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뷰]제1탄-무한도전의 계보학(상)
만약 김태호 피디가 <무한도전>의 연출을 맡지 않았더라면, 현재와 같은 <무한도전>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누구나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너무 뻔한 질문인가? 그러나 만일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한다면?
이 글은 김태호 피디와 <무한도전> 간의 긴밀한 관계를 굳게 믿고 있는 팬들의 상식을 뒤집는 도발적인 물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런 상식 밖의 가정을 통해 <무한도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형성하는 다양한 맥락들, 가령 90년대 이후 대한민국 오락 산업의 급성장, 해외 리얼리티 쇼 장르의 유입, 문화방송 특유의 제작 환경 등을 살펴봄으로써 역으로 <무한도전>과 김태호 피디의 독창적 가치와 위치를 자리 매김해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시도인 <무한도전의 계보학>에서는 송창의, 주철환, 김영희, 여운혁, 김태호 피디로 이어지는 문화방송 스타 피디의 계보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들은 당대의 트렌드 변화를 먼저 예측해서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하고, 이를 통해 대중문화의 흐름을 주도해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들은 얼마 후면 1,000회를 맞이하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같은 장수 프로그램을 통해 신입 연출자들을 훈련시키고,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한 연출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실험정신과 확고하게 보장된 연출의 자율성을 발휘해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문화방송의 전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1> 순수한 오락적 재미의 발견 - 송창의 PD
1987년 6월 민중 항쟁의 결과로 문민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방송에서도 강압적인 간섭이 소멸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는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적 욕구를 고취시켰고, 그 결과 탈이념적이고 감각적인 90년대의 대중문화가 만들어졌다. 예능 장르의 원형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 송창의 PD는 누구보다 먼저 이러한 감수성의 변화를 읽어내고 한발 앞선 기획과 연출로 90년대를 예비했다는 점에 그 업적이 있다.
1977년 문화방송에 입사한 송창의 PD는 1980년 <뽀뽀뽀>로 연출자로서 정식 데뷔한 이후 <쇼 2000>, <영 11>,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들의 연출을 맡았다. 진행자 이덕화의 '부탁해요'와 같은 유행어가 인기를 얻기도 했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는 가수가 등장해 노래를 부르는 전통적인 음악 프로그램에 뮤직비디오 제작, 가수와 인형이 어우러진 코믹 쇼 등 여러가지 실험적 형식을 도입했던 혁신적 쇼이기도 했다.
1989년 말 송창의 PD는 트레이드 마크인 '배추 머리'와 '지구를 떠나거라'와 같은 유행어로 큰 인기를 누렸던 김병조가 진행하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의 후속 프로그램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기획, 연출하게 된다. <일요일 밤의 대행진>은 김병조라는 걸출한 코미디언의 원맨쇼에 가까운 콩트 쇼였다면,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주병진이라는 메인 MC를 중심으로 이경규, 김흥국, 노사연 등이 보조 진행자 역할을 했던 토크 쇼였다. 당시 주류 코미디가 <웃으면 복이와요>, <유머 1번지>, <청춘만만세>와 같은 콩트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토크 중심의 코미디 쇼는 거의 파격에 가까운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몰래 카메라’나 ‘배워봅시다’, ‘시청자 비디오’ 같은 새로운 코너들 역시 다가오는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당시 대중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던 비디오 카메라 붐에 착안해서 시청자가 찍은 동영상을 소개하는 '시청자 비디오'는 지금은 보편화된 UCC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경규가 진행했던 '몰래 카메라' 역시 신비주의로 포장되어 있던 스타들의 본 모습을 노출시키는데서 쾌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탈권위적인 시대의 경향을 반영한 것이었다. 물론 그 후로 사생활의 공공연한 노출, 의도적으로 조작된 카메라 연출, 관음증적인 욕구의 충족 등의 역기능으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기도 했지만 '몰래 카메라'가 당시 커다란 인기를 누렸던 것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고 '몰래 카메라'의 역사는 <무한도전>의 성공 이후 소위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유행하게 되면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송창의 PD는 91년 말까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연출한 뒤 '서태지와 아이들'이 최하 점수를 받으며 데뷔한 무대로 유명한 <특종 TV 연예>를 연출했다가 94년에 다시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복귀했다. 96년에 그는 신동엽, 우희진, 이의정, 송승헌 등이 출연했던 <남자 셋 여자 셋>을 만들어 MBC에 시트콤을 정착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2000년에는 <세 친구>로 성인 시트콤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송창의 PD가 처음 기획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그 후 20년 간 유지되며 2008년 11월 경에 1,000회를 맞이하게 된다. 거쳐간 작가만 300여명, 담당했던 연출자들만 100여명에 이르는 문화방송의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주철환, 김영희, 여운혁, 김태호 등과 같은 당대 스타 피디들을 탄생시켰던 보금자리이기도 했다. 그가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던 청춘 시트콤 장르인 <남자 셋 여자 셋>은 <논스톱> 시리즈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송창의 PD가 남긴 업적은 90년대의 쇼 오락 프로그램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데 있다. 그는 공익성이나 시사성과 상관없은 순수한 오락적 재미에 최초로 보여준 인물이었고, 그런 점에서 오락성과 공익성을 결합시키려 노력했던 주철환 PD나 김영희 PD보다는 여운혁 PD와 김태호 PD가 그의 문제 의식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락 프로그램에 교양이나 메시지가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들에게 차라리 TV 볼 시간에 책이나 보라고 당당히 충고하는 그는 현재 tvN 공동대표로 재직하며 아직도 일선 현장에서 본인의 고민을 심화시키고 있는 중이다.
<2> 오락과 교양 사이 - 주철환 PD
1983년 문화방송 TV PD로 입사한 주철환 PD는 87년 이택림이 진행한 <유쾌한 스튜디오>를 연출하며 데뷔하게 된다. 같은 해 10월 주철환 PD는 본인이 직접 기획한 <퀴즈 아카데미>의 연출을 맡아 아카데믹한 교양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그는 <우정의 무대>를 단순한 위문공연 수준에서 벗어나 젊음이 넘치는 오락 프로그램으로 변모시키거나 <테마게임>을 통해 김국진을 스타덤에 오르게 할 정도의 뛰어난 오락적 감각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연출가로서 그의 특징은 오락 프로그램도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사고 방식에 있다. PD로 입사하기 이전 모교인 서울 동북 중고등학교에서 3년간 국어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고, 또 2000년부터는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는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연출가로서의 문제 의식은 교양과 오락이 어떻게 접목될 수 있는가를 향해 있었다.
91년 10월부터 3년 간 그가 연출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계몽주의자로서 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경규가 진행하던 '몰래 카메라'는 연예인들 뿐만 아니라 조경철 박사, 변웅전 아나운서, 김동완 기상캐스터, 김홍신 국회의원 같은 사회적 유명인사들로 확대되었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탈권위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같이 사는 사회'와 같은 코너를 통해 '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벌여 오락 프로그램에 사회참여적 성격을 부여하기도 했다.
주철환 PD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연출할 당시 조연출이었던 김영희 PD와 함께 '교양의 성격을 가진 예능의 전범'을 만들어냈고, 이것을 문화방송이 제작하는 오락 프로그램의 전통으로 각인시켰다는 점에 큰 업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일부 언론들이 오락성만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비판하며 '공익성'과 '감동'이 접목된 프로그램 제작을 요구하게 된 근거 역시 이 시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지면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 방향이나 추구하는 경향이 달라지듯 '교양의 성격을 가진 예능'을 보편적인 모범처럼 떠받드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느낌표>처럼 예능 프로그램이 반드시 공익적 소재를 삼아야 한다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 담아내야 한다는 법칙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도전>의 '중국 황사 특집', '댄스 스포츠 특집', '사랑의 도서관 특집'처럼 시사적 문제를 세련된 오락 형식으로 풀어내거나 도전을 통해 자연스러운 감동을 연출하는 방식도 충분히 가능하다. 따라서 예능 프로그램이 다루는 소재에서만 공익성을 찾는 대신에, 오락 프로그램이 공익성을 담보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할 때에만, 보다 격조 높은 예능 프로그램이 제작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시사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 <무한도전>의 시도나 한 주 간의 뉴스를 수다로 풀어내는 <명랑 히어로>는 주철환 PD와 김영희 PD의 문제 의식에 대한 또 다른 답변일 수 있다.
<3> 사회적 캠페인의 시대 - 김영희 PD
"방송이 21세기의 꽃이다"라는 친구의 말만 믿고 방송국 시험에 응시해서 1986년 MBC에 입사한 김영희 PD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조연출로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의 ‘도루묵 여사’ 코너에서 이경실이 그에게 붙여준 ‘쌀집 아저씨’란 별명 때문에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1996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교통문화 캠페인 '이경규가 간다', '교통정지선을 지키자' 등을 통해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김영희 PD는 이런 캠페인성 프로그램을 통해 한 해 동안 내무부장관 표창, 경찰총장 표창, 건설교통부장관 표창, 서울시장 감사패 등을 연달아 수상하기도 했다. 98년도에는 IMF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제작한 <21세기 위원회>의 ‘칭찬합시다’ 등을 통해 ‘오락’과 ‘공익’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프로그램의 신호탄을 쏘기도 했다.
여기에서 언급할 점은 MBC 예능국이 처음부터 독립된 부서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MBC는 드라마부, 쇼-코미디부, 제작3부로 나뉘어 있었다. 특히 제작3부는 드라마, 쇼, 코미디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하던 부서였고, 현재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아침방송, 퀴즈 프로그램, 어린이 프로그램 등이 이곳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도전 1,000곡>, <장학퀴즈>, <퀴즈 아카데미>처럼 쇼의 성격을 지닌 교양 프로그램들 역시 제작3부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오락'과 '교양'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이 제작될 수 있었던 여건이 제작3부의 모호한 성격에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제작 환경과 IMF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김영희 PD는 완벽에 가까운 캠페인성 오락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세상에 내놓게 된다. 선정된 도서들을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려놓기도 했던 '책. 책. 책을 읽읍시다', 양재천에 서식하고 있는 너구리의 생태를 관찰해서 도심지역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던 '이경규의 다큐보고서', 국내 체류 중인 이주노동자의 삶을 다룬 '아시아 아시아' 등이 그에 의해 기획, 연출된 작품들이다.
공익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지닌 김영희 PD는 깊이 있는 방송 철학을 바탕으로 '딴따라'가 아니면 '다큐멘터리'로 끝나버렸을 오락 프로그램에 새로운 전범을 제시해주었다. "딴따라 PD가 이런 말 하면 참 쑥스러운데, 간단하게 말하면 방송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여성, 노인, 청소년, 장애인, 어린이 등 약자에게 애정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이런 약자들을 고민하면서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방송은 즐거워야 한다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그의 이러한 방송 철학은 <무한도전>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된다. '삼성-허베이호 기름 유출 사고'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태안을 방문에 <무한도전> 팀이 '사랑의 도서관'을 짓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던 것도 사실은 김영희 PD의 '기적의 도서관'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이다.
2005년 방송국에서 그를 예능국장에 앉히기 위해 인사규정까지 수정하는 편법을 동원하여 최연소 예능국장에 임명했을 때, 그가 기획했던 야심찬 프로젝트 중 하나가 <토요일>이었다. <토요일>에는 김용만, 김국진, 남희석, 유재석, 김제동, 박경림 등 쟁쟁한 MC들이 총출동해서 방송계에선 “이 정도의 출연진이면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 3개는 만든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오고가기도 했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전신인 '무모한 도전'은 바로 이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불과 7개월만에 김영희 PD는 예능국장에서 물러나 일선 PD로 되돌아와야만 했다. 2005년 7월 <음악캠프>에서 발생한 노출 사건과 같은 해 10월 경북 상주에서 공개방송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던 11명의 시민이 압사당하는 '상주 참사'로 인해 40대의 야심만만한 최연소 예능국장은 미처 그 뜻을 펴보기도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것이다. 당시 그가 야심차게 기획했던 <토요일>은 참담한 시청률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고, 여기에 문화방송 보도국에서 발생한 97년 대선 자금 X파일 사건, <내 이름은 김삼순>을 연출한 PD의 이직 문제, 최진실과의 이중계약 논란 등 불운이 겹쳐 MBC 전체에 짙은 암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MBC는 보도국, 예능국, 드라마국의 침체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인사 개편을 단행하게 된다. "예능국을 살려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떠안고 예능국장에 임명된 사람이 바로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빛과 소금'으로 불리던 최영근 부국장이었다. <사랑의 스튜디오>, <생방송 퀴즈가 좋다> 등을 연출한 바 있는 최영근 예능국장은 MBC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전부 <느낌표>화 되다보니 프로그램 마다의 개성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몰래 카메라'의 부활, <느낌표>의 대대적인 코너 개편, 강호동의 MBC 복귀 등이 모두 이 때 이루어진 변화들이다.
'무모한 도전'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버라이어티 쇼 <토요일>이 <목표달성 토요일>로 개편되면서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으로 코너명을 바꾸고, 담당 연출자도 현재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를 맡고 있는 권석 PD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상상 원정대'를 끝내고 잠시 쉬고 있었던 김태호 PD로 바뀌게 된다. <무한도전>과 김태호 PD의 역사적 첫 만남은 이렇게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사건들의 연속에서 일어난 우연한 마주침으로 시작했다.
(계속)
by ddolappa
참고자료
1. [쾌도난담] 텔레비전 좀 작작 봅시다
http://h21.hani.co.kr/section-021023000/2000/021023000200008090321084.html
2. 송창의, 스타PD에서 스타CEO로 비상!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610161136541110&menu_id=442
3. [김은구의 PD열전]송창의 PD “말 가장 안들은 주병진, 고마워”
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31&newsid=01082406583190584&DirCode=0010301&curtype=read
4. [김은구의 PD열전]늘 10년을 앞서간 PD, ‘일밤’의 송창의
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31&newsid=01079126583190584&DirCode=0010301&curtype=read
5. [김은구의 PD열전]신동엽이 본 송 PD "연출은 완벽, 주례는 빈틈"
http://spn.edaily.co.kr/entertain/newsRead.asp?sub_cd=EA31&newsid=01088966583190584&DirCode=0010301&curtype=read
6. 단기간에 인기 시트콤으로 부상한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3001001&article_id=30791
7. [SC 매거진] TV 오락프로 이대로 좋은가...예능 PD도 할 말 있다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1011091713606&cp=SpoChosun
8. 시청자, 폐지 ‘느낌표’에 박수를 보내다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71018141810554&cp=mydaily
9. 예능프로의 ‘흥행 메이커’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돌아왔다!
http://zine.media.daum.net/ladykh/view.html?cateid=3000&newsid=20070328141410542&cp=ladykh
10. 잇단 대형사고·시청률 추락… 벼랑끝 몰린 MBC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51012204023522&cp=segye
11. 스타급 MC들 MBC에 다 모였네
http://media.daum.net/entertain/others/view.html?cateid=100030&newsid=20050417070814331&cp=segye
12. 삼순이 열풍 식은 MBC 삼국 수난시대
http://media.daum.net/entertain/broadcast/view.html?cateid=1032&newsid=20050805143448686&cp=nocut
13. 공익성에 재미를 더해 부활! < !느낌표 > 12월11일 방영 재개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3001001&article_id=27393
14. 김영희PD “2만명이 눈을 뜰 수 있는데…”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4/12/005000000200412241053001.html
15. 김영희 MBC PD협회장 "PD흔들기, 단결합시다"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0707154805062&cp=starnews
16. 명랑 방송국│ 여운혁 t MAP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6001000&article_id=48434
17. 명랑 방송국│MBC 예능을 정의한 3인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6001000&article_id=48435
18. 예능프로는 지금 여운혁 시대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view.html?cateid=1026&newsid=20080719143106965&cp=hani
'무한도전 > [기획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래도 무한도전은 계속된다 (0) | 2018.03.14 |
---|---|
무한도전의 '리얼'은 무엇을 말하는가? (0) | 2009.06.17 |
[기획리뷰]코멘터리판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하) (0) | 2008.09.28 |
[기획리뷰]코멘터리판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상) (0) | 2008.09.28 |
[기획리뷰]'좀비특집'은 대한민국 쇼오락의 '사건'이다 (0) | 2008.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