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36>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무한도전 122회 080920 : 지못미 특집
백설공주를 찾아나선 난장이들의 모험
'지못미 특집' 1부는 '서울구경 특집'의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출연자들 각자는 조커, 쿵푸팬더, 엄정화의 '디스코' 의상, 왕비호, 메두사 머리 등으로 분장하고 전처럼 목적지인 남산을 향해 집을 나서게 된다. 그런데 진행 능력만큼 빼어난 배드민턴 실력을 선보였던 유재석은 벌칙의상을 입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이미 최종 목표에 도달해 있다. 또한 '서울구경 특집' 때와 달리 그들에게 주어진 미션은 선착순 집합이 아니라 최대한 밝고 즐거운 표정으로 시민들과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 변화는 앞선 '다찌지리와 리남매' 편에서 정형돈과 노홍철에 의해 제기된 두 가지 문제들과 연관시킬 때에만, '서울구경 특집'과 차별화된 '지못미 특집'의 기획의도가 드러나게 된다.
정형돈은 박명수에게 농담처럼 '유재석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이는 그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의 출연자 모두에게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이기도 하다. 무한도전 내에서 유재석이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 위치는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는 '2인자' 박명수에 의해서 가려지거나, 유재석 자신이 짜증을 내며 헛점을 노출하는 방식으로 은폐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이 유재석의 '무한도전'이 아니라 '최고령 아이돌 그룹' 무한도전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1)
그러나 결혼 이후 박명수는 멀리뛰기를 하다 실수를 저지르자 "어떡하냐, 어떡하냐"를 연발할 정도로 선량한(!) 캐릭터로 바뀌었고, 날이 갈수록 유재석과 다른 멤버들 간의 격차는 공고해졌다. '지못미 특집'에서 유재석에게 전화를 받은 다른 멤버들은 한결같이 대중들 앞에서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듯 강조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무한도전 내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재석 본인에게나 다른 멤버들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할 뿐더러, 결정적으로 무한도전을 지탱해오던 세계관 자체를 붕괴시킬 만한 균열의 징후로 보인다. 실제로는 유재석과 다른 멤버들 간의 격차를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무한도전은 자유로운 이합집산이 가능한 역동적 쇼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러한 실제적 격차를 인정하는 순간 쇼의 매력은 사라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 역시 무한도전이 직면한 위험을 분명하게 감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정형돈과 달리 캐릭터의 식상함을 탈피하는 과제가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벌칙의상이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며, '지못미 특집'을 자신들의 새로운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자고 요구하게 된다. 노홍철은 유재석과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해서 시청자들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형돈의 문제의식과 연관된다.
그래서 '서울 구경 특집'에서 각자의 집에서 출발하는 설정은 캐릭터 각자의 경쟁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다면, '지못미 특집'의 경우 김태호 PD가 이미 밝혔듯이 "유재석 없이 다섯 명 너희들이 사회에 첫걸음을 떼보라고 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유재석이 다른 멤버들이 도착해야 할 목표 장소에 이미 도달해 있었던 것이나, 평상복 차림으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것도, 나머지 캐릭터들을 부각시키기 위한 '1인자'로서 그만의 여유이자 배려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하게 캐릭터를 변화시키려 하거나 억지로 출연자들 간의 균형을 맞추려 할 경우, 올해 초 '박반장 시대'의 경우처럼 논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대신 무한도전은 보다 신중하고 현명한 방식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데, 왜냐하면 캐릭터 각자의 경쟁을 유발하는 특집을 기획해서 캐릭터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방영 예정인 'PD 특집', '디자인 특집', '매니저 특집', '에어로빅 특집' 등은 캐릭터들 간의 경쟁에 중점을 두어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춰 기획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해 준다.
김태호 PD는 현재의 무한도전이 더 이상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성장기'가 아니라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세상에 나간' 이후의 이야기로 재정의한 바 있다. 이는 프로그램의 제작방향에서의 변화와 아울러 시청방식의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말인데, 과거 무한도전의 시청자들이 그들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감정이입을 했다면, 이제는 세상 밖으로 뛰어나온 그들이 시청자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어 일으키게 될 각양각색의 잔잔한 파문들이 주는 재미와 감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트루먼 쇼'(1998)
이미 무한도전은 올해초 방영된 '인도 특집' 편에서부터 이러한 변화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왕자의 입맞춤으로 성에 눈 뜬 백설공주는 더 이상 난장이들과 함께 동화의 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왕자와 함께 떠나버렸듯, 가족과의 이별의 슬픔을 경험한 무한도전의 난장이들 역시 안락한 스튜디오의 세계에 머물 수 없을 만큼 성숙해져버렸던 것이다. 무한도전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중국의 황사 문제나 대체 에너지 개발과 같은 환경문제에서부터 명절 증후군 같은 시사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보다 폭이 넓어지고 묵직해진 것 역시 이러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무한도전이 펼치게 될 이야기는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문을 열고 세상에 나간 이후 겪게 되는 이야기, 일곱 난장이가 백설공주를 찾아 떠난 세상에서 부딪히게 될 사건들을 다룬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못미 특집'은 그 동안 예비된 거대한 이야기틀의 변화를 가장 명시적으로 드러낸 그 첫 번째 시도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웃어라! 우리도 함께 웃으리라!
'지못미 특집'의 오락적 재미는 일상으로부터 일탈이 주는 기묘한 쾌감에 있다. 조금 더 세분화시켜 말하자면, 조커나 쿵푸팬더 등의 분장 자체가 유발하는 호기심, 그러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당혹스러워하거나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악의적 즐거움, 그리고 그들과 일반시민이 만나면서 발생하는 예측불가능한 긴장감 등이 뒤섞여 일으키는 화학작용이 시청자들에게 오락적 쾌감으로 수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자처하는 여섯 남자들의 쇼인 무한도전은 흔히 '굴욕'이라 불리는 수치심을 웃음의 중요한 기제로 활용해왔다. 시청자들은 연예인에게 흔히 기대하게 되는 것과 어긋나는 그들의 행동이나 모습에서 기묘한 우월감과 일종의 동류의식마저 느끼게 되었는데, 이러한 전략은 결과적으로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을 연예인이 아닌 이웃집 오빠나 형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김태호 PD는 프로그램 제작에서 '수치심'을 비롯한 다양한 심리적 기제를 적극 활용해 왔다. 섬과 같은 폐쇄적 공간에 갇혔을 때 사람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이상적 심리상태를 이용해 만든 '동해 가스전 특집'은 공간이 인간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기획된 특집이다. 새로운 오락적 쾌감을 창조해냈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는 출연자들의 실제 성격과 기질이 그들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전제 하에서 시놉시스를 구성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특집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흥미진진한 오락거리로 재구성한 가장 탁월한 특집으로 '김수로 특집'을 꼽을 수 있는데, 이중 몰래카메라와 김수로라는 강한 타자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 군상의 내면상태는 정교한 화면연출에 의해 한 편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극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더 나아가 무한도전은 분노, 공포, 증오, 시기, 미움, 질투, 슬픔, 좌절 등 오락 프로그램과 다소 어울리지 않는 부정적 감정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오락적 쾌감을 만들어냈다. 동료 PD들이 무한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충격을 느꼈다고 증언한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들에 기인하고 있다.
'지못미 특집'에서 중요한 웃음 기제로 사용되는 '수치심'(Scham/shame)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런 정서'로서 당혹스러움, 굴욕감, 치욕, 불명예, 수줍음 등의 정서와 함께 '수치심 정서군'(Schamfamilie)을 형성하고 있다. 수치심의 어원인 인도게르만어 'kam/kem'은 '가리다, 숨기다, 은폐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부끄러움의 감정이 '시각적 행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때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싶어하거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게 되는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속담은 이러한 감정 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수치의 감정이 시각적 지각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치욕스러운 감정이 개인의 심리적 사안일 뿐 아니라 고도로 사회적인 사안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류학자 알렉산더 슐러(Alexander Schuller)는 "봄과 보여짐은 우리를 사회화하고, 우리의 정체성과 자기 가치의식을 규정하고, 우리가 지식과 세계를 조직화하는 범주들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 한 바 있는데, 이는 시각이 생물학적 신체기관 이상의 것으로 한 사회의 문화, 가치, 이념 등을 매개하는 상징적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원치 않은 모습이 타인에게 보여지게 된다는 것이자 동시에 사회적 규범에 대한 위반을 스스로가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그손(Henri Bergson)은 인간의 행동이 사회가 기대한 태도나 규범에서 벗어난 '부절적한 기계적 경직성'을 내보일 때, 비웃음이라는 교정수단을 통한 상징적 처벌을 받게 된다고 파악한다. 누군가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면, 그 광경을 지켜보면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게 된다. 이는 넘어진 사람이 유기체에 어울리지 않게 '기계적 경직성'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단, 웃음을 통한 교정은 웃음을 유발하는 대상과 그것의 규범 위반이 심각한 유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에만 가능하다.(웃음의 '무해성의 원칙') '놀러와'에서 노홍철이 일부 과격한 남성팬의 행동을 재연해서 유진을 포옹했던 장면이 논란이 되었던 이유도 그것을 웃음으로 교정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심각한 위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
그러나 20세기 최대의 웃음의 철학자 베르그손의 견해는 누가 언제 어떠한 형태의 처벌을 결정할 수 있는 지, 또 비웃음을 받은 자가 다시 공동체에 적응을 할 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자기 고립의 길을 선택할 지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노홍철의 경우 그의 행위에서 불쾌한 모욕감을 느낀 시청자도 있지만, '비웃음'으로 가벼운 처벌을 내리고 넘어간 시청자도 있듯이, 심각한 규범 위반의 기준은 개인과 사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의 이론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또한 베르그손의 이론은 규범을 결정하는 집단의 관점에서 파악된 웃음 이론으로, 웃음을 사회적 적응 실패의 교정수단이자 제도적 폭력의 표현으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전(前) 파시즘적 웃음이론"(클라우스 하인리히Klaus Heinrich)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강압적 사회 통합을 만들어내는 징벌로서가 아닌 자발적 연대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행위로 웃음을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일본 특집'에서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길거리에서 진상 댄스, 저질 댄스 등을 추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장면은 기묘하게 안방에서 편안히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부끄러운 감정을 유발했다. 이 때의 수치스러운 느낌은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여행객들이 외국에 나가 '진상짓'을 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드는 감정과는 또 다른 형태로, 마치 자신이 일본의 거리에 내던져진 그들이 느꼈을 법한 감정을 공유하는 데서 생겨난 기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시청자들이 심정적으로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에게 감정이입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긴 하지만, 역으로 무한도전이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웃음의 전략을 구사해왔던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 여섯 남자들의 좌충우돌 도전기는 오락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팬덤 문화를 형성했고, 그 바탕에는 팬들과의 유대감을 만들어냈던 독특한 유머 코드가 존재하고 있다. 연예인이라는 가식적 포장을 벗겨내는 데서 생겨나는 무한도전식 웃음은 그들을 우리와 같은 이웃으로 느껴지게 만들었고, 그렇게 생성된 친밀한 관계는 그들이 웃을 때 함께 웃고, 그들이 울 때 함께 울 수 있는 상황까지 이르게 했다. 이 지점에서 베르그손의 웃음 이론은 재해석될 수 있는데, 그의 웃음이 외부를 향한 공격적인 (비)웃음이었다면, 웃음의 방향이 내부를 향해 (비)웃는 자와 (비)웃음을 당하는 자 사이의 차이가 사라지게 될 때 그들 간에 심정적 연대성이 생겨난다고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의 성공 전략은 바로 이처럼 웃음을 통한 시청자와의 유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성장기를 보며 감정이입했던 시청자들과의 유대가 현재는 단절되었다고 파악한다. 이는 무한도전의 성장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로 볼 수 있는데, 패션쇼 무대나 댄스스포츠 플로어 등 어디에서나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명성을 누리는 위치에 도달한 무한도전에게 시청자들이 예전과 같은 감정을 가질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태호 PD는 시청자들이 다시 감정 이입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대신 자신들이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함께 대화하고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게 되는데, '지못미 특집'은 바로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 중간중간에 캐릭터 각자의 고민들이 슬쩍 노출되고 있다. 박명수는 여성팬들에게 큰 호감을 얻지 못하고 있고, 정준하는 '기차 사건' 이후 대중들 앞에서 더욱 소심해져 있고, 정형돈은 대중들 앞에서 소심한 '어색한 뚱보'이고, 노홍철은 여전히 비호감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고, 전진은 무한도전에서 아직 신인처럼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식으로 그들이 지닌 문제점들이 가볍게 지적된다.
무한도전과 팬들 간에 축적되어온 신뢰는 솔직한 고백을 가능하게 했고, 그러한 고백은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책임의 일정 부분을 팬들에게 위임하는 동시에 그들을 끌어안으려는 몸짓으로 해석된다. 프로그램이 성장해온 과정을 지켜보며 그들과 함께 성장해온 팬들이 자신을 향한 손짓에 어떤 식의 반응을 보낼 지, 또 무한도전을 통해 맺은 웃음의 공동체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매니아의, 매니아에 의한, 매니아를 위한
무한도전은 인터넷 유행어(알렉스 화분, 장근석 홈피의 글)나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미국산 쇠고기 파동) 등을 곧바로 프로그램 제작에 반영할 정도로 당대의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현재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못미 특집'에서 출연자들이 선보인 조커, 쿵푸팬더, 엄기뉴, 왕비호 등의 분장 역시 이러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명 '메두사 머리'로 분장을 한 전진이 자신의 노래 'Wa'를 부를 때 시민들이 그를 '빠삐놈'의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다. 무한도전의 주시청자들은 현재의 유행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시선을 끌기 위한 연예인들의 단순한 분장쇼가 아닌 유행의 기호로 소비할 수 있는 계층이란 점을 그 장면은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이미 '슬램덩크'나 '드래곤볼'과 같은 만화의 대사를 자막으로 사용할 만큼 특수한 수용계층을 염두에 둔 듯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그러한 만화 대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만큼 매니아적인 제작자, 그리고 인용된 대사를 식별하고 웃을 수 있는 시청자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였다.
엄정화의 노래 '디스코'의 무대의상을 입은 정형돈을 '돈기뉴'라고 부르거나 '자기 별로 돌아 가고픈 돈기뉴'와 같은 자막이 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엄정화의 의상이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기뉴특전대'를 연상시키고 있기 때문에 네티즌들이 '엄기뉴'(엄정화+기뉴특전대)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돈기뉴'란 자막을 보고 웃기 위해서는 이러한 배경지식을 이미 습득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유래를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 그 장면을 보고 웃음을 짓기는 어려운데, 웃음은 분석적 인식이 아닌 직관적 인식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매니아 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던 것은 어쩌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온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즐기는 일요일 오후 시간대가 아닌 토요일 오후 시간에 배치된 무한도전은 처음부터 분명한 시청층을 타겟으로 한 프로그램이었고, 따라서 태생적으로 기자들이 좋아하는 '국민 오락프로그램'이 될 수 없는 운명이었는 지 모른다. 30%를 육박하는 시청률이 예외적 사건이었다면, 무한도전의 존재 의의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오락프로그램이 아닌 매니아적 제작자가 매니아적 시청자를 위해 만든 최초의 매니아적 프로그램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방송 제작에 있어 다품종 소량생산의 가능성, 취향의 민주화 등을 의미한다.
언론이 선호하는 시청률이란 기준은 방송의 질이나 유익성과 무관한 대중의 관심도만을 반영하는 기준일 뿐이다. 더욱이 '국민 프로그램'이나 '대세'와 같은 언론의 천박한 레토릭에는 즐길 오락거리가 지금과 달리 부족했던 7,80년대의 방송 환경에 대한 퇴행적 향수와 독과점적 시장주의 논리만이 읽힐 뿐이다. 국민 통합이란 명목으로 모든 시청자들을 하나의 대표적인 취향으로 묶으려는 반민주적 경향에 맞서,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개발은 분명 대중문화의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무한도전은 매니아적 프로그램을 대중성과 성공적으로 접목시킨 최초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그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토의 확장
'에너지파 쏘기'라는 미션을 받은 정형돈은 지하철에 오가는 승객들에게 '에.네.르.기.파'를 외치며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이 때 한 여성이 등장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지만, 정형돈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임무에 충실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마치 정형돈이 내뿜는 에너지파를 피하기라도 하듯 여성 승객이 몸을 숨기자 '혹시 이 분 초사이언?'이라는 자막이 등장해 만화 '드래곤볼'의 한 장면을 떠올리도록 한다. 또 다시 정형돈이 구호를 외치자 놀란 승객이 재빨리 자리를 피해 도망가는 모습은 '순간 이동'으로 묘사된다. 실제 현실의 인물은 이러한 연출기법을 통해 어느새 허구의 세계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와 유사한 장면으로 땀으로 인해 지워진 정준하의 분장을 돕는 여성 승객이 어느새 '큰 바위에 벽화'를 그리는 화가로 변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또 노홍철의 콧털에 묻은 김치 국물을 닦아주는 분식점 주인 아주머니는 애교 만점의 '시베리안 돌스키'를 귀여워 하는 애견인으로 변신한다. 이처럼 무한도전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단조로운 현실 세계는 굳은 침묵을 깨고 때로는 만화같고, 때로는 영화같은 꿈의 세계로 변하게 된다. 평론가 강명석이 "'무한도전'이 실제 세계와 접촉하면, 그것은 실제 세계와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이른바 ‘무도 월드’의 확장이 된다."고 지적한 것은 바로 이러한 사태를 정확히 지칭하고 있다.
무한도전의 난장이들은 동화의 세계를 떠나 현실의 세계로 들어오며 여전히 마법의 힘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지나가는 거리, 마주치는 사람들은 악당이 걸어놓은 일상의 견고한 마법에서 깨어나게 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울 구경 특집'에서 유재석이 비를 피해 한 여성분을 지하철 입구까지 안내하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비현실적 사건처럼 묘사된다. 심지어 무한도전은 한 도시 전체에 마법을 걸기도 했는데, '경주 보물 찾기 특집'에서 무한도전의 카메라에 포착된 경주의 모습은 수학여행 등을 통해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경주가 아니라 신화와 전설이 살아숨쉬는 모험 가득한 공간으로 나타난다. '며느리가 뿔났다' 편에서 재래시장은 노홍철의 제스처 하나로 순식간에 남녀 간의 사랑이 꽃 피는 부킹장소로 돌변한다.
그런데 정형돈의 에네르기파를 피하는 여성 승객의 모습은 무도의 자막이 덧입혀져 만화의 한 장 면처럼 연출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은 그 여성 안에 내재해 있던 약간은 코믹하고 약간은 만화 같은 속성을 자막과 영상이 포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재래시장이나 경주라는 도시 전체가 무한도전과 만나게 될 때 마치 꿈같은 비현실의 공간으로 돌변하는 현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리얼'한 현실을 자막, 배경음악, 편집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결과이지만,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실제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리얼'의 어떤 속성 혹은 현실 안에 잠들어 있던 꿈의 세계가 발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무한도전의 마법이라 부른 것은 바로 이처럼 단조로운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기 때문 에 미처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현실 안에 잠들어 있는 꿈같은 세계"를 일깨우고 있음을 지칭한다. 다시 말해 현실과 허구는 엄격하게 나뉜 두 세계가 아니라 굉장히 모호한 형태로 서로 뒤엉켜 있는 어떤 것일 수 있다.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은 박명수와 정준하가 조커와 쿵푸팬더 분장을 하고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던 장면이다. 무한도전의 카메라에 포착된 화면과 현장 중계 화면이 번갈아 교차되며 실제와 허구의 차이가 교묘히 사라진다. 현장 중계 카메라는 그들을 무한도전을 촬영 중인 연예인 박명수와 정준하로 인식하고 촬영을 했겠지만, 화질의 차이와 '현장 중계 화면'이란 자막을 제외하면, 그것이 무한도전의 촬영 현장인지 아니면 영화제의 한 장면인지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실제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이 기이한 현상은 '가정 방문 특집'에서 무한도전의 출연자들이 방문 가족들과 함께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가족들과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유재석은 자연인 유재석인가 아니면 무한도전의 '유반장' 유재석인가. TV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현실 속 사람들과 뒤섞여 자신들이 출연한 TV를 지켜보고, 그러한 광경이 다시 TV로 방송되는 비현실적 상황.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 2부에서 허구의 인물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는 실제 현실에서 있었던 '돈키호테' 표절작과 '돈키호테' 1부의 출판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허구의 세계가 실제의 세계와 조우하고, 그 과정이 다시 허구의 세계에 포섭되는 기막힌 사건이 현재는 TV 미디어의 보급을 통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무한도전은 실제는 쇼의 관점에서, 허구의 세계는 리얼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왔다. '히스찮은'이 유독 여성들에게만 말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벌써 한눈 파는 거야'라고 묻는 자막은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유부남 연예인 박명수를 지칭하고 있다. '둔부팬더' 정준하가 공공장소에서 유난히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자 '기차 사건'을 연상시키는 자막을 사용했는데, 이는 쇼의 바깥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시청자들이 알고 있다는 전제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일 박명수가 결혼했다는 사실과 정준하가 기차 안에서 촬영도중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쳐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그 장면을 보았다면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웃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한도전은 이러한 방식으로 두 가지 시점을 교차시켜 고도의 자의식성을 획득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이러한 자의식성은 언론의 잘못된 평가에 반박하는 자막의 사용 등으로 인해 때로는 오만하다고 평가받거나, 연출자 김태호 PD의 고집스러운 면으로 오인되기도 했지만, 프로그램 자체의 독특한 특성으로 해석해야 한다.
'농촌 특집' 편의 '너는 내 운명' 코너에서 정형돈과 하하는 시청률을 언급하며 출연자들의 몸개그를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이는 오락 프로그램이 실은 시청률에 연연하며, 자신들도 옷을 젖시기는 싫지만 시청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폭로이다. 기존의 오락 프로그램 문법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몸개그를 보고 웃으면 되고, 무한도전의 코미디 문법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시청률 타령을 하며 몸개그를 유도하는 정형돈과 하하의 중계를 현실에 대한 비꼼으로 인식하고 웃으면 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을 경우 "시청률 타령과 자막을 통한 시청률의 언급이 너무 지나쳐 프로그램 홍보방송 전락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밖에 낼 수 없게 된다.( 대중문화전문기자 배국남, ‘무한도전’의 짜증나는 시청률타령)2)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는 무수한 아류작들에서 '리얼'에 대한 이해나 실제 현실을 연출하는 방식은 지극히 소박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면, 무한도전은 고도의 자기 성찰성 혹은 자의식을 표출하며 '리얼'한 현실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현실에 잠들어 있는 꿈결 같은 세계를 일깨우는 무한도전의 카메라 앞에서 실제 현실은 허구의 세계가 뒤섞인 공간으로 나타나고, 무한도전이란 허구의 세계에서 발견되는 실제의 파편들은 그 세계를 현실처럼 보이게 한다. 무한도전의 시선 앞에서 현실과 허구는 매끈하게 나누어진 두 세계가 아니라 지그재그로 연결된 불균질의 공간이다. 따라서 '리얼'에 대한 무한도전의 탐사영역은 실제와 허구가 분기하는 경계선이라 할 수 있다.
가면 벗기기
'지못미 특집' 1탄이 벌칙분장을 한 출연자들이 현재 당면한 고민을 가면 속에 감춘 이야기라면, 정형돈에 의해 기획된 2탄은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언론의 위선적 가면을 벗기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2탄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며느리가 뿔났다' 편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명절 증후군 문제를 다룬 '며느리 특집'은 남성 출연자들이 명절날 여성들이 하는 노동 과정을 그대로 실행하도록 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중국의 쿠부치 사막을 방문해서 수자원의 중요성을 일깨웠던 것과 구분된다. 박명수의 상황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하재근 같은 대중문화 평론가도 김태호 PD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겨우 그 안에 담긴 의도를 간파했다고 고백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엔 다소 난해했던 측면이 있다.
그에 비해 명절날 여성의 노동력 착취 문제나 사실 확인도 없이 소문을 기사화하는 언론의 그릇된 행태를 다루고 있는 접근법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보다 쉽고 구체적으로 문제의 핵심을 전달하고 있다.
무한도전의 이러한 리얼리즘적 극적 구성방식은 독일의 저명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극작법을 연상시킨다. 그는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적 환영극이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을 잊게 만들고, 그로 인해 그릇된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기가 서툰 배우를 무대에 세우거나, 의도적으로 소음을 만들어 관객들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반아리스토텔레스적 연극'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는 이러한 낯설게 하기 수법을 통해 관객들이 상황 속에서 스스로가 사고하게 되기를 원했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여타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리얼'의 요소를 기존의 버라이어티쇼가 주지 못했던 극적 긴장감의 요소로 소비하고 있다면, 무한도전은 보다 급진적이고 진취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고달픈 현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오락 프로그램만큼 이데올로기의 개입이 손쉬운 장르도 따로 없지만, 무한도전은 대중의 아편으로 기능하는 대신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현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비타협적 태도를 견지한다. '미친소' 자막도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거론한다는 태도 역시 무한도전을 우리 시대의 가장 뜨거운 '문제적' 프로그램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도전은 격렬한 언론의 공세를 온몸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던 것처럼 보인다. 시청률 사건과 박명수의 상황극에 대한 몰이해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시청률'과 '편견'으로만 무한도전을 재단하려 드는 '일부'(!) 언론의 몰지각한 행패에 맞서 그 동안 무한도전은 정말 사력을 다해 싸워왔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으로서의 역사에 대해 말했다면, 무한도전의 역사는 '도발과 응전'의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S본부의 '라인업'이 등장한 이후 언론의 도발은 도를 넘어섰는데3), 강희수 기자는 "'무한도전', '라인업', 무한 아이템 경쟁 시대"라는 기사에서 듣도 보도 못한 "단계적 발전이론"을 주장하며, '라인업'이 "선발주자인 MBC TV의 ‘무한도전’을 모방해 출발했지만 창조적 모방 단계로 급속히 넘어가고 있다"고 썼다. 이 기사에 대해 무한도전은 "내가 하면 하찮은 모방"이란 자막으로 응수하기도 했다. 최근에 강희수 기자는 "‘무한도전’, 정준하 딜레마? 시청자들 불만의 소리"라는 기사를 써서 '딜레마 사우루스'가 탄생하게 되는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외에도 표절과 패러디를 구분하지 못하고 비난했던 기사를 비꼬았던 '50회 특집', '과장과 왜곡'을 사이비 언론의 특징으로 명시했던 '일본 특집', '추측성 보도'의 폐해를 그대로 보여주었던 '베이징 올림픽 특집'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무한도전이 죽기를 바라는 비판적 기사들이 들끓던 당시 김태호 PD는 인터뷰에서 '조만간 부고장이 나올 판'이라며 개탄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거짓 기사들이 반복될 경우 소문이 사실로 둔갑하게 될 것을 우려했는데, '지못미 특집' 2탄은 바로 이러한 언론관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치의 선전부장이었던 괴벨스는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 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는 현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날카로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한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고도 말했는데, 완전히 거짓으로 일관된 기사보다 부분의 진실을 부풀리고 왜곡시켜 날조된 사실을 마치 진실인양 선전하는 기사들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좀비 특집'에서 제작비 초과로 '경위서 작성중'이라는 자막이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유머로 삽입된 자막이었음에도, 언론은 무한도전에 마치 실제로 심각한 사건이 벌어진 것처럼 기사를 작성해서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기자들의 부족한 유머 감각으로 인한 폐해를 시청자들이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는 형국이다.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
현재의 황색 저널리즘이 보여주는 작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동물학'이 보다 적합한 지 모른다. 특히 썩은 고기를 먹는다는 하이에나의 행태는 사비이 언론의 보도 행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최근 한국 연예계에 불어닥친 죽음의 행렬 앞에 하이에나 언론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가 패악을 부렸다. 남편 고 안재환의 죽음으로 인해 신음을 하다 가사상태에 이른 정선희에 대해 쓴 "정선희 건강상태, “정신 줄을 놓았다”.. 동료연예인 면회 불가능"이란 기사 제목은 아연실색케 한다. 기자가 정신줄을 놓지 않고서야 이 따위 제목을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또 고 최진실의 죽음에 대해서는 거의 축제라도 벌어진 마냥 몰려들어 고인의 죽음을 욕되게 했다. 기자는 도대체 왜 그녀가 자살에 사용한 압박붕대가 궁금했던 것일까?
언론 하이에나 떼의 주서식지는 TV 수신기 앞과 시청자 게시판이다. 사냥에 있어 스피드가 생명이기 때문에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를 올리는 건 기본이다. 그리고 미끼는 싱싱할수록 사냥이 잘 되기 때문에, 게시판을 뒤져 논란이 일어날 만한 자극적인 내용의 글을 이용한다. 청각이 온전하지 못한 시청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정준하 욕설 의혹'은 어느새 '정준하 욕설 논란'으로 둔갑해 없는 논란을 만들어내는 건 일도 아니다. 사실 확인 과정만 거쳤어도 그런 터무니없는 기사는 나오지 않았겠지만, 기사의 목적은 페이지뷰라는 먹잇감이므로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언론 하이에나의 야비함은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하다는 철칙에서 잘 나타난다. 떠돌던 소문을 연일 기사화해서 마침내 나훈아라는 호랑이를 언론 앞에 서게 만들었지만, 그의 포효 앞에 의혹 해명은 고사하고 쥐새끼마냥 납작 엎드려 그의 바지내리기 쇼를 지켜본 것이 고작이다. 그에 반해 약점을 잡힌 사냥감 앞에선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드는 지는 최민수 사건을 통해 잘 알 수 있다.4) 그들이 사냥을 나섰을 때 악플러들이 함께 나서게 되면 그보다 더 금상첨화인 일도 없다. 모든 죄는 악플러들에게 뒤집어 씌우면 되는 일이니까. 그래도 동족 간의 돈독한 우애만큼은 결코 남부럽지 않은데, 송일국-김순희 기자 사건에서 고난에 처한 동료기자의 일에 발 벗고 나서 여론을 선동하려 했던 아름다운 광격을 목격할 수 있다.5)
가수 나훈아의 바지 벗기 퍼포먼스
최근에 등장한 "아시아"산 하이에나 무리는 그 난폭함과 잔혹함에 있어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막무가내와 무식으로 일관된 어처구니 없는 내용의 기사를 써내면서 단박에 하이에나 무리를 이끄는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는 괴벨스의 교훈을 그 집단만큼 성실히 따르는 집단도 드물다. 할 수만 있다면, "아시아"산 하이에나 무리의 기사 옆에는 "이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을 붙이고 싶을 정도이다.
그러나 일부(!) 황색 언론을 '하이에나'에 비유해 말했지만, 이 표현은 하이에나에 대한 모욕이다. 왜냐하면 하이에나는 배가 부르면 먹기를 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적합한 표현을 찾던 중 중국 삼황오제 이야기에서 매우 적절한 고사를 발견했는데, "혼자 행동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구 행동하는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시발노무색기(始發奴無色旗)"란 표현이 있다고 한다.6) 거짓 소문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히고, 또 프로그램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못하면서 고작 시청률과 일부 네티즌들의 견해를 근거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나 써대는 자들에게 이보다 더 정확한 명칭도 없을 듯싶다. 그런데 한국 언론계의 "시발노무색기"가 정말 일부일까?
by ddolappa
1) 이에 대해선, 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5회(2006.1.14.) 중 '유재석은 무한도전의 리더다' 부분을 참조할 것.
http://tvzonebbs.media.daum.net/griffin/do/talk/program/challenge/read?bbsId=178_a&articleId=4882&pageIndex=1&searchKey=daumname&searchValue=
2) 추가로 무한도전의 자막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 대표적 기사.
비속어·막말·욕설… '오만한 자막' 기가 막혀!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32&newsid=20071010122805457&cp=hankooki
3) '라인업' 등장 이후 언론의 기사 양태에 대해서는 다음 게시물을 참조할 것.
라인업 전후로 무한도전에 대해 달라진 기사 총정리(by 재간둥이)
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challenge/read?bbsId=S000054&articleId=17534&pageIndex=1&searchKey=id&searchValue=
4) [최민수 사건] 내막이 안 궁금합니까?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K161&articleId=61331&hisBbsId=total&pageIndex=1&sortKey=readCount&limitDate=-30&lastLimitDate=
5)송일국 옷깃 사건, 어려운 승리였다-3개월간의 직접 취재를 돌아보며
http://blog.daum.net/gogang1028/7320949
6) 언론계의 "시발노무색기"를 찾아라
http://media.daum.net/society/media/view.html?cateid=1016&newsid=20031117110811761&p=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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