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 환경과 미디어를 통해 주어진 환경이라는 두 개의 구분되는 환경을 동시에 지각하게 된다. 여기에서 원격현전이란 후자를 가리키는 말이며,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를 통해서 어떤 환경 속에 현전하는 경험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현전은 자연적인 환경에 대한 지각을 가리키며, 원격현전은 매개된 환경에 대한 지각을 말한다.


■ 원격현전 개념을 이용해서 정의하자면, 가상현실은 지각자(perceiver)가 원격현전을 경험하는 실제적인 또는 모사된 환경을 뜻한다. 이러한 정의는 사실상 모든 매개 경험을 포함한다. 전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과정은 발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하는 과정으로, 정보의 전달이라는 의미에서 설명되었다. 따라서 미디어는 단지 발신자와 수신자를 연결하는 수단으로서, 통로(conduit)로서만 중요하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원격현전은 발신자이자 수신자인 한 개인 사이의 관계, 그/그녀가 상호작용 하는 매개된 환경에 초점을 맞춘다. 정보가 발신자에서 수신자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매개된 환경이 만들어지고 경험된다.


  지금까지 보았듯, 가상현실이란 사실상 대단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스토이어는 따라서 “원격현전으로서 가상현실의 정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미디어 기술에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1995: 38). 또한, “소설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몰입 환경과 마찬가지로 버추얼 리얼리티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Poster, 1997: 126)


  한편, “특정한 매개 상황이 원격현전 감각을 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환경 속에서 채택된 감각적 자극들의 조합, 참여자들이 환경과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방법들, 그리고 환경을 경험하고 있는 개인들의 성격 등을 포함한다. 이를 기술적인 차원의 변인들로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3) (Stuer, 1995: 40, 41~49)


■ 생생함(vividness): 매개된 상황이 재현하는 풍부함(representational richness)을 말한다. 하위 변인으로는 ‘폭(breadth)’과 ‘깊이(depth)’가 있다. 폭은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여러 감각기관에 걸쳐서 정보를 제공하는 능력을 뜻하며, 깊이는 제공하는 정보의 “질(quality)”에 관한 것이다.

■ 상호작용성(interactivity): 이용자가 실시간으로 매개된 환경의 형식과 내용을 수정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정도를 가리킨다. 하위 변인으로는 ‘속도(speed)’, ‘범위(range)’, ‘매핑(mapping)’이 있다. 속도는 입력내용(input)이 매개된 환경 속으로 흡수되는 속도를 뜻하며, 범위는 주어진 순간에 가능한 여러 행위 가능성의 수를 가리키며, 매핑은 자연스럽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매개된 환경에서의 변화를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을 칭하는 것이다.


  스토이어와는 다른 차원에서 롬바드와 디튼(Lombard &Ditton, 1997)은 원격현전의 개념을 6가지로 유형화해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재현, 2000: 119~121에서 재인용)


■ 사교적 풍부성(social richness)으로서의 원격현전: 그 핵심 요소는 친밀성(intimacy)과 즉각성(무매개성, immediacy)이다.

■ 현실감(realism)으로서의 원격현전: 사회적 현실감과 지각적 현실감으로 나눌 수 있다.

■ 이전(transportation)으로서의 원격현전: 세 가지 형태가 가능한데, 각각 ‘그곳에 있다(You are There)’, ‘이곳에 있다(It is Here)’, ‘우리가 함께 있다(We are together)’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 몰입(immersion)으로서의 원격현전: 지각적 몰입과 심리적 몰입으로 나눌 수 있다.

■ 미디어 내 사회적 행위자(social actor within medium)로서의 원격현전: TV의 등장인물이나 다마고찌와 같은 컴퓨터 애완동물과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

■ 미디어가 사회적 행위자(medium as social actor)가 되는 경우로서 원격현전: 미디어 자체가 행위자처럼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는 경우.


  “전자 시대를 사는 인간들은 어느 특정 시각에 어느 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곳에 부재(absence)하면서도 현존(presence)할 수 있게 되었다. (...) 기존의 공간 개념은 이제 하나의 통합된 장으로 바뀌게 된다”(1997: 114)는 김균의 지적은 이런 맥락에서 음미할만하다.



  2. 시뮬라크라와 리얼리티의 종말


  가상현실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거쳐가야 할 중간 단계는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티 이론가 보드리야르(Baudrillard)의 ‘시뮬라크라(환영, simulacra)’ 개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시뮬라크라란 오리지널이 없는 동일한 복제물을 말한다. 또한 오리지널과 복제물의 구분 그 자체가 소멸해버리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다. 보드리야르의 논의는 다음의 세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 (Best &Kellner, 1991: 156~165, Storey, 1993: 236~241)


■ 시뮬라시옹(모사, simulation): 원본과 복사물의 구별 자체가 소멸해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원천이나 실재 없이 실재적인 것의 모형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
(ex: 똑같은 영화를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본 수용자들은 모두 오리지널이 없는 복제물의 전시를 보았을 따름이다.)


■ 하이퍼리얼리티(과잉현실, hyperreality): 시뮬라시옹이 만들어낸 포스트모던 상황의 양식. ‘초월’이란 뜻을 가진 접두어 ‘hyper’가 뜻하는 것처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유사현실’은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것, 즉 ‘과잉현실’이 되어버린다.
(ex: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베트남전쟁 재현의 현실성을 판정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현상, 또는 드라마의 악역을 비난하거나 증오하는 현상 등.)


■ 내파(implosion): 하이퍼리얼리티의 영역에서는 시뮬라시옹과 실재의 구분이 끊임없이 내파하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서로 충돌하며 붕괴되어 간다. 이를 통해 미디어에서 의미와 메시지가 내파되고 무관심한 대중은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의 시대는 모든 지시체의 소멸과 함께 시작”한다고 말한다(Poster, 1997: 127에서 재인용). 시뮬라크라의 유포를 통해 “하나의 세계에서의 텍스트성이나 담론의 작용은 고정된 이론이나 정치가 없는 불안정한 구조로 대치”된다(Best &Kellner, 1991: 158). 왜냐하면, 시뮬라크라가 현실 자체의 기준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언론학에서 말하는 ‘미디어의 현실 구성’은 시뮬라시옹의 시대에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또한 김균은 “VCR이 사건의 본질적 특성이었던 일회성과 불가역성(irreversibility)을 무색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맥루한의 이론이 어떻게 보드리야르 이론과 연결되고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97: 114~115)


■ 사건의 가역성과 부재의 현존 체험은 커뮤니케이션의 ‘사회적 실재성’을 높이게 되고 이는 매체의 발달로 확장된 인간 감각을 통해 실재와 같거나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상황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맥루한의 주장이다. 이와 같은 맥루한의 인식은 보드리야르가 포스트모던적 의사소통의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과잉현실’, ‘시뮬라크라’, ‘내파’ 등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것을 지칭하는 ‘시뮬라크라’는 재현(representation)이나 모방(mimesis)과는 다르다. 재현과 모방은 실체의 존재를 가정한다. 그러나 시뮬라크라는 실체와 실체를 모사한 이미지를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고 방식을 거부한다. (...) 매체가 매개하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바로 매체가 구현하는 형식적 코드라는 보드리야르의 지적은 맥루한의 매체론과 그 핵심에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균은 덧붙여서 “전자 매체의 등장은 과거 예술, 과학 또는 논리 등으로 구분되던 삶의 다양한 표현들이 가졌던 경계를 소멸”(1997: 117)시켰으며, “맥루한의 주장은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상품의 전체적인 가치가 효용 가치가 아니라 교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보드리야르의 지적과 일맥상통”(1997: 119)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보드리야르 자신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시뮬라시옹 이론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이를 가상현실 이론으로 대체한다. “이제 시뮬레이션이 문화의 지배형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시뮬레이션 개념은 더 이상 개념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 보드리야르의 생각”(Poster, 1997: 129~130)이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레이션 이론과 버추얼 리얼리티 이론의 차이”를 포스터는 “수동적이고 반영적인 하이퍼리얼한 것(텔레비전 테크놀로지)과 능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이며 몰입적인 버추얼 리얼리티(가상 현실 컴퓨터 테크놀로지) 사이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즉, 가상현실은 “개인들이 경험하는 대로 그 세계를 구성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거나 요청하며, 따라서 가상현실에 참여하는 것은 “고정된 텍스트를 읽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 된다. (1997: 131~132, 134)


  결국, 시뮬라시옹은 지시체와 분리되어 있고, 때로 대상보다 앞서는 것이라 할 지라도 여전히 일관성 있는 의미세트들이고 따라서 고정된 의미의 모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에 가상현실은 현존/부재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패턴/잡음이라는 새로운 정보 논리로 사건을 만들어낸다(Poster, 1997: 136).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언론학의 용어로 말해보자. 전통적인 언론학은 ‘미디어의 현실 반영’을 말한다. 반면, 시뮬라크라의 시대는 ‘미디어에 의한 현실 구성’을 제기한다. 그러나 가상현실의 시대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현실(reality) 자체의 파괴 또는 소멸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참 고  문 헌 >


김경용(1997), “마샬 맥루한 이해”, ≪현대사상≫, 제1호, pp. 70~102.

김 균(1997), “마샬 맥루한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현대사상≫, 제1호, pp. 103~120.

이재현(2000), ≪인터넷과 사이버사회≫,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Best, S. &D. Kellner(1991), Postmodern Theory: Critical Interrogations, 정일준 역(1995), ≪탈현대의 사회이론≫, 서울: 현대미학사.

Kellner, D.(1995), Media Culture: Cultural Studies, Identity and Politics between the Modern and the Postmodern, London: Routledge, 김수정․정종회 역(1997), ≪미디어 문화≫, 서울: 새물결. Morse, M.(1998), Virtualities: Television, Media Art, and Cyberculture, Indiana University Press.

Poster, M.(1997), “버추얼 보드리야르, 또한 마샬 맥루한의 달성되지 못한 유산”, ≪현대사상≫, 제1호, pp.121~136.

Steuer, J.(1995), “Defining Virtual Reality: Dimensions Determining Telepresence”, in Biocca, F. &M. R. Levy(eds.), Communication in the Age of Virtual Reality, Hilsdale: N. J.: Lawrence Erlbaum Assoicates.

Storey, J.(1993), An Introductory Guide to Cultural Theory and Popular Culture, 박모 역(1994), ≪문화연구와 문화이론≫, 서울: 현실문화연구.

출처 : B눈O눈D의 회색시간
글쓴이 : B눈O눈D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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