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기획 리뷰]

[기획리뷰]'좀비특집'은 대한민국 쇼오락의 '사건'이다

ddolappa 2008. 8. 14.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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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리뷰]'좀비특집'은 대한민국 쇼오락의 '사건'이다

 

 


['좀비특집'에 주목해야 되는 이유] 무한도전의 '좀비특집'은 방영 직후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박진감 넘치는 티저 예고편과 달리 다소 허망한 결과물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반면 일부 시청자들은 애초의 기획 의도가 수포로 돌아간 결과물을 오히려 오락의 소재로 삼은 대담한 연출과 허를 찌르는 발상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반된 반응들은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에 대한 시청자들의 상이한 기대와 서로 다른 수용태도가 충돌하고 있는 양상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한도전에서 기존의 버라이어티쇼가 주던 쾌감과 즐거움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방송 내용에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기존 버라이어티쇼는 그것이 춤, 노래, 만담, 코미디, 콩트 등 어떤 형식을 취하건 완결된 형식을 취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완제품으로 출시된 상품을 약간의 시간과 시청료를 지불하고 소비하면 되는 것이었다. 간혹 예기치 않았던 '리얼'한 요소들이 쇼에 끼어들어서 긴장감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편집을 통해 적절히 걸러지거나 시청자들이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수준에서 마무리되면서 쇼의 환영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좀비특집'은 시청자들의 기대와 환상을 여지없이 부수는 불완전한 형태의 쇼를 선보임으로써 논란과 당혹감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실패한 촬영담에 열광된 반응을 보였던 까닭은 기획 의도가 좌절되는 순간 생생하게 전달되는 '리얼'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쇼 오락과는 다른 문법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에 대해 당혹스러워 하던 시청자들은 점차 수용태도를 바꿔서 이해를 시도하며 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리얼'이 주는 즐거움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28년 후'에 대한 엇갈린 평가의 이유를 시청자들의 수용태도의 차이에서 찾는 것은 적어도 3가지의 오류에서 벗어나게 한다.


첫째, 너무나 잘 만들어진 티저 예고편으로 인해 부정적인 반응을 유발시켰다는 오류다. 마케팅 차원에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실망감이 더 커졌다는 이러한 해석은 부분적으로는 옳을지 모르지만 방송분 전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근거로 수용될 수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유재석과 이효리가 비 속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 시킨 후 무려 4주간이나 방영되어 원성만 샀던 '드라마 특집' 편과 '좀비특집'의 내용상의 차이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수용 방식의 차이를 주목할 경우 에피소드들 간의 질적 차이점이 보다 분명해지는 장점이 있다.


둘째, '28년 후'의 실험성은 인정하지만 프로그램 자체의 실패라는 해석의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래 계획했던 방향 대로 사건이 진행되지 않은 것과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 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두 가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해석하는 잘못된 평가는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무한도전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예기치 못한 사건의 전개는 기존의 버라이어티쇼에 익숙한 시각에서는 실패로 받아들여지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애청자들에게는 '리얼'한 재미를 주는 성공적 방송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다소 진부한 오락적 재미를 기준으로 삼아 새로운 오락적 가치를 폄하하는 태도는 수정되어야 한다. '버라이어티쇼'와 '리얼리티쇼'의 중간 단계인 무한도전은 완결된 형태의 쇼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적극적 해석을 통해 만들어가는 쇼라는 점에서 '열린 예술작품'(움베르토 에코) 혹은 '쓸 수 있는 텍스트'(롤랑 바르트)이다. 따라서 '오락은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나 '오락은 시청자들이 재미를 느꼈을 때 존재하는 것이다'와 같은 동어반복적인 오락의 정의로 무한도전이 제공하는 오락적 재미를 평가할 수 없다. 무한도전의 시청자는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재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경우 주어진 것보다 더 많은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중국 사막 특집'의 경우 단순히 '보여지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외화 낭비에 불과한 무의미한 도전이었겠지만, '보여지는 것' 너머에 있는 '숨겨진 의미'에 주목한 시청자들에게는 '수자원의 무기화', '인류가 함께 노력해야 할 환경문제'라는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좀비특집'은 TV 시청자들의 수용태도의 변화, '오락'의 개념 변화, 개방적 텍스트로서 오락 프로그램의 특성 변화 등 우리나라의 대중문화 안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혁명적 징후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일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리얼'은 언제 잠 깨는가]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의 등장 이후 모두가 '리얼'에 열광했지만, 정작 '리얼'의 정체에 대해서도 그리고 '리얼'의 '예측불가능성'이 지닌 위험에 대해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좀비특집'은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리얼'이 지닌 위험성을 유머러스하게 경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리얼'은 완벽한 프로그래밍을 방해하고 중단시키는 치명적인 오류나 바이러스로 판명되었고, 그래서 '리얼'을 표방하는 수많은 오락 프로그램들에서 이 위험천만한 '리얼'은 사건의 진행을 중단시키지 않는 선에서 순화된 채 수용되었다. 하지만 '리얼'의 진짜 얼굴은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중단시키는 '사건'이 발생할 때만 순간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좀비특집'은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좀비특집'은 일종의 '사건'이다. 반복될 수 없는 일회적 성격은 사건의 진품성을 증명한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 어느 누구도 그 사건의 '의미'를 규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건은 당사자 뿐 아니라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당혹스러움을 유발한다. 몇 달 간 공을 들인 시나리오가 불과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사건으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현장을 목격한 김태호 PD와 그 광경을 안방에서 시청했던 시청자들이 느꼈던 황당함은 사건의 이러한 속성에 기인한다.


'좀비특집'은 동시에 '연출된 사건'이다. 무한도전의 '28년 후'는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의 '기록'이자 오락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게 재가공된 '사건'이다. 재촬영본을 마치 원래의 기획 의도가 충실하게 이행된 원본이 있는 것처럼 소개한 까닭 역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우스꽝스럽게 연출하기 위한 의도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실패한 1차 촬영은 재촬영과 대비를 이루어 사건의 어처구니 없음을 강조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담당PD가 경위서를 써야만 했다는 자막이나  '다시는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지구를 맡길 수 없다'는 자막 역시 실제 사건이 유머 코드에 따라 연출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작비 초과로 경위서를 써야만 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부풀려 '좀비특집'을 엄청난 실패로 규정하거나 마치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사람들은 지독한 난독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거나 유머러스하게 '연출된 사건'을 곧이곧대로 믿는 지극히 우직한 사람들로 볼 수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기계에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머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촬영된 영화를 상영했을 때, 사람들은 역 안으로 돌진하는 기차가 자신들을 해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 혼비백산한 채 도망을 쳤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그것이 '연출된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웃고 즐길 수 있다. '좀비특집'을 둘러싼 공연한 헛소동을 지켜보면서 21세기를 살면서도 여전히 19세기적 인간형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헛소동은 우리를 또 다른 통찰에 이르게 한다. '연출된 사건'은 연출자의 의도가 개입된 사건이고, 따라서 '해석된 사건'이다. 그래서 시청자는 우연히 발생한 일회적 '사건'을 보는 동시에 연출 의도가 개입된 '사건'을 보게 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재현되고 있는 사건의 '내용'(what)이 아니라 재현의 '방식'(How)이다. 매스미디어가 실재 현실을 재현하는 방식에 따라 그것은 뉴스 보도나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고, 오락이나 광고일 수도 있게 된다. 이는 우리가 '현실' 혹은 '실재'라 부르는 것들이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효과'이지 '단 하나의 유일한 현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미디어에 의해 생산된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오인하게 만드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효과일 뿐이다.(폴 드 만) 그러니까 우리가 '리얼'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과 '어떻게'의 두 가지 측면을 지닌 일종의 형식이다.(니클라스 루만) 일부 언론이 '좀비특집'에 대한 잘못된 보도를 내보내는 것은 이 두 측면을 고의로 혹은 무지로 인해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좀비특집'은 적어도 네 가지 종류의 사건들이 뒤얽혀 있다. 촬영이 실패한 사건, 그것이 유머러스하게 연출된 사건, 대한민국 오락 프로그램 최초로 실패한 촬영이 오락의 소재로 사용된 사건, 그런 방송을 놓고 벌어진 논란이라는 사건.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 번째 사건이 지닌 의미이다.

 


['리얼'한 재미를 찾아서] 무한도전 이전에도 실패한 촬영이 여과 없이 방송을 탄 적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가 한 예이다. 김정민처럼 눈치 빠른 출연자가 자신이 '몰래 카메라'에 의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촬영은 실패하게 되었고, 그 장면이 그대로 방송되기도 했다. 그러나 '몰래 카메라'의 경우 촬영의 성공과 실패가 무엇보다 중요한 버라이어티 쇼였고, 실패한 촬영분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의도 역시 오락적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짜고 한 촬영'이 아니라는 사실성의 증명에 있다.


이와는 달리 무한도전의 '28년 후'는 좀비영화 장르의 내러티브적 쾌감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기 때문에 '몰래 카메라'가 받고 있었던 강제들(성공과 실패, 사실성의 증명)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이 실패한 촬영본을 그대로 방영한 것은 무한도전이 추구하는 오락적 가치가 '리얼한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록 애초의 기획 의도와 다른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좀비특집'을 놓고 '몰래 카메라'의 경우처럼 실패와 성공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논쟁일 뿐이다. 김태호 PD가 '좀비 특집'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며, 따라서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리얼한 재미'가 지니는 새로움에 있다.


'좀비특집' 이전에 그 원형적 모델이 되고 있는 에피소드로 '서울 구경 특집'이 존재한다. 출연자들 각자의 집에서 출발해서 남산, 도산공원, 문화방송국을 거쳐 선착순으로 도착하는 과정은 이후 '경주 보물찾기 특집', '돈가방을 갖고 특집', '좀비특집'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이 네 가지 에피소드들은 하나의 계열체를 형성하면서 스타일과 연출 방식에 있어 점차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출연자들을 일정한 상황에 내던져 놓고 정해진 코스를 통해 그들의 행동을 제약하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리얼'한 상황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공식이 처음 발견되는 '서울 구경'의 경우 '리얼'한 양상은 출연자들이 무한도전 내의 캐릭터가 아닌 스타 연예인으로서 시민들을 만날 때 발생하게 된다. 시민들은 유재석을 '유반장'으로 인식하는 게 아니라 '연예인 유재석'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적지만 정해져 있을 뿐 그 곳에 도착하는 수단이나 방법은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이 특집에서 형식적 통일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경주 보물찾기 특집'은 게임을 통해 출연자들의 행동을 제약함으로써 형식적인 면에서 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이 특집에서 새로 발견된 '리얼'한 모습은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수단과 방법을 제한하자 출연자들 사이에 극적 긴장감이 극대화되었다는 점이다. 서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출연자들이 비 속에서 다툼을 벌이는 모습은 '리얼함' 그 자체로 다가왔고, 여기에 영화 '내셔널 트레저'를 벤치마킹한 연출 방식은 어드벤처 오락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장르 영화가 줄 수 있는 이러한 쾌감이 발전해서 스타일리쉬한 형태로 완성된 에피소드가 바로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편이다.


'돈가방 특집'은 앞서 언급한 세 에피소드들의 장점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동시에 독특한 화면구성, 박진감 넘치는 편집, 탁월한 선곡 등을 통해 현존하는 대한민국 오락 프로그램이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 에피소드에서 '리얼리티의 효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연출되고 있다. 자막에 의한 연출자의 개입은 최대한 자제되어 극적 사실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청자의 몰입도를 최대한 이끌어내고, 인물들이 행동하는 실제 시간을 수시로 보여줌으로써 사건의 라이브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한 실제 돈이 들어 있는 가방에 대한 정보의 통제, 예측할 수 없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은 시청자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참여하는 효과를 낳았다. 특히 호시탐탐 박명수의 손에 든 돈가방을 노리는 노홍철의 날카로운 눈빛, 불안한 손 움직임, 가방을 낚아채고 질주하는 추격 장면 등에 대한 섬세한 화면 연출은 '리얼한 쾌감'에 미학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탁월한 연출로 손 꼽을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얼'의 양상들이 연출에 의해 만들어진 '현실의 효과' 혹은 '진정성이라는 허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오지에 나가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한데서 잠을 자는 것을 '리얼'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리얼리티'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있을 뿐이다. 실재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다큐멘터리 장르 역시 연출자의 의도, 촬영 시나리오, 편집에 의한 '리얼리티의 효과' 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은 미디어에 의한 구성의 결과물이다.

 


['좀비특집'의 첫 촬영은 왜 실패했나] 너무나 잘 알려진 리얼리티쇼인 '빅 브러더'에서도 '연출'은 개입하고 있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꾸준히 받기 위해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사건들은 일일 드라마의 주제 구조와 유사한 시나리오에 의해 연출되었다. 또한 출연자들이 하게 되는 게임의 규칙, 지원자 그룹의 연결, 과제의 선정 과정에서 연출자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빅 브러더'에 참여한 일반인들 역시 점차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연출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깨닫게 되면서 서사적 기능을 지닌 캐릭터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3중의 연출에도 불구하고 '빅 브러더'를 리얼리티쇼로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리얼'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쇼 '빅 브러더'에 대한 이러한 성찰의 결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무한도전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서울 구경 특집'에서 '좀비 특집'에 이르는 계열체들은 대본과 시나리오를 통해 출연자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은 정해진 스토리 라인에 적합하거나 그것을 진행시킬 때에만, 혹은 독자적으로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를 형성할 때에만 편집에 포함된다. 가령 '돈가방 특집'에서 보여준 박명수의 '찮은본색'이 원래의 시나리오 안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장면은 자신의 깨진 무릎을 가리키며 "이거 무슨 홍콩 영화 찍냐"며 푸념을 늘어놓던 박명수의 말 한 마디에 의해 만들어진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의 시나리오는 드라마나 영화 혹은 연극의 대본과는 달리 출연자가 암기해서 연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리얼'한 요소들을 '사건의 과정'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연출자와 작가들에 의해 결정된 연출 방향, 스토리의 진행과정, 예측 가능한 상황들에 대한 지시가 담겨 있는 시나리오는 주어진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벌이는 행동을 걸러내는 채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출연자들의 연기 역시 기존의 이해방식과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평론가 강명석은 이미 예전에 그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그는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연기에 대해 "일단 극본 자체가 없다. 모든 게 애드리브. 대사가 어디까지 설정이고 어디까지 실제 토크인지 알 수 없다. 평소 '무한도전' 진행하듯 콩트 연기를 하는 여섯 사람의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전혀 다른 기준이 필요할 듯"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강명석이 제기한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자기 연출'(Selbst-Inszenierung)이란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즉 각자가 개성 강한 캐릭터를 지니고 있는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연기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향으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리얼리티쇼 '빅 브러더'에 출연한 일반인들조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중들에게 자신을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어 갔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들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연기는 '자기 연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시나리오는 출연자들의 예측가능한 캐릭터에 기반하여 작성될 수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출연자가 효과적인 '자기 연출'을 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반대로 연기자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시청자들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자기 연출'을 통해 시나리오가 의도한 바를 무의식적으로 달성하게 된다. 간혹 이 과정에서 출연자는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돈가방 특집'에서 박명수에게 돈가방을 빼앗기 노홍철이 유재석 무리에게 다가와 "저 형은 연기와 실제를 혼동하고 있다"고 언급한 장면은 그 한 예이다.


그렇다면 왜 '좀비특집'은 첫 촬영에서 실패했던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무한 이기주의'로 표현되는 무한도전의 세계관과 좀비영화 장르의 특성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음모, 배신, 모략을 서슴지 않는 무한도전의 세계관은 출연자들 각자의 자유로운 경쟁을 허락하는 '서울 구경 특집', '경주 보물찾기 특집',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에는 적합하지만, 상호 협동, 신뢰, 희생 등이 요구되는 좀비영화의 세계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출연자들이 좀비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서바이벌 게임같은 촬영이라고 소개하고 촬영에 돌입한 것부터 실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 촬영이 실패한 가장 큰 원흉으로 지목되는 박명수의 행동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무한 이기주의'를 몸소 실천한 것이었지만 좀비들이 출몰하는 세계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은 아니었다.


결국 첫 촬영의 실패는 평론가 정덕현이 주장하듯 리얼 버라이어티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도, 국민예능과 마니아예능이 충돌했기 때문도 아니라 서로 화합할 수 없는 두 세계관이 충돌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정덕현은 "하지만 이 실험은 기획단계부터 무리한 점이 없잖아 있었다. 그것은 영화라는 장르와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장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기획의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점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의 성공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또한 좀비영화가 대중화된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근거로 "좀비편이 보여준 것은 '무한도전'만이 갖고 있는 국민예능다운 면모의 선구적인 실험성과, 또한 한편으로 그 낯설음이 가져오는 매니아적 속성의 이중성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 역시 지극히 안일한 해석일 뿐이다.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높아갈수록 대중성과 마니아성의 충돌 문제는 이미 제기되었던 문제였고, '좀비특집'을 그러한 도식에 맞춰 해석한 것은 지극히 피상적인 해답일 뿐이다. 제대로 된 평론가였다면 '좀비특집'이 보여준 새로운 '리얼'의 오락성에 보다 더 주목해야 되지 않았을까. 그럴 경우에만 무한도전의 실험성이 지닌 참다운 가치는 제대로 조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좀비특집'이 실패한 특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김태호 PD의 말에 좀더 신뢰감을 보이고 싶다. 비록 첫 촬영은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실패로 끝났지만 그러한 실패에서 새로운 오락적 즐거움을 이끌어낸 그의 뛰어난 연출력은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비특집'은 '서울 구경 특집'에서 이어져온 계열체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앞선 에피소드들의 보충이나 보완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로의 비약적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좀비특집'은 대한민국 쇼오락의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하며, 무한도전의 멈추지 않는 진화와 성장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한도전은 우리의 쇼 오락 프로그램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by ddolap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