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기획 리뷰]

무한도전의 '리얼'은 무엇을 말하는가?

ddolappa 2009. 6. 17. 22:47

무한도전의 '리얼'은 무엇을 말하는가?
- 이하나양에게 보내는 답변('지못미 특집')

 


이하나양, 소중한 의견을 개진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앞으로는 글이 조금 길겠다 싶으면 댓글 말고 붙임글로 쓰면 어떨까요?
하나양이 글을 쓰는 것도 힘들고, 또 다른 분들이 읽는 데도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아무튼 새벽에 잠이 깨서 게시판에 들렀다가 하나양 글을 읽고 몇 가지 떠오른 생각이 있어 견해를 밝혀보도록 할게요.

 


1. 무한도전은 어떻게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진화해 왔는가?


우선 무한도전이 '무모도', '퀴달', '무한도전'을 거치며 어떻게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진화해왔는가를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네요.


무한도전은 독립 프로그램이 된 시즌 3에 와서 처음으로 '국내 최초 리얼버라이어티쇼'라는 명칭을 사용했죠. 시즌3 제1편인 '미셸 위 특집' 편을 보면, 시즌1과 시즌2를 '무한도전 클래식'으로 규정하고, '시즌3'를 '리얼버라이어티쇼'라고 명칭하는 자막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셸 위 특집'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직까지 클래식 시절의 특징들과 새로운 특징들이 혼재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스포츠 스타에게 '도전'해서 '대결'을 펼치고 그를 위해 사전 '훈련'을 하는 과정은 '시즌1'의 특징이고, 미셸 위에게 인기도 조사를 해서 순위를 매기는 것은 '퀴달'의 시청자 앙케이트를 대신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시즌1에는 어처구니 없는 '훈련'에 비중을 두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몸개그로 웃기는데 초점을 맞추었지요. 반면에 '미셸 위 특집'에서는 '훈련' 부분이 과감하게 생략되고 대신 '캐릭터들' 간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개그가 전면에 배치되고 있습니다. '퀴달'을 거치며 다듬어진 캐릭터가 서서히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시즌1에서는 승패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유재석의 입에서 항상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라는 멘트가 나온 반면, 시즌3에서는 도전 자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승패에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독립 프로그램이 된 시즌3의 초반부는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나 시즌1과 시즌2의 형식적 특징이 모호하게 뒤섞여 있었고, 아직 시즌3만의 특색이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발리 특집' 편에서 '일찍 와주길 바래'를 시작하며 시즌3만의 본색을 드러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스튜디오와 야외를 오가며 펼쳐진 어정쩡한 쇼였다면, 바로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 무한도전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죠.


'일찍 와주길 바래'가 중요한 이유는 녹화가 시작되기 이전의 상태, 즉 쇼의 바깥에 있는 '리얼'한 현실의 풍경을 본격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퀴달' 시기에도 녹화가 잠시 중단되고 휴식시간 동안 무한도전 멤버들이 상품으로 진열해놓은 고추참치를 과자 젓가락으로 우걱우걱 먹는, 참으로 연예인답지 않은 모습을 언뜻언뜻 보여주긴 했습니다. 하지만 분장도 제대로 하지 않고 녹화시간도 어겨가며 부랴부랴 차를 타고 달려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이 보다 현실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느끼게 되는 건 분명하겠죠.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인데,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인 까닭은 이처럼 프로그램이 제작되는 과정 자체를 프로그램의 내용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버라이어티쇼에서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무대 뒤의 풍경, 그리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매니저, 코디, PD, 카메라 감독, 방송작가 등), 방송 시작 전 흐트러진 모습의 연예인들 등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거의 금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쇼에 대한 환상이 깨질 수 있었기 때문이죠.


쉬운 예로 70년대에 프로레슬링이 우리나라에서 무척이나 인기가 있었는데, 한 프로레슬러가 모든 게 각본에 짜인 쇼라고 폭로해서 대중들이 등을 돌리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실제 현실에서는 그리 친하지 않는 사이라는 걸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데, 방송에서는 둘도 없는 사이처럼 행동을 한다면, 시청자들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로서 무한도전의 탄생은 방송계의 금기를 허문 혁명같은 일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게다가 서구에서 이미 정착된 '리얼리티쇼' 장르가 아직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뿌리는 내리고 있지 못한 시기에 무한도전의 등장은 버라이어티쇼와 리얼리티쇼를 잇는 일종의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는 쇼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점에 예능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2.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완성


무한도전은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거치며 완벽한 형태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게 됩니다.


- 뉴질랜드 특집
- 김수로 특집
-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
- 모델 특집


무한도전의 모든 에피소드를 통틀어 가장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낸 에피를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뉴질랜드 특집'을 선택하겠습니다. 이 에피소드와 연결된 다른 에피소드들은 따로 정리가 필요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데, 그 중에서도 멤버들의 속마음을 알아본 롤링 페이퍼는 단연 압권인 장면이라 할 수 있죠. 롤링 페이퍼를 통해 정형돈과 하하가 어색한 사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이것은 다시 몰래 카메라를 통해 사실로 확인됩니다.


헌데 MT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롤링 페이퍼의 형식을 취했지만, 그것은 일종의 블라인드 토크쇼의 변형이라 할 수 있죠.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척하면서 개인의 사생활을 까발리고 뒷담화를 늘어놓는 방식은 이미 그 이전의 코미디 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것이지만, 무한도전은 이 대목에서 결정적으로 한 발 더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즉 버라이어티쇼였다면 롤링 페이퍼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 실제이건 아니건 그리 중요하지 않죠. 그 장면에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일이고, 그들의 실제 관계는 타블로이드의 영역에 속한 일이니까요. 다시 말해 쇼가 그들의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버라이어티쇼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무한도전의 탐구정신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쇼의 무대에서 확인된 사실을 통해 출연자들의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무한도전은 정형돈과 하하가 변화하는 과정 자체를 다시 쇼의 소재로 삼으면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재난 프로그램이나 인명 구조 프로그램이 '리얼리티쇼'인 건 버라이어티쇼와는 달리 방송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가령 네덜란드에서 방영된 '장기 기증쇼'는 수개월 간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가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환자로부터 장기를 기증받으며 막을 내리는데, 리얼리티쇼는 이처럼 단순히 쇼로 그치지 않고 참여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점에서 버라이어티쇼와 차별화됩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이 현실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다시 쇼로 연출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말했던, 리얼은 쇼의 관점에서, 쇼는 리얼의 관점에서 묘사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3. '김수로 특집'에 주목하자!


무한도전이 '리얼'을 포착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 중에는 몰래 카메라나 사생활 폭로처럼 흔한 방식도 있지만, 무한도전만의 특징적인 면을 꼽으라면 다음처럼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1) 쇼가 제작되는 과정 자체를 쇼의 소재로 삼기


무한도전의 각 에피소드들을 가면히 살펴보면, 쇼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쇼의 형태를 띠고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PD, 작가, 매니저, 코디 등 쇼를 만드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무한도전 이후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제작진들이 등장하는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대개는 내적 논리가 부족한 채 인기의 한 요소로 이용하다 보니 일반인보다는 조금 낫고 연예인보다 못한 준연예인 정도로 그들을 다루고 있는 것 같더군요.


2) 엄격한 형식미


'리얼'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해 무한도전은 본촬영 중인 상태와 아닌 상태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화면 상단에 '휴식중', '리얼 카메라', '잠시 촬영 중단' 등의 표시를 해서 그것이 '리얼'한 상황임을 시청자들에게 인식시켜 줍니다. 그리고 인터뷰 형식의 차용 등을 통해 출연자들의 당시 상황과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치나 다양한 형식들을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저는 바로 이 점이 무한도전의 아류작들과 달리 무한도전이 고도의 형식미를 갖추고 있다고 보는 결정적 근거입니다.


무한도전의 아류작들은 무한도전에서 성공한 요소들을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다 쓰다 보니,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간의 이음새가 엉성하고, 전체적인 짜임새도 허술한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반면에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무한도전은 굉장히 촘촘하고 치밀한 내적 논리를 갖고 에피소드가 전개되고 있죠. 대표적으로 '서울 구경 특집', '경주 보물 찾기 특집',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로 이어지는 발전과정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리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무한도전은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들에 대한 반성과 분석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다른 예능에서는 일단 정해진 포맷을 고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더군요. 무한도전은 '리얼'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여러가지 다양한 형식실험을 3년 넘게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그건 까나리 액젓을 먹고 토악질을 하거나 한데서 잠을 자는게 '리얼'의 전부는 아니라는 뜻도 되는 것이겠지요.


3) 감정의 리얼


'지못미 특집'에 대한 리뷰에서 제가 지적했던 점인데, 벌칙의상을 입고 거리를 나선 멤버들이 표현하는 부끄러움, 당혹감 등은 그러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의 감정 상태라 할 수 있지요. 김태호 PD는 끊임없이 멤버들을 당혹스러운 상황에 몰아넣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분노, 슬픔, 당혹감, 절망감 등의 '리얼'한 감정들이 표출됩니다.


'돈가방 특집'에서 노홍철에서 돈가방을 빼앗긴 이후 박명수의 표정에선 '분노'가 읽혀지는데, 코멘터리판에서 다른 멤버들은 그런 박명수의 표정을 보고 '리얼하다!'고 감탄합니다. 다시 말해 그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의 감정 상태라는 것이지요. 또 '일본 특집'에서 거리에 나가 춤을 추는 멤버나 그 광경을 지켜보는 다른 멤버들 뿐만 아니라 안방의 시청자들까지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흔히 명확하게 눈에 보이는 것만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감정의 표현도 표정에서 읽어낼 수 있는 '리얼'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김태호 피디가 멤버들을 자꾸만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도 연기에 서툰 그들에게서 생생한 느낌을 뽑아내기 위한 전략적 시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제가 언급한 위 세 가지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특집이 바로 '김수로 특집'이라고 봅니다. 특히 스튜디오 안에서 김수로와 무한도전 멤버들 간에 벌이는 팽팽한 신경전은 정말 일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특집이 그 동안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건, 멤버들에 감정이입된 시청자들이 김수로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에게 꼼짝 못하는 모습을 보는게 불편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네요.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멤버들의 다양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담아내는 카메라, 그들의 심리상태를 꼼꼼히 지적해주는 자막, 3가지 공간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건들을 매끈하게 이어붙인 현란한 편집기술 등은 정말 눈여겨 봐야 할 부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4. '리얼'의 확장


이하나양은 무한도전의 확장의 시작을 '서울 구경 특집'으로 보고 계신 듯한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무한도전이 보다 넓은 '리얼'의 세계로 발을 내민 첫 시도는 '모델 특집'이 아닐까 하네요. 실제로 대형 패션쇼 무대를 서게 되면서 무한도전의 위상 자체가 변화한 걸 실감하게 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모델 특집'을 시청하며 놀랐던 점은 리얼리티쇼 개념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을 뿐 아니라 해외의 유명 리얼리티쇼와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을 만큼 높은 퀄리티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델 특집'이 28회와 29회이니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 무한도전의 면모는 2006년도에 거의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에게서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취지로 '하나마나 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와 수익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7년도인데, 저는 이 시기를 '리얼'의 영역을 확장한 시기로 보기보단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둔 시기로 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2008년 초 30%를 육박하는 시청률로 나타났다고 보는게 맞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진짜 본격적으로 다양한 형식실험을 거치며 세계관의 확장을 시작한 시기는 2008년도 초부터가 아닐까 합니다. 이 시기에 무한도전이 다루고 있는 장르와 소재의 다양성은 그 어느 해보다 넓고 풍부해졌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서울 구경 특집'에서 포인트는 캐릭터들 간의 대결이지 '리얼'한 영역을 확장하려는 의도는 부족해 보입니다. 제가 '지못미 특집' 리뷰에서 언급했던 유재석이 시민이 비를 맞지 않도록 가려주는 장면정도가 '리얼'의 영역을 무한도전의 세계 안으로 흡수하는 전형적 방식을 보여주는 예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원래는 제가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들을 '기획 리뷰'로 쓰기 위해 실로 방대한 자료들을 컴퓨터 안에 저장해놓았더랬습니다. 오락 프로그램을 개척한 선배 피디들과 김태호 피디 간의 영향 관계를 살펴보고, 'X-맨'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단초를 제공한 오락프로그램의 지형도를 그려보고, 박진영과 이영자가 시도한 리얼리티 쇼 장르가 왜 공중파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무한도전이 어떻게 버라이어티쇼와 리얼리티쇼 간의 간극을 메울 수 있었는가 하는 내용을 정리한 후에 무한도전 첫회부터 '무한도전 다시보기 리뷰'를 쓸 계획이었습니다만, 제 컴퓨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모든 자료들을 상실한 지금 주말마다 올리던 '발리뷰'마저 밀린 상태입니다.ㅠㅠ

 


5. 프로그램의 자의식


김태호 피디는 무한도전의 자막이 전지적 작가 시점이냐는 질문에 자신이 신도 아닌데 어떻게 멤버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겠냐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이라면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관점에서 자막을 쓴다고 밝혔지요.


그러니까 하나양이 "제 3자의 입장처럼" 무한도전의 자막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을 드리도록 하지요. "제 3자의 입장"은 쇼의 세계 바깥에 위치한 것일까요, 아니면 쇼의 세계 안에 위치한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것은 분명 쇼의 바깥에서 쇼의 세계를 관찰하는 시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무한도전이란 쇼의 세계에는 이미 쇼의 외부 세계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쇼의 외부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며 때로는 비웃기도 하고, 때로는 꾸짖기도 하고, 또 때로는 그들의 요구나 질문에 재치있는 답변을 주면서, 쇼의 세계를 구성하는 이 기묘한 목소리의 존재!


저는 이처럼 무한도전의 세계 안에 이미 자막의 존재로 인해 '외부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고, 그래서 안과 바깥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도전의 세계가 구축되어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존재방식은 '리얼'의 영역을 안으로 끌어들일 때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지요. 그래서 정형돈의 에네르기파를 피하는 여성의 모습은 쇼의 법칙에 적용받아 무한도전의 세계 안으로 들어오게 되지요.


예전에 저와 린하 그리고 수많은 분들이 무한도전이 마치 생명체와 같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조금 어려운 말로 '자기 준거체계' 혹은 '자생적 조직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이하나양이 몸 외부에 존재하는 음식물을 섭취하게 되면 몸 안으로 들어와 다양한 영양소로 분해되어 이하나양의 몸의 일부로 변하게 되는 것이지요. 음식물(외부에 존재하는 '리얼')을 자신의 몸 안으로(시스템 안으로) 받아들이지만 이하나양은 여전히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성을 유지하게 되지요.


무한도전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동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프로그램 바깥에 존재하는 '리얼'한 영역에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작동방식을 그대로 적용시켜 분해를 해서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며, 무한도전은 영역을 확장하면서도 독립적인 유기체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지요. 무한도전은 이러한 원리를 다른 장르를 소화할 때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데, 짝짓기 버라이어티쇼를 재구성해서 무한도전식으로 소화한 'MT 특집'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그런데 다시 자막 문제로 돌아가면, 무한도전의 자막은 쇼의 바깥에 있으면서 동시에 쇼의 세계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이라는 유기체와 그것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 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고 있는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풀어보면, '나'라는 존재가 자의식을 지닌 독립적 개체인 까닭은 나와 환경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나와 환경 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자의식'을 지니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고, 독립적 주체로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이 고도의 자의식성을 지녔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점 때문입니다. 단순히 '미친소'에 대해 언급을 했다고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이 자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그 자막은 단순히 광우병에 걸린 미국소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도전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 정준하가 무대에서 미끄러진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지요.


사람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그러한 자막을 사용한 용기를 높게 평가해서 '의식을 갖춘' 프로그램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여기에서 말하는 '의식'은 제가 말하는 프로그램의 '자의식'과 구분되는 의식으로, 그러한 자막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제작진의 '정치적 의식'을 뜻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김태호 피디 개인이 임의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도 아니고 자막 제작도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막을 꼭 김태호 피디 개인의 정치적 의식이라고 보는 것도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태호 피디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미친소' 문제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언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으니까요.


우리가 정말 높게 평가해야 할 부분은 김태호 피디가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녔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판단을 내린 결정 자체가 아닐까요. 이는 제가 리뷰에서도 지적했던 부분인데, 오락 프로그램에서 정치적 수사를 과감하게 사용하는 결정 자체야말로 고도의 정치성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6. 텍스트의 자기반영성


제가 '지못미 특집' 리뷰에서 언급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흔히 소설에 대한 소설, 즉 '메타 픽션'으로 분류되곤 합니다. 작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1부를 출판해서 대성공을 거두자 이를 표절해서 '돈키호테' 2부가 세르반테스도 알지 못한 사이 출판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돈이 된다면 성공한 아이템을 표절하는 일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횡행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그래서 화가 난 세르반테스는 부랴부랴 '돈키호테' 2부를 쓰게 되는데, 그 내용 중에 실제 현실에서 있었던 소설 '돈키호테' 1부의 성공과 표절 사건이 언급되고 있는 부분을 써넣게 됩니다.


그런데 허구적 인물인 돈키호테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조우하는 이 기막힌 장면은 제가 앞에서 말한 무한도전의 특성과 일치하지 않나요? 문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텍스트의 자기반영성' 혹은 '텍스트의 자기 지시적 성격'이라고 부릅니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니클라스 루만은 이를 시스템의 '자가적 생산 체계'란 말로 표현하기도 했구요.

 


7. 웃음 이론


'지못미 특집'을 쓰기 위해 제가 웃음과 관련된 논의를 정리하다 보니 대충 몇 가지 견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물론 그러한 견해들도 대개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유래한 다양한 견해들을 해석하고 보충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지만, 완결된 형태로 이론화했다는데 초점을 맞춰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월성 이론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제시된 견해인데, 우리가 웃음을 웃게 되는 건 타인의 열등함이나 자신의 예전 모습과 비교해서 우리 자신의 우월성을 자각하게 될 때 웃게 된다고 합니다. 홉스는 그러한 웃음이 유발되는 순간을 '갑작스런 승리감'(sudden glory)으로 표현했더군요. 타인의 실수나 약점 등을 보고 웃는다는 점에서 다분히 '악의성'이 내포된 웃음이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지못미 특집'에서 분장한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이 '악의적' 웃음을 짓게 된다고 쓴 것은 이 이론에 근거하고 있지요.


2) 불일치 이론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란 저서에서 제시된 견해인데, 어떤 개념과 그 개념이 관계를 맺고 있는 실제 대상들 간에 어떤 불일치가 갑자기 지각되었을 때 사람은 웃게 된다고 합니다. 어떤 일에 잔뜩 기대를 품고 기대를 했다가 그 일이 어처구니없이 끝나게 될 때, 허탈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경우가 그런 경우이지요. 가령, 만화에서 엄청나게 큰 그림자에 겁을 집어먹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보니 그림자의 주인공이 작은 새끼고양이로 발견될 경우 웃음이 유발되지요. '좀비 특집'에서 김태호 피디가 의도했던 바도 바로 이 이론에 근거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물론 일부 시청자들에게는 분노 바이러스를 유포하기도 했지만.


3) 경감이론

 

프로이트의 '위트와 무의식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견해인데, 그는 웃음을 금기나 장애로 인해 우리 내부에 축적된 불필요한 에너지가 방출되는 현상으로 보았습니다. 웃음을 통해 우리는 심리적 혹은 감정적 긴장상태를 경감시킬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건강한 정신적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남자들이 성적 농담을 주고받으며 실실거리며 웃는 것도 그들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견해로 바흐친의 '카니발적' 혹은 '그로테스크한' 웃음이론, 베르그손의 상징적 징벌로서 웃음이론,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실된 저서인 '희극론'을 재구성한 웃음 이론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최대의 웃음 이론으로 알려진 베르그손의 견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기자들이나 평론가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르면 생명을 지닌 유기체인 인간이 마치 기계같은 경직성을 내보이게 될 때, 그러한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종의 징벌로서 웃게 된다고 합니다. 가령, 멀쩡히 지나가던 사람이 돌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웃게 되면, 넘어진 사람은 부끄러워 하며 걸음을 걷는데 보다 주의를 하게 되는데, 이는 웃음이란 징벌을 통해 성공적으로 사회적 질서에 복귀한 경우라 할 수 있겠네요.


또 다른 예로 '모던 타임즈'에서 찰리 채플린은 공장에서 나사를 돌리는 일을 반복하다, 퇴근한 이후에도 곁을 지나가던 여성의 옷에 달린 단추를 나사로 착각하고 기계적으로 나사를 돌리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데, 이 때 생겨나는 웃음에는 비인간적으로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한 징벌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견해가 지닌 문제는 제가 리뷰에서도 지적을 했던 것처럼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웃음을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것이 웃음을 통한 교정이 가능한 것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 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랄 수 있고요.


하지만 만약에 그의 이론의 방향을 바깥으로 향하는 대신, 우리 내부로 향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궁금해지더군요. 웃음을 통한 교정이나 징벌은 웃는 자가 기존 가치질서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공격성을 띤 체벌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인데, 만일 그 웃음의 방향을 내부로 향하게 된다면, 기존 질서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가능해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만약에 이러한 의식을 공유한 사람들이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웃음에 근거한 공동체의 형성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단서를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제가 예로 든 '일본 특집'에서 저는 그들이 당하는 굴욕 때문에 저까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경험을 했고, 그래서 그들에게 동정심이 생기면서 그들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더군요. 사실 그 동안 그들이 끊임없이 당해온 수치스러운 경험들이 반복해서 축적되며,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애정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는데, 이는 무한도전의 고정 팬들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상태가 아닐까 싶더군요. 그래서 저는 무한도전 팬들이 일종의 심정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전개한 것이니 그냥 패스하셔도 될 것 같네요.^^ 다만 왜 동물들과 달리 사람은 웃음을 웃을 수 있는 것이고, 또 무한도전의 웃음은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또 어떤 성격을 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 앞으로 계속해서 고민해 보도록 할게요.


아무튼 또 글을 쓰다 보니 방대한 분량이 되고 말았네요.ㅋ


어제 방송분을 보다 보니, 무한도전이 출연자 각 개인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지못미 특집' 2탄, 'PD 특집', '매니저 특집'을 묶어 '미디어 특집' 연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멤버들의 중요한 활동무대인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심도있는 탐구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 자꾸 리뷰가 밀리면 곤란한데, 제가 좀 더 속도를 내야 하는 것이겠죠.^^


조만간 다시 찾아 뵙도록 할게요.


그럼 이만.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