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4> 무한도전의 만찬엔 색다른 디저트가 있다

ddolappa 2008. 9. 1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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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4> 무한도전의 만찬엔 색다른 디저트가 있다

 

 


무한도전 120회 080906 : 다찌지리와 리남매 - 영웅들이여! 런던행 금메달 열차를 타라!

 


금메달 마케팅을 넘어서!


무한도전의 '올림픽 3부작'이 잘 차려진 정식이었다면, 그 뒤에 내놓은 '다찌지리와 리남매'는 식사를 완성시키는 디저트 같은 방송이었다. 다소 기름진 메인 요리의 뒷맛을 잡아주면서 행복한 포만감이 들게 하는 차갑고 달콤한 셔벗의 맛과 같다고 할까. 그래서 디저트까지 입에 넣고 천천히 음미해본 다음에야 만찬을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제공한 디저트의 맛은 조금 색다른 데가 있다.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을 초대해놓고, 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리'를 패러디하다니! 무엇인가 서로 잘 어울리지 않은 것 같은 이러한 조합에는 사실 기존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고민이 담겨 있다. 김태호PD는 무한도전 출연에 적극적 태도를 보여준 이용대 선수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올림픽 영웅으로 충분한 예우를 해줘야 마땅하지만 몇몇 언론의 지적처럼 금메달리스트를 이용한 마케팅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 제작진의 고민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금메달리스트를 이용한 마케팅'이 무엇인지, 또 그것의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야만 무한도전의 색다른 시도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간파할 수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제적 행사를 치루고 나면 '영웅'의 칭호를 받는 스포츠 스타들이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언론과 방송은 이들을 경쟁적으로 화제거리로 다루어 '한철 장사'에서 최대한 이득을 뽑아내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게 된다. 연금이나 후원금만으로 부족한 선수들에게도 여론의 이러한 관심은 굳이 나쁠 것이 없어 보인다. 비인기 종목의 경우 국민들의 관심을 받을 절호의 기회이고, 선수 개인 역시 방송 출연 이후 이어지는 CF 등으로 한 몫을 잡고 자신의 몸값을 높일 수 있는 찬스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스포츠 스타들을 다루는 방식이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 아닐까. 선수들의 불우한 성장기과 궁핍한 훈련환경을 조명하는 방송은 그나마 양반 축에 속한다. 연예인도 아닌데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춤, 노래, 개인기를 펼친다거나 연예인들과의 즉석만남을 갖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면 때로는 재미를 넘어 불쾌한 심정이 들기도 한다. 방송이 연예 흥신소는 아닐찐대 자신들이 '영웅'이라 칭한 선수들을 한낱 놀이개감 정도로 취급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올림픽은 진지하고 신성한 행사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드라마틱한 인간 승리를 연출한 선수들을 우스꽝스럽게 다루는 이율배반적 태도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야심만만'에 출연해서 '텔미'춤을 추고 있는 왕기춘 선수의 모습)


흥신소 수준의 방송 유형이 있다면, 그 반대로 선수들에 대한 과도한 영웅화 작업으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방송이 있다. 어린 시절의 행적까지 면밀히 추적해서 재구성된 선수들의 일대기는 마치 그가 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위해 선택된 운명인 것처럼 다루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들이 겪어왔던 수많은 고난과 역경은 현재 그의 영광을 더욱 빛내주는 장식품이 될 뿐 선수들의 처우나 운동환경 개선을 위한 조직적이고 제도적 노력은 외면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방송 출연 이후 그 선수가 다음 경기에서 성적이 부진하기라도 하면 스포츠 스타들과 방송의 즐거웠던 나날은 곧바로 비난의 칼날로 변하기 일수다.


방송의 스포츠 스타 마케팅의 모든 부작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임춘애 선수의 경우를 들 수 있다. 1986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국민들의 눈과 귀는 가녀리다 못해 비쩍 마른 듯한 인상을 풍기는 한 소녀에 집중되었다. 불모지나 다름 없는 육상 중장거리에서 무려 세 부분이나 걸쳐 금메달을 거머쥐었으니 그 놀라움은 클 수밖에 없었고, 돈이 없어 우유는 먹지 못하고 라면만 17년간 먹고 운동을 했다는 소녀의 가슴 아픈 사연은 영화 '넘버 3'의 '불사파' 두목 송강호의 대사처럼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 되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넘버 3'에서 송강호는 임춘애 선수를 현정화 선수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86 아시안 게임 육상 3관왕에 오른 임춘애 선수) 


그러나 ‘임춘애는 17년간 라면만 먹고 금메달을 땄다’는 기사는 초등학교 때 외부에서 증정받은 라면을 간식으로 먹었다는 말이 와전된 것이었고, 88 올림픽에서 임춘애 선수가 올림픽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하자 라면 먹던 애가 배가 불러 헝그리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라면 소녀' 임춘애 선수의 성공 신화는 불과 2년만에 막을 내렸고, 몸과 마음에 상처만 가득 안고 그녀는 대학 3학년때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그 뒤에 비인기종목인 육상에 어떤 지원을 하고 있는 지는 무한도전이 이미 보여준 바가 있으니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다찌지리들'이 만든 호방한 영웅담


그러나 무한도전에 출연한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 이효정 선수와 이용대 선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연예인과의 러브라인이나 곤혹스러운 개인기 퍼레이드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평균이하 급격한 체력저하의 사내들'인 '다찌지리들'과의 처절한 배드민턴 대결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결은 이효정, 이용대 '리남매'가 무한도전의 '찌지리들'에게 도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에 기존의 스포츠 마케팅 공식에서 벗어난 무한도전의 전략이 숨어 있다.

 

 

  
무한도전이 패러디하고 있는 영화 '다찌마와리'는 비밀첩보원이 세계 각지를 누비며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내용을 다룬 일종의 영웅담이다. 6,70년대의 다양한 액션영화들을 짜깁기해 마이너적 감수성을 덧입힌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무한도전은 독특한 스타일뿐 아니라 서사구조 역시 차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효정, 이용대 선수는 현실에서뿐 아니라 쇼 오락이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도 영웅적 인물들로 묘사된다.

 

 

실제로는 무한도전팀이 두 올림픽 영웅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맞겠지만, 오프닝에서 볼 수 있듯 이야기는 '리남매'가 '찌지리들'에게 도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리남매'가 정의를 수호하는 영웅들이라면, '찌지리들'은 반칙과 편법을 일삼는 악당들로 그려진다. 이효정 선수와 이용대 선수는 '찌질한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웅이자 '악당'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출동해서 맞서 싸워야 하는 '정의의 사도'로서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효정, 이용대 혼합복식조가 승리를 거두게 되었을 때, 그것은 단순히 게임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마지막에 웃는 건 정의'라는 자막은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적 형식의 차용이 강조되어야 하는 까닭은 무한도전이 기존의 스포츠 마케팅 방식을 부정하는 전략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오락 프로그램들은 생생한 '신상'인 올림픽 스타들의 이미지를 단순히 반복하면서 프로그램 자체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해왔다. 그러나 금메달을 탔을 때의 감격스러운 순간이나 선수의 특이한 제스처가 방송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되며 빠른 속도로 소비되면서 오히려 쉽게 식상해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운동선수들을 연예인처럼 취급하는 태도는 탈신비화를 넘어 오히려 선수의 이미지를 망치기 일수였고, 과도한 영웅 만들기 역시 거부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반면 무한도전은 굳이 연예인들과의 즉석만남을 하지 않더라도, 또 선수들의 개인기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선수의 인간적 면모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배드민턴 라켓보다 오히려 막대기를 가지고 셔틀콕을 더 잘 받아내는 박명수의 모습을 보며 황당해 하는 모습이나 무한도전이 개발한 기발한 신무기 라켓에 막혀 당황해 하는 선수들의 모습 등에서 선수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이렇게 포착된 이미지들은 다시 영화적 형식으로 포장되고 서사적 맥락 안으로 흡수되어 시청자들은 선수들의 현실 속 이미지 대신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연출된 이미지를 소비하게 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선수들의 실제 이미지의 소모적 소비는 최소화된다.

 

 
이효정, 이용대 선수는 무한도전 출연자들과의 대결 과정에서 여러가지 핸디캡의 적용을 받아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마침내 빼어난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영웅 서사의 구조에 따라 재조합되어 방송에서 그들이 영웅이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은 정서적으로 그들을 영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 여기에 무한도전이 그들에게 부여한 '도전자' 이미지는 세계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노력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운명에 의해 금메달을 따도록 선택받은 신적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야 하는 도전자로 그려지게 된다. 그 선수들이 간혹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두게 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뛰어넘어야 할 시련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 되는 셈이다.


특히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순간에 보여준 제스처로 '윙크보이'란 별명을 얻게 된 이용대 선수의 이미지를 무한도전이 활용하지 않은 점은 칭찬할 만하다. 수려한 용모에 연예인 못지 않은 입담과 끼를 갖춘 이용대 선수는 방송사들이 탐낼 만한 스타성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올림픽 스타 마케팅의 좋은 표적감이 되어 왔다. 대개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이미 확립된 그런 이미지를 단순히 반복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려 해왔기 때문에 무한도전 역시 의혹의 시선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이용대 선수의 윙크 대신 그것의 부정적 재현인 '살인윙크'를 보여주면서 달콤한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있다.

 

(금메달 획득시 이용대 선수가 보여준 윙크)

 

(무한도전 출연시 보여준 '윙크보이' 이용대 선수의 윙크. 이 장면은 방송되지 않았다)

 

(이용대 선수의 윙크 대신 '살인윙크'를 선보이고 있는 노홍철과 전진) 

 
'다찌지리들과 리남매'의 오락적 긴장감과 재미는 오히려 그들의 진지한 대결에서 발생하고 있다. 기발한 신무기 라켓들과 여러가지 핸디캡 적용을 통해 많이 줄어든 그들 간의 격차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고,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들의 일방적 승리를 예상했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보기 좋게 어긋나게 만들었다.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탁구선수 김택수가 보여준 32구 랠리를 방불케 했던 정준하와 이용대 선수 간의 랠리쇼는 얼마나 놀랍던가! 선수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정형돈의 360도 턴 백핸드 기술은 얼마나 우아하던가! 비록 '다찌지리들'이었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들의 역할이 주인공을 빛내는 들러리 수준으로 격하되는 것을 막고 있다. 이 점 역시 무한도전만의 차별화된 시선으로 기억될 만하다.


 

스타일의 변화를 즐겨라!


일정한 패턴이 없는 무형식성을 무한도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스포츠 스타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만큼은 예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형화된 패턴을 보여준다. 대결을 앞두고 펼쳐지는 어처구니 없는 훈련과정, 게스트와의 대결, 그리고 패배의 수순이 '다찌지리와 리남매'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 스타일의 변화를 주의깊게 관찰하지 못한 성급한 결론일 뿐이다.


첫번째 훈련으로 치뤄진 '정확도 보기' 테스트는 최초의 벌칙 내기가 탄생했던 '앙리 특집'의 '빌헬름텔 P.K.'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당시에는 정준하의 파마 머리를 따라하는 벌칙이 마련되어 노홍철이 희생양이 되었다. 이번에도 상대편의 외모를 망가뜨리는 벌칙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동일한 형식이 반복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대결과정을 연출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출연자들은 서로의 못난 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벌칙을 제안하고, 결정된 선택사항은 CG를 통해 이미지로 구현된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을 정면에서 잡아 그들의 대결 구도를 부각시킨 다음, 그들이 공격할 때마다 화면을 오가며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비추게 된다. 그들이 경기를 할 때 흘러나오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의 경쾌한 배경음악은 철권이나 스트리트 파이터와 같은 대전 격투게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 일으킨다. 다시 말해 그들의 대결 장면은 컴퓨터 오락처럼 연출되어 있다.

 

 

 (대전 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들에 맞설 신무기 라켓을 소개하는 장면 역시 주목할 만하다. '쌍라켓', '360도 회전 쌍절라켓', 'X반도 라켓', '뚱보라켓'과 '뚱뚱보라켓' 등은 봉, 쌍절곤, 철퇴와 같은 쿵푸무술의 무기들을 연상시키고 있고, 그래서 무기를 소개하는 장면 역시 중국의 코믹 액션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연출되고 있다. 심지어 회전하지 않는 라켓을 놓고 '착한 사람 눈에만 돌아간대요'라고 말하는 억지마저 주성치 영화를 닮아 있다. 박명수가 배드민턴 라켓보다 막대기, 국자, 원통, 매직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물건을 이용해 달인다운 풍모를 보여주는 것 역시 '소림축구'나 '쿵푸허슬'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정형돈이 젓가락과 입으로 셔틀콕을 잡아내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이다.

 

 

(주성치 주연의 영화 '소림축구'의 한 장면)

 

(영화 '쿵푸허슬'의 한 장면) 

 

장르 간의 융합 혹은 퓨전이라 부를 만한 무한도전의 인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08년 여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빠삐놈'마저 끌어들이고 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테마음악으로 사용된 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리듬이 빙과제품 '빠삐코' CM송과 유사하다는데 착안을 해서 만들어진 '빠삐놈'은 이후 다양한 영상물들과 결합되어 풍요로운 파생물을 양산했는데, 전진의 노래 'Wa'의 영상과 '빠삐놈' 음악의 합성물도 그 중 하나이다. 인용된 '빠삐놈'의 경우 전진이 안경을 착용하는 모습을 보고 노홍철이 언급하게 되면서 소개되고 있다. '빠삐놈'은 이미 K본부 '개그콘서트' 코너 중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소개된 바가 있지만, 네티즌들이 만든 합성 영상이 음악과 함께 공중파에 소개된 건 무한도전이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무한도전은 '진기명기', '생활의 달인', '스펀지' 등과 같은 프로그램들조차 자유롭게 언급하며 인용한다. '모든 구기종목 중에 가장 빠른 공'이란 자막은 직접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포테인먼트쇼 '스펀지'를 지시하고 있다. 벌써 3년 전인 2005년 10월 29일에 방영된 '스펀지'에서 '구기 종목중 가장 빠른 공은?'이란 주제로 축구, 야구, 배구,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 아이스하키, 골프 등 8개 구기종목의 볼 스피드를 측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배드민턴 국가대표 김동문 선수의 셔틀콕이 시속 345km를 기록해서 가장 빠른 속도의 구기종목으로 선정되었다. 무한도전에서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송판 격파실험도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게임, 영화, 인터넷 유행어, 타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인용'하는 방식은 무한도전을 모자이크 혹은 거대한 인용문의 집합체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인용될 때에는 무한도전 특유의 마이너적 감성이란 프리즘을 거쳐 굴절되거나 변형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다양한 인용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의 스타일이 유지될 수 있는 건 이러한 원칙이 비교적 충실하게 지켜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인용'은 '해석'을 전제로 한 생산적 활동이자 '차이'를 생산하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독창적 해석과 차이가 없다면, 그것은 뻔뻔한 표절이거나 비생산성과 무능력을 증명할 뿐이다.


소재를 활용할 때도 무한도전은 이러한 인용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벌써 3년 전에 한 송판 격파 대신 셔틀콕으로 수박과 참외를 격파하는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송판 격파는 해봤어도 수박은 처음'과 같은 자막은 '스펀지'의 실험을 염두에 둔 동시에 '송판 격파'를 안일하게 반복하고 있는 한 프로그램을 비판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베끼기 능력이 창조성으로 오인되는 에피고넨의 시대에 무한도전다운 일침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문화는 흐르지 않고 고여 있게 되면 썩고 부패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인류의 문명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창조성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도 넓은 맥락에서 보았을 때 문화를 살찌우는 가장 기본적 가치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다른 영역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모범적이라 할 만하다. 한 네티즌이 드라마 '이산'과 무한도전을 합성한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그것에 자극을 받아 무한도전팀이 '이산'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봇짐장수로 분한 박명수의 모습은 수많은 합성사진을 양산했고, 그 사진들은 다시 무한도전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선순환적인 교류 과정을 통해 대중문화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여기에서 더욱 주목할 만한 사실은 '대중문화'가 자본주의의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된 싸구려 문화상품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대중문화는 거대 문화산업에 의해 생산되고, 매스미디어에 의해 유통되어, 대중들이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상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는 대중 스스로가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를 창조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공중파 방송인 무한도전이 최첨단에서 가장 발빠르게 반영하며, 때로는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은 오락 프로그램의 아방가르드이다.


"물론 우리가 하는 모든 게 새로운 건 아니에요. 다만 입던 옷이라도 다른 사람이 입으면 달라지는 것처럼, 기존 포맷이라도 새로움을 입히고 싶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어요."(김태호 PD)

 


무한도전이여, 어디로 가는가?


올해 초 무한도전은 '사전제작'과 '이종교배'란 차별화된 전략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베이징 올림픽 특집'도 무사히 끝마친 현재 지난 상반기 동안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차분히 반성해볼 적절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럴 경우 가장 눈에 띄는 건 스타일의 변화라 할 수 있다.


2006년 독립 프로그램이 된 후 무한도전은 해마다 강조점을 이동시켜 변화를 주어왔다. 2006년에는 '일찍 와주길 바래' 이후 '뉴질랜드 특집'이나 '빨리 친해지길 바래' 시리즈 등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정립시켰다. 2007년에는 '하나마나 행사', '강변북로 가요제', '달력만들기 특집', '고맙습니다 콘서트' 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준다는 기획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면 2008년은?


올해 방영된 '식목일 특사', '경주 보물찾기 특집', '사랑의 도서관', '무한 창작동요제', '놈놈놈 특집', '대체에너지 특집2' 등의 에피소드들에서 알 수 있듯 무한도전은 환경보호, 대체에너지 등 시사적인 주제를 중점적으로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제적 측면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형식 실험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 완결성을 갖춘 에피소드를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으로 영향을 받은 후속 프로그램들이 아직도 '리얼 버라이어티'란 형식에 갖혀 멈춰서 있다면, 무한도전은 이제 스스로가 만든 형식을 부수며 새로운 방향성에 대한 모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올해 제작된 에피소드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호 PD는 한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항상 예능은 포맷이 하나 나오면 다 같이 가고 또 같이 망하고, 그러지 않나. 이런 걸 반복하는 게 너무 싫었다. 지금 만약 〈무한도전〉 때문에 ‘리얼 버라이어티’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이런 틀을 깨는 것도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지 무한도전에서 '리얼 버라이어티 무한도전'이란 표어는 자막이나 유재석의 멘트를 통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영화, 드라마, 케이블 TV 등 다양한 장르들과의 융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무한도전이란 쇼가 추구하는 방향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형식이 가공되지 않은 '리얼'한 요소를 쇼의 주된 원재료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극적 형식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할 수밖에 없다면, 올해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그 어떤 에피소드보다 그리고 그 어떤 오락 프로그램에서보다 완성도 높은 형식미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좀비 특집'은 예외적인 경우인데, 원래의 기획에서 어긋난 그 에피소드에서 '재미'를 찾기 위해선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틀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자막과 유재석의 멘트를 통해 그런 부분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수식은 무한도전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특성들 중 하나로 변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오락 프로그램들이 '리얼'에 집착을 보이는 순간 '리얼'의 요소를 유지하며 '형식미'를 추구하는 이런 변화 역시 김태호 PD의 한 인터뷰에서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캐릭터만 잡히면 다른 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신 템포를 강약약으로 잡고 있다. 강은 리얼한 것들, 약은 콘셉트로 잡는 것들. 그런데 반응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더라. 그래서 배합의 문제가 중요한 것 같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면보다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라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김태호 PD)


그 이전까지만 해도 김태호 PD는 '강'을 '리얼한 것'으로, '약'을 '콘셉트로 잡은 것'으로 기계적으로 구분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리얼'한 것이 반드한 '강'한 재미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자, 그는 이들 간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는 이 양자를 분리해서 다루는 대신 '리얼'한 것을 '콘셉트'로 포섭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실험을 하게 된다. '서울 구경 특집', '경주 보물찾기 특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로 이어지는 계열체는 그래서 중요하다. 기획과 시나리오만으로 예측불가능한 '리얼'을 성공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특집들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이러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바탕은 바로 출연자들의 확고하게 잡혀 있는 캐릭터에 있다. "캐릭터가 익숙해지면 장점과 단점이 생긴다. 캐릭터가 잡혀있으면 오프닝에서 바로 주제로 들어갈 수 있다. 다음 주는 제작본부장에게 받은 금일봉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놓고 이기는 사람에게 그 돈이 돌아가게 하는 거다. 캐릭터가 잡혀있지 않다면 이런 아이템은 맛이 안 산다. 좋은 놈, 나쁜 놈, 어색한 놈, 굴러들어온 온 놈 등 6명이 벌이는 두뇌, 심리싸움이 흥미를 유발하려면 캐릭터가 잡혀있는게 좋다."(김태호 PD)


만일 새롭게 시작하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의 '놈놈놈 특집'과 같은 기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면, 인물들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절반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해야만 할 것이다. 그에 비해 '네 멋대로 해라 특집'이 보여주듯 출연자들 간에 캐릭터를 바꿔 연기를 해도 큰 재미를 줄 수 있을 만큼 캐릭터가 살아있는 무한도전은 설명없이 내러티브를 전개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무한도전의 캐릭터가 식상해졌다는 비난은 '고정된 캐릭터'가 지닌 한 면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 무한도전이 주고자 하는 재미의 본질이 캐릭터를 넘어선 극적 구성과 형실 실험에 있음에도 무한도전을 여전히 '캐릭터 쇼'로만 평가하려드는 태도 역시 부적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캐릭터의 개성 역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타이틀만큼이나 무한도전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들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찌지리와 리남매' 역시 최근의 이러한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출연자들이 초청된 스포츠 스타들이 대결을 벌이고 패배를 하게 된다는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지만 영화, 게임 등에서 차용된 서사구조와 스타일이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한도전이 화제성을 쫓아 프로그램을 제작할 필요가 없을 만큼 더 성장하고 단단해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래서 '성장'과 '진화'라는 생물학적 수식어가 적용받을 수 있는 유일한 프로그램은 무한도전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by ddolappa

 

 


*알려드립니다.(리뷰 요일 변경)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리뷰가 계속해서 늦게 되어 먼저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벌써 6개월이 넘게 주말마다 무한도전 리뷰를 써오다 보니 이제는 제 건강과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요일 조정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주말마다 마감시간에 쫓기는 심정으로 글을 쓰다 보니 저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되었다는 사실도 숨길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쓴 글을 계속 틈틈히 수정하면서 조금만 더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 나은 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는 게 요일을 변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래 저의 계획은 리뷰는 월요일이나 수요일에 올리도록 하고, 토요일에는 '기획 리뷰'를 서너 차례 연재한 뒤 '무한도전 다시 보기'를 통해 1회부터 리뷰를 쓸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뜻하지 않은 여러 암초를 만나 모든 것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상태입니다. 이 점은 제 개인적인 상황으로 인한 부분이 크니 제 리뷰를 읽어오신 여러분께는 사죄의 말밖에 달리 드릴 말이 없습니다.


일단 '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는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시간을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원래는 수요일로 옮겨 다시 리마인드하는 방법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월요일이 그래도 낫겠다 싶더군요. 이 점을 모두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요일을 이동한 만큼 리뷰의 내용이나 형식 역시 약간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여유로워진 시간만큼 리뷰를 쓰기 위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더 얻은 셈이니 보다 나은 결과물을 산출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저 자신에게 더 큰 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니 양질의 리뷰를 여러분께 선보이겠다는 약속은 차마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드릴 수 있는 약속은 부족한 재능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성실하게 리뷰를 쓰도록 노력하겠다는 것밖에는 없을 것 같군요.


부족한 리뷰를 아껴주신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단 말씀 드리며 알림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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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